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여자들 - 편향된 데이터는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지우는가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지음, 황가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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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향된 데이터는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지우는가

스마트푼과 자동차 설계부터 의료, 노동, 도시계획까지

남자가 표준인 세상에서 여자는 어떻게 투명 인간이 되는가

출간 즉시 세계를 들썩이게 만든 젠더 '팩트풀니스'

 

 

'빅데이터' 라는 말이 익숙해진, 그야말로 데이터의 시대다. 그런데 이 넘쳐나는 데이터들 중에 인간에 관한 데이터 중에 인간은 남성과 여성 둘로 나뉘지만 데이터는 남성데이터와 여성데이터가 반반씩 차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데이터의 모든 기준값은 남성이 디폴트 였다. 저자는 편향된 데이터를 각 분야별로 조목조목 분석하며 얼마없는 여성들에 관한 데이터를 끌어모아 이를 증명한다.

당신이 이 책에서 읽게 될 많은 주장과는 반대로, 문제는 여성의 신체가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신체에 부여하는 사회적 의미 그리고 그 의미가 어디서부터 유래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p. 18)

이 책의 목표는 정신분석이 아니다. 남성 편향적 도구를 생산하는 사람이 은밀한 성차별주의자인지 아닌지에도 관심이 없다. 개인적인 동기는, 일정 수준을 넘지 않는 이상,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패턴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책에서 제시한 데이터의 경중을 고려했을 때 모든 젠더 데이터 공백이 그저 하나의 큰 우연이라고 결론짓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하는 물음이다. (p. 19)

남자를 디폴트 인간으로 간주하는 것은 인간 사회구조의 근간임을 저자는 다양한 문헌에서 너무도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의 생성에 대하여' 에서 '인간이라는 부류로부터의 첫 이탈은 남성이 아닌 여성 자손을 낳는 것이다' 라며 여성의 존재 자체가 인간의 이탈이라고 얘기했다. 10세기의 바이킹 해골이 명백하게 여성의 골반을 가졌음에도 무기일습과 제물로 바쳐진 말2마리가 함께 묻혀있는 전사의 무덤이었기에 (여성이 전사였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에) 100년 넘게 남자의 해골이라고 간주되어 왔다. (2017년 DNA검사결과가 나오고서야 여성의 골반임을 인정받았다) 너무나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언어에서의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2012년 세계경제포럼의 분석에 딸면 성굴절어를 사용하는 나라들, 즉 거의 모든 발언에 남성과 여성이라는 개념이 강하게 존재하는 나라들에서 성 불평등이 가장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p. 28)

당신은 언어에 밴 남성 편향이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증거를 보면 그렇지가 않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사용자가 증가하는 언어, 전 세계 누리꾼의 90%이상이 사용하는 언어는 이모티콘이다. 그런데 2016년까지 이모티콘의 세계는 이상하리만치 남성적이었다. (p. 29)

성굴절어에서 남성과 여성이라는 개념은 언어 자체에 깊이 배어 있다. 모든 명사가 남성 또는 여성으로 나뉜다. 예를 들어 에스파냐어로 탁자는 여성명사이지만 자동차는 남성명사라고 한다. 변호사가 여자인 경우 변호사라는 단어 앞에 여성임을 뜻하는 접두어를 붙여야 한다. 이모티콘이 유행하기 시작했을때 다양한 이모티콘은 중성적 캐릭터로 표현한것 같지만 누가봐도 여성은 아니었다. 언어는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왜곡된 성 개념이 들어가 있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성평등적 사고방식이 얼마나 가능할 수 있을까? 그나마 새로 만들어지는 이모티콘 같은 신언어들은 이제 남성과 여성을 모두 표현하는 중이라고 한다.

남성이 보편이라는 추정은 젠더 데이터 공백의 직접적인 결과다. 백인이라는 점과 남자라는 점을 말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다른 정체성이 아예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성 보편은 젠더 데이터 공백의 원인이기도 하다. 여자들이 보이지 않고 기억되지 않기 때문에, 남성 데이터가 우리 지식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남성이 보편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이 소수자의 위치로 끌어내려진다. 특수한 정체성, 주관적 관점의 취급을 받게 된다. 이러한 설계를 통해 여자들은 문화에서, 역사에서, 데이터에서 잊어도 되는 존재, 무시해도 되는 존재, 없어도 되는 존재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여자는 투명인간이 된다.

[보이지 않는 여자들]은 우리가 인류이 반에 대해 기록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남성데이터를 바탕으로 세워진 세상에 사는 여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p. 50, 51)

여자가 사람취급 받게 된지 1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법적 권리만을 따져봤을때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법적으로도 동등해졌는가 라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다. 그러니 사회가 발달을 거듭해올 수록 기준은 하나로 점점 더 굳건해져 왔다. 애초에 사람의 종류가 남/여 둘이므로 기준도 둘이었다면 문제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처음부터 늘 기준은 하나였다. 오래되어 온 그 하나의 기준을 문제시하는 질문들은 늘 위험하고 불순하고 예외적으로 취급당한다. 그러나 무차별적 단 하나의 기준이 모든 경우에 들어맞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이상한게 아닐까?!

<일상>

눈이 많이 왔다고 하자. 제설작업을 어디부터 하는가? 도로부터 한다. 도로는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다. 자가용을 소유한 가구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은 대부분 남성이다. 보행자가 다니는 길들은 제설작업이 빨리 진행되지 않는다. 주변을 아이와 함께 수시로 걸어야 다녀야 하는 보행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보행자가 미끄럽거나 얼어붙은 도로에서 다칠 확률은 운전자의 3배라고 한다. 대중교통의 인프라에 있어서도 여성의 이용현황은 고려되지 않았다. 대중교통의 이용자는 남성보다 여성이 월등히 많은데도. 하지만 <일상>에서 교통분야의 여성데이터 부재는 화장실 문제에 비하면 차라리 심각하지 않아 보일 정도였다.

겉보기에는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에 똑같은 면적을 부여하는 것이 공정해 보이고 지금껏 그렇게 설계되어왔다. 위생공사 기준에도 면적을 50대50으로 분할하라고 명시되어 왔다. 그러나 남자 화장실에 소변기와 칸막이가 같이 있다면 동시에 용변볼 수 있는 인원수는 여자화장실보다 남자화장실이 훨씬 많다. 아까까지 동등했던 면적이 갑자기 동등하지 않은 면적이 된다. 그러나 설사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에 동수의 칸막이가 있다고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여자의 화장실 사용 시간이 남자의2.3배이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아이나 장애인, 노인을 동반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여성인구의 20~25%는 가임기 여성으로 언제든 생리 중일 수 있으며 그 경우 생리대를 갈아야 한다. 또 여자는 남자보다 화장실에 자주 가야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신체적 차이를 알면서도 동일 면적 화장실이 공정하다고 계속 주장하는 사람은 형식적인 평등만 외치는 독불장군일 것이다.

지금부터는 겉으로는 성평등해보이지만 사실상 남성 편향적인 화장실보다 더 심각한 이야기를 하겠다. (p. 76, 77)

인간의 기본적 생리욕구를 제때 해결하지 못하는 환경이라는 것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화장실 문제과 생명의 위협과 직결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UN에 따르면 여자3명 중 1명은 안전한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인도의 경우 화장실이 집에 없는 경우가 많고 공중화장실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여성전용도 없어서 성폭력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성폭행의 위험은 화장실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버스정류장, 기차역, 주차장, 공원등 여성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공공장소는 여성을 범죄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었다.

설계자가 젠더를 고려하지 않을 때 공공장소는 남성 디폴트가 된다. 그런데 현실은 세계 인구의 절반이 여성의 신체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인구의 절반은 매일같이 그 신체에 가해지는 성적 위협과 싸워야 한다. 세계 인구 전체는 돌봄을 필요로 하는데 현재 그 돌봄 노동은 주로 여자들이 무급으로 한다. 이것들은 특수한 관심사가 아니라 보편적 관심사다. 그리고 공공장소가 정말로 모두를 위한 곳이 되려면 지금부터라도 세계 인구의 나머지 절반을 배려하기 시작해야 한다. 이제껏 살펴본 것처럼 이는 정의의 문제만이 아니다. 간단한 경제문제이기도 하다.

여성 대상 범죄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을 줄이면 장기적으로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공공장소와 공공 활동 설계에 여성의 사회화를 반영하면 여성의 정신 건강 및 신체 건강이 보장되어 또 한번 장기적 비용이 절약된다. 한마디로, 공공장소를 설계할 때 세계 인구의 절반인 여성을 빼놓는 것은 재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선순위의 문제이며 현재는 고의든 아니든 우선시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명백한 불의이자 경제적 무지다. 여자들은 공공자원을 이용할 동등한 권리가 있다. 우리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여자를 제외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p. 97, 98)

비용도 절감되고 남성/여성 모두에게 좋은 일인데 왜 안될까... 몰라서 일까 알아도싫어서 일까...

<남자다움의 사회학> 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일상에서 여자답다 남자답다 라는 편견이 남성에게도 결코 이롭지 않음을 알게 해주는 책이었다. 일상에서 소외된 여성의 현실들을 읽다보니 여성의 입장을 좀 생각해달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남성이 남성의 입장을 생각할때에도 관점을 달리 가져보는 것은 어떨지 제안해보고 싶다. '남자다움'의 맨박스에 갇혀 사는 남자들의 삶도 행복하진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직장>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전 세계적으로 여자는 남자보다 오랜 시간 일한다. 성별 구분 데이터가 모든 나라에 존재하진 않지만 존재하는 나라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뚜렷하다. 한국에서는 여자가 남자보다 하루에 34분 더 일한다. 포르투갈에서는 90분, 중국에서는 44분, 남아공에서는 48분이다. 격차의 크기는 나라별로 다르지만 격차가 존재한다는 점은 일관적이다. (p. 104)

여려 데이터를 근거로 하는 책이다 보니 세계적 데이터가 자주 인용되는데 세계속의 여러 나라들 중 '한국' 데이터도 여러번 언급되고 있었다. 좋은 의미건 안좋은 의미건 간에 세계적 경향을 살펴보는데 있어 소외된 나라보다는 그 데이터 속에 포함된 나라가 되어 있다는 것이 조금은 희망을 갖게 했다.

