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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 :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ㅣ 평화 발자국 9
김수박 지음 / 보리 / 2012년 4월
평점 :
이 책은 <먼지 없는 방>과 함께 '삼성 백혈병 시리즈'를 이룬다. <먼지 없는 방>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숨진 고 황민웅씨와 아내 정애정씨의 이야기라면, 이 책은 마찬가지로 반도체 공장에 다니다가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와 아버지 황상기씨의 이야기다.
"꽃이 질 때쯤 되면 최고의 향이 나거든.사람도 똑같애. 사람은 나이가 먹을수록, 늙을수록사람 냄새가 나는 거야." 황상기 씨의 말이다. 황상기 씨는 사람도 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만의 향기를 가진다고 한다. 나이를 먹으면,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귀기울일 줄 알고 그 얘기를 들어주는 것도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말한다. 그러나 딸을 잃게 만든 그곳, 삼성에서는 자기 회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이들이 외치는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바로 그 한 가지, '사람 냄새'가 없기 때문이다.
황상기 씨의 딸 황유미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열아홉 나이로 삼성반도체 공장에 들어갔다. 삼성에 입사한 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집에 왔다. 그런데 일을 한 지 2년이 지날쯤부터 딸은 몸이 아프다고 했다. 백혈병이란다. 딸의 병을 치료하면서 같은 병원에서 백혈병에 걸린 삼성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만나려고 했지만 만나지 못했다. 게다가 딸과 같은 조를 이뤄 일한 동료 직원도 백혈병으로 죽었다. 혹시 딸은, 삼성에서 병을 얻은 것이 아닐까?
삼성에서 사람들이 왔다. 황유미씨의 병가 기간이 다 지났기 때문에 사직서를 써야 한다고 했다. 황상기씨는 사직서를 쓰기 전에 산재 처리를 요구했다. 돌아온 대답은 “이 큰 회사를 상대로 이길 수 있으세요?”였다. 산재 처리를 포기하고 나머지 치료비를 요구했다. 삼성은 치료비(1억)를 대줄 테니 이 일로 회사에 이유를 달지 말라고 했다. 딸의 치료가 우선이었기 때문에 삼성이 원하는 대로 백지사직서에 사인을 했다. 돌아온 건 유미 병의 재발과 500만 원 뿐이었다.
이처럼 삼성전자는 교활했다. 고 황민웅씨나 정애정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삼성전자는 중소 도시에서 고등학교만 졸업한 '세상 물정 모르는 부모 슬하의 선남선녀'를 가장 위험한 반도체 공장에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반도체 공장의 위험에 대해서도, 노동자로서의 기초적인 권리에 대해서도 아무런 통지도 교육도 하지 않는다. 일하다가 아프면 무조건 개인의 잘못이나 지병으로 돌린다. 그리고 협박과 회유를 하고, 그것이 안되면 법으로 응수한다.
황상기씨는 딸의 병을 알리기 위해 근로복지공단과 정당과 방송국을 찾았다. 정당, 방송국은 '삼성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렸다'는 증명서를 삼성에서 떼어 오라는 말뿐이었다. 산업재해 신청을 하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을 찾았다. 돌아온 대답은 “삼성에다 산재 신청을 어떻게 합니까?”였다. 황유미씨 병의 진실을 알고 싶지만 삼성이 쳐 놓은 단단한 울타리에 부딪쳐 메아리로 맴돌뿐이었다. 언론은 이 문제를 쉽게 다루지 못하고, 근로복지공단은 삼성에 공문을 보내 산업재해 불승인 취소 소송에 삼성 변호사를 보조참가인으로 지원받았다. 삼성은 계속해서 사람을 보내 어두운 돈을 내밀며 회유를 하려고 한다. 황상기 씨는 딸이 죽은 진짜 원인을 밝혀 내기 위해 ‘반올림’에서 또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계속해서 삼성과 싸우고 있다.
김수박 만화가는 독자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와 들어야 하는 이야기를 적절히 엮어 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세상에 처음 알린 황상기씨의 이야기와 더불어 삼성공화국이라 불리는 한국사회의 모순을 함께 담아 냈다. 한 아버지가 딸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리려고 할 때, 딸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장본인인 삼성은 무엇을 외면하고 무엇에 집중하고 있었는지 보여 준다. 언뜻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와, 삼성의 비리 및 3세 승계 문제는 함께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두 이야기를 적절히 배치해 넣으면서 한국 사회에 녹아 있는 삼성 문제를 하나로 묶어 냈다. 국민 기업 삼성이 진정한 일류 기업이 되려면 이제는 이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인권을 이야기하고, 상식을 이야기하고,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산업안전과 정의를 이야기하려면 삼성 백혈병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진정한 '언론'이라면 삼성 백혈병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참된 지식인이라면 삼성 백혈병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정치인이 스스로를 '민중의 충복'이라고 말하려면 삼성 백혈병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과거에 거대 기업 삼성의 이건희 일가와 가신들의 뇌물을 받았다 하더라도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한 다음 나서야 한다.
[ 2012년 11월 0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