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문명 1~2 - 전2권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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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은 테러와 전쟁, 전염병으로 한계에 이르렀다.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건 바로 고양이 문명.

쥐 떼에게 포위당한 고양이와 인간은 살아남아서

지구상에 새로운 문명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인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는 정말 유명한 작가다. 특히나 한국에서 그의 인지도는 외국 작가들 중 절대적일 것이다. 그동안 써낸 작품들의 양도 어마어마 하다. 어떻게 그렇게 계속 꾸준하게 작품을 써낼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 유명하고 대단한 작가의 작품을 그동안 한 번도 읽지 않은 나도 참 희한하다. 읽어야지 하고 작품을 콕 집어 놓았다가 새로운 작품이 등장하면 새작품 먼저 읽어야지 또다시 콕 집어놓았다가 밀리기를 수차례... 이번 신작으로 드디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세계에 입문 하였다.

글을 읽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 바랄 게 없을 거야. 종이에 촘촘히 박혀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는 해바라기 씨만 한 글자들의 뜻을 알 수 있다면. 줄줄이 이어지는 글자들에 담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면 살맛이 나겠지. 책장을 넘기기만 해도 머릿속에 얼굴이 나타나고 한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심지어는 목소리와 음악이 들리는 마법을 경험한 인간들이 있대. 상상만 해도 온몸이 짜릿짜릿하지 않아? (p. 13)

소설의 첫 문장은 '글자의 신비' 다.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 책에 대한 애정은 그 누구보다 강할 것이다.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선호하는 나로서도 책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평이한 단어들의 특별할 것 없는 문장이었음에도 첫장부터 상상의 세계에 빠져든다. 우리는 누구나 머릿속에 모르는 얼굴이 나타나고 한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심지어는 목소리와 음악이 들리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책을 읽음으로써.

자, 지금부터 귀를 바짝 세우고 수염을 팽팽히 펼쳐. 감각을 활짝 여는 순간 너희 역시 <세상에 눈뜬> 소수의 고양이에 속하게 될 거야. 지금부터 듣게 될 이야기는 꼭 너희 새끼들과 친구들한테 전해 줘야 해. 내 이야기가 세상에서 잊히지 않게 하는 책임과 의무가 너희에게 있다는 걸 명심해. 너희는 그렇게 나를 이어 <고양이 이야기꾼>이 될 거야. 먼 훗날 너희 중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가 책으로 써서 후대에 남기게 될지도 모르지. 그런 날이 오길 우리 학수고대하면서 이 말을 가슴에 새기자. 이야기 되지 않는 모든 것은 잊힌다. (p. 14)

우리는 이 소설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순식간에 고양이가 된다. 고양이의 눈으로 보고 고양이의 방식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고양이 이야기꾼' 이 되어 고양이 '문명' 전달자가 된다. 이 책의 원제는 프랑스어로 '고양이의 여왕' 이고 그 여왕의 이름은 '바스테트' 이다. 이집트 여신이었던 바로 그 바스테트.


지금까지 일어난 기상천외한 사건들을 상세히 이야기하기 전에 나 바스테트가 누구인지부터 알려 줄게. 겉모습부터 말하자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세 살짜리 암고양이야. 하얀 털과 검은 털이 적당히 섞인 일명 젖소 무의 고양이. 콧잔등에는 하트 모양을 뒤집어 놓은 앙증맞은 점이 찍혀 있고 눈동자는 에메랄드빛이 감도는 초록색이야. 외모는 짧게만 이야기하고 성격으로 넘어갈게. 어차피 그게 나라는 존재의 핵심이니까. 내가 누구인지 정의 하려면 단점부터 얘기하는 게 좋겠어. 내 입에서 단점이라는 말이 나오니까 놀랐겠지만, 이 세상 어디에도 완전 무결한 고양이는 존재하지 않아. (p. 18)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난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리더십까지 갖췄어. 더 이상 평범한 집고양이가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세상을 설계하고 꿈꾸게 됐다는 말이야. 난 고양이라는 종의 한계, 그리고 암컷이라는 한계를 스스로 뛰어넘었어. 참, 또 한 가지 나에 대한 핵심적인 정보를 빠트렸네. 나는 오래전부터 아주 원대한 계획을 하나 가지고 있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이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만드는 것. (p. 22)

바스테트가 남긴 이야기가 구전되고 구전되어 그 후대가 기록한 책을 내가 읽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작가의 솜씨가 탁월하다. 동물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종종 그렇듯이 이 소설도 일종의 '우화' 에 가깝다. 고양이와 문명에 대한 그리고 이야기와 오만에 대한 커다란 우화.

