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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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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 기관차  같긴 하다. 박범신 작가의 말대로 <내면화 경향의 90년대식 소설들이 아직 종언을 고하지 않고 있는 현 단계에서> 나왔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7년의 밤』이 문학적으로 어필하는 수준은 자칫 뜬구름 잡는 적확성 없는 불특정 다수의 졸작들에 비한다면 꽤 높다고 본다. 밀도와 서사, 인물의 특성과 촘촘한 얼개가 작품을 지탱하는 근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더욱 그렇고. 개인적으로 생각되는 아쉬운 점은, 체호프였던가 누군가가 말했듯 작품에서 총이 등장했으면 반드시 발사되어야 한다고 봤을 때, 등장인물 최현수의 직업이 야구선수 ㅡ 경비업체로 가는 과정과 그 이후의 것이다. 최현수의 완력이 야구선수의 이력으로써 드러나는 건 오영제와의 격투 장면과 소설에서 설정된 <용팔이> 뿐이다. 그래서 왠지 <운명이 난데없이 변화구를 던진 밤>은, 야구를 보다가 혹은 야구 얘기를 듣다가 <변화구>를 <운명>이란 단어와 매치시켜 사용하기 위해 최현수의 전직을 야구선수로 설정한 데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소설은 사와키 도고沢木冬吾의 『천국의 문天国の扉』과도 닮아있다. 『천국의 문』은 아직 국내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 『7년의 밤』과 비슷한 정서를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대물림에 의한 복수, 스릴러의 느낌, 그리고 사형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면화 경향의 90년대식> 사유가 조금만 더 부각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닥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타입이 아닌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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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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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사전』은 순도 백퍼센트 화장실 책이다(헐리우드의 화장실 유머 말고). 화장실은 인간의 자연스런 본능을 해결하게 해주는 지상 최대의 은밀하고도 순결한 곳이다(解憂所) ㅡ 8차선 도로 한복판에서도 당당히 엉덩이를 까고 앉아있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틀린 말이 되겠지만. 혼자만이 누릴 수 있는 그 정갈한 곳에서 읽기 제격인 책이라면 더 할 말은 없다. 베르베르는 이 책 「반대로 하기」꼭지에서 <때로는 자기가 정말로 원하는 것과 반대가 되는 것을 해보는 것이 유익할 수도 있다>며 자고 싶을 때 깨어 있어 본다든지, 음악을 듣고 싶을 때 정적 속에 그대로 있어 본다든지, 자동차를 타고 싶을 때 걸어간다든지 하는 예시를 들고 있지만, 나는 그냥 화장실에 눌러 앉아 버릴까 하고 생각했다.

나쓰메 소세키夏目의 하이쿠俳句(일본 고유의 짧은 정형시) 중 이런 게 있다.
「時鳥厠半ばに出たかねたり」.**
해석하자면 <뻐꾸기가 밖에서 부르지만 똥 누느라 나갈 수가 없다>이다. 이걸 나에게 적용시켜보면 이렇게 된다. <급하다고 밖에서 부르지만 『상상력 사전』 읽느라 나갈 수가 없다.>



** 이 하이쿠는 원래 숨어있는 다른 의미가 있다. 소세키가 어느 정치인(이름은 잊어버렸다)의 초대를 받았는데 그를 뻐꾸기에 비유하여 자신은 지금 소설 집필중이라 갈 수가 없다는 내용의 하이쿠를 지어 답장을 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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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 영역의 확장
미셸 우엘벡 지음, 용경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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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실을 나와 전철을 타기 위해 나는 정기권을 찍고 오십 미터쯤을 걸어가 선로 앞에 선다. 츄오센中央線은 쾌속이 많아 집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칸다神田, 오차노미즈御茶, 요쓰야만 거치면 바로 신주쿠新宿다. 노란선 안쪽으로 펑퍼짐한 카고 바지를 입은 남자가 서있다. 나는 설마, 하며 그의 바지 속에 구겨 넣은 오른손을 주목한다. 그 속에는 아마도 권총이 들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몇 발이 장전돼있는지 꼼지락거리며 세고 있는 중이다. 잠시 후 벨이 울리고 전철이 들어와 서면, 한 발짝 앞으로 나가 <젠장! 이렇게도 무료할 수가 있단 말인가!> 하고 소리치면서 자신의 입 속에 조그만 탄환 하나를 박아 넣을 것이다. 무심코 돌아본 자동판매기에 드링크를 손에 쥔 남자가 싱글싱글 웃고 있다. 그가 들고 있는 건 리포비탄D다. 이걸 마시면 비타민 A인지 B때문에 항상 오줌이 노랗게 나온다. 갑자기 아랍인 하나가 그의 얼굴을 엉덩이로 막으며 리포비탄D를 뽑는다. 저 자는 가뜩이나 얼굴이 누런데다가 치아까지 변색되어 있다. 아마도 저걸 많이 마셔서 그러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이 웅성대고 벨이 울리고 차량보다 바람이 먼저 내 앞을 지나간다. 칼 같은 전철 시간 때문인지 한꺼번에 올라탄 사람들로 내부는 금세 더워진다. 문이 닫히자마자 중년의 남성이 토악질을 해댄다. 이쪽에서는 까치발을 해야만 보인다. 그가 위를 깨끗이 비울 때까지, 마지막에 약간의 얼굴 경련을 겪을 때까지, 스스로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쏟아져있는 것들을 어느 정도 치울 때까지 사람들은 쳐다만 보고 있다(한국이었어도 그랬을까?). 그러나 그의 손수건은 너무 얇고 작아서 그것들을 다 처리하지는 못한다. 순간,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음을 느낀다.