여자들이 저임금 노동을 선택하는 거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이 돌보지 않기' 와 '집안일 안 하기' 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선택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50년간의 미국 인구조사 세이터에 따르면 여자들이 한꺼번에 어떤 업종에 진출하면 그 업종은 임금이 내려가고, '위세'를 잃는다. 즉 여자가 저임금 노동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저임금 노동이 여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p. 109)

'돌봄노동' 과 '가사'는 전업주부이건 일하는여성이건 거의 전적으로 여성에게 전담되어진다. 경단녀는 어쩔수 없는 현실이고 일을 하고 싶다거나 경제적으로 일이 급한 경우이거나 어느 경우이든 간에 다시 일하려는 여성에게 제공되는 일자리는 파트타임이나 비정규직 의 저임금 노동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돌봄노동과 가사를 하면서 동시에 일을 하려면 그런 일자리만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여자들의 상황은 더 나쁘다. 전 세계에서 최소한의 유급 출산 휴가조차 보장하지 않는 4개국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무급휴가 조차도 전체 직장 여성의 60%만 사용할 수 있다. 나머지 40%가 해고되는 것을 막을 길은 없다. 미국의 산모 4명 가운데 1명은 출산 후 2주 안에 직장에 복귀한다. (p. 114)

일본에서는 아빠 쿼터제가 뚜렷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이는 남녀 임금격차나 여성의 신체를 반영하지 않은 제도 설계 때문이다. 일본의 극단적인 노동문화도 상관이 있다. 휴가만 써도 상사가 얼굴을 찌푸리는 나라에서는 남자 육아휴직을 쓴다고 하면 창피나 불이익을 당한다고 아빠들은 말한다. (p. 119)

여러 나라의 사례들이 나오지만, 북유럽의 몇개 나라 빼고는 우리나라 상황이 그나마 나아보였다. 극빈층이 많은 나라들의 경우를 차치하고라도 선진국이라 하는 영국이나 미국, 일본 보다 한국의 상황이 그나마 나아보였다. 사회문제를 다룬 외국책들을 읽을때마다 느끼지만 우리나라만큼 살만한 나라가 별로 없다. 그나마 우리나라가 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그리고 몇몇 나라들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물론 증거를 바탕으로 한 육아휴직 정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는다. 여자의 무급 노동이 신생아에서 시작되어 신생아에서 끝나는 것도 아닌 데다 전통적인 직장은 가상의 '돌볼 가족이 없는' 직장인의 삶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 남자-늘 남자로 가정되어 있다-는 자식이나 노인 가족 돌보기, 요리, 청소, 아이 병원 데려가기, 장보기, 학교폭력, 아이 숙제봐주기, 목욕시키고 재우기, 이 모든 일을 내일이 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의 삶은 단순하고 쉽게 두 부분, 일과 여가로 나뉜다. (p. 120)

유급 노동 문화 전반에 근본적인 정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전통적인 직장은 '돌볼 가족이 없는 노동자'에 맞게 설계되었지만 여자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 남자가 그런 이상에 잘 들어맞을 확률이 높지만 더 이상 그러고 싶어 하지 않는 남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 중 그 누구도 혹은 어떤 회사도 양육자의 보이지 않는 무급 노동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은 단순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제 무급 노동을 하는 여자들에게 불이익 주는 것을 멈춰야 한다. (p. 126)

일과 여가.. 그렇다. 원래 직장과 가정은 일과 여가로 나누어졌었다. 그런데 여성에겐 이 '여가' 시간이 없었다. 전업주부라고 해서 '여가'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예 출퇴근도 없고 임금도 없어 노동도 아닌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당연시 되어온 무급노동에 대하여 그 가치를 존중해야 할 시대가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동안 평가절하되어온 무급 노동 없이는 유급 노동도 불가능하다고.

'능력주의' 라는 것이 결코 평등하지 않은 '신화'에 가까운 생각이고, 사회생활 하는 여성의 이미지는 충분히 친절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하고 친절하면 전문가다워보이지 않는다는 사면초가에 빠지기 일쑤이며, 그동안의 역사에서 여자 천재들이 없었던 것은 데이터 공백의 결과로 '총명편견'을 만들어 왔음을 저자는 역설한다. 그렇다고 사회생활 하는 여성이 남성처럼 행동해야 하는가? 라면 그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여성의 사회화를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교육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여성이 자라는 동안 받는 교육의 내용에서 주입되는 '여자다움'의 특징들은 사회생활에서 고려되지 않는다. 최근 읽은 <오만하게 제밥하라> 라는 책이 생각난다. 사회생활 하는 여성들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이 참 많은 세상이다...

환경에서도 문제가 좀 있다. 같은 직종에 일하는 여성 노동자가 환경에서 받는 영향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사무실 냉방온도는 표준남성 기준으로 여성의 신체에서는 추위를 느끼고 산업현장에서 화학약품들이 여성의 신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데이터가 없다. 게다가 직장내에 만연한 성희롱 문화는 업계를 막론하고 너무 흔해서 그냥 문화인가 싶을 정도다. 어디를 봐도 항상 남자는 보편이고 여자는 특수 였다.

<설계>

여성이 사용하는 물건 여성이 생활하는 공간 에 대한 설계에서도 여성의 의견은 조사조차 되지 않았다. 하다못해 핸드폰만 해도 남성보다 작은 여성의 손으로는 한손으로 사진찍는 것이 대부분 불가능하다. 알고리즘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데이터베이스에도 젠더 데이터 공백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알고리즘이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는 뚱뚱한 대머리 남자의 사진을 여성으로 인식하는 것이 당연한 결과가 되어버렸다. 알고리즘에서는 '대머리' 보다 '부엌'이 더 강력하게 인식되는 것이다. 부엌에 있는 사람은 어떤 생김새건 여성이라는;;;

성 중립적이라고 광고하지만 실제로는 남성 편향적인 제품은 기술업계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 평균 여자 머리에는 너무 큰 가상현실(VR)헤드셋, 남자 몸에는 딱 맞지만 여자에게는 '두꺼운 겨울 외투 위에 입어도 맞을 만큼 큰' 햅틱 재킷(촉감을 구현하는 재킷), 여자가 쓰면 렌즈 사이가 너무 멀어서 초점이 안 맞거나 '코에 안 걸려서 밑으로 떨어져 버리는' 증강현실AR안경, 또는 손목 밴드나 큰 주머니에 넣어서 차야 하는 마이크. 남성 디폴트는 특히 운동 관련 기술에 많은 듯 하다. (p. 227)

이뿐만이 아니다. 자동차안전평가프로그램에서 사용하는 인형도 남자의 신체평균으로 만들어져 사용되고 있었다. 안전벨트도 임부를 위한 것은 나온 적이 없다. 설계와 계획에서 여자와 여체가 무시되어온 사례들은 차고 넘쳤다. 여자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때에도 남자들의 생각만으로 '이러면 좋을거야' 하는 게 아니라 여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하는데... 그게 참... 많이 어려운가;;;

<의료>

역사적으로 남체와 여체는 크기와 생식기능을 제외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른 게 없다고 간주되어 왔다. 그래서 의학교육은 오랫동안 남성 '표준'에 초점을 맞추고 그 범위를 벗어나는 모든 것에 '이례적' 또는 심지어 '비정상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몸무게 70kg의 일반 남성'이 너무 많이 언급 된다. 마치 그가 남녀 모두를 대표하는 것처럼. 여자가 언급될 때는 표준 인류의 변형처럼 소개된다. (p. 248)

하지만 여체는 작은 남자의 신체와 같지 않다. 학자들은 인체의 모든 조직과 장기에서는 물론이고 흔한 질병의 '유병률, 추이, 강도'에서도 남녀 차이를 발견했고 심장의 운동, 폐활량도, 질병마다 그 질병에 걸릴 확률도 남녀 차가 있음을 밝혀냈다. 남체와 여체는 세포 단위에서까지도 다른데, 지난 20년간 여자가 단순히 '작은 남자' 가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히 증명되어 오고 있음에도 의학계의 젠더 데이터 공백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크다.

여자들이 훨씬 많이 앓는 병에서조차도 동물시험에 암컷을 포함하지 않고, 진단을 함에 있어서도 여성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성이 고통을 호소해도 심리적인 문제라며 우울증 약을 처방하는 의사가 영미권에는 정말 많은가보다.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의 <의료> 부분의 내용과 동일하지만 보다 상세하게 분석한 책이었다. 이 책을 통해 다시 의료계의 현실이 여전한 것을 확인하니 너무 씁쓸하고 답답했다.

<공공생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영국은 공공서비스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문제는 이런 예산 삭감이 사실 절약이라기 보다는 비용을 공공부문에서 여자들에게 떠넘기는 형태라는 것이다. 어쨌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2017년 추산에 따르면 50세 초과 잉글랜드인 10명 가운데 1명은 공공서비스 예산 삭감 결과, 필요한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돌봄 노동의 책임은 대개 여성에게 돌아갔다. (p. 301)

우리는 여자들이 하는 무급 노동이, 여자 개인이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자기 가족을 개인적으로 돌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회는 여자들의 무급 노동에 의존할 뿐 아니라 그로 인한 혜택을 입는다. 우리 모두가 낸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서비스 예산을 정부가 삭감한다고 해서 그 서비스의 수요가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는다. 단지 여자들에게 노동이 떠넘겨질 뿐이다. (p. 311)

정부의 공공서비스 예산운용이 여자의 돌봄노동과 직결되는 구나 를 깨달았다. 예산을 줄인다고 그 수요가 사라지지 않고 결국 여성이 떠안게 되는 노동이라... 저자는 이 문제가 노동을 떠안는 것 자체보다도 전사회적으로 사회비용의 낭비임을 밝히고 있다. 예산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여성의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더 나은 것임을, 즉 문제는 재원부족이 아니라 (젠더에 따른) 지출 우선순위라고 강조한다.

공공생활 문제는 여성정치인의 진출과는 관련이 있었다. 여성정치인의 존재여부가 여성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한 법에 실질적인 차이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여성이 정치인이 되는 과정은 쉽지 않아 보였다. 정치인이 되고 나서도 그렇고...