때는 바야흐로 '대멸종'의 시기라고 부를만 하다. 폭력이 난무하던 인간들의 사회에 알수 없는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더니 수많은 목숨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파멸로 치닫는 인간들의 숫자와 달리 힘을 불려 가는 종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쥐' 였다. 엄청난 번식력으로 수를 불려가던 쥐들은 급기야 인간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뒤이어 다른 생명체들도 제압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이름이 피타고라스라고 소개한 그에게는 다른 고양이들한테 없는 신체적 특징이 하나 있었어. 바로 이마 위에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는 건데, 하도 신기해서 내가 자꾸만 쳐다보니까 피타고라스가 자신의 <제3의눈>이라면서 자세히 설명해 줬어. 인간들이 그의 뇌를 컴퓨터와 연결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USB 단자라는 건데, 그게 있으면 인간들의 정보를 한데 모아 놓은 인터넷이라는 곳에 접속할 수 있다고 했어. (p. 31)

대혼란의 시기 바스테트의 집사인 나탈리의 이웃으로 이사온 집에는 피타고라스 라는 샴고양이가 있었다. 피타고라스는 일종의 실험동물이었는데 그를 아끼게 된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데리고 나와 함께 살게 됐다고 했다. 피타고라스는 인터넷에서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자주 검색하며 풍부한 지식을 자랑하는데, 소설 사이사이 등장하는 이 백과사전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다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으로는 이 책을 찾아 읽어봐야 겠다고 결심했다.

기원후 391년,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확립한 테오도시우스1세는 교황의 요청에 따라 로마 시민들에게 고양이 소유 금지령을 내린다. 야행성에다 왕성하게 교미하는 고양이를 타락과 주술의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기독교 축일에 고양이를 학살하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신실한 기독교인들은 성 요한 축일에 고양이를 잡아 마을 중앙 광장에 설치된 대형 장작더미에 올려 불태워 죽였다. 1347년부터 1352년까지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 때, (고양이 소유가 금지되지 않았던 유일한 집단이) 유대인 공동체들은 상대적으로 병에 걸린 사람이 적었다. (p. 53) 전염병을 옮기는 쥐를 쫓아주는 고양이 덕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페스트의 감염 경로를 몰랐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희생양이 필요했던 광신주의자들의 표적이 되어 많은 수가 목숨을 잃었다. 1484년, 교황 인노첸시오8세는 고양이가 변장을 하고 지상에 내려온 악마라고 간주해 대대적인 몰살을 지시하는 칙령을 내린다. (p. 54)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잡학다식적 자료모음집 같은 책이다. 어릴때부터 이런 다양한 상식들을 메모해왔기에 지금의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소설 자체 이야기보다도 소설 사이사이 등장하는 이 역사상식들이 더 재미있었고 작가가 더 대단해 보였다.

"이제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어. 당장 이 섬을 나가야 해." (p. 47)

"설마 쥐가 세상의 주인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p. 64)

파리의 아파트에서 시뉴섬으로 시뉴섬에서 다시 시테섬으로 쥐군단을 피해 소수의 인간과 고양이가 모인 공동체는 피신을 하고 생존을 위해 싸워나간다. 피타고라스에게 있는 제3의눈에 장치를 연결해서 인간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이후로 바스테트는 고양이와 인간 모두를 리드하려 한다. 그러다 쥐군단의 대장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데, 쥐군단을 이끄는 작은 흰쥐는 엄청난 지략가였고 스스로를 티무르왕이라 칭했다. 그리고 이 흰쥐에게도 제3의눈이 있었다.

강의를 경청하던 피타고라스가 한니발의 무슬을 <캣권도>라고 부르면 어떠냐고 말한다. 고양이들의 무술. (p. 97)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고양이들의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내고 싶었던 바스테트의 이야기를 읽던 도중 '캣권도' 라는 단어가 나와서 미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인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열광하고 작가 또한 그 성원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표현해 주니 이 얼마나 반가운가 ㅎㅎ

"난 투표가 꼭 최선의 선택을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투표를 거치면 어정쩡한 합의에 도달할 뿐이죠. 난 투표보다는 계몽된 독재를 선호해요. 물론 계몽은 내가 해요. 여러분은 내 말을 경청하고, 그 말에 따르기만 하면 돼요. 실패해도 책임은 오롯이 내가 져요. 반대로 성공한다면, 내가 옳았고 반대자들은 틀렸다는 걸 한번 더 힙증해 보이는 셈이죠" 다들 어이없어 하면서도 확신에 찬 내게 차마 반기를 들지는 못한다. (p. 135)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이 난무하는 이 소설 속에서 동물들의 대부분의 행동은 역사속에서 인간들이 보여왔던 행태와 굉장히 흡사하다. 그래서 더 웃프기도 하고 그래서 더 고양이화 되어가기도 한다. 어쨌든 소설이니만큼 가볍고 발랄하게 읽히는 장점이 큰 작품이다.

