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버그 -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
맷 매카시 지음, 김미정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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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

'2050년, 3초에 1명의 인류가 슈퍼버그로 사망할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국이 흉흉한 시절이다.

바이러스? 박테리아? 무엇이 다르지? 슈퍼버그는 뭐지?

이 흉흉한 때에 보이지 않는 적과 전쟁중인 이 때에 정작 나는 이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해 아는게 없다는 것을 책을 제목을 보자 새삼 깨달았다.

슈퍼버그는 1960년대 이전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고, 1990년대 까지도 산발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의사들의 잘못된 항생제 처방 관행과 함께 항생제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상업적 농업이 박테리아들에게 우리의 소중한 약품들을 노출시켰고, 그 결과 박테리아들은 그 약효를 무력화시키는 법을 알아냈다. 인간에게 치명적인 감염의 주요인인 슈퍼버그는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 (p. 11)

'슈퍼버그' 는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박테리아를 지칭한다. 항생제를 먹어도 죽지 않는 균이 슈퍼버그다. 슈퍼버그는 점점 고질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항생제는 감기만 걸려도 쉽게 처방받는 약이다. 그런데 이 항생제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 항생제가 우리몸에서 정작 없애야 할 균을 없애지 못하게 된다면? 균은 진화하고 있다. 그런데 항생제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저자는 그 현장을 생생히 담아내고 있다.

무척 의학적인 책이긴 하나 저자는 스토리텔러의 소질이 다분했다. 항생제의 역사적 주요발견들과 현재의 이야기를 번갈아 하며 이야깃거리를 흥미롭게 풀어가고 있는데, 시작은 1차대전 중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부터다. 플레밍은 폐기한 페트리 접시에서 이 곰팡이를 우연히 발견했지만 1년만인 1929년 페니실린 분자에 관한 연구를 포기했다. 이 연구가 재개된 것은 또 한번의 세계대전을 겪은 후가 된다.

널리 이용 가능한 항생제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이 플레밍과 공동 연구자들이라고 알려졌지만, 그건 정확한 사실이 아니다. 그들의 연구계획이 1945년의 페니실린 생산과 유통으로 이어진 것은 맞지만, 인류는 알면서든 모르면서든 수천 년간 항생제를 써온 것으로 밝혀졌다. (p. 32)

고대 미라에서 중국전통약재에서 항생제 성분이 검출된다고 한다. 정확한 명칭이나 균의 성질을 모를지라도 고대부터 인류는 다양한 치료약을 만들고 사용해왔고 그 중엔 분명 균을 죽이는 항생제도 있었다.

일부 항생제는 기생충과 진균도 죽일 수 있지만, 바이러스에는 거의 효과가 없다. 그래서 의사들은 감기 환자에게 항생제를 잘 처방하지 않는다. 감기 증상은 대체로 바이러스에 의해 유발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다르다는 것을 1930년대까지 인식하지 못했다. 바이러스는 식물, 동물, 인간, 박테리아 등 다른 유기체 내부에서 복제되며 대체로 항생제가 듣지 않는다.) (p. 34)

세균을 영어로 박테리아 라고 하는데 세균은 일종의 생물이라고 한다. 단세포적 세균. 따라서 세균은 번식도 하고 독립적 성장도 한다고.

하지만 바이러스는 생물이 아니라서 스스로 번식할 수 없기에 숙주세포와 만나야 실제 번식이 가능하다고 한다.

즉, 박테리아는 세포로서 단독존재할수 있다면 바이러스는 세포 안으로 침입해 기생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박테리아는 단세포 생물로서 최초의 생물이라 할 수있고 바이러스는 나중에 진화의 과정에서 생성됐다고 볼 수 있다고 한다.

감기도 독감도 코로나도 바이러스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런데 감기나 독감에 걸려서 병원에 가면 항생제를 처방받는다. 왜일까? 그런데 항생제를 먹으면 또 효과가 있긴 하다. 이건 또 무슨 조화인가? 바이러스에 항생제는 효과가 없다면서? 이건 늘 궁금해하던 건에 이 책에서도 이 답은 찾지 못했다. 하긴 뭐 이 책은 박테리아에 대한 책이니까 당연히;;;

궁극적인 문제는 많은 항생제의 수익성이 낮다는 것이다. 아이디어 수준에서 신약의 생산과 시판 단계까지는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며 거기에는 10억 달러 이상이 소요된다. 항생제의 경우 몇 가지 특성 때문에 이윤이 적다. 항생제는 대체로 환자가 아플 때만 단기로 처방되며, 훌륭한 새로운 항생제라도 머잖아 그에 대한 내성이 발생하게 된다. 항생제 내성은 시기의 문제일뿐 반드시 생긴다. (p. 39)

그렇다. 별수 없이 돈문제 였다. 어쩔 수 없이 또 돈문제였다. ...

항생제 신약을 어렵게 개발해도 내성이 생기면 다른 약이 필요해진다. 항생제 내성은 반드시 생긴다고 한다. 그런데 점점 더 항생제 개발 연구비는 줄었으면 줄었지 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연구자들의 몫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제약회사들의 연구진만 믿고 있어선 안된다. 대학이나 연구소에서의 기초 연구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세로운 박테리아를 연구자들이 발견하면 그 결과를 이용해 신약개발로 연결시킬 수 있다. 기초 연구 파이팅!

나는 항생제 개발에 관한 강연과 워크숍에 수십 차례 참석했지만, 박테리아의 변이가 너무 빨라서 아무리 놀라운 항생제 신약도 따라갈 수 없다고 언급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의학계의 일급비밀이었다. (p. 44)

항생제 개발에 열성적인 제약사도 없는데 심지어 박테리아 변이의 속도를 항생제 신약개발의 속도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니. 어쩌란 말인가 ㅠㅠ

이 답답한 상황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항생제 개발기가 본문에서 내내 펼쳐진다.

저자는 나치의 생체실험과 미국내 의학자 터스키기의 생체실험을 언급하면서 의료행위에 있어서의 윤리문제를 먼저 제기한다.

이러한 참혹한 과거로부터 임상실험의 안전장치제도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러한 제도들은 때로 연구자들에게 걸림돌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환자와 연구자 모두를 위해서 결국 필요했음을 저자가 깨닫게 되는 과정을 통해 독자도 함께 성장하게 되는 듯 하다.

