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브러더후드는 걸음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터벅터벅 비탈길을 올라가며 모든 것을한가로이 눈에 담았다. 나는 이제 이런 속도로 걸을 자격이 있어. 이렇게 웃어도 돼. 예쁜 여성이 출근길에 그를스쳐 지나가자 그는 사람 좋게 인사를 건넸다. 여자는 세련되게 윙크를 보냈다. 감시자가 아니라는 증거였다. - P7
「내 말은, 승진이 사실이었다고 가정해 본 거야. 고위급의 책임 있는 자리, 너라면 그런 자리에 매그너스를 앉혔을 것 같아?」벨린다가 빙긋 웃었다. 몹시 예쁜 미소였다. 「실제로그렇게 했잖아요, 안 그래요? 매그너스랑 결혼했으니까요.」 - P19
미국 측에 앉은 사람은 달랑 네 명뿐이었다. 두 나라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서 영국인들은 항상 숫자로 미국을 이기려 들지. 레더러는 생각했다. 현장에서는미국 정보국이 이쪽 사람들을 약 90 대 1로 능가하지만, 여기서는 우리가 박해받는 소수야 - P26
말을 똑똑히 하지 못하는 사람은 생각도 똑똑히 하지 못한다는 생각. 자기표현은 논리와 한 쌍으로 붙어 다니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해리 E. 웩슬러는 목부터 그 위쪽이 전부 포경 수술을 받은 사람이야. 비록 나의 소중한 미래가저 웩슬러의 손에 달려 있기는 하지만 말이야. - P28
이 이야기는 레더러 씨에게 맡겨야 할 것 같군요」「아뇨, 그냥 직접 얘기하세요.」 웩슬러가 고개도 들지않고 지시한다. 웩슬러의 이런 태도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레더러의 이름이 아예 노골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는 않다해도, 그 이름을 입에 담는 것에 일종의 저주가 걸려 있다는 사실은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이런 회의의 특징 중 하나다. 레더러는 그들에게 카산드라같은 존재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회의의 의장 자리를 카산드라에게 맡기는 사람은 없다. - P34
딱 한 단어만 있으면 됩니다. 첫 번째 단어라면 좋겠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단어만 밝혀지면, 나머지 내용을 해석해 내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그 메시지를 완전히 해독하게 되는 겁니다.」
「그럼 그게 언제쯤 가능하겠습니까?」 마운트조이가말한다. 「1990년쯤?」 「그럴 수도 있고, 오늘 밤일 수도 있습니다.」 - P36
보, 매그너스가 언제 빈으로 돌아오는지 말해 줄 수 있습니까?」브래멀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폴더를 들여다보고 있으므로, 즉시 대답하지 못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오라고 하면 오겠지요.」 그가 서류를 넘기며무심하게 말한다. 「우리가 말하기 전에는 안 올 겁니다.」 - P48
이미 여러 번 그랬던 것처럼 레더러는 방금 자살행위를 했다.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아무도 <와, 설마!>라고 외치지도 않는다. 마침내 입을 연 브래멀의 목소리는 자선 단체처럼 차갑고, 시기도 너무 늦었다. - P52
「매그너스의 고향은 웨일스에 있는 작은 해변 마을입니다. 아주 볼품없는 빅토리아 양식 교회가 있는 곳이죠. 엄격한 집주인 아주머니가 저녁 10시만 되면 문을 열어주지 않는 곳입니다. 매그너스는 조만간 그 집의 2층에틀어박혀 꽁지가 빠지게 글을 쓸 거라고 했습니다. 프루스트에게 보내는 핌의 답변 열두 권을 모두 완성할 때까지 나오지 않을 거라고요.」 - P58
「무슨 공로로 받으신 거예요?」 톰이 말했다. 「어두운 밤을 혼자 견딘 공로로」종소리가 울렸다. 「이제 얼른 가서 공부해.」 브러더후드가 말했다. - P66
난 여기 영원히 있어야겠어. 그는 이렇게 결심했다.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제자들에게 영웅이 되어야지. 이 포부를 확실히 실현하기 위해 그는 선택적으로 말을 더듬는 버릇과 자신을 부정하는 듯한 미소를 만들어 냈다. 밤에는 긴 시간 책상에 앉아 네스카페를 마시며 잠을 쫓았다. 날이 밝으면 그는 면도도 하지 않은 채 아래층으로내려갔다. 열심히 공부하느라 얼굴에 주름이 생긴 모습을 모두에게 보이기 위해서였다. - P86
친애하는 매그너스에게. 이 편지에 적힌 주소를 보면 알겠지만, 나는 베른의환락을 버리고 더 거친 길을 선택해 지금 이곳에서 군사 파견단 소속으로 있다. 확실히 생활이 더 짜릿하긴하구나! 나는 지금도 교회에서 일을 맡고 있는데, 여기아랍에도 노래를 상당히 잘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는것을 알게 됐다. - P95
핌에게는 기다리는 시간 1분, 1분이 1년처럼 느껴졌지만, 다행히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그다음 화요일독일어 문법 중 어간 모음 교체에 대한 힘든 개별 지도를받고 돌아와 보니 또 편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엄청나게 두꺼운 갈색 봉투였는데, 나는 나중에 이런 유형의 봉투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흐릿한 선들이봉투에 가로로 그어져 있어서 마치 골판지처럼 보였지만, 손에 만져지는 느낌은 기름을 바른 듯 매끈매끈했다. 봉투 뒤편에는 로고도, 보낸 사람의 주소도 없었다. 심지어 봉투의 제조사조차 비밀이었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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