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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 마피아
토마스 키스트너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해 열린 브라질 월드컵을 필두로 각각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개최국에 선정된 러시아와 카타르, 또 얼마 전 불거진 가나축구협회의 승부조작 모의까지. 못된 습벽은 끝이 나질 않는다. 월드컵은 가죽 공 하나를 두고 펼쳐지는 지상 최대의 비즈니스임에 틀림없으며 동시에 헤아리기도 힘든 거래와 뒷돈이 오가는 복마전이다. 책에서 키스트너는 국제축구연맹 FIFA의 회장 제프 블라터(Sepp Blatter)를 ‘작은 덩치의 축구 카이사르’로 깎아내리는데, 그에 의하면 FIFA 수뇌부는 늘 개최국이 마지막 4강에 들도록 일을 꾸며왔다. 대회 분위기는 물론이거니와 돈벌이에도 좋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개최국이 조별 예선에서 탈락한 예는 극미하다(수십조 원의 세금으로 지은 경기장들에서 외국 팀들만 경기를 벌인다는 게 정말로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그런데 FIFA가 이와 같은 일을 꾸미는 것이 정말로 가능할까? 그러고도 남는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에 어떤 나라가 올라갔는지를 보라. 나는 당시 한국 팀이 꽤 잘했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꺾고 준결승에 안착했다는 것에는 다소 수상쩍은 기운을 느끼고 있다. 특히 당시에 한국과 이탈리아가 16강전에서 맞붙었고, 심판은 페널티박스 안에서 넘어진 이탈리아 선수 토티(Francesco Totti)의 할리우드 액션을 문제 삼아 그를 퇴장시켰다. 이 에콰도르 심판 비론 모레노(Byron Moreno)는 뒷돈을 챙기는가하면 조직범죄로부터 매수를 당하고 또 헤로인 밀반입으로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부터다. 당시 한국축구협회 회장이었던 정몽준은 블라터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데다가 대통령 출마까지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블라터는 이후 한국과 독일의 준결승전을 맡기로 했던 심판을 스위스 사람(중립과 공정성을 위해?) 우르스 마이어(Urs Meier)로 교체해버렸다. 자, 그 심판은 스위스 국적이었지만 좀 더 파고 들어가면 독일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블라터의 국적은 스위스다.




월드컵만 열렸다 하면 수십억의 인구가 경기에 넋을 잃는다. 아무리 경영을 엉망으로 해놓고 돈을 빼돌려도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또 뭐 하러 신경을 쓸까? 새 돈다발이 끊임없이 금고에 착착 쌓이는 마당에. 그리고 거기서 블라터가 얼마를 주물러대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뭔가 골치 아픈 일이 생겨나면 유명한 스타 변호사들이 버팀목 노릇을 해준다. 돈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사회는 축구공이 구르는 한, 이 모든 일에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정계와 재계의 엘리트는 이미 돈 냄새를 맡고 불나방처럼 날아든다.


