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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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 작가라면 소설작가가 아니라 글을 쓰는 이는 모두 작가라는 큰 범위에서 봐도 유발 하라리 밖에 아는 사람이 없었다. 온갖 유수의 문학상을 타고 노벨문학상 후보자로도 자주 언급됐다던 '아모스 오즈'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이 작품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그런데 이 작품이 마지막 작품이자 일생의 역작이라는 것은 내게 완결미를 줄까 늦었다는 아쉬움을 줄까...

작가는 이스라엘 건국후 히브리어로 교육받은 첫 세대이고 히브리어로 쓰여진 이 소설을 번역한 이는 번역 틈틈이 작가와 이메일로 소통하며 번역에 공을 들였다. 완역을 앞두고 작가가 유명을 달리하여 묻지 못한 질문들이 남았음을 역자는 안타까워했으나 왠만한 역사서 못지않게 충실하고 꼼꼼한 주석은 역자의 걱정을 내려놓게 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이 책의 원제는 <유다에 관한 복음> 이다. 종교에 대해 잘 모르는 편이라 '유다'라고 하면 기독교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배신자 라는 이미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유다가 복음을? 책을 읽는 내내 '유대인에 눈에 비친 예수' 와 '유대인에게 유다는 어떤 존재인지' 탐구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흥미로운 주제였다. '아이디어 소설' 혹은 '철학 소설'의 진수를 맛보게 해준 이 작품은 눈을 부릅뜨고 머리를 싸매며 읽어야 했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이었다.

<< 1959년 말에서 1960년 초 겨울에 있었던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는 실수와 욕망, 실패한 사랑과 답 없이 여기 남겨진 어떤 종교적 문제가 담겨 있다. (p. 11) >> 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역자가 '옮긴이의 말' 첫줄에서 언급한 부분 이기도 하고, <유다>라는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이기도 하며,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남게 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쉽고 간단하게 변형하자면 '유다는 정말 배신자인가? 아니다!' 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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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무엘은 '유대인들의 눈에 비친 예수'라는 석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청년이었다. 그러나 애인이 전남친과 결혼하겠다고 떠나고 부친의 사업실패로 생활비가 끊기고 개별적으로 모이던 사회주의 개혁서클도 분열되어 흩어지자 실의에 빠져 논문준비도 중단한채 휴학을 한다. 머물던 예루살렘을 떠나 낯선 어딘가로 가볼까 싶어 얼마안되는 살림이나마 처분하려는 광고지를 붙이려던 순간 게시판에서 구인메모 하나를 발견한다.

마음맞는 분 구함

인문학을 공부하는 미혼 남학생, 역사를 잘 알고 있으며,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리는 세심한 대화가 가능한 분, 저녁마다 다섯 시간 정도 학식이 깊고 지적인 일흔 살 장애인 남성에게 말동무를 해주면 무료로 숙소를 제공하고 소액의 월급도 지급함. 이 장애인은 자력으로 생활할 수 있으며 도우미가 아닌 말동무가 필요함. 개인 면접을 보려면 일요일부터 목요일 오후 4~6시 사이에 샤아레이 헤세드 마을의 하라브 엘바즈 길 17번지로 오시면 됨(아탈리야를 찾으세요). 특별한 상황으로 인해 면접에 통과한 사람은 비밀 유지 서약서를 작성해야 함. (p. 26)

의욕도 없고 돈도 없고 머물곳도 없던 슈무엘에게 그야말로 안성맞춤인 구인처였다. 단지, 경청을 의무로하는 말동무를 하기엔 슈무엘이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한다는 아주 큰?^^ 문제가 있었을 뿐. '그는 만연체로, 즐겁게, 재밌고 활기차게 말했다. 그러나 남들이 말을 시작하고 자기가 그들의 생각을 들어야 할 차례가 되면, 곧 참을성을 잃고 주의가 산만해지며 갑자기 피곤해지면서 눈이 감기고 헝클어진 머리가 텁수룩한 가슴을 향하곤 했다. (p. 15)' 이런 슈무엘이 찾아간 그 집은 마치 자신을 위해 준비된 곳 같았다. 적어도 그때 그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불현듯 그는 이 다락방에 들어가 살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는데, 이 안에서 책더미와 적포도주, 난로와 겨울 이불, 전축과 레코드판 몇 장을 끌어안고 웅크리고 앉아서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고 싶지 않았다. 강의도 필요 없고 논쟁도 필요 없고 연애도 필요 없다. 이 안에 처박혀서 절대로 나오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밖에 겨울이 머무는 동안에는. (p. 30)

샤무엘은 이 다락방에 들어가 살게 된다. 적어도 밖에 겨울이 머무는 동안에는.

하지만 강의도 듣고 논쟁도 열띠게 하며 연애도 빠져들게 된다. 그 집에서.

