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역사 : 소크라테스부터 피터 싱어까지 -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다
나이절 워버턴 지음, 정미화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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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다

소크라테스 부터 피터싱어 까지

궁극의 진리를 갈망한 철학자를 한눈에 읽는다!

인간을 둘러싼 다양한 주제의 본질을 파헤치는 앎의 여정>>

처음부터 끝까지, 표지부터 내용까지, 뭐하나 흠잡을 데 없이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이런저런 철학책들을 읽었었다. 주로 입문서나 개요서 들이었다. 꽤 여러권을 읽은편이지만 그럼에도 철학의 한분야를 혹은 한명의 학자를 골라 본격적인 내용을 읽기엔 왠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철학은 늘 나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고대그리스의 철학자들에 대한 책을 읽고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좀 읽고 나니, 서양철학의 시작을 읽었으므로 시대를 훑어내리며 현대철학까지의 흐름을 알수 있는 최신 입문서를 또 읽어봐야겠다 싶었다. 움베르토에코의 철학의 역사를 읽어볼까 했는데 너무 정말 너무너무 두꺼웠다.;;; 그러던중 이 책이 눈에 띄었다.​ 기대이상이었다.


책의 가장 앞부분에 '연대표로 보는 철학의 역사' 가 있다.

펼치면 한눈에 들어오는 양쪽 두페이지에 간략하게 철학자와 연대를 정리해놓았는데, 당연히 이 책에 실린 철학자들과 분야를 중심으로 요약해 놓았다. 본문을 읽는도중 앞서 읽었던 내용이 가물가물할때 연표를 찾아보고 내용을 생각해보기에 유용했다.

40챕터에서 약52명의 철학자를 언급한다.

325페이지의 책인데 챕터가 40이고 등장하는 철학자가 52명이나 된다는 것은 한 철학자당 서술되는 내용이 길지 않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말 핵심만 잘 추려놓았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묘미는 챕터에서 챕터로 넘어갈때의 자연스러움 이다. 크게 상관없어보이는 철학자들을 매끄럽게 연결시킬 때 저자의 재치가 느껴지고 호기심이 자극된다. 본문의 내용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서술해 놓아서 저자의 신중함이 느껴지고, 철학의 핵심내용들도 철학서에 대한 초보독자가 읽고 이해하기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쉽게 풀어놓았다. 입문서로 정말 괜찮은 책이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를 등에라고 생각했다. 등에는 성가신 벌레이지만 심각한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끊임없이 질문하여 상대방을 멘붕에 빠트리는 소크라테스는 당시 전쟁으로 피폐해진 아테네 사람들에게 등에보다 위험한 존재로 여겨졌다. 스승의 죽음을 경험한 플라톤은 완벽한 국가와 지도자의 모습을 찾고자 했다. 그가 남긴 대화편들은 스승의 질문을 포함하여 더 구체적인 질문들을 던져 놓았고 그가 찾은 답은 당시에도 지금도 답이 되기엔 무리가 있었다. 플라톤이 모든 것에 물음표를 붙였다면, 그의 수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것을 관찰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소크라테스는 뛰어난 이야기꾼이었고, 플라톤은 최고의 작가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것에 관심이 있었다.>> 는 저자의 표현은 매우 적절했다.

아리스토텔레스 다음세대의 철학자 피론은 젊은 시절 인도를 방문했고 회의론자 였다. 피론과 동시대 에피쿠로스는 우리에게 쾌락주의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가 추구한 쾌락은 굉장히 절제되고 단순한 삶을 지향했다. 철학을 일종의 치유법으로 생각한 것은 에피쿠로스학파 뿐만 아니라 스토아학파도 그러했다. 명상적인 스토아학파은 로마의 철학자들에게 이어지고 키케로와 세네카는 황제의 측근이었으나 황제들은 그들의 철학에 영향받지 않았다.

5세기에 이르면 철학과 종교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철학자들 대다수는 기독교도 였다. 중세 철학자들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철학자들의 사상을 배웠지만 그들의 사상을 수정해서 자신들의 종교에 적용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원죄와 자유의지에 의한 악한 행동들은 여전히 통용되는 믿음이다. 그리스와 로마의 사상가들로부터 기독교 철학으로 넘어가는 가교 역할을 한 보에티우스의 철학은 신이 모든것을 안다는 예정설을 설명해내고자 했고 이후의 철학은 '신'을 중심으로 사고하게 된다.

신에 대한 믿음에 중점을 두고 종교적인 삶의 방식에 전념한 안셀무스와 아퀴나스가 있는가하면 현실주의자 마키아벨리도 있었다.

성서에 등장하는 거대한 바다 괴물인 리바이더던을 비유한 홉스는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았지만,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던 데카르트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학문을 파고들었다.

스스로를 신학자라고 생각했던 파스칼은 확률을 이용해서라도 믿음의 필연성을 이야기했고, 무신론자라고 비난받았던 스피노자는 쟈연에서 신을 찾았다. 로크의 인격론도 버클리의 관념론도 기성종교에 반대적인 입장이었던 볼테르, 라이프니츠, 흄 과 루소까지도 기독교에 대한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는 그들 철학자들을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어왔다.

하지만 칸트 부터는 철학자들의 믿음이 더이상 중요치 않아졌다. 철학자가 기도교도이건 아니건 본격적으로 인간 이 화두의 중심에 선다. 그래서인지 칸트는 이 책에서 유일하게 두 챕터를 차지하고 있는 철학자이다.

벤덤의 행복과 헤겔의 완성, 쇼펜하우어의 비관과 밀의 불안은 다윈의 진화론 이후 더 복잡하고 더 난해한 철학의 갈래들속에 스며든다. 키르케고르의 결정장애와 마르크스의 신념은 세계전쟁속에 산산이 흩어졌고, 경제의 패권국 미국은 철학에서도 패권을 차지하게 된다.