플레밍이 최초의 항생제를 우연히 발견한 이야기는 과학에 관심이 싹트고 있는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지만, 최초의 항진균제를 발견한 사연 역시 똑같이 흥미롭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대부분의 과학책이 생략하는 바람에 요즘 대다수의 젊은 의사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명민한 두 여성이다. (p. 115)

이 개발과정에 관한 이야기는 과학도나 의대생, 레지던트에게 가르쳐지지 않는다. 이 역사이 단편이 잊힌다는 건 교육자로서의 우리가 실패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알렉산더 플레밍에 대해서는 누구나 알지만, 엘리자베스 헤이즌과 레이첼 브라운에 대해서 아무도 모른다. (p. 118)

 

두 여성 과학자는 흙속의 한 박테리아가 항진균제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발견했고, 신약이 개발되었고, 갑자기 부자가 되었으나 비영리 단체에 연구비로 지원했다. 평생 공동연구를 하며 두 가지 항생제를 더 발견했다고 한다. 저자의 항생제 개발연구진행기 사이사이 나오는 항생제의 역사들은 역사라고 하기엔 비교적 최근일이긴 하지만 절묘하게 저자의 연구와 결합되면서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으면서도 알아야 할 사실들을 함께일깨워준다.

동물에게 항생제를 무분별하게 쓰는 관행은 슈퍼버그 출현의 주요인 중 하나였다. 동물 안에 사는 박테리아들이 우리가 가진 최고의 약물들에 노출되면서 그것들을 피할 방법을 학습하는 까닭이다. 최근 18개 주에서 100명 이상에게 발병한 감염의 최종 원인은 예기치 않게도 강아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감염된 개들 거의 전부가 애완동물 가게에서 팔린 것들이었고, 최소 한 차례 항생제를 투여 받은 이 개들 속에 살던 치명적인 슈퍼버그가 새 주인에게 옮겨간 것이었다. (p. 172)

공장식 축산은 그 어떤 동물에 대해서도 그 어떤 결과물을 위해서도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텐데... 그것이 얼마나 인간에게 큰 부메랑으로 되돌아올지 언제 깨닫게 될까...

항생제 관리자는 대개 감염 질환 전문의나 약사로서 그들의 소임은 항생제의 적절한 사용을 권장함으로써 슈퍼버그의 확산을 줄이는 데에 있다. 다음에 병원에서 항생제를 처방받는다면 항생제 관리자의 승인이 있었는지 물어봐야 할 것이다. (p. 185)

현재 의사 대부분은 자신이 행한 처치의 종류(그리고 비용)에 따라 보수를 받는데 감염병 전문의들은 실질적인 처치를 하지 않는다. 우리는 전문 자문을 제공하는 지적 전문의인데 의료수가제도는 우리의 자문에 엄청난 수요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감염병 분야는 두뇌 유출을 경험하고 있고, 그 정도가 해마다 심해지고 있다. 젊은 의사들은 전임자들보다 감염질환에 관심이 덜하다. (p. 235)

 

의료제도가 다르다 보니 책을 읽으면서 우리네와 많이 다른 진료행위들이 색달랐다. 나는 의사라고 하면 다 환자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저러나 의대에서 비인기과들이 생겨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지식을 창출하려면 데이터가 필요하며, 그것은 좋든 싫든 인체실험에서 나와야만 한다. (p. 299)

인체에 쓰이는 약은 결국 인체에 시험해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임상시험이 중요하다. 그래서 임상시험을 하기까지 굉장히 여러 관문을 통과해야 함을 이 책을 통해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여러 안전장치를 통과하고 나서도 부작용이 있는 약은 있을 수 있다. 완벽한 약이란 없다. 하지만 병은 점점더 완벽해지고 있는듯하다. 끊임없이 새로운 적이 나타나는 의료현장은 그야말로 전쟁터 인듯 하다...

우리의 슈퍼버그 연구는 대부분 항생제 개발과 임상시험에 초점을 두지만, 진단도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 나은 검사는 더 정확한 진단을 의미하며 결국에는 더 정확한 항생제 처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계속해서 불필요한 약에 노출되며, 이는 진단이 불확실할 때 주로 발생한다. 우리는 훌륭한 진단 장비를 사용함으로써 의문을 제거하고 의사들이 항생제가 필요하지 않을 때 항생제를 중단시킬 자신감을 느끼게 해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비용을 대야 한다. (p. 316)

항생제도 진단의료장비도 결국 비용이 든다. 그리고 그 비용을 감안하고서도 개발에 나서줄 누군가를 찾는 것까지 연구진들이 해내고 있었다.

그의 연구는우리가 항상 알고 있었던 사실, 흙 속의 항생제를 찾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의 연구팀은 건초더미를 전부 뒤지지 않고도 바늘을 찾아내는 법을 알아냈다. (p. 322)

과학자들은 작은 페트리 접시에서 성장할 수 있는 1%의 미생물만연구해왔고 나머지는 포기했다. (p. 339)

 

이 책을 읽다보면 흙이 굉장히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박테리아 연구에 있어서 흙은 중요한 자원이었다. 미생물은 대부분 흙에서 찾아냈다. 하지만 실험실의 패트리 접시에서는 흙에서 발견한 박테리아의 99%가 자라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 한 연구팀에서 흙속 미생물을 배양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그들의 연구가 좋은 결실을 맺기를 응원 또 응원중이다.

저자는 일관적인 서술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아닌것도 같다. 항생제의 발전과정과 이런저런 슈퍼버그들과 다양한 환자들의 사례를 들면서 이런저런 연구와 임상실험들 이야기를 하면서 뭐랄까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느낌이다. 어떤 슈퍼버그에는 어떤 약이 효과가 있고 그 환자는 다 나았는지 그 연구는 어떻게 진행됐는지 알지 못한채 이것저것 섞여있는 상태로 또다시 저자의 다른 새연구계획서 착수로 글은 마무리된다. 다시말해 이 책은 내내 ing 만 있는 책이다.

비전문가인 역자에게 이 책의 번역이 곧 학습의 과정이었듯이 독자 여러분에게도 이 책이 슈퍼버그 문제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일각의 비이성적인 반응을 보면서 문제해결의 출발점은 인식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질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 진균, 바이러스는 변이를 거듭하며 우리 곁에 늘 존재해왔다.

역사를 돌이켜볼 때 대중의 관심과 인식만이 제도와 관행의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항생제 사용과 내성 발생 비율이 높은 편에 속할 뿐 아니라 항생제 내성 발생률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큰 요인인 인구밀도까지 높은 한국에 사는우리에게는 이러한 인식이 더욱더 필요하다고 본다. (p. 390~391)

 

옮긴이의 말에 많이 공감이 갔다. 비록 이 책이 어떤 성과를 드러내고 있는 책은 아닐지라도 제대로 된 출발점을 제시할 수 있는 '올바른 인식'을 주는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한 과정을 열심히 현재진행중인 현장의 그들에게 새삼 감사하면서도 앞으로도 계속해달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게 좀 미안해지기도 한다.

