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겪는 일은 가끔, 뭐라고 설명이 잘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어려울 때 더욱 위기대처능력이 좋은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전에 잘 하던 일들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막연히 누군가 갑자기 어려운 일을 당하면 어떻게 해, 하면서 걱정과 위로를 하겠지만, 거기엔 내 일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마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책도 그렇게 시작합니다.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일들이 갑자기 한 가정에 시작되었으니까요.
우리는 공부하는 가족입니다.
며칠 전에 이 책을 읽었는데, 자녀들이 공부로 좋은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그러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썼겠지, 싶어서 산 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그것보다는 조금 다른 것이 더 눈에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처음 시작부터 지진처럼 다가왔던 이야기가 강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쓴이 가족은 시동생과 시누이의 사업자금 대출 보증을 서 두었다가 1997년경에 10억원이나 되는 거액의 빚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아파트를 담보로 내 주었지만 결말이 좋지 못했습니다. 이때문에 월급에서 매달 일정 금액이 빠져나갔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는데도 워낙 큰 금액이어서 그랬는지 수년뒤 빚은 계속 불어나서 결국 채무가 정리될 시점에는 25억이 되었고, 나중에 정리된 금액도 3억원 가까이 되었습니다.
한 번도 만져보지도 써보지도 못한 돈이고, 이전부터 아껴서 살아오면서 모은 돈으로 마련한 아파트도 대출금을 갚고 얼마 되지 않아 없어졌을 겁니다. 친인척, 형제 자매, 또는 친구라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면 절대 보증을 서 주지도 않았을테지만, 그런 일들은 우리도 가끔 살다보면 만나게 됩니다. 이번이 끝이에요, 한 번만 더 도와주세요. 이런 부탁을 하는 사람도 어렵겠지만, 거절해야 하는데 그것도 무척 어렵습니다. 그래서일거에요. 때로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면서 서운하다며 아예 연락을 하지 않고 살기도 하지요. 그렇다고 서운하지 않으려고 들어주기엔 너무 큰 댓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면이 있었습니다.
시누이와 시동생의 은행의 대출 보증을 서서 생긴 빚이었지만, 이 빚을 갚고 정리하는데 친정동생의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방식을 통해서 괴로움도 겪었고 도움도 받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느 날 돌아와보면 집안의 집기가 압류되는 불안한 신용불량에서는 벗어났지만, 앞으로도 누군가가 갚아야 하는 빚은 남은 셈입니다. 보증 때문에 빚을 지고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도, 여기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아파트를 담보로 내어 준 동생이 있었다는 점은 참 부러운 일이었습니다.
가정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 해체되기도 하고 여기저기로 흩어질 수 밖에 없는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가족이 해체되지 않고 어려움을 함께 넘어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리고 가족 모두가 공부하고 열심히 살면서 이 어려움을 도약의 기회로 삼으려 했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이 책의 제목을 <우리는 공부하는 가족입니다> 라고 하지는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처음에 기대했던 것처럼, 어떻게 공부를 해서 그러한 공부방법에 대해서는 세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이러한 어려움의 한 시기를 이제 보내고, 다른 마음으로 살아가겠다는 마음과, 어려운 시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겨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겪었던 일이기 때문에 특별했던 걸까.
누군가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세상이 아닌, 실제로 겪었던 일들이 갖는 이야기는 조금 다른 느낌을 줄 때가 있습니다. 이 책<우리는 공부하는 가족입니다>에서 함께 달리는 마라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까, 읽으면서 생각이 났던 건 온다리쿠의 <밤의 피크닉>이었습니다. 학생 모두가 함께 밤에 걷는 것만으로도 특별했던 것은, 그 이야기를 쓰는데 있어서 작가가 실제 고등학교 학생일 때 있었던 일들이 있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소설의 첫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오후까지 그날 분량을 채우지 못하면 다 채울때 까지 잠을 자지 않고 썼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내야 했다. 가장 '나 다운 이야기'를 써야만 했다. 소설이 제 길을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때때로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왜 이 소설을 써야 하는지 끊임없이 상기시켜야 했다.
' 이건 가치있는 일이야. 세상에 나를 증명하는 길이야.'
그리고 매 순간 나 자신에게 물었다. 지금 치열한가. 무슨 일이든 진심으로 이루고자 한다면 거짓 노력은 던져 버려야 한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전력투구 해야 한다.
<우리는 공부하는 가족입니다> ,이채원, P.214
어떻게해서 책을, 글을 쓰게 되었는지는 다 다르겠지만, 자기 이야기를 담게 되는 건 이런 이유에서 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으로 다 채울 수는 없겠지만, 자기 이야기를 쓰는 건 이런 이유에서 겠지, 하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 이 책의 저자는 2010년 현대문학 장편소설상을 비롯 여러 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작가였습니다. 단행본으로 출간된 책을 검색해보니 두 권이 나옵니다. <나의 아름다운 마라톤>도 그렇고, <달려라 벽화>도 가정내의 어려움을 벽화프로젝트나 마라톤을 통해서 이겨내는 이야기인데, 이 책에서 나온 가족이 실제로 이민생활 중에 겪었던 경험이나 경제적인 문제등을 겪었던 시기의 경험 등을 살려서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들은 소개만 읽었는데도,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 온다리쿠의 <밤의 피크닉>. 왼쪽부터 한국어판, 원서 문고판, 단행본, 참고로 한국어판은 전에 이 표지와는 조금 다른 책이 나온 적이 있어서, 집에 가지고 있는 책은 2006년에 나온 책으로 원서 단행본과 표지가 비슷했던 것 같은데, 알라딘 검색에서는 제가 가진 이전 표지의 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를 떠올리면 달리기, 마라톤 등이 떠오를 때가 있는데, 에세이집도 그런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찾아보니 영어로 된 책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마도 일본어가 원서겠죠.
- 잘 몰랐습니다. 그렇게 시작할 거라고는.
누군가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에 가서, 시험에 합격해서, 그런 말을 들으면 꼭 그 이야기를 세세히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그 이야기를 듣는 것, 그 방식으로 공부하는 것이 전부는 아닐테지만, 그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고, 조금은 다른 방향을 볼 수 있을테니까요. 저도 이 책을 읽게 된 건 그러한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 페이퍼를 쓰는 지금은 조금은 이러한 생각이 바뀌었음을 느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일을 해낸다면 사람들은 놀라거나 화제로 삼기 보다는 그렇지 않을 때 오히려 이야기를 할 거라고, 그러니까 이건 보통 사람의 보통 이야기는 아닌 거라고.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해 낸 어려운 일이며, 아주 낮은 확률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러니까 이 책으로부터 볼 것은 놀라운 성과가 아닌, 이 가족이 어려움 속에서도 얼마나 아끼면서 살아왔는지 그러한 점에서 배울 점을 찾자고.
노력을, 최선을, 그런 것들이 어쩌면 더 무겁게 느껴지고 부담스러워지고, 잘 해야한다는 것에 신경이 쓰이면 그만큼 과정을 잘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긴 하지만, 그래도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니까 그래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록 어쩌면 더욱 더 무거웠을 수도 있었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오늘은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