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 - 일제 강점기에서 한국전쟁까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그날의 이야기 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 1
임기상 지음 / 인문서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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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어디까지나 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역사를 말한 것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발발에서 휴전까지 지식이 얼마나 없었는지 알게 되었으며, 읽는 내내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진실에 분통이 터졌다. 이는 우리 선조가 일제강점기에 있었다는 사실보다 조선인이 일본에 붙어 같은 조선인에게 총을 겨누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였다. 그리고 이들이 아무런 고통 없이 자연사했거나 지금까지도 잘 먹고 잘살아 있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일본군의 지휘를 받는 친일 조선인으로 구성된 독립 특수 부대, 간도특설대의 잔악함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 무자비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항일 독립투쟁을 하는 조선 청년은 물론이고 무고한 민간인들을 죽여서 불태웠다. 더 놀라운 사실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백선엽이 이 악랄한 간도특설대 출신이라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던 대원들은 해방 후 과거를 숨기고 대한민국 국군에 들어갔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장관, 군사령관, 고위 관료로 출세했다고 한다. 해방된 직후 친일파를 모두 처단했어야 했는데 이승만 정권은 이를 무시했다. 오히려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친일파를 청산하기는커녕 이들을 중용했다.

 

해방되고 정권을 인수한 미 군정이 새로 임명한 서울 시내 10개 경찰서의 경찰서장 모두 일제하의 경찰 관료 출신이 되었다. 정말이지 어이가 없는 노릇이다. 일본군에 붙어 독립군에게 총질을 해대던 인물들이 갑자기 독립군으로 둔갑했다. 평생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운 김원봉은 항일 운동의 신화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가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 노덕술에게 고초를 받는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는 부역죄 혐의로 조사를 받으며 구타를 당했는데, 구타한 경찰관이 일본 강점기에 그녀를 구속했던 사람이었다. 이외에도 이구영이나 송지영 등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연이 담겨 있다.

 

책을 읽다보면 미처 모르고 있던 숨은 독립 운동가를 발견하기도 한다. 아쉽게도 미수에 그쳤지만,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가 사형대에서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단두대 위에 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이는구나.
몸은 있으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상이 없으리오.

 

현대사가 치욕적이고 아픔이 있는 역사라고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왜곡된 사실을 그대로 믿어서도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젊은 우리가 현대사를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여 왜곡된 사실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기에 이 책은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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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500개 키워드로 익히는 역사상식
휴먼카인드 역사문화연구소 지음 / 휴먼카인드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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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3.1절을 읽어보라는 질문에 '삼점일절'이라고 읽는 학생에 대한 기사를 접하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수능에서 한국사가 선택과목이 되었다는 소식(2017년부터 필수 과목 지정)은 들었지만, 도대체 얼마나 역사 공부를 안 하고 있는지 그 심각성을 잘 보여주는 기사였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공시 준비를 하면서 한국사의 매력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한국사뿐만 아니라 서양사까지도 배우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인물 간 갈등구도가 잘 드러나는 역사 소설이나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이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에 역사 공부에서 손을 뗀 동료는 배경지식이 부족하고 용어의 어려움 때문인지 역사 소설이나 영화에 관심이 없다며 손사래 칠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러던 중 동료에게 꼭, 반드시, 기필코 권하고 싶은 한국사 관련 책을 만났다. 휴먼 카인드북스에서 출간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선사시대, 삼국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는 물론이고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근현대사까지 역사 상식을 500개의 키워드로 잘 정리된 이 책은 그동안 마구잡이 식으로 쌓아왔던 내 역사 상식을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 책이다. 책을 읽으면 체계가 잡혀간다고 할까. 이 책은 시대사 순으로 정리되어있고 각 키워드(용어)는 의미와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미와 설명은 불필요한 미사여구 없이 간결하고 필요한 설명만 담고 있어 마음에 들었다.