― p.257




본격적인 이야기는 스포츠 스폰서업계로 시작해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아디다스(Adidas)다― 다슬러 가문의 아돌프(Adolf Dassler)와 루돌프(Rudolf) 형제는 서로 아디다스와 푸마(Puma)를 창업해 죽을 때까지 원수가 되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게임(전설)의 시작은 아돌프의 아들 호르스트 다슬러(Horst)로부터 시작된다. 프랑스 지사를 지어 훗날 그 자신이 진정한 주인이 된 호르스트의 스포츠제국은 세계 최대의 수영용품 제조업체 아레나(Arena)를 세웠고 미국의 포니(Pony), 프랑스의 르꼬끄 스포르티브(Le Coq Sportif) 등의 지분을 사들이며 성장하기 시작한다. 그는 각종 협회의 입원과 걸출한 선수들의 정보를 모아 ― 체중, 신체 사이즈, 좋아하는 여성 타입 등 시시콜콜한 것 모두 다! ― 관리했는데(키스트너는 이를 두고 ‘운동화 CIA’라 부르기도), 때로는 그의 경쟁사 푸마와도 종종 우스꽝스러운 사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1966년 월드컵 결승전에 나서게 된 두 명의 잉글랜드 선수는 아디다스 축구화를 신고 몸을 풀다가 곧 화장실로 가서 푸마 제품으로 갈아 신고 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각각 1만 마르크를 챙겼다). 승승장구하던 다슬러는 이제 스포츠 자체를 거래품목으로 만들어버렸고 각종 스포츠연맹은 하나둘씩 면세특권을 누릴 수 있는 스위스로 자리를 옮겼으며 ― 스위스는 스포츠(돈) 천국이며 세금 오아시스이자 에덴동산이다. 또한 언젠가 블라터가 교통사고를 내자 경찰들은 그의 자동차 번호판을 떼어내는 VIP 서비스를 실시하기도 했다 ― 임원들은 방송 중계권과 광고권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앙 아벨란제(João Havelange)와 뒤를 이은 블라터를 비롯한 미래의 FIFA의 회장과 임원들은 각종 비리를 저질러왔고 앞으로도 끊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블라터는 자신들을 패밀리라 부르지만 우리는 그들을 ‘패거리’란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추악한 뒷거래의 신호탄이라 보아도 무방한 일은 1981년에 벌어졌다. 다슬러는 강직한 FIFA 사무총장 헬무트 케저(Helmut Käser) 대신 블라터를 키우고자 했고, 결국 당시 회장이었던 아벨란제는 사무총장을 내치고는 블라터를 앉혔다― ‘지옥의 트리오’ 완성이다. 이것으로 끝난 것인가? 아니다. 블라터는 자신의 재혼 상대로 케저의 딸을 골랐다(훗날 그는 그의 유일한 딸의 친구와 세 번째로 결혼했다가 금세 헤어지기도 했다).




모든 월드컵 개최 후보 국가는 이른바 ‘지원서’라는 두툼한 책자를 제출한다. 여기에는 대회를 개최할 경우 어떤 특정한 법적 권리의 행사를 포기한다는 보증 목록이 들어간다 (...) 예를 들어 보증 목록에 등장하는 다섯 번째 항목은 개최국이 FIFA 패밀리에게 특별한 환율 규정을 보장해주도록 강제한다. 다시 말해 개최국 정부는 <모든 외국 통화를 들여오거나 갖고 나가는 데 그 어떤 제한도 받지 않으며, 이 통화를 달러나 유로 혹은 프랑으로 무한정 교환할 수 있게> 보장해주어야만 한다.


― p.362 (이건 돈세탁이 아닌가!)




①참가국 숫자가 16에서 24로, 다시 32로 늘어나면서 더 많은 국가대표팀이 월드컵에 참가하게 되었다. ②신용카드회사 마스터카드와 비자(물론 둘의 한가운데에는 FIFA가 있다) 사이에서의 이중계약은 FIFA 로고에서 두 개의 축구공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③축구를 둘러싼 여러 사업, 각 위원의 조국에 돈을 제공하는 각종 프로젝트, 마케팅 라이선스, 여행사와의 월드컵 티켓 거래, 그리고 개최국 선정이 FIFA의 든든한 돈줄이다. ④블라터는 2006년 월드컵이 자신이 원했던 남아공이 아닌 독일로 돌아가자 소위 로테이션 시스템이란 것을 만들어 대륙을 돌아가며 개최하자고 했지만 그만큼 경쟁이 떨어지니 수익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개최국을 동시에 선정하기로 했다. 열 개가 넘는 나라가 두 번의 월드컵을 놓고 다투는 것은 FIFA의 돈주머니를 채워줄 것이 아닌가(하지만 축구공은 언제나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야 했으므로, 블라터는 곧 불안정한 로테이션 시스템을 폐기해버렸다). ⑤2002 월드컵 개최국 선정 당시 아벨란제는 일본의 단독 개최를 지지했지만 정몽준은 아벨란제의 사위 히카르두 테이셰이라(Ricardo Teixeira)를 공략했다. 브라질축구협회 회장, 월드컵조직위원회 위원장, FIFA위원으로도 활동한 테이셰이라는 결국 자신의 친구와 함께 현대 자동차의 브라질 영업권을 따냈다. ⑥월드컵 개최국 선정 투표가 있기 여드레 전인 2000년 어느 날 독일은 사우디아라비아에 판처파우스트(Panzerfaust,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 공급하기로 결정했고 나중에 사우디 왕족의 일원인 FIFA위원 압둘라 알다발(Abdullah Al-Dabal)은 독일에 표를 던졌다. 또 한국의 정몽준도 독일을 지지했는데, 독일의 자동차 제조업체 다임러 크라이슬러(Daimler Chrysler)는 한국의 현대 자동차에 약 8억 마르크의 자본투자를 약속했다.





