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기 위해 쓴다 - 분노는 유쾌하게 글은 치밀하게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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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쓰는 것, 그것이 가장 영리하고 품위있게, 그리고 확실하게

세상을 바꾸는 방법이다.

분노는 유쾌하게 글은 치밀하게

'체험형 글쓰기'의 대가 라는 바버라 에런라이크 라는 작가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왜 이제야 알게 되었나 반성했다. 세상을 바꾸는 쓴소리란 어떠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알려주는 작가였다. 저자는 현장 경험을 토대로 체험기 쓰듯 생생하게 썼고 사회 곳곳의 문제점들을 전방위적으로 공격했다. 그것도 유쾌하게 동시에 치밀하게.

시작은 빈곤 문제였다.

이제는 비교적 잘살게 된 나 같은 사람은 최저 임금이라든가, 도시 거리에 다니는 다람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하는 사람들 문제, 혹은 공원 노숙인에게 벌금을 물리는 일에 관해 글을 쓸 수 있는데 반해서 실제 그런 생활을 하고 있거나 그런 생활을 금방이라도 해야 하는 사람들은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것이 모순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지난 몇 년 사이에 사회 비평, 특히 빈곤 문제에 대한 글을 쓸 역량이 적어도 나만큼은 되는데도 정작 자신의 가난에 발목이 잡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다수 알게 됐다. (p. 18)

저자는 먼저 자신과 같은 저널리스트들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저널리스트들의 빈곤은 빈곤한 저널리즘으로 이어진다. (p. 20)' 라며 장기적 취재와 현장 경험이 필요한 기사들이 적어지는 현실은 저널리즘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임을 지적한다. 이것은 단순하게 저널리스트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불평등에 관해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들을 소득 분배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서만 고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일 뿐이다. 빈곤층과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대중 매체라는 집단적 거울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p. 21)' 이런저런 책을 읽으며 느낀 서양과 우리나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작가에 대한 개념이었다. 영미권의 경우 어딘가에 소속된 기자나 등단한 작가가 아니어도 취재하고 연구하고 글을 쓰며 자신이 쓴 글을 팔아서 기사에도 실리고 책도 내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작가라고 부르는 사람이 될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에세이나 전공분야 책을 제외하고 저널 기사 라고 부를 만한 글을 쓰는 작가는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취재와 기사는 대부분 기자만이 쓴다. 이러한 언론의 좁은 바탕은 이른바 카더라통신이나 가짜뉴스에 휘둘리는 빈약한 저널리즘 풍토를 만들었다. 이름없는 사람이 쓴 글이 읽혀지고 퍼지면서 세를 불리고 그렇게 새로운 저널리스트를 발굴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름이 있는 사람이 쓴 글만 읽히는 사회의 언론이 과연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 쓴소리를 써낼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우리네 저널리즘 현실에 대한 자각은 이 책의 프롤로그였을 뿐이다. 더욱더 머리를 때리는 각성은 책을 읽으면서 점점 더 증폭된다.

내 가족 중 한 사람이 아무런 도움도 안 되면서 계속 지적질을 한 것처럼 저임금 노동을 통한 생존 가능성은 내 서재에서 한 발짝도 나서지 않고 실험할 수 있고, 그렇게 한 사람이 수없이 많다. (p. 28)

빈곤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회지도자층은 잘 없지만 관심을 갖는 이들조차도 직접 체험하지 않고 각종 보고자료와 연구자료들 만으로 충분히 문제점을 파악했다고 자신하곤 했다. 하지만 저자는 직접 노동현장에 뛰어들었다. 웨이트리스로 호텔청소로부로 일하면서 몸소 깨달았다. '확실한 것은 나는 투잡을 뛰는 데 실패했고, 일자리 하나로는 사는 데 필요한 돈을 충분히 벌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장기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유리한 조건ㅇ르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p. 77)' 저자는 자신의 주거공간을 마련할 비자금을 갖고 출발했고 부양해야 할 가족도 없이 홀홀단신인 상태로 노동현장에 뛰어들었다. 그랬음에도 필요한 생활비를 다 벌 수 없었다. 그러니 월세 보증금이 없고 부양가족까지 있는 사람들의 현실은 어땠을까? 저자는 이러한 워킹푸어 생존기를 <노동의 배신> 이라는 책으로 출간했었다고 한다. 이 책은 사회공론화 되었고 정부가 최저 임금을 인상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했다. 그리고 빈곤한 삶은 저자의 화두 중 하나일 뿐이었다.

복지정책이 얼마나 현실과 떨어졌는지를 지적하며 '복지 혜택과 매질을 결합한 프로그램의 진짜 장점은 이 접근법이 빈털터리가 된 채 사회 가장자리로 밀려난 사람들을 향한 징벌적 분노의 분출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p. 83)' 라며 신랄하게 풍자하고, 회사에 사장이 존재하려면 다른 사람들의 노동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을 품위있게 인정해야 한다며 당연하지만 망각된 점을 꼬집어내기도 하며, 이민자들과 경쟁하느라 처우가 점점 나빠지는 것을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힘을 합쳐 더 나은 조건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것이 거의 불법적인 행위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이토록 많은 사람이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다. (p. 99)' 라며 개탄을 금치못한다.

빈곤문제 말고도 사회적으로 왜곡된 관점은 수두룩하다. 건강에 대한 인식도 그렇다. 저자는 우리가 몸과 마음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유방암에 대한 지나치게 긍정적인 대처 문화에 대해 날을 세운다. 무엇보다 이러한 유아적 문화에는 죽은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사회 일각에 팽배한 특정 젠더 이데올로기의 버전에 따라 여성성이 본질적으로 다 자란 성인의 개념과 배치된다는 개념, 성장이 멈춘 상태라는 개념에 기초한 것일 수도 있다. 전립선암 진단을 받은 남성이 미니카를 선물로 받는 일은 없지 않은가. (p. 139) "유방암은 페미니즘에 동조하지 않으면서 여성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p. 144) '문화'라는 단어만으로는 이 모든 것을 묘사하기에 불충분한 느낌이 든다. 불과 지난 15년 사이에 유방암을 둘러싸고 형성된 분위기는 컬트, 혹은 광신적 숭배 집단을 닮았다. (p. 154) 정말 강하게 비판하자면, 유방암 컬트는 전 세계적으로 자행되는 독살 음모의 공범이다. 암을 정상적인 것, 예쁜 것으로 만들고 심지어 긍정적이고 부러워할 만한 것으로 왜곡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p. 161)

이러한 강한 어조를 띨 수 있었던 것은 저자 자신이 유방암에 걸렸고 그 이후 직접 그러한 문화와 인식에 대해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암에 대한 긍정 산업의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계기로 <시크릿> <긍정의 힘> 등 자기계발서의 메시지, 초대형 교회의 모순적인 설교, 동기 유발 강사들과 기업들의 커넥션, 그리고 세계를 재난에 빠뜨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까지 차근차근 더듬어 가며 '긍정주의'의 실체를 추적한다. (p. 165)' 그런 뒤 긍정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책 <긍정의 배신> 을 출간했다고 한다. 나도 전에 <시크릿>을 읽어봤지만 당췌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밑도끝도없는 자기확신을 강요하는 자기계발서들에 대해 거부감이 강하게 들곤 한다. 그런데 그에 맞서 한방 제대로 먹이는 저널리스트가 있었다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저자가 경험한 유방암 관련 문화 뿐만이 아니다. 건강을 도덕성과 연결시키면서 우리도 모르게 세뇌되어온 상식같은 인식을 저자는 깨닫게 해준다.

