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하고 역동적인 바이킹 - 전 세계의 박물관 소장품에서 선정한 유물로 읽는 문명 이야기 손바닥 박물관 4
스티븐 애슈비.앨리슨 레너드 지음, 김지선 옮김 / 성안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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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박물관 소장품에서 선정한 유물로 읽는 문명 이야기

집에서 탐험하는 손바닥 박물관 시리즈 4

 

 

박물관의 유물 중심으로 풀어낸 문명이야기 시리즈인 손바닥 박물관 시리즈가 고대로마, 고대그리스, 고대이집트 에 이어 바이킹을 등장시켰다. 사실 고대그리스,로마,이집트 는 고대문명으로 워낙 유명해서 대충이라도 짐작가는 바가 있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대시리즈 3권의 책 역시 몹시아주무척 보고싶긴 하다) '바이킹'은 정말 처음이었다. 몹시 궁금했고 아주 흥미로웠으며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네덜란드, 덴마크, 독일, 러시아, 미국, 스웨덴, 스페인,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영국, 캐나다, 핀란드 에 있는 세계 유수의 박물관 소장품 중 세심하게 가려 뽑은 200여 점의 바이킹 유물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유물을 읽으며 바이킹의 역사도 틈틈이 엿볼수 있는 책이다.

 

 

책을 시작함에 앞서 이 책을 더 재미있게 보는 Tip 을 알려주고 있는데, 바로 유물의 실제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표식이다. 인체와 손바닥을 이용하여 유물의 크기를 대비시켜 놓았는데, 유물마다 이 표식을 통해 실제크기를 연상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바이킹이 활동했던 지역을 시대순으로 구분하여 표시해놓은 지도도 마음에 들었다. 세계사의 중심을 유럽사의 중심을 너무 로마제국 중심으로만 생각해왔던 터라 이런 지도가 알려주는 느낌은 신선하다. 그리고 대서양을 가운데 둔 세계지도는 늘 나도모르게 좁혀진 시각을 다시 넓혀주곤 한다.

바이킹의 시대를 연대순으로 구분하자면 초기, 중기, 후기 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연대는 각각 약 550년~899년경, 약900년~999년, 약1000년~1500년 이다. 로마제국이 쇠망하던 시기에 점차 바이킹의 세력이 커졌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는데, 중세암흑기에 가려진 곳들 중 이슬람을 최근 ('십자가와 초승달, 천년의 공존' 이라는 책을 통해) 발견한 나로서는 '바이킹' 또한 그렇게 가려진 곳들 중 하나였음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됐다. 어두웠던 천년 중에도 반짝이는 별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또한 어쩌면 당연함에도 이제야 새삼스레 깨달았다.

바이킹 세계에서 어떤 단일한 시작이나 종말의 일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시기에, 그 세계는 현대의 스칸디나비아와 유럽 북부의 넓은 영토를 아울렀고, 서쪽으로는 북대서양의 섬들, 그리고 동쪽으로는 러시아의 변방까지 뻗었다. 많은 스칸디나비아인들은 심지어 그 한계선도 넘어갔다. 시대적 또는 지리적으로 확관 경계선을 긋기가 불가능하다보니, 바이킹 세계를 정의하려면 실용적 접근법을 취할 필요가 있다. 몇 세기에 걸쳐 군사 행위, 집단 이동, 교역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동안 이 세계를 하나로 묶어 준 것은 무엇인가? 답은 '변화'이다. (p. 6)

천하를 재패했던 로마가 무너져가던 시기 다른 곳들이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음을 종종 잊곤 한다. 권력은 늘 흥망성쇠를 거듭하기 마련이며 그 중심지는 변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세계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은 따로 떨어져 있었지만 어느 순간 서로 만나기 마련이다. 문화의 흐름은 강물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물보다 더 멀리 뻗어나가고 그렇게 흩어져 발달하던 문화는 서로 섞이며 또다른 세계를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누군가 망하면 누군가는 흥한다.

서사는 아마도 고대 그리스, 로마 또는 이집트 세계에 대해서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바이킹 시대에는 통하지 않는다. 바이킹 세계가, 비록 크고 폭넓게 연결되어 있었지만, 더 이전 문명들에 비해 좀 더 정치적으로 파편화되었고 사회적으로 다양했기 때문이다. 어떤 단일한 서사에 액자 역할을 할 바이킹 제국은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바이킹 시대는 바이킹들의 한 시대였다. (p. 7)

이 책은 전문적 연구에 요구되는 정도의 상세한 유물 묘사를 다루기보다, 서사를 위한 시작 지점으로 유물들을 이용한다. 유물들은 말을 하지 못하지만, 창의성과 새로운 과학 기법에 힘입으면, 이따금 읽어낼 수 있다. (p. 9)

바이킹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세력이다. 이런 점에서 징기스칸의 몽골과 비슷한 것도 같다. 그들은 적은 것을 남겼지만, 그 시대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고고학은 이름대비 사실 그리 오래된 학문이 아니다. 약탈과 도굴과 개인적 수집을 넘어 학문으로 정착한 것은 생각보다 최근이다. 그래서인지 고고학의 발달은 최신과학의 발달과 맞물려 성과를 뚜렷이 내기 시작했다. 이 책속의 유물들을 보면서 이걸 어떻게 알아냈지? 싶은 유물들이 있었다. 과학은 고고학의 필수적 동반자이다.

6세기 중반, 아마도 환경적 재앙(화산분출)의 결과로 사회는 붕괴하기 시작했고, 따라서 정착지 폐기와 정치적 이탈이 초래되었다. 다양한 당파들이 지역 지배를 놓고 경쟁하다 보니, 다시 건축된 사회는 틀림없이 그 후유증을 안고 있었을 것이다. 바로 수평선에서는 유럽 대륙이 꽃을 피우고 있었고, 북해와 발트해 해안을 끼고 도시와 교역 정착지들이 솟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아랍 칼리프 국가로부터 유럽으로 은이 흘러들어 오기 시작했다. 바이킹 시대 여명의 상황은 그러했다. 매우 무너지기 쉬운 신분질서를 가진 사회에서, 성공적인 해외원정이 한 족장의 지위를 얼마나 높아지게 만들었을 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p. 16)

침탈과 약탈로 시작된 교류도 반복되고 서로 섞이다 보면 나름의 구조를 갖추기 마련이다. 바이킹의 흥망성쇠는 소규모 부족난립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어떻게 서로 교류하게 되고 또 어떻게 중앙집권화되어 서로 비슷해지는지를 보여준다. 바이킹의 시대는 일종의 춘추전국시대였다.

