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면, 남성도 당연히 그러하다. 과학도 그러하다." 정치와 정치 이론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날의 인문학 연구자라면 인간세계의 모든 게 구성된 것이라는 데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 P6

정치 이론은 서양사에서도 특히 남성의 관점이 강한 분야로,갖가지 양상으로 남성성이 깊게 스며들어 있다. 정치 이론의 고전에는 여성이 정치에서 어떻게 역사적으로 배제되고 종속적 지위로 떨어졌는지 기술되어 있으며, 남성적 공권력, 질서, 자유,정의에 대한 표현이 매우 풍부하게 담겨 있다.
- P7

많은 이들은 페미니즘 연구이면서 여성을 최우선 관심사로두지 않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에 대한 것이고, 페미니즘을 제외한 이 세상 모든 것이 인간, 즉 남성에 관한 것이라는 세계관에서는 내 연구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 P7

여성 문학이든 여성 권리든여성 문제에 한정된 페미니즘은 그 문제 밖에 있는 이들에게 도전이나 위협으로 보이지 않고, 따라서 쉽게 받아들여진다. 여성과 관련된 것으로만 구성된 페미니즘은 페미니스트가 아닌 남성도 별다른 고충이나 상처 없이 다양하게 지지, 협력, 감내 또는 주변화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이 모든 것이 전혀 남성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페미니즘이라면 교육과정에 끼워넣을 수 있고, 강연 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여 가며 들을 수 있고,
학술회의의 한 대목으로 엮을 수도 있으며, 전문가 조직의 자리를 하나 따내거나 구직 면접의 기회도 얻게 할 수 있고, 교육법수정안 9조의 통계치로 변환할 수도 있다. 

그런 페미니즘은 부족한 일자리를 두고 어쩌다 여성 우대 정책에 대한 갈등이 빚어질 때나 가족 모두가 피곤한데 누가 설거지를 하면 좋을지 옥신각신할 때 정도를 빼고는 남성과 무관해 보인다.
💫💫💫💫💫 - P8

 사회가남성적으로 구축한 다양한 담론 규율·제도  - P10

나는 정치학과 정치 이론이 남성에게 독점되고 있을 뿐 아니라, 시대를 가로지르며 연속적이면서도 다양하게 남자다움이라는 사회적으로 고안된 속성 및 자만과 동일시되고 있음을 감지했다. 정치적 삶에 여성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이런 것들이 변치않으리라는 점을 감지했다. 서구 정치학은 남성주의적이며 그형식·정신 · 내용에서, 범주에서, 특징에서, 가치를 판단하고 혐.
오의 대상을 정하는 데서, 그 호감과 반감에서 여성 혐오일 수있다는 점을 감지했다.  - P16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2-01-13 23: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요즘 미미님의 서재에도 여성학이나 사회학 책이 많이 보이네요.
이 분야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오늘 날씨가 많이 추웠습니다. 따뜻한 밤 되세요.^^

미미 2022-01-13 23:42   좋아요 4 | URL
네^^ 계속 공부하려고요. 오늘도 정말 추웠죠! 서니데이님도 따뜻하고 편안한 밤 되세요^^*
 

코풀이 선생님은 정신이 나간 채 학생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런 소란 속에서 인식은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꽉 끌어안는 것을 느꼈다. 놀라서 올려다보니 콧물을 한가득 매단 채 울고 있는 코풀이 선생님이 서 있었다.
- P150

인식 자신도 같은 대학 유학생 그룹에 참가해서 양부산을 중심으로 한 사람의 의대생으로서 산민 위생을 조사하거나 간이 치료를 하기 위해 나온 것이었다.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오면 한 줌의 흙, 한 다발의 풀조차 새롭게 느껴져 가슴 설레는 그였다. 그렇지만 타고나기를 소박한, 감수성 넘치는 젊은 인식에게는 조사라는 역할보다 오히려 쫓겨 가는 화전민과 함께 울겠다는, 어쩌면 다소 감상적인 생각이 너무 앞섰는지도 모른다.  - P157

