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보부 시절 양희은의 노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금지곡이었다. '사랑이 안 이루어진다는 부정적 사고방식'이라는 이유였다. 이해하지 않으려고 작정한 경우다. 지금은 개인이 스스로 이해를 거부한다. (...)낮은 문해력은 유용한 통치 기반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지금 한국 사회의 문해력은 일제 강점기, 미군정, 한국 전쟁 때보다 후퇴했다. P.95 정희진,새로운 언어를 위해 쓴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다양한 지식에의 접근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이러한 간편함 때분에 현대인들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닌 '소비'하는것에 가까워졌다. 이런 요즘 문해력 논란이 잊을만하면 불거진다. 


심심한 사과·질척거리다 이런 뜻이었어…문해력 논란 | 한경닷컴 (hankyung.com)


빠르고 손쉬운 것에 쏠리는 소비문화,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읽기는 몰이해로 가는 지름길이다. 입시위주의 교육도 여기에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독서가 좋은 거라고 모두들 말은 하지만 정작 학생들은 내신을 챙기고 입시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책 읽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책 읽는 시간은 일종의 사치로 변모한다. 독서에 대한 이상은 높아서 서울대 선정 고전 100, 노벨상 수상작품 등의 읽어야할 리스트는 넘쳐나지만 정작 이런 책들을 읽고 토론할 만한 시간여유가 그들에게는 없다. 이러한 교육의 모순은 대학을 가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취업을 위해 스펙 쌓기에 바빠서 당장 쓸모있는 정보,성적쌓기에 골몰하게 된다. 이 시스템 내에서 뉴스에 등장하는 한자어등 의미어들을 잘못 해석하는 것 즉 문해력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입시,능률적으로 소비되어 버린 '공부'에서 고차원적인 앎으로 가는 중간단계가 부재한 것도 문제다. 중간단계가 없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철학등 깊이 있는 학문은 소수의 전유물이 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따금 이해하지 않으려는 마음,잘 알지 못하지만 단정지어 깎아내리려고하는 마음에 모르고 헷갈리는 것,새로운 것, 난해한 것을 쉽게 비난하게된다.



  



포르노랜드에서 저자가 강연을 다니면 남성들이 질문공세를 펼치곤했다고 한다. 그들의 질문은 본질적이기보다 기존 인식,기존질서ㅡ가부장제, 보수주의,자본주의, 남성주의ㅡ에 영합하는 방식이였고 공격적 형태를 취했다.이런 기존질서에 매몰된 사람들은 '다른 의견'에 유독 고압적이고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어떤 체제에 더 쉽게 순응하도록 하려면 그 체계의 본질이 억압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순응하는 것에 심리적, 사회적, 물질적 이득이 따르도록 하면 된다. P.236 게일 다인스. 포르노랜드


  




노예제가 존재하던 시대에 농장을 소유한 가족들은 노예에 대한 소유권을 자연적인 것으로 보았다. 또한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것이 '자연의 섭리'로 여겨진 적이 있었듯이, 많은 이들에게 우리 시대의 너무나 커다란 부정의는 정상적인 경관의 일부일 뿐이다. P.103 지그문트 바우만.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소비주의 문화는 사람 사는 세상 전체를 구석구석까지 오로지 잠재적 소비 대상들로만 가득 찬 거대한 컨테이너로 가정함으로써 소비자 시장에서 정해진 기준에 따라 각각의 세속적 실체에 대한 인식과 평가를 정당화하고 촉진한다. 그러한 기준들은 고객과 상품, 소비자와 소비재 사이에 극심한 비대칭적 관계를 확립한다. 고객과 소비자가 상품과 소비재에서 기대하는 것은 자신의 필요와 욕구와 소망의 충족일 뿐이고, 상품과 소비재의 의미와 가치는 오로지 고객과 소비자의 기대를 얼마나 충족시키느냐에 따라서만 주어진다.P.117 지그문트 바우만.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곤조 포르노에서 여성들은 주체가 아니다. 그들은 의지가 박탈된 도구이자 주요 상품이기 때문에 여러 조롱섞인 언어로 불리우고 그렇게 현실의 여성들과 분리되며 자연스럽게 이용자들은 죄책감을 덜어낸다. 포르노. 나아가서 곤조포르노에 긍정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이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자유는 무엇인가? 당신은 포르노 속 여성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당신의 가족, 자녀에게 그 역할을 권할 수 있는가? 아니면 이 질문이 당신이 포르노를 즐기는 것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가? 누군가의 자유가 돈을 대가로 다른 누군가의 자존감, 인격, 존엄을 욕되게 하고 능욕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자유라고 부를 수 있는가?