 

 

가장 놀라운(혹은 충격적인^^) 유물과 가장 상징적인 유물을 고르라면, '변'과 '장신구' 이다.

영국 요크지역의 늪지대에서 발견된 '변'은 그야말로 '이런 변이 있나!' 라는 말이 나오게 만들었다. 검색해보니, 요크에는 2천년 이상 동안 정착촌이 있어왔고, 이 도시의 지속적인 점령의 결과는 현대도시가 고밀도로 압축 된 쓰레기 와 오물층에 자리잡게 만들었다고 한다. 고고학자들이 추정하는 깊이가 약 10피트에 이른다는데, 켜켜이 '뭔가' 들이 쌓여 있다는 말이다. 이 지역의 일부는 도시의 일부 지역의 토양에 수분이 침착되어 있고 산소가 거의 없어 소멸되기 쉬운 목재,가죽,천,뼈 같은 것들을 천년 이상 보존해 놓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 1970년대에서야 발굴된 이 지역에서 뭐가 얼마나 더 나올지 모르겠지만, '변' 뿐만 아니라 '뇌'도 나왔다고 하니 진흙이 산소를 차단하면서 부패를 막은 또다른 유물이 무엇이 더 나올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소부족 난립 시대에서 해외원정을 성공한 바이킹들은 서로 동맹과 충성관계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때 이용되는 선물로 '장신구'들은 특별했을 것이고 정략결혼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다양한 지역에서 발굴되는 금속세공품들을 이런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200여개에 이르는 이국적 물품들을 활용해 만든 목걸이를 보면서 바이킹이 불러일으킨 변화의 핵심은 결국 교류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이러한 교류의 핵심은 '바다' 였다.

그러고보면 지중해라는 바다를 중심으로 발달했던 고대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이집트의 교류에서도 중요했던 지역은 땅보다는 바다였다.

로마가 제국으로 모두를 통합하고 육지중심 권력으로 변화해가면서 교류는 폐쇄적이 된 것이 아닐까. 육지에서 그렇게 치고받고 있을때 바다에 등장한 새로운 세력이 교류를 만들어내고 있었고, 이 세력이 결국은 중심패권을 흔들게 된 것이 아닐까. 이슬람도 바다를 통해 스페인까지 진출했을 때가 가장 부흥했던 때가 아닐까. 오스만제국이라는 육지에 갇히면서 결국 패망의 길로 간 것이 아닐까. 바다는 지구표면의 70%이상을 차지한다는 부피 이상으로 역사에서도 중심무대였던 것이 아닐까.

맹약을 다지기 위해 '반지를 주는' 관습은 게르만 세계 전역에서 공통적이었다. 검 자체도 족장이 추종자들에게 충성 및 봉사의 대가로 주는 선물이었다. (p. 47)

10세기는 팽창의 시대였다. 상업과 정착지, 그리고 권력의 팽창, 이는 새로운 육지로의 여행, 교역 및 산업 조직의 혁신, 그리고 정치적 권력에서는 중앙집권화의 증가를 야기했다. 초기 바이킹 시대가 일종의 초기 중세식 거친 서부였다면, 그 후 수백 년간은 결국 중세 유럽 사회로 성장할 씨앗들이 부려진 셈이다. (p. 103)

자물쇠와 열쇠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것은 바이킹 시대 사회가 어떻게 짜여 있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의 개인 소지품 및 개인 공간에 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p. 115)

맹약의 징표로 주고 받던 반지, 그 반지를 달고 있는 검, 검또한 충성의 증표, 자물쇠와 열쇠 사용의 확대 이러한 것들이 결혼서약때 주고받는 반지와 기사에게 내려지던 검과 재산보호를 위한 잠금장치의 발달등과 관련이 있겠지 싶어서 흥미로웠다. 바이킹이 뿌린 씨앗들은 다른 씨앗들과 섞여 중세문화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바이킹 연구에서 너무나 자주 나오는 뻔한 이야기는 바이킹이 뿔 달린 투구를 쓴 적 없다는 것이다. (p. 146)

바이킹! 하면 뿔투구! 인데 바이킹은 뿔달린 투구를 쓴 적 없다니!! ㅎㅎㅎ

이런 역사적 왜곡은 찾아보면 은근히 많다. 소크라테스도 '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을 한 적 없는 것처럼.

핵실버는 바이킹이 경제 거래에 사용하기 위해 작게 자른 은 조각들을 가리킨다. 은은 바이킹 시대에 주요 통화를 구성했다. 약탈로 더 많은 은을 손에 넣는 것이 부를 얻는 효율적 방법이었다 (p. 173)

요크에서 발견된 성 베드로의 페니는 아마도 바이킹 시대의 가장 유명한 동전일 것이다. 앞면에 십자가, 칼, 그리고 토르의 망치 묘사가 문구와 함께 적혀 있다. 이것은 종교적 통합 또는 토르와 성 베드로의 융합을 의도한 듯한데, 이는 대중적 개종을 용이하게 만들려는 의도된 전략이었다. (p. 181)

스칸디나비아 양식에 더해, 오스만과 다른 유럽 내륙의 문화 역시 국제 연결성의 결과로 북해 세계를 통해 모방되었다. 그러나, 바이킹 시대 최후의 주요 교역항들은 쇠락하고 있었다. 이런 변화에는 환경 변화가 한몫을 했다. 비록 핵심 촉매는 증가하는 중앙집권화와 새로운 '도시'종교였지만, 그것은 기독교 였다. 1000년 무렵, 덴마트, 스웨덴, 그리고 노르웨이 왕들은 모두 자신들을 기독교인으로 선포했다. 기독교, 도시화 그리고 중앙집권화는 손에 손을 맞잡고 스칸디나비아 전역에서 발달했다. (p. 196)

은관련 유물은 상당히 많이 발견되었다. 작은 조각들이 많았는데 무게로 잰 은은 굳이 동전이 아니어도 화폐로 통용되었다. 왕이 자주 바뀌는 시대에 왕의 얼굴이 박힌 동전보다는 무게 자체로 거래되는 은조각 들이 더 화폐가치가 있었을 것도 같다. 약탈로 시작했지만 거래가 되고 교류가 되면서 많은 것들이 표준화되기 시작했다. 토속신앙과 합쳐지면서 자리잡은 기독교는 중앙집권화를 가속시켰고 교역의 발달로 인한 도시화또한 국가의 성장을 촉진시켰다. 그렇게 도적때들은 시민이 되기 시작했다.