<재난>

우리가 여성을 배제하는 진짜 이유는 인류 절반의 권리를 소수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 354)

여자는 이미 전쟁, 팬데믹, 자연재해의 영향을 남자보다 훨씬 많이 받고 있다. 트라우마, 강제이주, 부상 및 사망은 남녀가 똑같이 겪지만 여자는 여성만이 겪는 피해까지 겪어야 한다. (p. 361)

여자는 전쟁에 뒤따라오는 사회질서 붕괴의 영향을 남자보다 훨씬 많이 받는다. 소위 분쟁 후 상황에서도 강간과 가정폭력의 수위는 여전히 극도로 높다. (p. 362)

전쟁을 벌이는 나라들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전쟁에서 생기는 난민도 있지만 자연재해로 인한 난민도 많다. 난민이 되면 집단 수용시설에 일단 머물게 되는데 이 수숑시설에서의 위생과 성폭력 문제는 더욱 암담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더이상 갈곳 없는 막다른 골목에 처한 여성들에게 가정폭력과 성폭력까지 겹쳐지는... 이럴거면 재난에서 살아남은 것이 오히려 저주스러워지는;;; 저자는 다양한 재해의 사례들을 통해 알려주고 있었다. 여성들인 재난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는 것을.

성별/젠더 데이터 공백에 대한 해법은 분명하다. 여성 진출 공백을 매우면 된다. 의사결정과정에, 연구에, 지식 생산에 참여한 여자들은 여자를 잊지 않는다. 여성의 삶과 관점이 빛 속으로 나오게 된다. 이는 세계 곳곳의 여자들에게도 이롭지만, 인류 전체에게 이로운 경우도 많다. 그래서 다시 프로이트의 '여성성이라는 수수께끼'로 돌아가보면 해답은 처음부터 우리 눈앞에 있었다. 여자들에게 물어보기만 했으면 됐던 것이다. (p. 387)

읽는 내내 이정도였나...싶었다. 이렇게까지 여성이 소외되어 왔던가... 싶었다. 개인적 경험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내용들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여성이라면 공감가는 사례들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마음이 안타까웠다.

여성만 화장실에 줄을 서고 여성만 가로등 없는 버스정류장이 무섭고 여성만 만원 지하철에서의 성추행을 감내해야 하고 여성만 돌봄노동에 의하여 경력이 단절되고 일상용품이든 산업용품이든 여성의 사이즈는 고려되지 않으며 여성의 신체에 대한 연구는 예산을 지원받지 못하고 여성의 무급노동이 당연시되다 못해 사회적 재난이 겹치면 여성의 안전은 더욱 심각한 위협을 받는 현실 속에서 여권을 인정해달라는 말은 그동안 무시되어 온만큼 여자의 권리를 더 생각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같은 인간으로서 남성과 동등한 인권을 부여해달라는 하소연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여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저자의 이 길고긴 이 두껍고두터운 하소연의 목소리를 과연 누가 들어줄 것인가... 작년 겨울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팩트풀니스' 여성버전이랄 수 있는 이 책이 그만큼 읽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너무 과한 바람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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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에렉투스의 유전자 여행 - DNA 속에 남겨진 인류의 이주, 질병 그리고 치열한 전투의 역사
요하네스 크라우제.토마스 트라페 지음, 강영옥 옮김 / 책밥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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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속에 남겨진 인류의 이주, 질병 그리고 치열한 전투의 역사

대륙을 넘나들며 인류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유전자 여행!

 

고고학은 첨단의 과학기술을 가장 필요로 하는 학문 분야인 것 같다. 과거에는 유물과 유적을 중심으로 역사를 연구했다면 최근에는 DNA 분석을 통해 새로운 사실들이 많이 밝혀지고 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인류의 진화와 고인류 문명사는 어쩌면 몇 년 안에 크게 바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는 A 다음에 B, B 다음에 C 하는 식으로 순차적으로 차근차근 진화해 온것이 아니다. 동시대에 다양한 고인류가 존재했고 그들은 서로 관계를 맺었다. 인류가 시작한 문명도 4대강이 출발점이라던가 농경과 정착이 시작된 후 종교와 중앙집권이 생겨났다던가 하는 상식에 가까운 역사지식도 정설의 자리를 내놓을 지도 모른다. 인류는 밝혀진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고 DNA 들은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 밝혀질수록 인류의 역사는 곧 이주의 역사라고 저자는 알려주고자 한다.

이 책의 집필 아이디어는 2015년 '난민의 여름' 이라는 진통을 겪으면서 탄생했다. 이후 불붙기 시작한 수많은 사회적 논의에서 고고유전학은 큰 역할을 했다. 태곳적부터 유럽에서 나타났던 대이동 행렬은 이곳 유럽에서 시작되어 서구 세계의 기반을 다졌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책에서 다룰 주제다. (p. 8)

공동 저자인 토마스 트라페는 크라우제 박사의 지식을 취합해 짜임새 있는 글로 만들고, 이 글을 동시대의 프레임으로 재구성해, 최근 정치적 논의로 편입시키는 작업을 맡았다. 트라페는 다년간 크라우제의 기사를 전문적으로 다루며 크라우제와 공동 작업을 해왔으며, 오늘날의 국수주의와 민족들의 사고 총체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p. 9)

이 책의 저자는 2명으로 한 명은 고대 DNA 연구자이고 한 명은 과학 및 정치분야 전문기자다. '난민' 문제가 급부상하면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난민' 수용을 어려워 했다. '난민' 수용력이 떨어지는 나라일수록 자국민에 대한 난민과의 차별성, 이질성을 강조하곤 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수백년 수천년 정도가 아니라 수만년 이전의 역사를 헤집으며 인류가 얼마나 섞여왔는지, 유럽내에서 뿐만아니라 동양과 서양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섞여온 이주의 역사인지를 DNA 를 통해 증명해내고자 한다. 따라서 이 책의 서술방식은 크게는 연대기식이면서 동시에 중간중간 현재와 교차되며 쓰여지고 있어서 자연스러운 흐름을 잡아가며 읽기가 쉽진 않았다. 하지만 고고학적 최신 정보를 습득하기에도 고인류와 지금의 현실문제를 접목시키기에도 신선한 관점을 제공해주는 유용한 책이었다. 무엇보다 각 장 마다 앞서서 제시되는 지도들이 훌륭했다. (그래서 양쪽의 책장 사이에 끼어 보이지 않는 중간부분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ㅠㅠ)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인류 가계도의 연대표는 좀 더 수정이 필요하다.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약30만년 전이 아니라 약 50만년 전에 갈라졌다는 것이다. 현생 인류로부터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공통 조상이 분화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45만년 전이 아니라 약60만년 전인 셈이다. 데니소바인이 원시 네안데르탈인의 mtDNA를 갖고 있고 후기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인류와 비슷하다는 발견은 학자들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감격적인 사건이었다. (p. 33)

작은 뼛조각에서 또 극미량의 뼛가루만으로도 DNA 분석은 많은 결과물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mtDNA 분석을 통해 '유전자 시계'를 계산하여 '미토콘드리아 이브'를 찾아내는 과정은 다른 책에서 간략하게 읽은적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좀더 상세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현대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 조상의 혈통은 최소 7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종인 침팬지로부터 분화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90만년 전 호모 에렉투스의 혈통이 탄생했다. 호모 에렉투스는 몇만 년 내에 전 유럽과 유라시아 대륙 일부로 퍼져 나갔으며, 아프리카를 떠난 최초의 원시 인류였다. 호모 에렉투스는 유라시아 대륙에서도 계속 발전하다가 결국 멸종했다. 반면 아프리카에서는 지금으로부터 60만년 전 호모 에렉투스 혈통이 나타나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현생 인류로 발전했다. 어떤 경로와 분기점을 거쳐 아프리카에서 인류의 진화가 이루어졌는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하지만 현재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하다. 우리의 유전적 뿌리는 아프리카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p. 48~50)

모든 인류의 공통조상은 결국 한 뿌리다. 거슬러올라가고올라가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 수천년을 걸쳐 갈라지고갈라진 지금의 민족들이 서로 다르다고 하는 것이 무어 그리 큰 차이겠는가 하고 저자는 원론적 전환을 제기하는 듯하다.

진화의 전환점이 된 사건은 직립보행이었다. 이것은 최근 읽은 다른 인류의 진화관련 책에서도 여러 차례 확인할 수 있었다. 뇌의 발달이 먼저가 아니고 직립보행이 먼저였다. 그 차이가 침팬지와 인류를 분화시켰다. 이 책에서도 '직립보행' 관련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3만 9000년 전, 안 그래도 열악했던 유럽의 생활 환경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환경이 되었다. 화산 폭발은 아프리카에서 새 이주민들이 몰려오기 전에 이미 그 지역을 떠나, 주로 서부 유럽에 거주하던 네안데르탈인에게는 최후의 일격이었던 셈이다. 물론 다른 자연재해도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에 일조했을 것이다. 어쨌든 최후의 네안데르탈인은 지금으로부터 약3만 9000년에서 약3만 7000년 사이에 살았고, 현생 인류가 유럽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p. 60)

지금으로부터 약3만2000년 전 점점 매섭게 몰아치는 추위를 피해 중부 유럽에서 남서부 유럽으로 이동했다. 마지막 최대 빙하기에 피레네산맥이 빙하로 뒤덮이면서 다른 유럽 지역과 격리되었다. 중부 유럽의 기온이 급강하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피난에 성공한 사람은 극소수였다. 하지만 그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이들의 유전자는 아직까지 유럽에 남아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 8000년 전, 대빙하기 말에 사람들은 이베리아반도에서 중부 유럽으로 돌아갔다. (p. 65)

이후 3000년 동안 유럽에서는 유전자가 서로 다른 이베리아반도와 발칸반도의 개체군들이 혼합되면서 상대적으로 동질적인 그룹이 형성되었다. 이 시기 유럽과 아나톨리아의 유전자 결합을 처음으로 입증할 수 있었따. 수천 년 동안 상당히 발달한 기술 문명을 갖고 있던 푸른 눈과 검은 피부의 수렵민과 채집민이 유럽 대륙에 나타났다. 이 개체군은 유전적으로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빙하가 녹으면서 얼음 장벽이 서서히 사라졌고 인간의 이동이 더 많아졌다. 사회 교류가 활발해졌고 유전자 풀에서 강한 동화현상이 나타났다. (p. 66,67)

원시인류의 시작은 채집민이었다. 그리고 일부가 농경민이 되었다. 그때에도 채집민과 농경민은 공존했다. 그리고 섞였다. 유전자적으로는 점점 같아져갔다. 기원전 몇천년 전에 이미 서로 비슷하게 동화된 DNA를 가진 인류가 지금 서로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저자의 대답은 NO다. DNA 구성비율이 다를뿐 지금의 인류는 같은 '종' 이라고 저자는 차근차근 DNA 증거들을 제시하며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자꾸 세계 곳곳의 현생 인류가 결국 똑같은 사람임을 설명하는 것은 이 책의 초반에 제시한 이 책의 출발점과 연결되어 있다.

