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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데믹, 끝나지 않는 전염병
마크 제롬 월터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책세상 / 2020년 7월
평점 :
마크 제롬 월터스가 제안한 '에코데믹ecodemic'은
생태를 뜻하는 '에코eco'에 전염병을 뜻하는 '에피데믹epidemic'을 합성해서 만든 용어로,
인류가 지구 환경을 파괴한 결과 나타난 생태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된 전염병, 즉 '생태병' 내지 '환경 전염병'을 뜻한다.
원제 Six modern plagues : and how we are causing them 은 '6가지 현대적 재앙: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그것들을 야기시키고 있는지' 로 번역는데, 이 책은 6가지 전염병에 대한 원인 분석을 통해 전염병의 근본적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는 책이다. 광우병, 에이즈, 살모넬라DT104, 라임병, 한타바이러스, 웨스트나일뇌염 이라는 이 6가지 질병은 익숙한 이름보다 낯선 이름이 더 많았다. 이 생소한 질병들이 지금의 코로나 사태와 어떤 연결점이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는데, 그 의문은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수의사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난 30년 동안 발견된 새로운 인간 질병들 중 거의 75퍼센트가 야생동물이나 가축에게서 전파되었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므로, 나는 이 조사 결과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렇다고 걱정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소에게 천연두를 받고, 말에게서 감기를 받은 것을 비롯해 오래 전부터 다른 동물들에게 수많은 질병을 얻어왔다. 야생동물은 질병 유발 가능성이 있는 바이러스들을 대단히 많이 보관하고 있는 일종의 창고이며, 그 미생물들 중에는 어느날 갑자기 인간사에 등장한 뒤에야 겨우 정체가 드러나는 것들도 많다. 게다가 어떤 바이러스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에게도 있다면, 그것을 박멸할 방법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 동물 창고들을 파악하고 우리 자신과 그 종 사이에 놓여 있는 자연적인 경계선들을 보존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것뿐이다. (p. 10)
인간이 자연의 영역을 침범할 수록 자연은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한채 인간과 함께 공멸하는 중이다. 그 부산물로 생겨난 수많은 바이러스들과 세균들은 인간과 자연의 공멸을 가속화 시키고 있다. 하지만 인류는 아직 그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1980년대부터 전 세계에서 개구리를 비롯한 양서류가 급격이 줄어들고 있는 이유중 하나는 새로운 전염병들이며 이러한 전염병들은 가재, 꿀벌, 고릴라, 펭귄 등 수많은 종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고 한다. 일부 종은 감염으로 말미암아 멸종 위기에 몰려 있는 상태다. 하지만,
누구나 이런 이야기들을 조금씩은 들어보았겠지만, 우리는 전체 이야기를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단편적으로 들은 사항들을 가지고 이해하는 경향을 보인다. 어쩐 일인지 우리는 전체 그림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은 부분들만 보고 있다. 대중매체는 대개 새 질병과 맞서 싸우는 전투만을 따로 떼어내 다룰 뿐, 수많은 새로운 질병들을 아우르는 더 큰 이야기인 생태학적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이 더 큰 이야기는 인간과 동물들이 새로운 질병에 희생당하고 있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자연 환경에 급격한 변화를 야기함으로써 많은 질병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p. 15)
비록 피해의 규모는 달라져왔을지언정, 불안정한 시대가 닥칠때 전염병을 불러일으키는 생물학적 원리에는 변함이 없다. 종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경쟁하며, 포식자와 먹이 사이에도 경쟁이 벌어진다.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세균이 인간이나 다른 포식자보다 결정적으로 유리해지면, 건강이 나빠지고 더 나아가 전염병이 발생할 수 있다. 인간이든 야생동물이든 가축이든 간에 포유동물들은 같은 '질병 격자망'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병을 일으키는 생물의 종류가 종마다 다를지 몰라도, 그 병원체들은 친척 관계에 있을 때가 많다. 이것은 병원체가 큰 유전적 변화 없이도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옮겨 갈 수 있다는 뜻이다. (p. 17)
나는 이 책에서 현대의 여섯 가지 질병 이야기를 통해 우리 인간이 현대의 전염병을 부양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자 한다. (p. 23)
사회적 평등, 연구, 예방 감시 체제, 현대 의학의 혜택을 강화하는 것도 그렇지만, 자연 생태계를 보존하는 것도 인간뿐 아니라 많은 종들의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인류의 건강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불행히도 우리 모두가 지금 겪고 있는 전염병도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p. 24)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이 책의 얼개를 거의 다 말해주고 있다. 인간에게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질병들은 동물들에게서 오고 있으나 그렇다고 동물들의 잘못이라는 게 아니라 인간이 먼저 동물과 자연의 생태계를 침범했기 때문인데 대중매체를 비롯한 사람들의 관심은 아직 그 큰 그림을 못보고 있다는 것, 그러니 현대의 전염병이 보여주는 큰 그림을 제대로 보기 위해 대표적으로 6가지 질병 이야기만이라도 읽고 나면 앞으로 인류가 무엇을 해야할 지 깨달을 수 있으리라는 것.