어떤 면에서는이처럼 가장 황폐한 고향의 품에 돌아와, 뭔가 알 수 없는 자연의위용에 약한 마음을 질타당하고 채찍질당하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경성에서 동쪽으로 삼십 리, 합승버스로 준령과 협곡을 넘어 이 오지까지 오면서 그는 자신의 가슴이 얼마나 고동쳤는지를기억하고 있다. 불타버린 험산 하늘가에서 화전민들의 시커먼 오두막집을 바라보던 때는 자신의 가슴에서 붉은 피가 솟구쳐 그곳으로 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이 무슨 비참한 고향의 모습인가! 오히려 그것을 아는 것이 두려운 생각조차 들었다. 우리의 생활을 우선 알아야 한다고 외쳐온 그가 아니었던가.
- P157

그저 의욕을 잃고 극도의 가난에 허덕이는 화전민 사이로 들어가면 마음만이라도 가벼워질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정작 자신이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실은 자신도 그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때그제서야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이것이 감상적에고이즘인걸까, 인식은 눈시울을 적시며 생각했다.
- P158

"히히히." 하고 아이는 백치처럼 웃었다. 어둠 속에서 커다란 눈이 희번덕거렸다.
"엄마가 아버지를 때리고 있다니요."
"그래? 왜서 그런 거이?"
모두들 다가가 물었다.
"몰라, 히히히. 들어가 보면 알 거 아니우, 들어오우, 들어와."
- P159

돈이라도 냉겨 가지고 오면 어데 덧나는지.
맨날 날으 꼴딱 새고 기 들어오는 주제에 술이 당키나 하우! 머어, 잔체(잔치)라고? 당장 낼 떼꺼리 (끼니)도 없는 주제에 코댕가리가치 몬느므 잔체요! 내 하에 치매 우트 할꺼나고? 우트 할끄나니까? 비러머글 군청놈들, 즈 집 오슨(옷은) 애끼노미(아끼면서) 나므 치매(남의 치마)는 말이 되우야… 내거 부애가 치밀어 살수가엄싸요."
- P161

먼 산 쪽에 숨어 있던 달이 이윽고 얼굴을 내밀자 황금색으로 빛나는 달빛이 흐르는 물속에 잠겨 들어 수면을 건너는 산들바람에 몸을 떨었다.
- P162

산속으로, 산속으로 모여들 뿐인 화전민들은 곧잘 바람 없는대낮에 경작지를 얻기 위해 산에 불을 지른다. 하지만 돌연히 바람이 불어 산불이 계속되면 또 이렇게 관청에까지 알려지게 되는것이다. 이곳 산민들에게는 그런 산불이 무엇보다 아름다운, 저주받은 구경거리임에 틀림없었다.
"자알도 탄다니!"
"지대루 큰 불이라니! 저 정도믄 며칠 밤낮을 갈지 알 수 없우야."
저마다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 P169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그는 결국 아이처럼 양손에 얼굴을 묻은 채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 P172

화전민은 산에 불을 놓아 그 재를 비료로 삼아 산허리나 산 정상을 경작하고 감자나 콩,
귀리, 도토리 등을 먹으며 연명한다. 하지만 한 곳에 2, 3년 거주하면 땅이 황폐해지기 때문에 다시 그 오두막을 버리고 보다 깊은 산 속 처녀지를 향해 불을 붙이면서 들어간다. 방화는 쫓겨 들어가는 그들이 이 세상에 퍼붓는 일종의 저주일까? - P175

이곳에는 수고하고 씨뿌리려 하나 땅이 없고, 거두려 하나 거둘 것이 없고, 먹으려 하나먹을 것이 없는, 공중을 나는 새보다도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마태복음 6장 30절 구절 중 일부)‘보다도 못한 백성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생명은 무도한 자들의 손에 맡겨져 있고그 생활조차 끊임없이 위협 당한다.
- P182

