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 미트 - 인간과 동물 모두를 구할 대담한 식량 혁명
폴 샤피로 지음, 이진구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고기는 우리의 식탁과 이 세계를 얼마나 달라지게 할 것인가

사육과 도살이 사라진 미래가 온다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생명공학의 결정체 클린미트!

더 나은 지구를 위한 첨단과학 최전선의 경이로운 이야기!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는 내 인생책 중 한 권이다. 앞서 읽었던 무수한 역사책과 철학책과 과학책을 통틀어 이렇게 혁신적이면서도 잘 융합한 책이 없다 싶었었다. 그 유발 하라리가 <클린 미트> 의 서문에서 도발적으로 묻는다. "두 개의 미래,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한쪽의 미래는 기존대로 공장식 사육에 의해 인간이 고기를 먹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인구가 더더더 많은 고기를 먹으며 지구를 황폐화시키는 것이고, 다른 한쪽의 미래는 공장식 사육 없이 도축 없이 지구환경개선에 큰 변화를 가져오면서 동물복지를 고려한 청정고기를 먹는 것이다. 이렇게 양면을 보면 한쪽을 선택하기 쉬운 것 같지만, 의외로 이 문제는 굉장히 복잡다단할 수 있음을 책을 읽어나가며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 어려운 선택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해야하는지 조금씩 수긍해 나가게 된다.


이 책에서는 미국에서 현재 진행중인 다양한 생명공학 관련 스타트업 회사들의 도전이 소개되고 있다. 과학자들이 왜 벤처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는지 미국식 경제논리에 의해 업계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설명되어지고 있다.


2011년에 세워진 Modern Meadow 는 실험실에서 고기와 가죽을 만들어내는 최초의 상업 벤처 기업이다. 모던미도의 포르각스 는 소 없이도 고기와 가죽을 만드는 공정을 개발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가 만들어낸 스테이크 칩 한조각을 맛본 저자는 깜짝 놀란다. 정말 '고기' 같아서! 저자는 이렇게 세계 최초로 클린미트를 시식하면서 여러가지 의문이 든다. 수많은 동물 생산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면 사람들이 과연 받아들일 것인가? 축산업의 해악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미래 식량이 될 수 있을까?


인간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금도 천연자원의 고갈에 허덕이는 우리 지구는 앞으로 늘어날 수십억의 인구를 무슨 수로 감당할 수 있을까? 1960년 이후 인구가 2배 늘어날 동안 동물 생산물의 소비는 5배 증가했다 ... 예측에 따르면 2050년에는 90억~100억 명의 인구가 지구상에 발을 딛고 살게 된다. 그중 대다수가 서양인, 특히 미국인처럼 호사스럽게 먹을 여유가 생긴다면 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얼마나 막대한 양의 땅과 다른 자원이 필요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 미국에서 식용으로 쓰이는 동물의 숫자가 지구상의 인구보다 많다. 그리고 이 동물들은 거의 평생 동안 농장이 아닌 수용소나 다름없는 공장 안에 갇혀 산다. (p. 21)

닭 한 마리가 알에서 시작해 진열대에 오르기까지 1갤런(약3.78리터)짜리 물통 1,000개 분량의 물이 필요하다. 즉 저녁 식탁에서 닭 한 마리를 줄이면 6개월 동안 샤워를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많은 물을 절약할 수 있다. .. 달걀 하나당 물50갤런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닏. 50갤런이면 욕조 하나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1갤런을 생산하기 위해 물900갤런이 필요한 우유는 또 어떤가. 이 정도면 목욕탕도 채울 수 있다. ... 지금처럼 고기, 우유, 달걀을 지속적으로 소비하고 싶다면 현재 수준과는 비교도 안 될 효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p. 22)


모든 것의 발전에는 가속도가 붙는 시기가 있는 것 같다. 그런 시기를 혁명이라고 부른다면 지금의 클린미트 관련 내용은 분명 혁명적이다.

예전에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에서는 '육식주의' 에 대해 맹렬히 비판하면서 모든 동물 생명체에 대한 공감을 호소한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이 책처럼 사람들에게 '가치관' 을 통한 변화를 유도했었다. 하지만 가치관의 더딘 변화를 기다리지않는 과학기술들이 빠르게 등장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구의 증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과학의 발달로 유지될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적어도 효율성 측면에서는 분명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클린미트의 핵심은 효율성 보다 의외로 '윤리'기반에 대한 현실적 벽을 마주하고 있다. 클린미트를 정말 고기 라고 사람들이 이해하게 될까? 고기를 먹어야 하냐는 질문과 무엇이 고기인가 에 대한 질문은, AI 발달에 의한 무인자동차의 기본적 윤리기준에 대한 논쟁을 떠오르게 하면서, 과학의 발전 속도에 사람들의 인식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또한번 드러내는 것 같았다.


무엇이 천연 혹은 자연스러운 것이냐는 질문에는 명확한 대답이 없는 실정이다. 인간이 유전적으로 선별하기 전에 존재하지 않던 동물(개의 거의 모든 품종)은 천연인가? 오늘날 우리가 먹는 육계는 빠르게 성장하여 비만해지도록 유전적으로 선별된 종이다. 이런 과정은 '천연'과는 거리가 멀지만 장을 보면서 이 점을 신경 쓰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p. 277)

칠면조 세포 배양 과학자 기번스는 "가축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 이라고 했다. 기번스는 엄청난 동물애호가다. 하지만 기번스는 우리가 가축을 덜 키워서 야생동물들이 자유롭게 살아갈 땅을 남겨두었더라면 이 세상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가축이나 우리 인간에게 더 나은 장소가 되었을 거라고 믿는다. (p. 289)

철학자 리스 서던은 도축하는 순간이 슬플지라도 잠깐 지구의 삶을 즐겼다가 빠르게 죽는 소가 더 가치 있는 존재라고 했다. 이런 이유로 서던은 '죽음이 없는 고기' 를 '애초에 죽일 목숨이 없던 존재' 라고 일침을 날린다. (p. 290)

몇천 년 혹은 고작 몇백 년 전에 가축이 된 동물들에게 '멸종'이라는 표현이 적합한지에는 의문이 든다. 만약 인간이 유전자를 선택적으로 남기기 전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개 품종을 갑자기 키우지 않게 되었다고 해서 이들이 없는 상태를 '멸종'이라 볼 수 있을까? 동물의 가축화, 즉 야생동물을 선택적으로 교배하여 인간에게 생존을 의지하는 유순한 존재로 만든 과정은 또 다른 질문거리다. 하지만 이런 동물의 부재를 어떤 단오로 표현하든 도덕적으로 중요한 의문임에 틀림없다. (p. 291)


'기준' 에 대한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난다. 클린미트가 고기냐 에서부터 그동안 인간이 고기를 먹기위해 행동해온 역사를 되돌아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들은 정말 다양한 입장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해되고 인식되고 하는 것과는 별개로 과학은 쉬지않고 새로운 도전들을 하고 있는 중이다.


