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야기를 먹어 줄게 - 고민 상담부 나의 괴물님 YA! 1
명소정 지음 / 이지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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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십 대, 너만을 위한 감성 판타지

"지우고 싶은 기억들, 내가 다 먹어 줄게"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이 모인 기숙학교가 있다. 아무리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라 해도 사람이 모이면 관계가 생기기 마련이고 관계가 생기면 갈등도 생기기 마련이다. 성적, 연애, 진로, 가족, 친구... 그런 고민거리들을 괴로운 기억들을 누군가 사라지게 해준다면?

"나는 화괴야. 이야기를 먹고 사는 괴물이지. 먹은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잊힌다는 게 흠이지만" (p. 16)

이세월이라는 소녀가 있다. 관계에 서툰 세월이는 갑자기 그만둔 사서선생님을 대신해 이용자가 적은 도서관 관리를 맡게 됐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인가 자꾸 책이 사라져서 고민중이었는데 그 원인인 대상을 만나게 된다. 괴물의 모습에서 점차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눈앞에 서있는 그녀석을. 임혜성.

"나는 사람의 허락을 받아야만 이야기를 먹을 수 있어. 내가 설마 책만 먹으면서 지금까지 살아왔겠어? 세상에는 자신의 나쁜 기억을 잊어버리길 원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고"

"그러니까, 앞으로 책을 먹지 않을 테니 기억을 지우려 하는 사람들을 찾아달라 이거지?"

"찾아줄 필요 없이, 기억을 지우고 싶은 사람이 알아서 우리한테 오게 하면 되지" (p. 17, 18, 19 일부발췌)

전교1등 모범생인줄로만 알았던 임혜성이 화괴였다니. 하지만 세월이는 그닥 놀라지도 않았고 달아나지도 않았고 그저 도서관 책을 더이상 먹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리하여 탄생하게 된 '고민 상담부' 실상은 '나의 괴물님'

사람의 기억을 지운다는 게 그리 좋기만 한 일은 아니지만, 만약 그런 게 필요한 학생이 있다면 화괴는 이 학교에서 학생들과 공존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괴물이 인간과 함께 살았던 옛이야기 속 세상처럼. 화괴가 인간에게 도움이 되고 인간의 이야기가 화괴에게 도움이 되는 그 시절처럼. 적어도 그 당시의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p. 28)

시작은 쉬웠다. 사람의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세월이는 다른이의 고민에 대해 그 깊이에 대해 미리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말로 고민을 상담하러 오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월이도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나는 그때 함부로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p. 44)' 는 것을.

갑작스레 들이닥쳐 화괴를 알아보고 부적을 던지며 세월이를 보호하려는 소원의 등장으로 고민상담부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사람의 일은 사람끼리 해결해야 해. 괴물의 힘으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네가 근본적으로 착각하고 있는게 있는데, 사람의 이야기를 먹는 건 그 사람 허락만 받는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야"

"그럼 누구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당연히 기억의 또다른 주인들이지. 이야기는 혼자서 만들 수있는게 아니야. 물론 종종 예외도 있지만, 보통은 둘 이상의 사람이 만났을 때 만들어지는 게 이야기라고. 그런데 다른 등장인물은 신경 쓰지도 않고 한 명의 기억을 갑자기 지워 버리면 어떻게 되겠어?" (p. 97)

겉으론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조금 알고 나면 다들 한가득 고민거리를 품고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질풍노도의 시기 청소년들은 그 속이 얼마나 시끄럽겠는가. 세월이는 소원과 혜성이 함께하는 고민상담부를 운영하며 다른 이들의 고민을 들음으로써 그리고 그 해결과정을 지켜봄으로써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되짚어보게 된다. 누구보다 평온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쓰라린 아픔을 주는 그 이야기를...

학생들은 어떤 고민거리를 안고 상담부를 찾아왔을까?

퇴마사 소원과 화괴 혜성 그리고 무감한 세월이는 그들에게 어떤 해결방안을 내놓을까?

무엇보다 세월이의 감정변화는 그동안 괴로웠던 세월이만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게 할까?

단순하게 고민을 먹고 기억을 먹어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이 소설은 십대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지만 대학생인 저자의 풋풋함이 그대로 담겨있는 소설이기도 했다. 십대의 고민을 이십대 초반의 사고방식으로 풀어나가면서 감성적 판타지를 표방한 이 작품이 누군가에겐 훌륭한 먹잇감이 되지 않을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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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이상하든
김희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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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상하게 살아도 괜찮을까?