도덕성은 이제 더 이상 문명사회의 두드러진 특징이 아니다. 1980년대를 지나면서 도덕성은 정치인들에게 버림받고, 월스트리트에서 짓밟혔으며, 텔레비전 전도사들에 의해 더럽혀졌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단것에 눈이 멀어 식이섬유를 섭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냥 비유를 하자면 말이다. 선한 덕목을 중요시하는 태도는 공적인 영역에서 자취를 감춘 다음 우리가 먹는 시리얼과 운동 습관, 그리고 흡연, 독주, 기름진 음식 등에 대한 공격적인 대응 태도에서 부활했다. 우리는 건강이란 것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도덕적 덕목이라는 개념으로 재정립했다. (p. 167) 우리는 모두 16세기 기독교인들처럼 모든 병이 과거에 저지른 죄의 대가라고 생각하게 됐다. (p. 171) 건강한 생활습관이 뛰어난 도덕성의 표현이라면, 노동자 계층은 촌스럽고, 예의가 없다는 등 지금까지 우리가 믿도록 만들어져 온 모든 편견이 맞을 뿐 아니라 도덕성까지 결여돼 있다는 뜻이 된다. (p. 173)

사회시스템적인 문제를 개인적 책임으로 교묘하게 돌릴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처한 문제에 대해 개인적 해결방안을 찾게 된다. 건강한 부자들은 건강하지 못한 가난한 이들에게 그들의 식습관과 운동습관과 생활방식이 문제라고 떠넘긴다. 하지만 유기농 샐러드를 먹고 일정시간 조깅을 하며 퇴근후 플라잉 요가를 할 수 있는 그들과 달리 아침밥도 못먹고 출근해서 허리한번 펼새 없이 노동을 하고 라면으로 저녁을 대충 때운다음 잠자리에 드는 사람들의 건강이 나쁜 것은 개인들의 탓만 할수는 없는 문제임이 분명하다.

저자의 전방위적 쓴소리는 페미니즘 영역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죽음을 초래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리더십을 찾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중략) 대통력직보다 더 낮은 관직에도 우리는 전사 문화의 기준을 적용한다. 여성 후보들에게 우리는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려면 '강한' 이미지를 주는 언사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p. 203)

'섹스와 강간을 구분하지 못하는 남자들은 여성들과 함께하는 세상에 살 자격이 없다. (p. 200)' 라는 문장이 그래도 과거에 비해서는 많은 남성들에게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문장이 되었을 것이다. 저자는 '페미니즘이 예전 스타일의 전형적인 남성성의 틀을 깨는 데 기여한 것은 확실하다. (p. 220" 고 말하면서도 '남성에게 여성과 더 비슷해지라고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치 않다. 우리는 이제 남성들에게 여성과 남성이 '모두 될 수 있는 것'처럼 되라고 요구해야 한다. (p. 231)' 라고 말한다. 미국대통령들을 예로 들면서 과거 대통령들이 전쟁이슈로 어떻게 자신들의 리더십을 강조했는지 보여주면서 그런 자리에 오르고 싶은 여성도 전사의 이미지를 요구받았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페미니즘이 퍼지면서 부드럽고 여성적?!인 신남성들이 늘어나게 되긴 했지만 이러한 모습에 만족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여성이 남성화되고 남성이 여성화되는 것이 페미니즘의 목적이 아니다. 그저 인간으로서 같아지는 것 그것이 진정한 목표여야 할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목표에서 더 나아가 사회적 인식에 대한 쓴소리를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나는 여성에게 해가 되는 자료를 찾는 작업에 착수한 우리 시민 모임이 성경부터 검토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읽은 책이니 이 세상의 사악함과 모종의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원리를 적용했을 뿐이다. "이리 모여 보세요" 나는 동료 시민들에게 말했다. "미즈 위원회의 그 용감한 사람들이 구강성교 놀이나 채찍과 사슬의 쾌락을 보고도 견뎌 냈으니 우리도 용기를 내서 창세기를 견뎌 봅시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근친상간(롯과 그의 딸들), 단체 할례, 간음, 그리고 씨를 여기저기 뿌리는 이야기들등에 걸려 넘어지지 않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이 아무리 뜨거워도 시민으로서의 의무감을 저버릴 수는 없었기에 우리는 계속 견뎠고, 결국 성차별주의의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었다. (중략) 이브와 그의 딸들이 슬픔 속에서 자손을 낳을 것이라는 저주가 나오기도 하고, 자손을 낳는 것만이 유일하게 여성이 해야 할 일인 듯한 암시가 수없이 언급되었다. 군중 앞에서 여성이 발언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차별 철폐 같은 문제에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이삭의 후손이 세세손손 널리 퍼져나가며 가부장적 왕조를 확소히 하는 것을 용인하는 듯한 묘사도 많았다. 그리고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매우 변태적인 문구들도 있었다. 이것이 가정 폭력을 권장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p. 249)

저자의 시니컬한 문장은 때론 속시원하다가도 때론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통쾌함이 더 컸다. '페미니즘은 과거에 지녔던 비평의 칼날이 무뎌지면서 역설적이게도 동화주의자 개척자들, 즉 새로운 여성 기업가들이 하는 경험을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능력도 상실했다. 현재 주류를 이루는 페미니즘으로 성차별이라는 장애물로 생긴 문제까지는 이해를 하지만, '성공' 자체가 갖는 슬픈 공허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도 제시하지 못한다. (p. 261)' 라며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들과 다르게 포기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았음을 설명하고, 여성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추정하는 순진한 페미니즘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우리는 지난 수 세기에 걸쳐 남성이 만들어 놓은 제도와 기관에 동화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거기에 침투해서 전복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p. 269)' 고 말한다. 또한, 배우와 모델등 주목받는 사람들이 폭로하는 미투운동도 알아야 겠지만 미투조차 할수 없는 노동하는 여성들이 겪는 성폭력에도 관심을 가져야 함을 강조한다.

