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대학 축제때 신입 남학생들에게 여성처럼 입고 화장하게 하는 문화가 있었다. 그 중에서 누가 제일 그럴듯해보이는지(여성스러워 보이는지) 순위를 매기기도 한다. 남학생들에게 긴 생머리 가발을 씌우거나 풍성한 파마 가발을 씌운 후 때로 미니스커트와 힐, 촌스러운 화장을 강조하며 웃음을 끌어내는 건 이 책을 읽고 생각해보니 남학생들을 희화화하는 것이 아닌 사실상 여성을 희화화한 것이었다. 여학생들이 남성분장을 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것은(코미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그것이 반대의 경우만큼 우스꽝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한쪽만 우스꽝스럽지 않은 이유는 '남성'은 주체, 정상, 상징계 질서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반면 '여성'은 비체이기 때문에 조롱꺼리가 될 수 있는거다.
가부장제상징 관습 안에서의 여성괴물 재현은 정신분석에 기반을 둔 성차에 대한 이론들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 P282
다락방님과 함께하는 '3월의 여성주의 책 함께읽기'는 바바라 크리드의 '여성괴물'이란 책이다. 솔직히 나에게는 좀 난해했다. 저자인 바바라 크리드의 학문적 관심사는 이 책이 난해한 이유를 뒷받침한다.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대중문화를 분석하는 작업에 집중해 온 그녀의 관심사는 공포영화와 정신분석학이다. '프로이트와 크리스테바의 영향 아래 현대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을 둘러싸고 구성하는 공포의 본질을 분석, 해체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이력에서 '뤼스 이리가레'가 바로 떠올랐는데 실제로 중 후반부터 이리가레가 한번씩 인용되기도 한다. 가장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위주로 정리해보고 넘어가려한다.
이 책은 '에일리언','엑소시스트','캐리','죠스','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사이코'와 같은 공포영화들의 클리셰를 통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관점이 공포영화라는 장르에서 어떻게 적용되어 있는지를 분석한다. 특히 '거세당한 자'로써의 프로이트의 여성에 대한 관점이 공포영화에서는 '거세하는 자'로도 그려질 수 있음을 설명한다.
의미심장하게도 공포영화는 거세와 관련해서 남성과 여성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구성하지 않는다. 둘 다 (남성은문자 그대로, 여성은 상징적으로) 거세된 것으로, 그리고 거세자로 재현된다. p.283
이것에 관해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예시는 히치콕 감독의 영화 '사이코'에서 주인공 노만과 그의 어머니와의 관계를 들 수 있다.
베이츠 부인은 다양한 방식으로 아들을 거세했다. 아들을 몰아쳤고, 잔인한 눈으로 그를 감시했고, 다른 누구와도 성관계를 가질 수 없도록 했으며, 그가 성인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의거세하는 역할은 상징적으로 맹금과 칼에 의해서 표현된다. - P279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녀 자신은 다른 남자와 자유롭게 관계를 갖는다. 베이츠 부인이 죽자 노만은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한다. 프로이트는 여성이 '거세되었기' 때문에 공포스럽다고 하며 거세의 수행자를 대변하는 것은 오직 아버지라고 주장했다. '꼬마 한스'를 비롯한 그의 임상적 자료들에서도 드러난 '거세하는 여성'에 대한 유년기의 공포에 대해 무시하고 '거세된 여성'의 이미지만을 강조했다. 그러나 영화'사이코'나 '미저리'에서 볼 수 있듯이 공포영화에서는 '여성괴물'이 '거세하는 자'가 되기도 한다. 물론 히치콕의 이 영화를 상징하는 장면은 베이츠 부인의 복장을 한 노만에게 공격당하는 여성의 모습이다.
샤워 장면 살인과 관련하여 어머니가 가장 시각적으로 응징하는 것은 바로 여성이며 자신의 영화적 대응자가 잔인하게 공격당하는것을 보면서 더 직접적으로 억압받는 것은 여성 관객들의 시선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은 중요하다. 타니아 모들스키는 칭송 받는 이 장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생래적인 성차별주의가 거의 논의된 적이 없다는사실을 지적한다. 비평가들은 종종 '사이코'가 관객들의 부정한 관음증적 욕망에 대해 관객들을 벌하고 있는 영화라고 지적하지만, 그들은 영화 안에서 남성 시선의 대상이 되는 여성뿐 아니라 (마리온과 늪지에서 발견된 여자들이라는) 여성들이 거의 모든 응징의 대상이라는 것은, 무시한다(모들스키, 1988, 14). (중략) 사립탐정인 아보가스트 역시 베이츠 부인에 의해서 칼에 찔려 살해당하지만, (9장에서) 슬래셔 영화에 대해 논의했던 것처럼 그의 죽음은 다른 일반적인 남성들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죽음만큼 자세히 묘사되지 않는다. - P279
여성주의 책읽기를 하며 문학작품에서 여성에 대한 관점을 읽어낼 수 있었던 것처럼 이 책을 읽고 내가 본 공포영화의 몇몇 장면들이 다시 떠오르며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아마 앞으로 보게 될 영화에서도 어느정도 열린 시각에서 재해석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공포영화는 현실의 이분법을 넘나드는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아직까지도 주로 다루어지는 건 프로이트의 이론과 같은 남성중심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공포영화를 통해서 가부장제 질서 내의 공포와 혐오가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기도 하다. 바바라 크리드가 말한 것처럼 이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프로이트의 거세 이론은 또한 인간질서의 가부장적 본질을 설명한다. 미첼에 따르면, 프로이트에게 정신분석학이 남근중심적인 이유는, 정신분석학이 개인 주체를 통해 굴절시켜 관찰한 인간사회의 질서 자체가 남근중심적이기 때문이다. p.297
집/방/지하실 혹은 다른 어떤 폐쇄된 공간으로 자궁이 상징화되는 것은 공포영화의 핵심적인 도상학이다.p.112
여성의 몸에 대한 착취가 없다면, 사회를 지배하는 상징계 과정은 어떻게 될 것인가?‘(이리가레, 1985, 85) - P307
책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공포영화들
베오울프: 북유럽 게르만족의 영웅 베오울프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영웅 베오울프와 마녀사이에서 태어난 그렌델. 마녀로 분한 안젤리나 졸리의 카리스마.
집, 지하실이 여성의 자궁을 상징한다면 숲속에 위치한 캐빈 그리고 그 아래 지하시설과 그곳의 수많은 괴물들이 상징하는 것은?
내가 본 가장 무서웠던 공포영화.
내가 본 가장 끔찍했던 공포영화
사진출처:진재희의 책 이야기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