어제가 괴로워도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꿈꾸는,

쉼 없이 생동하는 삶의 이야기

이상하다는게 무엇인지 갈수록 낯설어지는 시대가 요즘이 아닐까 싶다. 세상에 이상한게 너무 많아져서 도대체 이상하지 않은 게 무엇인지 골라낼 수 없어진 것 같은 세상이랄까. 정상이냐 비정이냐하고는 또 다른 문제다. 이상하다 이상하지 않다라는 것은. 하지만 어찌보면 비슷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상하다 이상하지 않다라는 것은. 그러나 이상하면 또 어떻단 말인가? 이상하면 안되나? 괜찮다괜찮다 다 괜찮다고. 이상해도 안이상해도 다 괜찮다고. 그런 세상이다. 요즘은.

창문 모양을 한 햇빛 그림자가 발끝에 닿았다. 늦은 아침이면 내 방에 소리 없이 스며드는 하얀 그림자. 직사각형 모양의 그것은 계절과 시간에 다라 길어졌다가 짧아졌다. 마름모꼴로 비틀어지기도 하고 막대 모양으로 가늘어지기도 했다. 그러다 오후가 되면 조금씩 멀어지다가 창문 밖으로 사라졌다. 언제나 나타남은 은근하고 사라짐은 고요했다. 나는 저 햇빛 그림자의 허락 없는 방문을 좋아했다. (p. 9)

아무 의미 없이 읽었던 첫 문장도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다시 읽으면 그 느낌이 새롭다는 게 참 신기할때가 있다. 이 작품의 첫 문장도 그러했다. 아무렇지 않은 일상적 표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소설을 다 읽고 주인공의 마음을 공감하고 난 후 다시 읽으니 특별하게 다가왔다.

세상 공평하게 내리쬐는 햇빛도 창문 크기만큼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세상 환하고 밝은 햇빛도 빛이 아니라 하얀 그림자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 그 은근하고 고요하며 규칙적인, 딱 창문만큼의 환함만으로도 감사한 그런 사람이.

나는 그날 이후 내가 정한 어떤 질서 안에서만 안정과 안도를 느꼈다. 정해진 테두리를 벗어나면 뭔가 께름칙하고 불안해졌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거야! 라는 강박적 사고와 불길한 암시가 따라다니는 것이다. 그런데 정해진 테두리라니? 무슨 운명처럼 거기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고 만다. 그것은 내 이름이기 전에, 한없이 그리워지는 누군가의 이름이기도 했다. 타인에게 이름이 불릴 때마다 그 누군가를 떠올려야 해서일까. 이제 내 이름은 가혹한 무엇이 된 것만 같았다. (p. 10)

정해진. 강박증에 시달리는 정해진은 사소한 것이라도 정해진 테두리를 벗어나면 불안을 느낀다.

그날 그 사고 이후 학교를 자퇴하고 맞이한 스무살 인생은 여전히 정해진 것 없는 삶이었다. 음악을 만들고 편의점 알바를 하고 스스로 정해놓은 강박들을 꼼꼼이 지키며 보내는 지금의 이 시간들이 무엇이 될지 아무것도 알수 없는 그런 나날들이었다.

집집의 담장 너머로 봄이 피어났다. 4월의 시작이었다. 거짓말로 시작하는 달이지만 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거짓말 같은 짓을 종종 벌일 뿐이다. 그게 봄이 가진 반전이고 의외성이었다. 봄의 흔하디흔한 장난인 것이다. (p. 15)

4월은 삭막한 겨울을 완전히 끝낸 그 찬란함으로 더더욱 잔인하게 되새겨지는 달이다. 왜 4월엔 유독 그런 상반되는 수식어들이 많을까...

분명한건 우리 모두에게 잊혀지기 힘들 4월의 그 바다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해진이 일하는 '불면증'이라는 간판을 단 편의점 사장아저씨도 그 바다에서 개인잠수사로 봉사했던 그 시간들로 인해 지금도 여전히 불면증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바다 밑 죽음이 사장에게 불면증을 남겼다면 보도 위 죽음은 나에게 강박증을 남겼다. 그러니까 사장과 나는 그 처참한 봄날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p. 83)' 그러나 봄의 흔하디흔한 장난?!이 시작된다.

