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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마니아>

너무나도 만연해져 이제는 흔한 것이 되어버린 레트로 문화를 파헤쳤다. 박물관으로 들어가버린 것들에 대한 추억이랄까, 레트로와 모더니즘의 전환에 선 순간을 포착한 책.



<악마 백과사전>
러셀의 <악의 역사>가 방대함을 자랑했다면 이 책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백과사전처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 차이점이다. <신 백과사전>과 함께 출간된 양극단의 파편들.



<세기말 빈>
빈의 문학, 미술, 음악 분야에서의 결정적인 변혁기를 담은 책. 설명이 필요할까? 무려 '빈'이다. 빈!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정말 오랜만에 나온 개정판. 현대 일본 최후의 사상가로 불리는 후지따 쇼오조오의 글을 모았다. 20세기가 낳은 전체주의의 영향 아래 지내왔던 시대를 이야기한다.



<증보 교감완역 난중일기>
충무공에 관한 영화도 개봉된 이때, 참으로 마침맞게 난중일기 완역본이 나왔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초고는 전편이 초서로 되어 있어 후대에 해독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하는데, 초고본과 이본을 비교 검토하고 오류를 바로잡아 교감 완역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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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의 오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독신의 오후 - 남자, 나이듦에 대하여
우에노 지즈코 지음, 오경순 옮김 / 현실문화 / 201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들에겐 편의점이 있고 포르노가 있으며 시간도 있다. 남녀평등의 주가가 오르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남자는 제 손으로 밥해 먹기를 끔찍이도 싫어하고 그렇게 해야 할 필요성 또한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에겐 문명의 이기, 편의점이 있다.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 따위 개나 줘 버리라는 식으로 연애만을 꾀하거나 기꺼이 상품이 되어주겠다는 여자 연예인을 안주로 삼아 고집을 부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들에겐 포르노와 케이블 채널이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완전히 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부모를 부양하거나 혹은 남에게 의탁하면서? 조카들의 재롱만을 추구하며 이따금씩 피붙이로부터 애물단지 취급을 받으면서? 때로 ‘친구’와 ‘지인’을 구분해놓고 시간을 쪼개가며 어정쩡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런데 희한 것이 있다. 처음 보는 미지의 사람과 맞대면한 채 담배를 뻑뻑 피우는 흡연구역에서,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서로의 맨살을 구경하며 트림을 해대는 사우나에서, 신랄하게 정치판을 풍자하는 아나운서와 평론가들이 등장한 대형 텔레비전이 설치된 대합실에서― 그들은 서로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꺼내며 스스럼없이 대화를 시작하곤 한다. 그런가하면 직장과 가족 이외의 인간관계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은 물론이거니와 (여성 화장품을 사용하고) 여성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져 왔던 꽃꽂이나 뜨개질을 하는 수컷들이 생겨나고 있는 지금,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동호회나 우연찮게 술집에서 안면을 튼 사장 혹은 단골들과의 제2, 제3의 인간관계가 시작되기도 한다― 남자들이란 언제든지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모양이다. 독신이란 것은 자신의 소득을 스스로 관리하며 소비하는 데 있어 얽매임이 없기도 하지만 심한 감기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면 온전히 혼자만의 몫이란 것을 감당해야 한다. 그들은 집 안 구석구석을 자신의 동선에 맞게 바꾸어놓는 자유를 누릴 수는 있지만 결혼한 친구들의 아이를 바라보며 가정이 생긴 이후의 예전 같지 않은 그의 배려를 통감해야 한다. 자, 그러면 연애를 해 볼까? 그는 어찌어찌 주파수가 맞는 처녀를 만났다. 연애의 장점을 과감히 버리고 들어가 보자면, 가장 먼저 깨지는 것은 그의 익숙했던 생활 패턴이다. 그는 그녀와 함께 출근하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는 불편함을 감수할 때도 있을 것이고, 내키지 않는 정열을 쏟으며 생일 케이크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며, 이 모든 것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관계를 이어갔더라도 정작 작별의 순간이 닥쳤을 땐 잠깐이나마 독신을 벗어나 새로운 가족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꾸었던 것을 잊어야만 할 것이다(여기에 빗대어 섹스 파트너의 중요성을 외치는 것은 너무 일면만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혼자 사는 사람들끼리 모여 공동 구성원이 되는 셰어하우스는 어떨까. 개인들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는 한편 싱글 라이프의 단점은 상쇄시켜 일종의 정신적 빈곤을 해결해주는 주거 방식. 