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수의 탄생 일공일삼 91
유은실 지음, 서현 그림 / 비룡소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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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을의 젊은 부부, 처음엔 좋은 것만 보였지만 살아갈수록 좋은 건 그것뿐이었나 싶은 그런 지루함과 예전엔 몰랐던 보기 싫은 점에 눈을 돌리고 싶어할 즈음, 15년만에 특별한 꿈(?)과 함께 7월 7일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좋은 날에 맞춰 태어난 소중한 아이의 이름은 백일수. 그러나 아이는 그냥 보통평범의 아이였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특히 엄마는) 아이에게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만,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학교에 들어가자 어머니는 사소한 것에서도 일수의 재능을 찾아내기 위해서 눈을 빛냈지만, 선생님은 백일수 어린이의 놀라운(!) 점을 발견하고 특기사항을 적어주었습니다.

 

 순한 아이입니다. 특기가 생길 수 있도록, 부모님께서 많이 관심을 기울여 주십시오.

 

 일수는 엄마의 꿈과 희망(돈방석에 앉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실 잘하는 게 별로 없다는 것과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소심한 아이로 눈에 뜨이지도 않고, 기억도 나지 않는 아이로 커갔습니다. 솔직하지만 자신감 없는 아이이기도 했었죠. 그래서 일수는 언제나 '~같아요'라고 말하는 아이였습니다만, 사실, 아주 정확한 것에 대해서는 다들 100%까지는 자신이 없는 거 아닌가요? 그냥 일수는 솔직하고 정직한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어쩌다 서예를 시작하게 된 백일수 어린이, 이번엔 특기가 생길것만 같습니다. 서예부 백일수 어린이는 성실해서 방학동안 선생님이 주신 서예교본을 열심히 연습해서 실력이 많이 늘었고 서예학원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명필은 일수에게서 좋은점을 발견하지 못했고, 일수는 서예를 그만두었습니다. 

 

 일석반점에서 만난 동네명필이 좌우명을 물었을 때, "쓸모있는 사람이 되자, 쓸모있는 사람이 되는 게 좌우명입니다." 라고 말했던 일수, 실은 그건 새마을중학교 3학년 2반의 급훈이었습니다. 일수 친구 백일석은 일석반점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도 있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도 하지만, 일수는 제대로 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언제나 "그런 것 같아요"만 반복하다가 특기를 발견하지 못하고 학교를 졸업하고는 어머니와 함께 새마을문구에 남았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머니의 기대도 가게에 걸어두었던 액자처럼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계속 바뀌는 거군요. 백일수씨에게도 좋은 날이 찾아옵니다. 즉, 백일수씨를 필요로 하는 그런 시기가 찾아온 거지요. 그 액자를 보고 찾아온 사람부터 시작해서 백일수씨는 여러 집의 가훈을 고객이 원하는대로 써주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보통 평범한 아이이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순한 아이이며, 특기를 개발해줄 것을 특기사항에 써줘야 할만큼 두드러짐 없는 백일수 어린이 시절에도, 일수는 성실한 아이여서 선생님이 주신 서예교본을 보고 방학내내 열심히 연습해서 실력이 확! 늘었던 아이였거든요. 그러니까 잘나가는 가훈업자는 어느날 갑자기 반짝 하고 생겨난 게 아니라 그동안 준비해왔던 것일 수도 있는 겁니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가훈을 써주길 원했고, 가훈을 써 주게 되면서 부터는 어머니의 기대도 헛된 것은 아니었다는 듯 일수씨, 성공했습니다. ^^

 

 그러던 어느 날, 일수씨는 갑자기 고민에 빠집니다. 어린 학생의 물음에서 시작된 고민은 목욕탕에 가서 샤워를 해도 탕에 들어가도 없어지지 않았어요. 아니, 거기에서도 가훈처럼 쓰여진 액자를 만났을 뿐이죠. 거울 앞에 선 일수씨는 오래 전 질문을 꺼내놓습니다.

 

 "일수야, 넌 누구니?"

 "그런 거 말고, 넌 누구니?"

 "네 쓸모는 누가 정하지?"

 

 일수씨는 이 질문에 답을 얻지 못했고, 당분간 서예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가훈을 쓰지 않았다는 건데, 그러한 일수씨의 행동을 어머니가 좋아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한편 일수씨의 친구 백일석씨도 비슷한 고민에 빠져있었습니다. 두 친구는 문구점과 일석반점을 뒤로하고 석달째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일수야, 백일수 ...... 전에는 모든 게 분명했는데, 요즘은 분명한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인터넷을 찾아보니까, 내 고민은 사춘기 때 하는 거래. 서른이 넘었는데 이제 사춘기란 말이야?"

 

 일수씨도, 일석씨도, 그리고 저도. 내가 누구인지, 내 쓸모를 누가 정할 것인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이는 평범한 사람에, 요즘은 분명한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는 이들의 고민이, 먼 나라의 고민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일수는 정말 평범한 아이였다는 점이 백일수 어린이를 자신감없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보다는 그냥 비슷비슷한 평범한 사람이 더 많을텐데요. 언제나 아이가 특별한 사람이 되어 성공할 거라고 믿는 어머니도, 특별한 경우가 아닌 집집마다 자녀들에게 큰 기대를 하고 있을 평범한 엄마처럼 느껴졌습니다.

 

 너는 왜 네 생각이 없느냐고 묻는 것도, 너는 진짜 평범하다는 말에서도, 실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는, 그건 일수만이 아니라 다들 비슷한 건데, 사람들은 그렇게 남의 말이니까 쉽게 하는 걸거야, 하는 마음이 들어 서운했습니다.  일수는 자기 생각도 없고 뭘 해도 어설픈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도 실은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마음 착하고 정직한 사람인걸요. 다만, 들려오는 누구네 집 아이들처럼 유능하거나 똑똑하지 않아서 그만큼 눈에 잘 보이지 않았던 건 아닐까요.

 

 그래도 일수씨는 성공한 가훈업자가, 일석씨는 일석반점의 괜찮은 주방장이 될 거니까, 석달넘게 고민했으면 더이상 고민하지 말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두 사람이 돌아왔을 때에는 다시 그 자리에 서더라도, 어머니의 기대보다는 일수씨와 일석씨가 원하는 것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일수씨, 어머니의 큰 기대인 돈방석에 앉는 건, 이미 한 번 소원을 들어드렸잖아요. 이젠 그런 부담 없이 일수씨도 잘 하는 게 있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믿어보는 건 어떨까요. 그럴 것 같았던 것들이 조금은 그런 것으로 바뀔 지도 "모르잖아요". 아,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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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3-12-25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40대 전후반에 일수씨의 서른살 고민을 했었네요.
그래도, 늦든 어떻든 살면서 그런 고민을 했던 제가 자랑스럽더라구요.
잘못하면 죽을 때까지도 몰랐을 수도 있으니까요!

아이들 책이, 참으로 심오하네요... ^^

서니데이 2013-12-25 13:57   좋아요 0 | URL
실은, 저도 지금 비슷한 고민하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그냥 많이 불확실하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고민 하는 사람은 저 혼자만 그런 건 아닐 수도 있겠네요.^^(오, 그건 기쁩니다.)

어린이책이라고하는데, 어른입장이 되고 읽으면 어린이가 읽을 때와는 다른 면이 보이는 걸까요.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마녀고양이님,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