이 인상적인 뿔피리는 코끼리 엄니로 만들어지고 이탈리아 살레르노에서 조각되었다. 공예가들은 상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슬람 조각가들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p. 240)

노예는 바이킹 경제의 주요한 원동력이었지만, 노예제의 고고학적 증거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찾기 힘들다. (p. 243)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커다란 뿔피리 유물사진을 보면서 정교하게 새겨진 문양들이 이슬람조각들이 한 것이라는 설명을 읽으니 역시 바이킹이 성장하던 시기가 얼마나 열려있던 사회였는지 다시한번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시대의 역사를 보더라도 간과하는 부분이 바로 노예제 이다. 고대부터 중세, 그리고 근대까지도 노예가 없던 적이 없었다. 노예는 사회와 문화발달의 근간이었다. 인간의 역사에서 인간취급을 받지 못했던 노예의 역사가 얼마나 밝혀질 수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여하튼 역사를 읽으며 늘 기록에 남지 않은 존재들을 기억하며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역사는 알면알수록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분야인것 같다.

그동안 중세역사에 대해 좁은 시각을 갖고 있었던 것을 최근 읽었던 책과 이 책을 통해 새롭게 확장시킬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참 좋았다.

무엇보다, 직접 보지 못하더라도 큼직하게 다양한 유물사진을 컬러풀하게 설명과 함께 책으로 읽는 다는 것이 요즘 같은때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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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를 위로하는 중입니다 - 상처를 치유하고 무너진 감정을 회복하는 심리학 수업
쉬하오이 지음, 최인애 옮김, 김은지 감수 / 마음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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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서가 심리서가 참 많이 나오는 세상이다.

끊임없이 나오는 그런 책들이 끊임없이 많은 이에게 읽혀지는 것은 끊임없이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그저 마음을 진정시키고 주의를 환기시키며 힘내라고 응원해주는 책들이 많았다면 언제부턴가는 그냥 이대로도 괜찮다고 굳이 힘내서 또다시 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아주는 책들이 많아진 것 같다. 그렇게 오롯이 자기자신에게 집중하도록... 그럴 때 필요한 문장,

"지금 나를 위로하는 중입니다"

 

기억도 추억도 가물해지더라도 머릿속에선 지워졌더라도 마음속에는 남아있는 그런 것들이 있다. 그것이 상처일 경우에는 더욱 진하게 각인되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이 계속 나를 찌르고 기생하도록 그렇게 내가 숙주가 되어 말라비틀어질때까지 나를 내버려 둘수는 없는거 아닌가

 

내가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나아닌 다른 존재 먼저 생각해주느라 숙주로 살아야 겠는가. 누구나 자기 인생밖에 감당하지 못한다지 않는가. 아니, 자기 인생 하나 오롯이 감당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니 일단 나와 화해해야 한다. 누구를 용서하고말고를 떠나 일단 나에게는 스스로 손내밀어줘야 한다.

 

나를 어떤 모습으로라도 온전히 받아줄 수 있는 것은 결국 나 뿐이다.

 

그러니 소확행이 되었건 나를위한선물이 되었건 때로는 내가 나를 위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옮긴이의 글이 이 책에 대한 내 마음과 닮아서 뭘 더 덧붙일 필요가 없어졌다.

각 에피소드마다 정리된 '효과' 들은 감정을 객관적으로 보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고 심리적 상식으로 알아두어도 좋을 내용들이다.

매 장마다 가려뽑은 문장들이 인상적이었고, 정리된 단락들이 읽으면서 정리하게 해주어서 편했다. 가끔 등장하는 그림들도 긴문장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시선을 끌었다.

이 책은 실제사례와 저자의 따듯한 마음이 함께 하면서 공감과 위안을 주는 책이다. 가족이건 연인이건 친구건 지인이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늘 다양한 감정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러한 감정이 버거울때, 그렇게 때로는 필요한 위로를 담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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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초승달, 천년의 공존 -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극적인 초기 교류사
리처드 플레처 지음, 박흥식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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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극적인 초기 교류사

전쟁, 외교, 순례, 기술, 사상, 예술… 중세의 질서를 만든 두 세계가 있었다!

그들은 왜 끝끝내 서로를 이해하는 데 실패했는가

표지 中

 

 

저자는 중세사를 연구한 저명한 학자로 이 책이 나온 것은 2003년 이나 역자가 유학중 서점에서 발견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이제야 국내번역본이 나오게 되었다. 이제야 라고 표현했지만 여전히 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내용이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여전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듯 보이므로. (다행히 저자는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서술하고 있어서 종교와 관련없이 역사서로 읽기에 충분했다)

스티븐이 말했다. '역사는 제가 거기서 깨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일종의 악몽입니다' (…) 만일 저 악몽이 당신에게 뒷발질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2장 네스토르 중에서

 

로 시작하는 책의 첫페이지에서부터 확 끌렸다. 이 책의 내용과 관계없이 [율리시스]를 꼭 읽어야 겠구나 다시한번 다짐하게 하는 문장으로 다가왔다^^;;;

이슬람은 단일한 경전을 믿는 종교다. 그와 대조적으로 그리스도교는 여러 경전을 묶은 [성서]를 신앙의 근거로 삼는다. 이 같은 단일 경전과 복수 경전의 신앙 사이의 차이는 세계사에서 광범위한 영향을 미쳐왔다. 이슬람의 경전 [꾸란]은 하느님이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계시한 내용이다. 이 책은 무함마드가 사망한 서기 632년 이래 약20년에 걸쳐 정통 이슬람 전통에 따라 편집되어 최종본이 확정되었다. 그리스도교 경전들은 [성서]라 불리던 한 권의 책 속에 함께 묶인 채 발견되었다. [성서]를 지칭하는 영어 단어 '바이블bible'이 서고 書賈'라는 뜻의 라틴어 '비블리오테카bibliotheca'에서 기원했다는 데서 그 성격을 명확히 할 수 있다. (p. 17)

그리스도교 경전들, 특히 예수와 그의 초기 추종자들의 가르침을 담은 서신들과 이야기들의 이 같은 다양성과 차이는 아주 초창기부터 그리스도교 역사에 토론, 논쟁, 의견 차이가 발생하는 요인을 제공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도교의 역사란 서로 다른 조류들과 분파들이 배태되고 시끌벅적한 논쟁과 규탄, 속임수가 난무하는 가운데 작은 파벌로 나눠졌다가 다시 재편되곤 하는 과정이었다. (p. 18)