실용주의, 허무주의, 정신분석, 과학철학, 정의론 은 실재와 허상, 물질과 관념, 현실과 이데아 사이에서 여전히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고심한 하나의 질문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였다. 그에 앞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도 제기한 질문이었다. 사람들이 애초에 철학에 끌리는 데는 이 질문에 답하려는 욕구도 한몫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그만의 답이 있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행복을 추구하라는 것이었다.>>

 

2500년전 철학자들이 고심했던 질문은 지금까지도 고민되는 질문이다. 서양철학은 플라톤 철학에 대한 주석이라는 말도 있지만, 아이가 태어나 부모에게 퍼붇는 질문들에 부모들은 최선의 답을 쉽게 말해주기 위해 고민하는 것처럼, 고대철학자들이 쉽게 던진 질문들은 몇백년 몇천년의 시간을 흘러 아직도 고심되어지고 있다.

살아있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각할 수밖에 없고 어떻게 살았든 언젠가는 죽는다.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고 잘 살고 싶다. 그래서 철학은 계속되어질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삶의 유한성과 죽음의 무한성은 철학의 바탕이자 앞으로도 계속이어질 길이다.

그 길에 네비게이션 까지는 아니더라도 종이지도 역할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이 철학 아닐까? 지도를 보여줘도 이해못하는 나같은 지도 까막눈도 있을 터.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 대충이나마 철학자들의 이름만으로도 눈치껏 철학을 알아들을 수 있게 해주는 철학지도로 이만한 책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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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크라이
헬렌 피츠제럴드 지음, 최설희 옮김 / 황금시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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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라진 아이, 두 여자의 목소리, 그리고 거짓말이 파묻은 것

여러분 제발, 저를 의심하세요.

진실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아.>>

가면을 쓰고 있는 듯 반은 하얗고 반은 검정칠을 하고 어딘가를 보고 있는 여자

가면을 쓰고 있는 듯 반은 하얗고 반은 검정칠을 하고 눈을 감고 있는 여자

흑백의 표지가 너무나 강렬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제목은 울고 있는데, 여자는 울고 있지 않았다. 앞에서도. 뒤에서도.​ 


영국 가디언 여성 작가들이 뽑은 '여성 작가의 베스트 스릴러 50' 에 선정됐다는 띠지의 홍보문구가 책을 다 읽고 나서 새롭게 다가온다.

여성작가들이 뽑은 여정작가의 베스트 스릴러...

이 책은 스릴러 소설이지만 어떻게 보면 페미니즘 소설이었다.


<<노아는 비행 내내 울었다. 잠시라도 울음을 멈춘 순간이 없었던 것 같다. 그 비행 중 다섯 시간을 조애나는 해볼 수 있는 모든 걸 순서대로 전부 시도했다.

배고픈가? 앙!  기저귀? 우앙!!  지루해?  아앙!!!  피곤해? 엄마는 대체 아는 게 뭐야?

조애나는 모든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조애나는 그녀의 애인 앨리스터와 함께 생후 9주 된 아들 노아를 데리고 영국에서 호주로 가는 중이다.

호주에는 앨리스터의 전처와 딸 클로이가 있다. 4년전 이혼한 전처에게서 딸을 데려오려고 양육권 소송을 하러 가는 길이다.

그런데 아들 노아가 계속 운다. 계속 계속 멈추지 않고 계속


<<조애나는 긴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 있다. 반면에 앨리스터는 언제나 바쁘고 긍정적이며 분명하다. 그녀에게 완벽한 해독제인 셈이다.

"내가 미쳤지" 그녀는 앨리스터의 팔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오 나의 미치광이" 앨리스터가 빙긋 웃더니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렇게 그녀는 그만의 미치광이가 되었다.

우리가 영원할 거라는 걸 어떻게 믿어?

내 아기를 가져!>>


조애나는 앨리스터가 그녀에게 완벽한 해독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은... 완벽한 독약이었다.

노아의 울음에 지치고 승객들의 불평에 지치고 장시간의 비행에 지치고 조애나는 노아에게 아기약을 먹였고 노아는 몇시간만에 드디어 잠이 들었다. 앨리스터는 노아를 안앗고 조애나는 잠이 들었다. 노아가 울자 앨리스터는 아기에게 약을 먹였다.

비행이 끝나고 렌터카를 타고 숙소를 가는 중에도 노아는 계속 조용했다.

그리고 다시는 깨어나지 않았다.


<<조애나는 현실감을 잃고 자신이 현실보다 나은 곳에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지옥이었다.>>


노아가 죽었다는 것을 확인한 고속도로 위에서 조애나가 살아있는 현실은 지옥보다 못한 곳이었다. 조애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가 세 번째로 소리쳤다. "애가 없어졌어"

마침내 조애나가 그 말을 이해했을 때, 그 말이 너무나 다행스럽고 훌륭해서 그녀의 마음은 자기 자신을 속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무얼 기억하고 무얼 잊어야 할지 그 모든 걸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더 나은 진실을 믿으면 된다. 아기가 사라졌다. 누군가가 아기를 데려간 것이다. 그녀는 그 사실을 꿀꺽 삼켜버렸다.>>


앨리스터는 빠르게 현재를 정리한다. 상황을 만들고 조애나가 해야 할 생각들을 주입시킨다.

조애나는 더 나은 진실을 믿기로 한다. 노아가 사라진 것으로.


노아의 실종사건이 대대적으로 뉴스화하고 유괴범의 후보에 앨리스터의 전처 알렉산드라가 지목된다. 알렉산드라의 집에 경찰이 찾아온다. 알렉산드라는 이 상황이 혼란스럽다. 자신을 망가뜨린 여자가 아들을 유괴당했다니, 그래서 경찰들이 자신의 집에 들이닥쳤다니


<<그녀에게 느끼는 분노의 세 겹쯤 아래로 얇은 죄책감이 한층 자리하고 있다. 나는 어린 여자에게 그 남자를 떠넘긴 것이다. 그 남자의 아기를 임신하고 있는 그녀를 그곳에 내버려두었다. 미리 경고했어야 했는데. 그랬더라도 그녀는 내 말을 듣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 말을 듣게 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여성동맹쯤 된다는 건 아니다. 절대 안될 말이지. 그녀는 그에게 속한 사람이다. 그들은 하나의 팀으로 이루어진 적이다. 그녀를 받아들인다는 건 그 역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절대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따금씩, 특히 밤이 되면 죄책감이 분노 아래서 슬그머니 기어 나오고, 그럼 나는 그녀를 걱정한다. 그녀가 그의 배신을 깨닫게 될 그날을 염려한다.>>


