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륜선 타고 온 포크, 대동여지도 들고 조선을 기록하다 -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유진 초이'의 실존 인물 '조지 포크'의 조선 탐사 일기
조지 클레이튼 포크 지음, 사무엘 홀리 엮음, 조법종 외 옮김 / 알파미디어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미국인 최초로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가했던 외교관 조지 클레이튼 포크가

전하는 1880년대 조선인의 생생한 삶과 역사를 전한다.

900마일(1448km)을 가마 타고 44일간 기록한 조선의 생생한 기록

드라마를 잘 안 보는 편이다 보니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인기드라마도 안 봤지만 그 드라마에 '유진 초이'라는 캐릭터가 있었다는 건 안다. 드라마 설정에서는 한국계 미국인이었지만 그 실제 모델로는 실존인물 미국장교 '조지 포크'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말의 역사에 대해 당시 조선에 머물렀던 외국인들의 이런저런 기록들이 있다. 복잡다단했던 시대였던만큼 그 기록들에서도 빛보다는 어둠이 더 많긴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좀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시절이기도 하기에 미국장교의 시선이 궁금해졌다.

이 책은 조선말 미국장교 포크가 남긴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사무엘 홀리'라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캐나다인 교수가 펴낸 책을 한국인 역사학자가 번역 및 편집한 책이다. 따라서 저자는 '포크' 이고 편집은 '사무엘 홀리'이며 번역자는 '조법종, 조현미' 라는 3중 저자를 보유한?! 책이다.

포크가 남긴 자료와 일기장처럼 기록한 두권의 수첩 내용은 이 책 본문의 대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그 본 내용을 읽기에 앞서 100페이지는 포크의 기록에 대한 설명이다. 역자의 서문이 먼저있고 편자의 서문이 뒤를 잇는다. 이 서문들이 있었기에 뒤의 본문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본문보다 사실 더 중요한 내용은 이 두 편의 서문에 다 있다고 볼수도 있다.

전체 내용을 통해 제시하고자 한 포크의 계획과는 별개로 기록된 내용에 의거해 관련 특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여과되지 않은 생생한 현장의 기록

2) 시간대별 조사 기록

3) 지방 최초의 온도와 기압 기록

4) 현존하는 최고 여행비자

5) <대동여지도>, <여지도>를 이용한 외국인 최초의 조선 여행 기록

6) 주막과 역원을 활용한 여행 기록

7) 한국어를 영어로 표현하는 사례집 제작

8) 거북선을 최초로 서양에 소개한 외국인 (p. 23~27 발췌)

책의 제목에서 '화륜선'은 '불바퀴로 가는 배'를 의미한다. 당시 '양인'이라 불리던 사람들은 조선인에게 '화륜선을 타고 온 사람'이었고 서양의 힘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수도인 서울과 외국인들의 배가 수시로 오가는 부산을 제외하고는 '양인'들을 본적도 들은적도 없는 사람들이 많았던 조선반도의 남쪽을 포크는 '탐사' 한다. 이 기록은 '관광'이 아니라 '탐사'였고 그 '탐사'를 전후한 배경을 알려주는 '서문'의 내용들은 매우 유익했다.

서울에서 서양식 증기선 제조를 어떻게 시도했었고, 미국전함 가운데 최신식 화륜선인 트랜튼호를 타고 어떻게 포크가 오게된건지, 포크가 누구와 밀접했는지 등의 사전 정보는 포크의 탐사기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필수적 정보들이었다. 무엇보다 포크가 남긴 다른 기록들에 대한 안내도 의미있는 자료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었다.

역자는 조선 주재 미국공사관무관으로 처음 부임한 포크의 1884년 조선 남부 지역 조사 기록을 번역, 정리하는 과정에서 포크가 서구 세계에 거북선을 철갑함으로 소개하였고, 이 보고서 내용이 서구 언론에 소개되면서 '거북선=세계 최초의 철갑함'으로 인식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생각하였다. (p. 45)

1890년대는 제국주의의 전성기로 세계가 제국주의적 확장을 추진하며 해군력을 증가시켰다. 거북선에 대한 포크의 보고서 내용이 미국 신문에 보도된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해군력을 앞세운 식민지 쟁탈과 군함외교가 맹위를 떨친 1890년대였기 때문에, 각광을 받고 있던 철갑함의 원조가 조선이라는 포크의 보고서는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많은 신문들이 다투어 거북선을 보고하고 후속 보도까지 한 것으로 보아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으로 보인다. (p. 60)

본문인 탐사기록에는 나오지 않지만 포크가 미국으로 보낸 보고서와 편지들을 바탕으로 당대 조선에 대한 많은 정보를 역으로 알수 있었다. 특히나 역자가 정리한 '거북선'의 미국언론기사들에 대한 정리 및 분석은 이 책에서 단연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은 조선말까지도 조선을 지켜내고 있는 셈이었다. 거북선이 없었다면 미국사회에 조선이 알려질 일이 뭐가 있었을까...

여기까지의 '역자 서문'은 포크의 탐사기를 정리하고 포크가 가진 자료들 중 '거북선' 관련 자료분석에 집중했다면 뒤이은 '편자 서문'은 또다른 분석방향을 보여준다.

1884년 11월1일 미국 해군 소속 조지 포크 소위는 조선의 수도 한양을 출발하여 조선의 남쪽 지역을 관통하는 900마일(약1448km)의 고된 여행을 시작하였다. 그는 길 위에서 보낸 44일 동안 경험하고 관찰한 내용을 두 권의 노트에 380페이지에 걸쳐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이 여행기는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의 반크로프트 도서관에 조지 클레이튼 포크 관련 수집품 중 일부로 소장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 여행기가 지닌 엄청난 가치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학자들의 주목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p. 61) 무엇보다 이 여행기는 포크가 나타나기 이전까지의 그 어떤 서양인도 경함한 적이 없었고, 그와 같은 방식으로는 다시는 할 수 없는 유일한 기록이다. 그는 조선 왕조의 고위 관리나 정부관리가 하는 방식대로 가마를 타고 기나긴 여정을 소화해 냈다. (중략) 또한 이 여행기는 서양인의 눈에 비쳐진 1880년대의 조선을 깊은 통찰력으로 묘사한 독특한 기록물이다. (p. 62)

이 책의 가장 앞쪽에는 포크의 여행 경로가 간략히 정리되어 있다. 서울-수원-천안-공주-전주-나주-진주-부산-대구-상주-충주-이천-광주-서울로 연결된 여정은 한반도의 남쪽을 삼각형 형태로 넓게 둘러보고 오게 되어 있었고, 포크는 그가 본 환경들을 꼼꼼이 기록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대동여지도>가 정말 정확했다는 점이고, 지방의 관리들은 조선의 지리를 정말 잘 몰랐다는 점이다.

1883년 서구를 향한 첫 번째 조선사절단이 미국에 도착했을 때 어떻게든 통역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은 미국 정부 내에서 포크가 유일했다. (p. 64) 민영익은 포크가 조선의 사절단과 동행하여 귀국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중략) 포크는 해군 무관의 임무를 맡기 위해 서울로 출발했다. 그는 국무부와 해군으로부터 조선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가능한 한 최고의 관계를 유지'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포크는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임무에 착수했다. 날마다 조선인과 대화하면서 언어 능력을 키웠고 중요 관리와 유대 관계를 맺었다. (p. 65) 조선에 관한 보다 나은 정보를 모으기 위해, 포크는 조선을 여행할 일련의 계획을 세운다. 처음에 그는 세번의 여행을 할 생각이었다. 첫번째는 경기도 중심부, 두번째는 조선의 남부를 가로지르는 계획, 마지막 세번째는 북부 지방을 가로지르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세번째는 떠나지 못했다. (p. 66)

포크가 미국에서 통역을 맡았다고 해서 한국어를 할 수 있었다는 건 아니다. 포크는 일본어를 할줄 알았고 조선사람들은 일본어를 할줄 아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조선에서도 한국어가 익숙해지기 전엔 조선인통역관과 일본어로 소통했다. 이것은 여행말기에 '갑신정변'으로 인한 위험에 처해지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참고로 조선에서 밀려났을때 일본에서 생을 마감했다. 포크 이전에 조선을 여행한 서양인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조선을 경험한 사람은 포크가 유일했다.

