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유물 중심으로 풀어낸 문명이야기 시리즈인 손바닥 박물관 시리즈가 고대로마, 고대그리스, 고대이집트 에 이어 바이킹을 등장시켰다. 사실 고대그리스,로마,이집트 는 고대문명으로 워낙 유명해서 대충이라도 짐작가는 바가 있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대시리즈 3권의 책 역시 몹시아주무척 보고싶긴 하다) '바이킹'은 정말 처음이었다. 몹시 궁금했고 아주 흥미로웠으며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네덜란드, 덴마크, 독일, 러시아, 미국, 스웨덴, 스페인,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영국, 캐나다, 핀란드 에 있는 세계 유수의 박물관 소장품 중 세심하게 가려 뽑은 200여 점의 바이킹 유물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유물을 읽으며 바이킹의 역사도 틈틈이 엿볼수 있는 책이다.


책을 시작함에 앞서 이 책을 더 재미있게 보는 Tip 을 알려주고 있는데, 바로 유물의 실제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표식이다. 인체와 손바닥을 이용하여 유물의 크기를 대비시켜 놓았는데, 유물마다 이 표식을 통해 실제크기를 연상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바이킹이 활동했던 지역을 시대순으로 구분하여 표시해놓은 지도도 마음에 들었다. 세계사의 중심을 유럽사의 중심을 너무 로마제국 중심으로만 생각해왔던 터라 이런 지도가 알려주는 느낌은 신선하다. 그리고 대서양을 가운데 둔 세계지도는 늘 나도모르게 좁혀진 시각을 다시 넓혀주곤 한다.
바이킹의 시대를 연대순으로 구분하자면 초기, 중기, 후기 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연대는 각각 약 550년~899년경, 약900년~999년, 약1000년~1500년 이다. 로마제국이 쇠망하던 시기에 점차 바이킹의 세력이 커졌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는데, 중세암흑기에 가려진 곳들 중 이슬람을 최근 ('십자가와 초승달, 천년의 공존' 이라는 책을 통해) 발견한 나로서는 '바이킹' 또한 그렇게 가려진 곳들 중 하나였음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됐다. 어두웠던 천년 중에도 반짝이는 별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또한 어쩌면 당연함에도 이제야 새삼스레 깨달았다.
바이킹 세계에서 어떤 단일한 시작이나 종말의 일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시기에, 그 세계는 현대의 스칸디나비아와 유럽 북부의 넓은 영토를 아울렀고, 서쪽으로는 북대서양의 섬들, 그리고 동쪽으로는 러시아의 변방까지 뻗었다. 많은 스칸디나비아인들은 심지어 그 한계선도 넘어갔다. 시대적 또는 지리적으로 확관 경계선을 긋기가 불가능하다보니, 바이킹 세계를 정의하려면 실용적 접근법을 취할 필요가 있다. 몇 세기에 걸쳐 군사 행위, 집단 이동, 교역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동안 이 세계를 하나로 묶어 준 것은 무엇인가? 답은 '변화'이다. (p. 6)
천하를 재패했던 로마가 무너져가던 시기 다른 곳들이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음을 종종 잊곤 한다. 권력은 늘 흥망성쇠를 거듭하기 마련이며 그 중심지는 변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세계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은 따로 떨어져 있었지만 어느 순간 서로 만나기 마련이다. 문화의 흐름은 강물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물보다 더 멀리 뻗어나가고 그렇게 흩어져 발달하던 문화는 서로 섞이며 또다른 세계를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누군가 망하면 누군가는 흥한다.
서사는 아마도 고대 그리스, 로마 또는 이집트 세계에 대해서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바이킹 시대에는 통하지 않는다. 바이킹 세계가, 비록 크고 폭넓게 연결되어 있었지만, 더 이전 문명들에 비해 좀 더 정치적으로 파편화되었고 사회적으로 다양했기 때문이다. 어떤 단일한 서사에 액자 역할을 할 바이킹 제국은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바이킹 시대는 바이킹들의 한 시대였다. (p. 7)
이 책은 전문적 연구에 요구되는 정도의 상세한 유물 묘사를 다루기보다, 서사를 위한 시작 지점으로 유물들을 이용한다. 유물들은 말을 하지 못하지만, 창의성과 새로운 과학 기법에 힘입으면, 이따금 읽어낼 수 있다. (p. 9)
바이킹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세력이다. 이런 점에서 징기스칸의 몽골과 비슷한 것도 같다. 그들은 적은 것을 남겼지만, 그 시대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고고학은 이름대비 사실 그리 오래된 학문이 아니다. 약탈과 도굴과 개인적 수집을 넘어 학문으로 정착한 것은 생각보다 최근이다. 그래서인지 고고학의 발달은 최신과학의 발달과 맞물려 성과를 뚜렷이 내기 시작했다. 이 책속의 유물들을 보면서 이걸 어떻게 알아냈지? 싶은 유물들이 있었다. 과학은 고고학의 필수적 동반자이다.
