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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임금 잔혹사 - 그들은 어떻게 조선의 왕이 되었는가
조민기 지음 / 책비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역사책이나 사극 혹은 영화 등을 통해 자주 조선 시대를 만나봐서, 이제는 살아본 적도 없는 조선 시대가 익숙하다 못해 친숙하기까지 하다. 그래서일까? 나에게 조선 시대 권력의 일인자인 임금으로 인생을 다시 한 번 살아보라고 권한다면 정중하게 거절할 것이다. 임금이 될 그릇도 되지 못할뿐더러 그들이 얼마나 힘겹게 왕위에 오르고, 지켜내고, 쟁취했는지, 그리고 임금이 된 후에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얼마나 가혹한지 잘 알기 때문이다. <조선 임금 잔혹사>는 5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조선의 임금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왕위에 오르고,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에 대한 관점로 쓰인 책이다. 역사책을 읽을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조선 임금의 왕위 쟁탈전을 보면서, 당연한 일이거니 하고 큰 관심을 두지 않고 넘어갔다. 그런 내게 평소와 다른 시선으로 조선 시대의 임금을 바라볼 기회를 준 저자에 감사함을 느낀다.
우리는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조선 임금을 시대순으로 달달 외운다. 태정태세문단세…. 이 세뇌 효과가 얼마나 대단한지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줄줄 외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하게 조선왕조실록을 나열하는 책이 아니다. 저자는 왕으로 선택된 "세종, 성종, 중종", 왕이 되고 싶었던 "선조, 광해군, 인조", 왕으로 태어난 "연산군, 숙종, 정조", 왕이 되지 못한 "소현세자, 사도세자, 효명세자"로 나눴다. 그리고 그들이 조선의 임금이 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보통 역사를 다룬 책이라면 팩션을 제외하고는 내용이 상당히 지루하기 마련인데, 이 책은 왕위 쟁탈전을 주제로 다뤄서 그런지 상당히 흥미롭게 읽힌다. 확실히 지금까지 읽어온 역사책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역사상 완벽한 성군이라 불리는 세종이 즉위할 당시, 궁에는 두 명의 상왕이 있었다. 상왕 태종은 임금의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 있었다. 임금의 문제는 왕위를 차지하는 것보다 왕위를 지키는 것이었다. 세종은 자신의 아버지인 태종에 의해 아내의 처가 몰락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자신 자식의 세대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되풀이되는 불행한 가정사를 겪으며 힘겹게 임금의 자리를 지킨다. 역사가 가장 총애하는 임금인 성종은 13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나, 초반 7년 동안의 섭정 기간으로 자신이 직접 통치할 수 없었다. 성종은 세종을 롤 모델로 정했으나, 주변 신하들 대부분이 세조의 공신들이다 보니 자신이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 생길 때면 "세종 조에서는 어떻게 하였는가?" 라고 묻곤 하였다. 세종과 성종은 이렇게 자신의 낮추며 때를 기다렸고, 실력과 적절한 인재 등용으로 성군으로 기록됐다.
조선왕조 역사상 반정으로 폐위된 단 두 명의 임금, 광해군과 연산군. 영화처럼 극적인 인생을 보낸 두 사람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에서, 조선은 군주로 살아가는 일이 무엇보다 힘겨운 나라였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저자는 중간중간 역사와 대중문화를 접목하고, 토막 상식을 제공해 다소 딱딱하다 느낄 수 있는 역사 이야기를 흥미롭게 이끌어나간다. 가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내용과 제목을 다르게 붙여놓은 책을 만날 때가 있다. 최근에도 그런 역사책을 만난 적이 있어서 사기당한 느낌이라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내용에 맞게 제목을 잘 뽑아놓았다. 제목 그대로 조선 임금의 잔혹사를 담았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있었기에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