1만1700년 전이 되어서야 유럽은 다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인 홀로세의 온난기가 시작되면서 날씨는 점점 따뜻해졌다. 어쨌든 이후 현재를 살고 있는 인류의 관점에서 빙하기는 끝난 것이다. 홀로세 초기는 인류에게 뜻밖의 행운을 안겨주었다. 진화론적 의미가 있는 사건, 즉 인류가 직립보행을 하면서 역사의 변혁이 시작되었다. 직립보행의 기원은 유럽이 아니라 근동 지방이었다. 이 지역은 북부 지역보다 날씨가 훨씬 따뜼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후의 혜택을 한껏 누릴 수 있었따. 드디어 신석기 시대로 접어들었다. 수렵민과 채집민에서 농경민과 가축 사육자로, 유목민에서 정착민으로 생활에 변화가 일어났다. (p. 74, 75)

날씨가 따뜻했을때는 먹거리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이미 도구를 만들어 쓸 줄 알았지만, 잠깐 머물렀던 곳에 도구들을 그냥 두고 갔다고 한다. 어디로 가든 주변의 나무와 돌로 또 새로 만들면 되니까. 하지만 종족이 번식하고 날씨의 변덕으로 먹거리가 부족해졌을 때 배고픈 수렵과 채집이 아닌 정착해 곡식을 기를 선택을 하는 인류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생활방식의 변경은 그러한 환경에 적응하는 돌연변이를 거듭하게 했다. 예를 들면 피부색 같은 것 말이다.

초기 농경민의 피부색은 선택압력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이들은 더 밝은 피부를 가질 때만 생존에 필요한 비타민D를 풍부하게 생성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피부를 더 밝게 만드는 돌연변이가 여러 차례 필요했다. 이러한 돌연변이를 거쳐 더 밝은 피부색을 갖게 된 아나톨리아인들은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살았으며 자녀도 더 많이 가질 수 있었다. 아나톨리아인들이 피부색은 농경 문화와 육류가 적은 식생활의 정착을 통해 나타났다. 이러한 진화론적 발전은 유럽 전역에서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위도가 북쪽인 지역의 사람들일수록 피부색은 더 밝았다. 반면 수렵민과 채집민은 이러한 선택압력을 받지 않았다. 이들은 육류와 어류를 풍부하게 섭취했기 때문에 비타민D를 공급받기 위해 더 밝은 피부를 갖지 않아도 된 것이다. (p. 91)

어두운 피부가 밝아지는 돌연변이는 육류나 어류에서 섭취할 수 있던 비타민D를 곡물위주로 먹거리를 충당하는 농경민이 섭취할 수 없게 되면서 피부와 햇빛반응을 통해 비타민D를 얻을 수 있도록 환경에 적응한 생존형 자연선택이었다. 사는 환경과 먹을 것이 달라지면서 피부색과 눈동자색과 머리색이 달라진 것이다. 그러니 그러한 색깔 때문에 우월성을 따질 근거는 없는 셈이다.

노동은 인체에 부담을 주었고, 이들이 섭취하던 음식도 소화가 잘 되는 편이 아니었으며, 건강에 가장 좋은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석기인들은 대가족 제도를 발명해, 장기적으로 후손들의 생존 가능성과 총 개체군을 증가시켰던 것이다. 큰 욕심 없이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수집민과 채집민을 보며 농경민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p. 103)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 가 생각났다. 인류는 농경을 시작하면서 더 질낮은 식사와 더 힘든 노동을 하게 되었다는... 그러나 이또한 어쩔 수 없는 당대의 환경에 따른 적응 과정이기도 했다. 다만 정착생활을 하고 가축과 함께 살면서 위생은 더 열악해지고 그에 따라 전염병도 발달했다는 것이 인류가 자연을 함부로 소모하는 것에 따른 필요악처럼 느껴져서 그 필요악이 진작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씁쓸해졌다.

정확하게 따지자면 스텝DNA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폰투스 스텝DNA는 북부 유라시아 조상뿐만 아니라, 신석기 문화가 시작되었고 서부와 동부의 유전적 특성이 다른 비옥한 초승달지대의 동쪽 지역, 즉 현재 이란 지역의 이주민에서 유래한다. 지금으로부터 4800년 전 유럽에서, 예전에 비옥한 초승달지대에서 이웃으로 지내던 2개의 유전적 요소가 맞붙었다. 현재의 유럽인은 유럽과 아시아 출신 수렵민과 채집민의 후손일 뿐만 아니라, 그 비중이 비옥한 초승달지대 서부와 동부 거주자의 60퍼센트에 달한다. (p. 121)

일반적으로 스텝 유전자는 현재 유럽 북부 지역에서 우세하고, 농경민DNA는 스페인에서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를 거쳐 발칸 남부 지역까지 압도적으로 많다. 스텝지대 거주자들이 평지를 선호한 경우, 현재의 폴란드와 독일을 거쳐 프랑스 북부와 영국 방향으로 가는 길이 서부 유럽으로 가는 최단 경로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4200년 전 반대 방향의 이동이 나타났다. 스텝 유전자는 서부로 이동하지 않고, 농경민DNA를 축적시켜 동부로 이동했다. 그래서 현재 저 먼 러시아 중부와 심지어 알타이 산맥 사람들이 서부 유럽인과 동일한 아나톨리아 유전자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이다. (p. 127)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올수록 문명에 기록된 역사와 연결되어 더 흥미로웠다. 이제 원시적 고인류가 아니라 문명을 발달시키는 인류가 되어가고 있는 중인데 이때에도 역시 상호간 교류에 의해 여전히 유전자교환과 동일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수만년 수천년에 걸쳐온 유전자가 수백년 사이에 확 달라졌을 수는 없을 것이다. 스텝지역 유전자를 읽으면서 말과 우유에 대해 얻게 되는 상식은 일종의 보너스처럼 재미있었다.

지금으로부터 4200년 전 청동기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소통할 수 있었던 것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아마 스텝지대 출신 이주민들이 유럽에 새로운 언어를 들여왔기 때문인 듯하다. 이제 유럽은 한 가지 언어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p. 139)

DNA 분석을 통해 인류의 어원까지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현재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언어는 전 세계 30억 인구가 사용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언어라고 한다. 지금은 세계에 6500여가지의 언어가 있다고 하는데, 고어로 올라갈 수록 그 뿌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DNA로 확인하는 과정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청동과 청동으로 만든 제품은 사회, 가족, 개인의 생활에 점점 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 시기가 소유물, 수직적 서열 구조, 가부장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는 사실은 유전적으로도 입증되었다. (p. 164)

이제 우리는 8000년 전과 5000년 전 유럽 대륙에 있었던 유전자 이동이 이후에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 이 시기 유럽에서 번성했다 사라진 대제국들에서는 아무런 유전적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p. 174)

역사시대가 된 이후 유전전 변화가 없다는 말은 즉 현재의 세계 인류가 유전적으로 동일한 인간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수많은 제국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동안 스스로가 우월하다고 주장한 민족들이 나타나고사라지고를 반복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인식이 존재하지만, 유전자는 모두가 다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현재 유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수천 년 전 이주의 결과물이다. 그 안에 끊임없는 교류, 억압, 싸움, 모든 아픔이 녹아있다. 따라서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이러한 변혁으로 인한 희생자들이 후손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유럽의 이주는 언제나 존재했던 극적인 사건이다. 게대가 우리는 이 시대의 유전자 덕분에 과거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다.이주가 없었다면 현재의 유럽 대륙은 존재하지 못했다. 이주가 없었던 선사시대 유럽에는 사람이 살지 않고 동물과 식물군만이 존재했다. (p. 241)

유전학은 역사 기술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유전학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그 방법을 배워야 한다. (p. 245)

인종 갈등에 관한 유전적 근거는 더 이상 존재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이것은 유전학이 일궈낸 성과다. (p. 249)

인종 혹은 혈통이 아니라 있는 그 자체로 한 인간을 파악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DNA 믹스에 과거의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 10년 후면 의학계에서는 이러한 평등주의적 관점을 표준으로 삼게 될 것이고, 유전자 분석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p. 253)

민족과 인종에 대한 이견은 늘 있어 왔다. 하지만 저자는 DNA 분석을 통해 그런 것은 없다고 말한다. 유전자 분석 결과 (히틀러의 우생학은 말할 필요도 없고)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고유한 유전자는 없었고, 아프리카인들보다 유럽인들의 지능이 우수하다는 근거도 없었다. 이러한 유전자 분석은 크리스퍼를 통해 맞춤형 인간을 만들고자 하는 유혹을 일으킬 정도로 과학기술은 빠르게 발달하고 있는 중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라는 속도가 아니라 어떻게 왜 라는 가치를 따져보는 태도일 것이다.

밖으로 보여지는 모습으로 판단하는 인류는 다 제각각인 것으로 그렇게 우열을 가릴 수 있을 것 같지만 DNA 는 모두가 동일하고 평등함을 증명하고 DNA의 변천과정은 이주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음을 증명하는 듯 했다. 프롤로그에서 밝혔듯이 저자는 "고고유전학은 복잡한 논의를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고, 지난 수천 년간 인류의 이동과 이동성이 없었더라면 유럽이 이토록 눈부신 발전을 이룩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p. 8) 고 한 말을 체계적으로 밝히고 있었다. 마지막장에서 저자가 직접 질문하고 있진 않지만 책을 다 읽은 독자를 만난다면 왠지 물어볼 것 같다. '난민수용'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이주민에 대한 생각은 어떠하냐고.

고고유전학 연구 결과에 의하면 과거에도 현재에도 '순수' 유럽 혈통을 가진 사람은 없다. 유전자 분석으로 과거를 추적해보면 우리 모두는 이민자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다. (p. 7)

 

 

8장과 9장은 책의 본래 흐름에서 살짝 벗어난 번외 내용처럼 느껴졌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내용들이었다. 유전자 분석을 통한 페스트, 한센병, 매독, 발진티푸스, 결핵 의 전파와 원인분석은 기존에 역사에서 배웠던 상식을 넘어서고 있었다. 고고학도 역사도 결코 멈춰진 학문이 아니라 새롭게 뒤집어질 수 있는 학문임을 다시금 느꼈다. 무엇보다 이러한 질병의 역사를 읽다보니 작금의 코로나시대에 '세균과 바이러스의 이동'이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이러하든저러하든 DNA 가 알려주는 것은 이주와 이동이 막는다고 막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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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의 헌법 이야기 - 인간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역사
김영란 지음 / 풀빛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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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역사

우리 헌법은 무엇을 향해야 하는가?