포크는 지금 우리가 문화충격이라고 정의하는 증상으로 힘들어 하고 있었다. 그는 지속적인 고통 속에서 우울해 했고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p. 86) 그는 그 당시 설립된 세관과 관련된 서양인들을 '세관 깡패들'이라고 썼으며, 게다가 수다스럽고, 막돼먹고, 불경하며, '내내 보잘것없는 사람들'이라고 평했다. (중략) 포크가 조선인과 마찬가지로 동료인 서양인들에게까지 통렬한 표현을 쓴 것을 보면 비판의 기준이 공평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그가 지닌 내면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해군에서 경력을 쌓으며 구축한 원기왕성하고 쾌할한 겉모습 아래에 (중략) 마음속으로 수줍어하고 쉽게 기분이 상하는 여린 심성이 숨어 있었다. (p. 88) 그의 여행일기를 읽어보면 특히 그의 사생활을 조선인이 침해할 때의 반응은, 이런 그의 여린 성격을 가슴에 잘 새겨야만 이해할 수 있다. (p. 89) 포크는 자신이 보낸 편지와 사진을 조심해서 보존해 달라고 부모에게 부탁했다. 그 자료들이 '조선에 관한 책이나 보고서를 쓸 때 매우 소중하게 쓰일 것'이라고 전했다. (중략) 그러나 불행히도 포크는 그 책을 쓰지 못했다. (p. 96)

28세의 혈기왕성한 미국인 청년이 부푼 꿈을 안고 낯선 동양땅에 왔다. 해군으로서의 의무와 개인적은 탐구욕으로 인해 조선여행에 나선 그가 맞닦드린 현실은 감내하기 힘들었다. 언어도 완벽히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추워지는 날씨에 당시 양반남성들이 타고 다니던 열린 가마(의자만 있는 형태의 가마)를 타고 여기저기 갈때마다 몰려드는 구경꾼들로 인해 힘들어했다. 당시의 관리들의 접대문화나 관리들이 백성들을 대하는 폭압적인 태도도 버거웠지만 가장 힘든 것은 화장실 볼일을 볼때조차 구경꾼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어딜가든 그는 동물안 원숭이보다 더한 따가운 눈총을 버텨야 했고 그런 날들이 쌓여감에 따라 신경도 점점 예민해져갔는데 심지어 귀환길에 '갑신정변'소식을 들어 목숨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의 기록에서 이런 전후사정을 알고 읽는 것은 오해의 소지를 불식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여행 일기'라고 하지만 그 여행이 '관광'이 아니라 '탐사'였기에 포크의 수첩을 번역한 본문의 주된 내용은 지형 파악에 대한 것들이었다. 포크는 가능한 하루에 먼 거리를 이동하려 했고 그렇게 스쳐지나가며 지도와 지형지물을 비교하고 측량하고 기록했다. 그가 한 주된 경험은 관리들의 접대였고 그의 시선은 늘 지리와 작물과 주택분포 와 인구수 같은 외적 파악이었기 때문에 조선인들의 삶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그가 만난 백성들의 모습은 대개 그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남겼다.

나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 소년이 넘어져 감을 떨어뜨렸고 순식간에 등을 밟히며 진흙탕에 머리를 처박혔다. 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2피트(60cm)밖을 내다볼 수 없었다. 내게 적개심을 보인다거나 쏘아보는 기색은 없었지만 무례한 호기심은 놀라웠다. (p. 116)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군중들이 너무 많고 이들이 무례한 탓에 전혀 시도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일꾼들이 군중을 해산시키려고 사람들에게 몽둥이질을 하는 것을 막느라 힘들었다. (p. 117)

이러한 상황은 어딜 가든 반복되고 점점더 악화되었다. 깨끗한 잠자리와 맛있는 음식이 제공되는 숙소를 만나면 그나마 괜찮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할때면 이런 '호기심'스트레스는 말할수 없이 치솟아 올랐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조선의 정세를 파악하는 눈치는 빠른 편이었다.

만약 서울에서 반란이 일어나더라도 나라 전체적으로는 크게 동요되지 않을 것이다. 이곳의 그 누구도 서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을 갖는다거나 알고 있지 않았다. 혹은 오랜 세월 서울을 다녀오지도 않았다. 조선의 중심부 지역 국민의 생활이 취약하다는 내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국가는 종족이라는 존재에서 떨어져 나온 한 부분이다. 이 정부의 통치 행위를 통해 판단해 보면, 무력으로 백성을 장악하고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p. 145)

포크가 만난 관리들도 천차만별이었다. 예의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위풍당당하기도 하고 무지렁이같기도 했다. 그러나 거의 공통적으로 관리들은 정세판단에 미숙해 보였다.

대화는 익숙한 동양적 안부 인사와 예절을 갖춘 답변으로 시작됐다. (중략) 대화는 당연하게도 서양 문명에 관한 질문으로 바로 이어졌다. 그리고 내가 예상한 대로, 감사는 곧바로 조선은 수백년 동안 쌀을 자족해 왔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런 생각을 바꿔주는 것은 쉬운 일이었고, 나는 그렇게 했다. 내가 무역의 장점에 관해 설명하자 감사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지금까지 조선은 그런 일들이 가능한지 몰랐고 아주 서서히 다른 나라들처럼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p. 183)

그는 곧 중국과 프랑스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더니 내게 그 전쟁의 모든 내력을 물었다. 그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서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p. 193)

감영은 그래서 그 자체로 하나의 왕국이었다. (p. 201)

포크는 민영익이 구해준 지도와 발급해준 통행권 덕에 어딜 가든 물자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통제력은 지방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지역의 감영관리가 곧 그 작은 왕국의 통치자였다. 그들은 중앙에서 벌어지는 소식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그러니 백성들은 더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데 너무나 혼란스런 시국이었다.

'통영의 영웅'은 나라를 위해 수많은 일본인을 죽인 후 (백성들의 영웅), 결국 자신의 힘을 보여 준 행위로 목숨을 잃을 것을 알고, 일본 함댇가 빤히 볼 수 있는 자신의 뱃머리에 서서 일본인의 총을 맞았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범죄자처럼 처형당하는 것을 피했다. (p. 287)

아마도 믿기 힘든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임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 거칠어지려고 스스로를 내몰고 있다. (p. 291)

5명의 길나장이가 앞서 가다가 지나가는 남자 두 명을 논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리고 두 명의 나이 든 여자들을 폭력적으로 밀어제쳤다. 아! 여행하는 방법이 이렇다니. (p. 314) 두들겨 패고 발로 차고 욕설을 내뱉고 마구 밀어제치고! 정말 대단한 나라였다! 합천에서 피신하는 내 모습은 정말 웃음거리였다. 비록 내 여행이 국가 기밀이긴 했지만, 전체 장터에 내가 읍내에 들어왔다는 소식이 당연히 알려졌을 것이다. (p. 315)

내가 제복을 입지 않았다면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미 해군의 장교로서, 바로 이곳 조선 관료의 집 안에서 무례한 사람들의 눈길에 노출되고 전시되는 것은 굴욕이었다. 아마도 정신을 놓는다면 참을 수 없을지도 몰랐다. (p. 328)

나는 묵을 보내 목사에게 동래로 바로 가겠다는 말을 전했다. 이는 내게는 결정하기 힘든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통영은 아마도 조선에서 내가 처음으로 흥미를 느꼈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수리 모자를 쓰고 있는 동안(미군 장교 복장을 한 나로서는) 그 장소에 간다면 내가 다시 겪어야만 할 굴욕과 불명예를 감내할 수는 없었다. (p. 331)

포크는 조선에 대한 이야기들을 그가 머문 각 지방의 현지 목소리로 들을 수 있곤 했다.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도 그랬다. 해군으로서 '거북선'의 잔재가 남아있다는 통영에 꼭 가보고 싶었으나 이즈음 포크는 '무례한 호기심'에 너무 지친 나머지 통영을 지나치기로 결정한다. 포크는 당대 고위급 관리들의 방식으로 여행하고 있었고 짐도 거느리는 수행원도 많았다. 그 수행원들이 하는 행동또한 관리들을 모시는 방식이었기에 '양인'을 향한 대중들의 관심을 대하는 태도는 폭력적이었다. 그것이 여행 내내 포크를 괴롭게 했다. 그런 길잡이들의 길을 트는 폭력도 힘들었지만 어딜가든 안팎 구분없이 따라다니는 눈길이 그를 점점 더 피폐하게 만들어갔다. 어쩌다 장날이 된 읍내를 통과할라치면 그 인산인해 속에서 그는 더욱 더 고통에 빠졌다.

일본인들이 내 정체를 알아내려고 안달복달했다. 부산에서 나는 끊임없이 감시를 당했다. 그리고 의심할 여지 없이 세관 무리와 일본인들에게 끔찍한 염탐의 대상이었다. (p. 364)

나는 전반적으로 조선인들에게 쓰라린 감정을 느꼈다. 그들의 무례와 나를 일종의 진기한 수집품처럼 대하는 반 야만적인 행동응로 인해 그들에게 내가 가진 모든 배려가 무색해졌다. (p. 382)

포크는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 싶었다. 그는 사진기와 탐사도구를 가지고 출발했고 산과 계곡과 길과 논밭과 집들의 분포와 새로운 풍속을 나타내는 조형물들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빠르게 관찰하고 지나치려는 그의 여행에서 '사람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그러다 상주길에서 '갑신정변' 소식을 듣고 공포에 빠진다.

