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날개 달린 것
맥스 포터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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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ief is the Thing with Feathers 슬픔은 날개 달린 것

슬픔... Grief ?? (특히 누구의 죽음으로 인한) 비탄

제목부터 느껴지는 죽음의 기운... 그리고 까마귀

사랑은 이 세상의 모든 것, 그것이 우리가 사랑에 대해 아는 전부;

까마귀는                                            까마귀에

그것은 충분해, 실린 짐의 무게는 바큇자국이 말해주겠지 - 에밀리 디킨슨 -

                            까마귀의       까마귀가

'에밀리 디킨슨' 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하며 부분부분 원래의 글자들 대신 '까마귀'를 써놓은 페이지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테드 휴스' 라는 시인이 첫번째 부인 실비아 플라스의 죽음 후 긴 침묵 속에서 완성했다는 '까마귀'라는 시집을 종종 등장시키는 것으로 에밀리 디킨슨 과 테드 휴스 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는 동시에 그들의 시적 슬픔을 내재시키고 있었다.

시인을 사랑하는 작가라서 그런지 그의 첫 소설이라는 '슬픔은 날개 달린 것' 이라는 이 작품은 시집크기의 얇고 작은 소설로 시적 리듬과 상징이 잔뜩 들어있는 소설이었다. 시처럼 읽힌다는 점에서 '롱 웨이 다운' 이라는 소설이 생각나기도 했고, 일관된 상징들이 읽힌다는 점에서 한강 작가의 '흰' 이라는 책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을 한강 작가는 '이상한 온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책' 이라며 추천했다고 한다. 상징과 시적미학이 혼재된 소설이라는 점에서보면 한강 작가의 소설들과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듯도 싶다.

테드 휴스의 '까마귀' 라는 시집을 오마주하는듯 슬픔을 까마귀로 은유하는 이 소설속 배경은 비슷하다. 아내와 사별한 슬픔.

나는 줄줄이 찾아오는 애도객들을 대처하는 데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건의 중심에 있다보면, 기이하게도 다른 모든 이들에 대한 인류학적 지각을 얻게 된다. 슬픔에 압도된 사람들, 애도를 가장하는 사람들, 지금껏 아무 사이도 아니었던 사람들, 너무 오래 머무는 사람들, 아내가, 내가, 그리고 아이들이 새로 사귄 친한 친구들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대체 누구였는지 알아처먹을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지구가 두꺼운 띠를 이룬 우주 쓰레기에 둘러싸인 그 놀라운 사진, 바로 그 사진 속 지구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p. 15)

아빠, 아이들, 그리고 까마귀 로 화자가 번갈아가며 바뀌는 이 소설을 읽다보면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돌고 돌지만 같은 위치가 아닌 그 경사를 빙 둘러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다다른 꼭대기, 그 지점을 향해 소설은 천천히 진행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내를 잃은 남자는 애도와 상실에 대한 분노를 오가던 중 까마귀를 만난다. 말하는 까마귀.

네가 더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나는 떠나지 않을 거야.

날 내려줘, 나는 말했다.

안녕이라고 말해주기 전까진 안 돼. (p. 18)

 

남자에겐 어린 두 아들이 있다. 아이들은 어리지만 알고 있었다. 변화를. 그리고 어쩌면 아빠보다 먼저 적응하고 있었다. 그 변화에.

아빠가 우리를 우리 방으로 데려가서는 침대에 앉아 자기 양옆으로 앉아보라고 말하기 전부터 뭔가가 변했다는 걸 알았다. 이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고, 이제 아빠는 예전에 우리가 알던 아빠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아니고 엄마 없이 살아가야 하는 용감한 아이들로 거듭났다는 사실을 짐작했고 이해했다. (p. 26)

아이들은... 이해했다! 하지만 아빠는 아니었다...

하지만 난 정말로 신경이 쓰여. 인간들이란 슬픔에 빠져 있을 때를 빼면 별 재미가 없거든. 건강, 재난, 기근, 악행, 찬란한 것들 또는 정상적인 것들은 별로 내 흥미를 끌지 못하지만 엄마없는 아이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엄마 없는 아이들은 순수한 까마귀야. 나처럼 감상적인 새에게 그것은 숙성되고 진하고 그윽해서, 마치 새 둥지처럼 약탈하기에 아주 그만이야. (p. 29)

까마귀는 아빠와 아이들 곁에 머무르기로 한다.

그녀는 죽느라 바쁘지 않았고, 간병의 흔적 같은 것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사느라 바빴고, 그러고는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p. 36)

소설속에서 가장 인상깊은 문장이었다. 가족을 죽음으로 떠나보내고 여전히 삶의 현실속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겐 떠난 이의 죽음의 흔적보다는 삶의 흔적이 많다는 것이 이토록 절절할 수 있구나 싶었다. 그러니 까마귀와 함께 살수밖에 없었던건지도...

아내는 나에게 좀 이른 생일 선물을 주겠노라고 말했다. 그것은 플라스틱 까마귀였다. 우리는 사랑을 나눴고, 나는 그녀의 견갑골에 키스하면서 부모님이 내게 아이들은 날개가 자란다고 거짓말했었다는 이야기를 다시금 들려주었다. 아내는 "내 몸은 새가 아니야" 하고 말했다.

           다시.

                 날개.

                        사랑.

                               내 몸은 새.

다시. 제발 모든 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p. 57)

 

회상과 현재와 우화와 실재가 혼재하는 이 소설은 판타지스러운 면이 있지만 판타지 소설은 아니다. 삶이 때론 판타지처럼 여겨질 때가 있을 뿐이다.

아빠와 까마귀가 거실에서 싸우고 있었다. 문이 닫혔다. 끄아악 끄르르 까악, 끄아악 끄르르 하고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아빠는 그만해, 그만해, 까악, 까아악 하고 말하며 헛기침을 하고, 헛구역질을 하고, 침을 뱉고, 욕을 하고, 쉰 목소리로 꺽꺽거리고, 컹컹 짖고, 흑흑 흐느꼈는데, 그것은 단속적으로 들려오는 아빠의 소리와 쿵 했다 꽥 했다 찌릿찌릿한 파열음을 내는 난폭한 새소리가 펼치는 괴상한 가믈란 즉흥연주 같았다.

까마귀는 털이 헝클어지고 눈이 휘둥그레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녀석은 조용히 문을 닫고 우리가 앉아 있는 부엌 식탁에 함께 앉았다. (p. 63)

 

번역자는 작품의 말미에 덧붙인 말에서 원작에 쓰여진 의성어들이나 비유적 표현들을 번역하는데 고심했다고 한다. 영어의 운율과 한글의 운율도 다를 뿐더러 비유라는 것이 은유라는 것이 읽혀지는 사회의 문화를 포함하는 것이기에 아마도 엄청 고민이 됐을 것 같긴 하다.

여하튼, 아빠가 슬픔과 싸우고 있는 동안 아이들 곁에도 어쩌면 당연히 슬픔은 늘 함께 하고 있었다. 아빠가 슬퍼하는 모습까지도 다 알고 있었다.

친구가 말했다. 매사에 아내를 끼워넣고 생각하는 습관을 좀 버려. 슬픔과 터무니없는 집착은 다른 거야. (p. 79)

하지만 애도라는 것이 원래 지금 여기 없는 사람을 끊임없이 생각하다 조금씩 덜 생각하게 되는 과정이 아니던가... 어쩌면 슬픔은 집착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녀는 감기에 걸렸었다. 아내가 아픈 건 좀처럼 드문 일이었다. 아이들은 어렸고 밖은 눈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아내는 우리가 집안에서 날뛰는 꼴을 참아줄 수 없었으므로, 우리는 옷을 갈아입고 공원으로 썰매를 타러 갔다. 아내가 없으니 우리 꼴은 한심했다. 아이들은 자기들 모자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아이들은 끈으로 연결된 손모아장갑 양쪽을 패딩 소매 안으로 집어넣을 수 없었고, 다른 덩치 큰 아이들이 언덕에서 썰매를 타고 있는 꼴을 보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절망적이었다. 내가 장화도 신기지 않은 채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바람에, 길을 채 다 내려가기도 전에 아이들의 작은 발가락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둘 다 징징댔고, 우리는 셋 다 엄마 없이는 제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실감했다. 아이들은 나를 동정했다. 나는 아버지로서의 내 탁월함이 전적으로 아내에게 의존한 덕분이었음이 드러나자 심한 당혹감을 느꼈다. 만일 그날이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의 최종 리허설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나는 '자 다들 힘을 좀 내봐 요 똥덩어리들아, 혹은 날 도와줘' 하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날 데려가, 대신 날 데려가줘 제발, 하고. (p. 134)

아빠, 아이들, 까마귀가 번걸아가며 현실 혹은 판타지를 이야기하다 보니 각각 다른 에피소드처럼 읽히기도 하는데, 그런 짧은 글들이 모여 전체 소설의 흐름을 연결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나는 이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한페이지를 몽땅 옮겨 적었다. 적으면서 또다시 읽어도 여전히 가장 슬픈 장면이다.

나는 몇 년간 힘든 시간을 보냈고, 지금은 괜찮아졌다. 하지만 나는 조용한 성격이며 감상적이지 않다. 나의 형제는 까아아악 하고 외치고 그들에게 말을 건다. 내 인생에서 끔찍했던 그 몇 년은 얼룩진 까마귀였다. 그리고 털어놓을 작은 비밀이 하나 있다. 나는 심지어 그 책을 읽어본 적도 없다. 나는 휴스가 싫고 시가 싫다. (p. 142)

그래 아냐, 나는 말했다. 아빠도 동의해. 우리는 잘해나가고 있어.