나사렛 예수는 따뜻하고 사랑을 발산하는 신적인 존재였으니, 그를 살해안 사람은 당연히 그보다 더 강하고 또 교활하고 역겨운 자였겠지. 이렇게 신을 살해하는 저주받은 자들은 권력과 악이라는 무시무시한 자원을 가졌을 대만 신을 죽이는 일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네. 그리고 유대인들을 미워하는 자들의 상상 지하실 속에서 유대인들은 항상 그런 모습이었지. 우리는 모두 갸롯 유다야. 거의 여든 세대가 지났지만 우리는 모두 갸롯 유다에 불과해. 그렇지만 진실은, 젊은 친구, 여기 이스라엘 땅 바로 우리 눈앞에 펼쳐진 참된 진실은 그게 아니지 않다. 예전의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서 나고 자란 새로운 유대인들도 똑같이 전혀 강하지 못하고 악의적이지도 못하며 오히려 욕심 많고, 잔꾀만 부리고, 말만 많고 겁쟁이에다 의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지. 그래, 하임 바이츠만이 언젠가 말했지. 절망스럽게, 유대 국가는 영원히 세워질 수 없으니 그 개념 안에 모순이 있기 때문이라고. (p. 63)

슈무엘의 대화상대는 게르숌 발드 라는 노인으로 거동이 불편하지만 남의 손을 빌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며 해박한 역사적 종교적 지식으로 대화에 수시로 종교적고전을 인용하고 모든 논쟁에서 신랄한 비평을 가하는 보기드문 학자였다. 슈무엘은 발드의 말동무를 하고 어쩌다 아탈리야와 지나치며 아브라바넬의 행적을 쫓는 동안 이들이 무엇을 숨기려 하는지 비밀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 비밀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본인이 심취해 있던 '유다'와 연결되어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이 왜 우리를 사랑하겠어요? 갑자기 다른 행성에서 온 것처럼 낯선 자들이 나타나서 자기들의 땅과 토지를, 농토와 마을과 도시를, 조상들의 묘지와 자식들이 물려받을 유산을 탈취해 갔는데, 아랍인들은 있는 힘을 다해서 거기에 반대할 권리조차 없다고 생각하시는 이유가 도대체 뭡니까? 우리는 그저 이 땅에 집을 짓고 정착하려고 왔을 뿐이라고, 우리의 날들을 옛적같이 새롭게 할 뿐이라고, 우리 조상의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는 유산을 상속하려고 왔을 뿐이라고, 기타 등등 말하지만, 이 세상에 갑자기 외국인 수십만 명이 밀려드는 것을 두 팔 벌리고 환영할 민족이 하나라도 있겠습니까, 그리고 나서 또 외국인 수백만 명이, 멀리서부터 날아와서 자기들이 가져온 거룩한 책에 따르면 이 땅이 자기들 소유라고 이상한 주장을 해 댄다면요?" (p. 153)

시온주의에 대해 나는 종교인도 아니면서 조금은 낭만적으로 생각해왔었던 듯 하다. 하지만 유대인 작가가 알려주는 유대인의 진실은 그런 낭만과는 달랐다. 세계전쟁으로 살곳을 잃은 세계 곳곳의 유대인들을 위한 난민처로 필요했던 땅을 위해 그들은 종교를 내세웠다. 하지만 만일 그렇게 한 곳에 거대 난민촌을 세울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원래 살던 곳에 머물렀다면 그 땅에 살던 유목민들은 2차대전 후 각국이 그러했듯이 신생국가를 세웠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정치와 권력의 세계는 보여지는 것보다 이면에 더 많은 의미들을 숨기고 있는 법임을 역사를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소설을 읽으면서도 이렇게 진하게 깨닫게 될 줄이야...

랍비 예후다 아리에가 강조하기를, 절대로 예수는 자기 자신을 신으로 소개하려 한 적이 없다. 신약 성경 어디에서도 예수는 자신이 신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p. 219) 이에 반해, 복음서에서 그는 수십 번도 넘게 자기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칭했다. (p. 220) 랍비 예후다 아리에는 어떻게 그리고 왜 예수가 '전략적으로' 자기 자신을 몇 번씩이나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묘사했는지 설명하는데, 이것은 교육적으로 필요해서, 더 많은 사람이 그를 따를 수 있도록 취한 방법이었지, 정말 자기가 하느님의 자손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p. 221)

슈무엘은 자신의 논문을 포기하고 었지만 게르숌 발드와의 대화에서 아탈리야의 아버지에 대한 자료에서 힌트를 얻어 오히려 그동안 자신이 파고들었던 것보다 더 심층적으로 '유다'에 대해 분석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읽혀지는 여러 다양한 유대자료들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유대교의 역사를 알 수 있기도 했다. 좁게 말하자면 유대교에서의 예수에 대한 역사에 대해서였다.