외국인을 싫어하는 악마 같은 인간-선비-들이 나의 갈 길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 나는 조선인들이 싫어하는 일본인들보다도 더 낯선 존재이다. 나는 혼자이며 이 땅은 무정부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 (p. 408)

최악의 상황이 닥친다면 그들이 나와 함께 머물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중략) 그들은 나와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들의 친절과 도움은 언제나 칭송을 받을만했다.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 조국이 그들에게 보답을 하기를 바랐다. (p. 420)

'조선인들이 싫어하는 일본인들보다도 더 낯선 존재' 임을 스스로 알고 있던 포크는 여행 내내 수행원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그 수행원들은 모두 포크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다행히도 서울에서 왕이 보낸 군대에 의해 포크 일행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나의 두번째 조선 내륙 여행은 끝이 났다. 다양하고 멋진 경험으로 가득한, 또 걱정과 불안으로 보낸 900마일의 여정이었다. 그동안 나는 세부적인 면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부를 조선인으로서 살았다. (기독교인의 마음으로). 그토록 많이, 그토록 구석구석, 내가 보았던 조선은 과거에도 이렇게 조명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이 장면들이 되풀이되지는 못할 것이다. (p. 444)

'과거에도 이렇게 조명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이 장면들이 되풀이되지는 못할 것이다' 라는 문장은 맞았다. 포크의 이 여행이후 정세가 격변했고 포크는 조선을 떠나야 했다. 조선에 대한 기록들은 서양인의 우월한 시선아래로 쓰여진 것들이 많다. 이 책에서도 다른 서양인들의 기록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역시나 그 시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기록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비교적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가졌던 이들도 있었다.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이라는 책을 읽은 적 있다. 선교사였던 저자가 서울에 살면서 경험한 일상을 기록한 에세이였기에 <화륜선을 타고 온 포크> 와는 관점이 다르고 내용도 전혀 다른 방향이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조선에 우호적인 마음을 가진 서양인들이 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조차 느꼈던 '당혹감'은 분명 당시의 조선과 서양의 간극을 보여준다. 그러니 그 넓은 간극을 이해하려면 한쪽 방향의 시선만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많이 읽고 깊게 숙고해야 할 것이다.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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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 -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도시의 역사로 보는 인류문명사
벤 윌슨 지음, 박수철 옮김, 박진빈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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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를 도시의 역사로 살펴보는 과정이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상당한 두께의 벽돌책이지만 세계사를 신선한 관점으로 볼 수 있게 하면서도 가독성이 좋아서 추천하고 싶은 역사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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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 -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도시의 역사로 보는 인류문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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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로마, 암스테르담, 바그다드, 런던, 파리 뉴욕…

6,000년간 인류 문명을 꽃피운 26개 도시로 떠나는 세계사 대항해

문명의 창조, 발전, 교류에 관한 황홀하고 위대한 서사!

표지에 보이는 도시들이 한두곳이 아니다. 따로따로 봐도 멋질 도시들이 여러곳 섞여있음에도 여전히 멋있는 것을 보면 역사를 품은 도시는 어떻게 봐도 다 멋지기 마련인가보다. 세계사를 훑어볼 수 있는 프레임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것 같다. 유구한 도시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으로 몇천년 간의 인류 문명사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신선하고 신기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의 말마따나 도시의 역사는 곧 인류 문명사 그 자체였음을.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인류의 과거와 미래는 도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 (p. 9) 지난 30년 동안 지구를 엄습한 주요 변화 중 하나는 세계의 주요 대도시들이 해당 국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졌다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오늘날 세계 경제는 몇몇 도시와 도시권에 치우쳐 있다. (p. 10) 오늘날의 여러 현대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분열은, 세대나 인종, 계급 도농 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대도시와 나머지 지역 즉 세계화된 지식경제에서 뒤처진 촌락, 교외, 소도시들 간에 일어난다. (p. 11) <메트로폴리스>는 웅장한 건물이나 도시계획에 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의 주제는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 그리고 도시 사람들이 도시 생활의 압력에 대처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발견한 방법에 대한 것이다. (p. 18) 도시의 다양한 정체성을 포용할 수 있도록 우리의 상상력을 넓혀야 한다. 역사는 우리의 시야를 열어 도시를 폭넓게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필수적인 통로를 만들어줄 것이다. (p. 26) -머리말 中-

이 책은 세계사 책이다. 시대별로 그 시대를 대표할 만한 도시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세계사를 놀랍도록 잘 풀어내고 있다. 시대순이긴 하지만 각 도시별 내용에서 다른 도시나 시대를 넘나드는 연결을 함께 서술함으로써 개별적 통합적 서사를 함께 아우르고 있다. 세계사를 이렇게도 읽을 수 있다니 참 좋은 세상이다.

1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장마다 대표적 도시들을 내세우고 있지만 본 내용은 그 도시 뿐만 아니라 동시대 혹은 그 전후 시대의 다른 도시들의 역사와 함께 서술됨으로써 그 도시가 가진 특성을 강조하기도 하고 그 특성이 역사속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 추이를 살펴볼 수 있게도 한다. 각 도시별 특징만 살펴봐도 세계사의 흐름이 대충 느껴지는 것을 보면 저자가 참 대단하다 싶다.

기원전 4000~1900년 의 도시는 '도시의 여명-우르크' 다. 이어서 기원전 2000~539년의 도시는 '에덴동산과 죄악의 도시-하라파와 바빌론', 기원전 507~30년의 도시는 '국제도시-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 기원전 30~537년의 도시는 '목욕탕 속의 쾌락-로마', 537~1258년의 도시는 '다채로운 식도락의 향연-바그다드', 1226~1491년의 도시는 '전쟁으로 일군 자유-뤼벡', 1492~1666년의 도시는 '상업과 교역의 심장-리스본, 믈리카, 테노치티틀란, 암스테르담', 1666~1820년의 도시는 '카페인 공동체와 사교-런던', 1830~1914년의 도시는 '지상에 자리 잡은 지옥-맨체스터와 시카고', 1830~1914년의 또다른 도시로 '파리증후군-파리', 1899~1939년의 도시는 '마천루가 드리운 그림자-뉴욕', 1939~1945의 도시는 '섬멸-바르샤바', 1945~1999년의 도시는 '교외로 범람하는 욕망-로스앤젤레스', 1999~2020년의 도시는 '역동성으로 꿈틀대는 미래도시-라고스' 순서 이다.

역사순서로 파악하자면 수메르문명에서 현대까지인데 우르크에서 런던까지가 세계사에서 주로 접해왔던 오래전 역사라면 맨체스터 부터 라고스까지는 근현대사라고 할 수 있다. 익숙한 도시도 있지만 잘 몰랐던 도시도 있고 자연스런 주제어로 연결된 도시가 있는가 하면 뜻밖의 주제어로 묶인 도시도 있었는데 모두 한결같이 흠잡없을 데 없는 서술이었다. 고대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의 이 긴 역사가 이 책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근현대사 부분이 나머지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것을 보면 저자는 최근의 도시변화에 대해 그런 변화를 끌어낸 역사에 대해 더 알려주고 싶은게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오래전 역사를 좋아하다보니 우르크부터 런던까지의 역사를 좀더 인상적으로 읽게 되었다. 모르던 역사가 아니었음에도 새롭게 알게 되는 부분이 많아서 정말 좋았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에게 우루크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를 대변했다. (p. 36) '우루크'는 '도시'의 대명사다. 우루크는 세계 최초의 도시였고, 1,000년 넘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도심으로 군림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방대한 공동체를 이루자 상황이 급변했다. (p. 38) 괴베클리 테페 신전이 발견되면서 기존의 견해가 뒤집혔다. 그 언덕을 만들고 신을 숭배한 사람들에게는 놀랄 만큼 많은 양의 사냥감과 초목이 있었다. (p. 39) 신전이 농장보다 먼저 생겼다. 신을 섬기는데 전념하고자 정착한 사람들을 부양하려면 농장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 (p. 40) 예리코와 차탈회위크는 도시가 되지 못했다. (중략) 어쩌면 예리코와 차탈회위크는 너무 살기 좋은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두 공동체는 필요한 모든 것을 땅에서 얻었고, 설령 부족한 것이 있어도 교역을 통해 해결했을 것이다. (중략) 이렇듯 도시는 온화하고 풍요로운 환경의 산물이 아닌 최대한 협력하고 독창성을 발휘해야 하는, 비교적 혹독한 지대의 산물이었다. 세계 최초의 도시들은 역경을 이겨낸 인간 승리의 결과로 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 탄생했다. (p. 41) 대체로 도시화의 역사는 변화하는 환경에 인간이 적응하는 과정이자 인간이 욕구를 채우고자 환경을 적응시키는 과정이다. (p. 49)

첫 도시 '우루크' 의 역사부터 나의 무지를 깨닫게 했다. 신석기 혁명을 재고하게 만든 괴베클리 테페 가 등장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기에 처음부터 확 빠져들어 읽게 됐는데, 도시의 발달은 잉여같은 풍요가 아닌 혹독함이 근거였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최초의 도시가 습지대에서 시작했고 우루크가 천년이나 번성했으며 자연의 변화가 얼마나 인간의 생활을 끊임없이 변화시켰는지 그 사이 인간은 삶의 형태뿐만 아니라 인식의 변화도 얼마나 끊임없이 이루어졌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길가메시 서사시> 가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도 다시한번 배울 수 있었다. 이미 기원전의 도시문명사를 통해 인류문명사는 모든 것을 다 살아낸 것만 같았다. 그 반복이 이후로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우루크에서 시작된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문명은 전쟁과 환경적 재난과 경제적 붕괴를 견디며 4,000여 년동안 지속되었다. 숱한 제국과 왕국의 흥망을 지켜봤고, 그 막강한 피조물들보다 훨씬 더 오래 버텼다. 도시 문명은 건물의 복원력보다 이념의 확고함에서 더 의존했다. 도시에서의 삶은 고역이고, 무척 부자연스럽다. 길가메시의 전설은 도시사람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도시의 위력과 세력을 되새기고자 나눈 이야기 중 하나였다. 도시에서의 삶, 대부분의 인간은 누릴 수 없는 생활바익은 저주가 아니라 신성한 특권이었다. (p. 57) 국가와 제국과 왕이 있기 오래전 이미 도시가 존재했다. (p. 68) 우루크와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도시들은 우리에게 소리 높여 말한다. 한때 막강했으나 기후변화와 경제난으로 황페화된 그 도시들은 오늘날 모든 도시들의 궁극적인 숙명을 끈질기게 일깨우고 있다. 그 도시들의 유구한 역사는 눈부신 발견, 인간의 업적, 권력욕, 복잡한 사회의 복원력 등에 관한 역사다. 그 도시들은 다가올 모든 것의 서막이었다. (p. 73)

도시에서의 삶은 사실 굉장히 인위적인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지 않다고 볼수도 있고 그렇기에 인간다운 선택이라 볼수도 있다. 여하튼 도시라는 공동체가 생겨난 이래 사람들은 모두 도시에서 살기를 원해 왔다. 도시에서의 삶은 팍팍하고 고됨과 동시에 가치있고 숭상하게 되는 뭔가가 있었다. 도시로도시로 끊임없이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역사 그 도시들의 역사가 문명사가 됨은 당연한 결과였다. 도시들의 흥망성쇠는 늘 비슷한 패턴이 있어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도시를 바꿔가며 비슷한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 인간들의 문명사인 것일까.