한 개의 거울이 매일매일 똑같은 절망적인 모습만 비춰 준다면,
평행으로 놓인 두 개의 거울은 밀도 높고 순수한 그물망 같은 상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사람의 시선을 세상의 모든 고통 너머에 있는 무한궤도,
그 우주 공간의 순수성 속으로 끌고 간다.

ㅡ 본문 p.180

아마도 이런 글쓰기였을 것이다. 주인공 <나>는, 자기만의 투쟁 영역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을 확장시키지는 못한다(위의 글은 내가 쓴 허구의 이야기다). 역자는 영화 『생활의 발견』을 언급하지만 닮은 구석이라곤 전혀 없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주인공은 선배가 좋아하는 여자와 놀아나고 유부녀를 만나 참을 수 없을만큼 섹스를 한다. 그러나 그는 정작 한 여인에게 같이 죽지 않겠냐며 진지하게 묻는다. 그는 <사람에게 사람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말라>며 <사람은 되기 힘들어도 괴물이 되지는 말자>는 선배의 말을 영화 속에서 몇 번이나 반복하며 자신의 투쟁 영역을 드러내지만, 그것은 우엘벡의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확장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하고 만다. 『투쟁 영역의 확장』은 위에 내가 쓴 상상 속의 이야기에서처럼, 시간은 무미건조하게 흘러가고 삶에의 욕망 자체도 없다. 결국 소설은 도저히 웃을 수 없는 블랙코미디이면서 비관을 향해 달려가는 <확장되지 못할 한없는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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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우주 전쟁』, 『투명 인간』, 『모로 박사의 섬』 그리고 『타임머신』을 포함한 웰스의 작품은 영화, 텔레비전, 파생소설(derivative novels), 만화, 그리고 다른 매체들을 통해 여러 차례 개작되어왔다. 그러나 단편 「<크로닉 아르고>호」는 모두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그래픽 노블로도 만들어진다는 이  「<크로닉 아르고>호」를 비롯한 단편들이 수록되어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읽고 싶게 만드는 웰스의 소설집이다.

 

 

 

여행기 문학의 출발이자 근대 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이 작품은 사실주의적인 묘사, 무인도라는 황량한 환경 속에서 불굴의 의지로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주인공의 영웅적 면모, 그의 독실한 신앙심 등 이 작품을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은 요인들이 무수하다. 특히 우리에게 잘 알려진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캐스트 어웨이》와 같이 수많은 장르의 작품들의 원작이 된 작품.

 

 

 

 

요새 들어 일본의 장르소설에 조금씩 질려갈 즈음 참 괜찮은 작품이다 싶었다. 미스터리하지만 과하지 않은 데다가 성장통을 이야기하는 세련된 소설이라 생각한다. 

 

 

 

 

 

 

30년이 넘은 소설이지만 여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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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열린책들 세계문학 162
루쉰 지음, 김태성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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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단편 「아Q정전阿Q正傳」은 그 제목의 유사함 때문에 영화 《아비정전阿飛正傳》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아비정전》의 마지막 대사, 그리고 나아가(또 한번의 유사성 때문에) 《버디Birdy》에서의 새가 되어 날고자 하는 열망을 돌이켜보자면 루쉰의 그것과 닮은 구석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다. 이 루쉰의 중단편집에 15편이나 되는 작품이 담겨 있다고 해도 유독 「아Q정전」을 언급하고, 눈여겨보고, 곱씹어보는 등의 노력을 하는 것은 어쩌면 그런 연유에서일지도 모르고, 과도한 통속성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혹 아니면, 「자네들은 입안에 독을 뿜는 이빨이 없는데도 어째서 이마에 <독사>라는 두 글자를 크게 써 붙이고 거지들을 끌어들여 때려죽이려 하는가?」하고 침울하게 내뱉는 N 선생(「머리털 이야기」)이나 붓으로 종이 위에 동그라미도 제대로 그리지 못했던 아Q(「아Q정전」)의 정신의 간극에서 휘둘리고 있을지도. 그래서 이게 과연 아Q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가 스스로를 자위하고 있어서인지, 애달프게 생각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건가보다. 그런 의미에서 특히 「아Q정전」이 고전으로 읽히는 것은 좀 수상한 구석이 있다. 단순히 고전이라 치부해 버리고서 때에 따라 꺼내보는, 그런 단발성의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헉슬리Aldous Huxley는 이렇게 말했다. <즐거움은 나눌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연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 때 그 목적은 선행의 대상을 기쁘게 하려는 게 아니라 다만 우리 자신을 위해서다. 스스로에게 힘이 있다는 사실을 거듭해서 자각하는 게 그 목적인 것이다.>라고. 기만하고 응징하고 학대하는 ㅡ 물론 스스로에게 ㅡ 아Q의 정신 승리법에는 그래서 효용과 미학적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거다.
 

한 가지 더. 댕강! 하고 멋지게 목이 잘리지 않고 재미없게 총살 당했다는 것이 아Q를 <조금은> 불쌍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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