"그럼 당신이 제 이름 좀 지어줄래요?"

"네? 제가요? 제가 왜..."

"당신이 저의 첫 번째 타인이자 나를 인식한 객체니까요. 그리고 앞으로 제 이름은 그쪽이 불러줄 테니까 누구보다 당신이 부르기 편해야 하잖아요?" (p. 88)

해진은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주변의 이웃들을 알게 된다.

특이한 자신의 조건을 맞춰 알바채용을 해준 사장님부터, 한국에 여행을 왔는데 급작스런 공황발작으로 비행기를 타지 못해 7년째 한국에 머물고 있는 영국 청년 마크, 4살때 부모님을 잠시 잃어버렸다가 동네 우체통 번호를 기억하고 있는 덕에 부모님을 되찾은 추억으로 인해 편지를 쓰는 것으로 우체통을 지키고자 하는 8살 김다름, 편의점 파라솔에서 카프리 맥주와 담배를 즐기는 팔순 넘은 독신녀 꽃순이 할매, 편의점 코앞에 있는 오피스텔에 살면서 배달을 시키고 백개가 넘는 시계 초침 소리를 들어야만 이명이 들리지 않는다는 게으른 극작가 백수진, 그리고 갑자기 뛰어든 배우지망생 친구 안승리.

하긴, 좌절에 지치지 않을 사람이 세상에 어딨겠는가. 생각해보면 "그 나이는 모두 그럴 나이야" 라는 말처럼 부당하고 폭력적인 건 없었다. 왜 모든 실패와 좌절은 우리 차지가 돼야 하는지 모르겠다. 실패란 녀석은 젊음과 청춘을 너무 호구로 보는 게 문제였다. (p. 155)

해진의 엄마는 만두가게를 하고 해진의 아빠는 초밥가게를 한다. 팔다가 남은 것들을 집으로 가져오는데 해진의 두 언니들은 쳐다보지도 않기에 늘 막내 해진이 그나마라도 먹어치우곤 했다. 그러다 승리가 비어있던 방에 비밀스레 살게되면서 그 만두와 초밥들을 걸신들린 듯 먹게 되는데 만초라는 별명을 가졌던 해진에게 승리는 여러모로 기막힌 친구였다. 하지만 진짜 만초는 해진 앞에 갑자기 나타난 시커면 그림자같은 존재였다. 해진은 그에게 김만초 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나는 모든 관계까 두렵기만 했다. 나와 맺어진 인연 하나하나가 나중에는 모두 슬픔이 되고 상실이 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나 역시 다른 누군가의 슬픔이 되고 상실이 될 거라는 절망에 이르자 모든 관계까 유예된 비극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나는 잘 알고 있다. 우리 모두는 애초에 서로가 서로에게 상실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는 걸. (p. 201)

해진에겐 그랬다. 삶이 곧 상실로 가는 길이었기에 모든 시간들이 상처가 될지도 몰라서 움츠러 들었다. 맨홀을 밟지 않고 세수할땐 수를 세어가며 씻고 계단을 밝을땐 가장자리만 디디며 아침저녁으로 인형에게 인사해야하는 루틴들이 그저 지나쳐왔던길도 느낌이 이상하면 몇번이고 되돌아 왔다갔다하며 안심이 될때까지 돌고돌아야 하는 강박들이 해진을 지탱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삶을 알게 되고 보게 되면서 해진은 조금씩 조였던 마음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그러다 생각하게 됐어요. 나는 대체 어디서 온 걸까. 내 시작은 어디였을까..."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던지고 보니 그는 자기에게도 죽음이란 게 있다면 그건 어떤 형태이고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졌다고 했다. 옅어지고 희미해지는 것을 내버려두면 그게 자기한테는 정말 죽음이 되긴 하는 건지. 그리고 자기와 같은 물성을 가진 존재는 이 세상에 자기 하나뿐인건지, 혹시 자기가 사는 세상이 따로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의문은 또 다른 의문으로 번져갔다고 했다. (p. 253)

그림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김만초씨는 해진과 만나고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해진이 그에겐 첫 사람이었고 해진에겐 그가 첫 이상한 존재였다. 하지만 '달라도 이상하지는 않게'(p. 254)' 살아가고 싶다는 만초씨의 꿈을 들으며 해진도 조금씩 나아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야, 근데 넌 어렸을 때 몇살쯤이면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어?"