가롯 유다는 기독교를 창시한 인물이다. 그는 유다 출신으로 부유한 사람이었고, 다른 사도들처럼, 갈릴리 시골 마을 출신의 어부나 농부가 아니었다. 예루살렘에 살던 제사장들은 어떤 괴짜가 갈릴리 지역에서 기적을 일으킨다는 이상한 소문을 들었는데 겐네사렛 호숫가 여기저기에서 잊힌 마을과 성읍들을 돌며 온갖 시골에 어울릴 이적들을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고 있었지만, 그 사람과 비슷하게 예언자나 기적을 일으키는 자라고 흉내를 내는 수십 명의 사람이 있는데 그들 중 대부분이 사기꾼이거나 정신나간 자이거나 정신나간 사기꾼이라는 것이다. (p. 221) 그런데 이 갈릴리 사람은 자기를 흉내내는 자들보다 좀 더 많은 신도를 끌어들이고 있었고, 그의 명성이 날로 높아 가고 있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제사장들은 유복하고, 지식인이며, 영리하고, 기록된 토라와 구전 토라에 모두 능통하며 바리사이인들과 제사장들과 가까이 지내던 가롯 유다를 선택했고, 그 갈릴리 남자를 따라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다니는 소수의 신도 사이에 잠입하라고 보냈으며, 그들 중 하나로 위장하여, 예루살렘의 제사장들에게 이 괴짜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 사람이 특별히 위험한 인물인지 보고하도록 했다. (중략) 유다는 열두 제자의 일원이 되었다. 그들 중에서 갈릴리 사람이 아니고 가난한 농부나 어부가 아닌 유일한 사람이었다. (p. 222) 가롯 유다는 그 나사렛 사람을 따르는 가장 확실하고 죽음까지 무릅쓰는 헌신적인 제자로 변했다. (중략) 가롯 유다는 기독교인 유다가 되었다. 제자 중에서도 가장 열렬한, 더 나아가 그는 이 세상에서 예수가 신이라고 온 마음으로 믿었던 첫 번째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다. (p. 223) 그(예수)는 예루살렘에서, 모든 백성과 온 세상 앞에서,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한 날부터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기적을 일으켜야 했다. (중략) 그러나 예수는 유다의 조언을 듣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할지 망설였다. (p. 224) 내가 정말 그 사람일까? 과연 내가 해낼까? (중략) 유다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당신이 그 사람입니다. 당신은 메시아입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중략) 당신은 십자가에서 온전히 살아서 내려오게 될 것이며, 온 예루살렘이 당신의 발 앞에 엎드릴 것입니다. (p. 225) 그런데 예수가 계속 두려워하고 의심하자, 가롯 유다는 스스로 십자가 사건을 계획하기에 이른다. (p. 226) 그가 은전 30세겔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다음 세대에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자들이 상징적으로 창작해 낸 것이다. (중략) 가롯 마을의 땅 부자에게 은전 30세겔이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은전 30세겔은 그 당시 일반적인 노동자 한 사람의 임금 정도였다. (중략) 가롯 유다는 십자의 환상을 창조하고, 기획하고, 감독하고 제작한 자였다. (p. 227) 하느님이 그를 도우셔서 못을 빼내어 주시고, 기적을 일으켜서 온전한 몸으로 십자가에서 내려가게 해 주시리라 믿었다. (p. 228) 유다는, 자기 삶의 이유와 목적이 자기 눈앞에서 부서지는 것을 보면서, 자기 손으로 자신이 사랑하고 존경했던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유다는 , 그곳을 떠나 스스로 목을 메고 말았다. (중략) 그렇게 첫번째 기독교인이 죽었다. 마지막 기독교인이. 유일한 기독교인이. (p. 229)

슈무엘이 재구성한 유다의 일생은 놀라웠다. 유다는 예수를 밀고한 것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믿었기에 기적을 세상에 확인시켜 세상에 예수를 더 확고하고 돈독하게 세우려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기적을 확인하지 못했고, 사람으로 죽은 예수를 보며 따라 죽었다. 죽을때까지 예수를 진심으로 믿었던 유다라고 본다면 최초의 기독교인이자 마지막이고 유일한 기독교인이라는 슈무엘의 표현은 맞는 말이었다. 그렇게 유다는 '배신자'가 되었다.

"쉐일티엘 아브라바넬도요?"

"그렇지만 그는, 배신자였지요" (p. 256)

그리고 지금 또다른 이스라엘의 배신자로서 '아브라바넬'이 있었다. 아랍과 화해하고 땅을 공유하며 공생하자고 주장하는 그를 사람들은 배신자로 불렀다. 하지만 아브라바넬 자신은 스스로를 철저한 시온주의자라고 표현했다. 그가 돌아가고자 하는 곳은 그만의 이상향이었다. 그는 또다른 유다였다.

내가 장담하건데, 가롯 유다건 가롯 유다가 아니건, 이 세계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는 사라지지 않았을 걸세. 사라지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았을 거야. 유다가 있건 없건 간에, 유대인은 믿는 자들의 눈앞에서 계속해서 배신자 역할을 맡았을 걸세. 기독교인들은 한 세대가 가고 다음 세대가 와도 언제나 우리를 십자가 사건이 있기 전에 '그를 죽여라, 그를 죽여라, 그의 피 값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릴지어다'라고 외치던 군중으로 기억할 걸세. (p. 378~379)

새로운 것은 늘 현재나 과거의 것을 비판하고 넘어서고 밟고 올라서기 마련이다. 예술도 그랬듯이 정치도 그렇듯이 새로운 종교의 탄생도 어떤 식으로든 기존의 종교와 다른 점이 부각되어야 하기 마련이다. 그 가장 쉬운 방법은 '다름'을 '틀림'으로 각인 시키는 것이다.

주석154.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롯 사람 유다와 나누신 계시에 대한 비밀스러운 이야기'로 시작되는 <유다복음서>는 예수와 가롯 유다 사이에서 이루어진 대화 형식으로 기록된 영지주의(육체와 정신을 나누는 급진적인 이원론으로, 인간이 어떤 신비로운 지식을 통해 육체를 벗어남으로써 신과 같은 영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종파) 복음서 중 하나이다. 이 책은 '유다의 예수 배반' 이 사실은 예수가 인류 구원이라는 지상 과업을 완성하기 위해 유다와 미리 모의한 것으로 쓰고 있다. <유다복음서>는 180년대에 이레나이우스 주교가 <이단논박>을 통해 이단서라고 경고한 바 있다. 현재 4세기에 쓰인 콥트어 문서로 남아 있는데, 이 사본은 1976년 이집트의 한 골동품 시장에서 발견되었으며, 2006년 전미지리학회에 의해 일부 복원되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세계 주요 언어로 동시에 공개되었다. (p. 481)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역사적 사실들은 실제 역사이기도 하다. 소설처럼 읽히는 역사서라고 볼수도 있는데, 역사서라기 보다는 소설로 읽힌다는 점에서 작가의 역량이 무척 뛰어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등장인물도 많지 않고 커다란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소소한 일상 속에 쌓여가는 내적 성장의 깊이가 남다른 작품이라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자 놀라움 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일면 충격적이기도 했다.