앞서 건강문제가 잠시 등장했긴 하지만 질병문제가 아닌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건강에 관한 지적도 흥미로웠다. 대표적으로 마음챙김 문화 같은 것 말이다. 저자는 '실리콘밸리에 만연한 바이오 해킹과 마음챙김으로 영생을 이루겠다는 그들의 꿈이 실현가능한지 따져보고, 병원과 의료계 현장으로 뛰어들어 현대 의학이 증거에 기반하고 있다는 주장, 예방의학이 무병장수를 보장한다는 약속이 정말인지 샅산이 돌아본다. 그리고 피트니스 센터와 웰니스 업체를 찾아 안티에이징의 비법을 제공한다는 그들의 프로그램과 제품이 실제로 효력이 있는지 살핀다. 그리하여 이 모든 산업과 열풍의 근간이 되는, 우리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통제할 수 있다는 기본 전제가 과연 '과학적'으로 사실인지 검증한다. 이를 갈무리한 책 <건강의 배신>을 2018년 출간 (p. 293)' 했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 읽은 글들이 꽤 오래된 글도 함께 묶인 책이라는 점에서 주제별로 좀더 심층적으로 파고든 저자의 책들이 모두 궁금해진다. 저자는 과학적으로 검증됐다고 하는 것들도 제대로 검증하고 검증돼지 않은 것들은 더 검증하려 노력한다. 이러한 자세는 종교문제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유일신을 섬기는 종교가 출현하고 인간의 모습을 한 기독교의 '아버지'같은 신이나 너무 추상적이어서 어떤 형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신을 섬기게 되면서 동물들은 소위 '인간의 상상력 신전'에서 추방당하게 됐다. 이 변화는 대략 기원전 2000년에서 서기 700년 사이에 일어났고 지금까지 이 현상은 항상 인류가 진보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축의 전환'이라고 부르는 이변화가 야만스러운 짐승을 숭배하는 꼴사나운 모습에서 완벽하고, 지극히 선한 신을 숭배하는 품위 있는 모습으로 진보했다는 것이다. 축의 전환 이후의 시대에 생겨난 종교들에서는 이전의 의식 중 일부에 대해 '불결'하다고 선언했고 그런 종교에서 숭배하던 대상들은 모두 인간보다 열등한 것으로 재분류했다. (p. 298)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소규모 공동체 혹은 '원시'사회에서는 신이 복수로 존재했고 남성적, 여성적 신이 모두 있었으며, 눈에 띄는 도덕적 가치관은 부재했다. 제우스에서부터 야훼, 바알에 이르기까지 거의 사이코에 가까운 이 신들은 피의 희생을 제물롱 요구하고 인종 학살을 교사하는가 하면 심지어 제우스의 경우 연쇄 강간범이기까지 한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논리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욥이 자기가 겪은 고난의 이유가 무엇인지 묻자 신이 준 대답은 사실상 "그냥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였다. (p 314) '축의 시대'는 유라시아 지역에서 철기로 된 무기가 나오면서 엄청난 전쟁이 계속됐던 시기다. 군대를 유지하고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는 강력한 중앙 권력( 왕, 그리고 후에 황제)이 필요하다. 이 권력자들은 추종자들을 완전히 힘으로만 다스리는 것이 위험할 뿐 아니라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p. 317)

책을 읽다보면 역사와 철학과 종교와 과학 그리고 이들 모두와 관계깊은 권력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깨닫게 되곤 한다. 저자의 종교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도 이 모든 것들이 뒤섞여 따로 떼어내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동시에 그래서 어떤 일관된 관점을 가진다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저자는 참 늘 내내 용감했다. 저자는 말한다. '신처럼 보이는 것, 가령 천사들의 합창 소리를 배경 음악으로 깔고 별빛을 흩뿌리며 불의 전차를 타고 하늘에서 강림하는 존재를 목격하더라도 그가 우리의 친구나 구세주일 것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 침입자를 경계의 눈초리로 지켜봐야 한다. 경외하는 자세로 무릎을 꿇는 것이야말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p. 321)'

마지막 챕터에서 저자는 '중산층 몰락 사회'의 단면들을 풀어낸다. '전통적 가치'의 유지가 얼마나 불합리한지, 바쁨이 곧 능력이라는 믿음이 얼마나 허상인지를 지적하며 화이트칼라의 몰락에 대해 '상황이 그렇게 안 좋다는데 왜 저항의 기미가 전혀 안보이는 걸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저자는 또다시 잠입취재를 결심한다. 개명하여 새로운 신분을 만들고, 이력서를 꾸미고, 인맥을 만들고, 화장을 바꾸고, 인성까지 개조하는 대대적인 구직 프로젝트에 돌입한 것이다. 그리고 2003년 11월부터 약 10개월간 이루어진 저자의 구직 체험을 바탕으로 2005년 <희망의 배신>을 출간한다. (p. 368)' 기업의 노예가 되거나 혹은 워킹 푸어로 전락하거나 시름시름 죽어가는 '중산층 대참사' 현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이 책또한 지금의 국내상황에 접합되는 내용이 많지 않을까 싶다. 중산층이 몰락하고 블루칼라가 트럼프를 뽑은 미국사회에서의 인종문제 또한 저자는 관심을 기울인다.

불행하게도 다른 인종들로부터 극도로 고립된 우리에게는 백인들의 행동에 내재된 자기 파괴적 성향, '서구 문명' 이라고 널리 알려진 이 행동의 폐해를 지적해 줄 사람이 주변에 없다. 현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자. 우리는 바깥으로 뻗어 나가는 대신 안쪽으로만 굽고, 배타적이 되었으며, 바보 같아졌다. (p. 373) 덜 불안하고,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내는 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다. 사실 현재 부유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가장 위험한 것은 계층 의식을 갖춘 좌경 정치 세력이 부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세력이 부상하지 않는 것이다. 강력한 정치적 대안이 없으면 배고픈 자와 과식하는 자, 희망이 없는 자와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들의 분열로 갈라진 사회가 되어 가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그보다 더 근심스러운 것은 기울어 가는 중산층의 좌절감이나 최하층의 절박함을 평화적으로 배출할 정상적인 정치 통로가 없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p. 390)

작금의 미국사회 분열에 대해서 저자는 '연대의 문화'를 만들어야 함을 강조한다. 노숙인 문제만 하더라도 노숙인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계속 그렇게 자신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여기다가는 '우리 모두가 노숙인의 운명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p. 423)' 라며 사회의 다양한 몰락위기들을 깨달을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Don't forget to have a good time while you're doing things. Political work should not be work.

(일을 하는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정치적인 일은 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삶의 즐거움은 저자가 알려주는 사회적 문제들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에 모든 일상은 늘 정치적일 수 있음을 잊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저자는 '지지 않기 위해 쓰는' 것을 멈춘 적이 없다. 이렇게 치밀한 분석을 날선 어조로 강하게 쓸 수 있는 저자가 패기 넘치는 나이일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1941년 생이다. 그리고 지금도 유쾌하게 분노하며 불평등의 연대기를 써내고 있다.

