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1
이수정 외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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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 발생할때마다 마이크 앞에서 명쾌한 의견 제시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이수정 박사, 씨네21 기자를 넘어 영화 관련 다양한 글과 말을 통한 활동을 하는 이다혜 기자, 이 두 사람의 이름을 내건 책이라는 것만으로도 관심이 가던 책이었다.

"범죄를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는 매체는 관심 없습니다. 여성이나 아동 같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범죄 영화를 다룬다면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3만 구독자가 열광한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이 탄생했다

네이버 오디오 클립 의 한 프로그램으로 기획되면서 이수정 박사에게 섭외연락이 갔을때 이수정 박사가 말한 답변으로 프로그램의 지향점은 보다 명확해졌다. 그렇게 탄생된 프로그램은 첫번째 방송이후 바로 출판사들의 출판제의를 받게 되었고, 방송을 거듭하며 구독자들의 아픔과 성장을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영화 이야기가 더 재미있을 것 같고,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이라면 사회적인 이야기 쪽이 생각할 거리를 더 많이 제공해서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p. 7)

영화 이야기 이므로 당연히 영화가 중심 소재이고, 영화 중에서도 범죄 영화 이야기 이므로 마냥 편한 마음으로 즐길 수만 있는 영화들이 아니었는데다, 내가 본 영화보다 안본 영화들이 더 많았던지라 책이 잘 읽힐런지 걱정이 됐었지만, 괜한 기우였다. 영화 스토리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항상 먼저 제시되었고, 영화 스토리 전체 보다는 영화속에 숨겨진 폭력과 범죄의 의미를 찾는 두 사람의 대화는 영화보다는 사회문제로 생각의 방향을 잘 잡아주고 있었다.

1부 왜 피해자가 집을 나가야 하는가 - 가정폭력 : 가스등, 적과의 동침, 돌로레스 클레이번

2부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순응한다 - 비판 의식 결여 : 사바하, 컴플라이언스, 곡성

3부 이 문제가 곧 내 문제일 수 있다는 연대의식 - 성범죄 : 미저리, 걸캅스, 살인의 추억

4부 만만한 계급을 향해 화풀이하는 경향 - 계층 문제 : 기생충, 숨바꼭질, 조커

5부 결국 가장 중요한 의제 강간 연령 - 미성년자 보호 : 번지 점프를 하다, 꿈의 제인, 믿을 수 없는 이야기, 팔려 가는 소녀들

주제들 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는 답답함과 무거움을 안겨주지만, 외면한다고 사라졌다면 진작 사라졌을 텐데, 사라지기는 커녕 오히려 점점 더 위세를 떨치고 있는 문제들이기에 꼭 읽어야 할 책이었다.

영화적 은유를 현실적 법실현으로 분석하고 유사한 범죄 사건들의 원인과 결과를 알게되는 내내 씁쓸하고 막막한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현실이 나아진 것이라는 점또한 확인할 수 있어서 그렇다면 앞으로는 좀더 나아지게 우리가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가정 폭력으로 보기에 경미하다고 판단되면 가정 폭력 처벌법의 적용을 받는 가정 보호 사건이 되는데, 이 경우에는 '반의사 불벌죄'가 적용됩니다. (p. 35)

친족에 대한 범죄 통계는 산출되지만 그것을 세분화하여 부부 간에 얼마나 폭력이 일어나는지는 현재의 통계로는 산출할 수 없습니다. 애당초 입력 자체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찰에서 사건이 입건이 되면 전산상에 입력을 해야 하는데, 그 전산 항목에 부부라는 항목이 아예 없습니다. 놀라운 일이죠. (p. 38)

더군다나 아내를 폭행해서 죽이면 살인죄가 적용이 안 되고 치시가 적용 됩니다. 한국에서 한해에 몇 명이 남편에게 맞아 죽는지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p. 39)

현재 한국 가정 폭력 처벌법의 기본적인 목적은 가정을 보호하는 것이지 피해자의 생명권 보호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반의사 불벌죄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p. 40)

또 다른 문제는 분리를 시키는 방법 자체입니다. 한국에선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집을 나가야 해요. (p. 42)

한국에는 (아내가 남편을 살해했을 때) 정당방위가 인정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습니다. (p. 58)

만약 피해 여성에게 딸린 자녀가 남자아이이면 쉽터도 어렵습니다. 그런 경우, 경찰에서 나온 피해자 돌봄 요원이 정해준 여관이나 모텔 증에 가서 자야 하는데 어쩌면 여관이나 모텔이 더 위험할 수도 있거든요. (p. 74)