슈무엘은 텅 빈 거리 한가운데 자기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그는 어깨에서 군용 배낭을 내렸다. 그는 그것을 먼지 앉은 아스팔트 위에 놓았다. 그 군용 배낭 위에 외투와 지팡이와 모자도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그리고 서서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p. 456)

무엇을 물었을까?

소설을 읽는 동안 역사를 좋아하는 취향에 맞아서인지 빠져들어 읽었었는데, 읽으면서 새로운 역사들을 많이 배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유다라는 배신자 캐릭터에 대한 기존의 입장이 바뀌기까지 했는데, 지금도 어딘가 외로이 목소리를 내고 있을 유다를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는데, 이렇게 끝나버리다니. '자신에게 물었다' 라니. 당황했다가... 이내 웃음이 났다. 그 물음을 책을 읽는 동안 이미 나 스스로에게 계속 하지 않았나?!

범인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추리하는 영화를 보는데 결말에 가서 '누구냐 넌' 이라고 끝났다고 생각해보자. 화가 날까? 웃음이 날까? 아니면.. 허탈해질까? 웃음이 날거 같다면 이 소설은 만족스러울 것이다. 만약 화가 난대도 허탈해진대도 역사를 좋아하고 종교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의 매력에 한번 빠져볼 것을 권하고 싶다. 새로운 프레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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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든 우리나라 역사지도 세트 - 지도의 형태로 담은 우리나라 5000년 역사 스팟
타블라라사 편집부 외 지음 / 타블라라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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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지막한 우리나라 전도에 꼼꼼한 역사주석이 달려 있으니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뿌듯한데, 포장도 휴대용으로 알차서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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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든 우리나라 역사지도 세트 - 지도의 형태로 담은 우리나라 5000년 역사 스팟
타블라라사 편집부 외 지음 / 타블라라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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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다닐때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과목이 '지리'였다. 방향감각이 없는 길치라서 약속을 잡을 때면 늘 내가 아는 곳 혹은 내가 찾아갈 수 있는 곳만 장소로 정하곤 했다. 그러던 나인데 어느새 지도가 눈에 익숙해졌다. 이유는 역사 덕분이다. 역사를 좋아하다보니 이런저런 역사책을 자주 읽는 편인데,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은근히 지리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역사책을 볼때면 해당내용에 관련된 지도를 펼쳐놓는 것이 익숙해졌을 정도다.

어쩌다보니 서양역사서를 주로 읽게되서 지중해지역이나 세계전도는 차라리 익숙해졌는데 오히려 우리나라 지도는 큰 모양만 알뿐 지역 곳곳에 대해 그 곳곳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어쩌다 한국사 관련 책을 읽어도 낯선 지명이 나오면 이곳이 경상도인지 전라도인지 헤깔리곤 했다. 물론 검색의 시대에 초록창에 물어보면 대뜸 답이 나올테지만, 종이책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지도도 종이지도가 왠지 보기에 편하다. 그러던차에 우리나라역사와 지도가 합쳐진 것이 나왔다니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에이든 지도'는 제주도 지도에서 무척 만족스러웠었던지라 기대가 됐는데, 우리나라 역사지도 또한 마음에 쏙 들었다. 일단 포장부터 내 스타일이다.ㅎ이다. 요즘 유행하는 언박싱 하듯 살펴보자면 일단 겉 포장은 '제주도 지도'때와 같다. 종이상자에 실로 묶여진 포장이 왠지 뭔가 있어보이는 것이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역사관련 내용이 덧붙여진 만큼 지도에 그 내용을 다 담을 수는 없었을 터, 따로 역사 내용이 정리된 자료집은 상자와 따로 패키지되어 있다. 일종의 역사 요약본으로 휘리릭 가볍게 읽기 좋다.



상자에서 내용물을 꺼내보면, 지도가 두 장인데 지역별로 깨알같이 역사정보가 수록된 역사지도와 백지도가 각각 한장씩이다. 역사와 관련된 장소를 여행하며 백지도에 기입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이때 사용할 만한 스티커와 메모지도 함께 들어있다. 여기서 은근 중요한 물건이 '카드형 미니 돋보기'다. 역사지도에 촘촘이 쓰여진 글자들을 읽는데 아주 유용하다.



지도를 촤락 펼치면 A1 사이즈다. 접으면 A5 사이즈로 단추상자에 쏘옥 들어간다. 종이가 방수종이라고 되어 있긴 한데, 일반종이보다 두께도 있고 금방 젖을 정도의 종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닐코팅된 정도는 아니라서 오래두고 보려면 조심히 다루는 게 좋을 것 같다.



1000여곳의 역사 여행스팟이 담겼다는 이 지도 한장 가진 걸로 왠지 역사지식이 벌써 늘어난것만 같은 뿌듯함이 느껴진다. 나처럼 방향감각 없는 길치도 지도와 역사가 함께 연결됐을 때 더 잘 기억나는데 하물며 나보다 지리적 감각이 좋은 사람들이 활용하면 더욱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참, 미니책자에서 독도가 조선영토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고지도가 몇장 실려 있었는데 우리나라 영토에 대한 애정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어서 역사지도를 보는 또다른 즐거움이었다.

