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의 밤 매그레 시리즈 6
조르주 심농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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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르 섬에 살던 아로르족Alor族은 항상 불안과 초조감에 쌓여 있고, 의심이 많으며, 남을 믿지 않고,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으며, 항상 복수심에 불타 있다. 그래서 서로 자신들을 방어하는 데에 모든 에너지를 소모한다. 『교차로의 밤』에서의, 교차로를 중심으로 모여있는 세 집의 사람들이 그렇다. 물론 아로르족은 태생적으로 유형화된 경우이지만, 『교차로의 밤』은 문화적인 유형화로 맺어진 관계를 보여준다. 또 다른 것이라면 전자는 언뜻 보기에는 이런 사회가 어떻게 존속될 수 있는지 의심이 가지만, 후자를 보면 그런 낌새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고로 <교차로>란, 어디로든 나갈 수 있지만 어디로도 나갈 수 없는 그런 갈림길이다. 그럼 <밤>은… 제임스 톰슨James Thomson이란 시인이 이렇게 말했다. 「밤에는 질서가 거짓이 되고, 모든 아름다움은 공허해지고, 개성은 사라지고, 즐거운 다양성은 하나의 거대한 오점으로 바뀐다.」어두운 밤은, 황망하게 짖는 개의 힘없는 울음, 살짝 밟았는데도 요란스레 삐걱대는 판자 소리를 연상케 한다. 소설에서, 매그레가 철벅철벅 흙을 밟으며 뛰어갈 때 자동차 전조등이 그곳을 너무 환하게 비춰 다른 곳을 칠흑처럼 깜깜하게 만들어 놓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질서는 거짓으로, 아름다움은 공허로 바뀐다. 마찬가지로 검은색 외알박이 카를이 수상쩍다고 느끼는 순간 자신의 6기통 차를 돌려달라는 미쇼네가 의심스럽다가 다시 넉살 좋은 오스카에게로 그 의구심이 옮겨간다. 매그레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트릭이란 것이 점차 부각된다고 여겨지지만 오히려 나는 이 『교차로의 밤』에서는 밤의 분위기가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은근하지만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박진감이 있다. 커튼을 통해 훔쳐보는 동시에 자신을 은폐하고, 비뚤어진 액자에 감춰진 진실과 거리낌 없이 마구 총을 쏴 댈 수 있는 넓디넓은 농가의 배경……. 반복하자면 어디로든 나갈 수 있지만 어디로도 나갈 수 없는 교차로, 밤의 어둠과 한 줄기 빛이 만들어내는 수상한 이미지, 그리고 마치 섬처럼 고립된 교차로의 집들을 짓누르는 음산함. 이것들이 텍스트를 이미지화하여 하나의 미스터리로 만든다. 끝으로, 매그레가 사람들을 벽에 줄지어 세울 때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The Usual Suspects》의 머그샷을 떠올리며 살짝 웃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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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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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K는 그 이니셜처럼 삼진 아웃을 당하지는 않는다. 아내와의 전야제에서도, K1과 K2의 합체에서도. 그리고 종교 냄새를 끌어들이려면 한없이 이어질 수도 있고……. 어쨌든 K의 도시는 타인과 내가 교차하는 절벽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본다. 아내는 아내가 아니고, 딸은 딸이 아니고, 강아지는 강아지가 아니라고 느끼는 K 본인이 <나는 내가 아니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고 ㅡ 타인은 그저 나와 무관계한 타인으로만 존재했으면 좋겠다, 라고 말이다(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종교적으로 보고 싶지 않은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 《파란 대문》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진아가 모래에 파묻혀 있던 그 장면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지만 그것은 자신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라는 동의어로 보였던 그 장면을.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K가 자아自我와 타아他我는 불이不二라는 것을 인식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K는 자신의 상황에 분노를 느끼지만 타인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타인에게서 부정당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타인을 부인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다시 여기서는 물음표. K1과 K2가 합체된다는 설정과 방식은 꼭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하는 것. 일상과 비일상의 연결, 아와 타의 작별과 조우라는 부분에서 그렇다. 모든 것과 헤어지고 나면(혹은 그런 뒤에야) 온전한 자신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적절한 것일까.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이 낯익으면서도 한편으론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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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개 매그레 시리즈 5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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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에서 매그레의 자리를 찾아주자. 홈즈, 뒤팽, 포와로, 말로, 뤼팽을 모두 제치고 당연하게(!) 엘러리 퀸을 엄지손가락 위에 올려놓았었지만, 지금은 엘러리 퀸과 쥘 매그레 2명의 인물이 왼쪽과 오른쪽 엄지손가락에 하나씩 올라가 있다. 조르주 심농Georges Simenon의 버즈북 『매그레 반장, 삶을 수사하다』(열린책들, 2011, \750원!)의 제목에서처럼, 궁극의 주안점은 죄를 진 평범했던 자들의 삶을 뒤따라가는 행보에 있다는 것이 『누런 개』에서도 드러났고, 앞으로 <매그레 시리즈>가 쌓이면 쌓일수록 나는 이런 식의 구태의연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 뻔함에도 불구하고 쉬이 지나칠 수가 없음을 인정하는 바다.  