세포농업은 근육세포나 피부세포 등 살아 있는 세포의 증식을 유도하여 식품이나 의복을 만드는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무세포농업은 효모, 세균, 조류, 진균 등 미생물을 다루며, 지방이나 단백질 등 살아 있지 않는 특정 유기물 분자를 생산하는 영역을 포함한다. 무세포농업에서는 동물 생산물을 제조하는 과정에 동물이 쓰이지 않는다. 실제 동물의 생검으로 세포를 얻는 방법을 지양하고 효모나 기타 미생물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들이 동물없이 만드는 단백질은 동물 생산물에 포함된 목표 단백질과 완전히 동일하다. 달리 표현하면 청정고기 생산자들은 세포를 '원료'로 식품을 만들지만 무세포 식품업자들은 세포를 '이용'해 식품을 얻는다. (p. 236)


실험실 배양액 속에서 만들어지는 세포고기인 클린미트도 이제 겨우 알게 됐는데, 아예 동물세포도 필요없이 DNA 서열변경 만으로도 만들어내는 무세포농업이라니... 과학은 수시로 사람을 우물안개구리 로 만들어버린다. 직접 씹어먹는 고기 는 현실적으로 아직 제품으로 상용화되어 나온 것이 없지만, 무세포농업 제품은 이미 현실속에 구체화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웠다. 그리고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GMO 와의 차이에 대해서도 소비자로서 큰 혼란을 느낄 수 밖에 없겠구나 싶어서 현실속에서 좀더 정확하고 빠른 정보가 확산되었으면 싶은 아쉬움이 들었다.


등유는 석유에서 추출한 것으로 고래 기름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저렴한 대체제였다. 1854년 게스너가 등유를 상용화했을 당시 미국 포경 선단은 전 세계의 바다를 돌며 매년 8,000마리 이상의 고래를 잡아 죽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듬해 점점 더 많은 미국인들이 고래 기름 대신 등유로 집 안을 밝히면서 19세기 전반 동안 매년 증가하던 미국 고래 선단의 숫자가 급속도로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p. 48)

마찬가지로, 더우나 추우나, 비가오나 눈이 오나 사람과 물건을 실어 나르던 불쌍한 말들에게 채찍을 휘두르고 고함을 치던 소리가 도시의 거리를 가득 채웠던 시절이 있었다. 뉴욕시에 어찌나 말이 많았는지 1880년 미국 정부가 전문위원회를 소집하여 1980년에 도시가 어떤 모습이 될지 예측하게 한다. 전문가들은 만장일치로 뉴욕시가 100년 안에 말똥에 파묻혀서 사라질 것이라 예측했다. 하지만 결국 거리의 말들을 노동에서 해방시키고 뉴욕시를 말똥으로부터 구한것은 인도적인 감정이나 환경을 걱정하는 마음과 무관했다. 등유가 고래를 살렸듯이 내연기관이 주요 교통수단으로 말을 대체했다. 말을 구한 것은 사회운동이 촉발한 도덕적 논증이 아닌 어느 발명가의 상상력이었다. 심지어 당시 대중은 차를 원하지도 않았다. (p. 49~51)


현실에서의 인식수준이 어떠하던 간에 한번 발견된 과학적 사실은 현실을 바꿀 위력을 갖고 있음을 역사속에서 우리는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현실적 필요가 모든 가치들에 당위성을 부여해 주기도 한다. 전세계 인구가 채식주의자가 되지 않는 이상,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 이상, 클린미트는 점점 더 핵심적 화두가 될 수밖에 없다.


동물복지, 환경, 식품 운동가들의 노력이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공장식 사육이 지금도 미국 축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사람들이 싼 것을 찾는다는 이유로 거의 모든 미국산 동물 생산물이 밀집식 사육 시설에서 꾸준히 생산되고 있다. 식품을 선택할 때 윤리나 환경을 중시하는 소수 소비층도 존재하겠지만 대부분의 일반인은 가격과 맛 그리고 편의성에 중점을 둔다. 공장식 고기 생산이 지구에 미치는 나쁜 영향이 점점 사람들 머릿속에 인식되고 있지만 밀집식 사육 시설에서 만들어진 고기의 수요를 꺾으려면 인식만으로는 역부족이다. (p. 82)


고기 수요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도 중요하지만, 더 현실적인 문제는 산업과 제도적 측면이다. 동물의 생산, 사육, 도축을 담당하는 대형 기업은 물론, 수십억 마리의 동물들을 먹이기 위해 재배하던 작물 농업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미국 대두의 최대 구매자는 두부 업체가 아니라 축산업체다. 대두 생산자들은 미국인이 고기 대신 두부나 풋콩 등 콩 제품을 섭취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 오히려 콩의 소비량이 줄기 때문이다. 고기수요를 맞추기 위해 농장을 만드느라 자연을 훼손하고 그 동물들을 먹이느라 재배지를 넓히기 위해 또 자연을 훼손하고 그 많은 동물들을 도축하느라 폐기물이 또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러한 현실을 굳이 보려 하지 않는다. 축산업자들과 비료업자들이 든든하게 그러한 현실을 감추고 있다. 하지만 클린미트가 등장했다. 아직은 대부분 위기감을 못느끼며 무시하고 있지만, 우리는 '코닥필름' 이 어떻게 망했는지 알고 있다.


입맛은 변하게 마련이고 식품을 생산하는 사람들도 변해야 한다. 소비자의 취향이 급변하는 일은 식품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행사 대신 익스피디아 예약 사이트가 생겼다고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넷풀릭스의 대약진으로 블록버스터 비디오 대여점이 없어졌다고 눈물 흘린 사람이 있는가? 한때 우리가 필요로 했던 모든 직업은 비교우위에 있는 산업이 등장함에 따라 점차 사라지게 된다. (p. 117)


우리는 사라지는 직업들에 대해 항상 예민하다. 당장 먹고사는 일이 걸린 문제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라지는게 있으면 새로 생기는게 있기 마련이다. 변화를 눈여겨보고 빠르게 준비하는 것이 없어지는 것을 지키기 위해 버티는 것보다 현실적이지 않을까.


빌 게이츠는 2016년 인터뷰에서

"앞으로 우리와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들을 지원할 것입니다. 농업 분야의 인공 고기도 그중 하나이며 이미 연구를 시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기는 온실가스의 주범이기도 하죠. 고기를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동물학대 등 수많ㅇ느 문제를 피해갈 수 있으며 더 적은 비용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몇 년간 식물성 고기 개발을 지원해왔던 빌 게이츠는 2017년 브랜슨, 잭 웰치 등 업계 거물들과 함께 청정고기 분야에도 투자를 시작했다. 브랜슨은

"우리는 30년 안에 더 이상 어떤 동물도 죽이지 않고 모두 동일한 맛의 청정고기나 식물성 고기를 먹게 되리라 믿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할아버지 세대가 고기를 먹기 위해 동물을 죽이던 모습을 돌아보며 옛날에는 그런 시절도 있었다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p. 28)


세계 경제의 흐름을 유도하는 사람들이 세포농업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해야 할 상황이다. 우리는 이 분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얼만큼 연구가 되고 있는가? 이러다 미국산 도축 고기는 안 먹더라도 미국산 클린미트를 전량 수입해 먹게 되는 건 아닐까? ;;;


사실 사람들이 어떤 필요를 동물에 의지하지 않게 되어야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도 나타나는 것이다. 가령 19세기에 불을 밝히는 주연료로 등유가 고래 기름을 대체하자 고래 복지에도 관심이 쏟아지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자동차가 발명되자 사람들은 말을 더 감상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p. 294)