이 책의 원제는 HAD I KNOWN (나는 알고 있었다) 이다.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 혹은 이제(책을 읽고 난 후) 무엇을 알게 되었는가?

우리나라에 저자와 같은 저널리스트가 있다면 좋았겠지만 찾아보기 힘들다면 최소한 이 책이라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우리에게도 강렬하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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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안아준다는 것 - 말 못 하고 혼자 감당해야 할 때 힘이 되는 그림책 심리상담
김영아 지음, 달콩(서은숙) 그림 / 마음책방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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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못 하고 혼자 감당해야 할 때 힘이 되는 그림책 심리상담

시도 때도 없이 울컥하고 감정 조절이 힘들어서

그림책 심리상담을 받았습니다

저자는 독서치유상담사이자 치유심리학자이다. 그림책 심리성장 연구소를 운영하고 한겨레교육에서 독서 및 그림책 심리 지도사를 양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그러한 저자의 심리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다.

여기까지 보면 그닥 특별할 건 없어 보이는 책일 수도 있다. 언제부턴가 심리상담 책들이 많아졌고 하나의 방법적으로 책이 소개되는 경우도 많았고 어른을 위한 그림책 소개를 하는 책들도 종종 있었고 무엇보다 심리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책들은 끊임없이 나왔고 나오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특별함' 이라는 것은 사실 굉장히 개인적인 감상이기에 누군가의 글이 내게 '특별해지는 순간'은 그 책이 전해주는 '진정성'에 힘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저자의 진심이 담백하게 전달되는 책이었다.

이 책은 '나'를 만나기 위해 떠났던 상담 여행의 기록이다. (p. 7) 사실 그들의 마음을 아무 조건 없이 실질적으로 안아준 것은 심리 상담도 상담이지만 그림책 역할이 더 컸다. 나는 독서치유상담사다. 그러다 보니 상담하면서 내담자의 상황에 맞는 책을 소개해 주는데, 특히 그림책을 적극적으로 권해준다. 내담자의 마음을 그림책을 통해 스스로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p. 8) 이 책은 그들의 그림책 상담 이야기를 들려준다. (p. 9)

심리상담의 치유방법 중 하나로 책을 권해주는 것을 나는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소설 한권 오롯이 읽어내는 것도 버거워하는 이들이 많아져서 일까 뒤늦게 깨닫는 그림책의 따듯함이 더 위로가 되기 때문일까, 마음에 위로가 되는 책들의 글밥은 점점 짧아지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 물론 나도 그림책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그림보다 글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나의 조언은 말하자면 '긍정적인 착각'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아픔을 말하는 내담자에게 상담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아픔에 동행해 주면서, 내담자가 자기 아픔에 치어 미처 보지 못하고 생각지 못한 것을 보여주고 말해주는 것이다. 사랑이든 무엇이든 최종 선택은 어차피 자신의 몫이고, 자신이 하게 되어 있다. (p. 27)

미국의 그림작가 로런 밀즈의 <누더기 외투를 입은 아이> 그림책을 아이와 함께 읽은 젊은 엄마는 자신의 초라한 과거를 더이상 초라하지 않은 추억으로 생각할 수 있었고, 윤지회 작가의 <방긋 아기씨> 라는 그림책은 '주고받은 것의 크기는 준 사람이 아니라 받은 사람에게서 결정된다. (p. 40)' 라는 어쩌면 당연할 수 있는 내담자의 억울함을 안아주었다. 영국의 작가 올리버 제퍼스의 <마음이 아플까 봐> 라는 그림책은 '감정은 자신의 의식과 별개로 또 하나의 인격을 갖추고 있다. (p. 61)' 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어 살면서 놓아버린 감정들을 늦게나마 차근차근 회복시키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삶, 무엇인가를 위해 꼬박 밤을 새우는 시간이 한 번도 없는 삶, 성취하고 싶은 자기만의 목표가 없는 생활은 죽은 삶이다. 허무는 별것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허무다. (중략) 단 한 번도 무엇을 적극적으로 욕망하거나 신념을 세워 본 일이 없다. 자아실현의 욕망이 없는 삶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되면 산다는 일이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하루하루가 비슷한 날들의 반복일 뿐이다. 그런 사람이 죽음을 생각해 본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죽은 듯이 사는 거나 그냥 죽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p. 76)

어릴적부터 자신의 성향을 멸시당하며 좌절감 속에 성장해 온 내담자에게 저자는 캐나다 작가 가브리엘 루아의 <내 생애 아이들> 소설과 서아프리카 가나 작가 제임스 에그레이의 <날고 싶지 않은 독수리> 그림책을 권해 주었다. 또 차재혁 작가의 <이 선이 필요할까?> 도 추천했다. 그리고 내담자는 가슴으로 그 책들을 읽었다. 의존증이 심한 젊은이에게는 불가리아의 그림작가 마리아 굴레메토바가 쓴 <울타리 너머> 를 권해 주었다. '실패의 경험이 살마을 좌절시키는게 아니다. (p. 100)' 라며 자발적인 의지로 도전해 보는 것의 가치를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한 번도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병원에 입원하면 육체의 고통보다 먼저 심리적으로 당황한다. 작은 병에도 마음이 먼저 크게 놀란다. 게다가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아파본 적이 없어 타인의 아픔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p. 108)' 성공가도를 달리던 사람이 단 한번의 실패에 너무나 크게 흔들렸을 때 저자는 유설화 작가의 <슈퍼거북> 그림책을 권했다. 미국의 그림작가 코리나 루이켄이 쓴 <아름다운 실수> 그림책도 함께 권했다. 실수는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라며.

감정 상태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는 상처! 그 앞에서 도망쳐 버린다면 우리는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 (p. 129)

노르웨이의 그림작가 그로 딜레가 쓴 <앵그리 맨> 그림책은 내담자의 어린 시절 상처와 대면하게 해줌으로써 읽어내기 어려운 그림책 일수도 있었다. 제시 밀러가 쓰고 바버라 바커스가 그린 <청바지를 입은 수탉>으로 자존감을 깨닫고 미국의 그림작가 피터 레이놀즈가 쓴 <점> 그림책에서 만날 수 있는 따듯한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응원해 주기도 했다. 그 따듯한 사람이 선생님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얼굴만 알던 지인이 될 수도 있고 심리상담가일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연대감의 힘이다. '우리네 삶의 저 무성한 상처들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 우리를 지켜내는 연민과 공감의 힘을 믿을 수 있었다. (p. 159)'

대부분의 불안과 그로 인해 일어날 일에 대한 공포는 과장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우리의 뇌가 부정적 경험을 데이터화하기 때문이다. 뇌의 부정적 경향성 때문에 과잉불안을 야기하고, 또 이것은 예측에 있어 과잉평가를 하게 해서 우리를 괴롭힌다는 것이다. (p. 168)

