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코씨, 지금 그 사람은 당신의 남편인가요. 아니면 전남편인가요. 어떻게 생각하면 그런 건 아무래도 좋지 않나 해요. 그 사람은 지금쯤 꽤 달콤한 꿈을 꾸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을테고, 모모코씨도 새 인생을 시작할 준비에 바쁠 것만 같네요.

 

 사람들이 남의 이야기 참 많이 하죠. 어머 어머~ 하는 과장된 표정으로 난 그럴 줄 몰랐다느니, 어쩜 그럴 수가 있냐느니 하면서도, 감추고 있는 표정이 있죠. 나한테는 그런 일은 없으니까, 하는 마음 한 구석에 있는 그런 거요. 그러면서도 동정도 하고 화도 내면서 그렇게 말하는 거겠죠.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수근거릴지도 모르고, 아니면 차 한잔을 두고 귀 가까이 '너만 알아' 하면서 알고 지내는 모두에게 말해버릴 지도 모르죠.

 

 이런 일이 또 있겠냐, 싶은데, 어느 날 부터는 인터넷에는 황당한 일들을 써 놓은 것이 잔뜩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가족간의 갈등, 불륜, 외도, 그런 것들이 누군가의 말이 맞는지 알고 싶지 않을 만큼 복잡하게 써있죠. 직접 말하지 못해서 여기라도 하는 하소연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너무 미워서 그렇게라고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고.

 

 처음에 모모코씨의 집안 이야기가 나올 때, 저는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의 부부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점점 이야기를 더 들으면서는 당신들이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는 흔적을 발견하게 되고, 그렇게 8년을 함께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8년은 어느 시기에는 생각하기 힘들만큼의 긴 시기이지만, 또 어느 시기에는 그냥 어제 일 같은 그런 속도로 지나가버리더군요.

 

  지난 8년간 그 집에서 당신은 가족이 아니었어요. 성은 시가의 성으로 바뀌었음에도 당신은 계속 '우리와 너'로 구분된 외부인처럼 그렇게 살았어요. 당신이 그 생활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써도 사람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마음의 벽을 허물지 않았어요. 다른 것보다도 이 집에는 당신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어요. 당신의 남편도, 당신의 시어머니도, 당신이 해주는 것이 좋았을 뿐인 거죠. 그 사람들의 태도가 저는 무척 싫었어요. 어떻게 그런 사람들과 8년이나 살았어요? 그렇게 무시당하면서요.

 

 어쩌면 당신은 누군가의 눈에는 매우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일 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저는 당신도 운이 나빴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을 만났다는 것, 그런 사람들과 살았다는 것, 당신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도 그 불운에 걸릴 수 있었을 거라고. 이전 회사의 여직원들이 수군거리던 거 기억나요? 지금은 당신이 그 이야기를 들었듯, 그 사람들도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어디선가 듣게 되겠죠. 가끔 우리의 자리는 계속 돌고 돌아서, 내가 앉았던 그 자리에 누군가가 앉겠죠.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해도 어떤 일들은 내게도 일어나곤 해요.

 

 지나고 보면 꼭 그래요.  아, 내가 그 때 참 잘 했어, 싶은 것들도 있고, 그 때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 것들도 있어요. 저는 당신앞의 허상이 깨진 것이 차라리 잘 된 것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당신 자리를 대신할 누군가가 얼마든지 있는 그런 세상, 나이가 조금 들었다고 무시당하는 일들만이 있지 않기를 바래요. 어느 누군가의 세상에는 당신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걸로 충분하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당신은 좋은 사람이고,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가 될 수도 있을 거에요.

 

 앞으로 더 좋은 일을 만나기 바래요. 아직 젊어요. 모모코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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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 난폭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8월

 

 

愛に亂暴 (單行本)
吉田 修一 / 新潮社 / 2013년 5월

 

 

 

 

 

 

 

 1. 결혼과 함께 퇴직하고 지금은 부업으로 비누만들기 강사로 일하는 모모코와 남편 마모루는 8년차 부부인데, 남편의 외도로 내연녀에게 아이가 생기고, 이를 이유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이혼해주는 것을 부인 모모코에게 당연하게 요구합니다. 결혼생활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버티는 그녀는 그 집에 살았던 누군가의 흔적을 찾기 시작하다 결국 다다미를 들어내고 전기톱으로 바닥을 잘라내고는 오래전에 넣어두었을 것으로 보이는 것을 찾아냅니다. 그 집에 살았던 사람이 방화범으로 몰렸듯, 그녀도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2. 원서의 제목도 우리나라 번역과 마찬가지로 <사랑에 난폭>입니다. 주인공 모모코가 견디다 못해 화를 내면 사람들은 그런 것만 이상하게 봅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막다른 길에 몰려있다는 건 알 바 아니고,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지에도 관심없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나를 방해하지 말아줘, 라는 시선과 대화만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왜 잘못이야,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데 왜 그러면 안돼? 하고 당연하게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럴수록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3. 사람들은 남의 일과 자기 일을 그럭저럭 구분하는 편입니다. 같은 일도 자기 입장일 때, 남의 입장일 때가 다를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어, 그런 일을 해도 되는 거야? 하는 그 차이. 그러면서도 때로는 우리가 되고, 때로는 돌아서서 남이 되며, 그렇게 사는 것 같습니다.

 

 4. 예전이라면 이런 주인공은 권선징악의 결말을 맞았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쓴 작가의 시선이 조금 다른 듯 합니다. 그건 좋지 않은 일이지만, 그것만으로 그 사람이 나쁘다고 단정해버릴 수는 없다는,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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