한편 이슬람 체제에서는 이 같은 교리 논쟁이 가능하지 않다. [꾸란]이 간직하고 있는 엄격한 신학 교리들은 애매하거나 난해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슬람은 그와 성격이 다른 싸움을 전개했다. 예언자가 사망한 후 채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이슬람 공동체 내에서 권위의 원천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다툼이 생겼다. 결국 공동체는 순니파와 쉬아파로 갈라져 다시는 화해하지 못했다. (p. 19)

이슬람과 그리스도교 사이의 이 같은 근본적인 차이들은 상호간 너그러운 이해와 화합에 도움이 되는 대화를 어렵게 만들었다. 이슬람의 준엄한 일신교는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와 성육신 교리를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불쾌해한다. 그리스도교 종파들은 전통적으로 무슬림 관찰자들에게 비웃음거리였다. 그리스도교 세계 내의 교회화 국가(혹은 사회) 사이에 긴장이 존재했다면, 이슬람하에서는 그럴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권위와 신자 공동체의 조직 즉 정치에 대한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으로 이끌었다 (p. 21)

 

본문을 시작하는 첫문장부터 단도직입적이다. 1부의 첫 장 제목이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차이] 다. 그리고 5페이지로 간략하고 명쾌하게 차이를 정리해 낸다. 이렇게 다르니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게 당연한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두 종교는 같은 하느님을 모신다.(유대교는 논외로 두고) 그리스도교는 예수탄생을 기점으로 다양한 종파의 난립 속에 합의의 종교를 만들어 왔다. 하나의 신에서 삼위일체라는 세부분의 신성을 함께 존중한다. 이슬람교는 일신교이다. 무함마드는 신이 아니라 신의 말씀을 전해준 예언자였을 뿐 신으로 받들어지진 않았다. 하나의 신성은 나누어질 수 없다. 유대교가 유일신앙으로서 그리스도교와 합쳐질 수 없었듯이 이슬람교도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시작부터 근본부터 완전히 달랐다. 같은 인간인데 남과 여가 천지 차이이듯이 이 두 종교도 같은 신을 숭배하지만 전혀 다르다고나 할까.

아랍의 무슬림 군대는 비잔티움과 페르시아 사이의 오랜 갈등으로 인해 극심한 파괴를 경험했던 시리아와 팔레스티나의 지방 주민들에게 가산족의 계승자로 간주되었다. 가산족은 황제와의 조약에 의해 그들의 보호자가 되었기 때문에 타협하는 데 신중했었다. 한편 박해받던 시리아와 이집트의 단성론 그리스도인에게는 무슬림이 해방자로 생각되었다. 이는 박해받던 에스파냐의 유대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p. 37)

페르시아로 대표되던 아랍지역과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난 후의 비잔티움과의 경계지역에서 완충지 역할을 했던 가산족에게 비잔티움은 언제부턴가 소홀해지기 시작했고 때마침 정복해들어온 무슬림 군대는 이전의 지배세력들보다 오히려 더 포용적이고 더 우호적이었다. 기꺼이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단으로 박해받던 단성론 그리스도교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스도교는 끊임없는 종파싸움이 있어왔다. 세력을 잡은 자들에게 내쳐져 이단종파로 판정받은 그리스도교인들의 수는 생각보다 상당히 많았다. 역사적으로 이슬람의 급속한 성장에 있어 이단종파들의 포용과 이후 그들이 이슬람화 되는 것이 큰 영향을 끼쳤을 거라는 생각을 처음 깨달았다. 초기 기독교 세력이 우세했던 북아프리가 지역이 지금은 다 이슬람교를 믿게 됐다는 것이 새삼 의미있게 다가왔다.

당대인은 엄밀한 의미에서 이슬람이 '하나의 새로운 종교'일 수 있다는 관념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며, 당연히 수용할 수도 없었다. (p. 40)

무함마드와 그의 분파는 단성론자나 그 외 다른 사람들처럼 결정적인 교리 문제에서 길을 잃은 종교적 이탈자의 또 다른 물결이라고 그럴듯하게 설명되었다. (p. 41)

 

당시 기독교인들은 본인들의 종교가 유일신 종교인 유대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잊고 이단으로 여겼듯이 같은 신에서 출발한 이슬람교도 그저 이단종파의 하나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들의 종교적 요소들은 자신들과 너무나 비슷했다. 그래서 더욱 이단이었다. 이단은 처단의 대상일뿐 존중할 가치가 없는 세력이었다.

무슬림 정복자들은 그들이 발견한 이같은 체제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달리 대안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인력도 기술도 충분하지 않았으며 세금 수입도 필요했다. 그러므로 정복한 지역을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였다. 단지 지배자만 바뀌었을 뿐이다. (p. 47)

신흥 권력집단인 무슬림 정복자들이 기독교인들의 지역을 정복했을때 그들은 기존의 체제를 그대로 수용하고 관리인원들도 그대로 존속시켰다. 이슬람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이 정복자들에게 저항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소외받던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더욱.

'성서의 백성'은 납세자, 관료, 기술자로서 유용했을 뿐 아니라 긴요했다. 그렇지만 그 정도에서 그쳤으며 그외에 다른 필요를 느끼지는 않았다. 그들은 이미 광대한 문명을 이루고 있기에 탐구가 필요하지 않았다. 반면 그리스도인들은 이슬람에 냉담할 수 없었다. (p. 57)

그리스도인들은 이슬람을 이단이라 생각했으나, 이슬람인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무관심 했다. 이슬람인들은 자신들의 세계가 더 발달했다고 생각했고 자신들의 종교가 더 완전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신성을 셋으로 나누냐며 그리스도인들의 종교는 이슬람교에 비해 미개하다고 무시할 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동상이몽은 점점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진다.

이슬람 개종자들은 아랍 씨족의 일원, 달리 말하면 한 후견인의 피보호자(아랍어로는 마울라, 복수로는 마왈리)로 받아들여져야만 했다. 마왈리는 공동체의 완전한 구성원 자격을 누릴 수 없었으며 재정적인 측면 등에서 어느 정도 차별을 겪는 2등 시민에 머물렀다. 여기서 시작된 분노와 사회적 긴장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이들이 압바스 혁명의 가장 강력한 지지 세력이었다. 압바스 왕조의 성립으로 이들 마왈리는 고대하던 것을 얻게 되었다. 사회적 처우의 평등이 인종보다는 종교와 문화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 다시 말해 '아랍'사회가 아닌 진정한 '이슬람' 사회가 선언되었다. (p. 67)

여기서 이 책을 읽으며 처음 느낀 두번째 깨달음을 얻었다. 로마!