문제는 함께 지내는 공동 주거인들끼리의 정서적 유대를 깨뜨리는 다툼이 일어나면 그들은 갈 곳이 없다는 점이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품의 구매, 비용, 세탁과 청소 등의 역할 분배, 활동하는 시간대의 차이, 소음, 입주자를 찾아오는 방문객(이 상태에서 누군가의 애인이 찾아와 공동 주거인들의 눈을 피해 섹스를 하려 한다면?). 물론 독신의 형태가 이러한 사례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혼 뒤 혼자가 되거나 사별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홀로 살아가는 생활 형태에 놓인 남성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직면해야 하는 것들이다.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면 질병이 찾아오는 것은 일반적으로 그가 아니라 그의 부모가 먼저일 터다. 제 몸 추스르기도 벅찬 나이가 된 그는 부모의 간병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는 정년을 맞아 퇴직하기 이전에 대책을 세워놓아야 하며 사회적 인간관계 역시 자신의 직함이 없을 때의 경우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젊을 때의 독신과 인생의 오후에 놓인 독신은 전혀 다른 것이다. 팔팔한 청춘이 반드시 낭만적인 것은 아니듯 노후에 놓인 남성이 낭만만을 논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낭만적일 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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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슬립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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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막 열병, ‘함께 갇힌’ 사람들에 대한 증오감으로 발현되어 사소한 다툼, 환각, 폭력 행사, 최악에는 살인까지 벌어진다. 곱상한 문학 앞에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린 『샤이닝』은 《데스티네이션》의 모태라 할 만한 가운데 먼 훗날 『닥터 슬립』까지 오며 어린 댄을 콜 시어에서 존 콘스탄틴으로 성장시켰다― 「I see dead people.」 → 「This is Constantine. John Constantine, Asshole.」 ……『샤이닝』의 후속작 치고는 전작에 비해 공포의 강도가 조절되어 있기도 하고, 또 킹 자신이 죽은 잭과 같은 경험(알코올 중독)을 했으며 이번에는 그의 아들이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굳이) 집어넣음으로써 어찌 보면 킹 스스로의 치유 일환으로 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결과적으로 전작과 함께 보면 말랑말랑하다고 해야 할 듯도 하다. 『샤이닝』에서 킹은 무엇을 보여주었던가. 미친놈과 미친 재주를 가진 미친놈의 아들이었다― 원작자는 한숨을 쉬었을지언정 내 판단으로는 큐브릭의 영화도 꽤 괜찮았다고 생각한다(소설 『샤이닝』의 미친놈 이름은 잭이고 영화 《샤이닝》에 출연해 미친놈 역할을 한 남자 이름도 잭이며, 내가 영화의 백미로 꼽는 것은 웬디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다. 그녀 스스로도 개의치 않고 주위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그게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그 미친놈의 아들은 커서도 제 버릇 남 못 준 채 고급 기술 ‘샤이닝’을 한 번 더 발휘한다. 다만 『샤이닝』에서 잭을 고용해 일을 꾸민 것이 오버룩 호텔 자체였다면 『닥터 슬립』에서는 약간 모호해진다. 그러므로 공포란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발생하지만 희한하게도 그 공포를 몰고 오는 자를 가장 친숙한 가족으로 설정했던 전작과는 다르다― 벌집에 손을 집어넣을 때의 기분을 기억한 채 이번에는 달큼한 꿀도 한 줌 집어 먹는다. 『닥터 슬립』은 샤이닝을 구사할 줄 아는 자들의 머릿수를 조금 더 늘리고, 거기에 요리사 딕과 217호실의 메이시 부인 등을 다시금 소환하고 있으며, 댄보다 더 강력한 샤이닝을 지닌 소녀 아브라를 짝지어주어 역시 샤이닝을 쓸 줄 아는 집단 트루 낫(true knot)과의 대결 구도를 만든다(어딘지 모르게 『조이랜드』의 냄새가 나고, 트루 낫이 다소 손쉽게 처리된 것이 아쉽다). 그리고 전작에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어린 댄은 멀리 떨어진 딕에게 구조 요청을 하고, 여기서는 성장한 댄에게 반대로 어린 아브라가 깜찍한 SOS를 보내면서부터(hEll☺) 이야기는 시작된다. 완결에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린 이 ‘오버룩 2부작’은 그야말로 소설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시작부터 불길했던 살아 움직이는 호텔 이야기는 펑크 냄새 물씬한 소설로 탈바꿈했고, 철저하게 고립된 일상의 공포를 뽐내던 것은 (당장은 모르지만) 영화 제작 예산을 한껏 부풀려 놓으며 다시 콜로라도의 오버룩에서 끝을 맺는다……. 『닥터 슬립』을 읽는 데에 『샤이닝』 읽기가 반드시 필요한 것만은 아닙니다, 라고는 해도 내가 보기엔 전작의 독서가 동반되어야 할 것만 같다. 아니면 차라리 『샤이닝』만이라도 읽어 보기를. 그러면 자연스럽게 꼬마 대니가 살이 쪘는지 키가 컸는지 여자관계는 무탈한지 궁금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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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7-29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저도 이 소설 보면서 좀 펑키한 걸 !!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로 만든다면 < 리포맨 > 처럼 만들면 재미있겠군. 했는데 영화 예고편 보니 정말 욕나오더군요...