이 6가지 질병 이야기를 읽고나면 전염병의 공포보다 인간이 저지른 행동이 야기할 공포가 더 커질 것이다. 그렇게라도 인류가 저지르고 있는 잘못을 깨닫게 된다면 좋으련만...
>> 광우병 - 진보의 어두운 그림자
광우병 이라는 명칭은 낯설지 않다. 광우병에 걸린 미국산 소고기로 인해 촛불시위까지 일어나지 않았던가. 광우병 걸린 소고기를 먹으면 안된다. 분명 막았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소가 왜 광우병에 걸렸는지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니 소가 왜 광우병에 걸렸는지에 관심을 가져보기라도 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1732년 영국에서 양과 염소의 진전병에 대한 기록이 있다. 1936년이 되어서야 진전병의 전염성이 입증되었다. 진전병 매개체는 오랫동안 끓어도, 아주 고온으로 멸균처리를 해도, 아주 강한 자외선을 쪼여도, 심지어 포르말린과 알코올에 푹 담가놓아도 여전히 감염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진전병은 살아 있지 않은 감염 매개체가 일으키는, 뇌를 파괴하는 기이한 전염병이었다. 이들은 완벽한 질병 매개체이다. 이들은 이미 죽은 상태임로 죽일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질병이 진전병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진전병의 친척으로 광우병이 나타났다.
종이 자연적으로 지니게 된 먹이의 경계선을 무시하는 것은 그저 나쁜 행위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p. 50)
"BSE는 동물 단백질을 반추동물의 먹이로 재순환시키는 집약 농업의 결과 전염병으로 발전했다. 수십 년 동안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이 방식이 결국 재앙을 불러오는 처방이었음이 입증된 것이다." 1988년 영국 정부가 재순환시킨 동물 단백질을 가축에게 먹이지 못하도록 금지하자, 몇 년 뒤부터 광우병 발생률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인간과 소가 피해를 입은 뒤였다. (p. 53)
소는 초식동물이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집약농업 아래에서 소들의 몸무게를 단시간에 늘리기 위해 버려지던 도축부산물들이 사료에 첨가되기 시작했다. 동물성 사료를 먹은 초식동물은 그것을 온전히 소화시킬 수 없었는데다가 사료에 이용된 부산물이 감염된 동물들의 것이 무분별하게 섞여들어가면서 소들에게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전염병은 고기를 먹은 인간도 감염시켰다.
>> 에이즈 - 아망딘이라는 침팬지
에이즈는 성병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에이즈는 야생동물을 무분별하게 잡아먹던 인간이 스스로 찾아먹은 바이러스인 셈이었다.