알렉산드라는 클로이의 엄마다.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고향으로 딸을 데리고 왔다. 그들은 자신의 딸을 데려가려고 오는 도중 갓난 아들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전남편에 대한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하지만 딸이 아빠를 미워하게 만들고 싶진 않다. 배신에 분노하며 술을 마시고, 상실에 좌절하며 우울증에 빠졌어도, 그녀는 클로이의 엄마 자리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그런데 전남편의 애인이 아들을 유괴당했다니


<<나는 클로이를 학교까지 태워다주고 아이가 학교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걸 지켜보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종일 뉴스에만 매달려 있었다. 그들은 공개 원조를 막 청하려는 참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 창백했다. 눈이 빨갛지는 않았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울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녀가 울지 않고 있으니 뭔가 이상하게 보였다. 사실 그녀는 매우 차갑고 불편하고 호감이 가지 않는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보통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그녀는 예쁘고 다가가고 싶은 모습일 때가 많았다. 그녀가 내 남편이랑 자고 내 인생을 망가뜨리지만 않았다면 아마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만한 모습이었다.>>


뉴스화면에서 조애나는 울지 않고 있었다.


<<일련의 교육이 이어졌다.

"나도 알아, 자기야. 하지만 해야 돼. 머릿속이 혼란스럽고 걱정되면 이렇게 말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강하게 밀어붙이면 이렇게 말해. '죄송합니다. 말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웃지 마. 절대로. 꼼지락거리지도 마. 그러면 뭔가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여. 울어. 참지 말고, 더 많이 울수록 좋아.>>


앨리스터의 교육후에도 조애나는 울지 않았다. 적어도 사람들 앞에서는. 울지 않았다.


<<여러분 제발, 저를 의심하세요. 그녀는 그렇게 기도했다. 그 사람의 손톱 아래 낀 흙을 의심하란 말이에요. 대체 이런 부모가 어디 있냐고 몰아세우세요. 내가 바로 살인자라고 의심하란 말이에요!>>


조애나는 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밖으로 나오는 말들은 앨리스터가 가르쳐준 말들 뿐이었다.


<<조애나는 침실 창문으로 앨리스터가 뒷마당에서 바비큐 통에 불을 붙인 다음 그녀가 남겨놓은 자기 아들의 물건을 가스 불에 태우는 걸 지켜보았다. 그런 다음 그는 소시지 몇 개를 올리고 익을 때까지 뒤적거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다 구워진 소시지를 빵에 넣어 접시에 담아 가지고 돌아왔을 때 그는 한결 차분해져 있었다.


줄줄이 홍보 얘기를 하는 그의 목소리는 잔뜩 신이 나 있었다. 앨리스터는 방송 출연과 책을 출간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세상에나!


그는 진정제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는 충분히 괴로워하고 있지 않았다. >>


조애나는 점점 더 괴로워지는데 앨리스터는... 아니었다.


<<조애나는 무슨 말을 할지 연습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아무 상관없었다. 알렉산드라는 그녀를 전혀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녀는 아주 오랜만에 편안한 기분을 느꼈다.

"안나 카레니나 읽어보셨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조애나는 질문을 하고 있었다.

"영화는 봤어요"

"전 사춘기 때 그 책에 완전 빠졌어요. 해마다 읽고 또 읽었죠. 그러다 그 사람을 만다고 나서는 그 책을 쳐다볼 수도 없었어요. 그때는 왜 그러는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아요. 그 책의 주제 때문이었어요. '다른 사람의 고통 위에 너의 행복을 세울 수는 없다' 앨리스터는 그 책을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앨리스터가 이해할 만한 책은 아니죠"

그 말을 듣고 조애나는 전율이 일었다. 알렉산드라는 재미있고 똑똑하고 현명했다. 다른 상황에서 만났더라면 멋진 선배 언니를 따르듯 좋아했을 것이다. >>


조애나는 진실을 밝히고 싶다. 알렉산드라는 딸이 아빠의 모습을 좋은 모습으로 생각하게 하고 싶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시선속에서 더 멋지게 표현된다.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들의 모습과 상대방이 보는 자신들의 모습 사이의 괴리감... 어느 쪽이 더 그녀들의 진짜 모습에 가까울까?

 

 

재판이 이어진다. 양육권 재판이 아니라 조애나의 재판이다.

앨리스터가 없는 조애나의 재판

조애나는 아들을 잃었지만 알렉산드라에게 딸을 잃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조애나는 자신이 갇혀있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틀에서 나오기로 한다. 틀을 깨뜨리기로 한다.

그리고...


<<"이제는 괴롭지 않아요" 조애나가 말했다.

상담사는 믿지 않았다. "어째서죠?"

"안나 카레니나 읽어보셨나요?" 조애나가 물었다.

"아뇨"

"주제가 이거에요. '다른 사람의 고통 위에 너의 행복을 세울 수는 없다'"

조애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들은 이제 행복해요"

상담사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

"그들의 행복 위에 제 삶을 세울 수 있다는 말이에요">>


조애나는 이제 울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아기의 실종을 다룬 작품이 아니다. 아기의 죽음을 다룬 작품도 아니다.

초반에 이미 아기의 죽음과 그 죽음을 유발한 상황을 다 알려주고 전개를 시작한다. 실종아닌실종을 알려주고 풀어나간다.

조애나와 앨리스터 그리고 전처 알렉산드라의 심리를 오가는 묘사는 아기의 죽음이후 펼쳐지는 실종사건을 둘러싸고 섬세하게 그들의 마음을 표현한다.


어떤 반전의 복선을 깔아놓은 것도 없으면서 촘촘하게 조여드는 심리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전개는 조애나의 상태를 온전히 느끼게 해준다. 아들을 잃은 엄마의 마음도 딸을 지키고자 하는 엄마의 마음도 그것이 법적으로 옳지 않더라도 이성적으로 이해할수 없더라도 엄마라면 알 수 있다. 그럴수도 있다는 걸. 그러지 않을수도 있지만... 그랬다면 좋았겠지만... 그럴수도 있다는 걸... 엄마들은 안다.

불륜과 육아의 고충과 모성에 대하여 무엇보다 여성으로서의 의미와 자존감에 대하여 조애나와 알렉산드라의 심리변화는 스릴러의 긴장감을 통해 더욱 깊이 다가온다.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나라면?