……정말 FIFA가 이해하는 유일한 언어는 돈인 걸까? 『피파 마피아』를 읽어 보면 위에 적힌 것들은 육안으로 식별하기 힘든 아주 미세한 먼지처럼 보일 것이다(앞에서 2018년과 2022년의 개최국 선정에 대해 단순히 로테이션 시스템이라고만 언급했으나 러시아와 카타르 그리고 FIFA의 더러운 뒷거래는 추악하기 그지없다). FIFA는 공익단체로 구성되었지만 그 조직원들의 급여는 일반 기업처럼 지급된다. (키스트너의 표현대로) 그들이 저지르는 비열한 반칙은 거칠기로 유명한 축구선수라 할지라도 새파랗게 질릴 정도이고, 감시와 감독을 해야 할 당국은 외려 그들과 이해관계로 얽혀있다. 이래도 월드컵이 공 하나로 빚어내는 세계인의 축제와 감동인가?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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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마니아>

너무나도 만연해져 이제는 흔한 것이 되어버린 레트로 문화를 파헤쳤다. 박물관으로 들어가버린 것들에 대한 추억이랄까, 레트로와 모더니즘의 전환에 선 순간을 포착한 책.



<악마 백과사전>
러셀의 <악의 역사>가 방대함을 자랑했다면 이 책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백과사전처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 차이점이다. <신 백과사전>과 함께 출간된 양극단의 파편들.



<세기말 빈>
빈의 문학, 미술, 음악 분야에서의 결정적인 변혁기를 담은 책. 설명이 필요할까? 무려 '빈'이다. 빈!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정말 오랜만에 나온 개정판. 현대 일본 최후의 사상가로 불리는 후지따 쇼오조오의 글을 모았다. 20세기가 낳은 전체주의의 영향 아래 지내왔던 시대를 이야기한다.



