왜 학벌은 세습되는가? - 퓰리처상 수상 기자가 밝힌 입학사정관제의 추악한 진실
대니얼 골든 지음, 이기대 옮김 / 동아일보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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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에 '입학사정관제' 도입을 논의하기 시작한 시점은 참여정부 후반기이고 2007년 6월 교육부에서 지원계획을 발표했다. 이명박 정권 집권 이후인 2009년 대학입시부터 반영되기 시작했다. 입학사정관제는 실시 초기부터 교육계와 한국사회 전체에 우려를 안겨주고 있다.
“교수 ·교사 10명 중 7명 입학사정관제 확대는 공정사회와 안맞아” 한국교총은 2009년 10월 한국교육학회, 한국교육행정학회, 한국정책학회, 한국행정학회 소속 교수·학자 203명과 일선 초·중·고 교사 77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교수·학자 61.6%와 교원 70.4%는 ‘입학사정관제 확대는 특혜 시비 등의 우려가 있어 공정한 사회와 배치될 수 있다’고 답했다. 2009년 9월에는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특채 파문이 일면서 입학사정관제가 선발 과정에서 고위층 자녀, 교직원 자녀, 특정학교 인맥 등에게 특혜를 주는 제도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에 나오기도 했다.
이런 논란에 불을 붓듯 한 교육업체 대표가 트위터에 “내 아내가 입학사정관인데 덕 좀 보시죠”란 내용을 올려 파문이 커지자 결국 해당 입학사정관은 업무가 정지됐고, 소속 대학교도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이같은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현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입학사정관제가 ‘과연 공정한 입시’인가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후 정부는 입학사정관제의 공정성 문제에 대한 긴급 실태조사를 벌이겠다고 발표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여지껏 흐지부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먼저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공정한 사회’를 지향하는 미국의 실태는 어떨까?

 

"부자 백인에 대한 미국 명문대학의 부정한 특혜 입학조치는 하버드대, 예일대, 프린스턴대, 스탠퍼드대, MIT대, 컬럼비아대, 다트머스대, 듀크대, 미시간대, 노트르담대, 브라운대 등 모든 아이비리그에 공통적이다."
"명문대학 특혜 입학은 조지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상원의원(예일), 앨 고어 부통령(하버드), 빌 프리스트 상원의원(프린스턴대), 존 케네디와 지미 카터(브라운대) 등 유명 정치인과 가족들이 주도했다."
"명문대학은 비영리기관으로서 정부로부터 세금 보조를 받으며, 비과세 혜택에다 수 십억 달러의 정부기금과 연구 장려금을 챙기면서도 '다이아몬드 원석을 발굴하고 세공해야 하는' 사립학교의 사명을 외면한다."

 

2년간의 끈질긴 취재 끝에 이 책를 쓴 대니얼 골든에 의하면 그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그는 책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문 대학이 신분 상승과 균등한 기회 부여라는 미국인의 꿈을 이루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현행 미국 입시제도는 소수의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바늘구멍만한 합격의 문의 열고 있는 반면 특권층 자녀들은 손쉽게 명문대학에 들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으며, 심지어 졸업 후 기업과 정부기관의 높은 자리까지 갈 수 있도록 친절히 안내해준다.”고 폭로하고 있다. 그는 입학사정관제가 어떻게 변질되어 왔는가를 설명하며 많은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경쟁률이 높고, 권력과 풍요로움으로 향하는 관문 역할을 하는 100여 곳의 사립대학들이 부유하거나 연줄 있는 학생들에게 특혜를 주고 있는 입시제도의 이중 잣대를 폭로한다. 이들은 노골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지연입학deferred admission이나 편입 등의 제도를 이용해 ‘특별대우’라는 이름의 옆문으로 그들을 받아들이는 입학처장과 직접 대면하는 특권을 누리면서 일등석에 앉아 대학 입시라는 고된 여정을 편안하게 여행한다. 그들은 다른 지원자들이라면 곧바로 낙방할 만한 사안인 서류접수 마감일 경과에서부터 음주운전까지도 용서 받는 능력도 지녔다.
정상권의 대학들은 가난한 학생들도 충분한 재정지원을 하기에 입학이 어렵지 않다며 이른바 니드 블라인드(Need-blind,학생 선발 시 학생의 재정상태를 고려하지 않는 제도) 떠벌린다. 그러나 그들이 부富에까지 눈을 감는 것은 아니다. 대학들은 사립 인문계고교 출신을 주로 합격시키고, 테리 샌포드 총장 시절의 듀크 대학처럼 학생 모집관에게 부유한 집안의 학생들을 유치하라고 지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또 단기적으로 선물(기부금)의 유혹에 휘둘리고, 장기적으로는 가난한 집안 출신 학생들을 너무 많이 뽑을 경우 가난한 동문 계층이 형성되어 결국 기부금이 줄게 될까 두려워한다. 

