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기담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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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기담집>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섯 편의 단편 모음집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다섯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제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작가를 떠올리게 하는 무라카미 라는 작가를 화자로 한 첫번째 단편으로 인해서, 이 책이 소설임에도 신기한 실제 경험을 써 놓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 책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현실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원숭이가 말을 하거나, 갑자기 사라지거나, 죽은 아들이 나타난다거나 하는 일들이니까요.

 

 <우연여행자>는 이 책의 첫번째 단편인데, 제목처럼 내용에서도 살면서 만나는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작가인 자신은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가끔씩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작가이기 때문에 다들 믿어주지 않을거라는 설명에서는 하루키 에세이를 읽는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그런 점들이 소설 속의 세계를 실제 경험처럼 느끼는데에 조금 더 현실감을 더했던 것 같습니다.

 

  화자가 만난 사람은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지금은 조율사로 살고 있는 게이입니다. 그는 어느 서점에서 우연히 같은 책, 찰스 디킨스의 <황폐한 집> 때문에 그 여자와 만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자의 점으로부터 오래 전 그가 게이임을 밝히는 바람에 더이상 만나지 않게 된 누나의 점을 떠올렸습니다. 그 여자가 유방암에 걸렸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절망을 토로했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떠올랐던 누나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 같은 성별, 그리고 그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것 외에는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동시성을 가진 일들이라는 것은 우연이었을까요. 아니면 다들 그런 일들을 계기로 오래 전에 만나야 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되는 일을 만들어 주는, 우연이 아닌 일이었을까요.

 

 이 책의 다른 이야기는 이 <우연여행자>보다는 환상적 색채가 더 선명합니다. <하나레이 해변>의 죽은 아들 목격담이나, < 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의 갑자기 사라졌다 갑자기 나타난 남자, <시나가와 원숭이>에서는 말하는 원숭이와 이름의 특별한 힘 같은 것이 나오고 있으니까요. <우연여행자>와 <날마다 이동하는 콩팥 모양의 돌>에서는 그러한 신기한 일들은 적은 편이긴 합니다만, 이 다섯편을 읽다보면 이 한 권을 지나는, 우연과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것들에 있었을 의지 같은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계기가 무엇보다 중요했어요. 나는 그 때 문득,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연의 일치라는 건 어쩌면 매우 흔한 현상이 아닐까라고요. 즉 그런 류의 일들은 우리 주위에서 그야말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거예요. 하지만 그 대부분은 우리 눈에 띄는 일도 없이 그대로 흘러가버리죠. 마치 한낮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희미하게 소리는 나지만 하늘을 올려다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건 분명 우리 시야에 일종의 메시지 로서 스르륵 떠오르는 거예요. 그 도형을, 그 담겨진 뜻을 선명하게 읽어낼 수 있게. 그리고 우리는 그런 걸 목도하고는, 아아,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참 신기하네, 라고 화들짝 놀라죠. 사실은 전혀 신기한 일도 아닌데. 나는 자꾸 그런 마음이 들어요. 어떻습니까, 내 생각이 지나치게 억지스러운가요?"(페이지42)

 

 어떤 일들은 우연히 일어나고, 어떤 일들은 또한 우연히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느 때가 되기까지는 어떤 일들은 일어나지도 않고, 알아차리지도 못합니다. 어떤 일이 계기가 된다는 것, 그리고 갑자기 알게 된다는 것,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것이 우연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 그런 것들 모두를 우연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우연 속을 걷고, 지나고, 여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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