<증보 교감완역 난중일기>
충무공에 관한 영화도 개봉된 이때, 참으로 마침맞게 난중일기 완역본이 나왔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초고는 전편이 초서로 되어 있어 후대에 해독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하는데, 초고본과 이본을 비교 검토하고 오류를 바로잡아 교감 완역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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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의 오후 - 남자, 나이듦에 대하여
우에노 지즈코 지음, 오경순 옮김 / 현실문화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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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들에겐 편의점이 있고 포르노가 있으며 시간도 있다. 남녀평등의 주가가 오르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남자는 제 손으로 밥해 먹기를 끔찍이도 싫어하고 그렇게 해야 할 필요성 또한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에겐 문명의 이기, 편의점이 있다.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 따위 개나 줘 버리라는 식으로 연애만을 꾀하거나 기꺼이 상품이 되어주겠다는 여자 연예인을 안주로 삼아 고집을 부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들에겐 포르노와 케이블 채널이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완전히 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부모를 부양하거나 혹은 남에게 의탁하면서? 조카들의 재롱만을 추구하며 이따금씩 피붙이로부터 애물단지 취급을 받으면서? 때로 ‘친구’와 ‘지인’을 구분해놓고 시간을 쪼개가며 어정쩡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런데 희한 것이 있다. 처음 보는 미지의 사람과 맞대면한 채 담배를 뻑뻑 피우는 흡연구역에서,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서로의 맨살을 구경하며 트림을 해대는 사우나에서, 신랄하게 정치판을 풍자하는 아나운서와 평론가들이 등장한 대형 텔레비전이 설치된 대합실에서― 그들은 서로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꺼내며 스스럼없이 대화를 시작하곤 한다. 그런가하면 직장과 가족 이외의 인간관계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은 물론이거니와 (여성 화장품을 사용하고) 여성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져 왔던 꽃꽂이나 뜨개질을 하는 수컷들이 생겨나고 있는 지금,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동호회나 우연찮게 술집에서 안면을 튼 사장 혹은 단골들과의 제2, 제3의 인간관계가 시작되기도 한다― 남자들이란 언제든지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모양이다. 독신이란 것은 자신의 소득을 스스로 관리하며 소비하는 데 있어 얽매임이 없기도 하지만 심한 감기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면 온전히 혼자만의 몫이란 것을 감당해야 한다. 그들은 집 안 구석구석을 자신의 동선에 맞게 바꾸어놓는 자유를 누릴 수는 있지만 결혼한 친구들의 아이를 바라보며 가정이 생긴 이후의 예전 같지 않은 그의 배려를 통감해야 한다. 자, 그러면 연애를 해 볼까? 그는 어찌어찌 주파수가 맞는 처녀를 만났다. 연애의 장점을 과감히 버리고 들어가 보자면, 가장 먼저 깨지는 것은 그의 익숙했던 생활 패턴이다. 그는 그녀와 함께 출근하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는 불편함을 감수할 때도 있을 것이고, 내키지 않는 정열을 쏟으며 생일 케이크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며, 이 모든 것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관계를 이어갔더라도 정작 작별의 순간이 닥쳤을 땐 잠깐이나마 독신을 벗어나 새로운 가족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꾸었던 것을 잊어야만 할 것이다(여기에 빗대어 섹스 파트너의 중요성을 외치는 것은 너무 일면만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혼자 사는 사람들끼리 모여 공동 구성원이 되는 셰어하우스는 어떨까. 개인들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는 한편 싱글 라이프의 단점은 상쇄시켜 일종의 정신적 빈곤을 해결해주는 주거 방식. 문제는 함께 지내는 공동 주거인들끼리의 정서적 유대를 깨뜨리는 다툼이 일어나면 그들은 갈 곳이 없다는 점이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품의 구매, 비용, 세탁과 청소 등의 역할 분배, 활동하는 시간대의 차이, 소음, 입주자를 찾아오는 방문객(이 상태에서 누군가의 애인이 찾아와 공동 주거인들의 눈을 피해 섹스를 하려 한다면?). 물론 독신의 형태가 이러한 사례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혼 뒤 혼자가 되거나 사별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홀로 살아가는 생활 형태에 놓인 남성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직면해야 하는 것들이다.