방에서 나올 때 까마귀가 내게 따라붙더니 문을 닫고는, 내게 친밀한 헤드록을 걸었다.

넌 혼자가 아니야. 꼬맹아. (p. 146)

나는 우리 가족의 친구인 까마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내는 내가 상상의 존재인 까마귀와 함께했던 가족 휴가를 좋은 기억으로 떠올리는 것을 기이하게 여기고, 그러면 나는 아내에게 그건 까마귀가 아닌 다른 무엇이었어도 좋았고, 일이 이런 식으로 풀릴 수도 있었고 저런 식으로 풀릴 수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결과적으로는 다소 이로운 존재였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켜준다. 우리는 엄마가 그립다. 우리는 아빠를 사랑한다. 우리는 까마귀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그건 그렇게 기이한 일이 아니다. (p. 147)

 

아이들은 생각보다 빨리 자란다. 자란다는 것은 변한다는 것일까. 다 자란 어른은 오히려 변하기가 쉽지 않다. 늘 같은 모습으로 제자리에 있게 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조금씩 달라진 모습으로 늘 다른 자리에서 갑자기 등장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까마귀는 늘 다른 이야기를 하고 남자에게 까마귀는 늘 같은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까마귀가 아빠에게 뭔가 가르쳐준 게 있다면, 그건 아마도 끊임없이 균형을 유지하는 법이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속된 표현을 쓰자면 : 신념.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미안하다고 외치는 말, 다시 말해서 '네, 그래요' 다시 말해서 '고마워요' 다시 말해서 '계속 전진' (p. 154)

이제 그만 가봐도 될까, 내 임무는 끝났어. (p. 158)

엄마를 그리워하는 일에 관한 한, 그들은 전문가였어. 나에게는 더없는 기쁨이었지. (p. 159)

우리는 아내가 사랑했던 장소로 갔다. 나는 차를 타고 가던 도중에 아이들에게 엄마가 죽은 후로 내가 줄곧 유별난 아빠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내게 걱정할 것 없다고 말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까마귀와 관련된 온갖 터무니없는 일들은 이제 끝났으며, 앞으로 강사 자리를 좀더 알아볼 계획이고 테드 휴스에 대한 생각은 그만할 거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내게 걱정할 것 없다고 말했다. (p. 163)

 

일상이 일상이 아닌 것처럼 살때 까마귀는 그들 옆에 존재했지만, 일상이 일상으로 느껴졌을 때 까마귀는 날아가고 없었다.

애도란 그런 것인가 보다. 일상이 아닌 시간에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시간...

파도처럼 일어나는 웃음소리 그리고 고함소리와 함께, 아이들은 내 두다리를 껴안았고, 발을 헛디디다 서로를 움켜잡았고, 뛰고, 돌고, 휘청이고, 으르렁거리고, 새된 소리를 지르더니, 이윽고 목청껏 외쳤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그리고 아아들의 목소리는 바로 그들 어머니의 삶과 노래였다. 미완인 채로 남아 있다. 아름답다. 이 모든 것이. (p. 165)

 

차마 하지 못했던 더이상 할 수 없었던 사랑한다는 말을 다시 목청껏 소리지를 수 있을 때 그 소리에 웃음기가 묻어 나올때 어두웠던 세상은 다시 밝아져 있었다. 그래서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이라 제멋데로 날아왔다가 제멋대로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슬픔이 다녀갔기에 일상은 다시 아름다워질 수 있었다.

기이하지만 슬프고 슬프지만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무엇보다 해피엔딩이라 좋았다. 나는 해피엔딩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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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겠다
김탁환 지음 / 북스피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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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다> 라는 작품으로 작가를 처음 알게 됬었다.

아무도 돌아보려 하지 않는 시간을 꼼꼼이 되짚어보고 기록해준 그 작품에 너무나 큰 감명을 받았더랬다.

그리고 작가의 본업적 작품?!의 세계를 접했다.

<대소설의 시대 1,2> 를 읽고 더욱 팬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역사소설인데다, 탄탄한 기초를 가진 역사소설로 작가의 필력에 견줄만한 작가가 전혀 떠오르지 않을 만큼 탁월했다. 다른 작품들도 모조리 찾아 읽고 싶다는 욕망은 차차 실현해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전에 <거짓말이다> 에 이어 또다시 사회에서 버림받은 한 인간의 삶을 다룬 <살아야겠다> 를 읽어야 했다.

지금의 코로나 사태가 지금처럼 수습되지 않았다면 뜨겁게 회자되었을 소설 <살아야겠다> 는 메르스사태 때 버림받은 생존자들의 고통을 담은 작품이었다. 픽션이지만 픽션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고 차라리 픽션이었다면 좋았을 논픽션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메르스땐 놓아버린 그 손을 지금의 사회는 놓치지 않고 잘 잡아주고 있는지 오래 생각하게 했다.

사스, 메르스, 우한폐렴(공식명칭이 아니지만 나는 왠지 우한00이라고 부르고 싶다) 모두 코로나바이러스 의 변종들이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연을 함부로 침해한 결과 동물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에 전염병을 일으키는 시대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코로나바이러스는 자연이 휘두르는 타노스의 장갑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중세시대때 반복되던 흑사병이 없었다면 지금의 인구는 대체 얼마나 늘어나 있었을까? 싶어서.

하지만 거시적으로만 보는 시각이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 이 소설을 통해 가슴저릿하게 배웠다.

먹는시간 화장실가는 시간 조차 아까울 정도로, 소설을 읽는 동안 울컥울컥 목구멍이 따가우면서도, 이 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모른다고 하면 뻔뻔한 것이고 안다고 하면 죄스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외면하는 것이 가장 나쁜 길임을 다시한번 알 수 있었다.

<거짓말이다> 도 <살아야겠다> 도 널리널리 읽혀져야 하는 작품이다. 그때의 사건들이 끝난것 같아 읽을 필요 없다고? 천만에.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더 알아야 한다.

질병관리본부의 검사 요청 거절과 소극적인 대응 탓에 최초 신고로부터 33시간이 지난 뒤 검체를 채취하였고 44시간 만에 판정이 나온 것이다. 촌각을 다투는 전염병 예방과 확산 방지 시스템에서 33시간은 분명 지나치게 긴 시간이었다. (p. 16)

원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메르스 환자가 입원했었다는 게 외부로 알려지는 순간, 외래 환자와 입원 환자 모두 병원에 발길을 끊을 겁니다. 병원 실명을 공개하지 않고 최대한 신속하게 메르스를 근절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p. 19)

질병관리본부에서 정한 밀접접촉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어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이는 없었다. 그물은 헐거웠고 바다는 아득했다. 시간을 끌수록 바다는 더 넓어져만 갔다. (p. 20)

 

초동대처는 한없이 미흡했고 결과는 온전히 환자들의 몫이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힘을 가진 자들이 책임을 떠넘기며 사실을 감추는 사이 전염병조차 약한자들을 먼저 공격하기 시작했다. 전염병이라도 그들을 먼저 공격했더라면 이후의 사태는 완전 다르게 진행되었을텐데.

태어난 순서대로 죽지 않듯, 응급실에 들어간 순서대로 환자가 나오진 않았다. 어떤 환자는 응급실에서 치료받고 귀가하기도 했고, 어떤 환자는 입원실로 옮겨 가기도 했고, 어떤 환자는 응급실에서 삶을 마감하기도 했다. 김석주와 길동화와 이첫꽃송이는 같은 날 비슷한 시각에 응급실에 닿았지만, 그 후 닷새 동안 전혀 다른 시간을 보냈다. (p. 37)

치과의사 김석주, 물류창고 노동자 길동화, 언론 수습기자 이첫꽃송이 세사람의 운명은 한날 한시에 거센 파도에 휩쓸렸지만 헤쳐나오는 시기도 방법도 다 달랐다. 인생사가 똑같은 사람 하나 없이 다 다르듯이.

대기하십시오

언제까지 기다리나요?

메르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집니다

열이 높고 두통이 심한데, 치료부터 받으면 안 돼요?

보고하겠습니다. 우선은 편히 앉아 기다리십시오. (p. 103)

 

환자보다 보고가 먼저, 치료보다 보고가 먼저, 다른 그 무엇보다 행정처리가 먼저. 아파죽겠는데 편히 약하나 주지 않고 편히 앉아 기다리라는 말 부터가 그 처리 부터가 이미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인데... 읽는 동안 열통터지는 장면이 한두군데가 아니지만 참고 읽어야 한다. 화내고 짜증낸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분노를 모으고 모아 에너지를 만들어야 의미있는 활동을 할 수 있다.

5월20일 첫 확진 환자가 나온 이후는 물론이고 5월30일 F병원에서 확진 환자가 다시 나온 후에도, 정부는 야당과 시민단체의 병원 명단 공개 요구를 무시하거나 거절해왔다. 아울러 환자가 발생한 의료 기관과 확진 환자 명단은 진작부터 의료계와 공유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밀접접촉자에 대한 추적 관리는 충실히 수행하는 중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p. 140)

국민들은 19일이나 병원 명단을 감춘 정부를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부가 알파벳으로만 밝힌 병원 실명을 여러 경로로 추적하여 알아냈다. 아무도 믿지 않고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정부와 병원과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깨진 자리에 어울리는 사자성어가 유행했다. 각자도생. (p. 141)

정보 부족과 관리 미숙에 따른 허점, 그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을 국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은 상황이었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와 병원과 보건소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많은 이들이 자가격리와 관련하여 낯설고 불편한 국면에 맞닥뜨렸다. 보건 당국으로부터 설명을 들은 적도 지침을 받은 적도 없었고, 어디에 문의해도 마땅한 답을 얻지 못했다. 국민들은 보건 행정의 사각지대에서 어쩔 수 없이 스스로 판단을 내려야만 했다. (p. 144)

 

국가적 재난을 개인이 해결할 수 없음에도 국가가 책임지지 않을때 개인은 무엇을 해야 할까?