"어, 어른? 글쎄, 한 스물넷? 대학졸업하면?"

"나는 스물. 진짜 한심하게도 난 그나이가 되면 자동으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p. 268)

어른이 되는 나이는 몇살일까? 그런 나이가 있기는 할까? 스무살이 되는 자정이 되면 주민증을 내세우며 호프집문을 열고 들어가겠다는 계획으로 어른이 되는 것일까? 나도 어렸을 땐 그랬다. 나이만 먹으면 어른이 되는 건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란 것을 정작 어른이 되고나서야 알았다.

예상했던 대로 식탁에 둘러앉은 식구들의 눈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아니, 내가 아닌 내 옆에 서 있는 그를 향했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저건 뭐지?' 였다. 엄마와 아빠의 찌푸려진 미간이 보였고, 계속해서 눈을 비벼대는 승리가 보였다. 작은언니는 커다래진 눈으로 나와 만초씨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런데 반응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이번에도 가장 먼저 엄마가 물었다. "저 희멀건 놈은 누구냐?" 이번엔 아빠가 말했다. "희멀겋긴? 내 눈엔 뭔가 환해졌다 어두워져다 하는구만" 큰언니 눈에는 아예 안 보이는 모양이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큰언니가 고개를 사방으로 돌리더니 "뭐가 있어?"라고 묻기를 반복했다. 그러자 작은언니가 왜 그러냐는 투로 끼어들었다. "못난이 옆에 먹구름 같은 사람이 서 있는데?" 이번엔 승리 차례였다. "네, 제 눈에도 보여요. 잘생긴 남자 그림자 같아요. 아주 까만" 나는 일단 두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개할게, 내 친구 김만초씨야" (p. 282, 283 일부 발췌)

해진은 그림자 김만초씨 덕분에 시간의 그림자 속에서 햇빛의 그림자 속에서 한발짝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아마도 이제 해진은 창문만큼의 햇빛이 아니라 온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햇빛을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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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부부 오늘은 또 어디 감수광 - 제주에서 찾은 행복
루씨쏜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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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찾은 행복

그림이 예뻐서 눈길이 가던 책이었다. 게다가 그 예쁜 그림의 장소가 제주도였다. 제주는 언제나 옳다...

동양화를 전공하고 호주에서 유학한 후 제주에 정착한 루씨쏜 이라는 작가를 이번에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평생의 반려자를 어떻게 만나 어떤 시간을 함께 해왔는지를 담은 이 에세이는 그러니까 일종의 사랑의 세레나데다.

고향도 아니고 인연도 없는데 해외이민의 삶을 정리하고 제주에 정착하게 된 이 에세이는 그러니까 일종의 정착 도전기이다.

화가가 꿈이었으나 결혼과 출산 등으로 줄어들어다가 미루었다가 접어두었다가 다시 활짝 펼치고 개인 아뜰리에까지 갖게된 이야기를 담은 이 에세이는 그러니까 일종의 꿈의 실현기이다. (무엇보다도 한달살이 두달살이도 큰맘먹고 해야 하는 모두의 로망 제주살이를 정착으로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가장 꿈의 실현기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지 ^^)

사랑을 만나고 꿈을 이루고 원하던 곳에 정착을 했으니 행복하지 않을리 없다. 그러니 이 책의 소제목이 '제주에서 찾은 행복'이 되었으리라.

사실 나는 그림이 궁금해서 본 책이었다.

그래서 다행히도 한페이지 가득 채워진 그림들이 보기 좋았다.

하지만 이 화려하고 다감한 색채의 향연 같은 그림들이 한지에 채색한 한국화라니 실물이 더없이 궁금해졌다.

흰색 종이에 먹색 선들로 여백의 미 만 있는 줄 알았던 동양화가 이렇게 파스텔톤으로 핑크핑크하게 가득 채색될 수 있다니 놀라우면서도 하얀색 바탕에 먹으로만 그린 저자의 그림은 어떨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여하튼, 여러모로 부럽고 또 부러운 제주살이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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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고전의 세계 리커버
장 자크 루소 지음, 황성원.고봉만 옮김 / 책세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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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말해두자면, 이 책은 <에밀>의 전편을 담고 있지 않다. 문고판으로 머리말과 1장만 가볍게 묶은 책이다.