마당 끝 한구석 촉촉하게 젖은 덤불 속에 흰 백합이 몇 송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슬 맺힌 꽃잎은 달빛에 흔들리며 바람이 부는 대로 반짝반짝 빛난다.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흰 백합들은 서로가 어떤 슬픔을 이야기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
- P183

쇼와 12년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난 해 - 옮긴이) 이후 4년간 약 109회에 걸쳐조선 전 지역에서 행해졌다는 이 무시무시한 살인이 어째서 지금까지 당국의 손에 발본색원되지 못했을까를 생각하며, 그는 암울해졌다. 하지만 읽어내려가는 동안 벼락을 맞은 것처럼 놀랐던까닭은 무엇보다 이 마교의 살인현장 중 하나로 거론된 곳이 일찍이 그가 방문했던 그 폐사 부근 산골짜기라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 기록을 덮고 눈을 감으니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옛 생각이 있었다.
- P186

<노마만리>는 김사량이 타이항산 지구의 항일근거지로 떠나는 과정을 담은 탈출기로, 해방직후에 평양에서 발표되었다. 이 책에서는 그 도입부를 소개한다. 1955년 국립출판사에서 발간된 『김사량 선집 을 저본으로 하며 『金史良全集W(河出書房, 1973)을 참고하였다. 기존의 『노마만리』는 대부분 저본을 그대로 살렸다면, 이 책에 실린 『노마만리』는 현재의 한국어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옮긴 글임을 밝혀둔다. 단 이해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원문을 그대로 살려두었다.
- P190

샹하이라는 도시가 도시요 또 백귀암행(百鬼暗行)의 시절이니만치 그 청년이 일경의 끄나풀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지 않는 바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딴에는 나대로의 조그만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조선의 독립이 조선을 떠나서 있을 수 없으며, 조선민족의 해방이 그 국토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니 만큼 왕성한해외의 혁명역량에 호응할 역량이 국내에도 이룩되어야 한다는것이었다. 

그러자면 국내에서 배겨나지 못하게 되어 망명하는 이는 별개 문제로 하고 나와 같이 국내에 발을 디디고 살 수 있는사람이 일부러 망명한다는 것은 하나의 도피요 안일을 찾는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더구나 제 1선에서 총을 들고 싸우는 곳이면또 모르려니와 몇천 리 산 넘고 물 건너 대후방에 위치한 충칭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보다 더 비겁한 도피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 P200

하루는 중학 시절에 스트라이크를 팔아먹던 동창생 (김사량은 평양고보 재학 중에 항일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재적되었다 - 옮긴이)이 서울로부터 독립운동을 하자고 내려왔다. 알고보니 경무국의 끄나풀이었다. 또 한번은 명색모를 사내가 공산주의인가를 하자고 했고 이자는 헌병대의 앞잡이였다. 이런 형편이니 시시각각으로 조여드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게 되었다. 출국의 결심이여기서 다시 생기게 된 것이다.
- P202

사실 1945년이란 시기의 조선은 참으로 형형색색의 인간을 창조하고 있었다. 아마도 모르기는 모르되 이 베이징 천지에도 얼핏 보기에는 범놀음을 하는 범가죽을 쓴 개들이 많을 것이다.
🐯🐯🐯 - P2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랑스어로 말한 건 30년도 더 되었고 글을 쓴 건 20년도 더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 언어를 모른다. 나는 프랑스어로 말할때 계속 실수를 하고, 사전들의 도움이 있어야 프랑스어로 쓸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어 또한 적의 언어라고 부른다. 내가그렇게 부르는 이유가 또 있다. 실은 이것이 가장 심각한 이유다.
그건 이 언어가 나의 모국어를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ㅡ아고타 크리스토프 - P8