 

 

사회가 확대되고 혼란해질수록 기본에 대한 인식은 중요하다. 국가와 사회체제질서의 기본은 법에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시민이 다 법학자가 될 수는 없으므로 누구나 법전문가처럼 법을 잘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수많은 조항을 매달고 있는 법들과 법 중의 법이라고 할 수 있는 헌법은 다르다. 헌법에 대한 기초만 제대로 알고 있어도 우리는 법에 대해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 시작을 헌법의 역사에서 시작하는 것은 재미있고도 유익한 출발점으로 보인다.

저자는 우리 헌법에 많은 영향을 끼친 네 나라 즉,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 의 헌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 헌법 이해의 기초를 마련해주고 있다. 또한 쉬운 질문에 대한 답을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이야기처럼 술술 읽힘과 동시에 핵심사항이 저절로 정리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서술형 질문에 대한 정답모음집 같은?! ㅎㅎ

'차례'에서 확인되듯이, 영국의 대헌장은 헌법의 주춧돌이 되었고 프랑스 혁명은 헌법에 인권을 불어넣었으며 미국 독립선언서는 헌법에 살을 붙이고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은 현대 헌법의 기틀이 되었다. 이 네 나라의 헌법 형성과정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들의 헌법에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 네나라의 역사가 세계역사의 주름을 잡았었고 그러한 역사를 바탕으로 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우 헨리2세 시대에 와서 지역마다 다르게 적용되던 관습법 대신 나라 전체에 적용되는 하나의 공통된 법체계가 성립되었다. 보통법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체계 마련으로 헨리2세는 '법의 아버지' 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후 왕과 의회의 권력경쟁 속에 영국의 대헌장이 만들어졌다. 여러번의 수정을 거친 대헌장은 '법의 지배'라는 개념을 만들어냈기에 '헌법의 기원'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신기했던 것이 영국에는 헌법이 따로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영국에는 따로 헌법이 없다는 게 사실인가요?

영국은 우리처럼 하나의 문서로 된 성문헌법을 가지지 않은 나라 중 대표적인 나라지요. 1215년의 대헌장과 1628년의 권리청원, 1689년의 권리장전이 영국의 헌법정신을 담은 3대 문서라고 합니다. (p. 62)

'헌법의 기원'이 된 개념을 만든 나라 영국은 여전히 성문헌법 없이 헌법적 효력을 가지는 관습법에 따라 다스려지고 있다고 한다. 워낙 오랫동안 판례가 축적되어 있다보니 이것이 헌법적 관습법의 일부로 형성되어 있어서 이런 방식이 가능하다는데 그런 방식이 현대에도 가능하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성문헌법이 없기에 좀더 자유롭게 토론하고 충분한 숙려기간을 가지며 합의하게 되는 것일까... 하지만 왠지 좀 위험해 보이기도 하고;;;

프랑스 혁명은 인권과 연결되어 다방면에 회자되는 사건이다. 하지만 1789년의 혁명 외에도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프랑스 혁명기간은 거의 100년에 가까운 혼란의 시기를 포함한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배경에는 재정파탄이 가장 큰 이유였는데, 이 재정 파탄의 직접적 원인은 미국독립전쟁을 과도하게 지원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의 시발점으로 볼 수 있는 '바스티유 함락 사건'은 왕과 대표단의 협상내용이나 경과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우발적으로 벌어진 사건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사회를 불러올 시대적 여건은 충분히 차오른 때였기에 '인권선언(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이 탄생할 수 있었다.

프랑스의 인권선언은 영국의 권리장전이나 미국의 독립선언보다 폭넓은 인간의 권리를 선언하였다는 평가도 있으나, 당시 제헌의회를 지배하던 부르주아의 특성이 반영되어 자유와 평등을 형식적으로만 인정했을 뿐이라는 비판도 많았습니다. (p. 99)

여담으로 의장석 왼쪽에는 왕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데 반대하는 의원들이, 그리고 오른쪽에는 찬성하는 의원들이 자리했는데 이후로 '좌익' '우익' 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뉴스나 언론에서 나오는 '좌파'나 '우파'라고 하는 말의 유래가 되었지요. (p. 101)

역사로 읽는 법이야기는 그냥 역사만 읽는 것과 또다른 재미가 있었다. 영국의 법을 이야기할 때는 '로빈 후드'이야기를 프랑스의 법을 이야기할 때는 '장발장' 과 '두도시이야기'를 곁들여 하니 소설 속 내용들이 생각나면서 더 이해가 잘 되는 기분이었다.

보통 미국은 아무도 살지 않은 곳에 유럽인이 건설한 나라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원주민의 존재를 잊어서는 안 되겠네요.

그 땅에는 원래부터 살던 사람들이 있었고 초기 어떤 자들은 원주민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이어 가기도 했지요. 그러니까 미국 역사를 이야기할 때는 원주민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게 옳습니다. (p. 131, 132)

역사를 읽을 때 균형잡은 시각은 굉장히 중요하다. 미국의 법과 미국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그 땅에 살았던 원주민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여하튼, 미국은 유럽에서 건너온 개척자들이 만들었고 프랑스와 영국의 전투에서 영국이 승리하면서 미국은 거의 영국의 식민지화 되어 간다. 하지만 개척자들의 자치권이 영국 본토에서 제약에 걸릴 수록 독립의 현실적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갈등 끝에 미국의 독립이 선언된다.

미국 독립선언서가 영국의 권리장전, 프랑스의 인권선언과 함께 인간의 권리를 선언한 문서라고 평가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장 잘 알려진 이유로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창조주로부터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인류가 정부를 조직했는데 인민의 동의로 탄생한 정부가 이 권리를 어긴다면 인민은 저항권을 가진다고 독립선언서는 밝힙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뒷부분에서는 영국의 왕이 그와 같은 인민의 권리를 훼손해 왔음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면서 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했어요. 모든 사람이 하늘로부터 권리를 부여받았고 저항권을 가진다는 선언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p. 144)

유럽에서 중앙집권화가 가속화될 때 종교는 큰 역할을 했다. 신과 인간의 사이에 교황이나 왕이 있었다. 그런데 미국의 독립선언서에서는 이 중간존재를 걷어낸 것이다. 신은 인간에게 직접 권리를 부여받았음을 천명하면서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희미하게 남아있던 왕의 존재는 완전히 지워졌다.

프랑스왕이 영국왕에게 패전의 복수를 하려고 미국의 독립을 지원하느라 프랑스왕은 자국의 재정을 파탄냈는데 그렇게 지원한 미국의 독립이 프랑스왕을 몰락시킨 혁명을 유발하는 것을 보면 역사란 정말 한치앞도 내다보기 힘든 것 같다.

혼란이 계속되자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미국에도 군주제를 도입하자는 주장과, 군주제는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강력한 중앙정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두되었어요. 그 외에도 앞서 제정한 연합규약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p. 148)

당시 사람들은 왕정이나 대통령제나 특별히 다르다고 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평생 연임이 가능한 대통령제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던 거지요. (p. 154)

미국이 독립은 했으나 워낙 큰 땅덩어리에 각 주마다의 연합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혼란한 시기에는 강력한 중앙집권에의 향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프랑스혁명도 결국은 나폴레옹을 황제로 등장시켰고 독립된 미국도 평생 재임가능한 강력한 대통령제를 승인했다. 뒤에 나오지만 히틀러의 등장도 이와 비슷한 배경이다. 이후의 발달과정 속에서 많은 수정이 있게 되지만, 자발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혼란과 강력한 지도자 사이의 균형은 늘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다...

바이마르 헌법의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로자 룩셈부르크입니다. 룩셈부르크는 사회주의 이론가로 활동하면서도 폴란드의 사회주의자들과도 맞섰고 독일 사회민주당이 주장한 수정주의와도 맞서는 노선을 걸었지요. (p. 174)

룩셈부르크는 점진적으로 권력을 장악하려는 사회민주당의 수정주의는 자본주의를 돕고 혁명을 방해할 뿐이라며 비난합니다. 심지어 자신을 칭찬했던 레닌과도 맞섰는데, 직업 혁명가의 정치적 폭력을 옹호하는 레닌의 노선은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는 자발적 혁명인 사회주의와 다르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p. 176)

가장 현대적인 헌법이라는 독일 바이마르 헌법 이야기를 시작함에 있어 로자 룩셈부르크 에서 출발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똑똑했고 이상주의자로 보이는 혁명가였는데 그녀가 바이마르 헌법 어떤 조항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끼친것인지 알수 없어서 아쉬웠다. 룩셈부르크가 사망하고 얼마안되 치뤄진 총선에서 여성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점이 관련이 있었을까...

이 소설(알퐁스 도데 의 마지막 수업)은 알자스-로렌 지방의 주민들의 상황과는 관련 없이 프랑스에 퍼져 있던 반독일 정서를 프랑스 작가가 작품에 반영한 결과물이라는 견해가 많아요. <마지막 수업>은 우리에게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어 수업을 하지 못하게 한 일제의 정책을 상기시켜서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읽혔지만 역사적 배경은 전혀 달랐던 거지요.