추운 겨울이 길다 싶었는데 어느새 봄바람 살랑이는 계절이 되고보니 지도한장 들고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일렁일렁한다. 하지만 아직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때는 아닌지라... 언젠가 이 지도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려본다.

-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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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작아지고 싶어 한다 - 뇌과학으로 풀어보는 인류 행동의 모든 것
브루스 후드 지음, 조은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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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그토록 자가 격리에 괴로워했나

그 해답은 바로 인간의 작아진 뇌에 있다

뇌과학으로 풀어보는 인류 행동의 모든 것

'뇌는 작아지고 싶어 한다' 라는 문장을 보면 뇌가 계속 작아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으로 읽히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책뒤표지에서 쓰여있듯이 200만년 가까이 지속된 인류의 거대한 진화사에서 인류의 뇌는 점점 커져왔다. 그러다 약2만년 전 인간의 뇌가 돌연 작아졌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작아져 왔다는 것이 아니라 커지던 뇌가 더이상 커지지 않고 오히려 작아졌다는 의미다. 이 책의 원제는 'The Domesticated Brain' 즉 '길들여진 뇌' 이다. 따라서 원제에 보다 가까운 표현이라면 '인간의 작아진 뇌'가 더 적절한 제목일 수 있겠다.

지난 2만년 동안 인간은 테니스공 하나 정도의 뇌를 잃었다. 선사시대의 인류 화석을 들여다봤더니 현생 인류의 조상은 뇌가 훨씬 컸다. 인류가 진화하는 동안 뇌는 전반적으로 커졌기 때문에 현생 인류의 뇌가 작아졌다는 사실은 분명 의외의 발견이다. (p. 7) 인간의 뇌가 작아진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없지만 적어도 이 사실로 미루어 뇌와 행동, 지능의 관계에 대해 몇가지 도발적인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 같다. (p. 8) 마지막으로, 터무니없이 들릴지 모르는 가설이 있다. 바로 '인간이 길들여졌기 때문'이라는 가설이다. (p. 9)

'왜 인간의 뇌는 줄어들었는가' 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이 책의 주제를 명확히 밝힌다. 인간의 뇌가 줄어든 이유는 인간이 스스로를 길들였기 때문이라고. '인간은 보다 넓은 협력 관계 속에서 모여 살기 위해 자신도 길들이기 시작했다. 단 인간의 경우는 '자기 가축화'라고 볼수 있는데, (중략) 인간은 더불어 사는 문화와 관습이 발명된 이후 스스로 길들여 왔다고 볼 수 있다. (p. 10)' 라는 문장을 뇌과학적으로 상세하게 풀어낸 것이 바로 이 책의 중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을 길들이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몸에 비해 뇌를 천천히 발달시키는 유전자를 선호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부모가 자식을 보살피는 기간도 길어졌고, 이 기간에 아이들의 기질을 조정하고 사회적으로 적절하게 행동하는 법을 가르칠 메커니즘이 필요해졌다. 정착 사회에서는 사람들과 더불어서 평화롭게 사는 이들이 번식에 성공했으며, 이들은 서로 협력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문화를 창조하는 기술을 습득했다. 인간의 지능이 단기간에 향상되었기 때문에 현대 문명이 발생한 것이 아니다. 현대 문명은 인간이 자신을 길들이며 얻은 정보를 공유하고,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기술과 지식을 발전시키면서 형성되었다. 길어진 유년기는 세대에서 세대로 지식을 전달하는 데에도 유용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부족 안에서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배우는 시간으로 발전해 나갔다. 이렇듯 집단 지성은 타인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발달한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인간은 더 똑똑해지지 않고서도 지식을 공유한 덕분에 더 많은 것을 배웠다. (p. 15)

문명의 역사에서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를 가르고 석기시대와 청동기/철기 시대를 가르는 중요 기준은 농경과 정착생활이었다. 하지만 괴페클리테페의 유적발굴로 기존의 문명발달사는 커다란 물음표에 직면했다.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문명의 발달사도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 시대에 인류의 발달 또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닐까 싶다. 직립보행을 하고 뇌가 발달하면서 똑똑해져서 인류가 사회를 이룬 것이 아니라, 사회를 이루고 모여살기 위해 뇌를 줄이면서까지 스스로를 길들여온 것이라는 발상은 신선하고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저자는 이 발상을 뇌과학적인 탄탄한 논리를 바탕으로 충분히 설득력 있게 풀어내고 있었다.

왜 집단이 그렇게 중요하고, 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그렇게 신경 쓸까? 이 책은 '인간의 뇌가 그렇게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인간의 뇌는 우리를 사회적 인간으로 만들도록 진화했다. 인간이 사회적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행동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지각 능력과 이해의 기술이 필요하다. 또 사회에 수용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맞추어 생각과 행동도 바꾸어야 한다. (중략) 우리의 뇌는 거대한 집단에서 협력하고 소통하며, 자녀에게 문화를 물려주기 위해 진화했다. 인간의 유년기가 그렇게 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p. 20)