때로는 임상실험준비에 버거워 하고 때로는 환자들의 고통에 아파하고 때로는 임상실험 참여자들의 질문에 적절한 답을 하지 못하며 혼란스러워 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솔직하게 그런 과정을 보여준다. 이런 저자를 성장시켜주고 있는 동료이자 멘토인 월시 박사는 현대판 슈바이처 같은 느낌을 주는 대단한 사람같다. 그리고 저자도 그 모습을 배워가려고 열심인 것을 보며 꼭 그렇게 되시라고 응원하게 된다.

어찌 생각해보면 인류가 사피엔스종이 된 때부터 진화를 멈춘건 인간뿐인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정체되어 있는 신체를 공격하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는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흙속에 공기속에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 때로는 적으로 때로는 치료제로 늘 우리곁에 존재하고 있다. 인간은 늘 뒤늦게 발견하고 있을 뿐이다. 과연 미래는 어떤 병과 어떤 약의 전쟁터가 될지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저 이 무거움을 견디며 연구자들이 계속 잘 발견해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런 연구자들을 응원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 보이지 않는 전쟁에 관심을 갖고 잘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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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창비세계문학 68
제임스 조이스 지음, 성은애 옮김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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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현대소설의 문을 연 위대한 작가 제임스 조이스가 그려낸

음울하고도 매력적인 더블린의 초상

 

제임스 조이스(1882~1941) 는 아일랜드 태생으로 소설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등 현대의 모든 예술 분야에 큰영향을 끼친 모더니즘 작가라고 한다. 그의 작품은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독자들에게도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 있고,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진 못했지만, 영문학 연구 분야에서는 필수코스라 할 만큼 활발히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더블린 사람들] 책에는 열다섯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1904년에서 1907년 사이에 개별적으로 집필, 출간된 것을 모은 것으로 원래의 집필순서와 별개로 화자 혹은 주인공의 나이순으로 작품들이 배열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각각의 단편들임에도 화자가 바뀌는 장편으로 읽혀질 정도로 시간의 흐름이 자연스럽다.


[더블린 사람들] 의 작품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와 아일랜드에 대해 조금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당시의 아일랜드 상황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에 대한 역사적 상식이 살짝 도움이 된다.


작가가 태어난 아일랜드는 영국이 아니다. 사실 나는 영국과 아일랜드을 구분하는 개념이 없었던 것 같다;;; 영국과 아일랜드와의 관계나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다. 영국이 연합국이라는 것도 몰랐던 것 같다. 영국하면 떠오르는 그 섬이 그냥 영국인줄 알았다. 하지만 영국은 브리튼 본토와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4개지역으로 크게 나뉘는 연합형태의 국가다. 영국 옆 커다란 섬이 아일랜드인데 그 중 북쪽 부분만 영국이고 아래쪽 아일랜드는 엄연한 독립국이다. 아일랜드는 영국의 연합국이었으나 사실상 식민지취급을 받았고 끊임없는 갈등 끝에 1922년 독립했다. 식민지라고 해도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착취당한 것 같은 식민지는 아니었으나, 아일랜드 출신에 대한 무시가 공공연히 이루어져서 나름 설움이 많이 쌓였던 관계라고 한다. 이 책속의 단편들이 쓰여진 시기는 아일랜드 독립전이라서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내에 퍼진 반영vs친영 감정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작가는 아일랜드 출신이면서도 평생을 해외를 떠돌며 살았고, 그가 떠돌던 시기의 해외는 대부분 전쟁상황이라서 그런지 조국에 대한 감정이 어느 한쪽으로 분명히 드러나진 않는다.


화자의 나이순으로 배열된 작품이다보니 첫 작품의 화자는 어린 소년이다. 당시의 교육은 종교기관이나 성직자들에 의해 주로 이루어졌던 것 같다. 소년을 가르쳐주던 신부의 장례식을 보는 소년의 시점인 <자매>,

엄격한 학교 수업을 땡땡이 치고 두 명의 소년이 일탈의 외출을 하는 <어떤 만남>,

사춘기의 소년이 짝사랑하는 소녀에 대한 마음이 보이는 <애러비>,

이제 막 여학교를 졸업한 소녀티가 남아 있는 아일랜드 처녀의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다룬 <이블린>,

대학교를 다니는 아일랜드 청년의 소외감을 다룬 <경주가 끝난 후>,

서른 안 팎의 건달청년의 불안함이 보이는 <두 건달>,

직장에서 자리잡아 갈때 하숙집 딸과의 결혼에 몰리는 남자의 이야기 <하숙집>,

한 가정의 가장이 겪는 어설픔에 대한 <구름 한점>,

가장으로서 지치고 알콜중독자가 되가는 <대응>, 친자식처럼 기른 양아들의 집에서 겪는 죽음의 그림자 <진흙>,

독신남의 사랑에 대한 오해 <가슴 아픈 사건>,

중년 남자들의 선거 이야기 <선거사무시리의 아이비 데이>,

딸의 공연비를 제대로 받아내려 노력하는 <어떤 어머니>, 은혼식까지 치룬 남편의 종교에 대한 <은총>,

노할머니자매가 연 크리스마스파티의 여흥과 추억속 첫사랑의 죽음에 대한 <죽은 사람들> 을 차례대로 읽다보면

소년이 자라서 첫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방황도 하다가 결혼도 하고 삶에 찌들어 알콜에 기대가는 남자가 보이기도 하고, 꿈이 있는 소녀였지만 가족의 옆을 지키고 아들딸을 억척스럽게 키워내고 가정을 잘 간수하며 음악을 즐기고 품위를 지키며 늙어가는 여자가 보이기도 한다.

작가가 그려내는 더블린 사람들의 모습은 대체로 무기력하고 의미없이 시간을 죽이고 겉모습에 보이는 품위를 따져가며 음악과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 같다. 특히 화자가 남자일때는 작가의 모습이 투영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 부분이 많았다. 이어지지 않는 단편들임에도 비슷한 남자들이 자꾸 묘사되는 건 결국 작가 자기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하숙집> 이라는 단편에서 하숙생과 딸과의 은밀한 관계를 눈치챈 엄마와 하숙생과 자신을 결혼시키려 하는 엄마의 생각을 눈치챈 딸의 생각을 묘사한 부분이 나는 작가가 자신의 조국 아일랜드를 생각하는 양가감정을 묘사한 것처럼 읽혀졌다.