인간의 위대한 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여 행위와 감정이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러 증거들을 통해 확인되었다시피, 우리는 자신의 행위가 논리적인 신념에서 나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하고 싶은 행동에 신념을 맞춘다. 그리고 인간이 끊임없이 하고 싶어 하는 대표적인 행동이 고기를 먹는 것이다. (p. 297)

기업과 비영리단체 그리고 여기 소개된 사람들은 물론, 앞으로 몇 년 내에 새로 생겨날 수많은 스타트업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도록 효율성을 높여줄 것이다. 그들은 기후변화와 환경보호에서부터 세계의 기아와 동물학대까지 우리 세계가 직면한 무수한 문제의 해결책을 개발할 것이다. 고기와 동물 생산물을 세포나 작은 분자로부터 만들고 이 과정에서 살아 있는 모든 동물들을 배제한다면 현재 기존 축산 업계에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효율성의 증가를 이룰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일으킬, 또 다른 녹색혁명이다. (p. 299)


이 책에서 읽는 내용 거의 모두가 새로 알게되는 것들이었다. 정말? 의구심이 들었다 아...그랬었지... 회의감이 들었다가 그렇다면? 가능성을 생각하게 됐다. 나는 고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클린미트를 먹어보고 싶기도 했다. 쉽게 생각하자면 클린미트는 그야말로 더 깨끗하고 더 마음편한 고기이지 않은가?!


이 책은 지극히 미국식으로 쓰여진 책이다. 미국인이 쓴 책이니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올해 읽었던 '침묵의 봄' 이나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라는 책과 같은 형식으로 쓰여진 책이라 읽는 내내 조금씩은 쉬어감이 필요한 책이었다.

내가 미국식으로 쓰여졌다 표현한 이 책들은, 미국식 문장과 한국식 문장이 다른 것처럼 서술 구조가 다르다는 의미이다.

영어는 주어와 서술어가 먼저 나오지만 한국어는 주어를 시작으로 서술어로 문장을 마무리한다. 어떤 주장을 펴내는 책들이 미국책인 경우 주장은 시작부터 이미 나와있다. 주어와 서술어를 알고 시작하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책을 다 읽어야 하는데 그게 같은 주장에 대한 반복적인 증명들 일 수밖에 없어서 한국식 서술구조에 익숙한 나로서는 읽기가 쉽진 않았다. 주어를 시작으로 내용이 이러이러이러하니 결론이 이렇다 라고 풀어주는 한국식 서술구조를 가진 책이 아무래도 읽기엔 편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참 좋은 책이었다.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해준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책은 다가올 미래에 꼭 필요한 질문들과 도전들을 담고 있었다. 그 질문이 한국에서도 물어지고, 그 도전들이 한국에서도 시작되길 응원해 본다. 클린미트를 먹더라도 나는 한국산 청정고기를 먹고 싶다는 개인적 욕망때문에라도. 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공연한 고양이
최은영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양이 시점 짧은 소설

작은 이웃과 가까워지는 열 편의 짧은 소설

 

 

이 책은 고양이와 관련된 아주 짧은 단편소설 10편을 모은 작품집이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길래 이렇게 한 권으로 그 작가들의 글을 모아 읽을 수 있다니~ 하며 기쁜 마음으로 읽었다.

더구나 나는 개 보다는 고양이가 좋은데, 평소 좋아하는 작가들이 대부분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는 공통점을 알게되니 왠지 더 반갑기도 했다.

네 마리 고양이를 만난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는 최은영 작가의 '임보일기' 는

아끼던 고양이와 사별 후 주차장에서 구조한 고양이를 임시보호하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담은 작품이다.

임시보호란 그야말로 임시보호다. 고양이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그래서 위험에 처한 길냥이를 지나칠 수 없어 구조하지만, 키울 수 없는 상황에서 적당한 가족을 찾을 때까지 임시로 보호하는 기간...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함께 한 시간은 온통 진심이었다.

그녀는 이 끝이 어떨 것일지를 다 알면서도, 다시 시작하려 하는 사람이었다. ...

더 정을 주지 않으려고 이름조차 짓지 않 았는데도, 피부를 맞대고 맥박을 느낀 다정한 존재의 무게가 가벼울 수는 없었다. (p.21)

 

동사의 위기에서 구조한 한 줌 고양이를 2년 만에 '혹시 타고 다니는 건 아니냐'고 의심받는 거대 고양이로 키워냈다는 조남주 작가의 '테라스가 있는 집' 은 고양이의 실종과 만남을 한 커플의 결혼과 파혼으로 연결하여 운명과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헤어졌을 때 거짓말처럼 고양이가 돌아왔다.

유성을 만나고 결혼을 결심하고 준비하던 모든 시간이 꿈같았다. 어쩌면 이제까지의 삶에서 가장 무겁고 중요한 일이 홀린 듯 흘러와버렸다. 유성과 지나 자신, 또 결혼 생활 자체에 대해 꼼꼼히 알아보고 검토해서 결정한 것이 아니다.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신호등의 초록불이 들어오기에 건넜다. 꼭 이번 신호에 건너야 하는 것도 아닌데, 목적지가 길 건너에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러고는 그 발걸음에 스스로 운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p. 37)

방심한 모습으로 낮잠을 자는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정용준 작가는 '세상의 모든 바다' 에서 사라져 가는 마을에 홀로 남아 바다에 갔다는 부모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백설과 떠돌이 트럭기사 무운의 인연을 고양이가 이어주고 있는 작품이다. 순박한 사랑과 자연의 조화에 대해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마음 약한 사람이 실망을 이기지 못해 우울하게 얼굴이 내려앉은 듯 파스칼의 표정이 딱 그랬다. (p. 54)

이제 인연이 닿지 않는 친구는 궁금하지 않지만 그 집 고양이는 가끔 생각난다는 이나경 작가의 '너를 부른다' 는 한 소녀가 고양이에게 하는 독백이다. 언니가 돌보던 길냥이들의 대장격인 '그림자' 라는 고양이에게 잃어버린 언니의 복수를 이야기하는 소녀의 슬픈 고백이다.

그림자야, 언니는 네가 특별하댔어.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만 언니는 그렇게 믿었어. 그러니 정녕코 네게 신통한 능력이 있어 사람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간곡히 바라건데 내 소원을 좀 들어주렴. ... 그러니까 꼭 좀 부탁해.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제 그만 나와. (p.76)

 

20년차 집사라는 강지영 작가의 '덤덤한 식사' 는 화자가 고양이 영혼이다. 길냥이 어미를 잃고 용감한 형제의 도움으로 생명을 이어가던 냥이가 전염병으로 죽었으나 그 영혼이 형제의 곁을 맴돌며 지켜본다. 동물병원에 살게 되었으나 녹록치 않은 현실에서 덤덤히 살아가는 자신의 형제를...