인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포유류 동물들은 태어나자 스스로 걷고 움직여 어미젖을 빤다. 하지만 인간의 아기는 오랜 돌봄이 필요하다. 이 오랜 돌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류가 모여살게 되었다는 상식을 깨고 사회적 존재로 키우기 위해 오랜 돌봄이 필요하도록 태어났다는 주장이 그럴법했다. 인류의 진화, 뇌발달, 아동발달에서 유전학, 신경과학, 사회심리학까지 망라하며 '길들여진 뇌'를 설파하는 이 책을 읽는 것은 인류의 진화를 새롭게 볼수 있는 프레임을 획득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모든 문화에는 출산, 사춘기, 결혼, 죽음처럼 인생의 큰 변화를 기념하는 다양한 의식이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우리의 삶에 구두점을 찍고, 종종 신앙과도 관련되어 있다. 예식 자체는 대개 논리나 개연성이 없어 난해하기 짝이 없다. 따라서 각 식에 적용할 수 있는 인과법칙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예식 위반'이다. 즉 예식을 올바르게 수행하는 것 자체가 예식에 힘을 부여한다. (p. 96) 아이들은 사람들이 하는 행위 중에는 뚜렷한 목적이 없기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듯하다. (p. 97)

생명에 지장이 없지만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지키고자 하는 인간만의 '예식'들이 있다. 이것이 인간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 도 있을 듯 하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공막이 큰 인간의 눈은 늘 상대방을 살펴보도록 진화한 결과이다. 서로서로 따라하면서 집단의 결속력을 높여갔다. 집단이 커질수록 인간은 점점 더 사회적 동물이 되어온것 같기도 하다.

감각에서 문화에 이르는 모든 사회 매커니즘은 자연선택을 통해 처음부터 신생아의 뇌에 새겨져 있지만 이는 이후에 문화적 환경 안에서 조직되고 운영되는 다층적 체계를 형성한다. 이 시스템은 많은 것을 서로 공유하는 세상에서 우리를 하나로 묶는 도구다. 그러나 우리를 하나로 묶은 다른 매커니즘도 있다. 우리는 관심과 흥미 이상으로 감정을 공유한다. (p. 107)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긴 하지만 각각의 개성이 뚜렷한 동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도 진행중이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 같은 난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유전이 먼저인가, 환경이 먼저인가.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을 잘 통제한다고 믿는다. 결정을 빨리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는 일은 있어도 여전히 선택권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행동의 주체이자 생각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p. 193) 우리는 이 짐승들을 멀리해야 한다. 사회에 수용되려면 자신을 통제하고 언제 어디서 어떤 행동이 적절한지를 배워야 한다. 자기 통제력은 욕동과 욕구를 조절하는 능력이다. (중략) 만약 생물학적 조건과 환경이 상호 작용한 결과로 충동이 조절되는 것이라면 아이들에게는 사회에서 용납되는 것이 무엇인지 지침을 제공하되 강제하지 않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p. 194)

하지만 저자는 '아무도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 라고 말한다. 아이들의 교육방침은 자기통제력을 키우는 것이지만 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능력을 어쩌면 평생 길러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곤 한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저절로 개인의 타고난 성향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인간은 선하게 태어날까 악하게 태어날까

인간은 선천적으로 남을 돕는 경향이 있다. 같은 집단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동의하지 않거나, 돕기를 거절하거나, 해를 끼치는 것은 우리의 본성에 위배된다. (p. 236) 생물학적으로 친사회적 성향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나, 닥치는 대로 돕는다는 뜻은 아니다. 현대 세계에는 여전히 영역, 자원, 사상을 둘러싼 집단 간의 갈들이 만연하다. 인간은 친사회적인 동물이지만 자신이 속한 집단 내에서만 친절을 베푼다. (p. 237)

저자가 내린 결론은 성선설에 가깝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결론은 인간을 개인적 본성으로 파악했을 때 그렇다. 인간이 집단을 이루고 집단이 내리는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개인을 보면 전혀 상반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가장 끔찍했던 것은 언제쯤 풀려날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도, 고문받는 다른 재소자들의 비명도 아닌 독방에서 홀로 보낸 4개월이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 절실했어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교도관에게 오늘은 취조라도 받게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으니까요" (p. 242)

이란에서 간첩혐의로 체포되었던 미국인 등산가의 인터뷰 내용은 코로나로 인한 격리 시대에 던지는 울림이 크다. 그리고 이 울림이 큰 만큼 친사회성을 지닌 인류가 집단이 되었을 때 못할게 없다는 것으로 연결되는 논리는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충격적이기도 하다.

절박한 동료애에 관한 이야기들은 이 책의 핵심 주제를 강조한다. 인간의 뇌는 사회적 상호 작용을 위해 진화했고,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길들이기에 의지하게 되었다. 사회적 동물은 고립된 상태로는 잘 지내지 못한다. 인간은 집단 안에서 가장 오래 양육되고 생활하는 종이다. (p. 244) 평범한 사람에게서 잔인함을 불러일으킨 조건은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와 '저들'을 구분한 상황의 치명성이었다. (p. 258)

인간은 혼자서는 절대 안할 일 아니 못할 일도 뭉치면 거침없어지게 된다. 그것이 때로는 폭력적인 결과를 만들기도 했다. 역사를 보면 무수히 많은 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다.