정상적 불안과 병적인 불안을 구분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불안증은 너무나 익숙한 감정이 되어버린 듯 하다. 이탈리아의 그림작가 프란체스카 산나가 쓴 <쿵쿵이와 나> 그림책은 불안을 시각화해서 보여준다. 동화작가 조수경이 그리고 쓴 <마음샘>은 불안을 '창조력과 상상력을 높여주고, 끊임없이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p. 177)' 하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전해주려 한다. 호주의 그림작가 헨리 블랙 쇼가 쓰고 그린 <어른들 안에는 아이가 산대> 라는 그림책 처럼 '내면 아이'의 존재는 언젠가부터 누구에게나 찾아볼 수 있게 되었는데 김희연 작가가 쓰고 그린 <내 친구 무무> 그림책에서 볼 수 있듯 소통이 중요하다. 다만 그 시작이 누구인가에 너무 치중하지 말것을 저자는 권한다. '상대가 바뀌어야만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상대가 바뀌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건 상대에게 의존하는 일이다. 문제 해결의 열쇠를 상대에게 맡긴 채 막연히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다. 내가 바뀐다는 건, 상대는 놀고 있는데 나만 일하는 그런 게 아니다. 해결의 열쇠를 내가 쥐고, 내가 주도한다는 의미다. (p. 208)' 새삼스럽지만 당연하게도 '지금 여기' 가 중요하다. 조미자 작가의 <불안> 그림책이 보여주듯이 과거의 나를 중심에 두지 말고 지금여기의 나를 중심에 두고 맞대면 하려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무기력이든 무엇이든 현재의 문제에서 벗어나는 길은 잠시만이라도 그것을 생판 남의 일처럼 바라볼 수 있을, 그때 찾아진다. 그러면 사람들이 달리 보인다. (p. 246)

저자는 전소영 작가의 <적당한 거리> 그림책 문구들이 가슴에 임팩트 있게 꽂힌다고 한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이기도 한 올가 토카르축의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 에서도 이 '적당한 거리'의 중요성이 전해져 온다. 하지만 가족과의 거리감이 너무 지나쳤던 것이 상처가 된 내담자에게는 영국 작가 믹 잰슨이 쓰고 존 브레들 리가 그린 <우리가 잠든 사이에> 그림책이 더 임팩트 있을 수 있다. 미국의 동화 작가 모 월렘스의 <때문에> 그림책도 '연결' 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거리감와 연결의 적절한 조화가 사실 쉽지는 않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단번에 끊을 수는 없다. 조금씩 성장해 가며 상처를 고치고 싸매는 과정을 밟아나가야 한다. 그러한 시간의 대가를 지급할 때 치유의 기적은 온다. (p. 274)' 라는 메시지를 나는 믿고 싶다. 나도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중이기에...

저자는 고정순 작가가 쓴 <가드를 올리고> 그림책을 한동안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강한 역동이 올라와서였다고... 이 책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저자의 이야기이다. 세상에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다만 그 상처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삶은 새로운 변곡점을 만들어내곤 한다. '여전히 상처로 가슴 먹먹한 채 울고는 있지만 여전히 남들처럼 성큼성큼 가지 못하고 기어서 가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나'로 있지 않은가. 그리고 여전히 넘어져서도 그대로 널브러져 있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나를 보았다. 끝없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내 안의 부정적인 자기 평가를 기어이 잠재우고 지금-여기에서 내 나름 설 수 있었던 것을 나는 감히 '기적' 이라고 말한다. 그 기적은 어떻게 왔을까? (p. 278)'

기적이 왔다면 그건 누구의 선물도 아니다.

바로 내가 만든 것이다. (p.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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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인문학 - 동물은 인간과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이강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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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인간과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인류의 역사를 바꾼 동물 이야기

인간의 역사와 인문학에 대한 책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최근엔 동물에 대한 이야기들에도 관심이 가고 있는 중이다.

생각해보면 인류 문명 발달사에서 동물이 빠져 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아니지 좀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동물에서 인간만 따로 떨어져 나와 보려 했으나 인간은 결국 동물에 범주에 들어가는 것을 감춰왔다고 해야 하려나.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인간이 더 커다란 범주 이고 그 안에서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생겼다고 해야 하려나. 여하튼, 그렇게 인간의 역사 속 조연이든 배경이든 등장했던 동물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이 책이었다.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동물의 왕국> 에서는 소, 사자, 호랑이, 표범의 생존에 대해 <2부 동물과 인간이 만든 역사> 에서는 개, 고양이, 소 등이 역사에 등장했던 장면들을 소개한다. <3부 중국사를 만든 동물 이야기> 와 <4부 세계사를 만든 동물 이야기> 에서는 인간의 역사에 동물을 연결하여 의미적으로 풀어낸다. 예를 들어 중국사에서는 돼지고기가 중요하다던가 세계사에서는 인간의 사냥욕망으로 변화된 생태계 라던가 등등

농업경제학자들은 우경의 시작과 보급을 농업 혁신의 변곡점으로 보기도 한다. 한국 고대사에서 이런 일을 한 왕은 신라의 지증왕(재위 500~514)이다. (p. 16)

수사자는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무리를 떠나야 하는 운명이고, 암사자는 평생 자신이 태어난 무리를 떠나지 않는다. (p. 38)

호랑이의 아종 중 체구가 가장 큰 것은 시베리아호랑이다. '시베리아 호랑이'라는 명칭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아무르호랑이라고 칭하는 것이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팩트 체크를 해보면 시베리아호랑이의 서식지는 시베리아가 아닌 아무르다. 아무르는 아무르강 인근을 뜻하는데,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 지역을 포괄한다. (p. 43)

[삼국지]-위지>동이전은 동예의 특산품을 몇 가지 소개한다. 탄력이 좋아 사정거리가 긴 단궁, 작은 체구의 말인 과하마, 표범 가죽인 문표가 그것이다. (p. 57) 100년 까지만 해도 산에서 표범과 조우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한반도의 많은 야생동물을 해로운 동물, 즉 해수로 규정하고 학살했다. (p. 61)

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하다보니 역사 속에서 동물들과 관련된 내용을 읽는 것은 무척 흥미로웠다. '추운 지역의 항온동물은 그렇지 않은 곳의 동종보다 체구가 크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p. 45)' 는 '베르그만의 법칙'으로 시베리아호랑이의 커다란 체구를 설명하는 부분을 읽으며 그래서 네안데르탈인이나 북유럽 게르만족들의 체구가 컸던 것일까 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하고, 지증왕이 우경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을까 동예에 그렇게나 표범이 많았다니 게다가 일제강점기때만해도 표범이 그렇게 많았다니 놀라워 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였다. 1부에서 다룬 서너종의 친근한 동물들 이야기는 더 다양한 종으로 확대되지 않고 곧 마무리 되었으며 2부부터 등장하는 역사속 동물 이야기는 그닥 새로울 것이 없었다.