너는 다나에게 발톱을 세우지 않았다. 그저 흔해빠진 겁쟁이 고양이가 아니란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바늘과 가루약과 처방식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 너는 10퍼센트에 속하는 고양이였지만 자신의 생존조차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p. 87)

 

고양이 눈, 고양이 입, 고양이 소리, 사람들은 비난조로 말하지만, '저 피사체 좀 치워버리라' 는 그의 말처럼 그것이 결코 비난의 도구가 될 수 없음을 이제는 누구라도 알듯 저자도 알게 된듯 박민정 작가는 '질주' 에서 피사체가 되었던 20살 새내기 여대생의 상처를 들춰낸다. 이제 상처가 아니라는 듯. 하지만 여전히 잊지 않고 있다는 건 생생한 기억이 여전히 상처라는 증거 아닐까....

암막커튼을 쳐 컴컴한 방 어딘가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주인이 건사하지 못한 고양이는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여기저기 쏘다녔다.

어둠 속에서 윤성 선배가 뱃살이 늘어져 보일 만큼 뚱뚱한 고양이의 뒷목을 잡고 들어 올리며 했던 말을 잊지 못한다. 이것 좀 어디 갖다 버려라. (p.97)

 

지난 봄에 꽃나무를 잡고 자는 고양이 얌이를 만났다는 김선영 작가는 '식초 한 병' 에서 얌이의 꽃나무를 잡고 자는 장면을 그대로 담아낸다. 작가들에겐 인상적인 장면 하나가 작품 하나로 풀어내질수도 있구나 싶은 것이 신기했다. 누구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는 고양이 얌이는 사실 누구에게나 곁을 내주고 있는 고양이 이기도 했다. 아무렇지 않은 얌이의 행동은 작가의 마음도 아무렇지 않게 풀어준 듯 했다.

내가 살던, 내가 알던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내가 세상 이편에서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시간이다. 어린 내가 나보다 더 어린 동생의 학비를 대라는 엄마의 말에 접어야 했던 일이었다. 안락한 일상을 유지해줄 것 같은 남자를 만났으나 나보다 더 안온한 일상을 원하는 남편 때문에 미루어졌고, 뒤이어 오로지 나에게 의지하는 한 생명을 맞고 키우느라 또 눌러야 했다. 소설을 쓰겠다고 했을 때,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특히 남편은 이제야 그런 걸 해서 뭐 하냐고 괜히 헛힘 쓰지 말라고 했다.

얌이는 지금 어떤 시간일까, 어젯밤 얌이의 울음소리는 더욱 애잔했다. (p. 123)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삶은 그다지 무겁지도 슬프지도 불행하지도 않을지도 모른다. 얼마든지, 얼마든지. (p. 131)

 

빵집 앞 풀숲에서 발견된 검은 새끼 고양이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김멜라 작가는 '유메노유메' 에서 인간으로 변한 고양이 유메의 이야기를 한다.

유메는 고양이와 인간을 넘나들며 미애의 꿈에 찾아와 미애를 위로했다.

까많고 말랐던 새끼 시절, 잠든 미애의 가슴에 올라와 한없이 여린 숨결로 미애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그 밤들처럼. (p. 152)

 

묘령 열다섯 살 고양이와 살고 있다며 이 문장이 오랫동안 과거형이 아니게 되기를 바란다는 양원영 작가는 '묘령이백' 에서 이백살이 넘은 고양이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고양이가 어느새 할머니 나이가 됐지만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어하는 작가의 바람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저승차사가 데려가야 하는 반려동물들 영혼 중에서 유일하게 데려가지 못하는 묘령이백이 ㅎㅎ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저승사자가 되려면 성격이야 어쨌든 심성이 착해야 하는데, 심성이 착하니 성격이 아무리 괴팍해도 동물의 미련을 쉬이 끊질 못하는 것이다. 생전 닳을 만큼 닳아 사람을 싫어하는 차사도 예외는 없다. 애초에 놈들에게 모질게 구는 자들은 지옥에 끌려가 없기도 하고.

동물들의 영혼은 인간보다 순수하고, 때 묻지 않고, 특히 반려동물이라는 놈들은 제 주인이 저를 그렇게 학대해도 주인만 생각하는 미련한 놈들 천지다. 갓난쟁이와 아이들 영혼을 회수하는 부서와 더불어 차사들이 오래 버티지를 못한다. (p. 157)

여전히 건강해서 아무튼 나는 기쁘다. 기뻐하는 내가 참 싫다. 언젠가 네가 묘령천으로 불리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바라는 내가 참 싫다. 놈을 뒤로 하며 나의 한심함을 지독하게 곱씹는 것이다. 대체 고양이가 무엇이기에. (p. 169)

 

길에서 고양이를 만나는 날은 기분이 좋고, 우주 어딘가에 고양이들이 모여 사는 행성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는 조예은 작가는 '유니버셜 캣샵의 비밀' 에서 지구의 고양이들을 원래 행성으로 보내준다. ㅎㅎ

그날, 전 세계 곳곳에서 날아오르는 별똥별들이 목격되었다. (p. 189)

단편치고도 초경량 단편들이다 보니 순식간에 읽게 되는 이 작은 소설집은 때로는 따듯했다가 때로는 슬펐다가 때로는 처참했다가 때로는 다독여주다가 때로는 웃음짓게 한다. 고양이들이 독자를 들었다놨다 한다.ㅋㅎㅎ 그렇게 공공연히 볼 수 있는 고양이들을 공공연히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무심한 존재는 가벼이 지나치게 되지만 다정해진 존재는 무게감이 생기기 마련이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사와 함께 떠나는 소아시아 역사문화산책 - 터키에서 본 문명, 전쟁 그리고 역사 이야기
조윤수 지음 / 렛츠북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거석문화의 웅장함을 보여준 괴베클리 테페,

히타이트 제국의 도시 하투샤

최초의 동서양 전쟁이 일어났던 트로이,

산 정상에 무덤이 있는 넴루트

바빌론,미타니 문명의 한 자락이었던 안티오크까지!

 

 

저자는 외교관으로 미국, 러시아, 독일, 싱가포르, 쿠웨이트, 터키에 근무했었다고 한다. 2014~2017 주 터키대사를 마지막으로 37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지내고 있다고 한다. 외교관이라... 그야말로 꿈의 직업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다른나라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멋있는 일 같고 새로울 것 같고 뿌듯할 것 같다.

젊어서는 일부러라도 많은 경험을 하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대학생이 되자마자 하고 싶은 일이 배낭여행이 아니던가. 그런데 37년간의 외국생활이라... 그것도 외교관으로서... 생각할수록 참 부럽다. ㅎㅎ

터키는 소아시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냥 별 생각없이 역사책에서도 소아시아라고 나오면 음~터키! 하며 그냥 읽었었는데, 새삼스럽게 생각해보니 하나의 국가를 왜 소아시아라는 대륙명칭으로 부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은, 아마도 터키에 거의 모든 문명의 기원이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터키는 역사적으로 굉장히 의미깊은 나라이다. 메소포타미아문명과 이집트문명 사이에서 고대그리스문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으며 비단길을 통해 동양과 유럽을 연결시켰던 땅이다. 이 땅에 고대문명의 다양한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그야말로 문명의 집합소 처럼. 하나의 대륙으로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다양한 역사의 흔적을 갖고 있었다. 서양입장에서 보면 가장 가까운 아시아이자 아시아의 모든 곳 모든 것 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좀 의아스럽기도 하다. 동양과 서양이라고 할때 내가 한국인의 입장에서 봐서 그런지, 동양은 극동아시아 서양은 유럽 으로 인식된다. 중동아시아라고 하는 것까지는 왠지 그냥 아시아 같긴 하다. 그런데 터키는 굉장히 예외적인 곳이다. 고대시대엔 트로이로서 고대그리스시대엔 페르시아로서 고대로마시대엔 동로마로서 지속적으로 유럽과 함께 역사를 만들어온 땅인데 새삼스럽게 동양이라고 뚝 떼어내 버린 느낌이 든다. 터키가 오스만제국이 되지 않고, 이슬람화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유럽의 땅으로 인식되지 않았을까? 동양과 서양의 구분은, 다른 대륙들과는 달리 연결된 유라시아 대륙으로서 동양과 서양의 구분은 아무리 봐도 종교적 구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 대 이슬람교. 성서라는 한 뿌리에서 출발한 영원한 앙숙같은 형제사이랄까.

