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디 얀다르크 - 제5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염기원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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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황상벌청년문학상 수상작

꺼지지 않는 구로디지털단지의 불빛 이 시대 프로야근러가 보여주는 시원한 한 방!

월급에 삶을 저당 잡힌 직딩 노예 사이안. 모두의 워라벨을 위해 구디의 잔다르크가 되다!>>

책의 뒷표지에 한 문학평론가가 <구디 얀다르크>는 21세기형 노동소설이라고 써놓았는데, 읽고 나니 아~! 싶었다.

구디 가디 가 무슨 말인지 몰랐다.

구디는 구로디지털단지, 가디는 가산디지털단지 였다.

두 곳 모두 디지털단지 라는 이름이 붙었으나 첨단도시라는 이름과 상반되는, IT업계의 가장 밑바닥 노동층이 존재하는 동네이기도 했다.​

공단 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때는 공장이 즐비하고 공장노동자가 넘쳐났던 동네는, 디지털단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어도 소규모 월세오피스들이 다닥다닥 붙은 곳에서 비정규직 젊은 인력이 소모되고 있는 동네로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이 작품은 구디와 가디를 오가며 IT업계에서 위아래를 오르내리는 직업을 전전한 프로야근러가 어느새 잔다르크의 후예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사이안. 줄여서 이얀언니라 불리고 나중에 잔다르크와의 합성어인 얀다르크 라는 별칭을 갖게 된 직장인이다.

그녀는 어느날 잔다르크 꿈을 꾼다. 조국에게 버려진 채 적진에서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하는 순간까지 의연했던 잔다르크는 이안에게 속삭인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네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볼게">>

잔다르크 꿈을 꾸고 불려나간 술자리에서 부지불식간에 그녀는 참전을 하게 된다. IT 업계의 노동인권전쟁속으로.


이안은 행복하지 않았다. 아니 행복한 적이 별로 없었다.

평범했다고 생각했던 가정은 IMF의 직격탄을 맞았고, 그 여파는 가족의 파괴로 이어졌다. 그녀는 늘 혼자였다. 혼자였지만 끊임없이 일했다. 아니 혼자였기에 끊임없이 일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된 방한칸 차한대 가지지 못하고 마흔이 되었다.


처음 직장생활은 그래도 남부럽지 않은 회사에서 시작했다. 나름 성취의 맛도 보았고 승진도 해보았다. 하지만 곧 실력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투명한 어항 속 한가득 담은 깨끗한 물도 검은 잉크 한 방울에 더러워진다. 그 더러워진 물을 정화하겠다고 굳게 마음먹은 물 한 방울이 뛰어 들어가봤자 깨끗해지지 않는다. 그 물 한 방울도 금세 수많은 검은 물방울 중 하나가 될 뿐이다. 그 어항을 깨끗하게 하려면 정말 많은 물이 필요하다. 차라리 물방울이 아닌 작고 뾰족한 망치가 필요하다. 어항을 깨뜨려 더러워진 물을 모두 빼낸 후 새 어항에 깨끗한 물을 붓는 게 빠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 기록된 위대한 인물은 뾰족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대중은 뾰족한 것보다는 부드럽고 쉬운 것에 끌린다. 어항을 깨자는 과격한 사람보다 더러운 물을 한 숟갈씩 떠내고 깨끗한 물을 한 숟갈씩 넣자는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하던 사람에게 권한을 이양해주었다. 그렇게 권한을 얻은 이가 더러운 물을 떠낸 적도, 깨끗한 물을 넣은 적도 없다. 물이 더럽다고 하는 이의 뒤통수를 망치로 후려갈겨 조용히 시킨 후 깨끗해지고 있다고 소리칠 뿐이다.>>


이 어항속 물과 한숟가락의 물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속 노동현장과 그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관통한다. 현실을 드러낸다.


이안에겐 친구가 한 명 있다. 속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친구. 그 친구는 진주.