책을 덮고 표지를 다시 본다. 조애나는 이제 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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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프레드 케츠 드 브리스의 리더의 마음 - 이해받지 못한 자들의 마음을 읽다
맨프레드 케츠 드 브리스 지음, 윤동준 옮김 / 생각의서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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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받지 못한 자들의 마음을 읽다

나르시시즘, 감정표현불능증, 가면증후군, 허언증... 리더의 자리에 오르면 왜 리더십을 잃고 '이상한 사람'이 되는가!


리더가 아프면, 조직도 아프다.

출간 이래 25년간 전 세계 수많은 기업인과 매니저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킨 리더십 심리학 고전

리더의 정신건강을 묻고 답하다​ >>


책의 원제는 Leaders, Fools and Impostors : Essays onthe Psychology of Leadership

직역하면 지도자, 바보 및 사기꾼 : 리더십의 심리학에 대한 에세이 이다. 그런데 번역자가 일러두기 를 해놓았다.

<<이 책에서 사용된 광대fool 라는 단어는 일반적인 의미인 어수룩한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왕과 같은 절대권력 앞에서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 을 의미한다. 또 사기꾼 이라는 단어는 '다른 사람의 행세를 하는 행위자' 라는 특정 의미로 사용되었다. 우리말 사기꾼 은 그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이를 구분해야 하지만 적절한 단어를 찾을 수 없어 일러둔다.>>

 

직역했을때 한국어로 이해되는 바보와 사기꾼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책을 읽고 이해했다. 바보 아니 광대로 번역되는 fools 는 필요한 사람이었고, 사기꾼 impostors 는 상황에 따라 이중적인 해석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1993년 에 나온 책이지만 뒤에 인사말을 보니 2003년 개정판에 대한 번역인듯 하다.


리더십에 대한 책은 시중에 굉장히 많은 편이다. 그런데 대부분 어떻게 해야 리더가 되는지 리더의 필수덕목에 대한 책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리더의 마음에 대한 책이라고 해서 궁금했다. 자기계발서를 그닥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심리서로 생각하고 읽어보고 싶어졌다. 저자가 말했듯 리더도 어쨌든 인간이다. 인간의 일반적인 특성은 리더들에게도 적용된다. 리더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라, 인간의 일반적인 특성과 리더의 특성을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았다.


서론 - 리더의 마음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불행히도 너무 많은 경영이론가들이 리더십에 대한 연구를 일련의 관행적 규칙과 절차, 모델로 제한해버렸다. 그로 인해 이 주제로부터 발생하는 가장 중요하고 흥미로운 질문들에 대답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현재진행형인 리더십은 드라마틱한 성공 혹은 실패 이야기 못지않게 복잡성과 미묘함을 특징으로 한다. 이 책 전반은 기본적으로 리더가 추종자에게 미치는 영향과 이 관계가 오작동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살펴본다.>>

 

리더의 마음을 따로 떼어 살펴본다는 것은 어쩌면 리더의 덕목을 따져보는 기존의 자기계발서들과 별다를게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은 리더의 마음을 들여다 보겠다고 해놓고 리더와 그 주변사람들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 하다. 리더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1장 누가 리더를 이렇게 만들었나

<<추종자들은 리더를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리더에게 비현실적인 힘과 자질을 부여하려고 든다. 보호받는다는 느낌과 스스로도 힘을 얻기 위한 방법이다.

거울전이 현상에 대한 여러 관찰에 따르면 리더/추종자 관계에서 리더는 추종자들의 욕망에 의해 부분적으로 정의된다. 리더가 추종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판타지를 충족시켜줘야 할 필요를 느낄 때 커다란 왜곡의 위험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 속에 빠진 조직은 거울의 전당 속에서 운영된다. 계속해서 왜곡되어 기괴하게 변한 이미지가  무한정 반복된다. 욕망이 사실을 대체하고 현실 대신 환상이 자리 잡는다.

많은 회사의 추종자들이 재능 있는 리더가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잘못된 믿음의 덫에 빠져든다. 그리고 제대로 된 리더십의 부재 속에서도 현실을 부정하며 마법처럼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희망한다. 리더/추종자 관계 속에서는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는 현상이 흔하게 발생한다. 이는 현실 인식의 실패와 의사결정 기능이 망가지는 대가로 이어진다.>>

 

리더는 자신의 자질이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리더 곁에는 그 리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부족한 자질의 리더가 리더자리에 있을 때 주변 사람들에 의해 오히려 완벽한 리더로 보여지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는 은근 많다. 그리고 우리는 가장 최악의 리더를 이미 경험했다. 안타깝게도.


2장 나르시시즘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부하들의 정서적 욕구를 인식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지나친 나르시시즘 성향을 가진 리더는 전형적으로 부하들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고 충성심만을 이용한다. 이러한 유형의 리더는 착취적이고 냉담하며 또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종종 과도하게 부하들을 모욕하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은 순종성과 수동적 의존성을 조장하여 부하들의 비판적 기능을 억압한다. 슬프게도, 이런 리더는 자신의 행동방식에 대해 거의 의심을 품지 않는다.>>

 

적절한 나르시시즘은 리더들에게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적당한 자아도취는 자신감으로 표현될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신문기사에 접할 수 있는 기업총수들의 모습은 저자가 설명한 나르시시즘에 빠진 리더의 잘못된 예로 들기에 충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슬프게도.


3장 리더의 자리에서 내려올 때

<<보잘것없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그에 따른 우울감은 유산을 남겨야 한다는 욕구를 키운다. 리더는 흔히 권력의 계승자가 자신이 세운 업적을 존중할지에 대해 집착한다. 다른 말로, 많은 리더들이 '거대 건축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유산이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가능한 한 권력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동기부여를 한다.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는 자신의 성취를 떠올리게 하는 유산을 남기는 것이 상징적으로 죽음을 이겨낸다는 의미가 된다.>>

 

과거 역사 속에서 거대 건축물을 남긴 왕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현명한 왕이었건 악덕한 왕이었건 여하튼 눈에 보이는 커다란 유적지를 남긴 왕들은 역사에 길게 이름을 남겼다. 옛날 왕들은 다 거대 건축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걸까? 하지만 현재는 왕들의 시대는 아니다. 왕명 하나로 거대건축물이 뚝딱 만들어지는 시대는 아니다. 지금의 리더들은 어떤 것을 거대하게 남기려는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장의 중요 내용은 사실 은퇴에 대한 이야기 이다.