 

그녀는 솔직하게 질문했고 또 폴리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물론 둘 다 어색하긴 했다. 그녀는 자기가 그 소석을 너무 대범하게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알고도 묵인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싫어서 어색했고, 폴리는 그런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늘 자신을 어색하게 할 뿐 아니라, 순진하면서도 알 건 다 아는 자기가 엄마의 관용 뒤에 도사린 의도를 벌써 감지하고 있었다고 엄마가 생각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도 어색해졌던 것이다.


더블린 에 대한 작가의 감정은 <구름 한점> 이라는 작품에서 가장 많이 느낄 수 있었다.

나름 안정적인 직장과 신혼생활에 갓난아기를 둔 챈들러는 런던에서 활동하다 잠시 고국을 방문한 친구를 만나러 가면서 생각한다.

 

성공하고 싶으면 떠나야 했다. 더블린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그는 런던에 더 가깝게, 자신의 맨숭맨숭하고 비예술적인 삶으로부터 점점 더 멀리 나아갔다...

하지만 기대를 품고 만난 런던에서 활동중인 기자 친구는 다른 말을 한다.

 

고국에 돌아오니까 굉장히 좋다. 정말이야. 다정하고 더러운 더블린에 발을 딛는 순간 훨씬 기분이 좋아졌어

자신을 런던으로 줄을 이어줄 친구는 쓸데없는 소리만 하다가 약속이 있다며 가버렸다. 챈들러는 생각한다.

 

자기 자신의 삶과 친구의 삶의 대비가 뼈저리게 느껴졌고, 그게 그에게는 부당하게 보였다. 갤러허는 출신이나 학력이 그보다 열등했다. 그는 기회만 주여진다면 자기 친구가 해낸 것보다, 혹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것, 겉만 번지르르한 기자 생활보다 더 고귀한 어떤 것을 해낼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무엇이 그를 가로막고 있는 것인가? 그의 안타까운 소심함! 그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정당화하고, 자신의 사내다움을 주장하고 싶었다. 그는 갤러허가 자신의 초대를 거절한 배경을 알 수 있었다. 갤러허는 선심 쓰듯 아일랜드를 한번 방문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에게 우정을 은혜로 베푸는 거였다.


[더블린 사람들]을 읽으며 든 생각은, 영국의 식민지였다고는 하나 노예와 같은 착취를 당한 것은 아니고,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문화권을 가진 사람들인데 사는 처지의 차이로 인한, 다시말하면 아일랜드 사람들과 영국 사람들 사이의 심리는 번영에서 밀려난 도시와 중심의 자리를 차지하고 번영에 번영을 거듭하는 도시 사이에 느껴지는 위화감 같은게 아닐까 싶었다.


이 책에서 가장 길어서 단편 보다는 중편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은 사람들> 에서 잘 나가는 중산층 가정의 가장 게이브리얼 하는 말은 꼭 작가가 하는 말 같았다.

 

새로운 세대가 우리들 한가운데서 자라나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세대죠. 이 세대는 이 새로운 사상의 열기에 대해 진지하고 열광적이며, 그들의 열정은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조차도 대체로는 진정성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회의적인, 또 이렇게 표현해도 된다면, 사유로 고통받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따금씩 저는 이 새로운 세대가, 교육받은, 혹은 과잉교육을 받은 세대이지만, 그 이전 시대에 속했던 그러한 인간미, 환대, 다정한 해학 같은 자질들을 결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저어됩니다. 오늘 저녁, 과거의 그 모든 위대했던 가수들의 이름을 들으면서, 고백하건대 저는 우리가 그때보다 덜 넉넉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시절들은 과장해서 말하지 않고도 넉넉한 시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시절이 돌이킬 수 없이 가버렸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오늘 같은 모임에서 우리가 그런 시절에 대해 자부심과 애정을 갖고 여전히 이야기를 나누고, 지금은 죽고 없지만 세상이 그 이름을 선뜻 죽게 만들지는 않을 그런 훌륭한 사람들의 기억을 여전히 가슴에 간직할 것이라고 희망해봅시다.


작가가 이 작품을 쓸 당시 아일랜드는 수백년간 영국의 통치를 받아오고 있었고, 지속적인 차별로 가난에 허덕였는데, 저자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양질의 교육을 받고 외국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 청년이었다. 조선후기 실학파처럼 조선말 개화파처럼 일제치하초기 신흥사상가들처럼 조국을 사랑하지만 조국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갈등이 짐작되었다.


작가가 묘사하는 무기력하면서도 아일랜드인으로서의 긍지를 잃지 않는 모습과 가난하면서도 여흥을 즐기는 모습과 끈끈한 가족애의 모습이 우리네 정서와 흡사하여 외국작품임에도 게대가 장편도 아닌 단편임에도 큰 거리감 없이 읽혀졌다. 그나이에 가졌을 법한 감정들도 공감되고 현실상황에 바탕을 둔 감정들도 백여년의 시간차가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죽은 사람들>이란 작품은 아일랜드 인으로서의 양가감정이 가장 많이 가장 잘 드러나고 있어서 여운이 긴 작품이었다. 작가가 봤을 때 더블린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 일까, 작가 자신이 아내의 추억속에 죽은 첫사랑처럼 '죽은 사람'일까, 죽은 사람은 한 명인데 왜 제목이 복수형일까...

장편과 달리 단편을 쓸 때는 클라이맥스에서 갑자기 뚝! 끝내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는데, 현대소설의 문을 연 작가라는 호칭에 걸맞게 그러한 작법이 두드러진 작품들이었다. 기존에 나왔던 작품들이지만 새롭게 번역해서 나온만큼 매끄러운 번역도 좋았고, 개인적으로 단편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장편을 선호하는데, 한국작가들의 단편보다 더 공감이 잘되는 외국단편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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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의 시방상담소 - 뭣 같은 세상, 대신 욕해드립니다
김수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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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이만치 위로 요만치 김수미표 고민 요리법

"말해봐, 뭔데"

 

 

내내 집에만 있고 무거운 분위기의 요즘 책 한권으로 이렇게 마음이 가벼워질 수도 있네 ㅎㅎ

김수미표 시원스런 고민상담 활약상을 모은 이 책은 일상적인 고민들에 대해 일상적일 수 있는 답변을 김수미식 표현으로 비일상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재미가 있다.