소비 지상주의 소비 만능주의와 섹스


요즘은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유독 '소비자는 왕'이라는 소비 만능주의가 팽배하다. 돈을 내는 소비자가 왕이고 재화,서비스를 파는 판매자는 을이라는 생각이다. 이것은 많은 사회문제를 야기했다. 서비스에 대한 불만으로 직원에게 폭력을 행사한 소비자, 서비스 센터에서 난동을 부리는 소비자, 뺨을 때리거나 커피를 던지거나 직원을 무릎꿇게 하는 소비자등 다양한 사례들이 뉴스를 통해 전해진다. 이것은 성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성매매된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녀에게 가해진 성폭력이 가볍게 여겨지고 아무렇지 않게 불신된다. 성폭력을 고발한 여성에 대해 돈을 노리는 꽃뱀이라던지 뚜렷한 근거없이 무고라던지 여러가지 비난과 의혹이 화살처럼 피해자를 향하는것은 돈이라면 뭐든 가능하다는 소비 지상주의와 맥락을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의 전제하에 N번방과 같은 성폭력의 상품화가 현실화되었다. 점점 자극적이고 폭력적으로 강화되는 포르노 소비를 '표현의 자유' ,'소비의 자유'라는 '소비 만능주의'와 '이기적 자유주의'로 포장하려 한다면 그런 암묵적 동의속에 어떤 이들의 성은 단순한 오락거리로 계속 농락되고 합법적으로 강간될 것이다. 이 자유는 유독 누군가의 고통과 속박없이는 기능하지 않는다. 참으로 이상한 자유다. 



영국 정부는 1918년에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그 이전에 여성에게 투표권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투표권을 쟁취하기 위해 많은 여성들은 투쟁하고 감옥에 가고 비난을 받았다. 융합은 문제의식을 갖는것에서 시작한다. 누구에게 당연한 것이 누구에게 불편하고 모욕적라서 문제제기 된다면 사회는 그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누구에게 너무도 당연한 것, 자유이고 자연스러운 것이 누구에게는 자유가 아닐 수도, 자연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런 문제제기를 통해 의심해볼 수 있다.  


  


외설은 "맥락에서 벗어난"이란 뜻이다. 앞서 말한 표기와 달리 '外說'이라는 조어도 가능하다. 음란과는 의미가 다르지만, 성적 표현물에 이야기(맥락)는 없고 '익숙한 장면'만 반복될 때 외설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성적 표현물은 남성 성기 중심이라는 점에서 '폭력물'이기도 하다. 이처럼 음란과 외설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한편 여성주의가 반대하는 것은 폭력 재현물이지 음란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음란,외설,폭력은 모두 다른 말이다. P.206 정희진



당파성은 지식의 본질적 성격으로, 누가 이익을 보고 손해를 보는가를 결정한다. 아니라면 굳이 융합은 필요없을 것이다. 융합은 부정의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탄생했다. (...) 누구의 관점에서 접근할 것인가에 따라 프레임의 범위가 정해진다. 틀에 따라 현실이 취사 선택되고, 무엇이 공동체의 정의를 위한 진짜 중요한 문제인지가 결정된다.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는 인식자의 가치관에 달려 있다. 융합은 프레임 이동의 정치다. P.233 정희진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이기적인 본능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사물을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노력하는 것이다.ㅡ존 맥스웰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리의화가 2022-10-28 17: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입시 교육 동감합니다. 고전 선정 리스트 이런거 뽑아놓고 정작 수업에 방해된다고 독서는 후순위?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물론 수업이 중요하긴 하겠지만 그런 교과서 위주의 교육만으로 아이들의 사고력이나 상상력, 공감 능력 등이 키워질까 싶습니다^^; 요즘은 예전보다는 덜할까 싶지만 아이들이 여전히 수능, 수능이 아니더라도 내신 성적 키우기 때문에 압박을 많이 받으니까요.
소비 지상주의와 성폭력이 이어지는 지점이 분명 있네요.