진주의 신혼집에서 친구와 친구의 남편될 사람과 화기애애한 술자리를 하며 나오는 이안의 속내는 편하지가 않다...

<<무릎이 튀어나온 트레이닝 바지에 솜으로 누빈 패딩 점퍼 차림, 그리고 질끈 묶은 숱 많은 머리. 대학 시절 내내 보여줬던 그녀의 모습과 달라진게 없다. 단과대 학생회장을 맡아  서울까지 올라가 피켓을 들었던 투사는 이제 반지하 신혼집에서 생계와 투쟁하게 될 것이다. 같은 단칸방이지만 그래도 풀옵션 오피스텔에 사는 나와 달리 자본주의 생태계에서 도태된 것처럼 보였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풀옵션 원룸에서 쾌적하게 살 때 이안은  진주가 도태된 것 같았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이안의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능력도 없이 성추행이나 일삼는 상사를 벗어나 이직했을 때만 해도 그녀의 이력은 화려했고 갈 곳도 많았다. 함께 일했던 동료의 제안으로 스타트업 회사에 들어가서 새로운 직무를 할때는 비전도 있고 의욕도 있었다. 하지만 IT 업계의 변화는 너무 빨리 진행되었고, 작은 사무실들은 무너져 갔으며 남은 것은 거대기업에서 하청에하청에하청을 받아 일하는 피라미드같은 문어발세계의 비정규직 임시노동 뿐이었다.


<<그녀가 도움을 구하기 위해 찾아왔을 때 나는 가디에서 시작한 SI업체 유랑기를 마친 뒤였다. 수많은 공장노동자가 근무했던 가리봉동, '공순이'가 눈물을 흘리며 미싱을 돌리던 동네다. 가산동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높은 빌딩이 들어섰지만, 공장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미싱 대신 노트북으로 장비가 교체됐고 섬유 공장이 IT 공장으로 변했다. 나 역시 노트북 하나를 받아 파워포인트나 엑셀과 씨름하며 하루 열다섯시간씩 노동했다. 여행 사이트를 구축하고 쇼핑몰 앱을 만들었다.>>


이안은 세상이 변한 것 같지만 변하지 않은 것을 진즉에 깨달았다.


<<우리 세기말 학번에게 운동권은 개그나 조롱의 대상이었다. 민주화 시대의 거대담론과 80년대 선배들의 구호에 비하면 등록금 투쟁 같은 건 우리에게 와닿지 않았다. 신입생 환영회부터 시작한 술자리마다 학회 선배들은 레이더를 켜고 쓸 만한 인재를 찾았다. 쉽게 동요되고 '아싸'인 애를 등용해 수족으로 부리려는 것이다. 연애와 동아리 모두에 실패한 애들 몇이 짜장면과 소주, 근로장학생으로 뽑아준다는 유인책에 넘어가버렸다. 등록금 투쟁을 한다더니 몇 학기 뒤에 신입생과 함께 전공필수 과목을 재수강하던 그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진주는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리더십을 증명한 애였다. 첫 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을 맞아 서울 집에 온 그녀가 과대표가 됐다고 했을 때 탐탁지 않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진주 외에 내가 아는 그 누구도 학생회와 가깝지 않았다. 그녀는 거대 담론 아래 깔린 학내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투쟁하고 있다고 했다. 계급이니 혁명이니 하는 단어가 나오지 않아서 듣기 불편하지 않았다. 진주는 늘 이상을 꿈꿨지만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디딘 아이였다.>>


이안은 99학번이다. 90년대 후반의 학번들에게 학생운동은 역사속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 학번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늘 관심을 갖게 된다. 롤러코스터에 오르막과 내리막과 속도구간이 있듯이 90년대 초반까지 올라가기만 했던 학생운동은 90년대후반 바닥으로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급격한 하강은 순식간에 이루어졌으며 이천년대 이후 학번들은 아마도 학생운동의 롤러코스터가 뭔지도 모른채 취준생으로 대학생활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어서 그들의 이야기는 늘 궁금했다.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고자 했는지...

