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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드림
조지 R. R. 마틴 지음, 이수현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5월
평점 :
시뻘건, 핏빛의 하늘을 배경으로 하는 검은 물 위의 배... 그리고 날고 있는 것은 까마귀이고, 배는 해골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배의 이름은 피버드림입니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시공간은 1857년의 미국입니다. 주로 미시시피 강과 피버드림이라는 배 위 그리고 세인트루이스와 뉴올리언스라는 도시가 등장합니다. 증기선이 강을 따라 오가면서 승객과 화물을 이동하던 시기이고, 노예제라는 신분차별제가 있는 시기입니다. 150여년 전의 일인만큼 이 시기에 살던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기록은 조금 더 오래 남을 수 있겠지만, 생존자를 찾기에는 어려운 그 정도의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거지요.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라졌으나 괴담으로는 남을 수도 있을만한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증기선 회사를 운영하는 마쉬 선장은 자금난에 처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예의바른 조슈아 요크는 자금을 대어 새 배를 건조하자고 투자를 합니다. 수상하지만 좋은 조건이었고, 이 배는 피버드림이라는 이름으로 미시시피 강에 나타납니다.
이 동업자가 내건 조건은 배의 운행으로 인한 수익이 아니라, 개인적인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다 정체가 수상한 탓에 선장은 계속 의심을 하고, 알게 된 건 그가 뱀파이어라는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어딘가에 있을 그의 동족들을 피의 갈증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어 시작한 일이라는 거지요.
두 사람의 희망으로 가득찼던 피버드림은 미시시피강에서 가장 빠른 증기선이 될 예정이었지만, 불길한 이름이라도 되었는지 수상한 일행들을 만나게 되는 것으로 배에 탄 모든 사람에게 위험과 잔인하고 끔찍한 사건을 겪게 합니다. 이성과 인간적 가치를 중시하는 조슈아가 본능과 기존의 질서를 따르는 줄리앙에게 지고, 마쉬 선장도 두 번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이 배는 사라져버립니다. 유령처럼요.
그 후로도 포기하지 않았던 선장과 다시 만난 조슈아가 반격을 하러 가게 된 건 13년이 지나 선장이 노인이 되어 지팡이를 짚어야 할 시기입니다. 그 사이 세상은 너무 많이 변했고 증기선의 시대도 저물고 있었으니 피버드림은 다시 증기선으로 이름을 날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세상이 달라지면 이전의 것들은 자리를 내주게 됩니다. 최신의 유행을 선보이던 것들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사라지고, 더 오래되면 전시관에서 보게 됩니다. 피버드림이 제 역할을 하고 저 너머로 갔다면 좋았겠지만, 첫 항해에 이름을 잃어버리고 사라졌으니 선장의 아쉬움과 분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이를 먹어 몸은 예전같지 않지만 성격은 그대로 강인한 선장과 뱀파이어라서 외모는 그대로이지만 힘을 잃고 위축되어 버린 조슈아가 대비되어 보였습니다.
괴담은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어쩌면 전에는 어떤 것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래 되어 다들 잊어버렸을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면서 변해버린 모습만이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뱀파이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들이 영원히 산다는 것과 늙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사라진 배에 태운 것이 그들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없어지지도 않고 쇠락하지도 않는 두려운 것을 두려움 그대로 남겨놓지 않은 결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