<<은퇴정책은 당사자가 회사를 떠날 순간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개인적으로 필요한 사항들을 조정하고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

리더의 은퇴를 포함한 오랜 직장생활에서의 은퇴에 대하여 개인적 차원의 준비와 회사적 차원의 제도에 대해 저자가 말한 내용들은 지금도 현실화 되지 않은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그렇게 은퇴할 수 있다면... 그런 은퇴후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아쉽게도...


4장 감정표현불능증

<<감정표현불능증은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개념이라고 한다. 이 사람들은 감정을 표현하거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행동하고, 자신의 감정이나 판타지보다는 외부 사건에 사로잡혀 있으며, 사건 자체에 대한 감정 반응을 설영하기보다는 사건 주변의 환경에 대해 지루할 정도로 상세한 설명을 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비록 처음에는 완전히 정상적이고 놀라울 정도로 적응을 잘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지만 이 겉치레 아래에는 진정한 따뜻함이 빠지고 절박한 얄팍함만이 있다는 사실이 금방 드러난다.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이 그들이 가진 유일한 고정된 특성이다. 그들의 초적응력과 친절에는 오직 하나의 목적만이 있다. 감정에 얽히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조직의 리더는 감정 표현의 다양성을 격려해야 한다. 그리고 미리 정해진 판에 박힌 틀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이런 실행이 효과를 보이려면 조직 내부에 신뢰가 형성돼 있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감정표현불능증은 어떻게 생각하면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 같기도 하다.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이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일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효과는 초반의 일시적인 효과뿐이지 않을까? 왜냐하면 사회는 함께 사는 조직이니까. 어쩔수없게도.


5장 균형 잡힌 리더십을 위하여

<<내부의 누군가가 광대의 역할을 하면 조직이 궤도를 벗어나지 않게 도울 수 있다. 현실을 계속 장악하고, 가장 중요하게는, 오만의 파괴적 힘을 제어할 수 있다.>>

 

5장에서는 유머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원제목에 포함되 있는 fools 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6장 가면증후군

<<대체로 내면의 사기 성향을 느끼는 경우 개인이나 조직 모두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무능, 과잉보상적인 중노동, 뒤로 미루기, 의심, 그리고 죄책감의 악순환은 떨쳐버리기가 극도로 어렵다. 이런 감정들이 나타나면 기능적으로 마비되거나 자기패배 행위로 이어질 수 있고, 조직적 맥락에서 지대한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

 

6장에서는 원제목에 포함되어 있는 Impostors 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기꾼이 전부 다 가면증후군 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어떤 병을 가지고 있어서 사기꾼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잖은가.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사기꾼은 일반적 개념의 사기꾼은 아니니까 맥락을 잘 정리하며 읽어봐야 한다.


7장 리더와 공모하다

<<공격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과정은 심리적 안정을 조금이라도 얻기 위한 개인의 압도적인 욕구에서 비롯된다. 이런 특별한 형태의 자기 정체성 확인의 경우, 개인은 공격자를 가장함으로써 그 속성을 따라 하고 위협을 받는 자에서 위협을 가하는 자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

 

7장에서는 히틀러와 사담후세인, 맥스웰 에 대한 실례에 대한 분석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한 본보기들을 들수 있을 만큼 역사에는 반면교사가 참 많다. ㅠㅠ


결론 - 리더십과 권력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이 책은 리더십과 동기부여의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에 대한 대응으로 쓰였다. 이는 점점 더 조직의 생존에 필수 요소가 되고 있으며, 앞으로 조직의 장점을 올바르게 활용하기 위해 이러한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은 리더의 몫이 될 것이다. 리더들은 일종의 에너지 관리 사업을 하고 있다.

권력의 이중성을 인식하지 못하면 현실성을 유지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균형감이 상실될 때 조직의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정치적 술수에만 빠져들 수 있다.

요컨데 우리는 리더에 관한 또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 조직에 구축할 수 있는 일종의 안정장치에  관한 토론에 제한을 둬서는 안 된다. 우리 자신의 삶을 합리적이고 책임감 있는 방식으로 관리할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모두는 리더다.

리더는 자신의 역할이 일시적이라는 것과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자신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과는 별개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관리할 수 있게 돕는 리더가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한다.>>

 

리더는 일종의 에너지 관리사업을 하고 있다는 표현에 왠지 동의가 됐다. 하지만 관리당하는 입장에서는 에너지만 빼앗기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불편해지려고 할때, 우리 모두는 리더 라는 표현이 나온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각자의 인생이 있다. 자신의 인생에서는 자기자신이 리더다. 하지만 사회에서 조직에서는 보다 더 큰 리더가 필요하다. 그 리더는 진정한 리더라면 개인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이타적인 리더가 기업에서 어느정도 가능할지는 모르겟지만, 정치적으로는 가능할수도 있지 않을까? 아닌가?;;;


어쩌면 핵심은 '우리 모두가 리더' 라는 것이었을까?

각자도생하는 사회가 될지 평등한 복지사회가 될지 리더에게 달린 걸까?

아니다. 아니다. 아닌 것  같다.

리더의 마음은 리더 스스로도 잘 다잡아야 하고 리더를 만드는 사람들도 깊이있게 이해해야 하며 리더를 따르는 사람들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리더십은 모두가 알아야할 덕목인건지도...

리더의 마음을 리더가 모를때 리더가 아닌 사람들이 리더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우리 모두가 리더 여야 하는 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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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속기사는 핑크 슈즈를 신는다
벡 도리-스타인 지음, 이수경 옮김 / 마시멜로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지금 당장은 모든 게 혼란스럽고 엉망이지만 그래도 난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고"

눈 떠보니 대통령의 속기사가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펼쳐지는 좌충우돌 리얼 스토리>>

 

소설가 백영옥의 추천사에 나온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의 백악관 판이라고 해야하나 "​ 라는 표현이 딱 맞는 책이었다.