타인의 관심을 필요로 한다는 점은 길들여진 삶의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반전이다. (중략) 의존성은 인간의 긴 어린 시절이 낳은 모든 신체적, 감정적 필요를 해결해 준다. (중략)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일은 우리를 보는 타인의 시각과 연관되어 있다. 그 탐색은 사회적 동물만이 얻는 기쁨과 불행을 모두 가져온다. (p. 288) 개인주의든 집단주의든 궁극적으로 한 문화에서 무엇이 옳은지는 '타인의 마음'으로 검증된다. 내가 나의 성취를 '성공'이라고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집단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p. 290) 인간이 진화하는 내내 길들이기는 개인을 위한 다수의 힘을 제공했지만, 그렇게 인간을 번영하게 해준 길들이기가 이제 개인을 말살하겠다고 위협한다. 우리는 타인에게 너무 의존한 나머지 자급자족할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더구나 이러한 상호의존은 아직 절정에 이르렀다는 징후조차 보이지 않는다. 상호의존은 더 쉬운 삶을 제공하고 점점 더 정보 기술에 의지한다. (p. 299)

저자는 인간의 사회적으로 길들여진 뇌를 설명함으로써 지금의 위기상황을 해결할 방법으로 '전지구적 평화로운 삶을 지향하는 우리'를 제시한다. 현대사회가 정보기술이 발달하면서 과거에 비해 개인화된 사회라고 말하지만 오히려 타인의 시선은 더욱 의식하게 된 사회라는 점에서 집단에 속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더욱 커진 사회이기도 하다. 자가격리는 유유자적 할 수 없고 좋아요와 하트버튼 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하면서 따로 떨어져 있으나 어딘가에 소속되고자 하는 욕구는 맹목적 추종의 모습을 보일때도 있다. 따라서 '우리'가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저자의 말처럼 사회적으로 '길들여진 뇌'는 끊임없이 자신이 속한 사회를 찾고 공고히 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러니 '전지구적 우리'가 되려면 결국 타노스가 지구방문을 해줄때가 되서야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씁쓸함에 슬퍼지기도 한다. 하지만 진화는 인간이 그러거나 말거나 늘 현재진행중이고 인간이 알거나 말거나 인간의 뇌또한 그렇다. 그 진화에 의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인간으로서 '바람직한 우리'가 되고자 하는 노력에 그래도 좀더 희망을 걸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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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 스톡홀름신드롬의 이면을 추적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
롤라 라퐁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세뇌인가, 선택인가

1974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퍼트리샤 허스트 납치사건

스톡홀름신드롬의 이면을 추적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

'퍼트리샤 허스트' 납치사건은 몰랐지만 '스톡홀름신드롬'은 들어봤던 단어였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감정에 공감하게 되는 심리변화에 대해 '세뇌인지, 선택인지' 묻는 것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실제 납치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졌다니 그 이면을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했다.

"여러분은 보고서를 써야 해요. 이 모든 걸 다 읽어볼 시간은 없을 거에요. 그러나 이 엄청난 양의 기사들을 종합할 수 있어야 하죠!" 당신은 주어진 기간 안에 반드시 이 일을 마쳐야 하지만, 그 기간이 최대 2주일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그들이 층계참에 서 있을때 방금 생각났다는 듯 물었습니다. '그런데 다들 퍼트리샤 허스트가 누군지는 아나요?" (p. 21)

프랑스의 작은 도시의 여학교에 영어 선생으로 온지 얼마 안된 미국인 젊은 여성 진 네베바는 미국으로부터 특별한 의뢰를 받게 된다. 진 네베바 선생은 1975년 가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광고 한 장을 써서 이 도시에 있는 빵집 두 곳에 붙여두었다. '매우 유창하게 영어를 쓰고 말할 수 있으며 2주일 동안 풀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여학생을 급히 구합니다. 학생이 아닌 분은 사절합니다" 이 광고를 보고 세 명의 여학생이 면접을 보았고 비올렌이 합격연락을 받았다. 세명중 유일하게 '퍼트리샤 허스트'가 누구인지 몰랐기에 낙담하고 있던 비올렌이었다.

당신은 비올렌이 생전 처음으로 만난 미국인이었습니다. (p. 29) 당신의 지시는 비올렌의 역할에 한층 더 큰 중요성을 부여했습니다. (p. 32)

이런 것들이 퍼트리샤 허스트와 무슨 관계가 있으며, 원래 계획했던 대로 이 미국 여성의 심리 상태에 대해서는 도대체 언제 살펴보려고 하는 것일까? 만일 정치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비올렌은 아예 처음부터 지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p. 49)

퍼트리샤 허스트는 1974년 2월 납치 당시 예술사를 공부하는 대학2학년생이었다. 미국의 최대 언론재벌 허스트가의 딸이었기에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SLA는 몸값대신 극빈층에게 식량을 배급해줄 것을 요구했다. 퍼트리샤는 녹음테잎을 보내 자신의 안부를 알렸다. SLA의 요구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뉴스에서는 온통 테러로만 표현되었다. 그리고 몇달 뒤 사상전향을 했다며 총을 메고 모습을 드러낸 퍼트리샤의 모습은 사회적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건기사들과 퍼트리샤의 녹음기록들을 살펴가며 이 여성의 심리를 파악해보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수시로 던져지는 네베바 교수의 질문과 토론이었다. 프랑스 변두리 작은 마을에서 순진하고 순종적으로 자라온 여학생이었던 비올렌에게 네베바 교수의 모든 것은 너무나 파격적이었다.