한 놈은 어깨에 타고,
한 놈은 팔에 매달리고, 또 한 놈은 내 코앞에서 춤을 추며 뛰어오른다. 몇 놈은 내 양복과 손을 잡아당기고, 뒤에서 소리를 지르고 나를 밀며 내 방까지 쳐들어온다. 그래서 문을 열려고 하면이미 아까부터 들어와서 기다리며 엎드려 있던 아이들이 필사적으로 문을 못 열게 하는 것이다. 이쪽 아이들도 질세라 개미처럼매달려 문을 열려고 한다. 이럴 때 야마다 하루오는 반드시 곁에서 방해를 한다.

(귀여워ㅋㅋㅋㅋㅋ) - P18

그 애는 그 일이 있은 후로 나를 극도로 경원시하는 것 같았고,
좀처럼 다가오지도 않으면서 내 주위를 한층 더 서성거렸다. 혹시 내가 실수라도 하면 한쪽 구석에서 심술궂게 기뻐할 준비를하고 있다는 듯이.
- P23

하늘은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등나무 시렁의 이파리가 사납게 흔들렸다.
- P35

그 애는 금방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따뜻해 보이는이불 속에 발을 넣고 목을 움츠려 보였다. 나에겐 그 모습이 더없이 애처롭게 보였다. 그 애의 눈은 빛나고 입가에는 살짝 웃음이번졌다. 완전히 나에게 마음을 연 것이다.  - P37

그 애가 조선인을 볼 때마다 거의 충동에 가까운 커다란 목소리로 조센징이라고 외칠 수밖에 없는 기분을 나는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나를본 최초의 순간부터 조선인이 아닐까 의심하면서도 계속해서 내주변을 맴돌지 않았는가? 그것은 분명 나에 대한 애정일 것이다.
‘어머니 것‘에 대한 무의식적인 그리움일 것이다. 그 애는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나에게 왜곡되게 표현한 것이다.  - P38

점차 바람도 잦아든 것 같았다. 부슬비가 때때로 생각났다는듯 처마를 두들기고 있었다. 
(부슬비의 의인화라니 어쩐지 정답다ㅋ) - P39

‘위선자 녀석, 너는 또 위선을 떨려고 하는구나."
내 곁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너도 지금은 근성이 바닥나서 비굴해졌잖아."
- P41

자신이 완전히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이처럼 비뚤어지지도 않고, 젊은이처럼 광적으로 XX(검열 중에 복자 처리된 부분 - 옮긴이)하지도 않는다고, 하지만 역시 나는 안이하게 비굴을 짊어진 채엎드려 있었던 것일까? 따라서 지금은 스스로를 다그치는 쪽을택했다. 저 무구한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거리를 두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을 꼭꼭 숨기려고 오뎅 바에 온조선인과 너는 무엇이 다르다고 할 것인가!
- P42

그래서 나는 이 땅에서 내가 조선인이라는 것을 의식할 때마다 무장해야 했다. 그렇다, 분명히 나는 혼자만의 진흙탕 같은 연극에 지쳤던 것이다.
- P42

사실 나는 그 한베에와 두 달넘게 같은 유치장에서 지냈다. 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 같다. 그것은 내가 하루오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이 이질적인 하루오란 아이가 종국에는 아버지 같은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운 예감이 뇌리를 스쳤고, 나는 섬뜩하여 몸이 떨렸다.
- P43

그는 비겁한 폭군이었다. 모두 그를 두려워했지만, 뒤에서는 다들 미워했다. 그는 필요 이상으로 간수의 눈을 두려워하는 대신신입 수감자나 약한 자에게는 매우 난폭했다. 그 중에서 사납게소리치는 것은 그가 가장 잘하는 일에 속하는 것 같았다.
"이 몸은 말이야, 이래 봬도 에도(도료의 옛 이름 옮긴이) 구석구석을 누비던 사람이라고, 까불지 마! 네 놈 같은 좀도둑이랑은 급이 다르니까…."
- P45

한 젊은 남자가 갑자기 그를 향해 재떨이를 던지는 바람에 그는 머리를 맞고 쓰러졌지만, 천장을 보고 누운 채로 반항하듯 낄낄거리며 웃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명식이라는 젊은이는 임석한 경찰관에게 즉시 상해죄로 연행되었다.