가정 폭력이 있었을 때 신고를 해도 다시 그 폭력의 현장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피해자라면 남편의 처벌을 마냥 요구할 수만은 없게 되고, 그렇게 '반의사 불벌죄' 에 의해 남편은 다시 돌아온 가족에게 또 폭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되는데, 가해자에게 퇴거 명령을 내리는 법규정이 없으므로, 어렵게 도망을 나오더라도 피해자는 갈 곳이 없다. 수년을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내를 죽이면 남편은 의도적이 아닌 욱 했던 사건으로 살인죄가 아닌 치사죄가 적용되여 형량이 미미하지만 그런 아내가 남편을 죽이면 의도적 살인이라 하여 살인죄가 적용되 무거운 형량을 선고 받는다. 폭력적인 가정은 깨는게 차라리 낫다. 일단 가정은 지키고 봐야 하지 않냐는 안일한 사고방식이 여전히 가정 폭력에 엄벌을 처하지 않는 근거가 되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굉장히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해 가고 있습니다. 가해자라도 그간의 피해 내력 같은 것들을 좀 더 많이 고려하여 양형 판단을 하는 사례들이 최근에 늘고 있는 추세이고요.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살피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p. 82)

정해진 법 틀 안에서 바람직한 방향성의 법해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제대로 된 법 개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은 친권을 마치 하늘이 내린 권리인 양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영미권 국가에서처럼 친권을 쉽게 제한하거나 박탈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아이들은 학대 방임 가해자들한테 다시 돌아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쉼터나 장기 쳬류 아동 보호 시설을 좀 더 많이 만들 필요도 있습니다. (p. 105)

우리의 경우 랜덤 채팅 앱이나 음란물을 만드는 업체에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없게 되어 있어 모든 일이 사용자들의 책임이 되어 버립니다. 예를 들어 음란물 거래로 돈을 번 웹하드 업체 대표 양진호는 징역형을 받았는데, 업체 자쳬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성황입니다. (p. 139)

여성이 범죄의 피해자가 된 많은 경우에서 피해를 당한 여성도 피해를 알면서도 방관한 주변 사람들도 모두 대단치 않더라도 권력의 형태를 띤 존재에 순응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순응적인 비판의식이 결여된 태도는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남자는 원래 그런 식으로 구애하는 존재, 여자는 원래 속마음은 '예스'이면서도 '노'라고 말하는 존재로 취급하면서, 결국 살아 있는 사람의 진술에 의해 실제로는 애인도 아니고 부부도 아니었던 피해자가 억울하게 파트너로 둔갑해 버리는 사건이 한두 건이 아닙니다. (p. 173)

이 문제가 곧 내 문제일 수 있다는 연대 의식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결코 일부 여성 또는 일부 남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피해자를 외면하는 것 자체가 가해 행위의 연장선상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에는 무심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들이 오늘날 디지털 범죄의 만연을 조장하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합니다. (p. 191)

'야동'이라는 말도 많이 쓰는데, 야한 동영상이 아니라 성 착취 동영상이라고 표현한다면 TV예능 프로그램에서 야동을 보네, 좋아하네, 이런 말을 대놓고 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몰카라는 용어는 피해자에 대한 인권 침해를 유희처럼 만들어 버립니다. 그 용어의 연장선상에서, 앞서 언급했던 리벤지 포르노도 사실은 포르노가 아니죠. 상업화된 것만 포르노라 부를 수 있는 것인데, 분명한 불법 동영상을 포르노라고 부르는 데다 그 앞에 리벤지라는 말까지 붙여 버림으로써 사실을 왜곡해버립니다. (p. 192)

많은 국가들에 아동 유인 방지법이 존재합니다. 미성년자들을 유인하는 것 자체가 범죄잖아요. 그러나 한국에는 현재 그 같은 아동 유인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법률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뿐인가요, 한국은 아직 스토킹 방지법도 없죠. 그러다 보니 그런 법의 빈틈을 틈타 범죄가 곰팡이처럼 마구 번져 나가는 겁니다. (p. 195)

허위 자백을 한 대다수의 사건들을 보면 용의자가 고아나 지적장애인, 신체장애인이나 미성년자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p. 216)

스토킹, 디지털 성범죄, 가혹행위를 동반한 자백에서 이용당하는 약자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법도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데 일상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이 이미 폭력적 의미를 담고 있음을 우리는 자각하지 못한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에 더더욱