책표지 날개에 국민 욕쟁이 할머니 라고 표현해 놓았던데, 정작 이 표현을 김수미는 좋아할까?

언젠가 욕쟁이할머니식당이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나는 당췌 이해할수가 없었다. 내돈내고 밥사먹으면서 굳이 XX야 쳐먹어라 소리듣고 먹는게 기분이 좋은가?? 나는 친절하고 상냥한 멘트가 좋지 그 어느 경우에도 욕먹고 기분좋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이런 식당에서의 욕쟁이할머니는 그냥 아무한테나 막 이유없이 욕을 하는 컨셉이었던것 같은데, 김수미표 욕은 그렇지 않았다.

티비예능에서 몇번 본적 있는데, 말을 좀 거칠다 싶게 시원스럽게 하는 거지 욕을 일상화 하는 욕쟁이는 아니었다. 욕을 할때는 욕을 할만한 상황이 있어서 욕을 하는 것이었다. 주변인식에 눈치가 보여 하고 싶어도 내뱉지 못하는 말을 김수미는 그저 자신있게 거침없이 내뱉을 뿐이었다. 이런 모습을 욕쟁이할머니라고 표현하는 것이 나는 왠지 비하하는 느낌이라서 별로다. 김수미표 욕은 욕이라기 보다는 거침없는 인간미 넘치는 말투 같은데 말이다.

어쨌든 이런 시원스런 말투의 71세 할머니가 다양한 고민들을 들으며 때로는 공감을 해주고 때로는 화를 내며 때로는 욕을 하는 상담해결들은 그 어떤 고민이건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매력이 있었다. 가볍다고 해서 진지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 누구의 그 어떤 고민에도 진심으로 대해주는 모습이 참 따듯해 보였다. 같은 대답을 해도 그 대답을 해주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듣는 사람의 마음은 달라진다. 김수미스럽다는 형용사가 가능할 정도의 개성을 가진 김수미이기에 그걸 아는 상담자들이 위안을 얻게 된다.

분명 고민상담이 맞는데 자꾸 키득키득 웃으며 읽게 되서 왜 그런지 사례 하나를 옮겨본다.

'저는 집에만 들어가면 왜 그렇게 씻기 귀찮을까요? 저녁 먹고 씻자, 과제 하고 씻자, 드라마 한 편 보고 씻자, 하다가 12시 넘으면 '아 몰라 내일 아침에 씻지 뭐'하고 이불 덮고 자버려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개기름 낀 피부를 보면서 후회합니다. 이 귀차니즘 어떻게 고쳐요?'

귤껍질 위에 파운데이션 한번 발라 봐. 어떻게 되나. 보이냐? 그게 네 미래다. 나는 나이가 칠십한 개인데 집에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게 샤워야. 싹 씻고 화장한 거 뽀독뽀독 깨끗하게 지워내. 그래서 피부 건강 나이 테스트하잖아? 서른하나라고 나와. 이렇게 부지런해도 조금씩 망가지는 게 피부야. 근데 넌 뭐하냐. 일부러 피부를 썩히고 있어. 백날 말해서 뭐 해. 너 그냥 화장 지우지 마. 귀찮은데 왜 지워. 그렇게 한 3년만 더 하면 얼굴이 아주 우둘투둘 귤껄질처럼 될 거다. 땀구멍 넓어져서 아주 100원만 해질 거다. 무서우면 집에 들어갈때 신발 벗자마자 욕실로 바로 들어가. 물 틀고 세수헤! (p. 27~28)

 

소오~~~~름!!!

이 상담자분 바로 귀차니즘 고쳤을 것 같다. ㅋㅋㅋ

읽으면서 보니 칠십한살 이라는 나이가 되는 동안 인생굴곡 꽤 심하게 겪으신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건 늘 변치 않고 부지런히 자기일을 해오셨다는 거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기에 자신감을 갖고 말을 한다. 말에는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다. 김수미의 말은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말이기에 그게 설령 욕일지라도 거침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얼핏 생각해보면 본업은 배우인데, '전원일기' 의 일용엄니 말고 떠오르는 캐릭터가 없다. 캐스팅 당시 할머니의 나이도 아니었다는데 줄곧 할머니로만 살아온 인생이다. 그리고 지금은 완전한 할머니이다. 배우로서보다는 요리로 이름을 날렸고 지금은 누구도 할 수 없는 욕쟁이캐릭터로 종횡무진 활약중이시다. 그런데 배우로서 그러한 과정이 마냥 좋기만 했을까?

어쨌든 그녀는 여전히 예쁘다는 칭찬을 가장 좋아하고 여전히 새벽5시에 일어나 하루일과를 시작하는 여전히 당찬 여자 김수미다.

그리고 칠십한해를 만들어온 그녀의 노력이 쌓이고 쌓여 젊었을 때보다 점점 더 빛나고 이제 정말 스타가 되신것 같아서 멋지다.

'김수미의 시방상담소'에 내고민은 없었지만 누군가의 고민은 분명 이 책속의 고민요리법으로 마음의 짐을 조금은 가벼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열심히 살면 언젠가 뭐가 되도 된다! 라고 나또한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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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의 일을 냅니다 - 사장이 열 명인 을지로 와인 바 '십분의일'의 유쾌한 업무 일지
이현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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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내고, 다 함께 벌어, 똑같이 나눈다.

이렇게 참신한 방법으로 먹고사는 사람도 있다니...

때로는 녹록지 않지만 꽤 잘 살아가고 있는

'월급 받는 자영업자'의 이야기

 

 

누군가의 에세이를 이렇게 웃어가며 읽어본 적이 있던가?! 유머책도 아닌데 초반부터 빵빵 터지는 재치코드에 나도 모르게 계속 키득거리며 읽게 되는 책이었다. 사장이 열 명인 을지로 와인 바 '십분의 일'의 유쾌한 업무 일지 라는 이 책은 청년들의 발랄함과 새로운 공존의 인간미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는 운이 좋았다. 우리의 아지트 같았던 '십분의 일'은 점점 여러 손님들의 아지트가 되었고 몇 개월이 지나자 본전치기를 넘어섰다. 우리는 여전히 여럿이서 함께 운영중이다. 그렇다. 우리는 성공했다.