6세기 중반, 아마도 환경적 재앙(화산분출)의 결과로 사회는 붕괴하기 시작했고, 따라서 정착지 폐기와 정치적 이탈이 초래되었다. 다양한 당파들이 지역 지배를 놓고 경쟁하다 보니, 다시 건축된 사회는 틀림없이 그 후유증을 안고 있었을 것이다. 바로 수평선에서는 유럽 대륙이 꽃을 피우고 있었고, 북해와 발트해 해안을 끼고 도시와 교역 정착지들이 솟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아랍 칼리프 국가로부터 유럽으로 은이 흘러들어 오기 시작했다. 바이킹 시대 여명의 상황은 그러했다. 매우 무너지기 쉬운 신분질서를 가진 사회에서, 성공적인 해외원정이 한 족장의 지위를 얼마나 높아지게 만들었을 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p. 16)
침탈과 약탈로 시작된 교류도 반복되고 서로 섞이다 보면 나름의 구조를 갖추기 마련이다. 바이킹의 흥망성쇠는 소규모 부족난립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어떻게 서로 교류하게 되고 또 어떻게 중앙집권화되어 서로 비슷해지는지를 보여준다. 바이킹의 시대는 일종의 춘추전국시대였다.


가장 놀라운(혹은 충격적인^^) 유물과 가장 상징적인 유물을 고르라면, '변'과 '장신구' 이다.
영국 요크지역의 늪지대에서 발견된 '변'은 그야말로 '이런 변이 있나!' 라는 말이 나오게 만들었다. 검색해보니, 요크에는 2천년 이상 동안 정착촌이 있어왔고, 이 도시의 지속적인 점령의 결과는 현대도시가 고밀도로 압축 된 쓰레기 와 오물층에 자리잡게 만들었다고 한다. 고고학자들이 추정하는 깊이가 약 10피트에 이른다는데, 켜켜이 '뭔가' 들이 쌓여 있다는 말이다. 이 지역의 일부는 도시의 일부 지역의 토양에 수분이 침착되어 있고 산소가 거의 없어 소멸되기 쉬운 목재,가죽,천,뼈 같은 것들을 천년 이상 보존해 놓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 1970년대에서야 발굴된 이 지역에서 뭐가 얼마나 더 나올지 모르겠지만, '변' 뿐만 아니라 '뇌'도 나왔다고 하니 진흙이 산소를 차단하면서 부패를 막은 또다른 유물이 무엇이 더 나올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소부족 난립 시대에서 해외원정을 성공한 바이킹들은 서로 동맹과 충성관계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때 이용되는 선물로 '장신구'들은 특별했을 것이고 정략결혼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다양한 지역에서 발굴되는 금속세공품들을 이런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200여개에 이르는 이국적 물품들을 활용해 만든 목걸이를 보면서 바이킹이 불러일으킨 변화의 핵심은 결국 교류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이러한 교류의 핵심은 '바다' 였다.
그러고보면 지중해라는 바다를 중심으로 발달했던 고대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이집트의 교류에서도 중요했던 지역은 땅보다는 바다였다.
로마가 제국으로 모두를 통합하고 육지중심 권력으로 변화해가면서 교류는 폐쇄적이 된 것이 아닐까. 육지에서 그렇게 치고받고 있을때 바다에 등장한 새로운 세력이 교류를 만들어내고 있었고, 이 세력이 결국은 중심패권을 흔들게 된 것이 아닐까. 이슬람도 바다를 통해 스페인까지 진출했을 때가 가장 부흥했던 때가 아닐까. 오스만제국이라는 육지에 갇히면서 결국 패망의 길로 간 것이 아닐까. 바다는 지구표면의 70%이상을 차지한다는 부피 이상으로 역사에서도 중심무대였던 것이 아닐까.
