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98년에 이르러서야 강간이 전쟁범죄로 처음 처벌되었다는 사실(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의 아카예수 판결 옮긴이)에 충격을받았다.
- P21

사과도 없었다. 침묵만 있었다. 성노예로 고통받은 위안부 여성에 대한 침묵. 스탈린의 군대에 강간당했으나 역사 교과서에는 한줄도 언급되지 않은 수친 명 독일 여성에 대한 침묵, 스페인에서 프랑코 장군의 팔랑헤 당원에게 강간당하고 가슴에 낙인이 찍힌 여성에 대해서도 침묵.
- P22

수십 년 동안 강간은 세계에서 가장 소홀히 다뤄지는 전쟁범죄였다.  - P22

 1998년 전쟁범죄로서의 강간에 최초의 유죄판결이 내려진 바로 그 해에 국제형사재판소설립을 결의한 ‘로마규정‘은 강간을 전쟁범죄로 규정했다
(중략)
 그러나 국제형사재판소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는 설립 후-21년 동안 전시 강간에 유죄판결을 한 건도 내리지 않았다. 유일하게 유죄판결이 내려진 적이 있었지만 그마저 항소로 뒤집혔다.
- P23

판결을 내리는자리에는 주로 남자 검사나 판사가 있는데, 이들은 대량 학살에 비해 성폭력을 중요하게 보지 않으며 피해 여성들이 화를 자초했다는 투의 말을 할 때마저 있다.
- P23

이제 국제 사회는 성폭력이 의도적인 군사 전략으로 자주 쓰이며 그러므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슬프게도 그런 인식만으로는 세계 여러 곳에서 아무것도 끝내지 못했다. 2018년 분쟁하성폭력에 대한 UN 사무총장 특별 대표실이 발표한 보고서는 전시강간이 일어나고 있는 19개 나라와 전시 강간을 자행하는 12개 나라의 군대와 경찰, 39개 비국가 행위자의 목록을 공개했다. 보고서도 인정했듯 결코 포괄적인 목록이 아니라 ‘믿을 만한 정보를 구할수 있는 곳‘을 대상으로 했을 뿐이었다.
- P24

여성은 살아가는 동안 세 명 중 한 명꼴로 성폭력을 경험한다.  - P24

여성은 그저 역사의 방관자가 아니다. 이제 이야기의 절반만 말하기를 멈춰야 할 시간이다.
- P2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2-03-25 2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오늘밤 그리고 내일 오전까지 비가 많이 올 거라고 해요.
바람도 많이 분다고 합니다.
날씨가 좋지는 않지만 많이 춥지는 않대요.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미미 2022-03-25 22:26   좋아요 1 | URL
네!ㅎㅎ비가 내일 아침까지 오는군요. 그래도 날이 춥지않아 다행이고 공기가 나빴는데 비온뒤 맑아질것 같아 좋네요. 서니데이님도 유쾌한 금요일밤 보내세요~♡
 

내 의지나 욕망, 그리고 지적 능력이 개입되어 있는 행동은 오로지 그 남자와 관련된 것뿐이었다.
- P12

책을 읽을 때 나의 마음을 휘어잡는 문장은 남녀관계를 묘사한 대목이었다. 그런 내용은 내게 A에 관한 무언가를가르쳐주었고, 사실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들에 확신을 주었다.
가령,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에서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포옹할 때 눈을 지그시 감는다" 라는 구절을 읽으면, A가 나를 안을 때 그렇게 하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씌어 있는 그 밖의 다른 내용들은그 사람과 다시 만날 때까지의 빈 시간을 메워주는 수단일 뿐이었다.
- P13

나는글쓰기를 통해 그것들을 붙잡아두려고 했다.  - P16

나는 나를관통하여 지나가는 시간 속에 살고 있을 뿐이었다.
- P17

하나하나 어떤 몸짓이나 순간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그 물건들을, 그것들이 이루는 생생한 무질서를 지금상태 그대로 보존하고 싶었다. 그것들은 미술관에 소장된 다른어떤 그림도 내게 주지 못할 힘과 고통을 간직한 하나의 그림을이루고 있었다.  - P17