로 끝내고 싶은데 그러기엔 지금까지 이 안에서 벌어진 구질구질한 일들이 너무 많다. 한 사람이 가게를 해도 매일매일 에피소드가 쌓일 텐데, 열 명이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니 오죽할까. 3년 동안 매일같이 열 명이 동시에 말하는 카톡방을 들여다봤다. 한달에 한번씩은 열 명이 주인인 가게에 모여, 모두가 1인1표를 행사하는 민주적인 회의를 한다. 그걸 대략 30번쯤 했다. 이제 민주주의고 뭐고, 다 지겹다. 가끔은 민주주의가 정말 인간에게 적합한 제도가 맞는지 진지하게 의심한다. 인류 역사에서 왜 그렇게 많은 독재자가 등장했는지 조금은 이해된다. 총회를 한답시고 둘러앉아 메뉴에 올리브를 추가하냐 마냐를 두고 1시간 동안 지지고 볶고 있는 멤버들을 보고 있으면 올리브기름이라도 끼얹고 가게를 통째로 태워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느낀다. 목재여서 활활 잘 탈 게 분명하다.

한편으로 난 멤버들을 사랑한다. 일을 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우리 멤버들이다. 가게에 사고가 나면 가장 먼저 달려오는 것 역시 우리 멤버들이다. 과연 이들이 없었다면 내가 십분의 일을 운영하고 있었을까. 그럴리 없다. 애초에 장사 같은 건 별로 생각해본적 없었으니까. (p. 6~7)

 

프롤로그에서부터 느껴지는 저자의 오르락내리락은 끝까지 계속 삶의 희노애락을 와인바운영을 통해 느끼게 해준다. 그것도 아주 유쾌하게 ㅎㅎ

저자는 드라마 막내PD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다들 부러워할 것 같은 그 직장에서 막내PD의 생활은 녹록지 않았는데 무엇보다 저자와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1년여만에 그만두고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저자는 인도여행을 다녀와서 뭔가 깨달았다거나 힐링했다거나 다시 시작할 에너지를 충전했다거나 등등의 식상한 결론을 얻지 않았다.

"여행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했다. 돌아왔을 때, 나는 진짜 백수가 되어 있었다"

이게 리얼 아닐까? 퇴사하고 여행 몇달 다녀온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는 현실. 그저 불안한 백수라는 것.

이런 미화하지 않는 진심이, 결과을 알고 시작하는 책에 대한 부러움을 상쇄시키고 있었다. 잘 나가는 와인바 사장이 된 것에 대한 부러움에 왠지 지고 시작하는 기분으로 읽게 되는 책이지만 읽다보면 그럼그렇지 하는 묘한 안도감이랄까 ㅎㅎㅎ

<최후의 제국>은 아누타 섬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들이 지니고 있는 사랑, 협동, 공생 등을 모두 아우른 단어가 바로 '아로파' 다. (하와이로 넘어가면서 아예 인사말이 됐다. 알로하~)

"우리 아누타 섬처럼 다 같이 버는데 수익은 똑같이 나누는 마을 하나 만들면 어떨까? 마을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는 돈에 구애받지 않고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야!" (p. 37)

 

저자는 학생시절부터 이런저런 모임을 자주 만들고 활동하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드라마작가가 되겠다고 글을 써보려 했지만 잘 써지지 않았고 다시 들어간 회사에서 다시 퇴사를 생각하던 즈음 학생때 했던 스터디멤버들을 만나 술한잔 하던 자리에서 '아로파' 가 등장했다.

2013년쯤 티비에서 <최후의 제국> 이라는 다큐를 했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자본주의의 한계를 짚고 그 이후의 대안 경제를 모색하는 내용이었는데, 그중 남태평양에 살고 있는 한 부족의 이야기가 중심이었고 그 부족이 아누타섬사람들 이었다.

그렇게 처음 7명이 모였고, 저자가 퇴사를 하면서 구체적으로 가게장소를 물색하게 되고 어떤 가게를 어떤식으로 운영해나갈지 논의하게 된다.

"각자 월급의 10%를 월 회비로 내자"

저자는 백수이지만 다른 멤버들은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시작하려면 출자금이 필요했고 규칙이 필요했다.

초기비용으로 천만원씩을 내고 운영비로 각자 소득의 10%를 월회비로 내기로 했다. 이 월회비 규칙은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고 한다. 중간중간 멤버가 열명이 되기도 하고 9명이 되기도 하고 새멤버가 들어오기도 했지만, 여전히 각자의 소득의 10%를 회비로 낸다. 그리고 영업이익은 똑같이 1/n 으로 나눠 갖는다.

저자는 솔직하게 자신이 당시 백수가 아니었다면 자신의 월급 10%를 회비로 내는 모임에 선뜻 참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다행히?! 저자는 백수였고 가게운영을 맡게 되면서 회비에서 월급을 받는 것으로 백수탈출을 함과 동시에 10%를 내는 공동사장이 되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난덕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가게를 3년째 운영중인 저자도 남다른 사람임은 분명해보인다.

우리는 각자 취향도 이곳에서 하고 싶은 것도 모두 달랐다. 하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무언가 새로운 일에 뛰어들고 싶다는 욕구는 같았다. 그런 공통점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줬다. 한여름 뜨거웠던 그 자리는 우리가 단순히 가게를 만들기 위한, 창업을 위한 모임이 아니라는 걸 되새겨주었다. (p. 102)

창업을 위한 시작이 아니었다. 돈을 벌자가 먼저가 아니었다. 정안되면 6개월만 일단 운영해보고 접자는 합의로 시작한 가게였다.

그저 마음맞는 사람끼리 모여 함께 무언가를 해보자가 시작이었다. 결과가 같아보일지라도 다른 시작은 지속적인 운영에 분명 다른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다.

발품팔아 가게자리를 찾아 손수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첫손님이 왔을때 '여길 어떻게 알고왔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설픈 사장이었지만, 어느덧 2018년 봄 두번째 가게 '빈집:비어있는 집' 을 오픈하고, 2019년 보엔 세번째 와인바 '밑술' 을 같은해 여름엔 네번째 브랜드인 게스트 하우스 '아무렴 제주' 를 만들었다. 그리고 열심히 운영하고 입소문을 타며 성업중이고 점점 더 확장해가며 멤버 각자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공동체 '아로파' 가 되길 꿈꾸고 있다.

개인주의 시대라고 하지만 찾아보면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가 탄생하고 있는 것이 또한 이시대의 새로운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그 새로운 도전이 이렇게 활기찬 결과를 맺는 것을 보니 내일도 아닌데 뿌듯하고 그렇게 함께하고 있는 멤버들이 기특해보인다. 앞으로도 '청년 아로파'의 도전이 계속되길 응원해본다.