문학 작품과 영화에는 음울한 도시의 악몽 같은 미래상이 가득하지만, 기술이나 건축술에 힘입어 모든 혼란 상태가 정리된 도시 또한 완벽한 이상향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이 같은 이중성은 인류 역사 속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특징이다. (p. 79)

성경에서 이상향으로 삼은 예루살렘과 비교되는 도시로 하라파와 바빌론이 설명되지만 하라파와 바빌론은 그렇게 타락하기만 한 도시들이 아니었다. 고대도시들의 발전사도 놀라웠지만 미래도시의 예로 삼은 것이 한국의 '송도'라는 점이 신기했다.

이 도시는 스마트한 도시라기보다 지각이 있는 도시다. 마치 공상과학소설 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이 이상향적(혹은 취향에 따라서는 음울한) 도시는 이미 존재한다. 관련 홍보물과 지지자들에 의하면 존재한다. 이 도시는 똑같은 주택용 고층건물이 늘어선 삭막한 도시들과 고속 경제성장으로 유명한 어느 나라에 있다. 바로 대한민국의 송도로, 황해를 매립해 마련한 땅 위에 350억 달러를 들여 새로 만든 이상향적 도시다. 21세기 '첨단 기술의 이상향'으로 불리는 송도는 초만원인 아시아의 대도시들에 시급한 해답을 제시하는, 살아 움직이는 도시로 선전되고 있다. (p. 89)

메소포타미아에서 현대의 송도로 왔다가 다시 성경속 시대로 들어가는 시간차가 엄청나지만 그 간극에 비해 서술은 굉장히 매끄럽게 연결되는 편이다. 여하튼, 고대의 찬란한 도시에 타락이라는 오명은 억울하다.

우루크나 우르 같은 초기의 대도시들이 단 하나의 신이 머무는 곳이었다면 바빌론은 온갖 신들이 관계망을 형성한 채 머무는 곳이었다. 으리으리한 궁전과 거대한 신전, 인상적인 성문과 초대형 지구라트 그리고 장엄한 의식용 대로를 갖춘 바빌론은 궁극적인 신통력과 세속 권력의 화신으로 설계된 도시였다. 바빌론은 우주의 중심에 있었다. (p. 104) 그러나 신화가 실상을 가리고 말았다. 그리스인들은 모든 동양적 요소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그들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들은 최대한 전제적이고 사치스럽고 퇴폐한 곳으로 보이도록 하는 데 열중했고 그리스 도시 문명의 찬란함을 과장했다. 자신들이 동쪽의 이웃들에게 진 빚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그리스인들의 선전 활동은 서양의 예술과 전통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p. 107)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다. 따라서 남겨진 사료를 통해 역사를 읽는 우리는 그 전후 맥락을 따져가며 읽어야 한다. 어느 시대에 무시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전시대에 찬란한 업적을 남긴 것이었기에 그럴 수 있다. 현재는 늘 과거를 뛰어넘고자 하고 그런 현재를 통해 미래는 현재와 다른 모습이리라 상상한다. 모든 시간이 다 기록으로 남겨지는 것이 아니기에 남은 기록을 읽는다는 것은 늘 이런 세심함이 필요한 일이다. 따라서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를 봐야하는데 그렇기에 이 책과 같은 새로운 시도는 늘 박수받아 마땅하다.

도시의 역동성은 주로 관념과 상품, 사람의 지속적 유입에 따른 결과다. 역사를 통틀어 볼 때, 도시가 번영을 누리려면 언제나 그곳의 관문을 두드리는 대규모의 이주자들이 있어야 했다. 외국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은 새로운 관념과 일 처리 방식을 선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는 고국에서 맺은 인맥도 있다. 그래서 항구도시에는 진취적 분위기가 흐른다. (p. 121)

역사에 길이길이 족적을 남긴 도시들은 다 다양한 이주민들이 오고가는 것이 자유로운 세계도시들이었다. 따라서 도시의 역사는 곧 이주민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새로움이 유입되지 않으면 아무리 거대한 도시도 흥성이 이울고 망쇠로 기울어감을 우리는 도시의 역사를 통해 보고또보고 재차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의 대도시들은 어떠해야 할까?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굳이 인간이 극적인 정치적 사건의 요체를 좋아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인간은 타고난 '도시 동물'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편이 낫다.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 문화를 이룩하기 위해 서로 뭉쳐서 더 큰 덩어리를 이루려는 경향이 있다. (중략) 사실 도시는 자연계보다 훨씬 더 우월한 것이었다. 왜냐면 편안한 삶과 정의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이 조성된 곳은 도시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p. 128)

'폴리스' 라는 말을 우리는 '도시'로 번역하지만 사실 그리스인들의 폴리스는 단순한 도시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따라서 그냥 폴리스 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인간이 폴리스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간이 정치적 동물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좁은 해석이다. 차라리 저자의 말처럼 인간은 도시적 동물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도시는 인간이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는 최상을 모습을 추구하는 그런 곳이곤 했다. 책속에서 도시들의 역사를 볼때마다 지금의 모습을 겹쳐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의 도시는 무엇을 추구하는가...

불과 몇천 명의 선구자들이 거주한 우루크에서부터 무려 2,000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라고스에 이르기까지 도시 생활의 기본원칙들은 그다지 많이 바뀌지 않았다. 우루크 시절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은 도시적 이상향을 꿈꿨다. (중략) 인류라는 생물종의 생존 여부는 우리의 기나긴 도시 방랑기의 다음 장에 달려 있다. 이야기는 번쩍거리는 세계적 도시들에서 펼쳐지지는 않을 것이다. (중략) 이야기는 개발도상국들의 거대도시들과 급성장중인 대도시들에 거주하는 수십억 명의 직접 체험을 통해 쓰일 것이다. 지난 5,000년에 걸쳐 수많은 도시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중략) 에너지가 고갈되고 기온이 더 올라가면서 도시의 환경이 더 혹독해질 때, 인류는 즉석에서 해결책을 찾아낼 것이다. 만약 역사가 일종의 안내자라면 역사는 그들이 성공을 거두리라고 말할 것이다. (p. 652)

저자는 무척 희망적으로 책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가난의 대명사로 불리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도시 '라고스'를 마지막으로 살펴보면서 인류가 역사를 만들어가는 동안 도시방랑기는 계속될 것이고 그렇게 뜻밖의 도시가 새롭게 부흥하며 그렇게 인류문명사가 계속 쓰여져 갈 것이라 말한다.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한 역사는 계속 쓰여질 것이다. 시간은 정체되어 있지 않고 인간은 늘 이동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새로운 도시가 급부상하는 역사도 이어질 것이라 생각되긴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역사가 저절로 쓰여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도시들의 역사에서 그도시의 발전 보다는 쇠퇴를 좀더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좀더 나은 '도시'를 만들어가는 노오력을 해나갈때 삶은 좀더 나아질 것이다.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성공이라면 성공이지 않을까.

ps. 뜻밖의 곳에서 한국의 도시와 한국의 역사를 만날때 무척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송도부터 시작해서 조선을 건너 청계천까지 한국의 역사가 세계적 도시의 역사에 연결되고 그렇게 함께하고 있었음을 보게 된 것이 참 흡족한 마음이 들곤 했다. 방대한 역사와 곳곳의 도시들을 폭넓고도 긍정적으로 연구하고 재미있게 풀어써준 저자에게 참 감사하다.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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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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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통찰로 아버지의 한 생을 우뚝 그려낸 신경숙의 신작 장편소설

가족의 나이 듦을 비로소 바라보게 된 우리 모두의 이야기

좋아하는 소설가들이 여럿이지만 그 중에서도 꼽으라면 나는 공지영 과 신경숙을 꼽을 것이다. 권여선, 정유정, 김혜진, 구병모 등등 좋아하는 작가들이 많지만 신경숙과 공지영은 특별하다. 작가 자신의 삶과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라서 허구와 삶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닌지 공지영 작가가 작년에 낸 신작 '먼 바다' 의 작가 후기엔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처지가 슬프지만 이 소설은 당연히 허구이다' 라고 적어야 할 정도다.

두 작가 모두 나름의 논란이 좀 있었던 작가들이다. 하지만 그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의 문체가 워낙 특별하다 보니 그런 작품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팬심이 그닥 흔들리진 않았더랬다. 공지영의 작품에선 '투지'가 느껴진다면 신경숙의 작품에선 '물기'가 느껴지곤 했다. 불끈불끈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작품도 좋고 눈물인듯 빗물인듯 마음 한켠을 촉촉하게 적시는 작품도 좋고 그랬다. 이번 작품에서도 읽는 내내 때론 눈가가 때론 마음이 젖어들었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작가에겐 이런 아버지가 계셨구나... '엄마를 부탁해' 속 엄마도 '아버지에게 갔었어' 의 아버지도 참 따듯하시던데... 작가에겐 참 좋으신 부모님이 계셨구나 싶어서...