국가를 움직여야 한다. 국가가 움직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알아야 하는 것이다. 분노를 함께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잠복기일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증상이 없으니, 그냥 병원에 있어도 된다? 또 그냥 지하철을 타든 버스를 타든 상관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집으로 가도 된다? 이렇게 해석하면 되는 건가요?

해석은 자유겠죠. 제게 확인하진 마십시오. 전공의가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는지, 병원으로부터 받은 지침이 없단 뜻입니다. (p. 163)

AP가운 이잖아, 이건?

에이피가운은 일회용 위생 비닐 가운으로 간호사들 사이에선 '앞치마'로 통했다. 가운이 가슴과 배는 가려 주지만 목과 등은 노출되었다.

보호복이 부족하다고? 이렇게 큰 종합 병원에서? 너무했다. 전염병이라며? 그런데 위생 비닐 가운을 보호자들에게 입힌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야? (p. 166)

이 병원 감염내과엔 국제적 명성을 지닌 의사들이 가득해. 어련히 알아서 했을까. 면회를 시켜도 될 만하니까 허락했겠지.

국제적 명성? 웃기지 말라그래. 연구는 잘하는지 몰라도 격리의 에이비씨도 못 갖췄잖아. 방심해선 안 돼. 그딴 걸 걸쳤다고 감염을 막을 수 있겠어? 목과 등이 훤히 드러나 있잖아? 감염내과 과장 아니 병원장까지 모두 미친거 아냐? 어떻게 저딴 걸 입혀서 격리병실에 들여보낼 수가 있지? (p. 170)

 

사스가 비껴갔던 행운이 메르스때도 있으리라 생각했던 걸까? 사스때 잘했다는 자화자찬으로 메르스도 별거 아니네 하고 안일하게 대처했던 걸까? 초동대처의 부실함이 드러나는 대목이 한두군데가 아니었다.

보건소 직원은 석주가 6월7일로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격리병실로 이동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또한 석주의 아들 우람 역시 자가격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하며, 격리 시작 시점도 김석주가 병원에 입원하러 집을 떠난 6월1일로 잡아야 했다. 보건소 직원이 연락한 대로, 자가격리 대상자는 김석주와 남영아였고, 6월7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김석주의 밀접접촉자이기 때문에 자가격리를 실시하란 통지서는 영원히 오지 않았다. (p. 187)

아이 아빠가 메르스 환자로 투병중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이상 우람을 순순히 받아줄 어린이집은 서울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p. 191)

 

이미 확진자로 격리병실에 입원해 있는 사람에게 자가격리통지서를 보내는 보건당국이나, 자가격리를 마친 무감염자인 확진자의 가족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나 답답하고 또 답답했다. 지금은 내 일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제 내 일이 될지 모를 일에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을 '주의'에서 '경계'나 '심각'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중앙 메르스 관리대책본부는 종합 병원에 특단의 조치를 내리지도 않았고,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을 높이지도 않았다. 정부를 믿고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p. 221)

꼭 일이 터져야 아는 거냐고, 이딴 식으로 대충 하면 의료진이나 보호자들에게 감염 위험이 있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충분히 막을 수 있었어. 불편하겠지만 병실까지 들어올 때 차단문을 더 만들고, 보호 장구를 완벽하게 갖췄다면, 그랬더라면... (p. 236)

 

이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하는 정부의 무능을 정말 다시는 안 봤으면 좋겠다.

정부는 하는게 없는데 정부의 지침 없이 마음대로 의료진이 뭘 할수도 없는 현실은 정말 너무 암담했다. 지침을 빨리 현실적으로 주던가 아니면 뭘 제대로 하게 내버려 두기나 하던가.... 자기들 아무것도 안하는 것처럼 의료진도 하지 말라고만 하니 어쩌란 말인가... 그들이 전염됐어야 했는데... 탁상공론 그들이.

혼자 남겨지는 날!

이런 날이 혹시 올까 걱정했는데, 오고야 말았다.

오늘, 기다렸다는 듯이, 국무총리가 사실상 메르스 종식을 선언했다. (p. 293)

응급실에서 한날 한시에 감염됐던 세 사람 중 김석주 환자만 남았다. 그는 혈액암이 재발된 상태였다. 메르스는 혈액암의 치료를 후순위로 미루게 했다.

살아야겠다, 그 마음뿐이에요. 아무리 곱씹어 봐도 이렇게 죽긴 너무 아까워요. (p. 298)

누구보다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의사이기에 누구보다 의료진의 입장을 이해했다. 간호사였던 아내 영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단 한명의 환자만 남았을 때 세상은 완치의 축배를 성급하게 들이켰다.

모르긴 해도, 그 한 사람의 공포가 가장 클 겁니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큰 배 안에 오직 혼자만 병에 걸려 누워 있는 기분일 테니까요. 그런데 정부는 벌써 메르스란 단어 자체를 지우고 있습니다. 세월호란 단어 자체를 지우려 들듯이. (p. 308)

메르스에 감염되었느냐 감염시켰느냐만 놓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가르는 건 지나치게 단순한 구분입니다. 환자가 메르스에 감염되고 또 감염시킬 수밖에 없었던 병원의 관습과 운영 체계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전염을 몇 명이나 시켰든, 메르스 환자는 모두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슈퍼전파자 나 가해자 란 단어도 피해자인 환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잘못된 시선입니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메르스 환자는 없습니다. 전염을 시켰다 하더라도, 환자는 피해자이면서 피해자인 메르스 환자입니다. (p. 318)

 

메르스의 전파는 병원에서 일어났다. 최초 감염자에 대한 조사가 늦었다. 전염병 메르스에 대한 정보도 알려지지 않았었다. 지금과는 거의 모든 것이 달랐다. 적어도 메르스 감염자들에 대해서는 감염을 시킨 전파자 라는 시선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처음 생각해보게 되었다.

왜 이러십니까? 메르스 사망자의 유가족과 완치된 환자에게 거액의 보상금이 지불된다는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몇 억 된다면서요? 정확히 얼마인가요? 저한테만 살짝 알려 주세요.

헛소문이야. 어떤 놈이 그딴 허황된 소릴 지껄여?

아무 잘못도 없이 전염병에 걸려 그 고생을 했는데, 그럼 전혀 보상금이 안 나온단 겁니까? 혹시 연락을 못 받으신 건 아닙니까?

보상금 이야긴 전혀 없었다. (p. 329)

 

어쩜 이렇게 세월호 때와 똑같을까... 유족에게 보상금이 엄청 지급될거란 헛소문... 법적 책임을 물으려고 소송준비를 하는 동안 걸려오는 욕지거리 전화... 그런 헛소문과 욕지거리 전화를 하는 단체를 당시 정부는 유용하게 이용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비슷한 소문 비슷한 방해... 에혀...

그렇지... 어린 학생들의 죽음은 정말 너무 안타깝고 안타깝다...

진상 규명이 반드시 되었으면 한다.

난 그런 생각이 들 때 마음이 조금, 무랄까.

죄스러운 서러움? 같은 게 있다.

남편의 이 기나긴 외로운 싸움을 세상 사람들은 알까?

격리된 우리 가족을 알기나 할까?

세상과 완전히, 마음까지도 격리된 우리를. (p. 360)

제가 특별 케이스란 걸 일반인들은 모르겠죠?

전혀! 저희 셋과 담담 교수님들 그리고 병원장님을 비롯한 극소수만 알죠. (p. 370)

 

그 바다에도 사람이 있었고, 이 마지막 격리 병실에도 사람이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살고 싶은 사람이.

하지만 생존자와 극소수의 의료진은 정부지침의 벽을 넘을 수 없었고, 그들을 설득할 수도 없었다. 그들에겐 확률이 필요했을 뿐, 단한명의 생존자는 관심없었다.

전쟁이든 참사든 전염병이든, 생사를 넘나드는 사건의 기록일수록 어떤 그룹의 서사인지가 명확해야 해. 이대로 간다면 메르스 피해자들은 인간이 아니라 숫자로만 남을 거야. 통계 자료로만 호출될 거고, 피해자 각자가 어떤 개성을 지녔고 어떤 꿈을 꾸었고 어떤 상처를 입었고 어떤 고민을 했는지 그 사람 됨됨이를 기록해야 해. 그리고 피해자들의 서사는 지구 전체로 확산해야 해. (p. 376)

그들은 이미 그녀가 메르스를 앓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거절했다. 그녀는 출판물 물류 창고에 대한 미련을 접고, 전단지나 명함 제작을 주로 하는 작은 회사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어떻게 알아내는 것인지 벌써 세 번이나 발각되었고 왜 숨겼느냐는 힐난조의 질문을 들어야만 했다. (p. 396)

저는 바이러스 덩어리가 아닙니다. 저는 인간입니다. 인간으로서의 시간을 누릴 수 있도록 새로운 틀을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없으면 이 격리병실이 제 무덤이 될 겁니다. (p. 467)

 

혼자 격리병실에 감금되어 있는 마지막 환자의 사투도 문제였지만, 완치된 사람들의 삶도 녹록치 않았다. 생업에서 쫓겨났고 차가운 시선에 몸을 숨겨야 했다. 거기에 몇달간 혼자 격리되어 있던 투병생활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살아도 제대로 사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여하튼 그래도 완치된 사람들은 나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혼자 남은 환자는 메르스 환자가 아님에도 새로운 지침이 없어서 격리병실에 다시 갇혀야 했고 때문에 항암치료도 검사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었다.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배려도 없었다. 그저 잊혀지고 있었다. 죽더라도 사람답게 죽고 싶다고 했는데...