 "그 남자가 마치 섬세한 신경이라도 다루듯 조심스레 나를 애무하더라니까요"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다들 평범한 이야기들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여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은 그런 고백이 정신이상의 증거라도 된다는 듯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아주 신중하게 거리를 두고그 여자를 대하는 것이었다.  - P20

요즘은 ‘한 남자와 미친 듯한 사랑‘을 하고 있다거나 누군가와 아주 깊은 관계에 빠져 있다거나 혹은 과거에 그랬었다고숨김없이 고백하는 사람을 보면, 나도 내 마음을 털어놓고 싶은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이야기를 하고 공감에서 느끼는 행복감이 사라지고 나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었더라도 그렇게마구 이야기해버린 것을 후회했다. 
- P21

그 사람과 사귀는 동안에는 클래식 음악을 한 번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대중가요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예전 같으면 관심도 갖지 않았을 감상적인 곡조와 가사가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런 노래들은 솔직하고 거리감 없이 열정의 절대성과 보편성을 말해주었다. 실비 바르탕이 노래한 사람아, 그건 운명이야를 들으면서 사랑의 열정은 나만이 겪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대중가요는 그 당시 내 생활의 일부였고, 내가 사는 방식을 정당화시켜주었다.
- P23

그 사람과 함께 있던 어느 날 오후, 펄펄 끓는 물이 들어 있는 커피 포트를 잘못 내려놓는 바람에 거실의 카펫을 태워버렸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불에 탄 그 자국을 볼 때마다 그 사람과 함께 보낸 열정적인 순간을 떠올릴수 있어서 행복했다.
- P24

요즈음 나는 내가 매우 소설적인 형태의 열정을 지닌 채 살고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P25

우리 관계에서 그런 시간적인 개념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그저 존재 혹은 부재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언제나‘와 ‘어느 날‘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면서 열정의 기호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 기호들을 한데 모으면나의 열정을 좀더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을 열거하거나 묘사하는 방식으로 쓰인 글에는 모순도 혼돈도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글은 순간순간 겪은 것들을 음미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일을 겪고 나서 그것들을 돌이켜보며 남들이나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인 것이다.
- P26

친구들로부터 꽃이나 책을 선물받게 되면 나는 기쁘기보다는, 그 사람은 내게 지금껏한 번도 이런 선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이내 그 사람은 욕망이라는 값진 선물을 하고 있잖아‘라는 생각으로 그런 마음조차도 떨쳐버릴 수 있었다.  - P29

어쨌든 또다른 이유를 찾는다는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뿐일 테니 말이다. 그 사람이 나를 욕망하느냐 욕망하지 않느냐하는 것. 그것은 그 사람의 성기를 보면 당장에 알 수 있는, 유일하고도 명백한 진실이었다.
- P30

여러 가지 제약이 바로 기다림과 욕망의 근원이었다.
- P32

나는 완벽한 한가로움을 갈망했다. 나는 상사가 요구하는 시간 외 근무를 무례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호히 거절했다.
내 열정이 불러일으키는 느낌과 상상의 이야기에 자유롭게 전념하지 못하도록 나를 방해하는 것들에 맞설 권리가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 P35

내가 예술작품에 관심을 갖는 경우는 그것이 열정과 관계가 있을때뿐이었다. 나는 바디아 성당에 다시 갔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난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반쯤 닳아서 지워진 산타크로체의 프레스코 벽화를 바라보다가 우리의 이야기도 나와 그 사람의 기억 속에서 언젠가는 저 빛바랜 그림처럼 되고 말 거라는생각이 들자 몹시 혼란스러워졌다.
- P42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 앞에서는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남성의 육체가 가진 아름다움을여자가 아닌 남자가 그토록 뛰어나게 표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라워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그 당시 여자들이 처한상황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 P43

