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속기사는 핑크 슈즈를 신는다
벡 도리-스타인 지음, 이수경 옮김 / 마시멜로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지금 당장은 모든 게 혼란스럽고 엉망이지만 그래도 난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고"

눈 떠보니 대통령의 속기사가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펼쳐지는 좌충우돌 리얼 스토리>>

 

소설가 백영옥의 추천사에 나온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의 백악관 판이라고 해야하나 "​ 라는 표현이 딱 맞는 책이었다.

26살의 젊은 여성이 취업전선에서 고군분투하다가 뜻밖에도 거대 직장에 취업을 하고 비록 말단업무를 하지만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워낙 어마무지하다보니 고급인맥을 쌓게 되고 멋진남자와 썸을 타기도 하는 그런... 시작은 딱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이 책은 굉장히 재기발랄한 문체로 씌여진 책이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쓴 인삿말부터 넘쳐나는 활발함이 느껴진다.

저자는 학생시절 아르바이트로 한국의 영어학원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때의 시간들이 너무 좋았다며 여전히 보드카보다 소주를 좋아한다고 한다. "제게 메로나 좀 보내주세요" 라는 인사글의 마무리는 시작부터 웃음을 띠게 한다.


이 책의 원제목은 < FROM THE CORNER OF THE OVAL > 이다. < 타원형의 모서리에서 > 라는 원제목을 봤을 때 백악관 말단직의 아슬아슬함을 표현한건가? 싶었는데, 검색을 좀 해보니 백악관 내 대통령 집무실이 Oval Office 이라고 한다. 타원형으로 지어져서 oval 이라고 부른다고... 대통령의 인터뷰나 연설시 가까이에서 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대통령의 말을 녹음하고 기록하는 저자의 직무위치를 충실히 반영한 제목이었다.

한국어 제목을 보면 책의 내용에 충실한 제목이지 싶다. 정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가 너무너무 연상되는 내용인지라... ㅎㅎㅎ

저자는 5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면서 구직활동을 하던 도중 어떤 사무실에서 드디어 면접 연락을 받는다. 그런데 알고보니 백악관에서 하는 일이었다. 속기사라지만 속기기술은 없어도 된단다. 녹음을 하고 나중에 타이핑하면서 교정하는 일이라. 온통 검정 정장들 사이에서 저자의 생기발랄함은 핑크슈즈에서나마 겨우 유지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출근하기 전 저자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드디어 정규직에 출근을 하게 되었는데 하지만...

<<"저도 알아요. 그무엇보다 확실한 연봉과 복지 혜택이 보장된다는 거. 그래봐야 타이핑하는 일이잖아요?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에요"

전화를 끊기 전에 아빠는 세상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고, 그리고 이 일은 역사를 바로 옆에서 목격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기록하는 일에 참여하는 매우 좋은 기회라고 말해준다.>>

 

그렇다. 직무의 중요도나 난이도는 별거 아닐지 몰라도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직접 바로 곁에서 볼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저자는 백악관에 출근하고 에어포스원을 타고 세계곳곳을 다니며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게 된다. 배경장소가 장소이니만큼 개인의 경험담에 불과할 수도 있는 그녀의 에세이는 소설보다 더 극적으로 읽힌다. 게다가 그녀의 문체는 장소가 주는 무게감과 상관없이 시종일관 가볍다.


대통령을 헬스장에서 만났을때 나 대통령 최측근 보좌진을 만났을때 그녀의 반응은 시트콤의 한 장면 같다.

<<대통령이 거듭 말을 걸어오는데도 나는 꿀 먹은 벙어리다. TV에서만 보던 연예인을 눈앞에 맞닥뜨린 기분이다. 뭐라고 해야 할지 할 말이 당최 떠오르지 않는다. 짐 쌀 때 깜빡하고 디오더런트를 안 챙긴 게 퍼뜩 생각난다. 지금 내게서 풍기는 땀 냄새가 장난 아닐 텐데!


말을 받긴 했는데 막상 할 말이 없다. 나는 이 사람을 잘 모른다. 짐캐리랑 닮은꼴이라는 말만은 하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한다. 지금 상황에 적절치도 않은 말만은 하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한다. 지금 상황에 적절치도 않은 말일뿐더러 프로답지 않게 보일 것이다.

"혹시 짐 캐리 닮았다는 말 들어본 적 없으세요?"

난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시차 적응이 안 돼서 그렇다고 치자. 아님 스파이로 몰릴 뻔한 상황을 간신히 모면해서 정신이 반쯤 나갔거나.>>


읽다보면 오바마의 인품에 새삼 반하게 된다. 그의 연설속 멋진 문장들도 감탄하게 된다. 저자는 정치에 1도 관심없었는데 백악관에서 일하게 되면서 오바마를 진심으로 따르게 된다. 멋진 리더와 함께 일한다는 것은 그 직무가 무엇이었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저자의 오바마에 대한 팬심이 담긴 기록이기도 하다. 또한 그렇게 멋진 사람들과 5년가까이 일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성장기 이기도 하다. 여하튼 저자는 참 운이 좋았다.


<<어느 순간 포터스가 하는 말이 가슴에 확 와 닿는다. 그는 역사는 기나긴 이야기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단락을 올바로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생은 짧고 이 세상은 넓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지금 쓰고 있는 단락을 올바로 써야' 한다. 그리고 무엇이 옳은지 잘 모르겠다면 '써야'한다. >>


(포터스는 오바마 대통령을 지칭하는 표현이다.)저자는 그래서 일단 쓴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내내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그때그때 기억하고자 기록하려고 노력했고 그 노력들이 결국 이 책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지금 쓰고 있는 단락을 올바로 쓰'고자 하는 오바마가 미국에 대통령으로 있을 때 한국에도 그에 상응하는 대통령이 있었다면 역사가 정말 새로 쓰여졌을 텐데... 지금은 반대로 또 올바로 못 쓰고 있다. 지금을... 역사를... 한쪽이 올바로 쓰려고 할때 다른한쪽은 자꾸 오타를 내는 것이 역사인가... 한미 대통령이 함께 지금을 올바로 쓰는 노력을 할 수 있다면 일본이 저렇게까지 나올수는 없었을 텐데...


여튼 이 책은 술술 읽혀지면서 백악관 사람들의 실제 모습을 연상해보는 경험을 하게 한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나오고 멋진 사람들도 나오고 멋지지 않은 사람들도 나온다. 다만, 저자의 바람피우는 이야기나 남자관계는 나의 정서와 맞지 않아서 좀 짜증나기도 했다. 아니 그 멋진 곳에서 일하면서 그렇게 남자에게 질질 끌려다니다니! 그 활발한 에너지로 왜 그렇게 주체적이지 못한거지? 싶어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영화 속 앤 해서웨이는 너무 예뻤고, 똑똑했으며, 프라다만 입는 악마상사에게서 배울만큼 배우고 미련없이 제갈길을 찾아 갔다.

'백악관 속기사는 핑크슈즈를 신는다' 책 속에서 저자는 20대 후반의 청춘이 겪는 직업에 대한 이상과 우정에 대한 소중함과 사랑에 대한 참모습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나가고 이 책을 시작으로 자신의 길을 시작하려 한다.

일하는 곳이 패션업계의 선두업체이건 백악관이건 청춘의 나이에 있을 법한 통통튀는 에너지가 넘치는 이야기들은 취업전선에서 땀흘리고 있는 이들에게 잠깐의 쉬는 시간을 제공해줄 수 잇을 것 같다.

모두의 도전을 응원한다. 갑자기? 갑자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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