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는 신의 영역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대가로 코카서스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벌을 받는다. 이 소설 속 프로메테우스들은 장기기증이란 형벌과도 같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써 헤일셤이라는 외딴 곳에서 유예기간을 갖는다. 그 시간 동안 그들에게 창조적 영역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금지되어있다. 최소한의 자유 안에서 그들의 존재 이유는 모호한 사실들로만 주어질 뿐이다.
P.41 "음...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몰라. 처음엔 나도 그랬거든. 내가 그렇게 창조적으로 되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그런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모든 게 아주 잘될 거라고 말씀하셨어. 그러면 잘못되는 게 전혀 없을 거라고 말이야."
이 소설에서 주를 이루는 내용은 독자들에게 평범한 일상처럼 느껴질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바라보는 것만 같다. 무리와의 갈등, 친구와의 우정과 다툼. 그런 면에서 결말로 가기까지 대체로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면들이 동심을 일깨우는 동시에 미세한 차이와 이질감을 주며 서서히 불안을 동반해 암울한 결말로 향해간다.
P.115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어조는 아주 나직했고, 아이들은 줄곧 소리를 지르고 있었으므로,그 말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않고 지나가 버렸다. 하지만 나는 "때때로 끔찍한 사고가 벌어졌을 거야."라는 말을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사고가 어디서 벌어진단 말인가? 하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그 점을 묻지 않았다."
영화 <더 랍스터>에서도 획일화된 구조의 모순을 블랙 코미디로 그려낸다. 데이비드는 어느날 갑작스럽게 배우자로부터 버림받는데 그의 세계에서는 커플이 되지 못한 싱글은 45일동안 상대를 만나지 못할 경우 동물이 되어야 한다. 그는 최악의 경우 랍스터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저런 노력끝에 결국 견디지 못하고 그곳을 탈출한 데이비드는 이번에는 저항세력인 외톨이 무리에 들어간다. 그곳은 전에 있던 곳과는 반대로 싱글로 살아갈 것을 강요하고 타인에 대한 사랑의 어떠한 형식도 용납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무덤까지 미리 준비해야 하는 곳이다.
<나를 보내지마>에서도 영화 <더 랍스터>에서도 이들에게는 선택권이란 것이 거의 없다. 인류의 영속이라는 더 큰 목적을 위해 수단이 된 이들은 모든 자유를 제한받는다. 이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런 저런 철학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대의를 위해 누군가 희생해야 한다면 그 희생은 어느정도까지 가능한지. 또 그게 우리 자신일 경우 그런 현실을 어떤 방식으로 수용할 수 있는지, 이런 상황들을 어떻게 시스템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그리고 고통스러운 진실이라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중에 어느쪽이 나은지 말이다.
<나를 보내지마>에서 캐시와 친구들은 여러가지 의문을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된 답을 얻지 못한채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 서로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스스로의 존재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방식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중요한 선택과 질문을 하게 되고 어쩌면 각자 무의식적으로는 알고 있던 그 진실을 제대로 마주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두 작품 모두 신의 영역 즉 자유의 범위를 제한하는 자들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드러난 일부의 태도도 철저히 이들에게는 상대적이며 냉소적이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신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를 닮았다. 자본주의 권력은 갈수록 그 모습을 감추고 있으며 그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 또한 모호하게 베일에 가려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작품속 디스토피아를 통해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는 것은 놀랍고도 중요한 경험이다. 인간의 많은 능력 중에서 상상력은 현실에 대한 관점에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을 추가해 주기 때문이다. 소설이나 영화속 디스토피아에서 인간의 상상력을 경계하는 이유다. 이러한 상상력을 통해 경험과 한계를 늘려감으로써 실제 현실감각도 날카롭게 변화할 수 있다.
어슐러 K.르귄은 말한다. "소설은 지어낸 이야기지만,거짓말이 아니에요. 소설은 사실 파악이나 거짓말이 아닌 다른 층위의 현실로 넘어가죠...중략..상상은 아무리 마구잡이일 때라 해도 현실과 떨어져 있죠. 상상은 현실을 알고, 현실에서 출발하고 , 돌아가서 현실을 풍성하게 만들어요." (P.192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P.74 뜰과 경계를 이루는 철망 가까이에 이르자 그 애는 몸을 돌리고는 말했다.
"됐어.여기서 타자. 넌 '들장미'를 타."
나는 그 애가 건네주는 보이지 않는 고삐를 받아 쥐었다. 그런 다음 우리는 때로는 보통 속도로 때로는 전속력으로 담장을 넘어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