그래서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일본어로 마지막 수업을 하면서 슬퍼한다는 패러디가 만들어졌던 거군요. 소설도 얼마나 시대적 배경을 알고 읽는지에 따라 이해의 깊이가 달라지겠네요. (p. 180)

'마지막 수업' 기억난다. 독일의 지배로 들어가게 된 지역에서 프랑스로 하는 마지막 수업을 안타깝게 그렸던 소설... 그런데 원래 독일의 땅이었던 알자스-로렌 지방을 프랑스가 침략하여 독일어 대신 프랑스러를 사용하도록 강제하다가 다시 독일이 그 지역을 수복하면서 프랑스어 수업을 금지시킨 것을 프랑스 작가가 그렇게 표현했던 것이라니;;;

윌슨 대통령이 말한 민족자결주의 원칙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나라의 식민지에만 적용되는 것이었습니다. 독일을 비롯한 패전국이 내놓은 식민지를 승전국인 영국이나 프랑스가 차지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이 원칙을 주장한 것이지요. 당시 일본은 패전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적용되지 않는 원칙이었어요. (p. 183)

1차대전의 패전국 독일에서 공화국이 된 정치상황은 시민들에게 제대로 인식될 수 없었다. 패전으로 황제는 폐위되고 하루아침에 등장한 민주제는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경제는 파탄났고 사회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오랜 세월 왕정에 익숙했던 사람들중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남아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독일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연합국들과 손잡고 공화국이라는 체제를 받아들이는 것을 자신들에게 강요했다고 생각했기에 민주주의나 공화국에 대한 반감도 커졌습니다. 이전에는 공산당 쪽에서 나왔던 위협이 이제부터는 공화국을 부정하고 민족주의적인 선동을 하는 세력들에서 나오게 되었지요. (p. 193)

혼란한 와중에도 바이마르 헌법은 공포되었고 이원정부제를 도입했으나 애초에 불안정한 연립정부 형태였기에 이를 악용한 히틀러의 등장을 독일 국민들은 환영하기에 이른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해체 과정은 민주주의가 대중과 함께 가지 않으면 극단적인 세력에게 어떻게 이용당하고 몰락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p. 199)

프랑스 혁명기간에 있었던 폭력과 미국 독립과정에 있었던 자치와 독일 공화국의 짧은 집권을 모두 겪어낸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역사는 독립하자마자 닥친 냉전시대와 맞물려 더욱 혼탁한 시간을 보냈다. '신탁통치오보사건'은 읽고 또 읽어도 너무 안타깝고 아쉬웠다. 그때 제대로 알았더라면 분단은 안되지 않았을까...

지금 헌법은 1987년에 전부개정된 헌법인가요

그렇지요, 네 차례의 전부개정에서 세 차례의 개정은 권위주의 정권이 자신의 권력 기반을 튼튼히 하기 위한 개정이지만, 1987년의 마지막 전부개정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로 만들어진 것이고 현재도 계속 적용되는 헌법이지요. (p. 234)

독립되자마자 독재가 이어져왔고 민주항쟁의 불씨가 꺼지기 전에 급하게 수정해야 했던 헌법이 지금에 이르렀다. 헌법에 문제점이 있다고 말할만큼 잘 알지 못하지만 헌법개정논의가 끊임없기 제기되는 것을 보면서 변화된 시대의 가치를 반영시켜야 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만 해볼 뿐이었다.

참고로, 이 책과 '주민의 헌법'이라는 책을 세트로 읽으면 우리나라 헌법에 대한 기초이해는 왠만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역사로 법의 형성과정을 읽는 동안 법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 질문을 숙고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경의, 정의, 숙고 의 감정을 역사와 함께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것 같다.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지 아직 100년도 채 되지 않은 나라로서 민주주의를 향하여 계속 도전해 왔고 '스스로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 실수로부터 배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평가를 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헌법뿐 아니라 근대를 대표하는 여러 헌법의 역사에서 얻은 교훈이 더 좋은 민주주의를 위한 선택의 순간에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며 여기서 긴 여행을 마칩니다. (p.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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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데믹, 끝나지 않는 전염병
마크 제롬 월터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책세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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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제롬 월터스가 제안한 '에코데믹ecodemic'은

생태를 뜻하는 '에코eco'에 전염병을 뜻하는 '에피데믹epidemic'을 합성해서 만든 용어로,

인류가 지구 환경을 파괴한 결과 나타난 생태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된 전염병, 즉 '생태병' 내지 '환경 전염병'을 뜻한다.

 

원제 Six modern plagues : and how we are causing them 은 '6가지 현대적 재앙: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그것들을 야기시키고 있는지' 로 번역는데, 이 책은 6가지 전염병에 대한 원인 분석을 통해 전염병의 근본적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는 책이다. 광우병, 에이즈, 살모넬라DT104, 라임병, 한타바이러스, 웨스트나일뇌염 이라는 이 6가지 질병은 익숙한 이름보다 낯선 이름이 더 많았다. 이 생소한 질병들이 지금의 코로나 사태와 어떤 연결점이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는데, 그 의문은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수의사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난 30년 동안 발견된 새로운 인간 질병들 중 거의 75퍼센트가 야생동물이나 가축에게서 전파되었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므로, 나는 이 조사 결과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렇다고 걱정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소에게 천연두를 받고, 말에게서 감기를 받은 것을 비롯해 오래 전부터 다른 동물들에게 수많은 질병을 얻어왔다. 야생동물은 질병 유발 가능성이 있는 바이러스들을 대단히 많이 보관하고 있는 일종의 창고이며, 그 미생물들 중에는 어느날 갑자기 인간사에 등장한 뒤에야 겨우 정체가 드러나는 것들도 많다. 게다가 어떤 바이러스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에게도 있다면, 그것을 박멸할 방법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 동물 창고들을 파악하고 우리 자신과 그 종 사이에 놓여 있는 자연적인 경계선들을 보존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것뿐이다. (p. 10)

인간이 자연의 영역을 침범할 수록 자연은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한채 인간과 함께 공멸하는 중이다. 그 부산물로 생겨난 수많은 바이러스들과 세균들은 인간과 자연의 공멸을 가속화 시키고 있다. 하지만 인류는 아직 그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1980년대부터 전 세계에서 개구리를 비롯한 양서류가 급격이 줄어들고 있는 이유중 하나는 새로운 전염병들이며 이러한 전염병들은 가재, 꿀벌, 고릴라, 펭귄 등 수많은 종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고 한다. 일부 종은 감염으로 말미암아 멸종 위기에 몰려 있는 상태다. 하지만,

누구나 이런 이야기들을 조금씩은 들어보았겠지만, 우리는 전체 이야기를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단편적으로 들은 사항들을 가지고 이해하는 경향을 보인다. 어쩐 일인지 우리는 전체 그림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은 부분들만 보고 있다. 대중매체는 대개 새 질병과 맞서 싸우는 전투만을 따로 떼어내 다룰 뿐, 수많은 새로운 질병들을 아우르는 더 큰 이야기인 생태학적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이 더 큰 이야기는 인간과 동물들이 새로운 질병에 희생당하고 있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자연 환경에 급격한 변화를 야기함으로써 많은 질병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p. 15)

비록 피해의 규모는 달라져왔을지언정, 불안정한 시대가 닥칠때 전염병을 불러일으키는 생물학적 원리에는 변함이 없다. 종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경쟁하며, 포식자와 먹이 사이에도 경쟁이 벌어진다.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세균이 인간이나 다른 포식자보다 결정적으로 유리해지면, 건강이 나빠지고 더 나아가 전염병이 발생할 수 있다. 인간이든 야생동물이든 가축이든 간에 포유동물들은 같은 '질병 격자망'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병을 일으키는 생물의 종류가 종마다 다를지 몰라도, 그 병원체들은 친척 관계에 있을 때가 많다. 이것은 병원체가 큰 유전적 변화 없이도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옮겨 갈 수 있다는 뜻이다. (p. 17)

나는 이 책에서 현대의 여섯 가지 질병 이야기를 통해 우리 인간이 현대의 전염병을 부양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자 한다. (p. 23)

사회적 평등, 연구, 예방 감시 체제, 현대 의학의 혜택을 강화하는 것도 그렇지만, 자연 생태계를 보존하는 것도 인간뿐 아니라 많은 종들의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인류의 건강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불행히도 우리 모두가 지금 겪고 있는 전염병도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p. 24)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이 책의 얼개를 거의 다 말해주고 있다. 인간에게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질병들은 동물들에게서 오고 있으나 그렇다고 동물들의 잘못이라는 게 아니라 인간이 먼저 동물과 자연의 생태계를 침범했기 때문인데 대중매체를 비롯한 사람들의 관심은 아직 그 큰 그림을 못보고 있다는 것, 그러니 현대의 전염병이 보여주는 큰 그림을 제대로 보기 위해 대표적으로 6가지 질병 이야기만이라도 읽고 나면 앞으로 인류가 무엇을 해야할 지 깨달을 수 있으리라는 것.

이 6가지 질병 이야기를 읽고나면 전염병의 공포보다 인간이 저지른 행동이 야기할 공포가 더 커질 것이다. 그렇게라도 인류가 저지르고 있는 잘못을 깨닫게 된다면 좋으련만...

>> 광우병 - 진보의 어두운 그림자

광우병 이라는 명칭은 낯설지 않다. 광우병에 걸린 미국산 소고기로 인해 촛불시위까지 일어나지 않았던가. 광우병 걸린 소고기를 먹으면 안된다. 분명 막았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소가 왜 광우병에 걸렸는지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니 소가 왜 광우병에 걸렸는지에 관심을 가져보기라도 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1732년 영국에서 양과 염소의 진전병에 대한 기록이 있다. 1936년이 되어서야 진전병의 전염성이 입증되었다. 진전병 매개체는 오랫동안 끓어도, 아주 고온으로 멸균처리를 해도, 아주 강한 자외선을 쪼여도, 심지어 포르말린과 알코올에 푹 담가놓아도 여전히 감염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진전병은 살아 있지 않은 감염 매개체가 일으키는, 뇌를 파괴하는 기이한 전염병이었다. 이들은 완벽한 질병 매개체이다. 이들은 이미 죽은 상태임로 죽일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질병이 진전병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진전병의 친척으로 광우병이 나타났다.

종이 자연적으로 지니게 된 먹이의 경계선을 무시하는 것은 그저 나쁜 행위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p. 50)

"BSE는 동물 단백질을 반추동물의 먹이로 재순환시키는 집약 농업의 결과 전염병으로 발전했다. 수십 년 동안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이 방식이 결국 재앙을 불러오는 처방이었음이 입증된 것이다." 1988년 영국 정부가 재순환시킨 동물 단백질을 가축에게 먹이지 못하도록 금지하자, 몇 년 뒤부터 광우병 발생률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인간과 소가 피해를 입은 뒤였다. (p. 53)

소는 초식동물이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집약농업 아래에서 소들의 몸무게를 단시간에 늘리기 위해 버려지던 도축부산물들이 사료에 첨가되기 시작했다. 동물성 사료를 먹은 초식동물은 그것을 온전히 소화시킬 수 없었는데다가 사료에 이용된 부산물이 감염된 동물들의 것이 무분별하게 섞여들어가면서 소들에게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전염병은 고기를 먹은 인간도 감염시켰다.

>> 에이즈 - 아망딘이라는 침팬지

에이즈는 성병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에이즈는 야생동물을 무분별하게 잡아먹던 인간이 스스로 찾아먹은 바이러스인 셈이었다.