(이미지가 그려져 웃기다ㅋㅋ)
- P76

경박한 여류시인 문소옥은 현룡을 더할 수 없이 존경하고 있었다. 그가 위대한 시의 언어인 라틴어와 프랑스어를 알고 있을 뿐아니라, 그녀가 좋아하는 랭보나 보들레르와 국적만 다를 뿐이라고 굳게 믿었다. 현룡 스스로도 그렇게 큰소리치고 있었다.  - P85

현룡을 보는 그의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현룡은 순간 움츠러들었다. 사실 그는 허울 좋은 애국주의의 미명 아래 숨어 조선어로 쓰는 것은 어리석고, 언어 그 자체의 존재조차정치적인 무언의 반역이라고 헐뜯는 자 중 한 사람인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이런 순수한 문화적 저술 활동도 조선이라는 특수한사정 때문에 그 본래의 예술정신조차 자칫 정치적인 색채를 띤다고 하여 당국의 오해를 부르기 쉬울 수 있다. 특히 만주사변 이후그 위험은 한층 커졌다. 현룡은 그 틈을 이용하여 애국주의(일본에대한 애국주의 - 옮긴이)를 내세우며 이를 사람들에게 강요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불안과 초조, 고민의심연에 빠졌었던가! 실제로 이 모임은 현룡 일파의 주장에 대한비판모임이었다. 현룡은 그때 몸을 돌리며 업신여기듯이 말했다.
"조선어라!"
- P90

만사가 이런 식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점점 그를 광인으로 여기며 상대하지 않게 되었다. 그럴수록 그는 뜻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것이라 기뻐했고 자신이 진정한 천재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소질이차츰 노출됨에 따라 결국엔 천박한 저널리즘조차 그의 문장을받아주지 않게 되었고 문화인들은 단결하여 그를 문화권 밖으로쫓아내려고 했다. 이렇게 운신의 폭이 좁아졌을 때부터 그는 술을 마셔도 유도 이야기를 일절 입에 올리지 않게 되었고, 언제부터인가 너야말로 감옥에 처넣어야 한다고 아무에게나 엄포를 놓게 되었던 것이다. 동시에 그는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정평이 났다. 이런 사람에게조차 시국적인 말로 협박을 당하면 벌벌 떨 수밖에 없다니, 그것은 조선의 문화인들에게 얼마나슬픈 일인가!  - P97

"자, 나으리, 사세요. 저는 이걸 팔아서 술을 마시고 뒈지렵니다.
아, 왜 다들 웃는 거죠? 꽃 사세요. 웃지 말고 사세요. - P104

몇몇 문인들과 함께 자리를 만들었는데, 오가타가 30분도 채 지나지않아 현룡에게서 조선인 전부를 보았다고 한 것은 역시 날카로운 예술가의 혜안이라고 찬탄했다.  - P118

햄릿도 아닌데, 날더러 절에 가라는 터무니없는 말을 하니 우습지. 그게 말이야, 비구니들의 절이라면 몰라도 대머리 중들이 있는 데라고. 이보게, 내가 오필리아야? - P12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2-01-09 0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기 시작하셨군요. 기대가 됩니다~!!