그런데도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 선택하는 문제에서부터 립스틱을 고르는 것에 이르기까지모든 일이 오로지 한 사람만을 향해 이루어졌던 그때에 머물고싶었기 때문이다. 첫 페이지부터 계속해서 반과거 시제를 쓴 이유는, 끝내고 싶지 않았던 삶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영원한 반복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예전의 기다림이나 전화벨 소리, 만남을 대신하고 있는 나의 고통을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 P53

그런데도 계속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읽힐지도 모른다는 고통을 연장시키는 것과 같다.
하지만 내가 글을 써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한, 그런 건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그 필요성의 극에 다다른 지금, 써놓은 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놀랍기도 하고 부끄럽기도하다. 열정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갈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감정들이다. - P59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아닐까 - P67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2-03-21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3-21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3-21 1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3-21 15: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뉴욕타임스>에서는 박사학위를 마치자 남자친구가 유방 확대수술을 해주었다는 여성의 말을 들려준다. 미국의 현재 흐름은 딸이 졸업하면 유방 확대수술을 해주고 아들이 졸업하면 전통적인 유럽 여행을 시켜주는 것이다. 캠퍼스에서 가장 빛나는 여학생도 대개는 완전히 굶주린 상태에 가장 가깝다. 여성은 유방 확대수술이나 지방 흡입술, 코 성형수술을 권력을 얻은 것[박사학위나 유산 상속, 바트미츠바(유대교에서 12~14세 된 소녀들이 하는 성인식 - 옮긴이)]에 대한 보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권력을 얻은 데 대한 해독제로도 하고, 그러도록 요청받는다.
- P338

예일대학에서는 행정관이 로즈 장학생 선발 면접을 보는 학생들을준비시키면서 "남학생들은 됐고 여학생들은 옷과 자세, 화장에 관해조언할 것이 있으니 잠시 있어요" 하고 말했다. 인터뷰 오찬에서는 남학생들에게는 "어떻게 세상으로부터 세상을 구할 계획인가?"라고 묻고, 여학생들에게는 "여러분의 사랑스러운 몸매를 어떻게 유지할 건가?"라고 물었다.
- P338

여성학이 여전히 교과과정에서 주변적 위치에있고 교수 가운데 여성이 5퍼센트도 안 되며, 젊은 여성들에게 가르치는 세계관도 남성적이다. 이렇게 그들에게 가해지는 압력은 남성적 분위기에 순응하도록 한다. 어머니와도 떨어져 캠퍼스에 있는 젊은 여성들에게 그들보다 나이 많은 역할모델 가운데 남성 아닌 사람이 거의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자기 몸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겠는가? 그들에게 흠모하고 모방할 여성의 이미지로 주로 제공되는 것이감명을 주는 여성, 그들보다 나이 많은 현명한 여성의 이미지가 아니라 그들과 나이가 같거나 적은 여자아이들, 정신으로 존경받는 여성이아닌 여성의 이미지다.  - P336

1984년 로빈 라고프Robin Lakoff와 라켈 셰르 Raquel Scherr는 《페이스 밸류Face Value)에서 "여대생들 사이에서는 건강과 에너지, 자신감 같은 아름다움의 ‘현대적 정의가 지배적임"을 발견했다. "나쁜 소식"은 그들 모두 "그보다.
더 중요한 관심사가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의 몸매와 몸무게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5~25파운드를 빼고 싶어 했다.  - P3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터는 칭얼대지도 보채지도 않고부모가 쥐여 주는 장난감을 고분고분히 갖고 놀았다. 아이는 따돌림이 무엇인지 일찌감치 깨닫고는, 모든 것을 다 보는지 아니면아무것도 안 보는지 알 수 없는 우묵하고 무감정한 눈으로 삶을관조했다. 공놀이에는 절대 끼지 않고 책 읽기와 고독을 즐겼으며, 햇빛을 끔찍이 싫어해서 볕에 나갈 때면 언제나 일단 멈춰 서서 눈을 찡그리고 눈썹 위로 손차양을 했다.
- P48

