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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의 일을 냅니다 - 사장이 열 명인 을지로 와인 바 '십분의일'의 유쾌한 업무 일지
이현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평점 :
다르게 내고, 다 함께 벌어, 똑같이 나눈다.
이렇게 참신한 방법으로 먹고사는 사람도 있다니...
때로는 녹록지 않지만 꽤 잘 살아가고 있는
'월급 받는 자영업자'의 이야기
누군가의 에세이를 이렇게 웃어가며 읽어본 적이 있던가?! 유머책도 아닌데 초반부터 빵빵 터지는 재치코드에 나도 모르게 계속 키득거리며 읽게 되는 책이었다. 사장이 열 명인 을지로 와인 바 '십분의 일'의 유쾌한 업무 일지 라는 이 책은 청년들의 발랄함과 새로운 공존의 인간미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는 운이 좋았다. 우리의 아지트 같았던 '십분의 일'은 점점 여러 손님들의 아지트가 되었고 몇 개월이 지나자 본전치기를 넘어섰다. 우리는 여전히 여럿이서 함께 운영중이다. 그렇다. 우리는 성공했다.
로 끝내고 싶은데 그러기엔 지금까지 이 안에서 벌어진 구질구질한 일들이 너무 많다. 한 사람이 가게를 해도 매일매일 에피소드가 쌓일 텐데, 열 명이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니 오죽할까. 3년 동안 매일같이 열 명이 동시에 말하는 카톡방을 들여다봤다. 한달에 한번씩은 열 명이 주인인 가게에 모여, 모두가 1인1표를 행사하는 민주적인 회의를 한다. 그걸 대략 30번쯤 했다. 이제 민주주의고 뭐고, 다 지겹다. 가끔은 민주주의가 정말 인간에게 적합한 제도가 맞는지 진지하게 의심한다. 인류 역사에서 왜 그렇게 많은 독재자가 등장했는지 조금은 이해된다. 총회를 한답시고 둘러앉아 메뉴에 올리브를 추가하냐 마냐를 두고 1시간 동안 지지고 볶고 있는 멤버들을 보고 있으면 올리브기름이라도 끼얹고 가게를 통째로 태워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느낀다. 목재여서 활활 잘 탈 게 분명하다.
한편으로 난 멤버들을 사랑한다. 일을 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우리 멤버들이다. 가게에 사고가 나면 가장 먼저 달려오는 것 역시 우리 멤버들이다. 과연 이들이 없었다면 내가 십분의 일을 운영하고 있었을까. 그럴리 없다. 애초에 장사 같은 건 별로 생각해본적 없었으니까. (p. 6~7)
프롤로그에서부터 느껴지는 저자의 오르락내리락은 끝까지 계속 삶의 희노애락을 와인바운영을 통해 느끼게 해준다. 그것도 아주 유쾌하게 ㅎㅎ
저자는 드라마 막내PD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다들 부러워할 것 같은 그 직장에서 막내PD의 생활은 녹록지 않았는데 무엇보다 저자와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1년여만에 그만두고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저자는 인도여행을 다녀와서 뭔가 깨달았다거나 힐링했다거나 다시 시작할 에너지를 충전했다거나 등등의 식상한 결론을 얻지 않았다.
"여행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했다. 돌아왔을 때, 나는 진짜 백수가 되어 있었다"
이게 리얼 아닐까? 퇴사하고 여행 몇달 다녀온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는 현실. 그저 불안한 백수라는 것.
