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동네 초등학교 앞을 지나가는데 교문앞에 특정 종목의 운동에서 1등을 한 어린이의 사진이 이름과 함께 걸려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때만 해도 2등과 3등까지는 이름이 올랐는데 어제 본 초등학교 현수막에는 오직 1등 뿐이었던 것이다. 해당 대회에 참가했던, 1등을 하지 못한 아이들은 그 현수막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참여의 기쁨을 가르칠줄 모르는 학교의 배려없음에 기가찼다. 


이런 것들을 전에는 잘 보지 못했다. 한국사회는 상당 기간동안 불평등에서 비롯된 상실에 힘겨워하고 있는데 그 뿌리가 무엇인지, 무엇이 상실되고 있는것인지 모호해서 정확하게 감을 잡지 못했다. 웬디 브라운의 '남성됨과 정치'를 읽으며 한국사회가 '상실'하고 있는 것들에 좀 더 다가가게 된것같다. 



노예는 여가/시간 없는 사람을 뜻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를 빌려 시간의 사회정치적 의미를 이야기한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의 저자 더글러스 러미스에 따르면 과로+성과체제에 속한 우리 대부분은 노예의 범주에 들 것이다. (...)민주주의의 필요요건은 사회에 여가, 자유시간이 있어야 한다. 여가가 없으면 민주주의가 성립하지 않는다.(...)사람들이 모여 의논을 하고 합의를 하고 정치에 참가하는데에는 시간이 걸린다.p.270,존버씨의 죽음


한국은 독일보다 대체로 5개월을 더 일한다고 한다. 5주도 아니고 5개월이다. 이렇게 쉬지못하고 일을 하는데도 평생 내집마련은 커녕 시민들에게 정치를 들여다볼 여력이 남아있을리 없다. 바쁜 와중에 귀에 들리고 눈에 들어오는 정치 이슈는 이성도 논리도 없어서 혐오를 일으킬 뿐이다. 이런 혐오로 인한 무관심을 이용해 무책임한 정치인들은 자기들 밥그릇 싸움에 열을 올린다. 웬디 브라운은 현실과 동떨어진 정치의 배경에 과거 정치 사상가들의 지배, 착취의 남성됨의 이데올로기가 있음을 밝힌다. 


남성이 노예,여성,동물의 육체에 대한 통제권을 얻으면, 이들은 오직 남성의 욕구 파악과 충족을 통해서만 인간의 구조에서 생존과 장소를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정신까지 남성의 욕구에 바치게 된다.(...)미시적으로 볼 때 여기에는 주인과 노예, 남편과 가족, 인간과 동물, 정치의 영역과 필요의 영역등의 '자연스러운'관계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식화가 있다.p.107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마키아벨리를 거쳐 막스베버에 이르기까지 이 사상가들은 이상적인 정치를 위해 그것을 다루는 남성됨의 목표를 비현실적으로 잡아갔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시대를 초월하려 했으며 거기에 여성,노동자,자연은 없었다. 그로인해 정치는 자연스럽게 이들 다수를 배제하고 심지어 혐오했으며 꾸준히 소수만을 위한 이상이 되어왔다. 이런 '소수 남성됨의 정치'에 영향을 받은 다수는 다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소수가 되기 위한 능력주의,성과주의에 몰입한다. 


예속적이며 더렵혀지기 쉬운 여성의 지위는 여성이 육체와 동일시되는과정과 철저히 얽혀 있고, 이때 여성의 육체는 개인과 사회를 육체와 정신과 가치 평가하는 또 다른 정신으로 가르는 사회 구조물 내부에 자리한다.  남성은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여성은 생리학에 묶인 존재로서 역사적으로 너무 자주 성적인 측면과 재생산 관련 측면으로 환원되었다.여성이 자연과 동일시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여성의 일상 존재가 생명과 생명에 대한 관심, 즉 출산과 돌봄에 묶이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런 조합이라면 여성을 정치에 투입하기에 가장 부적절하고 불순한 존재로 보는 것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p.357


한국은 급격한 경제성장과 전세계에서 유례없는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있음에도 불평등과 성과주의로 인한 과로체제가 급속도로 심화되고 있는 극단적인 사례다. 남녀갈등, 세대간 갈등도 심각하고 16년째 자살률1위, 아동 우울증 1위,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률은 25년째 1위라고 한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도 정치상황은 현실 문제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여성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약화되고 있다. (대의 민주정치라는 헌법정신을 대놓고 무시하는 수구정치,국민 절반인 여성의 '대의'가 없는 정치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더욱 작아질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함께 여성정치인이 20프로가 되지 않는 나라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06108&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류호정, 국민의힘 여성할당제 폐지 움직임에 나쁜 정치 일침


이것은 한국정치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대의 정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50대 남성위주의 기존질서에 매여있기 때문이다. 근대 정치의 틀을 잡았다는 막스베버는 무려 100년전 사람이다. 지금의 정치는 과거 베버가 꿈꾸던 소수 카르스마있는 정치인들만으로 꾸리기에 보다 변화무쌍하고 국제관계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제 과거에서 벗어나 정치가 현실에 뿌리내려야 한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듯 현실을 아프게 하는 정치는 더이상 정치가 아니다. 



http://www.segye.com/newsView/20220117518396?OutUrl=naver


철옹성이 된 기득권 중심주의

http://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96298


국회의원 평균연령 55.5세







너무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ㅡ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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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1-30 21: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현수막과 능력, 성과주의에 대한 말씀 공감합니다.

