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조 미키히코의 단편집 <열린 어둠> 완독. 하나같이 아름답고 고른 수준의 글이다. 야쿠자 조직원, 전직 경찰, 휠체어에 의지하는 아이, 유명 연예인, 선생과 학생. 주요 등장인물들도 다종다양한 모습이며 미스터리 또한 트릭과 기교가 다채롭게 펼쳐진다.그중 '기묘한 의뢰'가 가장 마음에 든다. 배우자의 불륜 조사를 하다 들킨 흥신소 직원이 이중 스파이마냥 이번엔 다른 쪽 배우자를 미행하다 다시 한 번 발각되어 또다시 유턴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그 끝에는 살인사건의 매력적인(!) 전모가 기다리고 있다.아름답다고 언급한 것은 독특한 작풍(혹은 정서)과 이따금 기묘하게도 읽히는 문체가 어우러져 탄생한 렌조 미키히코만의 특색에 기인한 것인데, 때로는 건조하게 때로는 비에 젖은 것만 같은 꿉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미스터리를 읽는 맛에 더해져 일종의 관능미까지 품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소설 속 두 이야기의 이음매를 잘 찾지 못한다. 결말의 연마에 다소 힘을 줬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사회에서의 규칙 위반은 안 되며 설득만이 능사라는 투의 언급도 나이브하고. 하지만 차분하고 끈덕지게 이야기를 설명하는 맛은 좋다.사회, 규칙과 도덕, 그 규칙을 파괴함으로써 페널티를 받아 외려 무언가를 얻으려는 남자. 살인 사건 현행범으로 체포된 후 '이것은 도덕 문제입니다'라는 말만 흘리며 기꺼이 처분을 받아들인다. 또 한쪽엔 음독으로 사망한 도예가가 있고, 사건 현장에 남겨진 메시지는 '도덕 시간을 시작합니다.'덴도 아라타와 시오타 다케시의 작풍을 좋아한다면 입맛에 맞을 듯하다. 사회 통념의 규칙과 모호하기 짝이 없는 도덕 관념을 같이 꿰어, 그 규칙 위반과 도덕 결여라는 명제를 보도(報道)하듯 끌어나가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지치지 않는 집요함도.
큰 얼개로 보면 별것 없다. 유아가 유괴되고 3년 후 홀연히 나타난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집념을 지닌 신문기자가 그간의 공백을 좇는다, 는 이야기. 그러나 <존재의 모든 것을>을 추리소설이 아닌 하나의 극(劇)으로 인식하는 순간 시야가 달라지고 내러티브는 비로소 제 임무를 수행한다.빈집에 들어가 먼젓번에 살았던 사람에 대해 추리하듯이, 소설은 똬리의 통로 안에서 공백을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아니 공백보다는 여백이라 하는 편이 어울릴 거다. 타자가 아닌 주체에 의한 증명은 확신에 차 부러 캔버스 한쪽을 비워둔 의도가 분명하니까. '존재의 의미'라는 담론은 나로서는 역부족이다. 그래도 이건 말할 수 있다. 저편에 있어 아득한 소실점도 종내 환한 불꽃놀이처럼 명확해지는 순간이 온다는 것, 소설 속 언급되는 다빈치의 '예술에 완성은 없다, 포기할 뿐'이라는 말의 의미는 성장하는 존재의 가치가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