HIV-1 기원 연구를 시작했을 때 저는 의학자였어요. 그 바이러스가 침팬지에게서 왔다는 것을 알고 그 동물들이 어떻게 살육되고 있는지를 보고 나니, 뜻하지 않게 보호론자가 되고 말았죠. 침팬지들은 사냥당해 멸종 위기에 몰려 있어요. 그들이 죽으면 그들이 줄 수 있는 단서들도 사라져요. 목표가 공중 보건을 보호하는 것이든 위기에 빠진 침팬지를 보호하는 것이든 상관없어요. 두 목표는 하나이면서 똑같은 것이니까요. 믿고 싶지 않겠지만, 우리는 동물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니에요. (p. 81)

아프리카에서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는 방법은 야생동물을 사냥해 먹는 것이다. "시장에 가보면 손과 팔이 동물의 피와 고기로 온통 범벅이 되어 있는 여자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 이론적으로 보면, 그 바이러스의 전파를 위한 완벽한 무대가 마련된 셈이죠. 야생동물 고기는 엄청난 바이러스 창고에요. 그 안에 들어있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들이 사냥꾼과 상인에서 그것을 집으로 사오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감염시킬 가능성이 아주 높아요. 우리는 도살할 때 피와 고기에 닿거나 물리거나 아니면 오줌과 접촉했을 때 뭐가 인간에게 전파되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p. 82) 의 문장은 얼마나 많은 새로운 질병들이 나타날지 예고하는 듯 했다. 더구나 코로나 전염을 보며 확인했듯이 지금은 한 지역에서 발생한 질병이 세계로 퍼지는 것은 순식간에 가능해진 시대이다.

>> 살모넬라DT104 - 항생제 내성의 행로

처음 항생제가 발견되었을 때는 인류에게 질병은 종말을 고한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항생제의 진화보다 바이러스와 세균들의 진화가 더 빨랐고 지금도 그러하다. 문제는 그러한 속도가 항생제의 남용으로 인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몸에 다다르기 전에 이미 동물과 물고기 몸속에 항생제들이 가득하고 그 항생제들을 이겨내는 균들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 후에 인간의 몸에 그러한 균들이 들어왔을 때 인간의 몸은 속수무책 당하게 되고 만다.

세균이 항생제에 자주 노출되는 한 가지 환경은 대규모 가축 사육 시설이다. 이런 곳은 대개 비위생적이고 몹시 비좁기 때문에, 생산자들은 소 같은 동물들에게 전염병이 돌지 않도록 자주 약물을 쓰곤 한다. 단기적으로 보면, 동물들을 늘 깨끗하게 돌보는 것보다는 약물을 쓰는 편이 비용이 적게 든다. 또 항생제가 섞인 사료를 동물들에게 지속적으로 먹이면 좀 더 빨리 성장하므로, 생산자들의 소득도 더 높아진다. 게다가 농민들은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기 때문에 새로 태어난 송아지들에게도 항생제를 먹이곤 한다. 이런 생산자들은 새끼를 낳자마자 어미 소를 다시 착유장으로 돌려보내고, 태어난 송아지들은 다른 시설로 보내 수천 마리의 송아지들을 한데 모아 키운다. 어미의 젖에는 천연 항생제가 들어 있는데, 송아지들이 먹을 수 없는 상황이므로 대신 감염을 막기 위해 항생제를 주는 것이다. (p. 93)

인간이 먹기 위한 우유와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소들에게 항생제를 먹인다. 그것도 잔뜩. 항생제를 먹은 가축의 몸 안에서는 내성이 생기기 시작하고 항생제가 더이상 효과없어지면 더 많이 약을 먹이거나 더 강력한 약을 먹인다. 문제가 있어 보이는 항생제를 법으로 금지시켰을 때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균들이 줄어드는 것이 확인됐지만 제약업계와 가축업계는 법에 걸리지 않는 새로운 항생제를 먹이기 시작했다. 항생제를 직접 먹이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사료에도 있었다.

그런 일이 어디에서 일어났든 간에, 일단 내성을 획득한 살로넬라균은 어육 부산물로 만드는 어분에 섞여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분, 즉 물고기 가루는 소 사료에 흔히 첨가되는 성분이죠. 오염된 사료는 단기간에 유럽, 일본, 미국 등으로 보내져 그 지역의 소들을 감염시킬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전파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을 뿐이죠. (p. 109)

요점은 DT104가 동물, 먹이, 식량 생산, 국제 무역 등이 뒤얽혀 있는 복잡한 이야기라는 겁니다. 이 이야기는 서로 얽혀 있는 많은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이 인공 사료와 집약 농업을 통해 동물들의 자연 생태를 교란하고 지구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것이 다시 우리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거죠. (p. 111)

가축을 빨리 성장시키기 위해 소 사료에는 항생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분들이 들어가곤 하나 보다. 축사와 양어장에서 나온 폐기물 속 미생물들은 물과 토양에 직접적으로 흘러들어갈 수도 있고 그런 환경에서 자란 물고기 몸속에 들어갈 수도 있고 새가 양어장에 들러서 옮겼을 수도 있다. 여하튼 물에도 물고기에도 내성이 생긴 균이 생기고 그런 물고기 부산물로 만든 사료를 소가 먹고 또다른 내성이 생기고 항생제가 듣지 않는 균이 인간에게로 오고... 그야말로 악순환이다.

>> 라임병 - 오래된 숲과 관절염

새로 조성된 공원과 숲 같은 녹지가 많으면 좋은 건줄 알았다. 하지만 근시안적 생각이었음을 알았다. 나무가 심어져 있다고 해서 숲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자연 그대로 둔다는 것은 그 안의 생태계가 정상적 일 수 있어야 하는 거였다. 파괴된 생태계는 곧바로 인간의 집 담을 넘어왔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나무들만큼 죽은 나무들이 많은 숲이 건강한 것일까? 스타일스는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죽은 나무들이 수많은 곤충과 새, 포유동물에게 수백 년 동안 숲에 기여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설명해다. 나무가 쓰러지면, 이끼와 다른 식물들이 그것에 모여들어 자리를 잡는다. 뿌리가 뽑히면서 땅에 난 구멍도 모험심 강한 작은 종의 새로운 서식지가 된다. 하지만 나무들이 죽어 토양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려면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의 많은 숲들이 가지지 못한 호사스러운 시간이 말이다. 스타일스는 이렇게 말했다. "숲 관리자들이 '죽은 나무'를 제거해야 한다고 말할 때마다 실망스럽습니다. 죽은 나무들을 제거하는 것은 건강한 숲을 만드는 서식지를 파괴하는 것과 같아요" 심하게 파괴된 숲은 가장 '특화한' 많은 종들, 즉 새로운 서식지나 먹이 자원에 쉽게 적응할 수 없는 동물들을 금방 잃ㅇ르 수도 있다. 반면에 '일반 섭식자'는 변화에 쉽게 적응한다. 특화한 종은 숲을 떠나가는 반면, 융통성 있는 일반 섭식자는 때로 자신의 수를 늘려가곤 한다. (p. 126)

다양한 종이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없고 일부 종들만 남아있게 된 숲에는 그 일부 종들이 왕성하게 번식하게 되고 그 급격한 번식을 통해 인간의 영역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 특히 그런 동물들에 붙어사는 진드기들이. 라임병은 진드기들에 의해 옮겨지고 진드기들이 좋아하는 동물들만 남은 숲은 자연정화능력을 잃은 생태계를 다시 일으키지 못한다. 나무와 사슴이 있다고 숲이 아니었던 거다. 생물다양성이 높으면 인간 집단의 라임병 발생률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하는데.. 생물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는 숲은 줄어들고 있다. 숲을 밀고 집을 짓고 새로 나무만 심는다고 숲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데 말이다...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세계를 인간이 살기에 더 적합한 곳으로 만들려는 근시안적 시도들을 하다가, 오히려 질병을 일으키는 수많은 미생물들이 살기에 더 적합한 곳으로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p. 150)

>> 한타바이러스 - 죽음의 봄

'침묵의 봄' 이 생각나는 부제이다. 농약의 위험성을 경고한 '침묵의 봄' 이 DDT 살포는 줄였다 해도 농약의 사용량을 줄이지는 못했을 것 같다. 농약을 뿌리는 이유는 농작물을 먹는 곤충을 없애기 위함인데, 곤충의 생태는 기후와 밀접한 연관이 있고, 그 기후를 망치고 있는 것도 결국 인간이었다.

그 모임에 가보니 나바호족이 그 바이러스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 명확해졌습니다. 우리가 한 일이라고는 그저 바이러스에 이름을 붙이는 것뿐이었죠. CDC가 그 바이러스를 찾아내기 전에, 원로들은 이미 말하고 있었어요. '예전에도 이것은 나타났다. 축축한 겨울이 지난 뒤에, 생쥐들이 많아졌을 때' 나중에 그 바이러스를 연구한 모든 결과가 보여준 핵심 내용이 바로 그것이었죠. 우리는 DNA 분석을 했으므로, 온갖 분석을 하고 그 바이러스의 진화 역사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바호족에게는 전염병이 도는 것을 오랫동안 관찰해온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컴퓨터가 등장해 더 복잡한 통계 분석이 가능해지기 전까지 우리가 사용했던 것과 아주 흡사합니다. 나바호족은 병에 걸린 사람들을 살펴보고, 걸리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했죠. 그런 다음 그들이 어떻게 병에 걸렸는지 결론을 끌어냈어요. (p. 168)

지식이 모여 지헤가 되려면 경험이 필요할텐데, 과학적 지식은 경험만 있는 지혜를 믿지 못하고 증명할 수 없는 지혜는 지식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을 종종 보곤 한다. 평년보다 비가 많이 내리고 나면 창궐했던 전염병에 대해 과학적 지식고 경험적 지혜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지만, 문제는 그 바이러스가 무엇이고 어떤 병을 일으키느냐 보다 그 바이러스를 창궐하게 한 원인이 기후에 있고 엘니뇨와 관련이 있다는 것까지는 두 입장 다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웨스트나일뇌염 - 나일강에서 온 바이러스

미국에서 생소한 병증의 환자가 발생한다. 유사한 증세의 다른 환자가 또 발생한다. 하지만 이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미국내에서 전파될 수 있으리라고 예상할 수 없었던 멀고 먼 지역의 바이러스 였다. 어떻게 온 것일까.