 

예를 들어 녹읍(신라 686년)의 의미는 신라 시대에 국가가 관료 귀족에게 지급하였던 토지로 관료는 녹읍에서 조세를 수취하거나 노동력을 징발할 수 있었다. 신라 시대에는 왕권 강화를 위해 관리에게 관료전(조세 수취만 가능)을 지급하고 귀족들의 경제 기반이었던 녹읍을 폐지하였다고 설명되어 있다.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역사 사전이다. 영어 공부할 때 영어 사전이 필요하고, 한자 공부를 할 때 옥편이 필요하듯, 한국사를 공부할 때 곁에 두고 펼쳐보면 효과적으로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다. 역사 상식이 부족한 우리 성인들뿐만 아니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이나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에게도 필요한 책이라 생각한다. 서른과 마흔의 중간쯤에서 드는 생각은 역사를 습득하는데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잊은 원숭이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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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1 - 1453년부터 현재까지 패권투쟁의 역사
브랜든 심스 지음, 곽영완 옮김 / 애플미디어(곽영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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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좋아해서 평소에 역사 관련 도서를 즐겨 읽어요 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이는 한국사에 국한된 이야기다. 학창 시절, 건축을 전공하면서 배운 세계의 건축사 정도만 알고 있었지 세계사의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할뿐더러 세계사는 내게 큰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내게 세계사는 외워야 할 지식이 어마어마할 거라는 선입견과 어디서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런데 <유럽 I, II>의 부제, '1453년부터 현재까지의 패권투쟁의 역사'를 읽고, 이 책은 내게 유럽 국가의 역사에 대해 대략적인 방향과 범위를 잡아주는 책이라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1453년이라고 기점을 단정 지어놨을까. 유럽 역사에 대해 워낙 아는 것이 없다 보니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유럽 역사가들은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제국에 의해 함락된 해이자,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이 막을 내린 해인 1453년을 기점으로 근세가 시작되는 해로 보고 있다. 천 년을 유지했던 비잔티움 제국 즉 동로마 제국이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함께 역사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그 이유다. 어쨌든 근세로 접어든 이후 유럽 국가들은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대내외 정책과 제도를 정착시켰고, 힘을 얻기 위한 전쟁 역사를 반복하면서 외교와 동맹 관계를 발전시켜 오늘날 세계를 주무르는 강력한 세력으로 떠올랐다.

 