HIV-1 기원 연구를 시작했을 때 저는 의학자였어요. 그 바이러스가 침팬지에게서 왔다는 것을 알고 그 동물들이 어떻게 살육되고 있는지를 보고 나니, 뜻하지 않게 보호론자가 되고 말았죠. 침팬지들은 사냥당해 멸종 위기에 몰려 있어요. 그들이 죽으면 그들이 줄 수 있는 단서들도 사라져요. 목표가 공중 보건을 보호하는 것이든 위기에 빠진 침팬지를 보호하는 것이든 상관없어요. 두 목표는 하나이면서 똑같은 것이니까요. 믿고 싶지 않겠지만, 우리는 동물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니에요. (p. 81)
아프리카에서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는 방법은 야생동물을 사냥해 먹는 것이다. "시장에 가보면 손과 팔이 동물의 피와 고기로 온통 범벅이 되어 있는 여자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 이론적으로 보면, 그 바이러스의 전파를 위한 완벽한 무대가 마련된 셈이죠. 야생동물 고기는 엄청난 바이러스 창고에요. 그 안에 들어있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들이 사냥꾼과 상인에서 그것을 집으로 사오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감염시킬 가능성이 아주 높아요. 우리는 도살할 때 피와 고기에 닿거나 물리거나 아니면 오줌과 접촉했을 때 뭐가 인간에게 전파되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p. 82) 의 문장은 얼마나 많은 새로운 질병들이 나타날지 예고하는 듯 했다. 더구나 코로나 전염을 보며 확인했듯이 지금은 한 지역에서 발생한 질병이 세계로 퍼지는 것은 순식간에 가능해진 시대이다.
>> 살모넬라DT104 - 항생제 내성의 행로
처음 항생제가 발견되었을 때는 인류에게 질병은 종말을 고한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항생제의 진화보다 바이러스와 세균들의 진화가 더 빨랐고 지금도 그러하다. 문제는 그러한 속도가 항생제의 남용으로 인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몸에 다다르기 전에 이미 동물과 물고기 몸속에 항생제들이 가득하고 그 항생제들을 이겨내는 균들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 후에 인간의 몸에 그러한 균들이 들어왔을 때 인간의 몸은 속수무책 당하게 되고 만다.
세균이 항생제에 자주 노출되는 한 가지 환경은 대규모 가축 사육 시설이다. 이런 곳은 대개 비위생적이고 몹시 비좁기 때문에, 생산자들은 소 같은 동물들에게 전염병이 돌지 않도록 자주 약물을 쓰곤 한다. 단기적으로 보면, 동물들을 늘 깨끗하게 돌보는 것보다는 약물을 쓰는 편이 비용이 적게 든다. 또 항생제가 섞인 사료를 동물들에게 지속적으로 먹이면 좀 더 빨리 성장하므로, 생산자들의 소득도 더 높아진다. 게다가 농민들은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기 때문에 새로 태어난 송아지들에게도 항생제를 먹이곤 한다. 이런 생산자들은 새끼를 낳자마자 어미 소를 다시 착유장으로 돌려보내고, 태어난 송아지들은 다른 시설로 보내 수천 마리의 송아지들을 한데 모아 키운다. 어미의 젖에는 천연 항생제가 들어 있는데, 송아지들이 먹을 수 없는 상황이므로 대신 감염을 막기 위해 항생제를 주는 것이다. (p. 93)
인간이 먹기 위한 우유와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소들에게 항생제를 먹인다. 그것도 잔뜩. 항생제를 먹은 가축의 몸 안에서는 내성이 생기기 시작하고 항생제가 더이상 효과없어지면 더 많이 약을 먹이거나 더 강력한 약을 먹인다. 문제가 있어 보이는 항생제를 법으로 금지시켰을 때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균들이 줄어드는 것이 확인됐지만 제약업계와 가축업계는 법에 걸리지 않는 새로운 항생제를 먹이기 시작했다. 항생제를 직접 먹이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사료에도 있었다.