현실을 아프게 하는 정치의 예가 막 머릿 속을 지나가네요!

미미 2022-01-30 21:48   좋아요 4 | URL
저도요~♡ 많이들 그러실거라 생각해요.

해당 책들을 직접 읽어봐야 더 분명하겠지만 정치 사상가들의 막강한 영향력을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단발머리 2022-01-30 21: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국민의힘이 20대 여성과 남성를 이렇게 교묘하게 갈라치기 하는 것에 분노를 느낍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은 하나도 포기하지 않으면서요….

미미 2022-01-30 21:50   좋아요 3 | URL
네~♡ 뉴스 찾아 읽다보니 국민의힘 때문에 자꾸 뚜껑이 열리네요. 여기 호응하는 이대남들도 이용당하는거라 생각합니다. 선거법이 개정되길 희망합니다.

mini74 2022-01-30 21: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노얘의 정의가ㅠㅠ 넘 슬프네요. 지역으로 가르고 세대로 가르고 성별로 가르는 혐오정치 참 싫어요ㅠㅠ

미미 2022-01-30 21:54   좋아요 3 | URL
그쵸~♡ 김누리 교수님 영상 찾아 공부하니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 갈등지수가 탑이더라구요ㅠㅠ
정치가 혐오를 키우고 있네요! 아웅...

scott 2022-01-30 23:00   좋아요 3 | URL
동감합니다 ㅠ.ㅠ

페넬로페 2022-01-30 22: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5주도 아닌 5개월요?
정말 이 정도일줄 몰랐어요 ㅠㅠ
이때껏 보아왔고 실행해온것 처럼 소수들을 위한 사회는 더 가속화되는것 같고 한국의 미래는 더 암담할 것 같다는 걱정에 휩싸입니다~^
미미님.
열심히 책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미미 2022-01-30 23:42   좋아요 5 | URL
앗~♡ 페넬로페님 글을 지금봤네요!!ㅠㅠ
네 5개월이나 차이가 난다고 해요. 제가 올린 김누리교수님 영상을
시간되실 때 한 번 꼭 보세요. 우리나라의 불평등, 갈등의 전반적 양상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경쟁과 갈등을 그만 부추기는 정치를 희망합니다. 감사해요(୨୧ ❛ᴗ❛)✧

scott 2022-01-30 23: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설연휴 열독 하시느라
끼니도 거르실것 같습니다!
눈 건강을 위해 잠시 하늘 멍!때리기!

독일 5개월 덜 일하는 대신
세금이 어마 어마 합니다


설 연휴 미미님 책탑 정복!
하시면서 맛나는거 많이!ㅎㅎ
새해 福마뉘 ^ㅅ^

미미 2022-01-30 23:34   좋아요 4 | URL
안그래도 오늘 눈이 좀 따가웠어요ㅋㅋㅋ
조만간 알려주신 뽕잎차를 구해 마셔보려고요!

대신 독일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임금격차가 거의 없다고
하던데요, 거기다 대입경쟁이 없는 독일이 넘 부러운 오늘입니다.ㅎㅎ

스콧님도 연휴 즐겁고 행복하게
달콤한것도 많이 드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ᴗ͈ˬᴗ͈)ꕤ*.゚

프레이야 2022-01-31 01: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여성정치인이 20프로가 안 되군요.
여성의 몸을 보고 대하는 이중적인 잣대.
혐오를 부추기는 행태. 갈수록 더하네요 ㅠㅠ

미미 2022-01-31 07:51   좋아요 3 | URL
네~♡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의 국가들과 비교해도 낮고 대의 민주주의를 생각했을때 국민 50프로가 여성인데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실정이죠. 그러니 선거를 위해 악용해도 힘이 없어 바라만 볼 뿐입니다ㅠㅠ

새파랑 2022-01-31 11: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1등만 기억하는 세상 ㅜㅜ 어느 한 집단을 소외시키면서 뭉치는건 좀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간만에 광석이 형님의 앨벌을 들어봐야겠습니다. 저 초딩때까지는 살아계셨는데 ㅜㅜ

미미 2022-01-31 12:03   좋아요 3 | URL
그렇죠! 결국 소외는 또다른 소외를 낳을 뿐인데 말입니다ㅜㅜ

김광석님처럼 기교 보단 편안하게 부르는 노래 넘 좋아요^^*

생각하는사람 2023-03-23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통령이라도 똑바로 뽑았으면 뭔가 달라졌을 텐데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