역사적으로 부와 힘이 옮겨갈 때는 예외 없이 폭력과 전쟁이 일어난다. 유럽 국가들의 분쟁 중심은 신성로마제국이 있었다. 신성로마제국은 서쪽으로 브라반트와 홀란드, 동쪽으로 슐레지엔, 북쪽으로 홀슈타인, 남쪽으로 시에나, 남동쪽으로 트리에스테까지 광범위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오늘날의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체코, 네덜란드, 벨기에 대부분과 프랑스 동부, 이탈리아 북부, 폴란드 서부가 제국의 영역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은 유럽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고, 어느 나라보다 많은 인구가 거주했다. 무엇보다 신성로마제국의 제위는 샤를마뉴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기에 독일 제후들뿐만 아니라 이웃 국가의 왕들, 심지어 프랑스 왕들에게 큰 관심사였다. 신성로마제국의 제위는 로마 황제의 후계자이자 보편적인 권위를 상징하는 독보적인 자리였다. 때문에 여러 나라가 이해관계를 놓고 전략적으로 다툼을 벌인 곳이 신성로마제국의 영토였으며 분쟁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수백 년 동안 유럽을 지배하고 싶어하는 헨리 8세, 카를 5세, 프랑수아 1세, 루이 16세 등의 인물이 신성로마제국의 법통을 차지하고 싶어 했다. 이제야 신성로마제국의 영토가 유럽의 패권투쟁 과정에서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이 책에는 유럽연합이 탄생하기까지 지난 500여 년 동안의 유럽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수십 차례의 전쟁, 정치체제, 인물, 문화, 종교, 사회, 그리고 국제관계까지 두루 담고 있었다. 철저하게 입시 중심으로 교육을 받은 내가 미처 배우지 못했던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했다. 1,0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책을 처음 봤을 땐 두꺼운 데 지루하기까지 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끄는 저자의 글솜씨에 지루할 틈 없이 읽어나간 것 같다. 사실 이 책을 한 번 읽고 서평으로 작성한다는 것 자체가 내 능력 밖의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유럽의 역사를 제대로 배운 사람의 입장에서 단언컨대, <유럽 I, II>는 소장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갑자기 미드 튜더스가 다시 보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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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 기행 - 고개를 들면 역사가 보인다
김봉규 글.사진 / 담앤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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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기에 자연스럽게 남들보다(다른 학과 학생보다) 고건축이나 전통가옥 그리고 사찰을 즐겨 찾아다녔던 것 같다. 친구 녀석들과 휴일이면 카메라를 둘러메고 가까운 사찰을 찾아다니면, 옛 건축 양식을 자유롭게 보고 배울 수 있다는 점도 좋았지만, 그보다 사찰을 향해 굽이굽이 난 산길을 친구 녀석들과 함께 걷는 그 시간이 좋았다. 그런데 그 시절 많은 고건축과 사찰을 다니면서 건물의 이름이나 그 성격과 위상을 담는 현판이 예외 없이 걸려있었던 것을 보았지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답사하는 과정에서 한문을 잘 몰랐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까… 나의 무관심만큼이나 홀대받는 현판이 한문이 아닌 한글로 적혀있었다면, 분명 나는 기억하고 있었을 거야 하는 핑계 어린 생각이 든다. 책, <현판기행>의 작가는 현판의 글씨는 역대 왕을 비롯해 당대의 대표적 지식인이나 명필 등이 심혈을 기울여 쓴 작품이기 때문에 그 시대의 정신과 가치관은 물론, 예술의 정수가 담겨 있는 문화 예술의 보고라 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 <현판기행>을 읽으면서 기억나는 사찰의 현판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부끄러워졌다. 그동안 즐겁게 다녔던 답사도 허투루 다녔던 것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때문에 이 책은 내가 직접 다녀보았던 고건축이나 사찰의 현판뿐만 아니라 전국의 주요 현판들에 담긴 옛사람의 삶과 철학 그리고 풍류의 향기를 배울 수 있어 유익한 책이었다.

 