<에밀 또는 교육론>은 장 자크 루소(1712~1778)가 자신의 저서 중 가장 훌륭하고 가장 중요하다고 꼽은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쓰기까지 '20년의 성찰과 3년의 작업'을 거쳐야 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루소는 1740년에 리옹에서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교육의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했고, 그로부터 20년 후인 1760년에 1천 쪽에 달하는 원고를 탈고한다. (p. 7)-들어가는 말 中-

그러니까 <에밀>은 원래 1천 쪽에 달하는 엄청난 벽돌책이다. 하지만 교육관련 전공을 한 사람들이라면 루소의 교육론은 반드시 알아야 할 사상이었다. 아니 교육관련자가 아니더라도 일반 중고생의 사회과목에도 사상가로서 루소는 꼭 등장하는 인물이다. 천재사상가였던 그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양극으로 갈린다. 무엇보다 교육론인 <에밀>을 쓴 저자가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고아원에 버렸기 때문이다. 그의 생애를 잘 알지 못하고서는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모순이다.

후대의 많은 인물이 <에밀>의 사상에 흠뻑 빠져들었다. 평생 시계처럼 날마다 같은 시각에 같은 장소를 산책하던 칸트가 딱 한 번 산책을 거른 적이 있었는데 그날이 바로 <에밀>을 읽던 날이었다고 한다. 괴테는 '호주머니에는 언제나 호메로스를, 그리고 머리에는 언제나 <에밀>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나폴레옹 또한 자신의 진중문고에 <에밀>을 꼭 챙겨 다녔다고 한다. (p. 9) -들어가는 말 中-

어떻게 보면 시대의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있던 개혁사상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사상가가 루소가 아닐까 싶다. 특히나 <에밀>은 저자 자신이 손에 꼽은 저작이기도 하지만 교육론을 넘어 당대의 많은 모순점들을 포괄하여 지적하고 있는 책이기에 더욱 널리 읽히고 큰 호응 및 거부를 일으켰을 것이다. 루소는 '아이가 작은 어른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고유한 인격이요 완전한 존재임을 발견한 것이며, 자연에 따라 '인간을 양성하는 기술'로서의 교육을 발견 (p. 15)' 한 사람이다. 따라서 '루소는 20세기의 모든 교육 개혁가가 택한 길의 교차점에 있다. (p. 18)' 끊임없이 읽혀지는 고전들은 읽고나면 그 이유를 깨닫게 되곤 한다. 루소의 <에밀>도 그러한 고전임에 분명하다.

나는 오래전부터 가정 교육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누구 하나 그보다 나은 실천 방법을 제시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p. 24) 나로서는 인간이 태어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내가 제안하는 바에 따라 그들 자신이나 타인에게 최선의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p. 28) -머리말 中-

루소는 책을 시작하는 짧은 머리말에서 이 책은 '사려깊고 훌륭한 어머니 한 분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 (p. 23)' 고 말한다. 의도와 달리 쓰다보니 엄청난 두께의 책이 되어버렸다고 ㅎㅎ 아마도 루소는 가정교사라던가 당대 귀족들의 집에서 도움을 받으며 살다보니 그들의 자녀교육에 대해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됐고 그 많은 사실들이 무척이나 문제가 많다고 여겨졌던 모양이다.

조물주의 손에서 나온 모든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온전한 반면, 인간의 손에 들어오면서 속수무책 나빠진다. (p. 33)

라는 에밀 1권의 첫 문장은 무척이나 유명한 문장이라고 한다. 이 문장에 대해 옮긴이의 주석을 보면 '대부분의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이 대목을 '선'과 '악'의 관념을 사용하여 '모든 것은 조물주의 손에서 나올 때는 선하지만 인간의 손에 들어오면 타락한다'로 번역한다. 물론 이런 번역이 오역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다. 서로 상반되거나 대립되는 내용을 즐겨 사용하는 루소의 표현 방법을 빌려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장점도 있다. 다만 원문에는 '악mal'이라는 말이 '선bon, bien'과 서로 맞대어 비교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염두하고 신중하게 원문을 살필 필요가 있다. (주석19 p. 172)' 라고 설명되어 있다. 불어를 모르므로 옮긴이가 써준 불어 원문을 보고도 알수 없었지만, 번역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하는 첫 문장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무르고 약하게 태어나기 때문에 힘이 필요하고, 아무것도 없이 태어나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며, 어리석은 채로 태어나기 때문에 판단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태어날 때 갖지 못했지만 어른이 되었을 때 필요한 모든 것을 교육에서 얻는다. (p. 35)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 바로 그것이 내가 그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일이다. 내 손을 떠날 때 그는 분명히 법률가도 군인도 성직자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도 인간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한 인간이 도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필요한 것을 누구 못지않게 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p. 44)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갈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숨을 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p. 47)

