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연한 고양이
최은영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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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시점 짧은 소설

작은 이웃과 가까워지는 열 편의 짧은 소설

 

 

이 책은 고양이와 관련된 아주 짧은 단편소설 10편을 모은 작품집이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길래 이렇게 한 권으로 그 작가들의 글을 모아 읽을 수 있다니~ 하며 기쁜 마음으로 읽었다.

더구나 나는 개 보다는 고양이가 좋은데, 평소 좋아하는 작가들이 대부분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는 공통점을 알게되니 왠지 더 반갑기도 했다.

네 마리 고양이를 만난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는 최은영 작가의 '임보일기' 는

아끼던 고양이와 사별 후 주차장에서 구조한 고양이를 임시보호하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담은 작품이다.

임시보호란 그야말로 임시보호다. 고양이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그래서 위험에 처한 길냥이를 지나칠 수 없어 구조하지만, 키울 수 없는 상황에서 적당한 가족을 찾을 때까지 임시로 보호하는 기간...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함께 한 시간은 온통 진심이었다.

그녀는 이 끝이 어떨 것일지를 다 알면서도, 다시 시작하려 하는 사람이었다. ...

더 정을 주지 않으려고 이름조차 짓지 않 았는데도, 피부를 맞대고 맥박을 느낀 다정한 존재의 무게가 가벼울 수는 없었다. (p.21)

 

동사의 위기에서 구조한 한 줌 고양이를 2년 만에 '혹시 타고 다니는 건 아니냐'고 의심받는 거대 고양이로 키워냈다는 조남주 작가의 '테라스가 있는 집' 은 고양이의 실종과 만남을 한 커플의 결혼과 파혼으로 연결하여 운명과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헤어졌을 때 거짓말처럼 고양이가 돌아왔다.

유성을 만나고 결혼을 결심하고 준비하던 모든 시간이 꿈같았다. 어쩌면 이제까지의 삶에서 가장 무겁고 중요한 일이 홀린 듯 흘러와버렸다. 유성과 지나 자신, 또 결혼 생활 자체에 대해 꼼꼼히 알아보고 검토해서 결정한 것이 아니다.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신호등의 초록불이 들어오기에 건넜다. 꼭 이번 신호에 건너야 하는 것도 아닌데, 목적지가 길 건너에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러고는 그 발걸음에 스스로 운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p. 37)

방심한 모습으로 낮잠을 자는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정용준 작가는 '세상의 모든 바다' 에서 사라져 가는 마을에 홀로 남아 바다에 갔다는 부모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백설과 떠돌이 트럭기사 무운의 인연을 고양이가 이어주고 있는 작품이다. 순박한 사랑과 자연의 조화에 대해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마음 약한 사람이 실망을 이기지 못해 우울하게 얼굴이 내려앉은 듯 파스칼의 표정이 딱 그랬다. (p. 54)

이제 인연이 닿지 않는 친구는 궁금하지 않지만 그 집 고양이는 가끔 생각난다는 이나경 작가의 '너를 부른다' 는 한 소녀가 고양이에게 하는 독백이다. 언니가 돌보던 길냥이들의 대장격인 '그림자' 라는 고양이에게 잃어버린 언니의 복수를 이야기하는 소녀의 슬픈 고백이다.

그림자야, 언니는 네가 특별하댔어.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만 언니는 그렇게 믿었어. 그러니 정녕코 네게 신통한 능력이 있어 사람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간곡히 바라건데 내 소원을 좀 들어주렴. ... 그러니까 꼭 좀 부탁해.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제 그만 나와. (p.76)

 

20년차 집사라는 강지영 작가의 '덤덤한 식사' 는 화자가 고양이 영혼이다. 길냥이 어미를 잃고 용감한 형제의 도움으로 생명을 이어가던 냥이가 전염병으로 죽었으나 그 영혼이 형제의 곁을 맴돌며 지켜본다. 동물병원에 살게 되었으나 녹록치 않은 현실에서 덤덤히 살아가는 자신의 형제를...

너는 다나에게 발톱을 세우지 않았다. 그저 흔해빠진 겁쟁이 고양이가 아니란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바늘과 가루약과 처방식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 너는 10퍼센트에 속하는 고양이였지만 자신의 생존조차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p. 87)

 

고양이 눈, 고양이 입, 고양이 소리, 사람들은 비난조로 말하지만, '저 피사체 좀 치워버리라' 는 그의 말처럼 그것이 결코 비난의 도구가 될 수 없음을 이제는 누구라도 알듯 저자도 알게 된듯 박민정 작가는 '질주' 에서 피사체가 되었던 20살 새내기 여대생의 상처를 들춰낸다. 이제 상처가 아니라는 듯. 하지만 여전히 잊지 않고 있다는 건 생생한 기억이 여전히 상처라는 증거 아닐까....