요즘도 많은 분들이 나에게 묻는다. 정말 열 명이서 계속 같하세요? 네, 여전히 같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p.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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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나도 식물이 알고 싶었어 - 정원과 화분을 가꾸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식물 이야기
안드레아스 바를라게 지음, 류동수 옮김 / 애플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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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과 화분을 가꾸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식물 이야기

사소하지만 절대적인 식물에 대한 상식 82

 

 

번역본은 한국어판 제목이 잘못 붙여진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책은 한국어판 제목 자체가 번역여부와 관계없이 일단 마음에 들었다.

Woher wissen Wurzeln, wo unten ist? Wissenswertes und Kurioses rund um den Garten 이라는 독일어를 검색해보니 '뿌리는 아래의 위치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정원 주변의 흥미로운 사실과 호기심' 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즉, 이 책은 정원식물에 대한 책이고 표지의 제목 옆 부제로 잘 설명되어지고 있다.

이 책이 또 마음에 드는 이유는 예쁘다는 것이다. 내용에 어울리는 식물그림들이 세밀화로 첨부되어 있다. 사진이 아니라 세밀화라서 더 부드럽게 예쁘다.

저자는 독일의 원예학자, 식물학자이자 저술가, 강연가로 활동중이라고 한다. 본문 내용 중간중간 본인을 정원사로 뿌듯해하며 표현하는 부분들이 친근하면서도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지면서 따듯하게 읽혀지기도 했다.

식물에 대한 지식과 기본적인 정원 관련 지식을 이 책에 간결하게 정리해보았다. 자료를 뒤적거리며 조사하는 일이 이렇게 큰 기쁨을 안겨준 것도 흔치 않았다. 각 주제는 묻고 다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내가 다소 임의로 선별한 것이라 결코 완벽하지 않으며, 나중에 마음껏 확장해도 된다. 이 책을 본 뒤에 뭔가에 호기심을 느껴 식물과 정원 관련 연구에 한번 제대로 몰두해보겠다는 마음이 생갈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단언컨데 여러분은 나와 비슷한 길을 걸어 식물, 정원 그리고 자연에 대한 매혹을 다시는 떨쳐내지 못하리라! (p. 6)

저자는 프롤로그에서부터 식물과 정원에 대한 애정을 뿜뿜 드러낸다. 미국이나 유럽은 땅덩어리가 넓어서 집집마다 정원이 있는 것들을 자주 볼수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에 정원을 갖고 있는 집은 흔치 않다. 하지만 아파트에 살더라도 화분 한두개쯤은 들이게 되는 법, 정원이 없어도 이 책이 알려주는 상식들은 은근 유익할 것이다. 무엇보다 평소 식물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있던 나로서는 여러모로 배울점이 많은 책이었다.

식물은 나무껍질이나 바깥쪽 세포들도 성질이 바뀌어 뿌리를 형성할 수 있다. 그 세포들은 어린 시절의 유연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게 종을 유지하는 데 여러 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p. 21)

동물은 고등하게 발달해 있을수록 세포 하나하나가 그만큼 더 특화되어 있다고 한다. 다시말해 세포의 성질이 거의 정해져있다는 말이다. 다리가 될 세포는 다리가 되고 팔이 될 세포는 팔이 된다. 하지만 식물은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변형할 수 있다. 줄기를 만들던 세포가 뿌리를 만들수도 있고 땅속에 있다가 땅위로 나오게 되는 순간 새싹을 틔워낼 수도 있다. 식물은 뇌가 없다. 하지만 식물은 온몸이 뇌인것 같다. 역시 식물은 경이롭다.

나무 한 그루가 분해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숲의 여러 식구들은 거기서 더 많은 자기 몫을 챙길 수 있으므로, 이 과정은 생태계를 위해서 더 값진 시간이 된다. 어떤 존재 하나가 와서 그 모든 것을 이른바 한입에 다 먹어치워 버리지만 않는다면, 자연이라는 무대의 수많은 등장인물은 이 먹이사슬에서 배제될 일이 없다. 그러므로 낡은 책장을 땔감으로 써버리고 새 책장을 사기에 앞서, 원목으로 된 그 오래된 책장을 사포질해 새로 칠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은지 고민해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p. 31)

식물관련 책이므로 당연히 자연친화적 태도일 수밖에 없다. 환경을 생각하면 인간은 정말 사악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자연에서 모든 것을 한입에 다 먹어치워버리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므로.

현존하는 최장수 나무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소나무속의 일종인 브리슬콘소나무인데, 그 나이가 5,066세로 밝혀졌다고 한다. 이 밖에도 재미있거나 알아두면 유용할 것 같은 자료들도 잘 정리되어져 나온다. 그리고 항상 헤깔리던 건데, 과일과 채소는 명료하게 구분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명확히 구분하려 하기보다 그냥 맛있게 먹으라고 ㅎㅎ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아는 것은 식물에게 목숨이 달린 중요한 일이다. 그걸 알아야 뿌리 시스템은 온전히 형성할 수 있다. 뿌리는 그 세포 속에 묵직한 것, 소위 평형석이란 걸 갖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전분 알갱이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세포액보다 더 무겁다. 이 알갱이는 지구 중심을 향하는 중력의 법칙에 따라 방향을 잡는다. 평형석 덕분에 식물은 지상에서 성장하는 한 어느 방향에서 빛이 오는지, 또 어느 방향에서 물과 지지물 및 영양분을 얻을 수 있는지 '알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식물이 빛이라는 자극을 전혀 얻지 못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p. 38)

 

평형석이라고 부르는 것이었구나... 식물은 빛을 향해 가는 것은 육안으로 확인 가능하지만 빛이 없는 땅속에서 뿌리가 길을 찾아나가는 것은 평형석 덕분이었다. 중력이 없는 우주에서 실험을 해보면 싹이 트는 식물은 모든 방향으로 자라난다고 한다. 평형석이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해 사방으로 뿌리를 뻗는 다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지구에 도착하면 뿌리는 몇 시간내로 방향을 잡는다고 하니 역시 식물은 대단하다. 참고로 평형석은 동물과 인간도 갖고 있고 이로인해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면에서 볼때 식물학의 가장 유명한 오류는 장미다. 장미는 가시를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다수 장미가 지니고 있는 것은 바늘이다. (p. 67)

식물에서 가시라 함은 목질부 싹의 심이 웃자라 문들어진 것이라 말하자면 작은 곁순과 같은데 이것은 잎과 꽃이 되는 게 아니라 끝이 뾰족하게 된 것이고, 바늘은 목질부 싹의 껍질이 웃자란 것이라고 한다. 가시는 목질부에서 새싹 하나를 완전히 뜯어내는 일과 같아서 잘 제거가 되지 않는 반면 바늘은 훨씬 쉽게 꺽인다고 한다. 장미가시를 똑 떼면 잘 떨어지지 않나. 가시가 아니라 바늘이라서 였던 것이다! 동화속 등장하는 가시장미는 바늘장미로 바꿔 불러야 할 지도 모르겠다. ㅎ