이름도 모르는 전염병이 다시 이 나라에 도착하면, 그땐 제대로 막을 수 있을까?

메르스를 겪었으니 이번보단 낫지 않을까요?

천만에! 메르스는 훨씬 더 악화될 수도 있었는데, 많은 이들의 헌신과 또 뜻밖의 행운 속에서 겨우 막았어. 한데 보건 당국의 관료들이나 여야 국회의원들은 이걸 자신들 실력으로 벌써 우겨 대기 시작했어. 방역망에 구멍이 훨씬 많이 뚫린 셈이지. 그들에게 강력하게 경고할 필요가 있어. 잘못된 제도와 복지부동하는 관료와 무책임한 정치가로 인해 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질 수 있는지, 최대한 널리 알려야 해. 전염병이 김석주 씨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게 아냐. 메르스란 병에 걸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하는, 세월호란 배에 타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하는, 우리의 안일하고 허약한 자기합리화가 그를 죽음으로 내모는 죽이지. 그렇게 비겁한 다행에 안주하면 결국 언젠가 우리도 외롭게 불행을 만나게 돼. 무리해서라도 지금 김석주씨를 끌어안아야 해. (p. 521)

 

유언비어의 난무 속에서도 영향력 있는 언론의 기자 몇명 만으로도 진실이 조금은 빛을 볼 수 있었다. 언론이 중요함을 새삼 또 느꼈다.

메르스때의 정부가 지금의 코로나를 만났다면 어떻게 대처했을지....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음압 병실은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온갖 병균을 모아들이죠. 항암 치료를 하면 면역력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제 남편은 곧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고요. 이식병동에 혹시 가 보신적 있으세요? 이식 병동의 병실들은 양압 병실입니다.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이식 환자들이 감염되지 않도록 병실에 있는 병균이나 바이러스를 병실 밖으로 내보내는 양압 병실이라고요. 그리고 제 남편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병실입니다. 음압 병실에 계속 머물면 감염 가능성이 점점 커진다고요. 메르스가 완치되고 림프종 치료를 받고 있는 남편에게 그 병실은 최악입니다. (p. 552)

하지만 암환자로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메르스 마지막 환자는 메르스 치료를 하지 않음에도 음압 병실에 혼자 격리되어야 했고 항암에 필요한 검사를 받을 수 없었기에 적절한 항암치료를 받을 수 없었고 메르스 환자가 아님에도 보호장비를 풀로 갖춘 의료진에게 수없이 바늘을 찔려야 했다.

내가 지하철을 못 탄다는 걸 국무총리는, 보건복지부 장관은, 질병관리본부장은 알까요?

몰라서 이런 거라면 무능한 거고, 알고도 이러는 거라면 사악한 거죠

우리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 왜 아무도 사과를 안 할까요?

사과를 받아 내야죠. 그래서 소송을 하겠다는 거고요

그런 날이 올까요? (p. 597)

 

나도 정말 궁금하다. 그런 날이 올까?

메르스 피해자의 서사를 쓰고자 했다.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말하기 전에, 기억할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 작업이었다. '번호'가 아닌 '사람'을 되찾아야 했다.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 무너진 시절이었다.

삶과 죽음을 재수나 운에 맡겨선 안 된다. 그 전염병에 안 걸렸기 때문에, 그 배를 타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행운'은 얼마나 허약하고 어리석은가. 게다가 도탄에 빠진 사람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배제하려 든다면, 그것은 공동체가 아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나 <마션>의 감동은 공동체가 그 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경제적 손실이나 성공 가능성 따위로 바꿔치기 하지 않는 원칙으로부터 온다.

문학은 가난한 자 약한 자 아픈 자의 편이라고, 22년 전 장편을 처음 출간할 때부터 믿어 왔다. 문학뿐만 아니라 공동체도 또 그 공동체에 속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도 그러해야 할 것이다.

이 소설이 사람다운 삶을 시작하는 마중물이 되었으면 싶다. (-작가의 말 中-)

 

김탁환 작가님이 정말 너무 고마웠다. 역사는 기록이고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는다. 누구도 하지 않은 그 기록을 열심히 모아 이런 소설로나마 역사를 만들어 주신 것이 정말정말 존경스러웠다.

역사는 가르침을 주려고 의도하지 않은 채 흘러간 시간일테지만 역사는 늘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깨우침을 준다. 그런 역사를 돌아보지 않는 이에게 제대로 된 미래가 올리는 없다. 과거-현재-미래 는 항상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고, 그 연결을 우리는 늘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며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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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1
이수정 외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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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 발생할때마다 마이크 앞에서 명쾌한 의견 제시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이수정 박사, 씨네21 기자를 넘어 영화 관련 다양한 글과 말을 통한 활동을 하는 이다혜 기자, 이 두 사람의 이름을 내건 책이라는 것만으로도 관심이 가던 책이었다.

"범죄를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는 매체는 관심 없습니다. 여성이나 아동 같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범죄 영화를 다룬다면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3만 구독자가 열광한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이 탄생했다

네이버 오디오 클립 의 한 프로그램으로 기획되면서 이수정 박사에게 섭외연락이 갔을때 이수정 박사가 말한 답변으로 프로그램의 지향점은 보다 명확해졌다. 그렇게 탄생된 프로그램은 첫번째 방송이후 바로 출판사들의 출판제의를 받게 되었고, 방송을 거듭하며 구독자들의 아픔과 성장을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영화 이야기가 더 재미있을 것 같고,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이라면 사회적인 이야기 쪽이 생각할 거리를 더 많이 제공해서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p. 7)

영화 이야기 이므로 당연히 영화가 중심 소재이고, 영화 중에서도 범죄 영화 이야기 이므로 마냥 편한 마음으로 즐길 수만 있는 영화들이 아니었는데다, 내가 본 영화보다 안본 영화들이 더 많았던지라 책이 잘 읽힐런지 걱정이 됐었지만, 괜한 기우였다. 영화 스토리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항상 먼저 제시되었고, 영화 스토리 전체 보다는 영화속에 숨겨진 폭력과 범죄의 의미를 찾는 두 사람의 대화는 영화보다는 사회문제로 생각의 방향을 잘 잡아주고 있었다.

1부 왜 피해자가 집을 나가야 하는가 - 가정폭력 : 가스등, 적과의 동침, 돌로레스 클레이번

2부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순응한다 - 비판 의식 결여 : 사바하, 컴플라이언스, 곡성

3부 이 문제가 곧 내 문제일 수 있다는 연대의식 - 성범죄 : 미저리, 걸캅스, 살인의 추억

4부 만만한 계급을 향해 화풀이하는 경향 - 계층 문제 : 기생충, 숨바꼭질, 조커

5부 결국 가장 중요한 의제 강간 연령 - 미성년자 보호 : 번지 점프를 하다, 꿈의 제인, 믿을 수 없는 이야기, 팔려 가는 소녀들

주제들 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는 답답함과 무거움을 안겨주지만, 외면한다고 사라졌다면 진작 사라졌을 텐데, 사라지기는 커녕 오히려 점점 더 위세를 떨치고 있는 문제들이기에 꼭 읽어야 할 책이었다.

영화적 은유를 현실적 법실현으로 분석하고 유사한 범죄 사건들의 원인과 결과를 알게되는 내내 씁쓸하고 막막한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현실이 나아진 것이라는 점또한 확인할 수 있어서 그렇다면 앞으로는 좀더 나아지게 우리가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가정 폭력으로 보기에 경미하다고 판단되면 가정 폭력 처벌법의 적용을 받는 가정 보호 사건이 되는데, 이 경우에는 '반의사 불벌죄'가 적용됩니다. (p. 35)

친족에 대한 범죄 통계는 산출되지만 그것을 세분화하여 부부 간에 얼마나 폭력이 일어나는지는 현재의 통계로는 산출할 수 없습니다. 애당초 입력 자체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찰에서 사건이 입건이 되면 전산상에 입력을 해야 하는데, 그 전산 항목에 부부라는 항목이 아예 없습니다. 놀라운 일이죠. (p. 38)

더군다나 아내를 폭행해서 죽이면 살인죄가 적용이 안 되고 치시가 적용 됩니다. 한국에서 한해에 몇 명이 남편에게 맞아 죽는지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p. 39)

현재 한국 가정 폭력 처벌법의 기본적인 목적은 가정을 보호하는 것이지 피해자의 생명권 보호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반의사 불벌죄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p. 40)

또 다른 문제는 분리를 시키는 방법 자체입니다. 한국에선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집을 나가야 해요. (p. 42)

한국에는 (아내가 남편을 살해했을 때) 정당방위가 인정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습니다. (p. 58)