이슬람 사회의 발달에서 로마가 보였다. 로마사회에 클리엔테스와 파트리키의 관계가 떠올랐다. 사회가 성장하면서 로마시민의 범위가 넓어졌던 것이 떠올랐다. 로마가 로마시를 넘어 로마제국이 되는 과정이 떠올랐다. 고대그리스부터 아랍지역과는 서로 반목하면서도 사실 끊임없는 교류가 있었다. 로마제국의 영토는 흑해연안까지 확장됐었다. 로마문화가 아랍지역에 생소했을리는 없다. 알렉산더대왕이 퍼뜨린 헬레니즘의 물결을 따라 로마제국의 문화도 어디까지 흘러갔는지는 알수 없는 거 아닐까, 그렇게 아랍지역에도 섞여 있지 않았을까?

중세 초 서양 그리스도교 세계는 압바스 왕조 시기에 부상하던 이슬람 사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전했다. 다르 알-이슬람이 정기 교역을 통해 연결된 도시들의 세계였던 반면, 서양은 압도적으로 농업 경제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도시들은 규모가 작고 널리 흩어져 있었다. 교역은 대체로 국지적인 범위로 국한되었으며 그 규모도 미미했다. 상인 역시 사회에서 영향력이 크거나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 않았다. 통합된 법 체제, 세금 제도, 관료제, 상비군 등 예전 로마제국을 떠받치고 있던 하부 구조를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p. 90)

더구나 이들의 식자 識字수준도 그리 높지 않았다. 서유럽에서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이슬람 세계에서만큼 가치 있게 평가되지 않았던 탓이다. 고대 고전의 과학과 철학 지식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의 매개 수단인 그리스어도 거의 잊혔다. 그것을 대체한 것은 주로 [성서]와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라틴 교부들에 기반을 둔 지식문화였다. 이 문화는 본질적으로 과거 지향적이며 철저히 보수적이었다. 그러고 보면 압바스 시대의 무슬림들이 서양 혹은 라틴 그리스도교 세계에 대해 그토록 적은 관심을 보인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로부터 제공받을 만한 것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p. 91)

압바스 시대의 이슬람 세계는 여러 방식으로 자기 충족적이었다. (p. 94)

 

고대지식을 받아들이고 해석해서 더 발달시키고 있던 이슬람에게 그리스도교 세계는 오히려 변방이었다. 교류할 매력이 없는.

나도모르게 서양인의 세계사적 관점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슬람이 유럽을 무시했을 수 있다는 관점을 이 책을 통해 처음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해봄직한 관점이었다.

로마 시대 이래로 서유럽에서 가장 두드러진 도시들의 성장이 루앙, 링컨, 요크, 더블린 등 스칸디나비아 상인들이 자주 드나들고 정착했던 거점들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중동 이슬람의 경제적 견인이 그 같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서유럽 시민계층의 성장을 촉진했다. 북유럽과 관련해보자면 피렌 테제는 반박되었다. 지중해가 '이슬람의 호수'가 되었으며, 그리스도인 상인들이 그곳에서 추방되었다는 피렌의 판단은 과장되었다. 앞서 서술한 이슬람 이전의 경제적 혼란은 그 기원이 흑사병에 의한 인구감소에 있었다 (p. 110)

'피렌테제' 라는 말은 몰랐지만 피렌테제의 내용들은 세계사적 책들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관점이었다. 그리고 그 익숙한 관점 또한 이 책을 통해 반박의 근거를 얻을 수 있었다.

대외교류를 멈추고 땅을 경작하며 문맹으로 그리스도교에 갇혀있던 유럽의 중심이 아닌 지역에서는 종교성이 약한 정착민이 늘면서 외부와의 교역이 활발했고 그 대상들 중에는 이슬람도 있었으며 그렇게 새로운 도시들이 발전하고 있었다.

유럽의 역사를 기독교암흑천년으로만 봐서는 안될 곳이 있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러한 새로운 도시들이 있었기에 르네상스도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두 문명의 이질적인 성격을 고려할 때 꽤 의아스러운 점은 양측 모두 상대 문명의 종교에 대한 관심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단적인 이스마엘의 후손들에게 언짢은 적의를 유지했다. 무슬림드른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과학적 지식이나 생필품의 풍부한 원천을 발견했지만, 그 외에는 가치 있는 것을 찾지 못해 무시했다.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은 서로 종교적 반감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상태에서 어울리며 공존했다. 그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 종교적 열정을 내세우며 격렬하게 선동한다면 폭력적인 대결로 발전하는 것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p. 113)

두 문명은 서로가 서로를 무시했지만 차단벽을 쌓아 올렸던 것은 아니다. 나름의 영역을 인정하며 교류도 하며 공존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한쪽의 세계가 불안정해지면 안정을 찾기 위해 외부에서 폭력성으로 풀어내야 했다. 어느쪽이 먼저였는지를 따질 의미가 없을만큼 서로간에 끊임없는 공방전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서양사는 그것을 십자군전쟁이라는 종교전쟁으로 포장해왔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알렉시오스 1세가 기대한 것은 비잔티움 장수의 지휘 아래 통제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적당하면서, 세밀한 군사 임무에 배치되는 데 필요한 무장과 훈련까지 갖춘 전사 집단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등장한 것은 열성적이기는 하나 훈련이라고는 거의 받지 못한 거대한 오합지졸이었다. 비잔티움 영토를 시끄럽게 가로지르고 시리아와 팔레스타인까지 내달려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해버린 이 싸움꾼 무리를 보통 '제1차 십자군'이라고 부른다. (p. 132)

중세 그리스도교 세계는 십자군에 엄청난 관심을 기울였고 이를 지속적으로 진지한 관심을 가져 마땅한, 도덕적 무게감과 위엄을 지닌 주제로 여겼다. 그런데 이 점은 중세 이슬람의 경우와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이슬람권에서는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생산된 것과 같은 십자군 원정 관련 사료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대의 이슬람 화자들에게 십자군 원정은 이슬람 세계의 주변부를 성가시게 한 소규모 접전에 지나지 않았다. 십자군은 이를테면 한때 왔다가 떠난 이들이었다. (p. 143)

십자군에 대한 무관심은 중세 이슬람 세계가 그리스도교 세계의 문화 전반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요소이다. (p. 144)

 

중세 하면 십자군 전쟁 아닌가? 그런데 이슬람사에서 십자군은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니... 한마디로 웃기지 않은가? 혼자 북치고 장구친 느낌?!;;;

거대 종교전쟁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전쟁은 이슬람교와 전면전을 치룬적도 없는 자기들만의 리그였다. 그들이 처단하려고 했던 쪽에서는 그들이 그런 원대한 전쟁을 걸어왔다는 것을 무시했을 정도로.