아들의 습관적인 고립이 어쩌면 의사나 과학자의 무심한 태도가 아니라 신비주의자나 사제의 내적 침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충격을 받았다. 아들에게 말을 걸었을 때, 그는 불경하게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피터?"
"금방 들어갈 생각이었어요." 태연한 목소리였다.
"여기서 뭘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구나."
"관찰하고 있었어요."
"관찰하다니, 뭘?"
"달을요."
- P50

닭장의 닭들이 불구이거나 별난 구석이 있는 동족을 죽을 때까지 쪼아 대듯이, 동급생 아이들은 피터를 괴롭히고 조롱하고 암사내라며 놀려 댔다. 독기를 품은 그 말은 피터가 어디를 가든 따라다녔다. 그러나 피터가 아이들에게 덤빈 적은 아버지가 주정뱅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뿐이었다. 

피터보다 몸놀림이 날쨌던 또래아이들은 슬쩍 피했다가 피터를 둥그렇게 에워싸고 서서는, 신이나서 눈을 반짝이며, 모질게 파고드는 ‘이‘ 소리를 똑같은 입모양으로 발음했다. 피터는 알았다. 그 아이들의 아버지들도 그리고할아버지들도 일찍이 또 다른 원을 이루고 서서, 누군가 다른 외톨이를, 다른 괴짜를 괴롭혔으리라는 것을, 그 아이들의 아이들도장차 똑같은 원을 이루고 서리라는 것을.
- P50

그렇게 아이들을 찬찬히 돌아보며 피터는 노회한 늙은이에게나 어울릴 지혜를 터득했다. 그들을 대적할 때에는 자신의 방식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방식이 아니라, 피터가 깨달은 또 한 가지는, 지금 느끼는 이 새롭고 차갑고 불편부당한 증오의 표적이 단지 눈앞의 아이들만이 아니라 평범하고 부유하고 남부러울 것 없이 안온하게 살아가는 자들, 그러면서 그가 남몰래 그리는 ‘고든‘이라는 성의 이미지를 감히 더럽히려 드는 자들 모두라는 사실이었다.
- P51

 그렇게 피터는 가족의 좌절과그칠 줄 모르고 흐느끼는 바람 소리에 맞서 꿈의 책을 지었다. 그것은 도래할 세상의 청사진이었다. 피터는 훌륭한 외과 의사가 되어 그 세상을 불러올 사람이었다. 그 세상이 오면 그는 프랑스의학자들 앞에서 논문을 발표하고, 모르는 사람들이 그의 아름다운어머니와 상냥한 아버지에 관해 이야기하는 동안 옆에 조용히 비켜서 있을 터였다.
- P52

"어이구, 우리 아들이야 당연히 훌륭한 의사감이지." 조니는혼자 앞날의 계획을 세우며 그렇게 말했다. "애가 평소에 책을 어떻게 읽는지 알아? 눈도 깜빡이질 않아. 당신도 눈치챘어? 바로그거야, 부릅뜬 눈, 우리 아들은 사실을 사랑해."
- P55

피터는 정말로 사실을 사랑해서, 자기 방에 틀어박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읽었다. 열두 살에 이미 베살리우스의 해부학 그림을 베껴 그렸고 히포크라테스와 베르길리우스의 책, 또 아버지가 이제는 포장도 뜯어보지 않는 의학 저널도 띄엄띄엄 읽었다.
- P55

그러나 잠에서 깬 조니는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볼 뿐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이번에는 로즈가 남편에게술을 한잔 마시라고 권했다. 로즈의 남편은 위스키가 고통을 없애준다는 말을 자주 했고, 지금 그는 고통 속에 있었으므로.