과일나무는 실제로 낮 시간의 길이를 계산할 수 있다. 빛의 총량은 특정 단백질을 통해 특정된다. 이 단백질은 빛이 작용하면 형성되고 어두울때는 분해된다. 그리고 그 양이 충분하면 기온이 충분히 따뜻하다는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꽃을 벌어지게 한다. (p. 82)

식물은 알면 알수록 굉장히 체계적인 자동화 시스템 같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날씨의 오류로 인해 식물의 시스템은 오류를 일으키곤 한다. 겨울에 피어난 봄꽃을 보면 왠지 짠하다.;;;

생명체로 북적거리는 자연은 윤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생존의 법칙만 따를 뿐이다. (p. 102)

생태계에 인간윤리의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 그건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생각이다. 우리는 자연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뿐 판단할 수는 없다.

관상용으로 들어온, 늦은 시기에 아주 풍성하게 꽃을 피우는 품종들이 씨앗을 너무 빨리 형성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이미 수백만년 전부터 이곳에 토박이로 살아온 품종들을 몰아내는 게 문제다. 생태계에는 이렇게 밀려나는 식물들만이 아니라 그 식물들에 특화된 가루받이 곤충들 그리고 그 식물을 먹이로 삼는 적들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 특히 가루받이 곤충들은 새로 이주해온 식물 품종들과는 관계를 맺지 않으려 하고 맺지도 못한다. 생태계를 훼방 놓지 않으려면 모든 의식있는 정원사가 나서서 이런 외래종 식물들의 씨앗이 성숙하지 못하도록 해야하며, 진 꽃은 지체하지 말고 잘라주어야 한다. '제대로 된' 정원사는 이런 식으로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p. 110,111)

'제대로 된'정원사인 저자는 토박이 품종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읽으면서 나도 공감했다. 생태계의 교란은 식물계에서도 동물계에서도 외래종에 의해 수시로 일어날 위험성이 있다. 동물계에서의 교란은 눈에 보이므로 심각함이 쉽게 인지되지만 더 위험함 것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식물계에서의 교란인것 같다. 토종식물계가 흔들리면 토종곤충계과 토종동물계도 흔들린다. 그리고 그때가서야 인간이 알게 되는 것이다.

잡초란 특정 장소에서 자라는 식물로, 그 땅의 소유자인 인간이 결코 원하지 않는 존재다. 엄밀히 말하면 아름답기 그지없는 장미도 옥수수밭에서는 자라면 잡초다. (p. 112)

잡초란 개념이 이렇게 상대적이었는지 새삼스러웠다. 그리고 잡초라는 명칭이 얼마나 인간중심적인 것이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독과 향기에 대한 설명에서도 그랬다. 인간에겐 독이지만 새에겐 먹이였고 인간에겐 향기이지만 곤충에겐 독일 수 있었다. 식물을 알아갈수록 인간이 참 부끄러워진다.

아무튼 성가신 잡초들은 우리가 좋아하는 꽃들과 채소들을 무자비하게 뒤덮는데. 그래서 우리는 대응조치를 취한다. 더 편한수단, 예컨대 화학약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나온 제초제 같은 것을 쓰면 잡초 제거외의 생태계 파괴라는 비싼 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오해 마시라. 김매기는 내가 좋아하는 정원일이 아니다. 그러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그래서 그렇게 몸을 구부려 김을 매는 동안 나는 항상 이렇게 생각한다. '어머니 대지는 나의 여신이다. 그 여신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나는 이렇게 깊이 머리 숙여 절하지 않을 수 없다' (p. 115)

농사에 대해서는 제초제라던가 하는 화학제 사용을 논외로 두고 적어도 정원이나 화분에만큼은 사용을 하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농사에 사용되는 제초제에 대해서는... <침묵의 봄> 책에서 읽었던 사항들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 같아 다시한번 마음이 무거워진다...

장미 꽃다발에서 향기를 누리고 싶다면 싱싱한 모양새는 포기하고, 꽃병에 꽂아두면 꽃잎이 금방 시드는 품종을 구해야 할 것이다. (p. 121)

꽃다발로 가장 선호하는 장미꽃다발! 이 꽃다발 속 장미는 개량 품종이고 개량품종은 향기가 없다고 한다. 향기는 없으나 오래 싱싱하도록 개량하고 시들지 말라고 꽃잎에 왁스까지 뿌린다고 한다. 시들줄 모르는 장미에 대한 요구가 많아질수록 장미향기는 추억이 된다. 그러고보니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장미꽃다발에 코를 묻고 향기를 음미하는 모습도 연기?! 갑자기 꽃집에 가서 장미에 코를 대보고 싶다.ㅎㅎ

오늘날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최고급 난초로 손꼽히는 품종 하나도 대량 생산품이 되어버렸다. 한때 나도풍란은 '여왕급' 난초로서 경이와 찬탄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오늘, 어떤 생각없는 화훼 전문가가 내뱉은 말 한마디가 귀에 쟁쟁하다. "바라건대 다시는 따분하기 짝이 없는 나도풍란으로 장식할 일이 없기를" 서글프지 않은가? (p. 147,148)

서양에서 난은 희귀품종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비싼값에 들여오고 죽으면 또 들여오고 했었는데, 대량복제가 가능해지면서 식상한 식물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관상용이라는 목적으로 어느정도까지 식물의 교란을 허용해야 할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한때 유럽주식시장을 점령했던 튤립에서 배울수 있었던 것처럼 식물의 희귀성도 돈으로 가치를 매겨 정하는 것의 최종피해자는 인간 아닐까.

앞서 언급했다시피, 원예식물은 원예식물로 머물러야 하며 통제 없이 자연계로 들어가서는 안된다. 즉 자체적으로 씨앗이 퍼지거나 기는줄기로 증식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이는 근심을 정원 담장 너머로 퍼뜨리는 일이 될 것이다. (p. 172)

정원식물은 정원안에서만 잘 가꾸자! 자연을 존중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일단 내집정원 내집화분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일임을 이 책을 통해 좀더 진지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소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기초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저자가 알려주는 82가지 식물상식들은 식물에 대한 소중함을 각성하는데 도움되는 좋은 조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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