 

"하버드대학의 입시 경쟁율은 10:1이 넘으며, 신입생 90%가 고교 상위 10%에 속한다. 그러나 주요 기부자의 자녀 합격율은 50%가 넘는다. 거액기부자 모임인 자원위원회 회원의 자녀는 90% 이상 입학했다."
"하버드 대학에는 'Z명단'이 있다. 이것은 동문과 기부자들의 '덜떨어진 자녀들'을 입학시키기 위해 입학사정 원칙을 조정하여 옆문으로 입학할 수 있게 해주는 하버드대의 지연입학 정책을 뜻하는 용어다."
"듀크대의 1,2차 신입생 선발결정 후 일부 지원서류는 골판지상자에 담아 총장에게 가져간다. 총장은 직접 서류를 선별하여 가능성 높은 학생이 아니라 합격만 시켜주면 대학에 거액을 던질 기부자의 자녀를 선택한다."
"정재계 유명인사나 헐리우드 스타급 연예인의 자녀들은 브라운대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할 필요 없다. 브라운대가 함량 미달의 '있는 집' 자제들을 위해 입시제도를 수정해 '특별학생' 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노트르담 대학이나 다른 명문대학에서 동문특혜를 실시하는 것은 부유한 집안의 부가 다음 세대로 넘어갈 때, 교육수준이 쇠퇴하는 것을 막아주는 보험 역할이다. 마치 영국 귀족들이 상원 세습으로 대를 이어가듯이.."
"명문대학의 체육특기생은 스쿼시, 요트, 스키, 조정, 펜싱, 승마 등 귀족스포츠를 통해 기금조성 가능성부터 따진다. 이들은 실력을 따지는 감독의 의견보다 입학처의 강력한 입김으로 부드럽게 입학한다."

 

SAT만점자는 탈락하고, 성적 미달인 앨 고어 3세는 하버드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해리슨 프리스트나 앨 고어 3세와 같은 수천 명의 상류층 자녀들은 매년 실력이나 다양성과는 무관하게 소리 없이 명문 대학에 들어간다. 즉, 이들은 ‘특권층에 대한 특혜’의 덕을 톡톡히 보는 셈이다. 대학입학 안내책자나 입학설명회, 대학 관계자들은 이런 사실을 무시하거나 별것 아니라고 말하지만, 특권층에 대한 특혜는 경쟁이 간발의 차이일 때 조금 눈감아주는 정도가 아니다.
그들은 일상적으로 성적이 떨어지는 지원자를 실력 있는 학생 위에 올려놓으며, SAT 평가에서 수백 점이나 되는 점수 차이를 눈감아주기도 한다.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집안의 자녀들이 너무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그들보다 훨씬 우수한 중산층이나 서민층 자녀들의 합격률이 점차 낮아지는 것은 대학들이 스스로 인정하는 정도보다도 훨씬 심하다.”
입시에서 각종 특혜를 누리는 백인의 숫자는 우대정책의 지원을 받는 소수인종의 숫자보다 훨씬 많다. 명문대학 입학생의 최소 3분의 1, 그리고 명문 교양대학Liberal Arts College 입학생의 절반 이상이 입학 과정에서 우대 대상이라는 인식표를 달고 합격했다. 일반적으로 전체의 15% 정도를 소수인종 출신 학생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반해 부유한 백인들이 체육특기생(전체의 10~25%), 동문자녀(전체의 10~25%), 기부입학자(전체의 2~5%), 유명인사이나 정치가의 자녀(전체의 1~2%), 교수 자녀(전체의 1~3%) 등 특혜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압도적이다. 어떤 지원자에게는 복수 특혜도 적용되는데, 예를 들면 동문자녀이면서 동시에 운동선수인 경우이다. 결국 일반 지원자들은 전체 정원의 40%를 놓고 경쟁하는 셈이다.
그나마 위의 추정치는 보수적으로 잡은 수치다. 한번은 버클리의 로버트 버지노Robert Birgeneau 총장이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한 대학의 전체 정원에서 일반 학생들이 차지하는 비율을 계산해 본 적이 있었는데 깜짝 놀랄만한 결과가 나타났다고 고백했다. 어떤 특혜도 없이 지원하는 학생은 단지 전체 정원의 40%를 놓고 경쟁한다는 것이다. 버지노 총장은 또한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동문자녀 입학 사례를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동문의 손자 손녀는 동문자녀 통계로 잡지도 않고 있는데, 동문들이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뒤에 기부금을 내면서 입학처에 큰 입김을 불어 넣는데도 통계는 그런 식으로 집계한다는 것이다.