만약 피해 여성에게 딸린 자녀가 남자아이이면 쉽터도 어렵습니다. 그런 경우, 경찰에서 나온 피해자 돌봄 요원이 정해준 여관이나 모텔 증에 가서 자야 하는데 어쩌면 여관이나 모텔이 더 위험할 수도 있거든요. (p. 74)

가정 폭력이 있었을 때 신고를 해도 다시 그 폭력의 현장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피해자라면 남편의 처벌을 마냥 요구할 수만은 없게 되고, 그렇게 '반의사 불벌죄' 에 의해 남편은 다시 돌아온 가족에게 또 폭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되는데, 가해자에게 퇴거 명령을 내리는 법규정이 없으므로, 어렵게 도망을 나오더라도 피해자는 갈 곳이 없다. 수년을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내를 죽이면 남편은 의도적이 아닌 욱 했던 사건으로 살인죄가 아닌 치사죄가 적용되여 형량이 미미하지만 그런 아내가 남편을 죽이면 의도적 살인이라 하여 살인죄가 적용되 무거운 형량을 선고 받는다. 폭력적인 가정은 깨는게 차라리 낫다. 일단 가정은 지키고 봐야 하지 않냐는 안일한 사고방식이 여전히 가정 폭력에 엄벌을 처하지 않는 근거가 되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굉장히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해 가고 있습니다. 가해자라도 그간의 피해 내력 같은 것들을 좀 더 많이 고려하여 양형 판단을 하는 사례들이 최근에 늘고 있는 추세이고요.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살피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p. 82)

정해진 법 틀 안에서 바람직한 방향성의 법해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제대로 된 법 개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은 친권을 마치 하늘이 내린 권리인 양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영미권 국가에서처럼 친권을 쉽게 제한하거나 박탈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아이들은 학대 방임 가해자들한테 다시 돌아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쉼터나 장기 쳬류 아동 보호 시설을 좀 더 많이 만들 필요도 있습니다. (p. 105)

우리의 경우 랜덤 채팅 앱이나 음란물을 만드는 업체에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없게 되어 있어 모든 일이 사용자들의 책임이 되어 버립니다. 예를 들어 음란물 거래로 돈을 번 웹하드 업체 대표 양진호는 징역형을 받았는데, 업체 자쳬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성황입니다. (p. 139)

여성이 범죄의 피해자가 된 많은 경우에서 피해를 당한 여성도 피해를 알면서도 방관한 주변 사람들도 모두 대단치 않더라도 권력의 형태를 띤 존재에 순응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순응적인 비판의식이 결여된 태도는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남자는 원래 그런 식으로 구애하는 존재, 여자는 원래 속마음은 '예스'이면서도 '노'라고 말하는 존재로 취급하면서, 결국 살아 있는 사람의 진술에 의해 실제로는 애인도 아니고 부부도 아니었던 피해자가 억울하게 파트너로 둔갑해 버리는 사건이 한두 건이 아닙니다. (p. 173)

이 문제가 곧 내 문제일 수 있다는 연대 의식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결코 일부 여성 또는 일부 남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피해자를 외면하는 것 자체가 가해 행위의 연장선상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에는 무심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들이 오늘날 디지털 범죄의 만연을 조장하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합니다. (p. 191)

'야동'이라는 말도 많이 쓰는데, 야한 동영상이 아니라 성 착취 동영상이라고 표현한다면 TV예능 프로그램에서 야동을 보네, 좋아하네, 이런 말을 대놓고 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몰카라는 용어는 피해자에 대한 인권 침해를 유희처럼 만들어 버립니다. 그 용어의 연장선상에서, 앞서 언급했던 리벤지 포르노도 사실은 포르노가 아니죠. 상업화된 것만 포르노라 부를 수 있는 것인데, 분명한 불법 동영상을 포르노라고 부르는 데다 그 앞에 리벤지라는 말까지 붙여 버림으로써 사실을 왜곡해버립니다. (p. 192)

많은 국가들에 아동 유인 방지법이 존재합니다. 미성년자들을 유인하는 것 자체가 범죄잖아요. 그러나 한국에는 현재 그 같은 아동 유인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법률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뿐인가요, 한국은 아직 스토킹 방지법도 없죠. 그러다 보니 그런 법의 빈틈을 틈타 범죄가 곰팡이처럼 마구 번져 나가는 겁니다. (p. 195)

허위 자백을 한 대다수의 사건들을 보면 용의자가 고아나 지적장애인, 신체장애인이나 미성년자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p. 216)

스토킹, 디지털 성범죄, 가혹행위를 동반한 자백에서 이용당하는 약자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법도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데 일상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이 이미 폭력적 의미를 담고 있음을 우리는 자각하지 못한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에 더더욱

여성들은 함께 생각하고, 공감대를 느끼고, 자매애를 형성하고, 상호 부조를 해야 합니다. 옆에 있는 여성의 존재 자체가 부조가 된다면, 피해자들이 혼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될 겁니다. (p. 201)

우리는 결국 연대하기 위해서 지금 이 방송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p. 227)

여성을 상업적 관점에서 보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여성만 하는 것보다 남성들과 함께 할때 더 시너지효과가 클 것이다. 연대는 여자끼리 뭉치자는 말이 아니다. 공감대의 형성은 사회적 기반으로 자리잡을때 변화를 만들어 낼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

현재 한국 형사 정책의 목적은 예방이 아닙니다. 불법적인 랜덤 채팅 앱 업체에게 책임을 묻고 손해 배상까지 청구할 수 있도록 법적 책임을 명기해야 하는데, 현실은 아직 스토킹 방지법도, 아동 유인 방지법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착취해 금전적인 이득을 올린 불법 채팅 앱 업체들은 IT재벌이 됩니다. (p. 321)

미디어나 언론 보도에 대해 다룬 책을 보면, 중산층 가정의 위기를 다룬 뉴스가 가장 반응이 좋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뉴스를 소비하고 여론을 주도하는 계층 또한 중산층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도둑, 강간, 강도 사건이라 해도 중산층 가정이 몰려 있는 주택가에서 일어나면 훨씬 더 심각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집니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하층 계급의 범죄가 더 잦고 피해가 크다 해도 그들의 이야기는 뉴스로서의 가치는 현저히 낮습니다. 그들은 뉴스를 봐야 할 시간에 노동을 하거나 육체적으로 너무 고단해 휴식을 취하거나, 그조차도 여의치 않은 주거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p. 322)

피해자다움에 대한 반응을 보면 우리 사회에 성폭력에 대한 몰이해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알게 됩니다. (p. 347)

미국에서는 16세 미만의 경우 아무리 합의된 성관계라 해도 성폭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강간을 당한다' 라는 표현이 성립됩니다. 하지만 한국은 의제 강간 연령에 의거해 만12세까지만 보호를 하다 보니 13세 부터는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성매매 청소년으로 처벌받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p. 368)

미국은 법을 만들어서 법에 위배되는 것들은 예외없이 처벌하고 있는데, 우리는 민간을 체재하는 법률을 만드는 데 항상 논란이 있어서 민간의 자발적 의지, 자율 통제를 우선으로 합니다. 입법을 하지 않고 자발적인 자유 권한을 주는 바람에 오히려 아무것도 제재되지 않고, 업체는 빠져나갈 구멍만 생긴 셈입니다. 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제재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p. 386)

가정폭력, 성범죄 등 하나같이 모두 엄벌을 처해야 할 사건들이지만 특히나 미성년자 관련 성범죄 부분에서는 법제도 보완이 시급해 보였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벌어진 폭력사건이 뉴스에 등장할 때마다 소년법 개정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대다수의 사람 중에 나또한 포함되 있었다. 그런데 그 배경에는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가출팸과 성범죄의 연결고리 속에 탄생한 새로운 폭력문화가 있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도 물론 심각한 문제이지만, 그래도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면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부터 처벌규정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피해를 입는 아이들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 일이라고 생각해야 그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사회 전체가 노력할 수 있습니다. 그런 피해를 입었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고요. 범죄자들이 나쁜 것이지,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나쁜 것은 아니니가요. 그 피해자들이 미성년자인 경우엔 더욱 그렇습니다. (p. 389)

표지에 보라색 필름의 물결이 넘실거린다. 그 밑에 쓰여진 작은 단어들을 보았다.

ni una menos 단 한명도 잃을 수 없다 는 아르헨티나 말, pedophile 소아성애자 와 femicide 여성증오범죄 그리고 중국어 일본어 등 다양한 언어로 쓰여진 단어들 가장 위에 sororité 라는 프랑스어가 쓰여 있었다. 여성연대, 여성끼리의 단결 이라는 말.

영화에서 여성의 이미지 특히나 범죄에 이용되는 여성의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일단은 '여성연대' 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보는 영화에서 '여성연대'의 공감대로 함께 소통할 수 있으려면 일단은 적어도 여성끼리는 이것이 문제다 라는 인식을 함께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연대의 범위를 점차 넓혀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넓어진 사회적 인식이 법제도의 개편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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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그림자를 한 고양이 - 공황, 오늘도 죽다 살아난 사람들
김진관 지음 / 생각의힘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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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 오늘도 죽다 살아난 사람들

호랑이인 줄 알았던 공황은 사실 고양이였다

 

호주에서 심리상담가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공황장애가 생각보다 흔하고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고 생각보다 쉽게 치유될 수 있는 증상인데 이러한 사실들이 생각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나마 나아진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공황장애'라는 단어가 이제 낯설기만 한 단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가끔 뉴스를 통해 유명인의 '공황장애' 소식을 듣는다. 그러다 보니 조금은 흔한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공황장애' 가 왜 발생하고 어떤 증상을 띠며 어떻게 해야 나아지는지까지는 알고 있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짧고 굵게 공황장애 에 대한 많은 의문들을 해소해 주고 있는 책이었다.