루소의 문장들은 지금 읽어도 고개 끄덕이게 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아니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들이었다. 하지만 이 당연한 관점이 당대에는 파란을 일으켰던 것다는 점이 신기할 정도다. 서구사회 지식인들이 흔히 그렇듯 루소도 고대의 지식들을 자주 활용한다. '공공교육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한다면 플라톤의 <정체 politeia>를 읽어 보라. 이 책은 제목에서 짐작되는 바와 같이 정치에 관한 것이 전혀 아니다. 이는 지금까지 쓰인 가장 훌륭한 교육론이다. (p. 41)' 에 대해 옮긴이는 주석에서 ''정치와 교육'에 대한 고대적 논의가 플라톤의 <정체>라면, 이것에 관한 근대적 논의는 루소의 <에밀>이라고 할 수 있다. (주석37. p. 177)' 라고 덧붙인다. 플라톤의 <국가>는 정치체제에 대한 책이라던가 고대철학서로 읽히는 경우가 많지만 루소의 말처럼 교육서로 읽을만한 책이기도 하다. 고대의 지식을 다시 찾는 사상가들을 볼때마다 고대이후 2천년간 인류는 참 변한게 없구나 하는게 새삼 느껴져서 좀 허탈한감도 없지않다. 여하튼, 루소는 자신의 교육론을 펼쳐내기 위해 '가상의 제자를 한 명 만들었다. 또 내가 그를 교육하는 데 적합한 나이, 건강 상태, 지식수준을 비롯한 모든 재능을 가졌다고 가정했다. 그리고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한 사람의 성인이 되어 자신 외에 다른 안내자가 필요하지 않을 때까지 그를 교육해보기로 했다. (p. 68)' 그가 바로 에밀 이다.

아이에게 가르침을 주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 그것을 찾도록 해주어야 한다. (p. 71)

사실 지금도 실천하기 어려운 이 가르침을 루소는 어떻게 해낼 것인가? 그 본격적인 교육이 책 <에밀>에서 펼쳐진다.

이 책은 원본의 1장까지만 다루고 있는 얇은 책이지만 <해제>에 <에밀>전체에 대한 설명이 비교적 상세히 되어 있다. 사실 나는 이 요약본을 읽기 위해 이 책을 선택한 것이다.

루소의 <에밀>은 한 교사가 에밀이라는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서 결혼하기까지, 건전하고 자유로우며 공화국에 합당한 시민으로 어떻게 자라는지 다양한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루소는 이 책에서 아동의 성장 발달 단계를 다섯 단계로 구분해 단계별로 적합한 교육 과정을 제시한다. 이 발달 단계는 크게 영,유아기, 아동기, 소년기, 청년기 그리고 성년기로 나뉜다. 전부 5권(각각 나뉜 5권이라기보다 한 저작 안의 5부로 보는 것이 좋다)으로 이루어진 <에밀>의 각 권은 이 다섯 단계와 일치한다. (p. 138)

책<에밀>을 읽는다는 것은 한 사람의 성장사를 읽음으로써 소설처럼 읽히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사건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가치관이 들어가는 과정은 굉장히 폭넓은 사상을 투영하게 됨으로 읽기 어려운 책이라고도 한다. <해제>에서 짧게 언급된 각 권의 설명들을 보며 만만치 않겠다 싶으면서도 무척 궁금해진다. 루소는 에밀을 과연 제대로 된 인간으로 잘 교육 시켰을지.