구원자를 자처하던 십자군들이 그들이 도울 대상이었던 동방 그리스도교인들에게 기껏해야 미심쩍은 눈초리만 받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서방인들 역시 동방 그리스도교인들을 거만하고 매력 없는 먼 친척으로 간주하면서 특이한 관습과 전통에 대해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을 최선으로 여겼다. 이에 비하면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이국적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대한 태도가 차라리 더 관대했다. (p. 157)

도와달라고 한적도 없지만 도와주겠다고 온 사람들이 사실은 그리 반가운 대상이 아닐때, 그리고 그들이 없애려고 했던 그들의 적이 더 우호적일때 그 난감함이란;;; 그런데도 그들은 자꾸 원정을 왔다. 승리하지도 못할 전쟁을 자꾸 일으키는 배경에는 종교가 아니라 정치가 있었다. 그리고 몽골의 등장은 모든 것을 뒤집어 놓았다.

1050년에서 1250년 사이 서유럽 그리스도교 세계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무슬림-유대인-그리스인이 차지하고 있던 기존의 상업적 헤게모니를 점진적으로 잠식해갔다. 물론 이러한 헤게모니는 훗날 오스만 제국의 팽창 등으로 여러 번 위협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서유럽의 상업적 우위는 결코 완전히 전복되지 않았고 이는 광범위한 결과를 낳게 된다. 지중해의 상업이 북부 유럽의 해상 교역과 연결되고 여기에 재정 기법과 여러 기반구조의 발전이 더해지면서 훗날 세계를 지배하게 될 유럽의 상업 자본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p. 180)

십자군원정이 해내지 못한 것을 자본이 해냈다. 종교는 승리하지 못했으나 돈은 승리할 수 있었다. 사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늘 표면적으로는 다른 명분을 내세운다. 여전히.

철학 혹은 과학 문화와는 달리, 종교 문화와 관련해서는 지적 교류의 상황이 다소 달랐다. 이슬람의 식자층은 그리스도교에 대해 여전히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는 어쩌면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그들은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주어진 계시가 모세나 예수와 같은 이전 시기의 예언자들에게 주어진 부분적인 계시를 넘어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즉, 이미 하느님의 완전한 계시로 추월당해 불필요해진 신앙의 신조를 연구할 유인이 없었다. 따라서 다른 종교 연구는 오로지 신앙과 관련한 논쟁에 참여할 때만 수행되었다. (p. 209)

1515년 술찬은 포고령을 통해 인쇄 기술을 습득하려는 무슬림은 그 어떤 자라도 사형에 처하리라고 위협하기까지 했다. (p. 250)

이슬람 신학자들이 [꾸란]의 인쇄를 신성 모독적인 행위로 규정했던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오직 '필사자들의 손'에 의해서만 그것도 가능한 한 최고의 필체로만 전승되어야 했다. 인쇄술과 관련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사이의 문화적 차이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다르 알-이슬람, 즉 이슬람 세계는 그리스도교 세계로부터 무언가 배우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교 세계에 대한 경멸이 그 어느 때보다 강했다. (p. 251)

 

고인물은 썩는다. 이슬람 초기에는 그토록 열성적으로 선진문물을 습득하던 그들이 어느때부터인가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지면서 더이상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고 그저 무시와 경멸어린 태도로 일관하게 됐을때 바깥 상황은 서서히 역전되고 있었다.

중국이 떠올랐다. 고대 중국이 왜 고대유럽과 교류하지 않았는지 그들이 자신들의 왕국에 만족하며 원정을 접음으로써 어떻게 갇힌 세계가 되었는지 역사는 알려준다. 그리고 그같은 오만은 결국 수치스러운 침략을 당하게 했다. 이슬람이 스스로 완전하다고 배울거 다 배웠으니 외부는 그저 무시해도 된다고 오만하게 된 순간 역사는 거꾸로 덮칠 준비를 했다.

인쇄술의 거부는 [내 이름은 빨강] 이라는 소설을 생각나게 했다. 이슬람 전통의 세밀화가들을 통한 시대적 변화를 깨닫게 하는 오르한 파묵의 소설...

무슬림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이 하느님의 마지막이자 가장 완전한 계시를 받은 선택된 민족이라는 확신으로 인해 더할 나위 없는 자부심으로 고취되어 있었다. 그로 인해 불가피하게 그리스도인들을 경멸의 대상으로 낮춰봤다. 게다가 다르 알-이슬람은 지상에서 하느님이 베풀어 준 은총과 섭리로 그리스도교 세계보다 훨씬 광대한 지역을 차지했다. 바그다드의 시선에서 봤을 때, 900년 경 그리스도교 세계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환경에 머물러 있으면서 혼란을 야기하는 이단 분파들과 작은 왕국들로 구성된 무질서한 혼합에 불과했다. 이슬람 공동체는 신앙은 물론 부와 기술, 학식과 문화에서 경쟁할 상대가 전혀 없었다. 무슬림들이 당시 그리스도인에 대해 오만한 태도를 취한 이유는 이해할 수 있을 법하다. 마치 암반처럼 오래전에 저변을 구축한 이러한 태도들은 그 이후 여러 세기 동안 그들의 도덕적 환경을 형성해 왔다. 이는 경시해서는 안 되는 일종의 인간관계의 지질학이라 할 수 있다. (p. 261)

유럽의 헤게모니는 근대 초에 아무 기반 없이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것의 힘줄과 근육은 중세가 진척되던 중에 눈에 띄지 않는 서구 그리스도교 세계의 주변부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했다. (p. 262)

그리스도교 세계에 대한 무슬림의 냉담은 당대에 진행되던 변화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슬람의 서양에 대한 경멸이 그와 같이 변화하는 상황을 간과하도록 했던 것이다. (p. 263)

 

역사의 반복적 순환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역사의 물결은 약해질 수도 있고 거세어질 수도 있으나 약해졌다고 멈춰있지 않고 거세졌다고 위험한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는 끊임없이 흐르지만 반복적인 교훈을 준다. 그 교훈을 무시할 때 역사는 바로 뒷발질을 할 것이다. 정신차리라고.

이 얇은 책에서 이토록 거대한 시각을 배우게 될줄 미처 몰랐다. 새로운 깨달음과 새로운 물음표들을 함께 던져준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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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바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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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범인을 단정하지 말 것!