미미 2022-01-09 00:27   좋아요 1 | URL
재밌어요!! 믿고읽는 녹색광선과 새파랑님 ^^*
 

Suddenly Bruno felt very unhappy. He could never tell his mother. ("Hey, Ma, I murdered this man‘s wife and then he killedFather. It was my idea, too. Aren‘t I clever? We‘re both free now!)No, he could never tell anyone, except Guy.
- P12

There was one way to getbetter.
‘I need a drink,‘ he said.
- P12

I phoned your mother for your address, but she didn‘t give it to me. Look,
Guy, don‘t worry. I‘m going to be very careful. Write to me soon.
ㅡYour friend, Charley Bruno

Then Guy knew. Bruno did it, Bruno did it; he could not stopthinking those words, Bruno did it.  - P19

He felt so powerful - he tookaway life, like God! He wanted to tell everyone about the murder,
about his one great act. Most people, ordinary, common people,
never had one great thing in their lives.
- P20

Guy looked into Bruno‘s eyes. They were the eyes of a mad child. Guy felt helpless, he could do nothing.
- P23

The blue light burned his eyes.
- P30

It was covered inscratches, and so were his hands. His body was heavy and tired. Hethought he could never sleep enough in his life.
- P31

And Guy knew that he hated Bruno, but liked him at the sametime.
- P41

He was the loneliest man in the world. Where was his friend, hisbrother?
- P5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2-01-09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이가 Guy 였군요 ㅋ 글이 쉽게 쓰여있는거 같아요~ 영어 짧은 저도 읽힙니다 ^^

미미 2022-01-09 00:29   좋아요 1 | URL
네 이름도 참 쉽죠ㅋㅋ이거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보세요. 재밌고 결말이 나름 반전이예요^^
 

여기에서 독자는 다만 인간 정신이 앓고 있는 병에 대한 순수한 상태 그대로의 묘사만을 보게 될것이다. 지금 당장은 여기에 그 어떤 형이상학도, 그 어떤 믿음도 개입되어 있지 않다. 이것이 이 책의 한계이며 유일한선택이다.
- P14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그 밖의, 세계가 3차원으로 되어 있는가, 이성(理性)의 범주가 아홉 가지인가 열두 가지인가 하는 문제는 그다음 일이다. 그런 것은 장난이다. 우선 대답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니체가 주장했듯이,
철학자가 존경받으려면 마땅히 자신의 주장을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 대답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대답에 결정적인행동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마음으로 느낄수 있는 자명한 사실이지만 머릿속에서 분명해지도록 하려면그것들을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다
- P15

지구와 태양 중 어느것이 다른 것의 주위를 회전하느냐 하는 것은 정말이지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요컨대 그건 하찮은 문제인 것이다. 

반면에 나는 많은 사람이 인생이 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나머지죽는 것을 본다. 그런가 하면 역설적이게도 자신에게 살아갈이유를 부여해 주는 이념 혹은 환상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이른바 살아갈 이유라는 것은 동시에 목숨을 버릴 훌륭한 이유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판단하건대 삶의 의미야말로 질문들 중에서도 가장 절박한 질문인 것이다.  - P16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는동시에 분명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오직 자명함과 감정의 고양 사이의 균형뿐이다.  - P17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는 것, 그것은 정신적 침식으로 골병이 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시작 단계에 있어서 사회는 별 관련이 없다. 벌레는 이미 사람의 마음속에 박혀있다. 바로 거기서 벌레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삶을 직시하는명철한 의식에서 빛의 세계 밖으로의 도피로 인도하는 이 치명적 유희, 바로 이 유희를 추적하고 이해해야 한다.
- P18

자살에는 수많은 동기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볼 때 가장 표면적인 이유들이 가장 유력한 이유들은 아니었다. 깊이 반성한 끝에 자살하는 일은 (그렇다고 이 가설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드물다. 거의 언제나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그 무엇이 위기의 발단이 된다. 신문에서는 흔히 ‘실연‘이니
‘불치의 병‘이니 운운한다. 이와 같은 설명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날, 절망에 빠진 사람의 친구 하나가 그에게 무관심한 어조로 대꾸한 적은 없었는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바로 그자가 죄인이다. 그것 한 가지만으로도 그때까지유예 상태에 있던 모든 원한과 모든 권태가 한꺼번에 밀어닥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 P18