여하튼 고대역사에 관심이 많던 나로서는 반가운 책이었다.

책의 본격적인 내용이 나오기 전에 제시된 터키의 유적 지도는 정말 감탄스러웠다. 이 넓은 땅에 이토록 골고루 온갖 문명,문화가 다 있다니!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저자는 대사로 있으면서 터키의 여러 발굴 현장을 다닐때 발굴단장이나 박물관장들의 설명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일반인이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분들과 함께 발굴현장을 볼 수 있었다니 얼마나 좋았을까. 게다가 터키에 불고 있는 한류열풍 덕분에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환대를 받는 경험까지 할 수 있었다고 하니 참 좋은 시절에 좋은 구경을 하셨다.

또한, 대사이기에 고대문명 발굴에 한국의 연구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 적도 여러번이고 터키로 밀려온 시리아 난민을 위해서도 한국을 대표해 여러 편의를 제공해주었다는 내용을 읽으니 외교관이라는 직업이 참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구나 싶고 정치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문화와 국가이미지관리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 중책이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에 계시는 한국인 외교관들은 어떤 활동들을 하실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저자는 외국의 문명을 보며 한국의 역사와 연결짓고자 하는 시도를 여러번 하고 있었다. 터키의 교류와 발굴 경험을 바탕으로 고구려, 발해, 백제, 가야의 발굴과 나아가 동서 문화 교류에도 진전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여러번 표현하고 있다. 외국의 문명이 먼저이고 더 나은 것처럼 보는 것보다, 외국의 문명이 그러할때 우리의 문명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함께 보고자 하는 생각은 참 좋은 것 같다. 다만 학문적 토대가 약한 것은 좀 아쉽다. 하지만 저자는 역사학자가 아니므로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국내 역사학자들이 더 분발해줘야 할 몫이다. 그러고 보니 국내 고고학 연구는 어느 수준까지 와 있는지도 궁금해진다. 많이 알려졌는데 나만 모르는 건가;;;

터키 유적은 정말 파도파도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 같은 곳이다. 앞으로도 얼마나 파야 할지 모를 만큼 많은 곳에 그 보물들이 산재해 있다.

이 책에 나오는 그 유적들의 사진들이 반가우면서도 좀더 자료가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기도 했다. 그만큼 궁금한 곳이 많았다.

발굴초기인 괴베클리 테페 의 거석, 신석기 문명의 차탈회위크, 트로이 전쟁의 다른 관점, 아시리아의 식민도시였던 퀼테페, 철기의 제국이었던 히타이트의 하투샤, 미다스왕과 알렉산더 대왕의 흔적을 볼 수 있는 프리기아 고르디움, 크로이소스 왕의 사르디스, 아르메니아의 우라르투 반 등의 곳에서 고대 문명의 발자취를 볼 수 있었고,

이즈미르와 에페소스, 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 보드룸과 안탈리아, 가지안테프와 라오디게아, 아다나와 타르수스, 넴루트와 트라브존 에서 고대그리스,로마의 흔적을 너무나 진하게 느낄 수 있었고,

디브리아 와 콘야, 카파도키아와 사프란볼루, 앙카라와 이스탄불 에서 고대문명 대비 잘 알려지지 않은 셀주크제국과 오스만제국의 흔적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터키는 석기시대부터 현재까지 새로운 문명,문화가 없었던 때가 없었다고 할만큼 모든 시대를 품고 있었다.

너무나 다양했고 너무나 찬란했던 문명과 문화는 어디로 갔을까?

유적과 유물로 국가산업의 25%가 관광산업에서 부를 창출하는 터키에서 정치적 혼란과 불투명한 미래는 어떤 방향을 제시하고 있을까?

과거를 먹고사는 현재의 터키에 가보고 싶어하는 사람으로서, 그 과거를 너무나 궁금해하는 사람으로서 터키는 역사의 나라다.

하지만 부를 창출하는 역사를 갖지 못하는 나라의,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터키 사람들은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유럽의 문화를 선도하고 경쟁했던 나라임에도 지금은 과거의 역사로만 회자되는 터키는 그리스나 이집트처럼 몰락한 정도는 아니지만 몹시 불투명해 보인다. 그래서 안타깝고 아쉽다. 터키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정말 굼금한 나라다.

지도와 사진 자료가 빈약하고, 내용도 학문적이 아닌 개인적 감상수준이지만 이 책이 불러일으키는 터키에 대한 호기심만으로도 읽어봄직한 책이었다.

아~ 가보고 싶다! 터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도에서
스티븐 킹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은 여러모로 스티븐 킹 답지 않은 작품이다.

짧은 편이고 범죄 스릴러도 아니고 빨리 해결을 하고 싶은 빨리 끝을 보고 싶은 긴박함을 느끼게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스티븐 킹 다운 소설이기도 하다.

짧은 내용이기에 더 단숨에 읽어가게 하는 몰입력과 끝이 다가올수록 끝이 나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반대적 긴박감이란 스티븐 킹 같은 대작가의 능수능란함이 없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1947년생의 우리나라 나이로 일흔세가 넘은 어르신이 그 어떤 편협함도 갖지 않고 인간애와 인류애를 보편개념으로 인식하고 계시다는게 존경스러웠다.

여름에 읽었던 '아웃사이더' 에서 미국내의 진통제 중독으로 인한 마약중독에 대해 거침없이 표현했던 부분들을 기억한다.

길게 이어지는 작품목록에서 어떻게 그토록 끊임없이 작품을 상상하고 작품속에 현실을 녹아내는지 새삼스럽게 감탄한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짧고 굵게 마음을 훅 치고 간다.

어느날 갑자기 내가 사라지게 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스콧은 이달 초만 해도 마침내 체중계 위에 올라갈 용기가 생겨 너무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사실 아주 기뻤다. 그런데 그 이후로 꾸준하게 체중이 줄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불안하긴 해도 그냥 약간 걱정스러웠을 뿐이었다. 불안이 공포로 바뀐 건 옷 때문이었다. 이 옷 문제는 이상한 차원을 넘어 엄청나게 기괴했다. (p. 18)


스콧은 42세의 중년 싱글남이다. 아내와 이혼후 고양이 한마리와 사는데 경제적으로 윤택한 편이라 환경이 좋은 택지지구에 산다.