여동생이 얼른 언니가 그런 것에 신경 쓸 마음이 아니잖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런 것에, 라는 여동생이 남긴 말의 여운이 책상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게 했다. 그렇게 무력감 속에 두어시간을 앉아만 있다가 나는 J시로 가는 기차표를 예약하고 노트북의 전원을 뽑아 가방에 담고 가족 대화방에 나의 J시행을 알렸다. 엄마가 병원에 있는 동안 내가 아버지에게 가 있겠다, 고 했다. (p. 11~12)

육남매의 네째이고 작가인 화자는 어린 딸을 교통사고로 잃고 부모를 비롯한 가족 누구와도 만나지 않은채 몇년을 혼자 자신의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틀어박혀 있었다. 남매들의 가족단톡방에서 부모에 대한 이런저런 걱정이 오갈때도 무심하게 흘려보내곤 했다. 그러다 어머니가 서울 병원에 입원하시고 시골에 아버지 혼자 남아 계시는 상황이 영 마음에 걸려서 오랜만에 고향집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그렇게 내려간 고향집 마당에서 본 아버지는 혼자 우두커니 선채로... 울고 계셨다.

언젠가 신문에 '나의 아버지'라는 에세이를 청탁받아 쓴 적이 있었는데 큰오빠는 그것도 패널로 만들어 책장 앞에 세워 두었다. 큰오빠는 마냥 기쁜 얼굴로, 네가 쓴 글을 아버지에게 읽어드렸다,고 했다. 나는 내 가족이 나의 글을 읽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그 마음을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부끄럽다,는 것이 가장 근접한 마음일 것이다. 함께한 어떤 시간을 내 식대로 문장으로 복원해서 내놓은 일을 그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짐작해보면 아찔하고 난감하고 부끄럽다. 그리고 두렵다. 사라져도 무방할 어떤 시간들이 내가 쓴 문장으로 인해 언어로 채집되어 존재하게 되는 것이. (p. 47)

소설가는 허구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쓰는 사람들이지만 나는 그런 작품 속에서도 작가 본인의 진심이 드러나는 문장들이 있을때면 무척 반갑곤 하다. 그런 진심은 작가 특유의 솔직함에서 비롯된다. 신경숙의 솔직함은 내성적이고 부끄럽지만 잔잔한 울림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진심어리게 작품에 스며들게 하는 작가들이 참 존경스럽다.

아버지가 돌아누운 벽 위쪽엔 나와 큰오빠를 시작으로 내 형제들이 학사모를 쓰고 찍은 사진들이 나란히 걸려 있다. 어둠 속에서 아버지는 아마도 큰오빠의 사진을 시작으로 해서 막내의 사진까지 일별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아버지 등 뒤에서 학사모를 쓴 큰오빠의 사진을 올려다봤다. 내 사진이 걸려있어야 하는데 그 자리는 비어 있다. (p. 61)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아버지의 요청을 거부했다. (p. 62) 아버지는 동생들에게 사진을 받아 벽에 걸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내 자리를 비워놓았다. (p.64) 큰오빠가 일갈을 했다. 그것이 아버지 인생 아니냐, 너는 글을 쓴다는 사람이 사람 마음을 그렇게 모르냐? 아버지 마음도 제대로 모르면서 무슨 글을 쓴다고…… 아버지 인생? 우리들 학사모 쓰고 찍은 사진이? (p. 65)

나이든 어르신이 사시는 집에 가면 사진이 많이 걸려 있곤 하다. 내가 어릴때 갔던 시골집에도 온갖 사진들이 벽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흙벽에 누렇게 뜬 벽지가 그 집의 역사를 알려준다기보다 그 많은 사진들이 그집에서 살아온 누군가의 삶을 말해주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은 자꾸만 늘어간다. 어르신들이 나이드실수록 자식들이 사진은 자꾸 늘어만 간다. 그것이 당신들의 인생이신 걸까...

나는 니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거 보는 게 좋았고나. (p. 67)

아버지가 니가 학고 싶어서 하는 일은 잘되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하마터면 아버지 나는 나 자신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할 뻔했다. 나는 하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라 살고 싶어서 쓰는 것 같아요,라고. (p. 91)

1933년생이신 아버지는 열네살에 전염병으로 양친을 잃었다. 아직 소년인 나이에 종가의 장손으로 집을 지키며 제 몫을 해야 했다. 그리고 열일곱살때 전쟁이 터졌다. 삶에서 가장 혹독했던 시절은 바로 그 6.25때였다. 전쟁은 많은 것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삶은 이어졌고 이십대 초반의 나이에 벌써 두 아이의 아버지였다. 점점 늘어가는 자식들 입에 먹거리가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쉬는 철 없이 온갖 일을 해야 했던 아버지는 누구에게도 큰소리 한번 낸적 없는 온화한 성품의 사람이었다. 어린 딸을 잃은 당신의 큰딸이 홀로 고통에 빠진채 오지말라고 외면할때 멀리서 그저 기다리고 또 기다려주던 그런 아버지였다. 이심전심인건가... 이런 아버지 밑에서 육남매는 모두 착하게 잘 자랐다. 참 착하게... 야무지게... 잘... 자랐다...

아버지는 헌이는 걱정할 것 없다, 헌이는 약속을 지킨다, 헌이가 그렇게 말했으면 맞는 말이다,라고 했다.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 긍정적인 말들의 영향은 적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 말대로 걱정을 끼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벅찬데도 약속한 일은 지키려고 했다. 아버지가 그리 말했기 때문에 적어도 내가 알면서는 타인에게 틀린 말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p. 137)

당신의 삶이 고됐는데도 자식들에게 험한 소리 한번 하지 않던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에 대해 그동안 아는 것이 너무 없었음을 고향집에 내려와 아버지와 단 둘이 지내면서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는 너무나 야위고 쪼그라들어 계셨다. 수시로 눈물을 흘리셨고 밤이면 갑자기 어딘가로 사라지시곤 했다. 아버지의 몸은 잠들고 싶으나 뇌가 잠들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무심코 열어본 창고방에 가득 쌓여있는 홈쇼핑택배 박스들, 뜯지도 않은채 그대로 있는 그 박스들을 보며 마음한켠이 아려오긴 했으나 그보다 더 진한 충격을 주었던 것은 그 박스들 옆 상자에 담겨 있던 편지들이었다.

바람불고 눈 내리는 겨울밤, 마을 사랑방에서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귀가가 늦는 아버지 밥상에만 구운김을 내놓았다. (중략) 뭐 하느라 한밤에 다니느냐고 퉁명스럽게 말을 하면서도 어머니는 윗목에 차려놓은 밥상의 상보를 걷어 아랫목에 묻어놓은 밥그릇을 상 위에 올리고 기름을 발라 사각으로 자른 구운 김을 접시에 담아 아버지 밥그릇 옆에 놓았다. 고소한 김 냄새가 겨울밤 방 안에 퍼지면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아버지 밥상 옆으로 하나둘 다가가서 빙 둘러앉았다. (중략) 아버지는 김 한장에 밥을 얹고 여며서 쪼로록 앉은 우리들 입에 차례로 넣어주었다. (p. 193) 언젠가 어떤 인터뷰에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문득 그 겨울밤이 떠올랐고 아버지가 김에 싸준 밥을 받아먹었을 때 참 행복했다고 대답했다. (p. 194)

다복하고 따스하고 행복함이 느껴지는 이 푸근한 장면엔 사실 엄청난 반전이 숨어 있음을, 아버지의 인생과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참으로 절절했던 장면임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아버지가 읽고는 그때 행복했냐?고 물었다.

예, 아버지.

아버지는 헛헛하게 웃었다. 내가 행복했다는 그때를 두고 아버지는 무서웠다고 했다. 젊은 날에 당신의 새끼들인 우리가 음식을 먹는 걸 보면 무서웠다고. (p. 194)

하지만 무섭기만 했다면 어찌 살아냈겠는가... 무서웠지만... 무섭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랬을까. 아버지도 엄마처럼 우리의 먹성이 무섭기만 한 게 아니라 힘이 되기도 했을까. (중략) 아버지가 고백처럼 젊은 날에 우리들의 먹성이 무서웠다고 한 말은 내겐 충격이었다. 처음으로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아버지의 소년 시절을, 아버지의 청년 시절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전염병으로 이틀 사이로 부모를 잃은 마음을, 전쟁을 겪을 때의 마음을, 얼굴 한번 보고 엄마와 결혼하던 때의 마음을, 큰오빠가 태어났을 때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나를, 짐작이 되지 않았다. (p. 195)

어디 먹는 것 뿐이었겠는가, 자신의 삶이 고되다는 것을 알면알수록 자식들에게 그런 삶이 대물림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커졌고 그렇게 또다시 뼈골빠지게 자식들 가르치는 것이 온 생애의 목표가 되었을 것을...

자식들이 하나둘 학교에 가고 다시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마침내는 대학에 가기 위해 집을 떠날 때마다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 것인지.

두렵고 무섭지 않은 날이 단 하루라도 있었을는지.