(또 위스키다ㅎ) - P63

"그림이에요. 아버지."
아버지라, 조니는 속으로 생각했다. 맙소사, 얼마나 무거운말인지, 얼마나 무거운 책임인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림을 받아들었다. 그림은 다 해서 열 장이었고, 모두 강가에 자라는 식물의뿌리 구조를 그린 것들이었다. 조니는 눈을 감고 입술을 지그시물었다. 이토록 훌륭한 그림이라니, 여기에 비하면 그 자신의 솜씨는 얼마나 형편없던가! "정말로 자랑스럽구나. 나는 이렇게 잘그리질 못했는데."
- P64

어느 늦은 가을날 오후, 눈을 몰고 올 찬 바람의 냄새가 강렬할 무렵, 조니는마을 뒤편의 산속에 왕진을 다녀왔다. 그곳에 사는 임신부에게서사산된 아기를 받고 오는 길이었다.

운 좋은 아기야, 운도 좋지. 조니는 생각했다. 그 아기는 결코좌절할 일도, 냉혹한 자연의 섭리 앞에 두려워 떨 일도 없었다.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무너지는 그 섭리 앞에. - P65

피터가 벽을 따라 달아 놓은 선반들은시커떻고 묵직한 조니의 의학 서적 때문에 아래로 살짝 처져 있었다. 선반 위에는 박제한 땅다람쥐와 토끼 외에 비커와 증류기 같은 화학 실험 기구도 함께 놓여 있었다. 그곳에서 피터는 학교에서 겪는 나날의 수난으로부터, 아이들의 조롱과 험담으로부터 벗어나 안식을 얻었다. 그곳에서 의심할 것 없는 자신만의 세계에빠져들었다. 창고에 있는 자기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 피터의 눈은 내면을 향했다.  - P66

피터는 남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 주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어머니에게만은 예외였다.
- P76

예전에 이곳에 출몰하던 주정뱅이는 양치기였다. 그 양치기는 암캐 한 마리를 술집에 데리고 들어왔는데 필은 인간들이 있는집에 짐승을 들이는 짓을 끔찍이 싫어했다. 그 암캐는 양치기의발치에 엎드려 코를 킁킁대다가, 고개를 들어 주절주절 떠드는 주인의 입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얼간이는 사람들의 귀가 욱신거릴 때까지 자기 개 이야기를 떠들어 댔다. 그 암캐가 얼마나 영리한지,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얼마나 날쌘지, 얼마나 믿음직한지,
얼마나 고분고분한지, 그리고 정말이지 얼마나 귀여운지도.
- P78

기억 속의 미서 전쟁 무렵, 미국과 에스파냐가 쿠바에서 전쟁을 하던 지난 세기 끝 무렵에 그는 얼마나 되바라진 소년이었던가. 그때는모든 도시의 모든 공원에서 관악대가 군가를 연주했고,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에는 어김없이 불꽃놀이 축제가 열렸다. 지나가 버린, 자랑스러운, 숨을 거둔 시절이었다. 그의 눈길이 브롱코 헨리에게 처음으로 머물렀던 때도 그 시절의 어느 날이 아니던가?
- P89

목장 저택 앞의 언덕에 점점이 드러난 바위에서, 언덕 자락을 여드름처럼 흉하게 뒤덮은 세이지브러시 덤불에서, 그는 질주하는 개의 놀라운 형상을 보았다. 개의 날씬한 두 뒷다리는 튼튼한 양어깨를 앞쪽으로 떠밀었다. 더운 김을 뿜으며 아래로 수그린 주둥이는 북쪽 산의 골짜기와 능선과 산그늘로 도망 다니는 겁에 질린 어떤 것 - 어떤 생각 — 을 쫓고 있었다. 그 추적이 어떻게 끝날지 필은 머릿속으로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개는 먹잇감을붙잡을 운명이었다. 그는 눈을 들어 산을 보기만 해도 그 개의 숨결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거대한 개가 그토록 또렷이 보이는데도 그 형상을 알아본 이는 필 말고는 딱 한 사람뿐이었고,
조지는 결코 그 한 사람이 아니었다.
- P95