대항해시대를 가능케 한 이유 중 하나가 배에 고양이를 태웠기 때문이라던가 개가 목축업에 이용되면서 인간이 고기를 자급자족 풍요롭게 먹게 되었다던가 하는 개와 고양이는 이미 너무 많이 알려지고 익숙해진 이야기들이었다. 사향소와 라쿤의 냄새는 강렬하지 않았고 호랑이와 사자의 대결은 서식지가 달라서 맞붙을 가능성이 없다로 어이없이 정리될 뿐이며 다른 동물들 몇몇은 핵심적이지 못했다. 중국사에서의 판다와 돼지 이야기는 동물 이야기 보다도 무역과 음식이라는 중국사 자체의 이야깃거리였고 '세계사를 만든 동물 이야기' 라기엔 세계사 속 동물들이 너무 엑스트라였다. 뒷부분에 가서는 멸종과 생태계 변화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드러냈지만 모피와 먹기위한 소 그리고 사냥하기 위한 맷돼지 는 생태계 문제를 심각하게 와닿게 하진 못했다.

이 책에 실린 글 대부분은 [신동아]에 연재한 글을 정리하고 다듬은 것이라고 한다. 연재됐던 글을 모은 책이 대개 그러하듯이 이 책의 글들도 중복이 잦은 편이었다. 글 마다 하나하나로서의 완전함은 있었으나 그런 글들이 모아진 것을 책으로 읽다보면 읽은 것을 또 읽는 기분이 들게 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한 잦은 중복은 등장하는 동물의 종류가 한정되어 있었기에 더욱 아쉬운 부분이었다. 동물과 역사를 연결한 인문학적 동물이야기를 기대하고 읽었지만 인문학이라는 제목을 붙이기엔 다소 제목에 대한 욕심이 과하지 않았나 싶다. 과한 포장을 걷어내고 그냥 읽으면 가볍고 재밌게 읽혀지는 동물관련 에피소드 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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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야옹 고양이 대백과 - 특별 개정판
린정이.천첸원 지음, 정세경 옮김 / 도도(도서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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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로 행복하게! 최대한 건강하게!

고양이를 가장 현실적으로 잘 키우는 방법

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원래 이렇게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것일까?!

나는 내가 살면서 동물을 키우게 될거라고는 1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찌어찌 하다보니 달팽이도 키워보고 물고기도 키워보고 고슴도치도 키웠던 경험이 있었는데;;; 지금은 고양이를 키우게 됐다. -0-

동물을 싫어한다기보다는 무서워하는 쪽에 가까운 내가 그나마 강아지보다는 고양이를 키울 엄두를 낼 수 있었던 건,

개의 경우 갑자기 달려들고 침묻히며 핥고 크게 짖고 매일 산책시켜주고 씻겨 줘야 하며 끊임없는 애정을 주어야 하는 (게다가 배변 훈련을 제대로 못 시키면 평생 아무데나 볼일을 볼 수 있다는;;;) 등 나의 성향과는 도저히 화합할 수 없는 요건들을 갖고 있지만 고양이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고양이는 알아서 배변을 가리고 주인에게 매달리지 않는 독립성에 집안에서만 생활한다.)

반려동물이 없었을 때에도 이런저런 후원을 통해 주지하고 있던 생각,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길냥이 아기 고양이 두 마리를 갑작스레 입양해오면서 동물육아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했던 나로서는 무지한 분야에 대해 평소 하던 습관대로 관련서적을 찾아본 것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이었다.

그리 많은 책을 찾아본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찾던 의도에 딱 맞는 고양이 육아 책은 없었다.

너무 에세이 적이라 실질적으로 얻을 정보가 없는 책도 너무 전문적이라 읽어도 기억하지 못할 정보가 많은 책도 나에겐 적합하지 않았다.

그나마 그 중간 즈음에 위치한 책들도 대부분 너무 고양이 질병 설명 위주였다.

물론,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 반려동물과 함께 한다는 건 건강을 책임지는 일이다. 하지만 반려동물이 평소와 다르거나 아픈 것 같으면 병원에 가면 된다. 굳이 내가 그 질병과 증상과 치료법을 알 필요는 없다. 알아봤자 직접 진단을 내리거나 약을 처방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차피 병원에서 수의사 쌤이 하라는 데로 할건데 내가 왜 굳이 그 질병들을 그토록 자세히 알아둬야 하겠는가? 그보다는 현실적으로 어떻게 키우고 케어해야 하는지 '일상적 육아법'이 더 필요했다. 연령별 먹이양 이라던가 발톱깎는 방법과 주기 라던가 고양이 몸짓의미 라던가 종류별 털관리법 이라던가 등등등

이 책은 그런 점에서 현.실.적.으.로. 유용했다.

대부분의 고양이 관련 책들은 사람 위주로 쓰여져 있는 것 같았다. 예를들어 내게 맞는 고양이를 찾는 것부터 시작하여 고양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풀어내고 고양이 질병들을 설명하곤 한다. 사람먼저 고양이가 다음이랄까. 하지만 이 책은 그보다는 고양이 중심적이다. 고양이의 신체구조적 특징부터 고양이를 어떻게 데려오는지와 그에 따른 체크사항부터 시작하여 고양이 종류와 연령별로 맞춤 정보를 제공한다. 즉 고양이에 대한 이해를 먼저 시켜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상적 케어 관련 팁과 풍부한 사진을 첨부함으로써 쉽게 읽히고 보자마자 이해가 된다. 그런다음 질병등의 건강관리 까지 다루고 있으니 그야말로 고양이 대백과라 할만 하다.

대만에서 고양이전문병원을 세운 수의사가 쓴 책이라 약간의 현실상황적 차이가 조금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크게 신경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내게 필요한 고양이 정보 책으로 지금까지 읽어 본 책 중에서는 가장 만족스러웠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고양이에 대한 A부터 Z까지 기초 정보를 알뜰하게 제공해주고 있는 이 책은 고양이와 함께 사는 내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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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문명 1~2 - 전2권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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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은 테러와 전쟁, 전염병으로 한계에 이르렀다.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건 바로 고양이 문명.

쥐 떼에게 포위당한 고양이와 인간은 살아남아서

지구상에 새로운 문명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인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는 정말 유명한 작가다. 특히나 한국에서 그의 인지도는 외국 작가들 중 절대적일 것이다. 그동안 써낸 작품들의 양도 어마어마 하다. 어떻게 그렇게 계속 꾸준하게 작품을 써낼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 유명하고 대단한 작가의 작품을 그동안 한 번도 읽지 않은 나도 참 희한하다. 읽어야지 하고 작품을 콕 집어 놓았다가 새로운 작품이 등장하면 새작품 먼저 읽어야지 또다시 콕 집어놓았다가 밀리기를 수차례... 이번 신작으로 드디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세계에 입문 하였다.