맹약을 다지기 위해 '반지를 주는' 관습은 게르만 세계 전역에서 공통적이었다. 검 자체도 족장이 추종자들에게 충성 및 봉사의 대가로 주는 선물이었다. (p. 47)
10세기는 팽창의 시대였다. 상업과 정착지, 그리고 권력의 팽창, 이는 새로운 육지로의 여행, 교역 및 산업 조직의 혁신, 그리고 정치적 권력에서는 중앙집권화의 증가를 야기했다. 초기 바이킹 시대가 일종의 초기 중세식 거친 서부였다면, 그 후 수백 년간은 결국 중세 유럽 사회로 성장할 씨앗들이 부려진 셈이다. (p. 103)
자물쇠와 열쇠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것은 바이킹 시대 사회가 어떻게 짜여 있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의 개인 소지품 및 개인 공간에 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p. 115)
맹약의 징표로 주고 받던 반지, 그 반지를 달고 있는 검, 검또한 충성의 증표, 자물쇠와 열쇠 사용의 확대 이러한 것들이 결혼서약때 주고받는 반지와 기사에게 내려지던 검과 재산보호를 위한 잠금장치의 발달등과 관련이 있겠지 싶어서 흥미로웠다. 바이킹이 뿌린 씨앗들은 다른 씨앗들과 섞여 중세문화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바이킹 연구에서 너무나 자주 나오는 뻔한 이야기는 바이킹이 뿔 달린 투구를 쓴 적 없다는 것이다. (p. 146)
바이킹! 하면 뿔투구! 인데 바이킹은 뿔달린 투구를 쓴 적 없다니!! ㅎㅎㅎ
이런 역사적 왜곡은 찾아보면 은근히 많다. 소크라테스도 '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을 한 적 없는 것처럼.
핵실버는 바이킹이 경제 거래에 사용하기 위해 작게 자른 은 조각들을 가리킨다. 은은 바이킹 시대에 주요 통화를 구성했다. 약탈로 더 많은 은을 손에 넣는 것이 부를 얻는 효율적 방법이었다 (p. 173)
요크에서 발견된 성 베드로의 페니는 아마도 바이킹 시대의 가장 유명한 동전일 것이다. 앞면에 십자가, 칼, 그리고 토르의 망치 묘사가 문구와 함께 적혀 있다. 이것은 종교적 통합 또는 토르와 성 베드로의 융합을 의도한 듯한데, 이는 대중적 개종을 용이하게 만들려는 의도된 전략이었다. (p. 181)
스칸디나비아 양식에 더해, 오스만과 다른 유럽 내륙의 문화 역시 국제 연결성의 결과로 북해 세계를 통해 모방되었다. 그러나, 바이킹 시대 최후의 주요 교역항들은 쇠락하고 있었다. 이런 변화에는 환경 변화가 한몫을 했다. 비록 핵심 촉매는 증가하는 중앙집권화와 새로운 '도시'종교였지만, 그것은 기독교 였다. 1000년 무렵, 덴마트, 스웨덴, 그리고 노르웨이 왕들은 모두 자신들을 기독교인으로 선포했다. 기독교, 도시화 그리고 중앙집권화는 손에 손을 맞잡고 스칸디나비아 전역에서 발달했다. (p. 196)
은관련 유물은 상당히 많이 발견되었다. 작은 조각들이 많았는데 무게로 잰 은은 굳이 동전이 아니어도 화폐로 통용되었다. 왕이 자주 바뀌는 시대에 왕의 얼굴이 박힌 동전보다는 무게 자체로 거래되는 은조각 들이 더 화폐가치가 있었을 것도 같다. 약탈로 시작했지만 거래가 되고 교류가 되면서 많은 것들이 표준화되기 시작했다. 토속신앙과 합쳐지면서 자리잡은 기독교는 중앙집권화를 가속시켰고 교역의 발달로 인한 도시화또한 국가의 성장을 촉진시켰다. 그렇게 도적때들은 시민이 되기 시작했다.
이 인상적인 뿔피리는 코끼리 엄니로 만들어지고 이탈리아 살레르노에서 조각되었다. 공예가들은 상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슬람 조각가들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p. 240)
노예는 바이킹 경제의 주요한 원동력이었지만, 노예제의 고고학적 증거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찾기 힘들다. (p. 243)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커다란 뿔피리 유물사진을 보면서 정교하게 새겨진 문양들이 이슬람조각들이 한 것이라는 설명을 읽으니 역시 바이킹이 성장하던 시기가 얼마나 열려있던 사회였는지 다시한번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시대의 역사를 보더라도 간과하는 부분이 바로 노예제 이다. 고대부터 중세, 그리고 근대까지도 노예가 없던 적이 없었다. 노예는 사회와 문화발달의 근간이었다. 인간의 역사에서 인간취급을 받지 못했던 노예의 역사가 얼마나 밝혀질 수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여하튼 역사를 읽으며 늘 기록에 남지 않은 존재들을 기억하며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역사는 알면알수록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분야인것 같다.
그동안 중세역사에 대해 좁은 시각을 갖고 있었던 것을 최근 읽었던 책과 이 책을 통해 새롭게 확장시킬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참 좋았다.
무엇보다, 직접 보지 못하더라도 큼직하게 다양한 유물사진을 컬러풀하게 설명과 함께 책으로 읽는 다는 것이 요즘 같은때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