195센티미터의 큰 키에 허리벨트위로 툭 불거진 배는 109킬로그램의 몸무게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게 하는 큰 덩치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인가 몸무게가 줄어든다. 그것도 매일매일 딱 0.5킬로그램씩.


딱히 활력적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삶이 무료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야말로 평범하던 일상에 벌어진 상황에 대해 적응하기 혼란스러웠을때 옆집에 새로 이사온 커플의 개 두마리가 자꾸 스콧의 마당에 와서 똥을 싸고 간다. 그런데 그 이웃은 자기네 개는 그럴리가 없다고 항의한다. 스콧이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했을때 그 이웃은 여전히 냉랭하다.


"당신이 이겼어요"

"이건 정말이지, 누가 이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

"개가 똥 몇 번 쌌다고 동물 관리국 사람한테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요. 매콤씨. 이봐요. 난 단지 서로 좋은 이웃으로 지냈으면 해요.."

"아, 좋은 이웃이라는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우리도 잘 알고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여기 이 동네에서 말이에요"

......

'이 동네에서 좋은 이웃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있다고.....' ...... '대관절 그게 무슨 뜻이지?' (p. 42, 43)


자신에게 벌어진 문제만도 머리가 복잡할 때 스콧은 이웃에게 벌어진 문제를 갑자기 알게 된다.

자신만의 문제에 매몰된다 해도 답이 없어 더 답답해졌을 수 있을 상황에서 이웃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오히려 자신의 할일 과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된다.

그는 생각한다. '정작 나서서 뭐든 의견을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점에' 대해서.

왜지? 왜 이웃들은 이 커플을 이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거지?


스콧이 내년에 붉게 표시해 놓은 일정은 딱 하루였다. 5월3일. 마찬가지로 붉은 글씨로 된 한 글자가 보였다. '0'. 그가 글자를 지우자 5월3일은 다시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스콧은 3월31일을 선택하고 직사각형의 일정란에 '0'을 써 넣었다. 감소하는 속도가 더 빨라지지 않는다면 지금 예상하기로 몸무게가 바닥 나는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속도가 빨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콧은 그 와중에도 인생을 만끽하기로 했다. 그게 자기 자신에 대한 도리라고 느꼈다. 어쨌든, 가망이 없는 상태에 처한 사람들 중 전적으로 기분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이가 그리 흔할까? 스콧은 이따금 노라가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서 배워 온 어느 격언을 생각했다. 과거는 역사이고 미래는 불가사의다. 그의 현재 상황과 아주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p. 97)


예전에 티비 방송에서 탤런트 김자옥이 자신의 암 에 대해 말했던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은 '암'이라는 질병에 대해 감사하다고. 교통사고처럼 부지불식간에 갑자기 세상을 뜨는 것보다 '암' 처럼 병에 걸려 세상을 뜨는 것은 자신의 마지막을 천천히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고마운 일이라 생각한다고.

그 말에 나는 굉장히 공감했었다. 어차피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 그렇다면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 아닐까?!

스콧은 자신의 체중이 '0' 이 되는 날을 표시한다. 그런데 그 날이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 이유도 모르고 정확한 마지막 날도 모르지만 여하튼 얼마 안 남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의외로 덤덤하다. 환상적인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새롭게 뭘 하려고 들지도 않고 침울하게 날짜만 세며 집안에 박혀 있지도 않고 그저 일상을 산다.

일상.

일상을 망가뜨리지 않는 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의미 깊게 다가온다. 아무렇지 않지 않지만 아무렇지 않게 그저 일상을 산다는 것. 내 마지막을 생각하기에 좀더 제대로 일상을 산다는 것. 하루하루의 시간을 차곡차곡 잘 쌓는다는 것. 몸무게가 주는 만큼 시간의 무게를 늘린 다는 것. 일상의 무게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렇게 일상이 주는 감동이 의외로 찐...했다.


스콧은 컴퓨터를 켜고 '0'의 날'을 3월15일로 앞당겨 놓았다. 두렵지 않다면 어리석은 것일 터. 그는 두려웠다. 한편 궁금하기도 했다. 다른 감정도 느꼈다. 행복? 이 기분이 행복일까? 그렇다. 미친 소리일지 몰라도 그건 분명 행복이었다. 확실히 그는 어떤 연유에서건 자신이 선택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닥터 밥은 그거야말로 미친 소리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스콧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상이라고 믿었다.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인데 뭐 하러 괴로워하랴? 그걸 받아들이면 어때서? (p. 105)


스콧은 자신의 '0의 날' 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나름 즐긴다.

그리고 그동안 무심하게 봐왔던 이웃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제야 이웃들속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온 동네가 거부한 레즈비언 옆집커플에 대해서도 똑같이 이웃으로 받아들이는데 아무런 저항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이웃들의 왜곡된 시선이 의아하고 아쉽다. 그래서 그는 점점 더 옆집 커플에게 관심이 간다.

남들이 이해 못하는 그 커플을 이해하고 싶고 자신에게 벌어진 이해못할 상황을 이해하고 싶다.

그래서 생전 처음 마라톤에 도전하기로 한다. 온동네가 주시하는 레즈비언 디어드리, 레스토랑 주인 디어드리, 한때 육상선수라서 동네마라톤 1위 후보자인 디어드리에게 내기를 제안한다.


"그래도 우리가 진짜 이웃이 될 수는 있겠죠. 제가 당신에게 설탕 한 컵 빌릴 수 있고 당신도 우리 집에서 버터 한 덩이 빌릴 수 있는 정도만요. 혹시 우리 둘 다 우승을 못하면 무승부예요. 변하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p. 113)


"이 일을 왜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거죠? 제가...... 우리가 당신에 남성성을 위협하기라도 하나요?"

'아뇨, 이게 중요한 이유는 내가 내년에 죽기 때문이에요'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죽기 전에 적어도 한 가지는 바로잡고 싶으니까. 결혼 생활은 이미 파탄이 나서 바로잡기 어렵고, 백화점 웹사이트 일도 영 가망이 없어요. 그 사람들은 자기네 사업이 자동차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던 공장들과 똑같다는 걸 모르거든요' 스콧은 그런 내막까지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그도 그럴 것이, 스콧 자신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데 디어드리가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그냥 중요하니까요" 마침내 스콧이 대답했다. (p. 115)


스콧은 마라톤을 처음 뛰어 본다. 겉보기엔 덩치가 산만한 비만하저씨가 마라톤을 뛴다는 것 자체가 완주불가능성을 확신하게 한다.

하지만 스콧은 마라톤을 뛰며 경험한다.

바람도 아니고 희열도 아니다. 고양이었다. 자기 자신을 초월하여 더 멀리 상승하는 감각.

책의 원제이기도 한 Elevation 의 뜻은 고도 이다. 높은 곳이란 말이다. 상승 승진 뭐 이런 뜻이기도 하다. 위 문장을 읽으며 '고양' 이라는 번역에 대해 원서에는 Elevation 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콧의 감정을 이해하며 더 나은 한글표현이 뭐 없을까 생각해보았다. 생각나는 단어가 없었다. 안타깝고 아쉬웠다. 뭔가 더 적절한 단어가 있었다면 스콧의 감정을 저 느낌을 뭔가 더 적절하게 표현하고 싶은데... 번역자의 고뇌가 새삼 느껴지는 부분이었달까;;; 알것 같은데 느낄 수 있는데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네~


스콧은 그의 삶에서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행복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다만 '행복'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스콧은 자신이 가진 체력의 극치를 경험했다. 신세계였다. 그는 만사가 다 이와 통한다고 생각했다. 이 고양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이런 느낌이라면 우리는 죽음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p. 136)


죽음의 문턱에서 느끼는 행복

어쩌면 죽는 다는 것을 알게됐기에 행복도 새삼스럽게 알게 되는 것 같다.