댓글(4)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2-02-16 00: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은 개의 모습을 한 풍경을 묘사한 것 같네요.
잘읽었습니다.
미미님, 오늘은 정월대보름날입니다.
보름달 사진을 찍어왔으니, 구경오세요.
올해도 건강하고 행복한 한해 되세요.^^

미미 2022-02-16 08:24   좋아요 1 | URL
네~♡ 지금 달려갑니다ㅎㅎ

2022-02-16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6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름다움"은 마음 저 깊은 곳, 성이 자존심과 어우러지는 곳에살며 계속 외부에서 부여되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든 거두어갈 수 있는 것으로 편리하게 정의된 까닭에, 여성에게 못생겼다고 말하면 정말못생긴 느낌이 들어 못생긴 것처럼 행동할 수 있고, 자신이 경험하는한에서는 자신이 정말로 못생겼을 수 있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면
상처받지 않았을 곳에서 말이다.
- P70

크래프트가 소송에서 진 날 섹스 산업 바깥에서 여성, 일, "아름다움"이 융합되어 한층 광범위한 질병의 순환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때 여성들은 그런 일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야‘ 하고 자신에게말했을지도 모른다.
- P71

미국 법은 어떤 여성도 "올바로 보여" 재판에서 이기지 못하도록 법적 미로를 만들어 권력구조의 이익이 보호되도록 발전했다. 세인트 크로스는 너무 "늙고", "못생겨서" 직장을 잃었고, 크래프트는 너무 "
고", "못생기고", "여성스럽지 않고, 옷을 올바로 입지 않아서 직장을잃었다. 그래서 어쩌면 여성은 자신이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예쁘게보이고 여성스럽게 입기만 하면 고용 분쟁이 벌어졌을 때 자신에게 공정할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 P72

아름다움이 성희롱을 유발한다고 법은 말하지만, 무엇이 성희롱을유발하는지를 결정할 때 법은 남성의 눈으로 본다. 
⭐⭐⭐ - P82

여성의 외모가 해고와 성희롱을 정당화하는 데 쓰이는 탓에, 여성이 옷으로 말하는 것이 지속적 의도적으로 잘못 읽히는 것이다. 

여성이 일할 때 입는 옷(머리와 유방, 다리, 엉덩이는 물론이고 하이힐과 스타킹, 화장, 보석까지)이 이미 포르노의 액세서리로 전용된 탓에, 판사가 어떤 여성이든 젊은 여성은 희롱해도 좋은 방종한 여성이라고 믿고, 나이 든 여성을 보면 해고해도 좋은 보기 흉한 노파라고 믿을 수 있는 것이다.
⭐⭐⭐ - P83

남성은 유니폼을 입고 여성은 유니폼을 입지 않은 결과, 여성이 직장에서 육체적매력으로 즐거움을 주는 일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처벌도 온전히 떠맡아 합법적으로 처벌받거나 승진할 수도 있고, 모욕을 당하거나 강간을당할 수도 있게 되었다.
- P83

직업에 필요한 아름다움이라는 자격 조건은 최근에 기회평등법으로 위협받게 된 착취의 근거를 다시 고용 관계 속에 슬그머니 밀어 넣는 작용을 한다.  - P87

 돈은 성보다 역사의 임무를 훨씬 효과적으로 수행한다. 여성의 자부심이 낮은 것이 어떤 남성 개인에게는 성적 가치가있을지 몰라도, 사회 전체에는 금전적 가치가 있다. 오늘날 여성의 신체적 자아상이 부정적인 것은 성별 경쟁의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시장의 요구에 따른 결과다.

⭐⭐⭐⭐ - P89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2-02-15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5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