그레코로만 2014-07-29 15:08   좋아요 0 | URL
영화로 만들어지나요? 한번 찾아봐야겠군요!
 
강대국의 경제학
글렌 허버드 & 팀 케인 지음, 김태훈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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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적으로 다소 낙관적이고 다소 보수적이랄까(너무 거시적이어서 그럴지도). 물론 현실적이기도 하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한 수 접고 들어가므로. 책은 로마의 붕괴나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등을 사례로 들며 현대의 재정 문제를 꼬집는데, 일단 지금 현실을 보자. 미국의 실업수당 신청 건수가 지난 몇 년보다 낮아진 것의 이면에는 다른 거품이 있는 게 아닐까? 미국의 경기는 회복하고 있는 것일까? 달러의 노후대책은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주가 상승은 결국엔 착시적 허울이 아닐까? 실업자들이 경기 회복에 참여하고 있기는 한 것일까? 중국이나 유로의 움직임은? 물론 이러한 물음들은 유의미해 보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 책에서 다루기에는 성격이 다르기도 하다. 나는 전쟁과 다툼을 넘어 경제(혹은 불황)에 관해서도 이따금씩 존 레논의 노랫말을 생각하곤 한다. 나라가 없다고 생각해 보라, 죽고 죽이는 것도 없고 종교도 없이. 그러면 어떤 국가든 다른 나라에 대해 눈치싸움이나 치킨게임을 하고 있는 와중에 이런 말이 가당키나 한가, 하는 반문이 되돌아온다. 현실의 괴리를 증폭시켜 지극히 이상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안 될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식의 논의가 불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전 세계인들은 쓸데없는 곳에 돈을 쏟아 붓고 쓸모없는 것에 열을 올리며 사용하지도 않을 것을 분석하고, 쪼개고, 구축하면서 낭비한다. 경제 위기? 몰락? 당연하다. 경제는 곧 정치라는 명제 하에서는 기존의 정치구조가 옷을 갈아입지 않는 한 개혁과 타개는 없다. 세제 개혁을 통해 기업 소득에 대한 세율을 삭감하는 것이 반드시 신규 고용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우방끼리 토지와 기업에 대한 직접 자산 투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만이 반드시 동맹 협정과 유대라고 볼 수는 없다(그들만의 리그는 또 다른 고립자를 낳는다). 내가 처음에 낙관과 보수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강대국의) 경제의 더러운 뒷면을 노골적으로는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목적은 국가의 흥망성쇠와 그 패턴, 번영, 경제 불균형을 역사적 관점에서 살피는 것이므로― 로마, 중국, 스페인 일본 등의 성장과 몰락을 주시한다. 로마에서는 재정, 통화, 규제를, 과거 중국과 스페인에서는 해상 교역의 축소와 재산권을, 일본에서는 잘못된 부양책을 분석하고 있다.




