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48 (이 작품의 작가) 마우렌시그는 나치 시대에 체스가 유대인을 박해하는 수단으로 널리 사용됐다는 점, 아리안 체스‘의 우수성을 찬양하며 ‘유대인 체스를 비하했다는 점에 충격을 받아 소설로 형상화했다. -옮긴이
규칙적인 패턴으로 살아가던 프리슈라는 한 남자가 있다. 뮌헨에서 나흘을 지내고 금요일 저녁에는 급행열차를 타고 자신의 별장이 있는 빈으로 이동하며 통째로 빌린 객차 안에서 여유롭게 친구와 체스를 둔다. 몇 년째 굳어진 이런방식은 어쩐지 불안불안해 보였는데 스릴러 영화나 소설에서 적에게타깃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역시나 얼마 후 그는 죽은 채로 발견된다. 그는 체스 잡지도 발행했었고 성공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P.33 게임 앞에서 체스 선수는 세상을 대하는 것과 똑같은 편향된 태도를 드러낸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있으며 자신감과 편협함을 동시에 보여 준다. 프리슈는 자신이 순수한 체스 선수라고 생각했고, 논리적이고 일관되지 않은 것, 적어도 기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모두 싫어했다. 그는 게임의 질보다는 남아 있는 말의양에 기초해 옳고 그름을 평했다. 결국 프리슈는 지기 싫어하는 사람이었고, 비단 체스에서만은 아니었다. 그는자신의 뿌리 깊은 확신을 전혀 철회할 줄 몰랐다.
그가 죽기 전 마지막 금요일. 열차 안에서 체스를 두던 프리슈와 친구 바움 옆에 갑자기 한 청년이 등장한다. 청년은 조금 전까지 지켜보던 두 사람의 체스 경기방식에 관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프리슈는 여기에 호기심을 느낀다. 이 청년 한스는 자신이 체스를 배우게 된 사연을 전달하며 소설의 시점은 그의 스승에게 옮겨 간다. 미스터리한 죽음의 비밀은 2차대전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관련되어 있었고 결국 추악한 진실이 체스의 한 수 한 수가 진행되듯 절정으로 이어진다.
P.171 공격, 장악, 지배, 승리 같은 체스에서 사용되는 용어가 놀라운 변화에 휩싸인 거대한 세상 현실에 똑같이 적용되었다. 1933년 5월 어느 날 베를린에서 거대한 화형식이 거행되었다. 화형대에서는 책이 불탔다. 프로이트, 프루스트, 아인슈타인의 이름이 적힌 책뿐 아니라 슈타이니츠, 님초비치, 루빈스타인의 이름이 붙은 책도 광장에서 불살랐다. 그사이 히틀러의 『나의 투쟁』은100만 부 이상 팔려 나갔다. 오케스트라는 멘델스존, 쉰베르크, 힌데미트, 기타 유대인 작곡가의 음악을 연주하는 행위를 금지당했다. 1만 6000점에 달하는 그림과 조각품이 ‘타락한 예술‘이라는 딱지가 붙은 채 전시회와화랑에서 몰수당하고 파괴되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체스 이야기>를 읽고 체스 관련 소설을 찾다가 발견한 작품이다. 최근 레삭메냐님이 리뷰를 올려주신 걸 보고 다시 생각나 읽었는데, 이런 작품이 품절이라니 너무나 안타깝다. 작가인 파올로 마우렌시그는 이 작품 외에도 <그림자 이론>, <진홍색 남자>,<반대 캐논>,<상처입은 비너스>,<플랑드르 연인>을 집필했는데 아직까지 국내 번역은 <폰의 체스>가 유일하다. 이 마저도 품절인 것이다. 그는 <폰의 체스>로 에드거 앨런 포에 비유되며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추크츠방:어떤 수를 써도 체크 메이트 당할 수밖에 없는 불리한 상황을 가리키는 체스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