그런 일이 어디에서 일어났든 간에, 일단 내성을 획득한 살로넬라균은 어육 부산물로 만드는 어분에 섞여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분, 즉 물고기 가루는 소 사료에 흔히 첨가되는 성분이죠. 오염된 사료는 단기간에 유럽, 일본, 미국 등으로 보내져 그 지역의 소들을 감염시킬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전파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을 뿐이죠. (p. 109)
요점은 DT104가 동물, 먹이, 식량 생산, 국제 무역 등이 뒤얽혀 있는 복잡한 이야기라는 겁니다. 이 이야기는 서로 얽혀 있는 많은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이 인공 사료와 집약 농업을 통해 동물들의 자연 생태를 교란하고 지구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것이 다시 우리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거죠. (p. 111)
가축을 빨리 성장시키기 위해 소 사료에는 항생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분들이 들어가곤 하나 보다. 축사와 양어장에서 나온 폐기물 속 미생물들은 물과 토양에 직접적으로 흘러들어갈 수도 있고 그런 환경에서 자란 물고기 몸속에 들어갈 수도 있고 새가 양어장에 들러서 옮겼을 수도 있다. 여하튼 물에도 물고기에도 내성이 생긴 균이 생기고 그런 물고기 부산물로 만든 사료를 소가 먹고 또다른 내성이 생기고 항생제가 듣지 않는 균이 인간에게로 오고... 그야말로 악순환이다.
>> 라임병 - 오래된 숲과 관절염
새로 조성된 공원과 숲 같은 녹지가 많으면 좋은 건줄 알았다. 하지만 근시안적 생각이었음을 알았다. 나무가 심어져 있다고 해서 숲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자연 그대로 둔다는 것은 그 안의 생태계가 정상적 일 수 있어야 하는 거였다. 파괴된 생태계는 곧바로 인간의 집 담을 넘어왔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나무들만큼 죽은 나무들이 많은 숲이 건강한 것일까? 스타일스는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죽은 나무들이 수많은 곤충과 새, 포유동물에게 수백 년 동안 숲에 기여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설명해다. 나무가 쓰러지면, 이끼와 다른 식물들이 그것에 모여들어 자리를 잡는다. 뿌리가 뽑히면서 땅에 난 구멍도 모험심 강한 작은 종의 새로운 서식지가 된다. 하지만 나무들이 죽어 토양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려면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의 많은 숲들이 가지지 못한 호사스러운 시간이 말이다. 스타일스는 이렇게 말했다. "숲 관리자들이 '죽은 나무'를 제거해야 한다고 말할 때마다 실망스럽습니다. 죽은 나무들을 제거하는 것은 건강한 숲을 만드는 서식지를 파괴하는 것과 같아요" 심하게 파괴된 숲은 가장 '특화한' 많은 종들, 즉 새로운 서식지나 먹이 자원에 쉽게 적응할 수 없는 동물들을 금방 잃ㅇ르 수도 있다. 반면에 '일반 섭식자'는 변화에 쉽게 적응한다. 특화한 종은 숲을 떠나가는 반면, 융통성 있는 일반 섭식자는 때로 자신의 수를 늘려가곤 한다. (p. 126)
다양한 종이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없고 일부 종들만 남아있게 된 숲에는 그 일부 종들이 왕성하게 번식하게 되고 그 급격한 번식을 통해 인간의 영역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 특히 그런 동물들에 붙어사는 진드기들이. 라임병은 진드기들에 의해 옮겨지고 진드기들이 좋아하는 동물들만 남은 숲은 자연정화능력을 잃은 생태계를 다시 일으키지 못한다. 나무와 사슴이 있다고 숲이 아니었던 거다. 생물다양성이 높으면 인간 집단의 라임병 발생률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하는데.. 생물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는 숲은 줄어들고 있다. 숲을 밀고 집을 짓고 새로 나무만 심는다고 숲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데 말이다...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세계를 인간이 살기에 더 적합한 곳으로 만들려는 근시안적 시도들을 하다가, 오히려 질병을 일으키는 수많은 미생물들이 살기에 더 적합한 곳으로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p. 150)
>> 한타바이러스 - 죽음의 봄
'침묵의 봄' 이 생각나는 부제이다. 농약의 위험성을 경고한 '침묵의 봄' 이 DDT 살포는 줄였다 해도 농약의 사용량을 줄이지는 못했을 것 같다. 농약을 뿌리는 이유는 농작물을 먹는 곤충을 없애기 위함인데, 곤충의 생태는 기후와 밀접한 연관이 있고, 그 기후를 망치고 있는 것도 결국 인간이었다.
