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스 -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도시의 역사로 보는 인류문명사
벤 윌슨 지음, 박수철 옮김, 박진빈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테네, 로마, 암스테르담, 바그다드, 런던, 파리 뉴욕…

6,000년간 인류 문명을 꽃피운 26개 도시로 떠나는 세계사 대항해

문명의 창조, 발전, 교류에 관한 황홀하고 위대한 서사!

표지에 보이는 도시들이 한두곳이 아니다. 따로따로 봐도 멋질 도시들이 여러곳 섞여있음에도 여전히 멋있는 것을 보면 역사를 품은 도시는 어떻게 봐도 다 멋지기 마련인가보다. 세계사를 훑어볼 수 있는 프레임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것 같다. 유구한 도시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으로 몇천년 간의 인류 문명사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신선하고 신기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의 말마따나 도시의 역사는 곧 인류 문명사 그 자체였음을.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인류의 과거와 미래는 도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 (p. 9) 지난 30년 동안 지구를 엄습한 주요 변화 중 하나는 세계의 주요 대도시들이 해당 국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졌다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오늘날 세계 경제는 몇몇 도시와 도시권에 치우쳐 있다. (p. 10) 오늘날의 여러 현대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분열은, 세대나 인종, 계급 도농 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대도시와 나머지 지역 즉 세계화된 지식경제에서 뒤처진 촌락, 교외, 소도시들 간에 일어난다. (p. 11) <메트로폴리스>는 웅장한 건물이나 도시계획에 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의 주제는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 그리고 도시 사람들이 도시 생활의 압력에 대처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발견한 방법에 대한 것이다. (p. 18) 도시의 다양한 정체성을 포용할 수 있도록 우리의 상상력을 넓혀야 한다. 역사는 우리의 시야를 열어 도시를 폭넓게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필수적인 통로를 만들어줄 것이다. (p. 26) -머리말 中-

이 책은 세계사 책이다. 시대별로 그 시대를 대표할 만한 도시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세계사를 놀랍도록 잘 풀어내고 있다. 시대순이긴 하지만 각 도시별 내용에서 다른 도시나 시대를 넘나드는 연결을 함께 서술함으로써 개별적 통합적 서사를 함께 아우르고 있다. 세계사를 이렇게도 읽을 수 있다니 참 좋은 세상이다.

1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장마다 대표적 도시들을 내세우고 있지만 본 내용은 그 도시 뿐만 아니라 동시대 혹은 그 전후 시대의 다른 도시들의 역사와 함께 서술됨으로써 그 도시가 가진 특성을 강조하기도 하고 그 특성이 역사속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 추이를 살펴볼 수 있게도 한다. 각 도시별 특징만 살펴봐도 세계사의 흐름이 대충 느껴지는 것을 보면 저자가 참 대단하다 싶다.

기원전 4000~1900년 의 도시는 '도시의 여명-우르크' 다. 이어서 기원전 2000~539년의 도시는 '에덴동산과 죄악의 도시-하라파와 바빌론', 기원전 507~30년의 도시는 '국제도시-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 기원전 30~537년의 도시는 '목욕탕 속의 쾌락-로마', 537~1258년의 도시는 '다채로운 식도락의 향연-바그다드', 1226~1491년의 도시는 '전쟁으로 일군 자유-뤼벡', 1492~1666년의 도시는 '상업과 교역의 심장-리스본, 믈리카, 테노치티틀란, 암스테르담', 1666~1820년의 도시는 '카페인 공동체와 사교-런던', 1830~1914년의 도시는 '지상에 자리 잡은 지옥-맨체스터와 시카고', 1830~1914년의 또다른 도시로 '파리증후군-파리', 1899~1939년의 도시는 '마천루가 드리운 그림자-뉴욕', 1939~1945의 도시는 '섬멸-바르샤바', 1945~1999년의 도시는 '교외로 범람하는 욕망-로스앤젤레스', 1999~2020년의 도시는 '역동성으로 꿈틀대는 미래도시-라고스' 순서 이다.