26살의 젊은 여성이 취업전선에서 고군분투하다가 뜻밖에도 거대 직장에 취업을 하고 비록 말단업무를 하지만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워낙 어마무지하다보니 고급인맥을 쌓게 되고 멋진남자와 썸을 타기도 하는 그런... 시작은 딱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이 책은 굉장히 재기발랄한 문체로 씌여진 책이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쓴 인삿말부터 넘쳐나는 활발함이 느껴진다.

저자는 학생시절 아르바이트로 한국의 영어학원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때의 시간들이 너무 좋았다며 여전히 보드카보다 소주를 좋아한다고 한다. "제게 메로나 좀 보내주세요" 라는 인사글의 마무리는 시작부터 웃음을 띠게 한다.


이 책의 원제목은 < FROM THE CORNER OF THE OVAL > 이다. < 타원형의 모서리에서 > 라는 원제목을 봤을 때 백악관 말단직의 아슬아슬함을 표현한건가? 싶었는데, 검색을 좀 해보니 백악관 내 대통령 집무실이 Oval Office 이라고 한다. 타원형으로 지어져서 oval 이라고 부른다고... 대통령의 인터뷰나 연설시 가까이에서 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대통령의 말을 녹음하고 기록하는 저자의 직무위치를 충실히 반영한 제목이었다.

한국어 제목을 보면 책의 내용에 충실한 제목이지 싶다. 정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가 너무너무 연상되는 내용인지라... ㅎㅎㅎ

저자는 5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면서 구직활동을 하던 도중 어떤 사무실에서 드디어 면접 연락을 받는다. 그런데 알고보니 백악관에서 하는 일이었다. 속기사라지만 속기기술은 없어도 된단다. 녹음을 하고 나중에 타이핑하면서 교정하는 일이라. 온통 검정 정장들 사이에서 저자의 생기발랄함은 핑크슈즈에서나마 겨우 유지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출근하기 전 저자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드디어 정규직에 출근을 하게 되었는데 하지만...

<<"저도 알아요. 그무엇보다 확실한 연봉과 복지 혜택이 보장된다는 거. 그래봐야 타이핑하는 일이잖아요?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에요"

전화를 끊기 전에 아빠는 세상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고, 그리고 이 일은 역사를 바로 옆에서 목격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기록하는 일에 참여하는 매우 좋은 기회라고 말해준다.>>

 

그렇다. 직무의 중요도나 난이도는 별거 아닐지 몰라도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직접 바로 곁에서 볼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저자는 백악관에 출근하고 에어포스원을 타고 세계곳곳을 다니며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게 된다. 배경장소가 장소이니만큼 개인의 경험담에 불과할 수도 있는 그녀의 에세이는 소설보다 더 극적으로 읽힌다. 게다가 그녀의 문체는 장소가 주는 무게감과 상관없이 시종일관 가볍다.


대통령을 헬스장에서 만났을때 나 대통령 최측근 보좌진을 만났을때 그녀의 반응은 시트콤의 한 장면 같다.

<<대통령이 거듭 말을 걸어오는데도 나는 꿀 먹은 벙어리다. TV에서만 보던 연예인을 눈앞에 맞닥뜨린 기분이다. 뭐라고 해야 할지 할 말이 당최 떠오르지 않는다. 짐 쌀 때 깜빡하고 디오더런트를 안 챙긴 게 퍼뜩 생각난다. 지금 내게서 풍기는 땀 냄새가 장난 아닐 텐데!


말을 받긴 했는데 막상 할 말이 없다. 나는 이 사람을 잘 모른다. 짐캐리랑 닮은꼴이라는 말만은 하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한다. 지금 상황에 적절치도 않은 말만은 하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한다. 지금 상황에 적절치도 않은 말일뿐더러 프로답지 않게 보일 것이다.

"혹시 짐 캐리 닮았다는 말 들어본 적 없으세요?"

난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시차 적응이 안 돼서 그렇다고 치자. 아님 스파이로 몰릴 뻔한 상황을 간신히 모면해서 정신이 반쯤 나갔거나.>>


읽다보면 오바마의 인품에 새삼 반하게 된다. 그의 연설속 멋진 문장들도 감탄하게 된다. 저자는 정치에 1도 관심없었는데 백악관에서 일하게 되면서 오바마를 진심으로 따르게 된다. 멋진 리더와 함께 일한다는 것은 그 직무가 무엇이었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저자의 오바마에 대한 팬심이 담긴 기록이기도 하다. 또한 그렇게 멋진 사람들과 5년가까이 일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성장기 이기도 하다. 여하튼 저자는 참 운이 좋았다.


<<어느 순간 포터스가 하는 말이 가슴에 확 와 닿는다. 그는 역사는 기나긴 이야기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단락을 올바로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생은 짧고 이 세상은 넓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지금 쓰고 있는 단락을 올바로 써야' 한다. 그리고 무엇이 옳은지 잘 모르겠다면 '써야'한다. >>


(포터스는 오바마 대통령을 지칭하는 표현이다.)저자는 그래서 일단 쓴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내내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그때그때 기억하고자 기록하려고 노력했고 그 노력들이 결국 이 책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지금 쓰고 있는 단락을 올바로 쓰'고자 하는 오바마가 미국에 대통령으로 있을 때 한국에도 그에 상응하는 대통령이 있었다면 역사가 정말 새로 쓰여졌을 텐데... 지금은 반대로 또 올바로 못 쓰고 있다. 지금을... 역사를... 한쪽이 올바로 쓰려고 할때 다른한쪽은 자꾸 오타를 내는 것이 역사인가... 한미 대통령이 함께 지금을 올바로 쓰는 노력을 할 수 있다면 일본이 저렇게까지 나올수는 없었을 텐데...


여튼 이 책은 술술 읽혀지면서 백악관 사람들의 실제 모습을 연상해보는 경험을 하게 한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나오고 멋진 사람들도 나오고 멋지지 않은 사람들도 나온다. 다만, 저자의 바람피우는 이야기나 남자관계는 나의 정서와 맞지 않아서 좀 짜증나기도 했다. 아니 그 멋진 곳에서 일하면서 그렇게 남자에게 질질 끌려다니다니! 그 활발한 에너지로 왜 그렇게 주체적이지 못한거지? 싶어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영화 속 앤 해서웨이는 너무 예뻤고, 똑똑했으며, 프라다만 입는 악마상사에게서 배울만큼 배우고 미련없이 제갈길을 찾아 갔다.