(중략) 무섭고 두려운게 많은 아버지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방식으로 세상과 대적해왔다는 것도. 아버지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은 말할 것이 없제, 였다. (p. 196)

나이든 아버지와 지내며 아버지의 인생을 처음으로 되짚어보게 되고 그렇게 '아버지의 내면에 도사린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엄마보다 아버지를 다정히 여기며 살아왔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한 말은 늘 한가지였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업다. 하늘 아래 니가 건강하면 그뿐이다. (p. 229)

아버지의 지난 삶을 알게 되면서 다른 가족들에게도 물어보게 된다. 아버지에 대해 얘기를 해보라고 하니 각자 풀어놓는 이야기들이 모두 하나하나 모두다 처연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에게도 청춘은 있었다. '엄마를 부탁해'에서 엄마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듯이...

왜 안 떠나셨어요?

못 떠났제.

왜요?

나는 집에 왔어야 했으니까. (p. 264)

옛날엔 그랬다고 한다. 가족을 위해 사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던 그런때가 있었다고. 그 옛날이 사실 얼마 오래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정말 까마득히 멀게 느껴지는 옛날일수도 있지만 지금과는 다른 결의 시간임은 분명하다. 나보다 가족을 먼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든간에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먼저인 그런 시간...

자네 아버지가 내 안부를 묻기만 하고 나를 찾아오지 않았던 시간들을 나는 이해하네. 그렇게 흘러갔어도 내가 뭐라겠나. 그런데 어느해인가 자네 아버지가 대학생이라던 셋째 아들을 데리고 찾아왔자. 그때는 이미 자네 아버지나 나나 나이를 한참 먹어버려서 아무것도 문제가 안 되더만. 무엇 때문에 그리 오래 만나기를 꺼렸는지 허망하기조차 했네. 자네 아버지가 나타났을 때 왔구나, 했어. (p. 297) 아니 정확히는 숨겨달라고 했네. 혈기만 왕성해서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르는 놈이 날뛰다가 잡혀가서 고문당하고 얻어맞아 허리까지 부서지고 수배 중인데 이대로 또 잡혀 들어가면 살아남지 못할 거라며. (p. 298) 부자가 말을 안 섞었어. 자네 아버지는 아들 앞에서 입을 달싹도 안 했네. 아들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자네 아버지가 일어서버리더만. 한번은 내가 자네 아버지에게 왜 아들하고 말을 안 하느냐고 물으니 머리통이 다 큰놈이라 말을 섞어봐야 이길 수가 없다고 했어. (p. 299) 아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세상에 분노가 치밀어서 죽을 것 같다고. 그러니 알아듣고 싶지 않고 그래야 자기가 버틸 수 있다고 했어. 전쟁도 지나갔는디 이 시간도 지나가지 않겠냐고 그때까지는 아들을 지켜주는 것만 생각할란다고 했어. (p. 300)

한문은 유창하게 써도 한글 쓰는 것은 쭈뼛거리는, 학교한번 못가본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듣고' '세상에 분노'할줄 아는 멋진 아버지였다. 요즘에도 이런 아버지는 잘 없지 않을까... 함께 분노해주기 보다는 한껏 야단치고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은채 반대의 말만 쏟아붓는 아버지들이 더 많지 않을까... '그런 아버지가 어느 시절부터인가 잠을 자지 못하고 몽유병 환자처럼 집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니느라 피로에 절어 혼절하는 상태가 될 때까지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p. 374)

수면장애 검사가 시작되었다. 검사 전에 아버지의 상황과 병력을 세밀히 적어야 했는데 나는 그때마다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다. 설문지의 간단한 내용을 작성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같이 자는 사람이나 알수 있는 내용도 있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 잠 습관에 대해 묻다가 나는 아득해지곤 했다. 엄마의 기억에 의하면 아버지가 밤에 자다가 일어나 우두커니 앉아 있기 시작한 것은 삼십년이 지났고, 격한 잠꼬대를 시작한 것은 이십년은 지난 이야기이며, 자다가 일어나서 마당을 서성거리다가 헛간에 들어가는 일도 십오년전부터 있어온 묵은 것들이었다.

왜 그런 말씀을 이제야 하세요?

너나 이제 아는 일이지…… (p. 376~377)

의사들의 말은 한결같았다.

'아버지의 몸은 늙고 지치고 피곤한 상태라 해가 지면 자고 싶어하지만 뇌는 깨어 있는 거라고 했다.' '오래 방치해온 수면장애로 아버지가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도 했다.'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도 동시에 겪고 있다고. 어느 것이 먼저인지를 지금 알아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도 했다. 초기라면 우울증과 불안, 공황장애 때문에 수면장애가 온 것인지, 그 반대인지를 관찰해서 치료법을 찾았겠으나 지금은 분리해서 관찰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서로 엉겨붙어 있다고. 단기간에 치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p. 377)

아버지는 여든이 넘은 노인이었다. 첫째가 환갑이 넘어 은퇴를 했으니 곧 노인이 노인을 모시게 될 그런 나이였다. 그 긴 인생의 풍파가 밤이면 뇌속에서 깨어나 때론 일제치하로 때론 전쟁통으로 때론 최루탄 매캐한 서울한복판으로 아버지를 불러내고 있었다.

뭐한다요?

호박 속 파고 있는 거 안 보인가? 가기 전에 호박 버무리나 해 먹고 갈라고.

먹고 싶은 거 있으믄 해 먹고 가야제.

내가 언제 죽겄는가?

그것을 내가 어찌 안다요.

안지 살기 싫은디 안 데려가네.

뜻대로 되는 일인가.

넝뫼 양반은 좋겄소. 이도 다 해넣으니 튼튼한 이를 하고 갈 수 있응게.

염색해야 쓰것소. 언지 갈지도 모르는데 그리 허연 머리로 갈라요?

해야제.

늘 깨깟하게 하고 있어시오. 언지라도 갈 수 있게. (p. 400)

'산보를 나갔다가 마을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대화가 매번 이런식이었다. 당장 내일이라도 만날 수 없는 이들이 나누는 것 같은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덤덤하게 나누었다. 아버지가 이 치료를 마쳤을 때 신작로에서 만난 왕림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향해 인자 지대로 고기도 깨물어보다가 가소,했다. 아버지는 그리야겠네,했다. 말을 건네는 사람도 대답을 하는 사람도 덤덤했다.'(p. 402)

시골일수록 평균연령이 높아진지 오래다. 한번 빈 집은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지 않아 마을 주민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곳이 여러 곳이다. 언제가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 누군가 가면 더는 누구도 오지 않는 마을... 그런 나이의 삶에 대해 한번쯤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살아냇어야,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어야,라고. (p. 416)

출판사에서 진행했던 이벤트에 당첨되어 가제본으로 읽은 작품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읽은 작가의 장편소설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작가 특유의 좋은 문장맛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 뒤로 갈수록 구성력이 좀 떨어지는 감이 있긴 하지만, 어찌보면 한국적 신파라고 진부하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 내용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참 좋았다. 그리고 작가가 다시 자신만의 작품으로 세상에 나와주어 참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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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와이즈 바우어의 세상의 모든 역사 : 중세편 1 수잔 와이즈 바우어의 세상의 모든 역사 1
수잔 와이즈 바우어 지음, 왕수민 옮김 / 부키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교양 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역사 이야기>저자가 들려주는

"어른들을 위한 교양 세계사'

흥미진진한 통일과 균형의 파노라마, 세계 중세 이야기!

진정한 세계사 책이, 제대로 된 세계사 책이 드디어 나왔다! 그동안의 세계사 책들은 대부분 '세계사'라는 이름을 달고 세계의 역사를 다 품지 못하는 책들이 많았다. 세계사 라 해놓고 서양사 이기 일쑤였기에 중앙아시아사, 동양사, 남아메리카사는 따로 찾아 읽고 끼워맞춰야 세계의 역사가 되곤 했다. 세계사가 세계사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세계를 모두 품은, 진정 제대로 된 세계사 책이다. 원제는 'The History of the Midieval World' 이지만 '세상의 모든 역사'라 하기에 충분한 아니 '세상의 모든 역사'라 부르기에 마땅한 책이었다.

중세편은 콘스탄티노플의 기독교 문명에서 제1차 십자군 원정까지 인데 1,2권으로 나위어져 있어서 1권에서는 312년~661년 까지 다루고 그다음은 2권에서 1129년까지 다룬다. 저자의 이 책은 전체 6권으로 예정된 시리즈 중 가운데 부분이다. 고대편 1,2 와 르네상스편 1,2 는 근간 이라고 예정되어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전 시리즈를 모두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다. 서양인이 썼음에도 이토록 균형잡힌 서사는 처음이었다.

가장 놀라운 부분은 앞서 언급했듯이 이 책이 정말 모든 세계를 포함하고 있는 세계사책이라는 점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로마제국 에서 시작하기에 페르시아와 북아프리카 그리고 게르만족 정도는 다른 책들에서 그러하듯이 당연하게 등장하면서 아라비아와 중앙아시아 및 인도 그리고 중국에 이어 한국과 일본까지 두루 살펴보는데 그 어떤 세계사 책이 이렇게 극동까지 다룬 적이 있었던가! 게다가 서양사 초기에 큰 비중이 없는 편인 브리튼과 일찍이 고대문명이 발달했던 메소아메리카까지 다룸으로써 정말 동시대 모든 지역의 역사를 총괄하고 있는데 겉핥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름의 깊이감이 있어서 읽으면 읽을수록 놀라운 책이었다. 이 방대한 지역을 다루면서 이토록 객관적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존경스러웠다. '교양세계사'로 읽을 책으로서의 가독성까지 훌륭했다. 이 시리즈가 모두 나온다면 앞으로 세계사에 관심 있는 사람에겐 이 시리즈의 전권을 보면 된다고 말하게 될 것 같다.