역사순서로 파악하자면 수메르문명에서 현대까지인데 우르크에서 런던까지가 세계사에서 주로 접해왔던 오래전 역사라면 맨체스터 부터 라고스까지는 근현대사라고 할 수 있다. 익숙한 도시도 있지만 잘 몰랐던 도시도 있고 자연스런 주제어로 연결된 도시가 있는가 하면 뜻밖의 주제어로 묶인 도시도 있었는데 모두 한결같이 흠잡없을 데 없는 서술이었다. 고대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의 이 긴 역사가 이 책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근현대사 부분이 나머지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것을 보면 저자는 최근의 도시변화에 대해 그런 변화를 끌어낸 역사에 대해 더 알려주고 싶은게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오래전 역사를 좋아하다보니 우르크부터 런던까지의 역사를 좀더 인상적으로 읽게 되었다. 모르던 역사가 아니었음에도 새롭게 알게 되는 부분이 많아서 정말 좋았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에게 우루크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를 대변했다. (p. 36) '우루크'는 '도시'의 대명사다. 우루크는 세계 최초의 도시였고, 1,000년 넘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도심으로 군림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방대한 공동체를 이루자 상황이 급변했다. (p. 38) 괴베클리 테페 신전이 발견되면서 기존의 견해가 뒤집혔다. 그 언덕을 만들고 신을 숭배한 사람들에게는 놀랄 만큼 많은 양의 사냥감과 초목이 있었다. (p. 39) 신전이 농장보다 먼저 생겼다. 신을 섬기는데 전념하고자 정착한 사람들을 부양하려면 농장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 (p. 40) 예리코와 차탈회위크는 도시가 되지 못했다. (중략) 어쩌면 예리코와 차탈회위크는 너무 살기 좋은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두 공동체는 필요한 모든 것을 땅에서 얻었고, 설령 부족한 것이 있어도 교역을 통해 해결했을 것이다. (중략) 이렇듯 도시는 온화하고 풍요로운 환경의 산물이 아닌 최대한 협력하고 독창성을 발휘해야 하는, 비교적 혹독한 지대의 산물이었다. 세계 최초의 도시들은 역경을 이겨낸 인간 승리의 결과로 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 탄생했다. (p. 41) 대체로 도시화의 역사는 변화하는 환경에 인간이 적응하는 과정이자 인간이 욕구를 채우고자 환경을 적응시키는 과정이다. (p. 49)

첫 도시 '우루크' 의 역사부터 나의 무지를 깨닫게 했다. 신석기 혁명을 재고하게 만든 괴베클리 테페 가 등장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기에 처음부터 확 빠져들어 읽게 됐는데, 도시의 발달은 잉여같은 풍요가 아닌 혹독함이 근거였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최초의 도시가 습지대에서 시작했고 우루크가 천년이나 번성했으며 자연의 변화가 얼마나 인간의 생활을 끊임없이 변화시켰는지 그 사이 인간은 삶의 형태뿐만 아니라 인식의 변화도 얼마나 끊임없이 이루어졌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길가메시 서사시> 가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도 다시한번 배울 수 있었다. 이미 기원전의 도시문명사를 통해 인류문명사는 모든 것을 다 살아낸 것만 같았다. 그 반복이 이후로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우루크에서 시작된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문명은 전쟁과 환경적 재난과 경제적 붕괴를 견디며 4,000여 년동안 지속되었다. 숱한 제국과 왕국의 흥망을 지켜봤고, 그 막강한 피조물들보다 훨씬 더 오래 버텼다. 도시 문명은 건물의 복원력보다 이념의 확고함에서 더 의존했다. 도시에서의 삶은 고역이고, 무척 부자연스럽다. 길가메시의 전설은 도시사람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도시의 위력과 세력을 되새기고자 나눈 이야기 중 하나였다. 도시에서의 삶, 대부분의 인간은 누릴 수 없는 생활바익은 저주가 아니라 신성한 특권이었다. (p. 57) 국가와 제국과 왕이 있기 오래전 이미 도시가 존재했다. (p. 68) 우루크와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도시들은 우리에게 소리 높여 말한다. 한때 막강했으나 기후변화와 경제난으로 황페화된 그 도시들은 오늘날 모든 도시들의 궁극적인 숙명을 끈질기게 일깨우고 있다. 그 도시들의 유구한 역사는 눈부신 발견, 인간의 업적, 권력욕, 복잡한 사회의 복원력 등에 관한 역사다. 그 도시들은 다가올 모든 것의 서막이었다. (p. 73)