사실 늘 있었던 행복인데... 네잎 클로버만 찾다가 세잎 클로버에서 갑자기 의미를 찾게 되는 건 죽음이라는 자극제가 꼭 필요한 걸까...

나보다는 더 죽음에 가까워보이는 노작가가 말하는 죽음은 왠지 경건한 마음으로 다시한번 곱씹게 된다. 나도 모르게...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완벽하게 이해돼요"

스콧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게 말이죠." 스콧이 대답했다. "무섭지는 않아요. 아주 초반에는 겁이 났죠. 그런데 이젠...... 모르겠어요...... 괜찮은 것 같아요"

디어드리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그녀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그말도 이해가 되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죠" 그가 말했다. "분명 그럴 거에요" (p. 160)


"우린 말하지 않아요. 제가 뭘 하면 되는 거죠 스콧?"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다 했다.

......

"어떤 느낌이야, 스콧? 자네는 어떤 기분이 들어?"

스콧은 헌터 힐을 달려 내려갈 때의 기분을 떠올렸다. ...... 그의 몸이 일단 최대 능력을 발휘하자 모든 세포에 산소가 채워지던 그 순간을.

"고도에 오른 기분이 들어요." 마침내 스콧이 말했다.

그는 디어드리 매콤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빛나는 눈동자가 그의 얼굴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왜 그가 자신을 선택했는지 아는 것이 분명했다. (p. 182)


서로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 사이에 유대감이 생기고 연대감으로 연결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을, 분명 글로 읽고 있음에도 글이 아닌 글로 쓰지 않은 그 너머의 무엇으로 이해하게 되는 기분은 뭐랄까... 좋았다... 내가 소설속 인물들의 친구가 된것 처럼...


스콧에겐 '0의 날' 이 왔다. 그것도 생각보다 빠르게.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이웃이 있었다.

공동체 문화가 부서진 현대에 가족마저도 갈등의 관계가 되버린 현대에 '이웃' 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이 근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회적 변화일까? 내 개인적 관심일까?

'오베라는 남자' 소설에서 오베 할아버지의 츤데레 매력에 이웃들이 퐁당 빠져들었었는데, '고도에서' 작품에서 스콧의 평화로움에 이웃들이 흠뻑 젖어든다.


드론이 찍은듯한 잔디밭의 사람들이 보이는 표지에서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커다란 사람의 그림자가 눈에 들어온다.

겉지를 벗겨보니 하드커버에 가득한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딴 세상 같다.

그 딴 세상속에 스콧이 살고 있기를, 고도에서 우리를 보고 있기를, 스콧이 보면 미소지을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래본다.



뿌리깊은 차별과 혐오를 넘어,

화해와 포용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대작가의 통찰이 담긴 신작 경장편소설. (표지 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술에게 말을 걸다 - 난해한 미술이 쉽고 친근해지는 5가지 키워드
이소영 지음 / 카시오페아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해한 미술이 쉽고 친근해지는 5가지 키워드

유명 전시회와 미술관 관람을 좋아하지만,

작품 감상에는 서툰 미.알.못.을 위한 쉽고 재밌는 교양 미술

 

 

앞서 읽었던 미술관련 책이 영 꽝이었던지라 다른 책, 제대로 된 미술교양서가 필요했다.

미술을 자신만의 잘난척 감상에 빠져있는 글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아무나 읽어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미술을 알려주는 책, 바로 이 책 같은 책!

표지부터 마음에 든다. 화가인듯한 할아버지가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림속에 다른 자화상들과 그림속에 거울속 화가의 모습이 있다. 그림속에 그림이 있고 그 그림까지도 친근하게 다가오는 표지그림을 보며 화가에게 말을 걸고 싶어진다. 그렇게 이 책은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내내 미술에게 말을 걸수 있도록 중간역할을 잘 해주고 있었다.

저자는 미술교육과 미술사를 전공하고 미술 에세이를 통해 미술을 대중에게 친근하게 만드는 방법을 늘 연구하는 사람인듯 하다. 미술에 대한 선입견을 부정하지 않고 그럴수 있다고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면서 그러한 선입견을 부드럽게 깨트려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려 한다. 익숙한 그림과 낯선 그림을 함께 보여주고 익숙한 것은 뒷얘기를 낯선 것은 신선한 재미를 알게 해주면서 미술은 생각보다 쉽고 일상적인 것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런 제안을 드리고 싶어요. 각자의 방식으로 미술관 전시를 즐길 것. 사진 촬영이 허용된다면 인증 사진을 마음껏 찍고, 작품 사진과 셀카도 찍고 싶은 만큼 찍을 것,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선에서 자유롭게 즐길 것, 그런 자신에게 눈살을 찌푸리는 미술 권위주의에 빠진 자가 있다면 마음 속으로 세 번째 손가락을 곧게 펴서 날릴 것. "저는 미술을 잘 몰라서요" 라는 겸손한 말은 생각하지도 말 것. (p. 15)

미술관이나 전시회에 가고 싶지만 괜히 주눅들고, 미술관련 책을 읽어도 뭔소린지 잘 모르겠을 때 저자의 제안을 기억해야 겠다. 그리고 자신있게 내 맘대로 관람하고 느껴야 겠다. 누군가 옆에서 아는척하고 잘난척하는 미술권위주의자가 있다면 마음속으로 세번째 손가락을 곧게 펴서 날리며.

이 책은 크게 2part 로 나뉜다.

1part에서는 미술을 어렵게 느끼지 않도록 움추러든 어깨를 펴게 해주고

2part에서는 5가지 방법을 통해 구체적으로 미술과 친해질 수 있도록 해준다.

미술 감상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미술 작품은 다만 우리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질 뿐입니다. 비오는 날을 바라보는 수재민들의 마음과 사막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다를 수밖에 없듯이 각자의 상황에 따라 작품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는 작품 안에서 한참 동안 머물거나 해매다가, 자신이 나오고 싶은 문으로 나오면 되는 것입니다. (p. 22)

 

 

이 책을 읽으며 처음 보게 된 그림, 보자마자 반해 버린 그림 ㅎㅎ

1part 를 읽으며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이 책에 대한 친근함이 훅 올라갔다.

당시 얌전하고 권위적인 초상화가 주로 그려졌다고 하는데, 이 화가는 자신의 얼굴을 활용해 다양한 표정을 연구하여 기존 초상화와는 다른 재밌는 초상화를 많이 남겼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 화가가 당시에 우스운 평가를 받던 화가도 아니었다. 루이16세의 초상화가로 살면서, 루이16세가 처형당하기 직전까지도 그의 초상화를 그렸던 궁중화가였다고 한다. 궁중화가는 화가중에서도 인정받는 화가만이 될 수 있었다. 권력의 옆에서 권위가 무엇인지 알만큼 아는 화가가 자신의 자화상을 이렇게 그려냈다는 것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보는 사람을 위해 그림이 쉬워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런 쉽게 느껴지는 그림을 통해 미술에 한발 더 다가가지게 되기는 한다. 저자의 이 책에 대한 의도가 이 그림을 통해 확연히 느껴지는 것 같아서 이 그림이 더욱 좋았다.