여성들은 함께 생각하고, 공감대를 느끼고, 자매애를 형성하고, 상호 부조를 해야 합니다. 옆에 있는 여성의 존재 자체가 부조가 된다면, 피해자들이 혼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될 겁니다. (p. 201)

우리는 결국 연대하기 위해서 지금 이 방송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p. 227)

여성을 상업적 관점에서 보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여성만 하는 것보다 남성들과 함께 할때 더 시너지효과가 클 것이다. 연대는 여자끼리 뭉치자는 말이 아니다. 공감대의 형성은 사회적 기반으로 자리잡을때 변화를 만들어 낼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

현재 한국 형사 정책의 목적은 예방이 아닙니다. 불법적인 랜덤 채팅 앱 업체에게 책임을 묻고 손해 배상까지 청구할 수 있도록 법적 책임을 명기해야 하는데, 현실은 아직 스토킹 방지법도, 아동 유인 방지법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착취해 금전적인 이득을 올린 불법 채팅 앱 업체들은 IT재벌이 됩니다. (p. 321)

미디어나 언론 보도에 대해 다룬 책을 보면, 중산층 가정의 위기를 다룬 뉴스가 가장 반응이 좋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뉴스를 소비하고 여론을 주도하는 계층 또한 중산층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도둑, 강간, 강도 사건이라 해도 중산층 가정이 몰려 있는 주택가에서 일어나면 훨씬 더 심각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집니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하층 계급의 범죄가 더 잦고 피해가 크다 해도 그들의 이야기는 뉴스로서의 가치는 현저히 낮습니다. 그들은 뉴스를 봐야 할 시간에 노동을 하거나 육체적으로 너무 고단해 휴식을 취하거나, 그조차도 여의치 않은 주거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p. 322)

피해자다움에 대한 반응을 보면 우리 사회에 성폭력에 대한 몰이해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알게 됩니다. (p. 347)

미국에서는 16세 미만의 경우 아무리 합의된 성관계라 해도 성폭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강간을 당한다' 라는 표현이 성립됩니다. 하지만 한국은 의제 강간 연령에 의거해 만12세까지만 보호를 하다 보니 13세 부터는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성매매 청소년으로 처벌받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p. 368)

미국은 법을 만들어서 법에 위배되는 것들은 예외없이 처벌하고 있는데, 우리는 민간을 체재하는 법률을 만드는 데 항상 논란이 있어서 민간의 자발적 의지, 자율 통제를 우선으로 합니다. 입법을 하지 않고 자발적인 자유 권한을 주는 바람에 오히려 아무것도 제재되지 않고, 업체는 빠져나갈 구멍만 생긴 셈입니다. 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제재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p. 386)

가정폭력, 성범죄 등 하나같이 모두 엄벌을 처해야 할 사건들이지만 특히나 미성년자 관련 성범죄 부분에서는 법제도 보완이 시급해 보였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벌어진 폭력사건이 뉴스에 등장할 때마다 소년법 개정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대다수의 사람 중에 나또한 포함되 있었다. 그런데 그 배경에는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가출팸과 성범죄의 연결고리 속에 탄생한 새로운 폭력문화가 있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도 물론 심각한 문제이지만, 그래도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면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부터 처벌규정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피해를 입는 아이들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 일이라고 생각해야 그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사회 전체가 노력할 수 있습니다. 그런 피해를 입었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고요. 범죄자들이 나쁜 것이지,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나쁜 것은 아니니가요. 그 피해자들이 미성년자인 경우엔 더욱 그렇습니다. (p. 389)

표지에 보라색 필름의 물결이 넘실거린다. 그 밑에 쓰여진 작은 단어들을 보았다.

ni una menos 단 한명도 잃을 수 없다 는 아르헨티나 말, pedophile 소아성애자 와 femicide 여성증오범죄 그리고 중국어 일본어 등 다양한 언어로 쓰여진 단어들 가장 위에 sororité 라는 프랑스어가 쓰여 있었다. 여성연대, 여성끼리의 단결 이라는 말.

영화에서 여성의 이미지 특히나 범죄에 이용되는 여성의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일단은 '여성연대' 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보는 영화에서 '여성연대'의 공감대로 함께 소통할 수 있으려면 일단은 적어도 여성끼리는 이것이 문제다 라는 인식을 함께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연대의 범위를 점차 넓혀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넓어진 사회적 인식이 법제도의 개편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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