공황발작은 어떤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나는가?

>> 감수성이 높은 사람들은 넓게 잡아 대략 삼분의 일 정도 된다. 소위 순하고 여리고 착하다는 평을 듣는 이들은 대체로 생각이 많고 감정의 여운이 길다. (p. 16)

>> 이처럼 감수성이 높은 사람은 생각이 복잡하고 집요한 탓에 감정의 파고가 크고 여운이 길게 남는다. 감수성이 높은 이들은 낮은 이들에 비해 생리적으로도 각성 수준이 높은 편이다. (p. 17)

>> 감수성이 높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스스로 끌어다 곱씹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감성의 파고가 더욱 거세고 여운이 길다. 쉽사리 가라앉지 않은 긴장 위로 또 다른 긴장을 얹는 상황이 이어진다. 긴장이 누적되면서 신체 안에 생리적 각성이 자꾸 상승하고, 그런 식으로 서서히 공황발작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각성 수준이 한껏 높아진 상태로 지내다가, 어느 날 조금만 더 각성이 상승하면 공황발작이 시작될 것이다. (p. 18)

>> 공황발작을 경험하는 빈도수는 현저히 증가했다. 긴장이 누적되고 각성이 쌓이면서 어느덧 역치 수준의 턱밑까지 도달한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 정도까지 각성이 상승해 있으면, 약간의 자극만 얹어도 쉽게 역치 수준을 넘기게 된다. (p. 21)

>> 공황발작이 뭔지 아는 사람이 그 정도로 없다.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한두 번 겪다가 자연 치유가 되는 사람이 많다는 말도 된다. 처음엔 극도로 무서웠더라도, 반복해서 겪었지만 몸에 아무런 탈이 나지 않으니 '별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 안도할 수 있게 되면 그러다 공황발작이 점화되는 일이 없어지면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자연 치유가 되었다고 느끼게 된다. (p. 22)

생각보다 공황발작을 경험한 사람들은 많다. 스스로 인지해서 치료까지 가는 경우도 있고, 인지하지 못한채 스르르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어느 쪽이든 심각하게 여길 건 없어보인다. 저자는 책을 통해 내내 공황발작 증세를 겪은 사람들에게 안심하라고 알려준다.

공황발작의 증상은 어떠한가?

>> 사실 공황발작 때문에 기절하는 사람은 없다! 단지 각성이 상승했을 뿐인데 우리의 뇌는 눈앞에 위기 상황이 닥친 줄로 착각을 했고, 온몸이 전시 태세에 돌입해서 에너지를 숨 가쁘게 내뿜는다. 그럴 때 자신의 신체 중 좀 더 예민한 부위들이 잘 못 견디면서 탈이 난다. 소화기 계통이 예민한 사람들은 공황발작 때 메슥거림과 구토 증상을 겪기 쉽다. 심장 부위가 좀 더예민한 사람들, 평소에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잘 느끼는 사람들, 억눌려 쌓인 화가 있는 사람들은 가슴 부위의 통증을 호소하느 경향이 있다. 두려움 때문에 불편한 감정을 부인하고 숨기는 성향의 사람들은 두통을 호소하곤 한다. 평소 긴장이 잦고 식은땀을 잘 흘리거나 얼굴이 잘 달아오르는 사람들은 공황발작 때 어김없이 땀을 비 오듯 흘리거나 몸에 열기가 오른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p. 26)

죽을 듯한 위기감으로 다가오는 공황발작이 아닌 사소한 공황발작적 증상들은 사실 살면서 긴장될때 자주 경험했던 상태들이다. 다만 공황발작 이라 함은 이러한 증상들이 좀더 복합적으로 좀더 심하게 겪는 상황인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심해도 되는 이유는,

>> 공황발작은 고작 10분이기 때문이다. 그 상황을 벗어나지 않고 그대로 있어도 어차피 짧게는 2~3분, 길어야 10분 정도 지나면 가라앉는다. 10분 동안의 현란한 증상은 분명 유쾌하지 않다. 그러나 10분을 기다려 주면 된다. 10분만 기다리면 지나간다는 믿음이 확고해야 한다. (p. 30, 31)

아무리 심한 증상도 공황장애로 오는 증상은 최대 10분만 참으면 지나간다. 몸에 어떤 흔적이 남는 것도 아니다. 몸이 어딘가 고장난 것도 아니다. 심리적인 문제이고 몇분 기다리면 지나간다. 그렇다고 공황장애가 올때마다 마냥 참으며 살라는 말은 아니다. 분명 치유하고 편하게 살 수 있는데 긴장할 때마다 공황발작을 겪으며 살 필요는 없다.

>> 공황장애의 극복 과정에 있어서 자동화된 사고를 찾아내 인지하고 검증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며 또한 제일 먼저 할 일이다. '그래, 맞아. 신체의 질벼이면 왜 때와 장소를 가려서 오겠어?' 라는 깨달음이 진하게 가슴을 때려야 치유 과정이 시작된다. 심리상담/치료는 무의식 안의 생각을 의식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다. (p. 37)

일단 안심하라는 말이다. 공황장애는 심각하지 않게 잘 치유할 수 있다.

공황장애 에 대해 걱정을 일단 내려놓고 마음을 편안히 한후에야 좀더 자세하게 알아볼 수 있는 준비가 될 것이다.

>> 공황발작은 아무에게나 이유 없이 찾아오는 게 아니다. 대체 누구에게, 왜, 어떻게 각성이 쌓이고 쌓여 공황발작이 점화되는 역치 수준에 가까워지는가. 몇 가지 고려할 요인은 감수성의 정도, 스트레스의 강도, 그리고 스트레스 기간의 길이 등이다. 감수성이 낮아도 스트레스가 강렬하면 각성이 치솟을 수 있고, 감수성이 높으면 잔잔한 스트레스에도 오래 시달리면 각성이 역치 수준까지 다다를 수 있다. (p. 45)

>> 감정의 강도보다 여운의 길이가 각성을 끌어올린다. (p. 51) 긴장은 회피패도 긴장이다. 의식이 외면해도 무의식은 잊지 못한다. (p. 53)

>> 리더보다 참모가 더 똑똑한 경우가 흔하다. 자신보다 덜 똑똑한 사람을 리더로 앉히는 참모는 흔하지만 덜 똑똑한 사람을 참모로 두고 의지하는 리더는 별로 없다. (p. 56) 공황발작은 리더보다는 참모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법이다. (p. 58)

>> 우울 및 불안에 취약한 기질을 가진, 즉 감수성이 높은 사람은 공황장애를 겪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들은 기질적으로 늘 생각이 무성하고 감정의 여운이 길다. (p. 61)

타고나는 기질로 인해 쉽게 긴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거기에 만성화된 우울 및 불안장애가 있다면 이것은 공황발작으로 나 있는 잘 닦인 도로와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공황장애가 극복하기가 가장 쉬운 심리장애라고도 말한다.

>> 공황발작이 왔던 건 어쩌면 잠시 멈추어 서서 각성이 너무 높아진 채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 자신을 좀 더 돌볼 필요가 있는 건 아닌지, 계속 이대로 살아가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지 점검해 보라고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는 셈이다. (p. 75)

>> 삶은 견디는 것이듯, 모든 심리장애에 대한 심리치료의 핵심도 마찬가지로 '견디면 열린다' 그리고 견디는 힘은 의지와 결심에서 오는 게 아니라 '완벽한 이해와 통찰에서 비롯된다' (p. 83)

공황장애로 심리상담/치유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에 대해 건강보험법에서 10회에 한한 보험금지원을 해주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금까지의 모든 연구와 임상경험에서 밝혀졌다고 한다. 10회안에 공황장애는 치유되는 것으로.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공황장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 공황장애는 다부진 용기를 가지면 잘 맞설 수 있고, 견디는 힘을 가지면 잘 넘길 수 있다. 그보다 나은 방법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완전하게 통찰함으로써 공황발작에 수긍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황발작이 별것 아님을 느끼는 것이 올바르고 완벽한 치유다. (p. 87)

그런데 저자의 경험에서 깨닫게 되기도 했고 다양한 연구결과에서 밝혀졌듯이 공황장애는 단독으로 오지 않았다고 한다. 공황장애는 독립된 하나의 심리장애로 간주되지만, '하나의 증상' 으로 여겨야 할 만큼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사람들은 공황장애 단독으로 진단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고한다.

>> 왜 공황장애만 단독으로 가진 사람이 드물까? 혹시 공황장애가 일차적 원인이고 나머지 다양한 심리장애들은 이차적으로 갖게 되는 건 아닐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공황장애는 심리치료를 통해 상대적으로 가장 빨리 치유되고, 공황장애가 완치된 후에도 다른 심리장애들은 거의 대부분 치유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즉, 다른 종류의 심리장애들이 일차적인 문제이고, 공황장애는 이차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p. 89)

공황장애는 사실 생각보다 별로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공황장애를 치료했다 할지라도 일차적 심리장애가 여전히 남아있다면 공황발작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 이러하니 당연히 공황발작과 밀접한 심리장애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 다양한 심리장애를 세 가지 큰 범주로 나눈 후 하나씩 차례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심리장애는 깊이 또는 심각성의 정도에 따라 정신장애, 성격장애, 그리고 정서장애의 세 가지 범주로 나뉜다. 모두 10가지의 성격장애 가운데 여기서는 공황장애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네 가지의 성격장애만 소개하였다. 그리고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포함하는 정서장애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다룰 것이다. 공황장애를 겪었거나 지금 겪고 있는 독자들은 거의 대부분 어느 한두 가지의 정서장애에 대해 '어, 이건 완전히 내 이야기다' 또는 '이건 나하고 좀 비슷하다' 하고 느낄 것이다. 그렇기에, 정서장애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서는 공황장애를 충분히 이해할 수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p. 92)

공황장애가 정서장애와 밀접하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뉴스에 나오는 공황장애 소식들도 대부분 우울증과 세트로 보도되곤 하는 것을 보면.