저는 이 책이 서구 독자들에게 자칫 소홀하기 쉬운 동양에 대한 인식을 심어 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한국 독자들에게는 동양과 서양의 공통점은 물론이고 한국 고대사가 나머지 다른 세계와 어떤 연관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을 넓혀 주기를 바랍니다. (p. 12) -한국어판 서문 中 -

서양인들에게 세계사를 자신들만의 역사가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고마웠지만 한국인인 나도 잘 모르던 한반도의 고대사도 이 책을 통해 많이 배울 수 있었기에 세계사 전반에 두루 관심을 갖고 연구하여 이런 책을 저술해 준것이 참으로 고마웠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고서야 세계사 따로 한국사 따로 였던 시간들이 서로 얽혀들어 동시대의 역사로서 인식할 수 있게 되었기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다.

제각각의 역사로 보면 어디가 먼저 발달하고 어디가 늦게 발달했다는 식으로 역사를 역사로 보지 못한채 줄세우기식 발달사로만 잘못 판단하기 쉽지만 이렇게 동시대를 두루 함께 살펴보면 앞뒤 맥락이 연결되므로 이런 영향을 주고받았기에 이렇게 변했구나 하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틀린 것이 아라 다른 것이다 라는 말을 좋아한다. 역사도 비슷하다. 어느 역사가 나은지 아닌지 비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모든 역사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다 제각각의 이유가 있었고 다 제각각의 의미가 있었다. 전체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맥락을 짚을 수 있다는 것이고 역사 특히 세계사에서는 이런 맥락이 정말 중요하다. 이 책은 그런 포괄적이면서 균형잡힌 세계사의 프레임을 갖고 있다. 정말 읽을 가치가 있는 역사책이었다.

하늘 높이 내걸린 십자가의 그늘 아래, 콘스탄티누스가 그 나름으로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모델에 따라 로마는 이렇게 재탄생하고 있었다. 이제 공공 광장 한 켠에는 사자굴에 들어간 다이넬을 본든 조형물이 분수대를 장식하고 있었고, 황궁의 지붕 정중앙에는 그리스도의 수난상이 황금과 각종 보석을 넣은 화려한 돋을 새김 조각으로 표현됐다. (p. 34)

세상 서쪽에서 콘스탄티누스1세가 자신의 제국을 차근차근 통일해가는 동안 진 제국은 차차 가랄질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p. 37)

한구석으로 쪼그라든 영토 안에서 진이 다시 살아나려 애를 쓰는 동안, 흑해 쪽 새로운 도시에서 콘스탄티누스1세가 한참 나라를 다스려 가는 동안, 인도에서는 수많은 아왕국과 부족국가가 우후죽순 일어나 서로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p. 55)

제국의 수도를 동쪽으로 옮긴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러고 나자 콘스탄티누스1세는 가장 위험한 적을 코앞에서 마주한 꼴이 됐다. 바로 페르시아의 왕이었다. (p. 71)

로마 제국에서 동방을 향해 저 끝까지 간 곳에 전투의 패배를 씻으려 절치부심하는 한 왕이 또 있었다. 371년,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소수림왕은 고구려의 왕관을 물려받으면서, 적군의 말발굽 아래 짓밟혀 위세가 말이 아닌 나라도 함께 물려받은 터였다. (p. 125)

시대와 나라에 맞게 장이 잘 구분되어 있지만 이 장을 묶어서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통합' 이다. 콘스탄티투스가 기독교로 통합시키려 할때 중국에서도 천명을 다투고 있었고 인도에서 그리고 서방에서 멀고 먼 저 극동의 지역 고구려에서도 그러했다.

로마 제국이 이제 둘이 돼 버렸다는 사실이 사람들 눈앞에 번연히 펼쳐졌다. 비록 두 명의 황제 아래 두 개의 수도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이름상으로 로마 제국은 여전히 하나의 땅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마저 쩍하고 금이 가 선명하게 둘로 갈라진 판이었다. 서방에서는 황제의 후견인으로 통하는 스틸리코가 동방에서는 이제 범법자로 통하고 있었으니까. (p. 178)

굽타왕조가 '마음의 제국'을 하나로 통일하려 애쓰기는 했지만, 인도 제국의 통일은 외부의 침약이 없던 시절에나 가능했다. 쿠마라굽타1세와 스칸다굽타 치세에 일어난 에프탈족의 침략은 그 위세가 자못 심각했어도 문명을 완전히 종식할 정도는 아니었고, 서방의 훈족이 가했던 위협처럼 압도적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굽타 제국의 단결력은 외부에서 중간급의 위협만 가해져도 금방 한계에 다다를 만큼 쉽게 깨어지는 것이었다. (p. 224)

이제 중국에서 가장 막강한 위세를 자랑하는 나라는 두 곳 곧 남방의 유송과 북방의 북위였다. (p. 233)

과거 알라리크는 자신의 추종자들을 모아 서고트족이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변모시키는 데 성공한 바 있었다. 아틸라도 그의 부족민들을 결집해 하나의 훈족 군대로 통합하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어떤 새로운 민족이 지도자 한 사람의 야망만을 추동력으로 삼아 출협하게 되면 그 지도자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 그 신생국도 정체성도 바로 종말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p. 270)

군데군데가 전쟁터로 화한 갈리아 땅을 지나, 서고트족이 점차 위세를 키워 가던 히스파니아의 땅 옆 바다까지 건너서, 서로마 황제의 옥좌와 한참 떨어진 저 머나먼 땅 브리튼의 섬들, 이즈음 이곳에선 자잘하게 나뉜 땅덩이들이 이리 붙고 저리 붙기를 반복하며 각기 정체성을 형성해 가고 있었다. (p. 283)

2부는 '분열'의 시기였다. 로마도 확연하게 두 쪽으로 갈라지고 서방에선 우후죽순 부족들이 나라를 세우기 시작했다. 중국땅에서도 크게 두 지역으로 나뉘긴 했으나 통일세력은 아직 멀어보였고 어렵게 모아지려 했던 인도또한 다시 조각났다. 제국이라 이름 붙인 곳도 실상 제국이 아닌 상태의 전세계적으로 소국가들의 난립기였다. 그러는 사이 로마의 서쪽지역은 거의 완전히 로마제국의 영토가 아니게 됐고 이 476년을 서로마제국의 멸망 혹은 로마제국의 멸망이라 흔히 부른다. 하지만 3부 '신흥세력들' 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로마제국의 명맥은 이어지고 있었다. 중국에서 진제국의 명맥도 그러했고 인도에서도 저 멀리 메소아메리카에서도 그러했다.

이즈음 이탈리아반도는 테오데리크와 그의 동고트족이 완전히 장악한 한편, 서로마 제국의 나머지 땅들은 도저히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가 돼서는 로마 주교와 콘스탄티노플 주교 사이의 골만 점점 깊어가는 상황이었다. 동로마 제국은 로마 제국 본래의 태를 벗고 차차 그것과는 약간 다른 무언가로 변모해 간다. 바로 비잔티움으로 로마보다는 동방에 가깝고 언어는 라틴어보다 그리스어를 주로 쓰며 로마 주교의 눈에는 '가톨릭'과도 점차 연이 멀어지던 그 제국으로. (p. 346)

이 무렵 중국 북쪽 땅의 북위는 강한 힘을 자랑하며 싸움을 일삼는 분위기였던 반면, 남쪽 땅의 유송은 점점 그 기가 꺾여 갔다. (p. 351) 중국의 북방, 그리고 동쪽 나라들까지 고대 중국의 전통들을 제 것으로 삼겠다고 아우성인 와중에, 정작 중국 남방의 유송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p. 365)

전성기를 구가했던 굽타 제국은 이즈음 세가 판이하게 줄어 있었다. (p. 401) 인도 북부는 다시 예전처럼 누덕누덕 기운 천 조각 마냥 잘게 쪼개졌다. (p. 406) 535년 이 크라카타우섬 화산이 기어이 터졌다. (p. 408) 작황실패는 동방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나무 나이테 데이터로 미루어 보면 535년부터 540년경 기간에는 동방만이 아니라 오늘날의 칠레, 켈리포니아, 시베리아처럼 서쪽으로 한참 떨어진 지역에서까지 '여름철의 생장이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은 당시 몇 년 동안은 그만큼 여름철이 춥고 어두웠다는 뜻이다. 태양이 빛을 잃고 어둑어둑해지면서 발생한 역병, 굶주림, 기근은 당시의 중세 세계 전역을 휩쓸었다. (p. 411)

신기하게도 세계사의 흐름은 비슷했다. 인류의 문명 발달은 마치 순서가 있는 것처럼 비슷한 통합과 분열이 서양에서도 동양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세계에 영향을 끼친 자연재해가 있었으니 크라카타우섬 화산 폭발이다.