암막커튼을 쳐 컴컴한 방 어딘가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주인이 건사하지 못한 고양이는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여기저기 쏘다녔다.

어둠 속에서 윤성 선배가 뱃살이 늘어져 보일 만큼 뚱뚱한 고양이의 뒷목을 잡고 들어 올리며 했던 말을 잊지 못한다. 이것 좀 어디 갖다 버려라. (p.97)

 

지난 봄에 꽃나무를 잡고 자는 고양이 얌이를 만났다는 김선영 작가는 '식초 한 병' 에서 얌이의 꽃나무를 잡고 자는 장면을 그대로 담아낸다. 작가들에겐 인상적인 장면 하나가 작품 하나로 풀어내질수도 있구나 싶은 것이 신기했다. 누구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는 고양이 얌이는 사실 누구에게나 곁을 내주고 있는 고양이 이기도 했다. 아무렇지 않은 얌이의 행동은 작가의 마음도 아무렇지 않게 풀어준 듯 했다.

내가 살던, 내가 알던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내가 세상 이편에서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시간이다. 어린 내가 나보다 더 어린 동생의 학비를 대라는 엄마의 말에 접어야 했던 일이었다. 안락한 일상을 유지해줄 것 같은 남자를 만났으나 나보다 더 안온한 일상을 원하는 남편 때문에 미루어졌고, 뒤이어 오로지 나에게 의지하는 한 생명을 맞고 키우느라 또 눌러야 했다. 소설을 쓰겠다고 했을 때,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특히 남편은 이제야 그런 걸 해서 뭐 하냐고 괜히 헛힘 쓰지 말라고 했다.

얌이는 지금 어떤 시간일까, 어젯밤 얌이의 울음소리는 더욱 애잔했다. (p. 123)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삶은 그다지 무겁지도 슬프지도 불행하지도 않을지도 모른다. 얼마든지, 얼마든지. (p. 131)

 

빵집 앞 풀숲에서 발견된 검은 새끼 고양이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김멜라 작가는 '유메노유메' 에서 인간으로 변한 고양이 유메의 이야기를 한다.

유메는 고양이와 인간을 넘나들며 미애의 꿈에 찾아와 미애를 위로했다.

까많고 말랐던 새끼 시절, 잠든 미애의 가슴에 올라와 한없이 여린 숨결로 미애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그 밤들처럼. (p. 152)

 

묘령 열다섯 살 고양이와 살고 있다며 이 문장이 오랫동안 과거형이 아니게 되기를 바란다는 양원영 작가는 '묘령이백' 에서 이백살이 넘은 고양이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고양이가 어느새 할머니 나이가 됐지만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어하는 작가의 바람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저승차사가 데려가야 하는 반려동물들 영혼 중에서 유일하게 데려가지 못하는 묘령이백이 ㅎㅎ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저승사자가 되려면 성격이야 어쨌든 심성이 착해야 하는데, 심성이 착하니 성격이 아무리 괴팍해도 동물의 미련을 쉬이 끊질 못하는 것이다. 생전 닳을 만큼 닳아 사람을 싫어하는 차사도 예외는 없다. 애초에 놈들에게 모질게 구는 자들은 지옥에 끌려가 없기도 하고.

동물들의 영혼은 인간보다 순수하고, 때 묻지 않고, 특히 반려동물이라는 놈들은 제 주인이 저를 그렇게 학대해도 주인만 생각하는 미련한 놈들 천지다. 갓난쟁이와 아이들 영혼을 회수하는 부서와 더불어 차사들이 오래 버티지를 못한다. (p. 157)

여전히 건강해서 아무튼 나는 기쁘다. 기뻐하는 내가 참 싫다. 언젠가 네가 묘령천으로 불리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바라는 내가 참 싫다. 놈을 뒤로 하며 나의 한심함을 지독하게 곱씹는 것이다. 대체 고양이가 무엇이기에. (p. 169)

 

길에서 고양이를 만나는 날은 기분이 좋고, 우주 어딘가에 고양이들이 모여 사는 행성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는 조예은 작가는 '유니버셜 캣샵의 비밀' 에서 지구의 고양이들을 원래 행성으로 보내준다. ㅎㅎ

그날, 전 세계 곳곳에서 날아오르는 별똥별들이 목격되었다. (p. 189)

단편치고도 초경량 단편들이다 보니 순식간에 읽게 되는 이 작은 소설집은 때로는 따듯했다가 때로는 슬펐다가 때로는 처참했다가 때로는 다독여주다가 때로는 웃음짓게 한다. 고양이들이 독자를 들었다놨다 한다.ㅋㅎㅎ 그렇게 공공연히 볼 수 있는 고양이들을 공공연히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무심한 존재는 가벼이 지나치게 되지만 다정해진 존재는 무게감이 생기기 마련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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