>> 정신장애는 성장과정에서의 스트레스로 인한 심리적 갈등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갖고 나온 생물학적, 유전적 소인 때문에 발병한다. 막고 싶어도 막을 수 없다. (p. 96)

대표적으로 조현병 같은 정신장애들은 뇌에 문제를 가진채 타고 나는 것이었다. 심리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초기 증상이 공황발작과 비슷하다 해서 심리치료를 해봤자 소용이 없다. 정신병은 정신과에 가야 한다.

>>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알 수 없는 두려움의 문제다. 성격장애 라는 용어는 이들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 부족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경계션 성격장애는 '정서조절장애'라 불러야 옳다. (p. 108)

본문의 사이사이 이런저런 진단기준들이 있어서 자가테스트를 해볼 수 있는데, 이런 진단기준들을 읽다보면 거꾸로 어떤 증상이 치료가 필요한 병적인 것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 불안한 성향은 아동기에 발달하여 청소년기에 틀이 잡히고 성인기에 들어선 후 더욱 굳어져 간다. 평온하고 느긋한 아동기를 보내면서 이런 성향이 발달할 리는 없다. 이들의 어린 시절은 대부분 온전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린아이가 겪지 말아야 할 일들을 겪었고,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고통에 휘말렸었다. 아동기에 불안을 잔뜩 품은 채 성장하다가 청소년기에 이성이 발달하고 자율성이 늘어나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내면에 가득 찬 불안에 대처하게 된다. 즉 자기만의 방어기제들이 발달하고 다양해지고 깊어지면서 습관처럼 굳어진다. 그러면서 성격의 틀이 갖춰진다. 한마디로 이들은 평온하고 느긋한 시절이 어떠한지 잘 모른채 평생 불안과 싸워온 셈이다. 각성이 낮은 평온한 상태가 어떤 건지 잘 모른다고 말할 수도 있다. (p. 116)

'어린아이가 겪지 말아야 할 일들을 겪었고,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고통에 휘말렸었다' 는 것이 엄청난 학대를 받은 성장기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이것은 굉장히 주관적인 경험이라 타고난 감수성에 따라 고통의 파고가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상처의 깊이도 다를 수 밖에 없다. 그저 무심한 부모이거나 너무 바쁜 부모이거나 성향이 너무 다른 부모자식 사이에서도 '불안한 성향' 은 자라날 수 있다.

>> 그렇게 마음 깊은 곳에 묻인 감정들이 성장하는 동안 사라지는 건 아니다. 잊겠다 해서 잊히는 건 아니다. 의식이 잊어도 무의식이 다 기억한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는데 늘 불안정하다. 어디서 오는지 알 길이 없는 내면의 불안에 자주 직면하게 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항상 대처한다. 방어기제가 하나둘 쌓여서 성격패턴을 형성한다. 그렇게 자신만의 성격이 굳어져 간다. 그리고 그런 성격 패턴이 또 다른 불안을 낳는다. 불안을 피하려다가 불안이 커진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하는지 알 도리가 없다. 이렇게 각성이 쌓여가는데 어느 날 공황발작이 찾아오지 않으면 그게 더 의아할 일이다. (p. 117)

본인이 본인의 불안한 성향을 잘 모르고 살다가도 공황발작이라는 신체적 경험을 하고 나면 그제야 자신이 묻어놓았던 상처를 들춰보게 된다. 어쩌면 공황발작은 성격장애나 정서장애를 알리는 시작인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 감수성은 타고나는 기질이라는 데에는 학자들 간에 이견이 없다. 어느 정도는 배우고 익히면서 키워 갈 수 있고, 그래서 감성 지능을 발달시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타고나는 기질이 잘 변하지 않는다는 데에 동의한다. (p. 139) 청소년기와 성인 초기에 사회불안장애, 일반화된 불안장애, 우울증, 또는 강박장애 등을 겪고 있는 이들은 거의 대부분 영유아기에 '행동억제' 그룹으로 분류된 사람들이었다. 심리학계에서는 감수성이라는 타고난 기질은 세월이 지나면서 쉽게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 것, 즉 노력해서 바꿀 수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p. 140)

뇌의 질병도 타고나는 것이지만 여린 감수성도 타고나는 것이었다. 언제 어느때 터질지 모르지만 늘 발병의 가능성을 타고나는 셈이다. 하지만 알고 대처하면 쉽게 넘어갈 수 있다고 한다. 몰라서 무지에서 비롯된 공포감을 갖지 말고, 무엇이 문제이고 왜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지 알고 나면 그런 증상이 나타났을때 수월하게 대처할 수 있으니 저자는 공황장애의 원인과 증상에 대한 이해를 상식적인 수준에서라도 반드시 알고 있기를 강조한다.

>> 자신의 심리에 무엇이 숨어 있고, 어떻게 발달해 왔고, 무의식중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통찰하고 받아들이면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온 공황장애가 납득이 된다. 그러면 공황장애의 치유는 훨씬 빨라진다. 납득이 된 것만으로도 공황장애는 거의 다 치료된 거나 다름없다. 공황발작이 오면 '그래, 왔구나, 그럴 만도 했지' 생각해 주고, 그저 백 미터 달리기 한번 한셈 치고 잠시 쉬고, 진정이 되면 다시 일상을 살면 된다는 걸 받아들인다. (p. 147)

>> 공황발작이 어느 날 느닷없이, 그저 운이 나빠서 바이러스가 침투하듯 갑작스레 찾아오는 게 아니라는 걸 이해하는 게 치유의 첫걸음이다. 지나온 삶에 큰 굴곡이 없어 보여도, 대인관계가 남 부러울 것이 없이 원만해도, 큰 실패를 경험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잘 나가고 있는 사람에게도 공황발작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이젠 납득해야 한다. 남들 보기엔 잘 살고 있는 당신의 내면에, 아무도 모르게, 자신도 모른채 각성이 차곡차곡 쌓여왔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차려야 한다. (p. 179)

이책은 일종의 예방주사 같은 책이다.

스스로 예민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이유없는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들, 삶의 스트레스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어느날 갑자기 << 몸이 더워지면서 식은땀이 나는 듯하다.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한다. 곧 심장이 사정없이 쿵쾅거리기 시작하고,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이내 호흡이 짧아지고, 어지럽고, 몸에 열이 본격적으로 오르고, 시야가 흐려지면서 주위와 내가 분리되는 듯 붕 뜬 느낌이 든다.(p. 77)>> 라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이 책의 내용들을 생각하며 너무 겁먹지 말고 바로 치유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심리예방서 같았다.

비슷비슷한듯한 이런저런 심리치유서 힐링서들을 읽었는데도 여전히 비슷비슷한 책을 찾아읽고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며 좀더 구체적으로 심리장애문제를 생각을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듯 싶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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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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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가끔은 스릴러 소설을 읽어줘야 한다.

간만에 몰입해서 읽은 이 소설의 마지막장을 덮었을때 왠지 머리가 개운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표지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한동안 바라보았다.

이 작품은 두 부부, 즉 4명의 인물 중심으로 사건이 진행된다.

로이드 와 헨 부부는 한적하고 쾌적한 동네로 이사를 와서 동네 주민들을 위한 파티에 참석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매슈 와 미라 부부를 만났는데 알고보니 서로 옆집 이었다.

헨은 벽난로 위에 놓인 물건들을 훑어보았다. 이상한 조합이었다. 작은 놋쇠 뱀, 나무로 만든 촛대, 자그마한 개 초상화, 불이 켜진 지구본 그리고 한가운데에 트로피가 있었다. 트로피의 은색 받침대 위에는 한쪽 다리를 구부리고 다른 쪽 다리는 쭉 편채 앞으로 칼을 겨눈 펜싱 선수상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헨은 기절하는 줄 알았다. (p. 23)

표지였다.

표지 그림이 이렇게 작품의 내용을 그대로 표현한 것일줄은 미처 몰랐다.

신선했다.

서재로 돌아간 매슈는 신문지로 유소년 체전 트로피를 싸서 빈 상자에 넣었다. 밥 셜리의 라이터, 제이 사라반의 BMW에서 가져온 비아르네 선글라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앨런 맨소가 가지고 있었던, 너덜너덜해진 아동판 <보물섬>도. (p. 29)

아직 사건이 벌이지지도 않았는데 범인은 암시되었다.

대부분 소설 초반에 밝혀진 범인은 범인이 아닌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달랐다. 반전은 범인이 누구냐가 아니었다.

그렇게 범인을 염두에 두고 과거 사건을 역추적하는 동시에 현재 사건이 전개된다.