민주화 투쟁은 끝났을지 몰라도 노동자의 투쟁은 끝날 수 없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다. 취업을 한다는 건 직장인이 된다는 건 노동자가 된다는 것이기에 노동자로서 얼만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의식을 갖고 사회에 나오는 건지 늘 걱정이 됐다...


이안은 동료들과 노동조합을 만들게 되고 팟캐스트를 진행하게 된다. 그 팟캐스트에서 '구디 얀다르크' 라는 그녀의 두번째 인생의 이름을 얻게 된다. 꿈에서 만났던 잔다르크가 떠올라 소름돋았던 본능은 현실에서 배신으로 확인되었다.


<<노조를 만들며 정의를 말하던 이들 안에 정의가 없었다. 민주주의를 말하던 집행부 안에는 민주가 없었다. 진보를 말하던 정당에는 진보가 없었다. 모든 게 가짜였다. 구디 얀다르크, 나 역시 잔다르크가 아니었다. 가짜다. 잔다르크라면 이토록 허무하고 처참하게 전쟁에 패해 남은 날을 세는 신세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 꿈에 나와 나를 부처겼던 잔다르크가 원망스럽다. 그녀는 왕을 옹립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왕게게 죽임을 당했다. 그 왕 역시 교황의 눈치를 보느라 그랬다. 나 역시 노조를 만들었지만, 정치 구호를 외치는 이들에게 숙청당했다. 그들 역시 명문대를 나온 운동권 출신 기득권의 눈치를 보느라 그랬다. 잔다르크는 마녀재판 혹은 이단재판에 회생됐고, 구디 얀다르크는 정치적 이유로 탄핵당했다. 내가 들은 그녀의 목소리는 혹시 악마의 속삭임이 아니었을까?>>


소설은 다양한 사건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한다.

오랜 기간 IT 업계에서 일했다는 저자의 경험을 살려 IT 업계의 생태를 굉장히 능동적이고 구체적으로 표현해서 현실감이 높았다.

소설은 다양한 입장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스쳐간다.

IT 업계 관계자의 다양한 입장들을 현실정치와 노조와 노조내의 정치성까지 아우르며 폭넓게 등장시킴으로써 문제의식을 넓혔다.


그런데 너무 빠른 속도는 인물들의 심리에 깊이있게 다가갈 수 없었고 너무 많은 문제는 현실속의 희망을 찾아낼 수 없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화형을 받아들였던 잔다르크 보다, 남자때문에 스스로의 화형을 멈춘 이안의 마지막 선택은 좀 급작스럽고 아쉬웠다.

마녀재판을 받아들이고 모두를 용서하라는 성녀 잔다르크도, 현실에 산재한 수많은 문제들을 피하려고 했다가 남자의 사랑으로 갑자기 세상을 살만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얀다라크도, 비현실적으로 남았다. 소설속에 등장한 수많은 현실보다 더적나라한 현실들이 갑자기 개인의 사랑으로 꿈이었던 잊혀져 버렸다.


하지만 이 작품은 21세기형 노동소설이 맞다.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라는 말이 있을 때는 블루칼라만 노동운동하는 것 같았겠지만,

이제는 화이트칼라 그중에서도 최첨단직종이랄수 있는 IT업계의 직딩들이 얼마나 고된 노동현실 속에 있는지 이 작품만큼 정확하게 묘사한 소설은 없었다.

노동소설은 정확한 현실묘사와 있을법한 허구적 인물이 잘 어우러질 때 높은 직관력을 선물해준다.

이 소설은 가리봉동과 구로공단이 가산디지털단지와 구로디지털단지가 됐어도 여전하다는 것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단결하라 노동자들이여 라는 구호가 연대하자 프리랜서들이여 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혼자 사는 세상이 된 것 같지만, 누구도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함께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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