그 모임에 가보니 나바호족이 그 바이러스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 명확해졌습니다. 우리가 한 일이라고는 그저 바이러스에 이름을 붙이는 것뿐이었죠. CDC가 그 바이러스를 찾아내기 전에, 원로들은 이미 말하고 있었어요. '예전에도 이것은 나타났다. 축축한 겨울이 지난 뒤에, 생쥐들이 많아졌을 때' 나중에 그 바이러스를 연구한 모든 결과가 보여준 핵심 내용이 바로 그것이었죠. 우리는 DNA 분석을 했으므로, 온갖 분석을 하고 그 바이러스의 진화 역사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바호족에게는 전염병이 도는 것을 오랫동안 관찰해온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컴퓨터가 등장해 더 복잡한 통계 분석이 가능해지기 전까지 우리가 사용했던 것과 아주 흡사합니다. 나바호족은 병에 걸린 사람들을 살펴보고, 걸리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했죠. 그런 다음 그들이 어떻게 병에 걸렸는지 결론을 끌어냈어요. (p. 168)
지식이 모여 지헤가 되려면 경험이 필요할텐데, 과학적 지식은 경험만 있는 지혜를 믿지 못하고 증명할 수 없는 지혜는 지식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을 종종 보곤 한다. 평년보다 비가 많이 내리고 나면 창궐했던 전염병에 대해 과학적 지식고 경험적 지혜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지만, 문제는 그 바이러스가 무엇이고 어떤 병을 일으키느냐 보다 그 바이러스를 창궐하게 한 원인이 기후에 있고 엘니뇨와 관련이 있다는 것까지는 두 입장 다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웨스트나일뇌염 - 나일강에서 온 바이러스
미국에서 생소한 병증의 환자가 발생한다. 유사한 증세의 다른 환자가 또 발생한다. 하지만 이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미국내에서 전파될 수 있으리라고 예상할 수 없었던 멀고 먼 지역의 바이러스 였다. 어떻게 온 것일까.
연간 케네디 공항으로 들어오는 해외 승객은 2,000만 명이 넘는다. 이 수치에 매년 합법적으로 케네디 공항을 통해 들어오는 약 4,000마리의 말과 조류, 거북, 어류 등 수천 마리의 다른 동물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수백, 아니 아마 수천 마리의 동물들이 수입 질병을 막기 위해 설치된 검역소를 피해 몰래 들어온다. 또 항공기 선실과 화물칸 승객들의 몸에 붙어 무임승차하는 다리가 여섯 개이거나, 날개가 달리거나, 기어다니는 무수한 작은 생물들을 세어보려 시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퀸스는 문화적 용광로이자, 거대한 배양 접시이기도 하다. 나름대로 퀸스는 사스의 진원지인 중국 남부 광둥성 같은 세계의 거대한 종간 교차로들과 경쟁하고 있는 셈이다. (p. 192)
철새와 세계 여행의 도움을 받아, 그리고 아마도 지구 온난화까지 가세해서, 이 이른바 아프리카바이러스는 세계적인 바이러스가 되어가고 있다. 매연 줄기가 바람에 휩쓸려 가듯이, 웨스트나일바이러스는 그렇게 퍼져가고 있다. (p. 201)
세계화 국제화가 된다는 것은 문명발달의 편리하고 좋은 것들만 오고간다는 것은 아니다. 균도 오고가고 질병도 오고간다. 사람에 의해서만 오고가는 것도 아니다. 계절마다 다른 방향으로 날아다니는 철새도 있고 곤충도 있다. 날아다니는 이동도 규칙이 깨진지 오래다. 지구 온난화는 철새들의 착륙지를 변경시키고 곤충들의 부화리듬을 바꾸곤 한다. 그야말로 언제 어느때 어디서 어떤 새로운 질병이 생길지 모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질병의 치료도 중용하지만 원인과 전파를 알아야 근본적 수습이 가능할 것이다. 과거에 풍토병에 가까운 질병들의 근원지는 아프리카인 경우가 많았지만 (코로나19도 그렇고)사스를 비롯한 최근의 전염병들의 근원지는 항상 중국의 광둥성을 가리키고 있다. 왜일까?