글을 읽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 바랄 게 없을 거야. 종이에 촘촘히 박혀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는 해바라기 씨만 한 글자들의 뜻을 알 수 있다면. 줄줄이 이어지는 글자들에 담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면 살맛이 나겠지. 책장을 넘기기만 해도 머릿속에 얼굴이 나타나고 한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심지어는 목소리와 음악이 들리는 마법을 경험한 인간들이 있대. 상상만 해도 온몸이 짜릿짜릿하지 않아? (p. 13)

소설의 첫 문장은 '글자의 신비' 다.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 책에 대한 애정은 그 누구보다 강할 것이다.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선호하는 나로서도 책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평이한 단어들의 특별할 것 없는 문장이었음에도 첫장부터 상상의 세계에 빠져든다. 우리는 누구나 머릿속에 모르는 얼굴이 나타나고 한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심지어는 목소리와 음악이 들리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책을 읽음으로써.

자, 지금부터 귀를 바짝 세우고 수염을 팽팽히 펼쳐. 감각을 활짝 여는 순간 너희 역시 <세상에 눈뜬> 소수의 고양이에 속하게 될 거야. 지금부터 듣게 될 이야기는 꼭 너희 새끼들과 친구들한테 전해 줘야 해. 내 이야기가 세상에서 잊히지 않게 하는 책임과 의무가 너희에게 있다는 걸 명심해. 너희는 그렇게 나를 이어 <고양이 이야기꾼>이 될 거야. 먼 훗날 너희 중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가 책으로 써서 후대에 남기게 될지도 모르지. 그런 날이 오길 우리 학수고대하면서 이 말을 가슴에 새기자. 이야기 되지 않는 모든 것은 잊힌다. (p. 14)

우리는 이 소설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순식간에 고양이가 된다. 고양이의 눈으로 보고 고양이의 방식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고양이 이야기꾼' 이 되어 고양이 '문명' 전달자가 된다. 이 책의 원제는 프랑스어로 '고양이의 여왕' 이고 그 여왕의 이름은 '바스테트' 이다. 이집트 여신이었던 바로 그 바스테트.


지금까지 일어난 기상천외한 사건들을 상세히 이야기하기 전에 나 바스테트가 누구인지부터 알려 줄게. 겉모습부터 말하자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세 살짜리 암고양이야. 하얀 털과 검은 털이 적당히 섞인 일명 젖소 무의 고양이. 콧잔등에는 하트 모양을 뒤집어 놓은 앙증맞은 점이 찍혀 있고 눈동자는 에메랄드빛이 감도는 초록색이야. 외모는 짧게만 이야기하고 성격으로 넘어갈게. 어차피 그게 나라는 존재의 핵심이니까. 내가 누구인지 정의 하려면 단점부터 얘기하는 게 좋겠어. 내 입에서 단점이라는 말이 나오니까 놀랐겠지만, 이 세상 어디에도 완전 무결한 고양이는 존재하지 않아. (p. 18)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난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리더십까지 갖췄어. 더 이상 평범한 집고양이가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세상을 설계하고 꿈꾸게 됐다는 말이야. 난 고양이라는 종의 한계, 그리고 암컷이라는 한계를 스스로 뛰어넘었어. 참, 또 한 가지 나에 대한 핵심적인 정보를 빠트렸네. 나는 오래전부터 아주 원대한 계획을 하나 가지고 있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이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만드는 것. (p. 22)

바스테트가 남긴 이야기가 구전되고 구전되어 그 후대가 기록한 책을 내가 읽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작가의 솜씨가 탁월하다. 동물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종종 그렇듯이 이 소설도 일종의 '우화' 에 가깝다. 고양이와 문명에 대한 그리고 이야기와 오만에 대한 커다란 우화.

때는 바야흐로 '대멸종'의 시기라고 부를만 하다. 폭력이 난무하던 인간들의 사회에 알수 없는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더니 수많은 목숨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파멸로 치닫는 인간들의 숫자와 달리 힘을 불려 가는 종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쥐' 였다. 엄청난 번식력으로 수를 불려가던 쥐들은 급기야 인간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뒤이어 다른 생명체들도 제압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이름이 피타고라스라고 소개한 그에게는 다른 고양이들한테 없는 신체적 특징이 하나 있었어. 바로 이마 위에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는 건데, 하도 신기해서 내가 자꾸만 쳐다보니까 피타고라스가 자신의 <제3의눈>이라면서 자세히 설명해 줬어. 인간들이 그의 뇌를 컴퓨터와 연결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USB 단자라는 건데, 그게 있으면 인간들의 정보를 한데 모아 놓은 인터넷이라는 곳에 접속할 수 있다고 했어. (p. 31)

대혼란의 시기 바스테트의 집사인 나탈리의 이웃으로 이사온 집에는 피타고라스 라는 샴고양이가 있었다. 피타고라스는 일종의 실험동물이었는데 그를 아끼게 된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데리고 나와 함께 살게 됐다고 했다. 피타고라스는 인터넷에서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자주 검색하며 풍부한 지식을 자랑하는데, 소설 사이사이 등장하는 이 백과사전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다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으로는 이 책을 찾아 읽어봐야 겠다고 결심했다.

기원후 391년,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확립한 테오도시우스1세는 교황의 요청에 따라 로마 시민들에게 고양이 소유 금지령을 내린다. 야행성에다 왕성하게 교미하는 고양이를 타락과 주술의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기독교 축일에 고양이를 학살하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신실한 기독교인들은 성 요한 축일에 고양이를 잡아 마을 중앙 광장에 설치된 대형 장작더미에 올려 불태워 죽였다. 1347년부터 1352년까지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 때, (고양이 소유가 금지되지 않았던 유일한 집단이) 유대인 공동체들은 상대적으로 병에 걸린 사람이 적었다. (p. 53) 전염병을 옮기는 쥐를 쫓아주는 고양이 덕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페스트의 감염 경로를 몰랐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희생양이 필요했던 광신주의자들의 표적이 되어 많은 수가 목숨을 잃었다. 1484년, 교황 인노첸시오8세는 고양이가 변장을 하고 지상에 내려온 악마라고 간주해 대대적인 몰살을 지시하는 칙령을 내린다. (p. 54)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잡학다식적 자료모음집 같은 책이다. 어릴때부터 이런 다양한 상식들을 메모해왔기에 지금의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소설 자체 이야기보다도 소설 사이사이 등장하는 이 역사상식들이 더 재미있었고 작가가 더 대단해 보였다.