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면 질병이 찾아오는 것은 일반적으로 그가 아니라 그의 부모가 먼저일 터다. 제 몸 추스르기도 벅찬 나이가 된 그는 부모의 간병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는 정년을 맞아 퇴직하기 이전에 대책을 세워놓아야 하며 사회적 인간관계 역시 자신의 직함이 없을 때의 경우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젊을 때의 독신과 인생의 오후에 놓인 독신은 전혀 다른 것이다. 팔팔한 청춘이 반드시 낭만적인 것은 아니듯 노후에 놓인 남성이 낭만만을 논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낭만적일 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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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슬립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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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막 열병, ‘함께 갇힌’ 사람들에 대한 증오감으로 발현되어 사소한 다툼, 환각, 폭력 행사, 최악에는 살인까지 벌어진다. 곱상한 문학 앞에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린 『샤이닝』은 《데스티네이션》의 모태라 할 만한 가운데 먼 훗날 『닥터 슬립』까지 오며 어린 댄을 콜 시어에서 존 콘스탄틴으로 성장시켰다― 「I see dead people.」 → 「This is Constantine. John Constantine, Asshole.」 ……『샤이닝』의 후속작 치고는 전작에 비해 공포의 강도가 조절되어 있기도 하고, 또 킹 자신이 죽은 잭과 같은 경험(알코올 중독)을 했으며 이번에는 그의 아들이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굳이) 집어넣음으로써 어찌 보면 킹 스스로의 치유 일환으로 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결과적으로 전작과 함께 보면 말랑말랑하다고 해야 할 듯도 하다. 『샤이닝』에서 킹은 무엇을 보여주었던가. 미친놈과 미친 재주를 가진 미친놈의 아들이었다― 원작자는 한숨을 쉬었을지언정 내 판단으로는 큐브릭의 영화도 꽤 괜찮았다고 생각한다(소설 『샤이닝』의 미친놈 이름은 잭이고 영화 《샤이닝》에 출연해 미친놈 역할을 한 남자 이름도 잭이며, 내가 영화의 백미로 꼽는 것은 웬디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다. 그녀 스스로도 개의치 않고 주위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그게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그 미친놈의 아들은 커서도 제 버릇 남 못 준 채 고급 기술 ‘샤이닝’을 한 번 더 발휘한다. 다만 『샤이닝』에서 잭을 고용해 일을 꾸민 것이 오버룩 호텔 자체였다면 『닥터 슬립』에서는 약간 모호해진다. 그러므로 공포란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발생하지만 희한하게도 그 공포를 몰고 오는 자를 가장 친숙한 가족으로 설정했던 전작과는 다르다― 벌집에 손을 집어넣을 때의 기분을 기억한 채 이번에는 달큼한 꿀도 한 줌 집어 먹는다. 『닥터 슬립』은 샤이닝을 구사할 줄 아는 자들의 머릿수를 조금 더 늘리고, 거기에 요리사 딕과 217호실의 메이시 부인 등을 다시금 소환하고 있으며, 댄보다 더 강력한 샤이닝을 지닌 소녀 아브라를 짝지어주어 역시 샤이닝을 쓸 줄 아는 집단 트루 낫(true knot)과의 대결 구도를 만든다(어딘지 모르게 『조이랜드』의 냄새가 나고, 트루 낫이 다소 손쉽게 처리된 것이 아쉽다). 그리고 전작에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어린 댄은 멀리 떨어진 딕에게 구조 요청을 하고, 여기서는 성장한 댄에게 반대로 어린 아브라가 깜찍한 SOS를 보내면서부터(hEll☺) 이야기는 시작된다. 완결에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린 이 ‘오버룩 2부작’은 그야말로 소설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시작부터 불길했던 살아 움직이는 호텔 이야기는 펑크 냄새 물씬한 소설로 탈바꿈했고, 철저하게 고립된 일상의 공포를 뽐내던 것은 (당장은 모르지만) 영화 제작 예산을 한껏 부풀려 놓으며 다시 콜로라도의 오버룩에서 끝을 맺는다……. 『닥터 슬립』을 읽는 데에 『샤이닝』 읽기가 반드시 필요한 것만은 아닙니다, 라고는 해도 내가 보기엔 전작의 독서가 동반되어야 할 것만 같다. 아니면 차라리 『샤이닝』만이라도 읽어 보기를. 그러면 자연스럽게 꼬마 대니가 살이 쪘는지 키가 컸는지 여자관계는 무탈한지 궁금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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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7-29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저도 이 소설 보면서 좀 펑키한 걸 !!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로 만든다면 < 리포맨 > 처럼 만들면 재미있겠군. 했는데 영화 예고편 보니 정말 욕나오더군요...