ps. '누구든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토록 신성한 의무를 소홀히 하는 자는 오래도록 자신의 잘못에 대해 쓰라린 후회의 눈물을 쏟게 될 것이며 결코 그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것이다. (p. 65)' 라는 문장은 루소가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을 담은 문장이라고 한다. 옮긴이는 주석에서 '루소는 <에밀>을 쓰는 목적 가운데 하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읽게 될 젊은 이들이 같은 잘못으로 과오를 범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고백2> 121쪽)'라고 말한다. (주석48. p. 180)' 라고 부연설명한다. 루소는 천재적인 사상가였고 특히나 교육론에 선구자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아이 다섯을 모두 고아원에 버렸다. 물론 당시 루소의 상황이 경제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아이를 키울 수 없는 형편이었다고는 하나 분명 잘못은 잘못이다. 후에 상황이 나아졌을때 고아원에 아이들을 찾으러 갔으나 찾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루소의 아이들은 루소를 비판하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큰 비난요소가 되었다. 개인사적 상황을 알 수 없으니 루소 본인의 아버지로서의 입장에 대해서는 내가 뭐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에밀> 책 자체만 봤을 때는 분명 대단하다. 1장만 봤는데도 그랬다. 비판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좀더 잘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따라서 루소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루소의 교육론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에밀>은 읽어봐야 할 고전이 아닐까하고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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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갈 땐, 주기율표 - 일상과 주기율표의 찰떡 케미스트리 주기율표 이야기
곽재식 지음 / 초사흘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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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주기율표의 찰떡 케미스트리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일단은 화학적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저자는 이력이 참 다채롭다. 짧게 말하자면 공학박사이자 작가인데 세세히 보자면 화학업계에서 오래 일했고 라디오나 티비에 출연하기도 하며 펴낸 책도 소설부터 과학책까지 그 범주가 널을 뛴다. 그러니까 본업은 과학 특히 화학인데 즐기는 것은 온갖 상상의 세계라고나 할까. 여하튼 이번 책은 간만에 그의 본업을 살린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졌고, 화학은 그 모든 것을 어떻게 만들고 분해하고 고칠 수 있는지 따져 볼 수 있는 기술이었다. 병을 낫게 하는 약에 관한 화학도 있었고, 육중한 기계가 돌아가는 거대한 공장을 유지하는 데 이용하는 화학도 있었다.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일단은 화학적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교과서에 이름만 간단히 소개된 그 원자들이 주변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쓰이는지 소개하는 이 책을 쓰게 되었다. (p. 7) -시작하며 中-

저자는 특유의 그 폭넓은 활동 중에서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진행하던 코너에서 했던 이야기를 토대로 이 책을 펴냈다. 따라서 일반 대중이 읽고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는 쉽고 편안한 과학에세이라고 하겠다.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진 원소는 모두 118종이라고 하는데 이 책은 그중 1번부터 20번까지에 해당하는 전형원소만 다루었다. 차례도 보면 주기율표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어 더욱 흥미를 유발한다. 이 1번부터 20번까지의 원소는 사실 중학교 과학 교과 과정에서 배우는 원소들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중학생 이상의 대중은 누구나 읽을만한 책인 셈이다.

수소, 헬륨, 리튬, 질소, 산소 등 우리에게 익숙한 원소 기호들은 생각해보면 은근히 많다. 하지만 저자는 이 (나름은) 익숙한 원소들에 대해 새로운 특성들을 연결지어 설명해준다. 차례에서 원소와 짝꿍지은 힌트들만 봐도 그 신선함이 느껴지는데,

1. 수소와 매실주, 2. 헬륨과 놀이공원, 3. 리튬과 옛날 노래, 4. 베릴륨과 보물찾기, 5. 붕소와 애플파이, 6. 탄소와 스포츠, 7. 질소와 목욕, 8. 산소와 일광욕, 9. 플루오린과 아이스크림, 10. 네온과 밤거리, 11. 소듐과 냉면, 12. 마그네슘과 숲, 13. 알루미늄과 콜라, 14. 규소와 선글라스, 15. 인과 기차 여행, 16. 황과 긴 산책, 17. 염소와 수영장, 18. 아르곤과 제주도, 19. 포타슘과 바나나, 20. 칼슘과 전망대

를 보며 어떤 원소의 힌트는 아하~! 싶기도 하고 어떤 원소의 힌트는 뜻밖의 소재와 연결되어 있어 뭐지뭐지??? 싶기도 하다.