현대 유럽의 경제 위기, 다종다양한 패권 다툼, 당파적 양극화, 재정 적자 등은 어느 한 국가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이 경제 문제를 두 저자의 말대로 이데올로기와 정책 대립을 넘어 조금은 큰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고립의 위험은 얼마간 설명하면서도 팽창의 이면에는 약간 소홀한 듯한데, 그러면서 이 같은 ‘몰락’을 막기 위해 자유시장 확대의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거기에는 책의 제목처럼 ‘균형’이 반드시 들어가야 옳다(그러나 현실이 과연 그렇게 흘러가줄까?). 두 저자는 강대국 쇠퇴의 이유를 경제적 속성과 침체된 정치 체제에서 찾는다. 이를테면 과잉 팽창, 과도한 군사 지출 역시 경제의 균형을 잃게 만들 수 있으나 그것이 성립하지 않는 반례가 너무 많으므로 폴 케네디가 『강대국의 흥망』에서 주장한 제국의 과잉 팽창 요인을 제거한다(케네디 스스로도 군사력을 경제적 생산력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정치 체제가 발전하지 못하면 경제 또한 그러리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다시금 <경제=정치> 혹은 <경제≒정치>라는 수식이 성립하고 ‘신고전’이나 ‘케인스’와 같은 말이 득세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제도라는 것은 경제적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체계화하는 일종의 제약이다(반대로 그 제도를 입맛에 맞추기 위해 경제적 파워(로비)를 가동시키지 않던가?). 경제력 혹은 제도의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모든 것들은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고, 몰락의 증거에서 반추할만한 것을 찾아내는 작업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다. 뜀박질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바람을 기다리는 것은 우매한 행동이다. 하물며 100달러짜리 지폐가 누군가 주워 가기를 기다리면서 길에 떨어져 있는 경우는 좀처럼 없으니까 말이다.(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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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백과사전 - 고대부터 인간 세계에 머물렀던 2,800여 신들 보누스 백과사전 시리즈
마이클 조던 지음, 강창헌 옮김 / 보누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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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 출간된 『악마 백과사전』도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일단 이 책부터 집어 든다. 이미 한차례 러셀의 거대한 책 『악의 역사』(전4권: 데블, 사탄, 루시퍼, 메피스토펠레스)로 어지러웠던 가운데 이번에는 수많은 신들을 맞이했다. 학창 시절 일문학을 전공한 탓에 아마테라스오오가미(天照大神, 아마테라스오‘미’가미로도 읽는 모양)며 스사노오노미코토(須佐之男命)며 하는 길고도 긴 이름들을 외우고 다녔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신 백과사전』은 그야말로 신들의 집합체이면서도 악마스럽기 그지없는 목록이다. 어느 종교이건, 어느 나라이건, 어느 신화이건 간에 신은 비슷한 종류의 신비로움과 비슷한 행동을 보인다. 이를테면 창조와 관련되었거나 기후를 관장하는가하면 풍요로움 혹은 공포를 가져다주는 형태로― 동시에 그들은 인간과 같이 섹스를 통해 자손을 낳고 직립보행을 하며 시시콜콜한 장난을 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신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비슷한 상상력을 갖고 있는 인간이 그들을 만들어낸 것이므로.




만일 자연에 있는 모든 물체가 그 물체의 보호자나 수호자로 고려되는 어떤 영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인간의 행위는 그 물체의 물리적 상태뿐만이 아니라 영적 차원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도살하기 전에, 벌채하기 전에, 여행을 떠나기 전에, 집을 짓기 전에 그에 상응하는 정령의 승인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 서론









네덜란드의 판화가 에셔의 『Flor de Pascua(부활절 꽃)』에 수록된 작품 《The Scapegoat(희생양)》이다. 그의 작품 특징은 반복과 순환의 고리인데, 악마가 신의 그림자일지 아니면 신이 악마의 방어기제일는지 알쏭달쏭하다― 이런저런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신과 악마라는 것은 그들의 관계가 일종의 대용품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신은 이를테면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다가 자연계를 지배하지만 때로는 인간에게 화복이 아닌 재앙을 내리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어쩌면 신이 있기 이전에 악마의 존재가 먼저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현실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공포와 팍팍함에 대항해 신이 발명되었을지 모른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신의 성격은 추상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지적 수준이나 사회적 발전 등과 상응한다. 특히 자연신은 지구상의 모든 자연현상에 대응한다기보다 인간과 자연의 생활관계에서 기인한 측면, 그러니까 인간의 생활 자체와 관련이 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심지어 그들 사이에도 인간과 똑같이 ‘계급’이란 것이 존재한다). 아폴론(apollo)은 활과 화살을 들고 다니는 사냥꾼들의 신이며 제피루스(zephyrus)는 봄의 도착을 알린다. 넵투누스(neptunus)는 물과 관련된 농경 신에서 출발했고, 달의 여신 디아나(diana)는 숲에 살면서 동물들을 보호하며, 바쿠스(bacchus)는 담쟁이 덩굴이나 포도로 만든 관을 쓴 술과 도취의 신이다. 이렇듯 인간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신을 등장시킴으로써 그들을 경배하는 것과 함께 자연 자체를 성스러이 여겨 풍요로운 앞으로의 삶과 정신적 안정화를 꾀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한정된 세계관으로부터 우주관으로, 또 지배의 법칙 혹은 질서를 부여해 창조된 신들은 악마와 함께 인간이 정비한 생명과 힘의 관념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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