광둥성과 주변 지역에서 주기적으로 출현하는 새로운 인플루엔자 균주들 중에 이런 방식으로 생기는 것들이 많다. 이곳은 1957년에 크게 유행한 아시아 독감과 1968년에 대유행한 홍콩 독감의 진원지였으며, 최근의 '조류 독감'도 여기서 생겨났다. 대단히 위험한 이 조류 독감은 즉시 보고가 되어 감염 가능성이 있는 수백만 마리의 가금을 홍콩의 시장에 도착하기전에 도살한 덕분에 초기 단계에 막을 수 있었다. 광둥 지역은 왜 그렇게 특이한 것일까?
한가지 이유는 이곳 사람들이 수많은 다른 종들과 뒤섞여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 종에 사는 바이러스들 사이에서 이런 식의 유전자 교환이 이루어질 기회가 널려 있다. 이곳에서는 돼지우리와 사람이 사는 공간이 붙어 있기도 하고, 돼지우리 위층에 닭을 키우기도 한다. 따라서 닭의 배설물에 든 미생물들이 돼지의 소화기관으로 들어가 새로운 환경에서 진화할 수도 있다. 또 돼지우리에서 나온 더러운 물은 새우와 초어를 기르는 연못으로 흘러 들어간다. 마찬가지로 바이러스와 세균을 지니고 있는 오리를 비롯한 새들은 이런 연못에 자주 들러 배설물을 쏟아 낸다. 인간의 배설물도 다른 동물들의 배설물과 자주 섞인다. 유전자 교환 가속 문제는 가축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중국 남부 지역에는 요리용으로 수많은 종류의 야생동물들을 사고파는 거대한 시장들이 있다. 이런 곳들도 미생물들이 왕성하게 뒤섞이고, 짝을 짓고, 돌연벼이를 일으키는 풍요로운 장소가 된다. 광둥성의 수도인 광저우 외곽 몇 블록에 걸쳐 뻗어 있는 차우타우 시장에는 고양이와 개뿐 아니라 양서류, 조류, 어류, 파충류 등 광둥 요리사들이 만드는 온갖 기이한 요리에 쓰이는 야생동물들이 넘쳐난다. 이 모든 종들이 상인, 도축업자, 그 날고기를 요리해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과 뒤섞인다. 이렇게 사람과 수많은 종들이 긴밀하게 접촉함으로써, 이 지역은 미생물 용광로가 된다.
물론 사람과 다른 동물들이 뒤섞임으로써 미생물들의 유전자 교환이 집중되는 곳이 중국만은 아니다. 그러나 7,500만의 주민과 수많은 가축과 야생동물들의 드넓은 종간 교차로가 형성되어 있는 탓에, 광둥성은 새로운 질병을 키우는 부화장이 되고 있다. 그리고 홍콩에 가까이 있으므로, 새로운 감염성 미생물들이 비행기를 타고 쉽게 다른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다. (p. 208~210)
모든 생물은 먹어야 산다. 인류의 급속한 팽창은 먹거리의 부족이 늘 문제였고 그렇게 야생의 자연에서 더 많이 먹을 수록 더 많이 병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 관리와 조절은 늘 코앞에 닥친 문제부터 처리하느라 뒷전으로 밀리곤 했다. 단기간의 이익에 집중하며 미래를 굳이 생각지 않고 자연을 미래몫까지 당겨서 마구 써온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더는 그렇게 미뤄둘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 아닐지...
우리는 새로운 질병들이 생태학적으로 어떻게 유래했는지 꽤 많이 파악해왔지만, 이렇게 늘어나는 전염병들을 근절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새로운 치료법과 치료약 개발에만 몰두해서는 그 일을 해낼 수 없다. 우리는 원인을 치료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건강의 토대가 되는 생태계 전체를 보호하고 복원해야 한다는 의미다. (p. 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