이 책은 총 네 개의 장을 통해 현판이 걸린 서른다섯 장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을 순서대로 읽기보다 내가 다녀왔던 곳을 중점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다행히도 이 책에 등장하는 장소 중 다수가 내가 다녀왔던 곳이라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그중 숨어있는 절, 곱게 늙은 절, 불명산 화암사의 극락전 현판 이야기가 인상 깊다. 보통 궁궐이나 사찰, 서원 등 옛 건물의 편액은 가로로 쓴 형태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불명산 화암사 극락전 현판은 한 자씩 따로 만들어 걸었다. 저자는 화암사 극락전은 일반 구조보다 처마를 훨씬 더 길게 내밀 수 있게 한 건축 양식인 하앙식(下昻式) 목조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이런 현판을 걸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화암사 극락전을 찍었던 사진을 보니 분명 현판을 찍혀 있었다. 아마 여기가 극락전이군. 인증 사진 남겨야지… 하며 아무 생각 없이 사진을 찍었으리라. 왜 다른 곳과는 다른 형식의 현판이 걸려있는지, 누가 이 현판을 썼는지에는 관심 밖이었을 터. 수년 전 그곳에서 있었던 추억이 떠올라 잠시 그리운 행복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퇴계 이황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퇴계의 제자들이 건립한 도산서원은 많은 사람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산서원 현판 글씨는 퇴계와 도산서원의 명성이나 위세에 눌려 글쓰기를 양보하거나 마음이 흔들려 글씨를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때문에 당시 임금 선조가 당대의 명필 한석봉에게 무엇을 쓸 것인지 알려 주지 않고 '원'자부터 거꾸로 쓰게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질그릇 '도陶'자를 쓰라는 말을 듣는 순간 명필 석봉의 마음이 흔들려 현판의 '도'자가 다른 세 자와 달리 약간 흔들린 흔적과 어색한 점이 있다고 한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현판이란 그저 고건축이나 사찰의 이름을 알리는 간판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현판을 이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도록 도와준 저자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나는 지금도 고건축과 사찰을 꾸준히 찾고 있다. 이제는 건물을 느끼기 전에 옛 현판 글씨 자체가 가진 가치와 그 문구가 담고 있는 의미와 가르침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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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족, 뒷담화의 탄생 - 살아있는 고소설, 2014 세종도서 선정 도서
이민희 지음 / 푸른지식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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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전, 이생규장전, 방한림전, 춘향전 등 고소설에 나오는 인물들도 모두 욕망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복식이나 생활, 사랑 등 모든 것이 자유롭지 않던 조선 후기 신분 사회에서 하층민, 여성, 시민은 소설을 통해 상상으로나마 자유와 해방을 맛보고 욕망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쾌족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일상을 말하고, 욕망을 갈망하며, 일탈을 꿈꾸고, 교화를 전하고자 한 것이 고소설의 속살이라 한다. - 6 페이지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고소설 중 <운영전>과 <심청전>, 그리고 <장화홍련전>에 대한 저자의 해설이 가장 인상 깊었다. <운영전>은 안평대군 사저인 수성궁에 살던 궁녀 '운영'와 김 진사의 사랑이야기로, 신분상 이루어질 수 없는 두 사람의 밀회가 발각되자 운영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궁녀 운영이 자살한 이유를 김 진사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저자의 해설은 조금 다르다. 운영이 스스로 인정한 죄목에서 그녀는 자신을 인과 의를 상실한 인간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런 관점에서 자신을 존재 이유를 상실한 인간으로 규정해버린 것이라 한다. 즉 자존감의 상실과 다른 궁녀에게 피해를 준 사실이 그녀를 자살로 이끌었다고 보고 있었다. 저자는 이렇게 고소설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소개하고 일반적인 해설과 더불어 저자의 현대적 해설을 덧붙였다. 그래서인지 소설 전부를 읽지 않고도 소설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알고 있는 느낌이며, 저자의 해설 때문에 익히 알고 있는 소설도 새로운 결말을 맛볼 수 있었다.

 

고소설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심청전>에 대한 저자의 해설도 인상 깊었다. 심청이라 하면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효성이 떠오르지만, 저자는 심청이 강한 효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이야기한다. 아버지가 유일한 혈육이라는 점과 눈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가 자신을 먹여 살리려고 젖동냥하러 다닌 점은 그녀에게 효심이라는 강박증으로 작용하였다고 보고 있다. 아버지를 향한 순수한 효심에 책임감이 덧붙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인당수에 빠지기 전 심청의 심경에는 변화가 생겼으며, 황후가 된 이후에는 아버지를 모시고 살던 때의 적극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 등을 지적하는 저자의 날카로운 통찰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고소설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앵혈 모티브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앵혈, '꾀꼬리의 피'라는 뜻으로 남녀의 처녀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붉은 점'을 뜻하며, 순결 및 신분 관련 사건에 법적 증거력이 있는 표식으로 인식되어 사용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앵혈 모티브는 남성 중심적인 시선이 강하게 담겨 성차별을 조장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터무니없는 이야기지만, 배움이 부족했던 당시 사람들이라면 분명 믿었으리라 생각된다. 앵혈이 다양한 목적으로 쓰이고 있었다는 내용이 꽤 흥미로웠다.

 

고리타분하며 결말이 뻔하다는 것을 핑계 삼아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고소설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고소설의 등장인물을 현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해설한 <쾌족, 뒷담화의 탄생>을 읽고 난 후로 이미 알고 있던 고소설을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고소설의 재발견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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