도서관에서 스스로 책을 고를 수 있는 나이가 된 후로 헨은 늘 음산한 분위기의 책들을 골랐고, 죽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그게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덕분에 고등학교때 어둡고 징그러운 그림으로 몇몇 대회에서 상까지 탔으니까. 하지만 캠던 대학교 1학년 때 첫 조증이 오면서 과도한 자신감과 심각한 불안감 사이를 미친 듯 오가게 되었다. 끊임없이 부정적인 생각을 했으며, 머릿속으로는 쉴 새 없이 죽음과 관련된 이미지를 떠올렸다. 헨은 자살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상상했으며 피가 날 때까지 손톱을 씹었다. (p. 37)

화가이자 동화삽화작가인 헨은 조울증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병원에 입원도 하고 전기치료도 받고.. 여하튼 긴 치료 끝에 지금은 조증은 없이 가끔 우울증만 있는데 이또한 꾸준히 복용중인 약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된지 꽤 오래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충분이 정상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생각했다. 평범하지 않은 기기묘묘한 그녀의 작품들은 볼때마다 섬찟하지만 그녀는 그 그림들이 자연스러웠다. 그녀는 그림이 자기자신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매슈는 <동떨어진 거울>을 거의 다 읽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이번이 세 번째로 읽는 것이리라. 매슈는 역사물은 다 좋아했지만 특히 중세 시대를 다룬 책이 제일 좋았다. 죽음이 만연하고, 생명이 값싸게 다뤄지며, 거칠고 생생한 당시 분위기 때문이었다. (p. 47)

매슈는 고등학교 역사선생님이다. 헨이 몇년 전 일어났던 미제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자신을 신고하면서 두 이웃은 서로 친해질 새도 없이 접근금지신청을 한 사이가 됐지만 매슈는 헨에게 자꾸 끌리는 자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 헨은 자신을 알아보았다. 헨의 그림에서 매슈는 동질감을 느꼈다. 매슈는 헨과 헨의 그림이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과 통할 거라고 여겼다.

경찰도 그를 체포하지 않았다. 매슈는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헨리에타 머주어는 믿을 수 없는 증인이었다. 믿을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가짜 증인이었다.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정신이 이상한 여자, 어떤 면에서는 일이 완벽하게 풀렸다. (p. 199)

어머니의 얼굴은 가면을 쓴 듯 무표정했고, 어떤 모욕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얼굴은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는 증인의 얼굴이었다. 그 일을 겪는 게 아니라 그냥 바라보는 사람의 얼굴. 그게 바로 헨리에타의 표정이었다. 그녀 역시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매슈는 그 순간 그녀가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지금 벌어지는 일뿐 아니라 그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부터 일어났던 일을 모두 알고 있는 듯했다. 헨리에타는 그의 아버지의 괴물 같은 면, 어머니의 나약함과 우아함을 모두 보았다. 스스로 괴물이 되어버린 동생 리처드도 보았다. 매슈가 처음으로 누군가 죽는 모습을 지켜봤을 때 그의 안에서 열려버린 문도 보았다. (p. 200)

헨의 추리를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남편 로이드도 경찰도 아무도. 오직 범인 매슈만이 헨의 말을 믿어주었다. 헨의 과거 병력은 철저히 그녀를 정신이상자로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매슈는 알았다. 헨의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래서 헨에게 모든것을 말하고 싶어졌다.

유일한 증인이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증인인 헨, 헨리에타.

고대그리스 신화속 인물인 카산드라가 생각났다. 트로이의 공주이고 예언력을 가졌으나 저주 받은 예언력이라 아무도 그녀의 예언을 믿어주지 않았던, 진실되지만 거짓으로 받아들여졌던 카산드라의 예언. 그리고 실현된 트로이의 멸망.

헨과 카산드라는 묘하게 닮아있었다.

"나 같은 사람은... 나 같은 욕구를 가진 사람은..."

"당신도 알겠지만 난 누구에게도 솔직히 말할 수 없습니다. 설사 상담사를 찾아가도"

"상담사가 돼달라는 게 아닙니다. 단지 우리 관계가 얼마나 특별한지 설명하려는 겁니다. 난 당신에게 무슨 얘기든 할 수 있고, 당신은 그걸 듣고도 어쩌지 못해요.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생각을 바꿔보면 당신에게도 가치 있는 제안일 겁니다. 당신은 절대 위험하지 않을 겁니다. 난 여자는 죽이지 않아요. 그러니 난 당신도 해치지 않을 겁니다." (p. 234, 235)

매슈와 헨은 기묘한 친구?사이가 되었다.

헨은 호기심을 누를 수 없었고, 매슈는 헨에게 자꾸 솔직해지고 싶었다. 자신을 제대로 드러내고 싶었다.

기괴하면서도 웃기는 일이었다. 진실을 아는 사람은 그녀와 매슈뿐이라니. 매슈는 다른 누구에게도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랬다가는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될 테니까. 헨 역시 다른 누구에게도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아무도 그녀를 믿지 않고, 다들 그녀의 정신병이 도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매슈를 만나야 할지 몰라.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무서웠는데도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매슈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을 들어줘야 할지 몰라. (p. 247)

매슈는 남자만 죽였다. 그것도 바람핀 남자만. 그런 남자들은 지속적으로 여자들에게 상처를 주게 될 것이므로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슈의 살인은 작품 초반부터 등장했지만, 그가 저지른 살인은 잔혹하진 않았다. 그저 일종의 사형집행수 처럼 보였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압니다. 나한테 구세주 콤플렉스가 있고, 세상의 모든 죄 없는 여자를 사악한 늑대에게서 구해주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죠? 난 바보가 아닙니다. 그런 이유도 없진 않아요. 우리 아버지는 괴물이었고, 어머니는 피해자였죠. 그래서 내가 이런 일을 하는 겁니다. 난 당신이나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을 훨씬 더 많이, 훨씬 더 깊게 분석했습니다. 난 나를 잘 압니다.

남자를 해치는 여지보다 여자를 해치는 남자가 훨씬 많습니다. 이건 그냥 사실이에요. 그리고... 그리고 난 절대 당신을 해치지 않을 겁니다. 단지 당신이 여자라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난 압니다. (p. 264)

매슈는 살인을 저질렀지만 늘 논리정연하게 자신을 분석하고 있었다. 아무나 죽이지 않고 죽어야 할 놈만 죽인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자신이 살인범 이라는 것에 죄책감을 갖진 않았다. 늘 이성적으로 생각했고, 헨과의 대화에서도 그랬다.

헨을 제대로 된 인간이라고 인정해주는 사람은 살인범 매슈 뿐이었다.

처음부터 시작된 아이러는 점점 더 타당한 근거를 드러내며 독자가 그럴 수도 있지 않나 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매슈가 비록 살인범이지만 잔인한가에 대해 자꾸 의구심이 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변수가 발생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원래 그렇습니다. 한동안은 괜찮다가 살인을 맛보고 나면 문이 열리는 셈이고, 다시는 그 문을 닫지 못합니다. 적어도 난 죽어 마땅한 남자들만 죽이면서 그걸 통제할 수 있지만 동생은 그렇지 못해요. 동생은 아버지와 똑같습니다. 죄없는 여자들을 해치고 싶어 해요. (p. 312)

매슈에게 열린 문이 동생에게도 열려 버렸다.

그리고 동생 리처드는 늘 헨 을 예의주시하며 관찰하고 있는 중이었다.

매슈와의 대화를 통해 헨은 남편 로이드의 감춰진 모습을 깨닫게 되고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매슈를 '나의 곰 아저씨' 라 부르며 믿어왔던 아내 미라는 그동안 자신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매슈의 감춰진 부분들을, 하지만 언젠가부터 눈치챘던 부분들을 이제 인정해야 될 때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때 사건이 터저버렸다. 미라가 매슈를 만나러 가고 있던 그때.

살인사건이 연거푸 발생하고 여전히 헨의 말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뜻밖의 인물이 활동을 개시한다.

뜻밖의 사건이 벌어진 그날, 미라고 집에 가고 있던 그날, 헨의 작업실에 누군가 찾아온다.

잠들었던 그가 깨어났다.

처음부터 드러난 진실이, 거짓에서 진실이 되어 가는 과정 내내 서서히 쫀득해지는 소설이었다.

스릴러 소설다운 반전의 재미도 함께 있는 가독성 좋은 소설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브링 미 백' 이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브링 미 백은 여자 버전이고 이 작품은 남자 버전이랄까.

헨은 싸이코패스에게 매력적인 캐릭터였는지 그녀 주위엔 자꾸 싸이코패스들이 다가왔다. 여자건 남자건 어리건 나이들었건.

그리고 그들은 제정신이고 그녀는 제정신이 아닌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의 정신을 똑바로 부여잡고 끝까지 자신을 지켜냈다. 그녀는 싸이코패스가 되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 또다른 싸이코패스를 만나더라도 헨은 잘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Before She Knew Him 그녀가 그를 알기도 전에' 라는 원제 뒤에 어떤 말이 어울릴까 문득 생각해보았다.

그녀가 그를 알기도 전에 ... 그는 그녀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그를 알아보았을때 그는 그녀를 잡을 수 없었다.

ps. 이 책에서 가장 서늘했던 부분은 호밀밭의 파수꾼 은 언급한 부분이었다. 최근 읽었던 '호밀밭의 파수꾼'을 나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싸이코패스에게 이 책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읽고 나니 어찌나 공포스럽던지;;;

매슈는 손끝으로 책등을 훑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열세 살 때 그를 구원해 주었다. 그 책을 읽은 후에야 비로소 부모와 세상 전반에 느끼는 분노가 잘못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p. 318)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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