청아 2022-10-28 17:39   좋아요 4 | URL
프루스트 읽다가 갑자기 이 글을 쓰게 되었어요ㅎㅎㅎ(뭔가 마음시리즈를 연속기획하는 느낌^^;;)
자본주의 문제에 주목하는 요즘인데 접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공부도 말씀처럼 사고력,공감능력 키우기가
아닌 입시,내신을 위한 소비가 되어버리고 그러니 문해력 논란이 결과물로 나온거라구요.
성도 마찬가지로 여성을 소비하는 행태. 여기에 이의제기를 하는건 쉽게 공격받고 순응하는게 당연시되는게
이상하죠. 이 소비만능주의에서 권력관계. 소모되는 사람, 소비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이제는 고민해야한다고 봅니다. 두서없이 쓴 글 읽어봐주셔서 감사해요 화가님^^*

scott 2022-10-28 17: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발 초등교육 과정부터 디지털 에티켓 성교육 을 시켜야 하는데
음란물 단속은 방치하고
처벌은 솜방망이 로

청아 2022-10-28 17:47   좋아요 3 | URL
맞아요! 성교육이 시대에 한참 뒤쳐져 있죠. 더이상 외면하지 말고
제대로 가르치고 공론화해야 하는데... 쉬쉬하고 덮기에만 급급하니
그틈에 노련한 포르노 사업자들만 배를 불리고 있고 디지털 성폭력의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네요.

독서괭 2022-10-28 18: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문해력 논란 나올 때마다 저는 모르는 건 그렇다쳐도 자기가 모를 수 있다는 의식 자체가 없는 것 같아 너무 황당하더라고요. 한번 검색이나 해보지 무식하면 용감한 건지 욕부터 허고보는 이 자신감은 무엇인지.. ;;
소비지상주의에 대한 말씀 공감백배입니다~!

2022-10-28 1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청아 2022-10-28 18:36   좋아요 4 | URL
그러게 말이죠. 그런 ‘이해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요즘의 문해력 문제에도 깔려 있다는걸
정희진쌤도 책에 썼었는데 이번에 이동진 작가 영상에서도 언급되어 생각해봤어요.
공부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자기 위주의 사고방식. 안타깝지요. 결국 그런 사고방식은
자기손해로 이어지지 않을까요?

2022-10-28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햇살과함께 2022-10-29 12: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공부하시는 미미님! 이해하려는 마음이 넘치시는 미미님! 책을 읽을수록 모르는게 많다는 겸손한 마음이 들어서 좋아요.

청아 2022-10-29 12:27   좋아요 4 | URL
저도 늘 부족하지만 이해를 안하려는 태도를 보면 답답해지네요. 그런데 그런 답답함이 또 이렇게 글을 쓰게 만드는군요. 감사한 일이고 신기한 일입니다.ㅎㅎ 맞습니다. 결국 좁은 자기 세계를 넓힐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한 경험과 독서란 생각이 드네요.

새파랑 2022-10-29 16: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해하지 않으려고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백번 말해봤자 소용없는것 같더라구요 ㅋ 저도 약간 그런 성향이 있긴 한거 같지만 😅

청아 2022-10-29 16:47   좋아요 4 | URL
대부분 그런게 있죠. 저도 새파랑님처럼 그런 성향이 없진 않아요.ㅎㅎ 그런데 자신의 그런 상태를 알고 모르고의 차이의 결과는 확실히 다른것 같아요. 타인과 가치관의 차이를 교류할때 특히요😉

mini74 2022-10-30 10: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말씀처럼 여성이란 존재가 사물화가 되고 거기다 소비자가 왕이란 인식이 폭력과 왜곡괸 시선 만드는 거 같아요. 좋은 글 잘 읽었어요 미미님 ~

청아 2022-10-30 11:30   좋아요 3 | URL
소비주의,물질만능주의가 인간성을 상실케하는 면이 생각보다 심각한것 같아요. 부족한 글 읽어봐 주셔서 감사해요 미니님

희선 2022-11-06 02: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하지만, 학생은 책 읽을 시간이 별로 없겠습니다 학교에서 읽으라고 하면 어쩐지 읽기 싫기도 하고...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 하는 시간 같은 게 있으면 좋을 텐데 싶기도 합니다 그런 거 하면 공부는 언제 하느냐고 할 사람 많을지...


희선

베터라이프 2022-11-07 20: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독서 자체가 흥미와 호기심도 중요하지만 엄청난 끈기와 집중력이 필요하게 마련이죠. 이건 또 이거대로 어떤 책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의 유무와는 달리 독서의 저변이 좁아지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또한 적은 수 이긴 하지만 책 읽는 사람들, 독서 자체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걸 반지성주의라고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지식과 책을 너무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도 상당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미미님 서재에 와서 너무 제말만 늘어놨네요 ^^; 잘 지내고 계시죠? 잠시 북플 친구분들 순회 나서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