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외교관으로 미국, 러시아, 독일, 싱가포르, 쿠웨이트, 터키에 근무했었다고 한다. 2014~2017 주 터키대사를 마지막으로 37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지내고 있다고 한다. 외교관이라... 그야말로 꿈의 직업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다른나라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멋있는 일 같고 새로울 것 같고 뿌듯할 것 같다.
젊어서는 일부러라도 많은 경험을 하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대학생이 되자마자 하고 싶은 일이 배낭여행이 아니던가. 그런데 37년간의 외국생활이라... 그것도 외교관으로서... 생각할수록 참 부럽다. ㅎㅎ
터키는 소아시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냥 별 생각없이 역사책에서도 소아시아라고 나오면 음~터키! 하며 그냥 읽었었는데, 새삼스럽게 생각해보니 하나의 국가를 왜 소아시아라는 대륙명칭으로 부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은, 아마도 터키에 거의 모든 문명의 기원이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터키는 역사적으로 굉장히 의미깊은 나라이다. 메소포타미아문명과 이집트문명 사이에서 고대그리스문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으며 비단길을 통해 동양과 유럽을 연결시켰던 땅이다. 이 땅에 고대문명의 다양한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그야말로 문명의 집합소 처럼. 하나의 대륙으로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다양한 역사의 흔적을 갖고 있었다. 서양입장에서 보면 가장 가까운 아시아이자 아시아의 모든 곳 모든 것 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좀 의아스럽기도 하다. 동양과 서양이라고 할때 내가 한국인의 입장에서 봐서 그런지, 동양은 극동아시아 서양은 유럽 으로 인식된다. 중동아시아라고 하는 것까지는 왠지 그냥 아시아 같긴 하다. 그런데 터키는 굉장히 예외적인 곳이다. 고대시대엔 트로이로서 고대그리스시대엔 페르시아로서 고대로마시대엔 동로마로서 지속적으로 유럽과 함께 역사를 만들어온 땅인데 새삼스럽게 동양이라고 뚝 떼어내 버린 느낌이 든다. 터키가 오스만제국이 되지 않고, 이슬람화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유럽의 땅으로 인식되지 않았을까? 동양과 서양의 구분은, 다른 대륙들과는 달리 연결된 유라시아 대륙으로서 동양과 서양의 구분은 아무리 봐도 종교적 구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 대 이슬람교. 성서라는 한 뿌리에서 출발한 영원한 앙숙같은 형제사이랄까.
여하튼 고대역사에 관심이 많던 나로서는 반가운 책이었다.
책의 본격적인 내용이 나오기 전에 제시된 터키의 유적 지도는 정말 감탄스러웠다. 이 넓은 땅에 이토록 골고루 온갖 문명,문화가 다 있다니!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저자는 대사로 있으면서 터키의 여러 발굴 현장을 다닐때 발굴단장이나 박물관장들의 설명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일반인이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분들과 함께 발굴현장을 볼 수 있었다니 얼마나 좋았을까. 게다가 터키에 불고 있는 한류열풍 덕분에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환대를 받는 경험까지 할 수 있었다고 하니 참 좋은 시절에 좋은 구경을 하셨다.
또한, 대사이기에 고대문명 발굴에 한국의 연구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 적도 여러번이고 터키로 밀려온 시리아 난민을 위해서도 한국을 대표해 여러 편의를 제공해주었다는 내용을 읽으니 외교관이라는 직업이 참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구나 싶고 정치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문화와 국가이미지관리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 중책이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에 계시는 한국인 외교관들은 어떤 활동들을 하실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저자는 외국의 문명을 보며 한국의 역사와 연결짓고자 하는 시도를 여러번 하고 있었다. 터키의 교류와 발굴 경험을 바탕으로 고구려, 발해, 백제, 가야의 발굴과 나아가 동서 문화 교류에도 진전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여러번 표현하고 있다. 외국의 문명이 먼저이고 더 나은 것처럼 보는 것보다, 외국의 문명이 그러할때 우리의 문명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함께 보고자 하는 생각은 참 좋은 것 같다. 다만 학문적 토대가 약한 것은 좀 아쉽다. 하지만 저자는 역사학자가 아니므로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국내 역사학자들이 더 분발해줘야 할 몫이다. 그러고 보니 국내 고고학 연구는 어느 수준까지 와 있는지도 궁금해진다. 많이 알려졌는데 나만 모르는 건가;;;
터키 유적은 정말 파도파도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 같은 곳이다. 앞으로도 얼마나 파야 할지 모를 만큼 많은 곳에 그 보물들이 산재해 있다.
이 책에 나오는 그 유적들의 사진들이 반가우면서도 좀더 자료가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기도 했다. 그만큼 궁금한 곳이 많았다.
발굴초기인 괴베클리 테페 의 거석, 신석기 문명의 차탈회위크, 트로이 전쟁의 다른 관점, 아시리아의 식민도시였던 퀼테페, 철기의 제국이었던 히타이트의 하투샤, 미다스왕과 알렉산더 대왕의 흔적을 볼 수 있는 프리기아 고르디움, 크로이소스 왕의 사르디스, 아르메니아의 우라르투 반 등의 곳에서 고대 문명의 발자취를 볼 수 있었고,
이즈미르와 에페소스, 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 보드룸과 안탈리아, 가지안테프와 라오디게아, 아다나와 타르수스, 넴루트와 트라브존 에서 고대그리스,로마의 흔적을 너무나 진하게 느낄 수 있었고,
디브리아 와 콘야, 카파도키아와 사프란볼루, 앙카라와 이스탄불 에서 고대문명 대비 잘 알려지지 않은 셀주크제국과 오스만제국의 흔적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터키는 석기시대부터 현재까지 새로운 문명,문화가 없었던 때가 없었다고 할만큼 모든 시대를 품고 있었다.
너무나 다양했고 너무나 찬란했던 문명과 문화는 어디로 갔을까?
유적과 유물로 국가산업의 25%가 관광산업에서 부를 창출하는 터키에서 정치적 혼란과 불투명한 미래는 어떤 방향을 제시하고 있을까?
과거를 먹고사는 현재의 터키에 가보고 싶어하는 사람으로서, 그 과거를 너무나 궁금해하는 사람으로서 터키는 역사의 나라다.
하지만 부를 창출하는 역사를 갖지 못하는 나라의,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터키 사람들은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유럽의 문화를 선도하고 경쟁했던 나라임에도 지금은 과거의 역사로만 회자되는 터키는 그리스나 이집트처럼 몰락한 정도는 아니지만 몹시 불투명해 보인다. 그래서 안타깝고 아쉽다. 터키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정말 굼금한 나라다.
지도와 사진 자료가 빈약하고, 내용도 학문적이 아닌 개인적 감상수준이지만 이 책이 불러일으키는 터키에 대한 호기심만으로도 읽어봄직한 책이었다.
아~ 가보고 싶다! 터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