크라카타우섬 화산에서 뿜어져 나온 화산재는 바람을 타고 상공 높이 떠올랐고, 이후 5년 동안 그렇게 상공에 머물며 원을 그리듯 지구 둘레를 떠돌았다. 이 때문이었을까, 여름철이 춥고 어두침침해지는 일이 지구 반대편 세상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다. 남북 아메리카 대륙 곳곳의 숲이며 밭들이 가뭄에 시달리는 한편, 작물을 말려 죽이고야 마는 그 건조한 날씨가 물러가는가 싶으면 어느덧 엘니뇨가 비정상적이라 할 만큼 빈발해 대륙에 지독한 홍수를 몰고 오는 일이 3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로마, 이집트, 동양 땅에 제각각 위대한 도시 문명이 건설돼 한참 전성기를 구가하는 동안, 중앙아메리카에서도 그곳을 본거지로 삼은 사람들이 그 나름의 독자적이고 복잡한 문명을 한창 발달시켜 갔다. 그렇지만 여기 중앙아메리카 사람들은 로마인, 이집트인, 중국인과는 달리, 자신을 다스린 통치자를 소재로 역사를 쓴 적이 없었다. (p. 415)

세계 곳곳의 역사를 살펴보다 보면 이렇게 세계 전체에 영향을 끼친 자연재해를 통해 세계사를 묶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다른 세계사책에서는 미처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던지라 무척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즈음 아프리카, 엄밀히 말하면 나일강 바로 옆 동쪽 땅에서는 악숨 왕국의 군대가 아라비아반도로 치고 들어가기 위해 전쟁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p. 429)

이제 새로 연호까지 제정해 쓰겠다는 것은 신라가 한반도에 이웃한 백제, 고구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국으로 거듭났다는 뜻이었다. (p. 475) 안타깝게도 이들 신라, 백제, 고구려 3국이 함께 커 나가기엔 한반도의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반도 남쪽과 동쪽은 바다가 막고 있었고, 서쪽에는 중국이 버티고 있었으며, 북쪽은 매서운 '한파'가 몰아쳐 발 들이기 힘든 땅이었다. 그말은 엇비슷한 성격의 이 3왕국이 이 시절 내내 한반도의 패권을 수시로 주고받으며 밀고 밀리기를 끊임없이 반복했다는 뜻이다. 서양에야 탁 트인 넓은 땅이 있어 서고트족, 동고트족, 프랑크족이 한꺼번에 출몰해 여기저기를 마음껏 누비고 다녀도 서로 뒤엉킬일이 별로 없었지만, 한반도의 이 3국은 좁은 땅덩이 탓에 싸움을 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상황이었고, 실제로도 서로 간에 끊임없이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어느 한 왕국이 아주 사라져 버리거나, 아니면 어느 한 왕국이 아주 오랜 기간 한반도 패권을 차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p. 476)

세계사 중심으로 역사를 읽다보면 상대적으로 한국사가 별볼일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본다. 한반도의 삼국시대도 처해진 조건하에서 치열하게 역사의 한 바퀴를 굴리고 있었다. 이렇게 세계사와 함께 한국사를 읽을 수 있다니 정말 좋다. 그리고 신라의 한반도 통일 흐름은 세계 곳곳에서의 통일 흐름과도 맥을 함께 하고 있었다. 세계 어디건 나라의 발달사가 그렇다는 듯이.

인도 남부에서 논바닥처럼 갈라져 있던 소규모 왕국들이 하나둘 이어붙어 하나의 매끈한 제국을 이루기 시작한 것은 543년부터다. (p. 511)

페르시아인이 아라비아반도로 진출하는 한편, 유스티니아누스와 호스로 모두 미덥지 못한 후계자들에게 나라를 물려주게 된다. (p. 525)

네 갈래로 갈라져 있던 프랑크족의 통치가 또 한번 하나의 왕권 아래 통일된 것은 558년 무렵의 일이었다. (p. 543)

비잔티움의 황제로서 한번쯤 꿈꿔 볼 만한 일들을 헤라클리우스는 현실 속에서 정말로 다 이뤄낸 셈이었다. 그런데 그런 성취를 이루는 동안, 그는 그만 비잔티움 제국과 남쪽의 아랍인 사이에 놓여 있던 장벽까지 싹 다 없애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p. 605)

어마어마한 규모로 벌어진 로마와 페르시아 사이의 살벌한 전쟁도 저 아래쪽 사막 지대에서는 그저 다른 세상 일일 뿐이었다. (p. 609) 530년대와 540년대를 거치는 동안, 예기치 못한 기상 패턴의 변화로 말미암아 심각하고 갑작스러운 폭풍우가 두 차례 아라비아 반도에 들이닥쳤다. (p. 610) 남쪽 출신 부족들이 보다 나은 환경을 찾아 아라비아반도 북동쪽 일대의 오아시스 쪽으로 이주해 버린 것이다. (p. 612) 사람들이 북쪽으로 흩어졌다는 것은 이제는 대도시 메카에만 아랍의 제 부족이 몰려들지는 않는다는 뜻이었다. (p. 613) 대중 앞에서 무함마드가 이 같은 내용을 공히 선언하고 나서자, 그의 말에 모여드는 추종자도 점점 불어났다. (p. 620) 이렇듯 이슬람교는 처음 시작부터 그리스도교와 달랐다. 예수의 추종자들에게는 자기네 도시랄 게 따로 없었고 자기네 왕국은 당연히 없었다. (p. 624) 하지만 무함마드에겐 애초 시작 때부터 도시가 있었다. (중략) 따라서 그의 가르침은 활동을 갓 시작한 초창기부터 정치적 질서를 세워야 한다는 그 자신의 필요성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p. 625)

갈라지고 합쳐지고 또 갈라지고 합쳐지는 이합집산 속에서 점점 중요해지는 것은 갈라진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이념, 바로 종교였다. 역사가 발달할 수록 권력자들은 종교의 이점을 깨달았고 유용하게 이용하려 애썼다. 하지만 종교는 생각보다 다루기 힘든 기술이었다. 권력자의 마음대로 휘둘러지는가 싶다가도 사람들의 믿음은 전혀 예상밖의 곳을 향하기도 했다. 그렇게 옥신각신 하던 땅에서 피로도가 쌓이는 사이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예언자가 나타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이기도 했다. 정작 초창기에는 종교로 중앙집권에 실패한 황제들이 많았지만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종교로 중앙집권을 보다 효과적으로 성공시켰던 곳은 아라비아반도 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종교로 마음을 다잡으며 실질적으로 행한 방법은 정복이었다. 앞선 제국들이 그러했듯이.

당 왕조는 이제 나라를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한발 한발 조심스레 나아가는 중이었다. (p. 627) 당나라 장수들은 정복 활동을 벌이던 중 중국 남서쪽에도 또 한 명의 제국 건설자가 있음을 알게 된다. (중략) 저 멀리 서쪽 땅에 사는 프랑크족 왕 클로비스2세, 혹은 알타이산맥에서 돌궐족을 이끈 부민 카간과 마찬가지로, 송첸 감포 역시 어중이떠중이로 모여 있던 인근의 여러 부족을 하나의 어엿한 왕국으로 변모시키는 작업에 돌입한다. 송첸 감포가 택한 방법도, 이 시절 부족장에서 왕으로 변신한 대부분의 인물들이 그랬듯, 타지 정복이었다. (p. 633)

무함마드가 왕 노릇을 한 건 아니었다. 아랍인들을 상대로 그가 한 일이란 집단 정체성을 제공해 준 것으로, 알라리크1세가 고트족을 위해 했던 일이나 클로비스 1세가 프랑크족을 위해 했던 일과는 전혀 성격이 달랐다. (중략) 무함마드는 예언자인 동시에 새로운 민족을 일으켜 세운 창시자였다. (p. 657) 아부 바르크로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의 뚜껑 위에 위태위태하게 올라앉아 있는 형편이었다. 이 주체 못할 에너지를 아부 바르크는 밖을 향해 돌리기로 결심한다.(중략) 전쟁만큼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것도 없었다. (p. 661) 한때 충실한 신도들이 모인 공동체를 중심으로 세워지는가 했던 이슬람 제국은 이제 중세의 여느 제국을 점점 닮아 가고 있었다. 정복당한 민족의 수가 수다하게 많아져 개중 일부는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키고, 사회 상층부에서는 늘 권력다툼이 벌어지며, 제국 전체 땅덩이는 언제든 따로 떨어져 나갈 기미를 보이는 그런 제국을 말이다. (p. 699)

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벽돌책이지만 약간 소설기법을 사용하여 쓰여진 글이라서 술술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기존의 세계사 책들처럼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부분들이 다수의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긴 했지만 그동안 함께 볼 수 없었던 역사들이 적은 페이지나마 함께 하고 있는 것이 굉장히 큰 균형감을 잡아주고 있었다. 어느 한곳 시간이 멈춰 있는 곳은 없었다. 세계 모든 곳에서 전쟁과 평화, 분열과 통합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었다. 다른듯 비슷해 보이는 그 모습들을 보며 서로가 이런 식으로 영향을 받아 닮아간건지 애초에 다 비슷비슷한 인류였기에 닮은 모습의 역사를 만들어간 것인지 모를 정도로 정말 대개가 다 닮아 있었다. 이 한권이 이렇게 큰 통찰을 보여주는데 다음편은 어떨지 정말 기대된다. 어서 2권을 읽고 싶다.

ps. 개인적으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를 차근차근 읽어오고 있던 중에 만난 책이라 더 반가웠다. 너무 서양사에만 치중해 세계사를 읽어오진 않았나 싶어 일부러 중앙아시아사, 비잔티움사, 일본사, 한국사 등을 찾아 읽곤 했는데 그 연결이 그리 쉽진 않았더랬다. 이 책 한권을 읽은 것이 그러한 몇년간 묵은 숙제를 한 기분이 들게 했다. 세계사를 세계적 프레임으로 보게 해준 이 책에 다시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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