그레코로만 2014-07-29 15:08   좋아요 0 | URL
영화로 만들어지나요? 한번 찾아봐야겠군요!
 
강대국의 경제학
글렌 허버드 & 팀 케인 지음, 김태훈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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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적으로 다소 낙관적이고 다소 보수적이랄까(너무 거시적이어서 그럴지도). 물론 현실적이기도 하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한 수 접고 들어가므로. 책은 로마의 붕괴나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등을 사례로 들며 현대의 재정 문제를 꼬집는데, 일단 지금 현실을 보자. 미국의 실업수당 신청 건수가 지난 몇 년보다 낮아진 것의 이면에는 다른 거품이 있는 게 아닐까? 미국의 경기는 회복하고 있는 것일까? 달러의 노후대책은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주가 상승은 결국엔 착시적 허울이 아닐까? 실업자들이 경기 회복에 참여하고 있기는 한 것일까? 중국이나 유로의 움직임은? 물론 이러한 물음들은 유의미해 보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 책에서 다루기에는 성격이 다르기도 하다. 나는 전쟁과 다툼을 넘어 경제(혹은 불황)에 관해서도 이따금씩 존 레논의 노랫말을 생각하곤 한다. 나라가 없다고 생각해 보라, 죽고 죽이는 것도 없고 종교도 없이. 그러면 어떤 국가든 다른 나라에 대해 눈치싸움이나 치킨게임을 하고 있는 와중에 이런 말이 가당키나 한가, 하는 반문이 되돌아온다. 현실의 괴리를 증폭시켜 지극히 이상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안 될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식의 논의가 불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전 세계인들은 쓸데없는 곳에 돈을 쏟아 붓고 쓸모없는 것에 열을 올리며 사용하지도 않을 것을 분석하고, 쪼개고, 구축하면서 낭비한다. 경제 위기? 몰락? 당연하다. 경제는 곧 정치라는 명제 하에서는 기존의 정치구조가 옷을 갈아입지 않는 한 개혁과 타개는 없다. 세제 개혁을 통해 기업 소득에 대한 세율을 삭감하는 것이 반드시 신규 고용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우방끼리 토지와 기업에 대한 직접 자산 투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만이 반드시 동맹 협정과 유대라고 볼 수는 없다(그들만의 리그는 또 다른 고립자를 낳는다). 내가 처음에 낙관과 보수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강대국의) 경제의 더러운 뒷면을 노골적으로는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목적은 국가의 흥망성쇠와 그 패턴, 번영, 경제 불균형을 역사적 관점에서 살피는 것이므로― 로마, 중국, 스페인 일본 등의 성장과 몰락을 주시한다. 로마에서는 재정, 통화, 규제를, 과거 중국과 스페인에서는 해상 교역의 축소와 재산권을, 일본에서는 잘못된 부양책을 분석하고 있다.




현대 유럽의 경제 위기, 다종다양한 패권 다툼, 당파적 양극화, 재정 적자 등은 어느 한 국가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이 경제 문제를 두 저자의 말대로 이데올로기와 정책 대립을 넘어 조금은 큰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고립의 위험은 얼마간 설명하면서도 팽창의 이면에는 약간 소홀한 듯한데, 그러면서 이 같은 ‘몰락’을 막기 위해 자유시장 확대의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거기에는 책의 제목처럼 ‘균형’이 반드시 들어가야 옳다(그러나 현실이 과연 그렇게 흘러가줄까?). 두 저자는 강대국 쇠퇴의 이유를 경제적 속성과 침체된 정치 체제에서 찾는다. 이를테면 과잉 팽창, 과도한 군사 지출 역시 경제의 균형을 잃게 만들 수 있으나 그것이 성립하지 않는 반례가 너무 많으므로 폴 케네디가 『강대국의 흥망』에서 주장한 제국의 과잉 팽창 요인을 제거한다(케네디 스스로도 군사력을 경제적 생산력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정치 체제가 발전하지 못하면 경제 또한 그러리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다시금 <경제=정치> 혹은 <경제≒정치>라는 수식이 성립하고 ‘신고전’이나 ‘케인스’와 같은 말이 득세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제도라는 것은 경제적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체계화하는 일종의 제약이다(반대로 그 제도를 입맛에 맞추기 위해 경제적 파워(로비)를 가동시키지 않던가?). 경제력 혹은 제도의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모든 것들은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고, 몰락의 증거에서 반추할만한 것을 찾아내는 작업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다. 뜀박질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바람을 기다리는 것은 우매한 행동이다. 하물며 100달러짜리 지폐가 누군가 주워 가기를 기다리면서 길에 떨어져 있는 경우는 좀처럼 없으니까 말이다.(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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