저는 우리가 미술과 친해지면 두 가지 이유에서 좋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우리가 힘들고 슬프고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낄 때 비효율적인 시간 속에서 탄생한 예술은 우리를 응원합니다. 두 번째로 미술과 친해지면 삶이 더 나아집니다. 많은 기업에서 마케팅에 미술을 활용하고, 예술가들을 탐구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이유는 일을 포함한 자신의 삶이 더욱 성장하기를 바라서일 겁니다. (p. 30)

이제 part2에서 본격적으로 미술과 친해져 본다.

미술과 친해지는 키워드로 저자는 5가지를 알려주고 있다.

일상 - 알고 보면 일상 곳곳이 작품이다

작가 - 시작은 단순하게, 좋아하는 작가 한 명 부터

스토리 - 명작은 다양한 스토리 속에서 빛나는 법

시선 - 멀리 보고, 겹쳐 보고, 새로운 시선으로

취향 - 취향은 결국 무수한 실패의 결과

일상 곳곳에 있는 작품 이야기를 하면서 다양한 로고로 활용되는 미술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고디바초콜렛, 스타벅스 로고, 테트리스 게임속 그 성당, 나이키 로고, 뮤지션의 앨범 커버 속 그림 등 일상에서 충분이 느낄 수 있는 미술의 다양한 예들은 알던 것은 더 자세히 모르던 것은 이것도?! 하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세이렌의 조각 그림이 기억에 남는다. 대부분 세이렌을 표현한 그림들은 인어모습이다. 그런데 기원전300년 경의 테라코타 는 새의 모습으 하고 있었다. 그러보 보니 노래로 사람을 홀리는 세이렌이 새의 모습을 하는 것이 인어보다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 고전을 여럿 읽었다고 읽었는데 인어만 기억하고 있었다니... 이런;;;

 

 

예술가 들이 즐겨 마셨다는 압생트 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물론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고흐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압생트의 별명이 '초록 요정' 이었다고 한다. 초록병의 소주가 생각나서 왠지 압생트 라는 술마저 친근하게 다가온다. ㅋㅋ

저자는 미술과 친해지는 방법으로 좋아하는 화가 한명을 정해서 알아나가는 방법을 권한다. 저자 본인은 고흐를 좋아했다고 한다. 좋아하는 화가 한명은 그 화가의 친구나 지인 화가들로 이어지고 동시대의 화가로 이어지며 앞시대 뒷시대의 연결고리가 있는 화가들로 범위가 넓어지고 이런식으로 확장되다 보면 미술사의 맥락까지 이어가게 된다고 한다. 괜찮은 방법같다. 나도 고흐를 좋아하는데, 그림만 보고 좋아했던 '꽃 피는 아몬드 나무' 그림이 동생 테오의 첫아기, 그러니까 고흐 자신의 첫 조카 탄생을 기념한 그림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그 그림에도 더 애정이 간다.

 

 

여성화가들에 대한 책인 [내가 화가다] 라는 책을 좋게 읽었었는데, 그 책을 통해 수잔 발라동 이라는 모델이자 화가를 알게 됐었다.

로트레크 가 그린 수잔 발라동의 초상도 봤던 그림인데, 이 책을 통해 부제가 '만취에서 깨어난 후' 라는 것을 알고 보니 그림이 또 다르게 보인다. 평탄치 않았던 그녀의 삶의 단면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이라 생각했었는데, 독한 술까지 더하니 느낌이 왠지 더 진해진다고나 할까... 르누아르가 그린 꾸며낸 수잔 발라동과 로트레크가 그린 실제모습 그대로의 수잔 발라동은 그림만으로도 다른 느낌을 준다. 그녀를 화가의 길로 끌어주고 응원해주었던 로트레크의 그림에서 수잔 발라동의 삶이 보다 더 진실하게 드러나는 것을 보면 그림이란 글이 주는 감동과는 또다른 감동을 주는 예술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제임스 티소 와 아이 둘의 이혼녀 캐슬린과의 사랑이야기는 티비프로그램에서 본적이 있다. 그런데 티소의 그림들이 여성을 정말 아름답게 표현하는데 중심을 둔 유미주의 였다는 것을 알고 그림을 다시 보니 옷주름 하나 레이스 하나에도 정성을 들였다는 것이 새삼 눈에 보인다. 그리고 정말 예쁘다.

 

 

명화라고 불리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명화자체로서의 스토리로도 후대의 화가들이 명화를 이용하는 방식을 통해서도 여하튼 오래도록 사랑받고 인정받는 명화들에는 특별함이 있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밤 풍경의 명화로 손꼽히는 존 앳킨슨 그림쇼의 그림을 알게 되어 좋았다. 그가그린 밤 풍경은 그 어둠의 색채가 정말 남달랐다.

 

 

 

모든 문화 예술은 상호적입니다. 많은 화가들의 그림은 곧 시대를 관통하며 살다간 예술가가 느낀 다양한 사유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그림 속에는 시대의 경제, 시민의식, 심리학, 물리학, 자연과학, 철학과 같이 당대의 문화가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물을 감상하며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얼마나 길고, 넓고 농밀한지 느끼게 됩니다. (p. 218)

 

이 책에는 화가들의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더 재미있게 읽힌다. '걸어가는 사람' 이라는 조각으로 유명한 자코메티가 조각을 작게 만드는 이유, 마네의 아스파라거스 와 컬렉터의 재치, 칸딘스키와 뮌터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프리다 칼로의 고통... 그중에서도 조선을 방문했던 서양화가들이 그려낸 조선의 모습과 고흐가 그린 바니타스 그림은 처음 보기도 했고 다른 그림들 보다 더 와닿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여행은 일상의 도피이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눈을 갖게 하는 과정입니다. 에밀 놀데, 휴버트 보스, 엘리자베스 키스, 세 화가에게 있어 100여 년 전 한국 여행은 또 다른 세계로 향하는 문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사는 마을을 그들이 한국을 바라보듯 진심어린 시선으로, 시간 내여 바라본 적이 있는가 생각해 봅니다. 글을 시작할 때 언급한 문장을 다시 소환해 봅니다. 여행의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 이 말의 참 뜻은 어쩌면 매일 보는 익숙한 풍경도 새롭게 볼 수 있는 자가 곧 최고의 여행자라는 의미 같습니다. (p 262)

 

서양화가가 아름답다고 감탄했던 원산의 풍경속에 홀로 커다란 짐을 이고 있는 아낙네의 뒷모습이 짠하고, 인생무상과 삶의 덧없음을 뜻하는 라틴어 바니타스를 나타내는 그림으로 해골이나 독특한 사물들을 그렸던 화가들의 그림 중 고흐의 해골 그림은 그의 인생과 겹쳐지면서 담배의 쓴향기가 풍겨오는 듯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