"네 집사가 <너희 고양이들>이 인간 문명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개념이 필요하대"

"첫째, 사랑. 둘째, 유머, 셋째, 예술" (p. 151)

"네가 진정으로 인간 문명을 계승할 고양이 문명을 확립하고 싶다면 예술의 위력을 깨달아 그것을 강력한 무기로 삼아야 한대. 어떤 종이 세상을 지배하는 방법은 그 종이 가진 힘이나 지능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뛰어넘으면서 미를 창조하는 능력이라고, 이 점을 강조해 달래" (p. 153)

<제3의눈>이 피타고라스에게만 있었을 때 바스테트는 더 크고 너 넓게 고양이 문명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그러다 한참 후에 (어찌보면 점점 문명화되어 간 후에) 바스테트는 자신의 무지를 깨닫게 된다. 여하튼, 소설을 읽는 동안 <피티아가 점지한> 이라는 뜻의 이름이 피타고라스 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듯이 '문명' 의 개념에 대해 새삼 느끼게 되는 바가 많다.

다시 스토리속으로 돌아가 보면, 쥐들과 대적하기 위해 산전수전 공중전 수중전을 거친 끝에 바스테트는 과학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가 금고를 열더니 내 혓바닥에 올라갈 만한 크기의 USB 메모리를 꺼내 보여 준다. 짙은 파란색 바탕에 하얀 별이 그려져 있다. 나는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이게 인간 지식 전부라고?" (p. 308)

영화 <루시> 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속 우주의 지식를 모두 담은 USB 와 소설 속 인간의 지식을 모두 담은 USB 는 결국 누구에게도 지혜가 되지 못한것 같아서 씁쓸해지기도 하고...

과학자들을 통해 다른 실험동물들의 존재를 알게 된 바스테트는 자신도 <제3의 눈> 을 갖기로 결심한다. 여기까지가 1권이다.


나는 그동안 아들 안젤로에게 <진실은 관점의 문제일 뿐>이라고, 내 철학적 좌표나 다름없는 이 말을 수없이 해줬다. 하나의 진실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왔다. 사물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적응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진실을 고정불변으로 여겨선 안 된다고, 그래야 정신에 숨통이 트인다고. (p. 74)

고양이 vs 쥐 의 대결구도였던 1권에서 더 나아가 2권에서는 인간 VS 동물 로 범위가 확장된다. 동물들의 성토를 들으며 재판에서 유죄를 받는 인간들은 무력하지만 '쥐'라는 절대악은 결국 새로운 연대를 만들어나가게 한다. 그러는 동안 바스테트는 자신을 '새로운 문명의 도래를 준비하는 고양이 폐하'로 여기게 되고 유머와 예술과 그리고 사랑을 깨달아가게 된다.

변태들이 도덕을 운운하고, 겁쟁이들이 비겁함을 지적하며, 거짓말쟁이들이 진정성을 추앙하지. 우리는 그야말로 역설이 판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쥐 선생, 당신 약점을 알려줘서 고마워. 그건 바로 오만함이지. (p. 207)

휘브리스, 오만함! 바스테트가 써나가는 <묘류의 신화>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고대의 진리. 이와는 또다른 고대의 진리를 체득하게 된 계기는 바스테트가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집트 여신 바스테트를 만나고 나서였다.

"네가 존재하는 이유를 깨달았으면 하찮은 고민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네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렴. 너를, 그리고 나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 작품을 쓰기 시작하거라. 그래야 고양이 문명이 존재할 수 있어. 모름지기 세상 모든 문명의 중심에는 책이 하나씩 있지. <오디세이> <성경> <바가바드기타> <포폴 부> <자본론> 과 <마오쩌둥 어록> 이런 책은 수많은 인간에게 영향력을 끼쳤지! 이제 네가 우리 고양이들의 가치를 이야기에 새길 차례야. 책 제목은 <내일은 고양이> 가 어떨까" (주석-베르베르의 소설 <고양이>의 원제가 <내일은 고양이> 이다.) (p. 238)

이런 위트라니! ㅍㅎㅎㅎ

아무래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고양이> 도 읽어봐야 겠다. 어쩌면 <문명> 이 작품은 <고양이>의 속편 격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여하튼, 소설 <문명> 이 책으로 쓰여진 데에는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나한테 책을 쓰라고 했지? 아무리 내 과거 환생의 명령이라도 호락호락 시키는 대로 할 필요는 없지. <내일은 고양이>? 좋아, 다 좋지만 당장 <오늘은 쥐> 해결이 급선무야. 쥐들에게 잡혀 죽으면 글이고 책이고 여왕이고 아무 소용 없으니까. (p. 244)

이런저런 책략에도 쥐군단은 끄떡없이 세를 불려가고 바스테트의 공동체는 쪼그라들어가는 상황에서 과연 누가 남게 될 것인가?

누구의 문명이 남게 될지는 책<문명>으로 확인해 봐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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