 

"명문대학들에서 일반 지원자들의 대학 합격률은 19%인데, 동문 자녀는 50%로 매우 높다. 하지만 이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교직원 자녀의 합격률이 70%나 된다는 것이다. 등록금까지 면제..."
"미국 국세청은 미국 납세자들이 교수 자녀의 등록금을 부담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그 혜택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다. 그러나 결속력이 강한 대학들은 번번이 로비로 막아냈다."
"현재 미국 대학 입학문에서 가장 소외되는 계층은 소수인종 특혜를 받는 흑인,남미계나 기부입학, 동문특혜, 체육특기생이 아닌 실력이 있는 저소득층 아시아계와 실력있는 백인 중산층이다."
"미국 대학에 재학 중인 외국학생들 대부분은 부유한 집안 출신이다. 이들은 고급 기숙학교나 외국인 국제학교 출신으로, 이들 학교는 사업가나 외교관, 상류층 자녀들을 교육시키며 두둑한 수입을 챙긴다."
"미국사회에서 동문 특혜 세습을 놓고 여론이 거센데도 대학과 정치인의 동문특혜 거래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동문특혜 철폐를 결정해야 하는 정치인, 법조인들 대부분이 동문특혜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같은 특례입학으로 인해 지난 반세기 동안 상위계층과 하위계층 사이의 소득격차를 심화됐고 미국 사회의 특징이라고 정의됐던 사회적 이동성은 이제 길거리의 공중전화 부스만큼이나 찾아보기 어려워졌다고 한탄한다. 그러면서 그 피해는 미국 스스로가 지게 될 것이라 경고한다. 인재를 배제하고 특권층의 무능한 자녀를 선택하는 것은 국가경쟁력과 정치적 지도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비리그의 부당한 특례 입학 없이도 대학의 우수한 실력과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칼텍과 쿠퍼 유니온대, 버리어대를 소개하고, 특례입학을 막기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캘리포니아공과대학(칼텍)은 학생 선발시 아이비리그와 달리, 순수하게 학업성적만을 고려한다. 부유한 동문을 육성하거나 거액의 기부금을 유치하기 위해 입학기준을 낮추지도 않는다."
"칼텍은 기부입학이나 동문 특혜, 체육특기생 없이도 2005년 기준 14억 달러의 기금을 모금하여 학생 1인당 기금순위에서 MIT보다 높은 18위를 기록했다.
칼텍, 쿠퍼 유니온대(뉴욕), 버리어대(켄터키)는 상류층 특혜도 귀족스포츠팀도 기금조성 작전도 없는 미국 내 유일한 대학이다. 저소득층의 실력과 가능성 있는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다."
"칼텍과 쿠퍼유니온(예술/건축), 버리어대(진보가치)의 공통점은 학교 규모를 늘리지 않는다. 성과를 통해 대학의 명성을 높인다. 입학결정에 교수가 참여한다. 기부자에게 창의적인 방법으로 보상한다."

 

미국의 대학 입학 사정관제의 추악한 진실을 알고 나면, 입학사정관제 등 대학측에 대학입학 선발의 자율권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혹시 교육부와 기득권층에서 미국의 입학사정관제가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특례입학임을 미리 알고 추진한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무조건 미국의 제도를 추종할 것이 아니라 한국의 수준과 실정과 문화에 맞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다. 무한경쟁 대학입시의 비인간성과 부실한 관리실태, 수능 줄세우기, 대학서열화와 학벌만능주의, 공교육 투자비 저조, 최종 결과인 공교육 붕괴를 먼저 혁신적으로 바꾼 후에 입학사정관제든 다른 제도든 검토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 2012년 11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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