"이제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어. 당장 이 섬을 나가야 해." (p. 47)

"설마 쥐가 세상의 주인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p. 64)

파리의 아파트에서 시뉴섬으로 시뉴섬에서 다시 시테섬으로 쥐군단을 피해 소수의 인간과 고양이가 모인 공동체는 피신을 하고 생존을 위해 싸워나간다. 피타고라스에게 있는 제3의눈에 장치를 연결해서 인간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이후로 바스테트는 고양이와 인간 모두를 리드하려 한다. 그러다 쥐군단의 대장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데, 쥐군단을 이끄는 작은 흰쥐는 엄청난 지략가였고 스스로를 티무르왕이라 칭했다. 그리고 이 흰쥐에게도 제3의눈이 있었다.

강의를 경청하던 피타고라스가 한니발의 무슬을 <캣권도>라고 부르면 어떠냐고 말한다. 고양이들의 무술. (p. 97)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고양이들의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내고 싶었던 바스테트의 이야기를 읽던 도중 '캣권도' 라는 단어가 나와서 미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인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열광하고 작가 또한 그 성원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표현해 주니 이 얼마나 반가운가 ㅎㅎ

"난 투표가 꼭 최선의 선택을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투표를 거치면 어정쩡한 합의에 도달할 뿐이죠. 난 투표보다는 계몽된 독재를 선호해요. 물론 계몽은 내가 해요. 여러분은 내 말을 경청하고, 그 말에 따르기만 하면 돼요. 실패해도 책임은 오롯이 내가 져요. 반대로 성공한다면, 내가 옳았고 반대자들은 틀렸다는 걸 한번 더 힙증해 보이는 셈이죠" 다들 어이없어 하면서도 확신에 찬 내게 차마 반기를 들지는 못한다. (p. 135)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이 난무하는 이 소설 속에서 동물들의 대부분의 행동은 역사속에서 인간들이 보여왔던 행태와 굉장히 흡사하다. 그래서 더 웃프기도 하고 그래서 더 고양이화 되어가기도 한다. 어쨌든 소설이니만큼 가볍고 발랄하게 읽히는 장점이 큰 작품이다.

"네 집사가 <너희 고양이들>이 인간 문명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개념이 필요하대"

"첫째, 사랑. 둘째, 유머, 셋째, 예술" (p. 151)

"네가 진정으로 인간 문명을 계승할 고양이 문명을 확립하고 싶다면 예술의 위력을 깨달아 그것을 강력한 무기로 삼아야 한대. 어떤 종이 세상을 지배하는 방법은 그 종이 가진 힘이나 지능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뛰어넘으면서 미를 창조하는 능력이라고, 이 점을 강조해 달래" (p. 153)

<제3의눈>이 피타고라스에게만 있었을 때 바스테트는 더 크고 너 넓게 고양이 문명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그러다 한참 후에 (어찌보면 점점 문명화되어 간 후에) 바스테트는 자신의 무지를 깨닫게 된다. 여하튼, 소설을 읽는 동안 <피티아가 점지한> 이라는 뜻의 이름이 피타고라스 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듯이 '문명' 의 개념에 대해 새삼 느끼게 되는 바가 많다.

다시 스토리속으로 돌아가 보면, 쥐들과 대적하기 위해 산전수전 공중전 수중전을 거친 끝에 바스테트는 과학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가 금고를 열더니 내 혓바닥에 올라갈 만한 크기의 USB 메모리를 꺼내 보여 준다. 짙은 파란색 바탕에 하얀 별이 그려져 있다. 나는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이게 인간 지식 전부라고?" (p. 308)

영화 <루시> 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속 우주의 지식를 모두 담은 USB 와 소설 속 인간의 지식을 모두 담은 USB 는 결국 누구에게도 지혜가 되지 못한것 같아서 씁쓸해지기도 하고...

과학자들을 통해 다른 실험동물들의 존재를 알게 된 바스테트는 자신도 <제3의 눈> 을 갖기로 결심한다. 여기까지가 1권이다.


나는 그동안 아들 안젤로에게 <진실은 관점의 문제일 뿐>이라고, 내 철학적 좌표나 다름없는 이 말을 수없이 해줬다. 하나의 진실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왔다. 사물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적응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진실을 고정불변으로 여겨선 안 된다고, 그래야 정신에 숨통이 트인다고. (p. 74)

고양이 vs 쥐 의 대결구도였던 1권에서 더 나아가 2권에서는 인간 VS 동물 로 범위가 확장된다. 동물들의 성토를 들으며 재판에서 유죄를 받는 인간들은 무력하지만 '쥐'라는 절대악은 결국 새로운 연대를 만들어나가게 한다. 그러는 동안 바스테트는 자신을 '새로운 문명의 도래를 준비하는 고양이 폐하'로 여기게 되고 유머와 예술과 그리고 사랑을 깨달아가게 된다.

변태들이 도덕을 운운하고, 겁쟁이들이 비겁함을 지적하며, 거짓말쟁이들이 진정성을 추앙하지. 우리는 그야말로 역설이 판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쥐 선생, 당신 약점을 알려줘서 고마워. 그건 바로 오만함이지. (p. 207)

휘브리스, 오만함! 바스테트가 써나가는 <묘류의 신화>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고대의 진리. 이와는 또다른 고대의 진리를 체득하게 된 계기는 바스테트가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집트 여신 바스테트를 만나고 나서였다.

"네가 존재하는 이유를 깨달았으면 하찮은 고민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네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렴. 너를, 그리고 나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 작품을 쓰기 시작하거라. 그래야 고양이 문명이 존재할 수 있어. 모름지기 세상 모든 문명의 중심에는 책이 하나씩 있지. <오디세이> <성경> <바가바드기타> <포폴 부> <자본론> 과 <마오쩌둥 어록> 이런 책은 수많은 인간에게 영향력을 끼쳤지! 이제 네가 우리 고양이들의 가치를 이야기에 새길 차례야. 책 제목은 <내일은 고양이> 가 어떨까" (주석-베르베르의 소설 <고양이>의 원제가 <내일은 고양이> 이다.) (p. 238)

이런 위트라니! ㅍㅎㅎㅎ

아무래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고양이> 도 읽어봐야 겠다. 어쩌면 <문명> 이 작품은 <고양이>의 속편 격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여하튼, 소설 <문명> 이 책으로 쓰여진 데에는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나한테 책을 쓰라고 했지? 아무리 내 과거 환생의 명령이라도 호락호락 시키는 대로 할 필요는 없지. <내일은 고양이>? 좋아, 다 좋지만 당장 <오늘은 쥐> 해결이 급선무야. 쥐들에게 잡혀 죽으면 글이고 책이고 여왕이고 아무 소용 없으니까. (p. 244)

이런저런 책략에도 쥐군단은 끄떡없이 세를 불려가고 바스테트의 공동체는 쪼그라들어가는 상황에서 과연 누가 남게 될 것인가?

누구의 문명이 남게 될지는 책<문명>으로 확인해 봐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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