에밀리, 낸시, 앤절라, 커밀라. 비올렌은 망연스레 1974년 2월 14일자 일간지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이 네 개의 이름을 베껴 썼지요. FBI가 신원을 확인한 공생해방군SLA단원들은 나이가 스물세살에서 스물아홉살 사이였습니다. (p. 50) 그들은 몸값을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인질을 잡은 것입니다. 새로운 인질이란 바로 허스트가 소유의 일간지 독자들이었지요. SLA는 이 일간지들이 1면에 그들의 성명서를 싣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자기들의 주장을 널리 퍼뜨릴 수 있었습니다. (중략) 한편 허스트씨도 자기 딸이 납치되었다는 기사 하나만으로 이렇게 많은 신문을 팔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p. 53) 당신 조수는 당신집 응접실에서 수업을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p. 60)

퍼트리샤 허스트 납치 사건을 알아갈수록 상황파악은 점점 더 어려워져갔다. 단순한 재벌가의 딸 납치 사건이 아니었다. 당대의 사회적 문제를 압축시킨 듯한 상징적 사건이었기에 비올렌은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 공산주의, 빈부격차, 황색언론, 히피족, 여성의 역할 등 무엇하나 쉬운 주제가 없었고 무엇하나 생소하지 않은 것이 없었기에 조수의 역할이라기 보다는 학생처럼 느껴지는 업무들이었다. '퍼트리샤 허스트의 납치는 모험 같기도 하고 탈주 같기도 합니다' (p. 63) 라는 문장에서 알수 있듯이 퍼트리샤의 납치사건은 알면 알수록 점점 더 페미니즘적인 문제의식을 건드리고 있었다.

비올렌이 맡은 단순한 조수의 역할은 당신이 그녀에게 퍼붓는 격한 단어의 무더기에 깔려 흔들리고 있었지요. (p. 83)

당신의 분노는 비올렌이 알고 있는 어른들의 분노와는 달랐습니다. (p. 85)

사실 진 네베바 교수는 학생시절 시위활동으로 학위를 박탈당했던 경력이 있었다. 이 경력이 새로운 관점의 보고서를 작성할 수도 있으리라 여겨져서 퍼트리샤의 변호인단에게 채택된 것이었다. 미국은 커녕 프랑스의 정치상황에도 무지한 비올렌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퍼트리샤의 기록을 읽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은 네베바 교수에겐 어쩌면 행운이었다. 네베바 교수는 비올렌을 통해 퍼트리샤를 새롭게 해석하고 비올렌은 네베바를 통해 알게된 퍼트리샤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게 되었다. 네베바 교수는 탄탄해져 가고 비올렌은 점점 더 세게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둘다 자신들의 그런 상태를 알지 못했다.

그녀는 최소 30년 형은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한 여자 경찰이 그녀의 수감서류에 써넣기 위해 직업이 무엇인지 묻자 퍼트리샤는 "'도시게릴라'라고 써요"라고 대답했지요. 그녀는 도시게릴라였던 것입니다. (p. 123)

네베바 교수와 비올렌과 함께 퍼트리샤의 기록을 읽어나가다 보면 이 소설 속 주인공은 다름아닌 퍼트리샤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녀에게 집중하게 된다. 가장 변화무쌍한 존재임에도 실체로서가 아니라 기록속에서만 존재하는 퍼트리샤의 목소리는 소설을 읽는 독자도 궁금해지게 만든다. 그녀는 왜? 혹은 세뇌일까, 선택일까? 하는 질문의 답을 찾고 싶어진다.

당신은 비올렌을 채용한 바로 그날, 정확히 알아차렸지요. 비올렌은 당신이 뭘 알아내라고 했는지는 이해하지만, 당신을 만족시키는 방법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당신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너무 신중한 이 젊은 여성을 당신 취향에는 지나치게 감상적인 책들만 읽는다며 비웃었지요. (p. 146) 비올렌은 마치 실험용 쥐처럼 번역하고, 버리고, 요약하고, 다시하고, 귀 기울여 듣고, 추측하라는 당신의 요구에 복종합니다. (중략) 비올렌은 언젠가 당신이 자신의 삶을 스쳐지나갔다는 사실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는 듯, 당신이 그날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기록했습니다. 그만큼 그녀는 당신 옆에 계속 머무르기 위해, 당신과 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것이죠.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조수가 마음껏 기뻐할 수 있도록 그녀를 교육한 것입니다. (p. 147)

퍼트리샤 허스트 의 납치사건을 통해 삶이 변한 세 여자인 진 네베바, 비올렌 그리고 작품속 화자 이 세명의 여성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이 세명은 허트리샤 허스트의 후예?!이기도 하다.

한 신문기자가 동료기자에게 자기는 당혹스럽다고 털어놓았다고 썼습니다. '도대체 허트리샤 허스트의 죄목이 뭐지? 무장강도행위인가? 아니면 퍼트리샤의 메시지인가? 그것도 아니면 그녀의 견해인가? 그녀가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은 건 그녀의 행위 때문인가, 아니면 그녀의 전향 때문인가?' (p. 257)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독자도 점점 더 궁금해지고 의아해질 것이다. 도대체 퍼트리샤의 죄목이 무엇인지... 퍼트리샤는 잡혔고 구속되었으며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허스트가가 낸 보석금으로 곧 풀려났다. 하지만

저는 너무나 많은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전의 삶으로는 절대 되돌아갈 수가 없어요. (p. 291)

나는 남아서 싸우기를 선택했다. (p. 317)

이 말은 퍼트리샤 허스트가 한 말들이지만, '너무나 많이 깨달았기 때문에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그리고 '남아서 싸우기를 선택한' 사람은 결국 퍼트리샤 허스트가 아니었다.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며 짧은 기간 자신에게 정해져 있던 삶을 일탈했던 퍼트리샤는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갔고 그녀가 깨달은 것이 무엇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퍼트리샤 허스트에게 빠져들었던 세 명의 여성은 자신들의 삶이 송두리째 변했다. 그 변화를 일으키는 시간은 17일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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