밀실 트릭, 암호, 연쇄살인, 안도할 수 없는 반전의 연속

히가시노 게이고가 선사하는 정통 추리소설의 정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이름은 많이 들어봤고 추리소설도 좋아하지만 일본작가의 소설을 찾아 읽을만큼 일본소설을 좋아하진 않아서 기회가 생겼을때 드문드문 읽어왔는데, 그러던 중 이 책이 손에 들어왔다.

읽고나니 아~! 싶었다.

왜 그렇게 저자의 책이 많이 읽히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손에 잡자 마자 두어시간만에 단숨에 읽어내렸다. 가독성이 정말 대박이라서 킬링타임용 책으로 으뜸이었다. 별생각없이 가볍게 책을 읽고 싶을때 저자의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주저없이 또 선택하게 될 것 같은, 그야말로 '재미' 용 소설. 개인적으로 기욤 뮈소의 작품들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1986년에 발표된 작품이라는데 읽으면서 그닥 촌스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낡지 않은 추리감각이 여전히 베스트셀러 순위에 작가의 작품들을 올려놓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쫀쫀한 긴장감으로 몰입되다가 한순간에 터지면서 꿰어맞춰지는 퍼즐식이 아니라 하나를 알아내면 둘을 알게 되고 그다음 셋 이런 식으로 다 해결됐구나 싶었을때 또다른 숨은 의미가 나오는 (마트료시카인형이 생각나는) 전개방식은 설마 또있겠어 하며 인형뚜껑을 열었을때 정말 또 인형이 들어있는 발견의 재미를 주었다.

1년 전 어느 펜션에서 오빠가 자살했다는 연락을 받았던 여동생 나오코는 딱 1년이 되는 시기를 맞춰 그 펜션에 가보기로 한다.

영국의 전래동요 '머더구스' 라는 이름을 가진 펜션은 방 이름도 그 동요에서 따온 별칭으로 지어졌는데, 8년전 한 영국부인이 자신의 별장을 마스터에게 팔면서 '머더구스' 동요와 관련된 조건들을 내걸었고 마스터는 합의 후 별장을 인수하여 펜션사업을 시작했다.

이 펜션은 인적이 거의 없는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어서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은데 매년 같은 시기 같은 사람들이 숙박을 한다.

그래서 나오코는 같은 시기 숙박을 하는 그 사람들 중에 오빠를 살해한 범인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며 오빠가 묵었던 그 방에 숙박을 예약했다. 나오코는 오빠가 자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크지 않은 이 펜션에 머문 사람들은 평범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상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왜 매년 같은 시기에 이곳에 오는가?

방마다 걸려있는 액자 속 동요는 왜 이렇게 이상한가?

누군가는 그 동요에 얽힌 숨은 의미에 집착하고 누군가는 그 동요에 아무 관심이 없지만 그 사람들 모두 나오코의 오빠가 그 동요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오빠가 죽었다. 외부침입이 불가능한 밀실에서. 구하기 힘든 독약을 먹고.

오빠의 죽음과 관련된 단서를 추적하던 중 2년 전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한 남자의 추락사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추락사 1년 후 나오코의 오빠가 죽었다.

그리고 오빠의 죽음 1년 후 의심할 여지가 많던 숙박객 남자 한명이 사고사 한다.

그 남자가 오빠의 죽음과 관련되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사고사라니, 이제 본격적인 범인 색출 추리가 시작된다.

"3년 연속 사람이 죽었어요. 게다가 똑같은 시기에.

우연이라면 무서운 일이죠"

"우연이 아닌 경우가 무서운 일입니다" (p. 188)

 

번역해놓은 문장들을 보면 이게 무슨 동요인가 싶은 요상한 내용의 마더구스 노랫말을 주문인듯 암호인듯 풀다보면 매년 연속된 3차례의 죽음 이전에 있었던 더 오래된 죽음이 등장한다. 애초에 이 동요를 불렀을 혹은 이 동요를 불러줬을 누군가의 죽음 속에 숨어있던 슬픈 사랑이 등장한다.

끝까지 끝나지 않는 추리가 이어지는 그래서 다 읽을때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던 소설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찜찜한 서늘함이 남지 않는 깔끔한 마무리가 가벼운 만족감을 주는 소설이었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재.미.있.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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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것들의 과학 - 물질에 집착하는 한 남자의 일상 여행
마크 미오도닉 지음, 변정현 옮김 / Mid(엠아이디)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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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도닉은 뛰어난 지식과 넘치는 열정, 자신의 주제에 대한 뚜렷한 사랑으로 글을 쓰는 작가다" -올리버 색스

"그는 재치 있고 똑똑하며 그가 가진 재료에 대한 사랑을 전파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지닌 작가다" - 빌 게이츠

"사물의 이면에는 깊숙이 감춰진 무언가가 있다" - 아인슈타인

늘 움직이며 스며들고 흐르는 액체의 과학, 기묘하고도 놀라운 지적 여행이 시작된다!

 

 

저자 마크 미오도닉은 '타임즈'가 선정한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 100명 중 한 명으로 재료 라이브러리인 UCL공작연구소(Institute of Making)의 소장이기도 하고 다양한 매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과학커뮤니케이터 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물질들 중에서 '액체'에 초점을 맞추어 과학적으로 풀어낸 이 책은 제목이 주는 느낌처럼 읽는 동안에도 내내 잘 흘러간다.

세계 유수의 지식인들이 극찬한 글솜씨까지 갖추고 있는 저자는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하는 여정에서 만난 액체들에 관해 그만의 독특하고 개성넘치는 스타일로 딱딱할 수도 있을 과학적 이야기를 술술 풀어낸다. 저자와 함께 비행기를 타러 출발해서 학회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을 함께 하고 나면 이 책 한권을 다 읽게 되는데, 과학책을 읽은듯 비행에세이를 읽은듯 묘하게 공감하면서 때론 키득키득 웃어가며 읽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과학책을 과학책이 아닌 것처럼 읽게 되는 설정의 힘! ㅎㅎ

저자가 런던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검색대에서 압수당했던 액체형 용품들에 대한 그닥 유쾌하지 않았던 기억을 상기하며 '폭발적인' 액체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비행기에 탑승한 후 늘 같은 형식으로 시연되는 승무원의 안전브리핑을 보면서 저자는 그 브리핑 속에 빠져있는 항공유 에 대한 위험성을 혼자 걱정한다. 9세기에 페르시아의 의사이자 연금술사인 라제스가 '비밀의 책'이라는 책에서 언급했던 '등유'의 발견이 왜 천 년이 지나서야 현실화 되었는지 읽다보면 과학적 발견도 시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긴 뭐 지구가 둥글다는 것도 증기기관에 대한 아이디어도 고대에 이미 있었지만 과학이 된 것은 역시나 한참 후였다.