연간 케네디 공항으로 들어오는 해외 승객은 2,000만 명이 넘는다. 이 수치에 매년 합법적으로 케네디 공항을 통해 들어오는 약 4,000마리의 말과 조류, 거북, 어류 등 수천 마리의 다른 동물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수백, 아니 아마 수천 마리의 동물들이 수입 질병을 막기 위해 설치된 검역소를 피해 몰래 들어온다. 또 항공기 선실과 화물칸 승객들의 몸에 붙어 무임승차하는 다리가 여섯 개이거나, 날개가 달리거나, 기어다니는 무수한 작은 생물들을 세어보려 시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퀸스는 문화적 용광로이자, 거대한 배양 접시이기도 하다. 나름대로 퀸스는 사스의 진원지인 중국 남부 광둥성 같은 세계의 거대한 종간 교차로들과 경쟁하고 있는 셈이다. (p. 192)

철새와 세계 여행의 도움을 받아, 그리고 아마도 지구 온난화까지 가세해서, 이 이른바 아프리카바이러스는 세계적인 바이러스가 되어가고 있다. 매연 줄기가 바람에 휩쓸려 가듯이, 웨스트나일바이러스는 그렇게 퍼져가고 있다. (p. 201)

세계화 국제화가 된다는 것은 문명발달의 편리하고 좋은 것들만 오고간다는 것은 아니다. 균도 오고가고 질병도 오고간다. 사람에 의해서만 오고가는 것도 아니다. 계절마다 다른 방향으로 날아다니는 철새도 있고 곤충도 있다. 날아다니는 이동도 규칙이 깨진지 오래다. 지구 온난화는 철새들의 착륙지를 변경시키고 곤충들의 부화리듬을 바꾸곤 한다. 그야말로 언제 어느때 어디서 어떤 새로운 질병이 생길지 모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질병의 치료도 중용하지만 원인과 전파를 알아야 근본적 수습이 가능할 것이다. 과거에 풍토병에 가까운 질병들의 근원지는 아프리카인 경우가 많았지만 (코로나19도 그렇고)사스를 비롯한 최근의 전염병들의 근원지는 항상 중국의 광둥성을 가리키고 있다. 왜일까?

광둥성과 주변 지역에서 주기적으로 출현하는 새로운 인플루엔자 균주들 중에 이런 방식으로 생기는 것들이 많다. 이곳은 1957년에 크게 유행한 아시아 독감과 1968년에 대유행한 홍콩 독감의 진원지였으며, 최근의 '조류 독감'도 여기서 생겨났다. 대단히 위험한 이 조류 독감은 즉시 보고가 되어 감염 가능성이 있는 수백만 마리의 가금을 홍콩의 시장에 도착하기전에 도살한 덕분에 초기 단계에 막을 수 있었다. 광둥 지역은 왜 그렇게 특이한 것일까?

한가지 이유는 이곳 사람들이 수많은 다른 종들과 뒤섞여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 종에 사는 바이러스들 사이에서 이런 식의 유전자 교환이 이루어질 기회가 널려 있다. 이곳에서는 돼지우리와 사람이 사는 공간이 붙어 있기도 하고, 돼지우리 위층에 닭을 키우기도 한다. 따라서 닭의 배설물에 든 미생물들이 돼지의 소화기관으로 들어가 새로운 환경에서 진화할 수도 있다. 또 돼지우리에서 나온 더러운 물은 새우와 초어를 기르는 연못으로 흘러 들어간다. 마찬가지로 바이러스와 세균을 지니고 있는 오리를 비롯한 새들은 이런 연못에 자주 들러 배설물을 쏟아 낸다. 인간의 배설물도 다른 동물들의 배설물과 자주 섞인다. 유전자 교환 가속 문제는 가축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중국 남부 지역에는 요리용으로 수많은 종류의 야생동물들을 사고파는 거대한 시장들이 있다. 이런 곳들도 미생물들이 왕성하게 뒤섞이고, 짝을 짓고, 돌연벼이를 일으키는 풍요로운 장소가 된다. 광둥성의 수도인 광저우 외곽 몇 블록에 걸쳐 뻗어 있는 차우타우 시장에는 고양이와 개뿐 아니라 양서류, 조류, 어류, 파충류 등 광둥 요리사들이 만드는 온갖 기이한 요리에 쓰이는 야생동물들이 넘쳐난다. 이 모든 종들이 상인, 도축업자, 그 날고기를 요리해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과 뒤섞인다. 이렇게 사람과 수많은 종들이 긴밀하게 접촉함으로써, 이 지역은 미생물 용광로가 된다.

물론 사람과 다른 동물들이 뒤섞임으로써 미생물들의 유전자 교환이 집중되는 곳이 중국만은 아니다. 그러나 7,500만의 주민과 수많은 가축과 야생동물들의 드넓은 종간 교차로가 형성되어 있는 탓에, 광둥성은 새로운 질병을 키우는 부화장이 되고 있다. 그리고 홍콩에 가까이 있으므로, 새로운 감염성 미생물들이 비행기를 타고 쉽게 다른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다. (p. 208~210)

모든 생물은 먹어야 산다. 인류의 급속한 팽창은 먹거리의 부족이 늘 문제였고 그렇게 야생의 자연에서 더 많이 먹을 수록 더 많이 병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 관리와 조절은 늘 코앞에 닥친 문제부터 처리하느라 뒷전으로 밀리곤 했다. 단기간의 이익에 집중하며 미래를 굳이 생각지 않고 자연을 미래몫까지 당겨서 마구 써온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더는 그렇게 미뤄둘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 아닐지...

우리는 새로운 질병들이 생태학적으로 어떻게 유래했는지 꽤 많이 파악해왔지만, 이렇게 늘어나는 전염병들을 근절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새로운 치료법과 치료약 개발에만 몰두해서는 그 일을 해낼 수 없다. 우리는 원인을 치료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건강의 토대가 되는 생태계 전체를 보호하고 복원해야 한다는 의미다. (p.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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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와 함께 빵을 에프 그래픽 컬렉션
톰 골드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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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최고의 일간지 <가디언>에 연재된 책과 문학에 대한 너무나 문학적인 '유머 카툰' 컬렉션!

'애서가들의 만화가'로 유명한 톰 골드는 문학 비평과 대중문화의 세계를 한데 엮어 간결하고 멋지게 연출된 카툰을 선보인다.

 

카툰.. 그러니까 이 책은 만화책이다. ^^

하드커버에 톤다운된 컬러들과 성의있는 졸라맨들이 깔끔하게 그려진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다.

그 중에서도 책읽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에게 통할만한 냉소적인 풍자가 키득거림을 자아내게 하는 유머툰이다.

저자는 책을 정말 좋아하는 애서가임이 분명하다.

첫 장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우리의 친애하는 책들…'이라며 작가들이 첫 장에서 누군가를 추모한다며 기리는 문구를 적어놓듯 자신을 떠나간 책들을 먼저 애도?하며 시작한다. 그렇게 유명을 달리하신 책들을 예를 들자면 목욕물에 빠짐, 아기에에 공격당함, 버스에 두고 내림, 지하실에 있는 상자 중 하나에 있을지 모르겠음 등등등 ㅎㅎ

 

 

저자의 서재는 책들로 빼곡하다. 책들의 구성을 알고 나면 ㅋㅋ 웃음이 새어나온다.

'읽음' 이나 '읽을 작정임' 이라거나 적어도 '반쯤 읽음' 이라는 책보다 '안 읽었지만 읽은 척함' 과 '시간 날때 읽으려고 아껴둠' 이라는 책은 그렇다치고 '절대 안 읽을 예정' '순전히 관상용' '읽었지만 기억이 하나도 안 남' '차라리 읽지 않는 편이 나았음' 이라는 책까지 모조리 꽂혀 있는 서재의 책장을 보며, 그렇지 서재 속 책이란 것이 원래 다 읽은 책만 모아두는 곳은 아니었지 싶어서 다르게 표시된 색깔들을 구분해 보려는 헛된 시도를 해보며 혼자 웃었더랬다.

저자의 여행 가방 엑스레이 사진을 그린 만화 속 가방안에는 휴가용 도서, 추가 휴가용 도서, 예비 휴가용 도서, 비상시 읽을 휴가용 도서, 차마 안 가져갈 수 없는 다른 책들 이 가득하고 구석에 의류등의 필수품이 박혀 있는 것을 보면서 혼자 빵 터지기도 했다. 이 사람 정말 책을 좋아하는구나~ 나도 왠만한 애서가 저리가라 할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건 영 수준이 다르다고나 할까 ㅎㅎ

그나저나 서재라는 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솔직히 부럽다. 서재라는 공간은 커녕 책장이라는 가구를 두기에도 벅차서 늘 책을 선별해서 남길 책과 떠나보내야 할 책을 구분해야 하는 나로서는;;; ㅠㅠ

 

 

비슷한 역사를 가졌음에도 자가당착에 빠진 역사가의 모습이 담긴 만화 한 컷, 그렇게 유구한 인간의 역사도 자연의 대화 속도에 비하면 얼마나 하잘것 없는지 느끼게 해주는 만화 한 컷, 인생의 노년기에 자신의 실제적 경험담만을 써놓았을 것 같은 회고록의 창작성을 한 눈에 보여주는 만화 한 컷, 종교서의 종교성에 대한 의문적 느낌을 빡 전해주는 만화 한 컷, 유명 작품의 낚시성 홍보문구가 얼마나 작품 자체와 멀어질 수 있는 지 알려주는 만화 한 컷, 현재 도서시장에서 줄어들다 못해 쪼그라든 순수문학의 자리를 보여주는 만화 한 컷, 아무리 웅대한 배경을 품은 소설이라 할지라도 결국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만화 한 컷, 그러한 만화 한 컷들이 얼마나 말이 필요 없는 촌철살인적 메세지를 전달해 줄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책이 가득한 서재에서 한 사람은 티비를 보고 한 사람은 이북리더기를 찾는 한 컷의 만화를 보며 지금 시대 종이책을 읽는 다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종이책이 최고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그림책 이니만큼 술술 읽게되는 책이었고 책에 대한 그림이니만큼 중간중간 멈추었다 보게되는 책이었다.

카프카의 문장을 읽기보다 카프카와 빵이라도 구워야 쳐다보게되는 시대가 됐다 할지라도 나는 앞으로도 빵보다는 책을 먹는 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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