자살은 어떤 의미에서 그리고 멜로드라마에서처럼 하나의 고백이다. 그것은 삶을 감당할 길이 없음을 혹은 삶을 이해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 P19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잠마저 이루지 못하게 하는 이 측량할 길 없는 감정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설사 시원찮은 이유를 대고서라도 설명할 수 있다면 그 세계는 낯익은 세계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돌연 환상과 빛을 박탈당한 세계에서 인간은 자신을 이방인으로 느낀다. 이 낯선 세계로의 유배에는 구원이 없다. 그에게는 잃어버린 고향의 추억도 약속된 땅의 희망도 다 빼앗기고 없기 때문이다. 인간과그의 삶, 배우와 무대 장치의 절연(絶緣), 이것이 다름 아닌 부조리의 감정이다.  - P19

명확한 말로 제시할 경우 이 문제는 단순하면서도 풀 수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문제가 단순하면 그답도 그에 못지않게 단순하며, 자명한 것은 자명함을 전제한다고 잘못 생각한다. 선험적으로, 그리고 문제의 항을 뒤바꿔서 생각해 보면 사람에겐 자살을 하든가 하지 않든가 두 가지길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듯이, 철학적 해결에도 긍정과 부정두 가지밖에 없는 것 같다. 

실제로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여전히 의문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꼬는 말이 아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동시에 부정적인 대답을 하는 사람들이 마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듯 행동하는 것 또한 볼 수 있다. 니체의 기준을 따른다면 실상 그들은 이런 식으로건 저런 식으로건 긍정적으로생각하는 것이다. 반대로 자살하는 사람들도 삶의 의미를 굳게 믿는 경우가 자주 있다. 언제나 이와 같은 모순은 흔히 볼 수 있다. - P21

모든 것을 걷어 버리고 문제의 진정한 핵심으로 곧바로 나아가야 한다.  - P23

논리적으로 되기는 언제나 쉽다. 그러나 끝까지 논리적으로 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 P23

카를 야스퍼스는 세계를 하나의 통일된 것으로 구성하는것이 불가능함을 밝히면서 이렇게 외친다. "이러한 제한으로인하여 나는 나 자신에게로 인도된다. 즉 나 자신이 기껏해야대표하는 것이 고작인 하나의 객관적 관점 뒤로 더 이상 물러나 있을 수 없는 곳, 나 자신도 그 어떤 타자의 존재도 내게는더 이상 대상이 될 수 없는 곳으로 인도되는 것이다. 

이때 여러 사람에 뒤이어 그가 가리켜 보이는 것은 사유가 극한에 도달하는, 물 한 모금 없이 황량한 장소들이다. 그렇다. 그에 앞서 수많은 사람이 그곳을 가리켜 보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그들 역시 얼마나 성급하게 그곳을 빠져나오고자 했던가! 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사유가 비틀대는 그 마지막 전환점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들은 그곳에 이르렀을 때 자신이 지닌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 즉 자신의목숨을 포기했다. 한편 또 다른 사람들, 정신의 왕자(王者)들역시 포기를 택했다. 그러나 그들이 실행한 것은 가장 순수한반항의 형태인 사유의 자살이었다.

(사유의 자살이라니!!!)

🐷🐷🐷🐷🐷 - P24

집요함과 통찰이야말로 부조리와 희망과 죽음이 서로 응수하며 벌이는 비인간적 유희를 구경하는 특권적 관객들이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정신은 기본적인 동시에미묘한 그 춤의 갖가지 모습들을 예증하고 또 그것들을 스스로 체험적으로 살아 내기에 앞서 그것들을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 P2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2-01-04 1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담으려고 했더니 이미 담겨있네요 🤦‍♂️

미미 2022-01-04 14:13   좋아요 1 | URL
ㅋㅋㅋ🤦‍♀️ 새파랑님 이 책 좋아하실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