 

일반적인 추리는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수준이기 마련이죠.
그런데 매그레는 범죄의 모순에서 출발해 인생을 이해하려 합니다.


ㅡ 『매그레 반장, 삶을 수사하다』, 212쪽, 번역가 최애리 님의 말 

 

우리 곁엔 언제나 <중환자들>이 있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ㅡ 혹은 나일 수도 있고. 그(녀)들은 복수를 하지 않을 수도 있고 행복을 누릴 온당한 권리가 있으며 실수를 인정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다. 『누런 개』에서 엠마는, 혹은 <또 한 사람 X>는(그렇게 외로운 사람들은) 인위적이고 차가운 낭패를 맛본 세월을 보내며 생기발랄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상처의 처분을 그대로 바랐었다. 마치 삶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것처럼. 토마스 만의 단편 「굶주리는 사람들」에서 젊은 예술가 데틀레프가 썼던 글을 생각해보자. <그리워하는 것은 정상적이며 예의 바르며 사랑스러운 영역입니다. 삶은 매혹적일 정도로 진부한 것 속에 있는 겁니다…….> ……밝게 빛나는 화려한 옷, 카페에서 히히덕거리는 연미복의 웃음들 따위도 좋겠지만, 그 누런 개, 사랑스런 조그만 강아지가 커왔던 오 년이란 시간이야말로 정상적이고 사랑스러운 날들이었어야 마땅했을 일이다. 그런데 왜 꼭 세상은 누군가가 <쥐어 터져야만> 직성이 풀린단 말인가. 이것을 단순히 니체의 gut과 böse 둘로 나누지는 말자. 왜냐하면 인간이란 언제나 자기만의 정해진 궤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엠마는 잔혹성의 또 다른 극단을 향한 생활을 보냈고 X는 외부에서 오지 않는 구원을 좇아 엠마에게 당도했다. 그래서 그들의, 중환자들이 가진 상처만이 어두운 힘으로 표출된다. 인간의 야생성이 드러나게 되는 것은 <다시 새로워질 수 있는 어떤 행복>에서 기인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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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 매그레 시리즈 4
조르주 심농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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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은 마구간 안에서, 백발이 될 때까지 살 수는 없는 거다, 이 세계에서 팽 당한들. 『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Le Charretier de La Providence』 는, 사랑이란 감옥에 갇혀 사는 이들을 향한, 어떤 틀에서 못 나오는 인간들, 그들에게 보내는 쓸쓸한 응원가 ㅡ 이를테면, 매그레의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파리한 병색에 그늘지고, 가혹하다못해 사람과 기억이란 면도날에 찢김을 당하고야마는, 그런 사람들.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응시하는 것, 그래서 아픈 거다, 여기, 가슴이. 인간이 소나 돼지와 다른 게 뭔가, 그건, 늙어죽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는 것, 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 장은 그렇게 살았어야 했음이 옳다. 그게 순리, 라면! 

 

…이 아니다, 순리라고는 할 수 없지, 그래가지고야 이야기가 되질 않는다. 그래서 심농의 이야기는 ㅡ 소설가는 선전 속 인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보여 줘야 한다, 우리는 모두 비극의 등장인물이고, 그들 자신의 <끝까지> 가기 때문이다…… 라는 그 자신의 말처럼 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하룻저녁 사이에 비극 한 편을 관람할 수 있다, 바로 상처, 그 상처가 심농의 작품을 관통하는 모티프다. 문제는 이 상처의 봉합인데, 차라리 상처인 채로 있었다면, 처음부터 그게 상처인 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이 한데 뭉쳐, 자꾸만 인간으로 하여금 상처더미 속으로 몰아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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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타이거
페넬로피 라이블리 지음, 김선형 옮김 / 솔출판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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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 수상작…… 인지는 잘 모르겠고, 그런 것은 중요치 않다. 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좋고, 아니라고 해서 그렇지 않다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 일단 읽는 데 상당히 불편했다. 한 마디로 지루한 사설이라고밖에는 말 할 수 없다, 나는. 개인적인 취향의 차이는 분명 있을 것이다. 물론 작가가 말하는 '세계의 역사'가 '나 개인의 역사'가 될 수도 있음은 인정한다. 그러나 『문타이거』는 철저하게 클라우디아 햄프턴에 대한 개인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세계의 역사'로 귀결되는지, 나는 당최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는 것이 내 감상이다. 서로의 기억이 지니는 다채로운 충돌에 관해 '첫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중심으로 그려냈다고도 하는데, 그것은 '세계의 역사'나 '나 개인의 역사'를 빙자한 카피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뱅뱅 도는 모기향의 중심, 언젠가 하얗게만 남아버리는 그 중심처럼, 『문타이거』도 그저 다 타버린 소설이라는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개인의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 자체도 불편하긴 하지만, 시각의 차이, 취향의 차이, 수용자의 인식의 차이라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다는 것을 사족으로 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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