여하튼, 등유에 대해 걱정하던 마음은 승무원이 제공해준 와인을 마시면서 비로소 진정되었는데 그래서 다음 등장하는 액체는 '알코올'이다. 와인에 들어있는 알콜에서 용해제 역할을 하는 알콜 이야기를 하다 표면장력의 차이를 설명하다보면 시각이 맛에 끼치는 영향까지 설명하게 된다. 비행기에서 취할 만큼 마셔서는 안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창밖을 내다보니 '바다' 가 보인다. 커다란 액체의 등장이다.

지표면의 70%를 덮고 있는 바다는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 이야기를 시작으로 밀도와 파도를 거쳐 쓰나미의 위력과 원자력발전소문제까지 등장시킨다. 하지만 창밖으로 잔잔해보이는 파도 대비 비행기가 난기류에 흔들기기 시작하자 저자는 비행기 동체의 안전성에 대한 고민에 빠져든다. 다른 승객들은 모르겠지만 자신은 비행기가 여러 조각이 접착제로 붙어 있는 형태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공포에 빠질 수 밖에 없다며 '접착제' 이야기로 연결한다.

그렇다. 비행기의 동체는 한 덩어리가 아니라 작은 조각들이 이어붙여져 있는 것이다. 비행기를 붙일 수 있을 만큼의 접착액체가 등장하기까지 인류는 다양한 재료의 역사를 거쳐왔다. 접착물질의 변천사는 고무의 등장과 에폭시까지 설명이 이어지는데 이제 안정된 비행기에서 저자는 영화 한편을 보기로 한다. 다음 액체는 '액정' 이다.

지금은 움직이는 활동을 액정화면을 통해 보는 행위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들여 지지만 사실 액정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그림을 보는 것에서 LED 그리고 LCD 액정화면으로 보기 까지 급격한 발달을 이루었다. 끈적이는 거미줄을 뽑아내던 영화 스파이더맨을 다 보는 동안 함께 했던 액정화면에서 눈을 떼고 나니 슬슬 잠이 오기 시작한다.

옆사람이 거칠게 밀어낸 덕에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저자는 자신이 자는 동안 옆사람 소매에 '침'을 흘린 것을 깨닫지만 아직 자고 있는 척 당황감을 감추기로 한다. 그렇게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든 '침' 이 사실은 불쾌한 물질이 아님을 과학적으로 열심히 생각하기 시작한다. 기내식이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깬 척 식사에 집중하던 저자는 그동안 생각했던 '침'의 효용성으로 인해 자기만족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기분 좋게 식후 '음료'를 선택한다.

'커피나 차 드시겠어요?' 하는 승무원의 질문에 길고긴 비행시간 동안 각성상태로 있고 싶지 않았던 저자는 '차'를 선택하고 한모금 마시자마자 이내 후회하게 된다. 우리는 차 보다는 커피 를 많이 마시는데, 영국인들은 (아직까지는) 차 를 훨씬 많이 마시는 문화라고 한다. 차문화와 다양한 차 와 커피원두 이야기를 하다보니 '비행기 내의 기압이 낮기 때문에 물의 끓는점은 약 92℃가 되는데, 우연히도 커피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는 과학적 사실을 뒤늦게 기억한 저자는 차의 이뇨성분에 충실한 신체반응에 의해 화장실로 향한다.

비행기 내의 화장실에 새삼스러운 감탄을 하며 '세정제'로 손을 씻던 저자는 비누의 역사를 되짚어보기 시작한다. 액체형 비누로 손을 씻고 로션을 바르며 화장실을 나오던 저자는 지금 비행기가 날고 있는 고도에서 하늘의 온도가 얼마나 낮은지 생각하다 '냉매'를 연상하게 된다. 냉장고와 에어컨의 냉매가 발견되기 까지의 과정을 이야기 하다가 액체 산소까지 이어지는 동안 비행기는 어느새 도착지에 가까워지기 시작하고 그의 손에는 세관신고서가 들려진다.

'잉크' 가 들어 있는 볼펜으로 세관신고서를 적다보니 지금의 '잉크'가 자리잡기까지 어떤 노력들이 있어왔는지 이야기하던 저자는 작성을 마치고 창밖을 보니 구름이 보이고 안개낀 상태에서의 착륙이 갑자기 불안해진다. '구름'의 상당부분은 수분으로 되어 있다. 구름속 수분과 인공비까지 생각하다보니 불안한 안개속에서도 비행기는 무사히 착륙한다. 비행기가 지구표면에 닿았다. 그런데 '지구'의 중심또한 액체 이다.

'지구'는 모든 생명을 살아가게 하는 유동성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행성이다. 비행기가 단단한 땅에 안착한 것 같지만, 사실 '단단한' 은 실제로 옳은 단어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행성이 움직이는 한 지구는 특별히 단단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지구는 뜨거운 액체 덩어리로 생명을 시작했음을 상기시킨다. 지구의 액체형 활동은 화산을 통해 체감할 수 있으니 화산활동을 생각하던 중 어느덧 비행기 내에 사람들이 거의 다 내렸음을 확인한 저자도 서둘러 내리기로 한다.

지구 이야기를 하다보면 '환경'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환경에 악형향을 주는 다양한 재료들을 생각하다가도 인류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물'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에필로그 에서 물 이야기를 조금 더 한 후 '액체를 기대 수명을 연장하고 집단 이주와 갈등을 예방하는 주요 발명품으로 환영하게 될' 21세기 를 그려보며 저자는 책을 마무리한다.

어찌나 자연스럽게 다음 액체로 흘러가는지 다 읽고 나니 마치 내가 저자 옆에서 비행기를 11시간 함께 타며 이야기를 들은 듯한 피로감이 살짝 들 정도다. 하지만 몹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고 이 책을 읽고 나면 일상의 액체들이 새롭게 보일 것 같긴 하다. 이 책이 액체를 다룬 책이고 보니 '고체'를 다룬 저자의 책 '사소한 것들의 과학' 이라는 책도 궁금해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기체' 에 대한 책이 어서 나오길 기대하게 된다. 이처럼 신선하게 일상의 과학탐험을 시켜주는 책들을 나는 언제나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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