이런 미화하지 않는 진심이, 결과을 알고 시작하는 책에 대한 부러움을 상쇄시키고 있었다. 잘 나가는 와인바 사장이 된 것에 대한 부러움에 왠지 지고 시작하는 기분으로 읽게 되는 책이지만 읽다보면 그럼그렇지 하는 묘한 안도감이랄까 ㅎㅎㅎ
<최후의 제국>은 아누타 섬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들이 지니고 있는 사랑, 협동, 공생 등을 모두 아우른 단어가 바로 '아로파' 다. (하와이로 넘어가면서 아예 인사말이 됐다. 알로하~)
"우리 아누타 섬처럼 다 같이 버는데 수익은 똑같이 나누는 마을 하나 만들면 어떨까? 마을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는 돈에 구애받지 않고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야!" (p. 37)
저자는 학생시절부터 이런저런 모임을 자주 만들고 활동하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드라마작가가 되겠다고 글을 써보려 했지만 잘 써지지 않았고 다시 들어간 회사에서 다시 퇴사를 생각하던 즈음 학생때 했던 스터디멤버들을 만나 술한잔 하던 자리에서 '아로파' 가 등장했다.
2013년쯤 티비에서 <최후의 제국> 이라는 다큐를 했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자본주의의 한계를 짚고 그 이후의 대안 경제를 모색하는 내용이었는데, 그중 남태평양에 살고 있는 한 부족의 이야기가 중심이었고 그 부족이 아누타섬사람들 이었다.
그렇게 처음 7명이 모였고, 저자가 퇴사를 하면서 구체적으로 가게장소를 물색하게 되고 어떤 가게를 어떤식으로 운영해나갈지 논의하게 된다.
"각자 월급의 10%를 월 회비로 내자"
저자는 백수이지만 다른 멤버들은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시작하려면 출자금이 필요했고 규칙이 필요했다.
초기비용으로 천만원씩을 내고 운영비로 각자 소득의 10%를 월회비로 내기로 했다. 이 월회비 규칙은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고 한다. 중간중간 멤버가 열명이 되기도 하고 9명이 되기도 하고 새멤버가 들어오기도 했지만, 여전히 각자의 소득의 10%를 회비로 낸다. 그리고 영업이익은 똑같이 1/n 으로 나눠 갖는다.
저자는 솔직하게 자신이 당시 백수가 아니었다면 자신의 월급 10%를 회비로 내는 모임에 선뜻 참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다행히?! 저자는 백수였고 가게운영을 맡게 되면서 회비에서 월급을 받는 것으로 백수탈출을 함과 동시에 10%를 내는 공동사장이 되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난덕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가게를 3년째 운영중인 저자도 남다른 사람임은 분명해보인다.
우리는 각자 취향도 이곳에서 하고 싶은 것도 모두 달랐다. 하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무언가 새로운 일에 뛰어들고 싶다는 욕구는 같았다. 그런 공통점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줬다. 한여름 뜨거웠던 그 자리는 우리가 단순히 가게를 만들기 위한, 창업을 위한 모임이 아니라는 걸 되새겨주었다. (p. 102)
창업을 위한 시작이 아니었다. 돈을 벌자가 먼저가 아니었다. 정안되면 6개월만 일단 운영해보고 접자는 합의로 시작한 가게였다.
그저 마음맞는 사람끼리 모여 함께 무언가를 해보자가 시작이었다. 결과가 같아보일지라도 다른 시작은 지속적인 운영에 분명 다른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다.
발품팔아 가게자리를 찾아 손수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첫손님이 왔을때 '여길 어떻게 알고왔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설픈 사장이었지만, 어느덧 2018년 봄 두번째 가게 '빈집:비어있는 집' 을 오픈하고, 2019년 보엔 세번째 와인바 '밑술' 을 같은해 여름엔 네번째 브랜드인 게스트 하우스 '아무렴 제주' 를 만들었다. 그리고 열심히 운영하고 입소문을 타며 성업중이고 점점 더 확장해가며 멤버 각자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공동체 '아로파' 가 되길 꿈꾸고 있다.
개인주의 시대라고 하지만 찾아보면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가 탄생하고 있는 것이 또한 이시대의 새로운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그 새로운 도전이 이렇게 활기찬 결과를 맺는 것을 보니 내일도 아닌데 뿌듯하고 그렇게 함께하고 있는 멤버들이 기특해보인다. 앞으로도 '청년 아로파'의 도전이 계속되길 응원해본다.
요즘도 많은 분들이 나에게 묻는다. 정말 열 명이서 계속 같하세요? 네, 여전히 같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p. 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