'백악관 속기사는 핑크슈즈를 신는다' 책 속에서 저자는 20대 후반의 청춘이 겪는 직업에 대한 이상과 우정에 대한 소중함과 사랑에 대한 참모습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나가고 이 책을 시작으로 자신의 길을 시작하려 한다.

일하는 곳이 패션업계의 선두업체이건 백악관이건 청춘의 나이에 있을 법한 통통튀는 에너지가 넘치는 이야기들은 취업전선에서 땀흘리고 있는 이들에게 잠깐의 쉬는 시간을 제공해줄 수 잇을 것 같다.

모두의 도전을 응원한다. 갑자기? 갑자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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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디 얀다르크 - 제5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염기원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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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황상벌청년문학상 수상작

꺼지지 않는 구로디지털단지의 불빛 이 시대 프로야근러가 보여주는 시원한 한 방!

월급에 삶을 저당 잡힌 직딩 노예 사이안. 모두의 워라벨을 위해 구디의 잔다르크가 되다!>>

책의 뒷표지에 한 문학평론가가 <구디 얀다르크>는 21세기형 노동소설이라고 써놓았는데, 읽고 나니 아~! 싶었다.

구디 가디 가 무슨 말인지 몰랐다.

구디는 구로디지털단지, 가디는 가산디지털단지 였다.

두 곳 모두 디지털단지 라는 이름이 붙었으나 첨단도시라는 이름과 상반되는, IT업계의 가장 밑바닥 노동층이 존재하는 동네이기도 했다.​

공단 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때는 공장이 즐비하고 공장노동자가 넘쳐났던 동네는, 디지털단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어도 소규모 월세오피스들이 다닥다닥 붙은 곳에서 비정규직 젊은 인력이 소모되고 있는 동네로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이 작품은 구디와 가디를 오가며 IT업계에서 위아래를 오르내리는 직업을 전전한 프로야근러가 어느새 잔다르크의 후예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사이안. 줄여서 이얀언니라 불리고 나중에 잔다르크와의 합성어인 얀다르크 라는 별칭을 갖게 된 직장인이다.

그녀는 어느날 잔다르크 꿈을 꾼다. 조국에게 버려진 채 적진에서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하는 순간까지 의연했던 잔다르크는 이안에게 속삭인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네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볼게">>

잔다르크 꿈을 꾸고 불려나간 술자리에서 부지불식간에 그녀는 참전을 하게 된다. IT 업계의 노동인권전쟁속으로.


이안은 행복하지 않았다. 아니 행복한 적이 별로 없었다.

평범했다고 생각했던 가정은 IMF의 직격탄을 맞았고, 그 여파는 가족의 파괴로 이어졌다. 그녀는 늘 혼자였다. 혼자였지만 끊임없이 일했다. 아니 혼자였기에 끊임없이 일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된 방한칸 차한대 가지지 못하고 마흔이 되었다.


처음 직장생활은 그래도 남부럽지 않은 회사에서 시작했다. 나름 성취의 맛도 보았고 승진도 해보았다. 하지만 곧 실력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투명한 어항 속 한가득 담은 깨끗한 물도 검은 잉크 한 방울에 더러워진다. 그 더러워진 물을 정화하겠다고 굳게 마음먹은 물 한 방울이 뛰어 들어가봤자 깨끗해지지 않는다. 그 물 한 방울도 금세 수많은 검은 물방울 중 하나가 될 뿐이다. 그 어항을 깨끗하게 하려면 정말 많은 물이 필요하다. 차라리 물방울이 아닌 작고 뾰족한 망치가 필요하다. 어항을 깨뜨려 더러워진 물을 모두 빼낸 후 새 어항에 깨끗한 물을 붓는 게 빠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 기록된 위대한 인물은 뾰족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대중은 뾰족한 것보다는 부드럽고 쉬운 것에 끌린다. 어항을 깨자는 과격한 사람보다 더러운 물을 한 숟갈씩 떠내고 깨끗한 물을 한 숟갈씩 넣자는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하던 사람에게 권한을 이양해주었다. 그렇게 권한을 얻은 이가 더러운 물을 떠낸 적도, 깨끗한 물을 넣은 적도 없다. 물이 더럽다고 하는 이의 뒤통수를 망치로 후려갈겨 조용히 시킨 후 깨끗해지고 있다고 소리칠 뿐이다.>>


이 어항속 물과 한숟가락의 물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속 노동현장과 그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관통한다. 현실을 드러낸다.


이안에겐 친구가 한 명 있다. 속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친구. 그 친구는 진주.

진주의 신혼집에서 친구와 친구의 남편될 사람과 화기애애한 술자리를 하며 나오는 이안의 속내는 편하지가 않다...

<<무릎이 튀어나온 트레이닝 바지에 솜으로 누빈 패딩 점퍼 차림, 그리고 질끈 묶은 숱 많은 머리. 대학 시절 내내 보여줬던 그녀의 모습과 달라진게 없다. 단과대 학생회장을 맡아  서울까지 올라가 피켓을 들었던 투사는 이제 반지하 신혼집에서 생계와 투쟁하게 될 것이다. 같은 단칸방이지만 그래도 풀옵션 오피스텔에 사는 나와 달리 자본주의 생태계에서 도태된 것처럼 보였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풀옵션 원룸에서 쾌적하게 살 때 이안은  진주가 도태된 것 같았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이안의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능력도 없이 성추행이나 일삼는 상사를 벗어나 이직했을 때만 해도 그녀의 이력은 화려했고 갈 곳도 많았다. 함께 일했던 동료의 제안으로 스타트업 회사에 들어가서 새로운 직무를 할때는 비전도 있고 의욕도 있었다. 하지만 IT 업계의 변화는 너무 빨리 진행되었고, 작은 사무실들은 무너져 갔으며 남은 것은 거대기업에서 하청에하청에하청을 받아 일하는 피라미드같은 문어발세계의 비정규직 임시노동 뿐이었다.