도시에서의 삶은 사실 굉장히 인위적인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지 않다고 볼수도 있고 그렇기에 인간다운 선택이라 볼수도 있다. 여하튼 도시라는 공동체가 생겨난 이래 사람들은 모두 도시에서 살기를 원해 왔다. 도시에서의 삶은 팍팍하고 고됨과 동시에 가치있고 숭상하게 되는 뭔가가 있었다. 도시로도시로 끊임없이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역사 그 도시들의 역사가 문명사가 됨은 당연한 결과였다. 도시들의 흥망성쇠는 늘 비슷한 패턴이 있어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도시를 바꿔가며 비슷한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 인간들의 문명사인 것일까.

문학 작품과 영화에는 음울한 도시의 악몽 같은 미래상이 가득하지만, 기술이나 건축술에 힘입어 모든 혼란 상태가 정리된 도시 또한 완벽한 이상향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이 같은 이중성은 인류 역사 속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특징이다. (p. 79)

성경에서 이상향으로 삼은 예루살렘과 비교되는 도시로 하라파와 바빌론이 설명되지만 하라파와 바빌론은 그렇게 타락하기만 한 도시들이 아니었다. 고대도시들의 발전사도 놀라웠지만 미래도시의 예로 삼은 것이 한국의 '송도'라는 점이 신기했다.

이 도시는 스마트한 도시라기보다 지각이 있는 도시다. 마치 공상과학소설 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이 이상향적(혹은 취향에 따라서는 음울한) 도시는 이미 존재한다. 관련 홍보물과 지지자들에 의하면 존재한다. 이 도시는 똑같은 주택용 고층건물이 늘어선 삭막한 도시들과 고속 경제성장으로 유명한 어느 나라에 있다. 바로 대한민국의 송도로, 황해를 매립해 마련한 땅 위에 350억 달러를 들여 새로 만든 이상향적 도시다. 21세기 '첨단 기술의 이상향'으로 불리는 송도는 초만원인 아시아의 대도시들에 시급한 해답을 제시하는, 살아 움직이는 도시로 선전되고 있다. (p. 89)

메소포타미아에서 현대의 송도로 왔다가 다시 성경속 시대로 들어가는 시간차가 엄청나지만 그 간극에 비해 서술은 굉장히 매끄럽게 연결되는 편이다. 여하튼, 고대의 찬란한 도시에 타락이라는 오명은 억울하다.

우루크나 우르 같은 초기의 대도시들이 단 하나의 신이 머무는 곳이었다면 바빌론은 온갖 신들이 관계망을 형성한 채 머무는 곳이었다. 으리으리한 궁전과 거대한 신전, 인상적인 성문과 초대형 지구라트 그리고 장엄한 의식용 대로를 갖춘 바빌론은 궁극적인 신통력과 세속 권력의 화신으로 설계된 도시였다. 바빌론은 우주의 중심에 있었다. (p. 104) 그러나 신화가 실상을 가리고 말았다. 그리스인들은 모든 동양적 요소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그들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들은 최대한 전제적이고 사치스럽고 퇴폐한 곳으로 보이도록 하는 데 열중했고 그리스 도시 문명의 찬란함을 과장했다. 자신들이 동쪽의 이웃들에게 진 빚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그리스인들의 선전 활동은 서양의 예술과 전통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p. 107)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다. 따라서 남겨진 사료를 통해 역사를 읽는 우리는 그 전후 맥락을 따져가며 읽어야 한다. 어느 시대에 무시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전시대에 찬란한 업적을 남긴 것이었기에 그럴 수 있다. 현재는 늘 과거를 뛰어넘고자 하고 그런 현재를 통해 미래는 현재와 다른 모습이리라 상상한다. 모든 시간이 다 기록으로 남겨지는 것이 아니기에 남은 기록을 읽는다는 것은 늘 이런 세심함이 필요한 일이다. 따라서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를 봐야하는데 그렇기에 이 책과 같은 새로운 시도는 늘 박수받아 마땅하다.