118가지 원자를 대체로 가장 가벼운 것부터 점점 무거운 것 순서로 차례대로 나열하면서, 서로 성질이 비슷한 원자들을 알아보기 쉽게 배치해 놓은 도표가 바로 주기율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항상 가벼운 것부터 무거운 순서로 적혀 있지는 않으나 대략적인 순서는 그렇다. 주기율표에서는 대체로 아래위로 같은 줄에 있는 원자들끼리, 그러니까 같은 열에 적힌 원자들끼리는 성질이 비슷하다고 한다. (p. 27)

학창시절에 달달 외우며 배웠던 주기율표가 지금 뭐 생각나는 내용이 있을리 만무하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어렴풋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주 모르는 것 같지는 않은 기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새로운 내용들로 신선하게 읽어나가게 되는데,

'그러니까 내가 지금과 같은 몸을 물려받은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DNA에 포함된 수소가 다른 부분을 끌어당기는 수소결합으로 화학반응을 일으켰기 때문(p. 18)' 이고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의 90%가 수소 아니면 헬륨(p. 35)' 이며 '지구상에서 리튬 덩어리보다 더 가벼운 덩어리는 없다. (p. 49)' 라거나 '아름다운 초록빛 에메랄드를 이루는 핵심 성분은 베릴륨이다. (p. 67)' 등 원소들의 이야기는 휴가갈때 읽을 수 있을 만큼 가벼운 편이다.

'생명체의 삶이란, 탄소가 많이 들어 있는 온갖 물질을 만들고 분해하고 주고받고 빼앗고 활용하는 과정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p. 103)' 라거나 '질소 기체의 삼중 결합을 끊어 생명체가 활용하기 좋은 질소 원자로 바꿔 주는 이 세균들이 없다면 식물이 자라지도 못하고, 동물도 살아갈 수 없다. (p. 121)' 등 원소들을 통해 삶의 면면을 들여다보게 되기도 하고, '네온은 과학 발전이라는 퍼즐의 빈자리를 채우는 중요한 물질이었던 셈이다. (p. 177)' 라고 과학사를 잠깐 알게 되기도 하며, '모든 풀과 나무의 평화로운 초록색은 마그네슘이 들어 있는 화학물질 때문에 생긴 것이다. (p. 197)' 라거나 '강대원은 모스펫을 개발한 공적을 인정받아 세상을 떠난 뒤에 미국 발명가명예의전당에 올랐다. (p. 254)' 등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알게 되기도 했다.

이미 알고 있던 기호라고 생각했는데 저자가 다른 호칭으로 부르는 원소가 있어서 뭘까 싶은 것이 Na 소듐과 K 포타슘이었는데 그에 대한 설명은 책의 뒷부분에 가서 읽을 수 있었다.

2016년에 대한화학회가 원소 이름을 영어 발음에 가깝도록 바꾸는 지침을 마련하면서 칼륨이라는 이름이 포타슘으로 또 한 번 바뀌었다. 이때 나트륨은 소듐으로, 플루오르는 플루오린으로 바뀌는 등 몇몇 원소가 새 이름을 얻었다. (p. 341)

이런저런 이유로 이름을 바꾼 것은 알겠는데 아직 제대로 알려지진 않은 것 같다. 앞서 언급했듯이 1번부터 20번까지의 원소들은 중학교 과학 교과 과정에서 배우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교과서에도 여전히 소듐이 아니라 나트륨으로 포타슘이 아니라 칼륨으로 쓰여지고 있다. 학자들이 세계적으로 서로 소통하기에는 영어식 통일화가 편리했을지 모르나 수십년간 사용되어온 호칭을 바꾼다는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 몸속에 있는 칼슘을 제외하고 살면서 가장 많이 마주치는 칼슘이 아마 시멘트 속에 있는 칼슘이 아닐까 싶다. (p. 357)' 칼슘은 우리 신체의 구조만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건물의 구조도 만들었었구나~ 이처럼 일상과 그닥 상관없어 보이는 원소들이 실은 생각보다 밀접하게 우리의 모든 일상을 이루고 있었다. 이렇게 친근하게 1번부터 20번까지의 원소들을 읽고나니 다른 원소들의 이야기도 궁금해진다. 저자가 다른 원소들의 이야기도 언젠가 이처럼 쉽고 재밌게 책으로 써 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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