<<그녀가 도움을 구하기 위해 찾아왔을 때 나는 가디에서 시작한 SI업체 유랑기를 마친 뒤였다. 수많은 공장노동자가 근무했던 가리봉동, '공순이'가 눈물을 흘리며 미싱을 돌리던 동네다. 가산동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높은 빌딩이 들어섰지만, 공장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미싱 대신 노트북으로 장비가 교체됐고 섬유 공장이 IT 공장으로 변했다. 나 역시 노트북 하나를 받아 파워포인트나 엑셀과 씨름하며 하루 열다섯시간씩 노동했다. 여행 사이트를 구축하고 쇼핑몰 앱을 만들었다.>>


이안은 세상이 변한 것 같지만 변하지 않은 것을 진즉에 깨달았다.


<<우리 세기말 학번에게 운동권은 개그나 조롱의 대상이었다. 민주화 시대의 거대담론과 80년대 선배들의 구호에 비하면 등록금 투쟁 같은 건 우리에게 와닿지 않았다. 신입생 환영회부터 시작한 술자리마다 학회 선배들은 레이더를 켜고 쓸 만한 인재를 찾았다. 쉽게 동요되고 '아싸'인 애를 등용해 수족으로 부리려는 것이다. 연애와 동아리 모두에 실패한 애들 몇이 짜장면과 소주, 근로장학생으로 뽑아준다는 유인책에 넘어가버렸다. 등록금 투쟁을 한다더니 몇 학기 뒤에 신입생과 함께 전공필수 과목을 재수강하던 그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진주는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리더십을 증명한 애였다. 첫 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을 맞아 서울 집에 온 그녀가 과대표가 됐다고 했을 때 탐탁지 않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진주 외에 내가 아는 그 누구도 학생회와 가깝지 않았다. 그녀는 거대 담론 아래 깔린 학내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투쟁하고 있다고 했다. 계급이니 혁명이니 하는 단어가 나오지 않아서 듣기 불편하지 않았다. 진주는 늘 이상을 꿈꿨지만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디딘 아이였다.>>


이안은 99학번이다. 90년대 후반의 학번들에게 학생운동은 역사속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 학번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늘 관심을 갖게 된다. 롤러코스터에 오르막과 내리막과 속도구간이 있듯이 90년대 초반까지 올라가기만 했던 학생운동은 90년대후반 바닥으로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급격한 하강은 순식간에 이루어졌으며 이천년대 이후 학번들은 아마도 학생운동의 롤러코스터가 뭔지도 모른채 취준생으로 대학생활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어서 그들의 이야기는 늘 궁금했다.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고자 했는지...

민주화 투쟁은 끝났을지 몰라도 노동자의 투쟁은 끝날 수 없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다. 취업을 한다는 건 직장인이 된다는 건 노동자가 된다는 것이기에 노동자로서 얼만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의식을 갖고 사회에 나오는 건지 늘 걱정이 됐다...


이안은 동료들과 노동조합을 만들게 되고 팟캐스트를 진행하게 된다. 그 팟캐스트에서 '구디 얀다르크' 라는 그녀의 두번째 인생의 이름을 얻게 된다. 꿈에서 만났던 잔다르크가 떠올라 소름돋았던 본능은 현실에서 배신으로 확인되었다.


<<노조를 만들며 정의를 말하던 이들 안에 정의가 없었다. 민주주의를 말하던 집행부 안에는 민주가 없었다. 진보를 말하던 정당에는 진보가 없었다. 모든 게 가짜였다. 구디 얀다르크, 나 역시 잔다르크가 아니었다. 가짜다. 잔다르크라면 이토록 허무하고 처참하게 전쟁에 패해 남은 날을 세는 신세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 꿈에 나와 나를 부처겼던 잔다르크가 원망스럽다. 그녀는 왕을 옹립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왕게게 죽임을 당했다. 그 왕 역시 교황의 눈치를 보느라 그랬다. 나 역시 노조를 만들었지만, 정치 구호를 외치는 이들에게 숙청당했다. 그들 역시 명문대를 나온 운동권 출신 기득권의 눈치를 보느라 그랬다. 잔다르크는 마녀재판 혹은 이단재판에 회생됐고, 구디 얀다르크는 정치적 이유로 탄핵당했다. 내가 들은 그녀의 목소리는 혹시 악마의 속삭임이 아니었을까?>>


소설은 다양한 사건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한다.

오랜 기간 IT 업계에서 일했다는 저자의 경험을 살려 IT 업계의 생태를 굉장히 능동적이고 구체적으로 표현해서 현실감이 높았다.

소설은 다양한 입장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스쳐간다.

IT 업계 관계자의 다양한 입장들을 현실정치와 노조와 노조내의 정치성까지 아우르며 폭넓게 등장시킴으로써 문제의식을 넓혔다.


그런데 너무 빠른 속도는 인물들의 심리에 깊이있게 다가갈 수 없었고 너무 많은 문제는 현실속의 희망을 찾아낼 수 없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화형을 받아들였던 잔다르크 보다, 남자때문에 스스로의 화형을 멈춘 이안의 마지막 선택은 좀 급작스럽고 아쉬웠다.

마녀재판을 받아들이고 모두를 용서하라는 성녀 잔다르크도, 현실에 산재한 수많은 문제들을 피하려고 했다가 남자의 사랑으로 갑자기 세상을 살만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얀다라크도, 비현실적으로 남았다. 소설속에 등장한 수많은 현실보다 더적나라한 현실들이 갑자기 개인의 사랑으로 꿈이었던 잊혀져 버렸다.


하지만 이 작품은 21세기형 노동소설이 맞다.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라는 말이 있을 때는 블루칼라만 노동운동하는 것 같았겠지만,

이제는 화이트칼라 그중에서도 최첨단직종이랄수 있는 IT업계의 직딩들이 얼마나 고된 노동현실 속에 있는지 이 작품만큼 정확하게 묘사한 소설은 없었다.

노동소설은 정확한 현실묘사와 있을법한 허구적 인물이 잘 어우러질 때 높은 직관력을 선물해준다.

이 소설은 가리봉동과 구로공단이 가산디지털단지와 구로디지털단지가 됐어도 여전하다는 것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단결하라 노동자들이여 라는 구호가 연대하자 프리랜서들이여 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혼자 사는 세상이 된 것 같지만, 누구도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함께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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