도시의 역동성은 주로 관념과 상품, 사람의 지속적 유입에 따른 결과다. 역사를 통틀어 볼 때, 도시가 번영을 누리려면 언제나 그곳의 관문을 두드리는 대규모의 이주자들이 있어야 했다. 외국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은 새로운 관념과 일 처리 방식을 선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는 고국에서 맺은 인맥도 있다. 그래서 항구도시에는 진취적 분위기가 흐른다. (p. 121)

역사에 길이길이 족적을 남긴 도시들은 다 다양한 이주민들이 오고가는 것이 자유로운 세계도시들이었다. 따라서 도시의 역사는 곧 이주민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새로움이 유입되지 않으면 아무리 거대한 도시도 흥성이 이울고 망쇠로 기울어감을 우리는 도시의 역사를 통해 보고또보고 재차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의 대도시들은 어떠해야 할까?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굳이 인간이 극적인 정치적 사건의 요체를 좋아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인간은 타고난 '도시 동물'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편이 낫다.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 문화를 이룩하기 위해 서로 뭉쳐서 더 큰 덩어리를 이루려는 경향이 있다. (중략) 사실 도시는 자연계보다 훨씬 더 우월한 것이었다. 왜냐면 편안한 삶과 정의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이 조성된 곳은 도시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p. 128)

'폴리스' 라는 말을 우리는 '도시'로 번역하지만 사실 그리스인들의 폴리스는 단순한 도시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따라서 그냥 폴리스 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인간이 폴리스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간이 정치적 동물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좁은 해석이다. 차라리 저자의 말처럼 인간은 도시적 동물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도시는 인간이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는 최상을 모습을 추구하는 그런 곳이곤 했다. 책속에서 도시들의 역사를 볼때마다 지금의 모습을 겹쳐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의 도시는 무엇을 추구하는가...

불과 몇천 명의 선구자들이 거주한 우루크에서부터 무려 2,000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라고스에 이르기까지 도시 생활의 기본원칙들은 그다지 많이 바뀌지 않았다. 우루크 시절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은 도시적 이상향을 꿈꿨다. (중략) 인류라는 생물종의 생존 여부는 우리의 기나긴 도시 방랑기의 다음 장에 달려 있다. 이야기는 번쩍거리는 세계적 도시들에서 펼쳐지지는 않을 것이다. (중략) 이야기는 개발도상국들의 거대도시들과 급성장중인 대도시들에 거주하는 수십억 명의 직접 체험을 통해 쓰일 것이다. 지난 5,000년에 걸쳐 수많은 도시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중략) 에너지가 고갈되고 기온이 더 올라가면서 도시의 환경이 더 혹독해질 때, 인류는 즉석에서 해결책을 찾아낼 것이다. 만약 역사가 일종의 안내자라면 역사는 그들이 성공을 거두리라고 말할 것이다. (p. 652)

저자는 무척 희망적으로 책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가난의 대명사로 불리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도시 '라고스'를 마지막으로 살펴보면서 인류가 역사를 만들어가는 동안 도시방랑기는 계속될 것이고 그렇게 뜻밖의 도시가 새롭게 부흥하며 그렇게 인류문명사가 계속 쓰여져 갈 것이라 말한다.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한 역사는 계속 쓰여질 것이다. 시간은 정체되어 있지 않고 인간은 늘 이동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새로운 도시가 급부상하는 역사도 이어질 것이라 생각되긴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역사가 저절로 쓰여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도시들의 역사에서 그도시의 발전 보다는 쇠퇴를 좀더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좀더 나은 '도시'를 만들어가는 노오력을 해나갈때 삶은 좀더 나아질 것이다.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성공이라면 성공이지 않을까.

ps. 뜻밖의 곳에서 한국의 도시와 한국의 역사를 만날때 무척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송도부터 시작해서 조선을 건너 청계천까지 한국의 역사가 세계적 도시의 역사에 연결되고 그렇게 함께하고 있었음을 보게 된 것이 참 흡족한 마음이 들곤 했다. 방대한 역사와 곳곳의 도시들을 폭넓고도 긍정적으로 연구하고 재미있게 풀어써준 저자에게 참 감사하다.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