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랜드 - 심원의 시간 여행
로버트 맥팔레인 지음, 조은영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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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하는 데만 6년이 걸린 이 책 [언더랜드]는 물질, 신화, 문학, 기억, 그리고 대지에 존재하는 지구의 방대한 지하 세계를 탐험하면서

주제에 따라 지면 아래에서 형성된 울림, 패턴 연결의 네트워크로 확장해나간다. (표지 날개 中)

'언더랜드' 라는 책 제목을 봤을때 땅 아래 세계에 대한 과학적 혹은 역사적 책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어쩌면 고고학적 이야기와 지질학적 이야기를 기대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읽고나니 무어라 특정지을 수 없는 책이었다. 지표면 아래 뚫린 다양한 구멍들을 탐사하는 탐험기이자 지구의 생명을 생각하게 하는 자연다큐이자 문학적 은유들이 넘쳐나는 논픽션인 글들은 읽을수록 놀라웠고 묘한 매력에 빠져들게 했다.

경관, 기억, 장소, 자연에 관한 저술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저자는 세계적 자연 작가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폭넓은 사유를 글에 녹여 내고 있어서, 단순히 재미가있다or없다 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어떤 경지를 느끼게 해준다. '언더랜드' 라는 물질적 실체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줄 알았는데 아득한 심원의 시간이라는 비실체적 무언가에 대한 경험을 하고 있는 듯한 오묘한...

언더랜드에서는 소중한 것을 지키고 유용한 것을 생산하고, 해로운 것을 처분하는 세 가지의 과제가 문화와 시대를 아우르며 반복된다.

은신처(기억, 소중한 물건, 메시지, 연약한 생명).

생산지(정보, 부, 은유, 광물, 환영).

처리(폐기물, 트라우마, 독, 비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는 두렵기에 버리고 싶고, 사랑하기에 지키고 싶은 것들을 언더랜드로 가져갔다. (p. 16)

땅밑 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땅속에 남긴 인간의 흔적 중 가장 오래된 것이 무엇일까? 인위적으로 땅을 파헤치고 다시 덮는다는 것은 '매장' 이다. 인간이 땅속에 소중한 것을 묻었다면 자연이 땅속에 묻은 소중한 것은 돌이다. 지하동굴에서 저자가 만난 돌은 억겁의 시간을 켜켜이 흡수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인간이 갈 수 있는한 최대한 깊이 파고들어간 땅속에서 과학자들은 천체물질을 연구하고 있기도 했다.

빛과의 상호작용 일체를 거부하고, 심지어 존재 여부조차 확실치 않은 이것에 붙은 이름은 '암흑물질'이다. 젊은 물리학자가 암흑물질을 연구할 수 있는 장소는 지하 900미터 아래에 암염, 섬고, 백운석, 이암, 미사함, 사암, 점토와 표토층으로 차단된 이곳 언더랜드 뿐이다. (p. 65)

우주 탄생의 숨소리를 들으려면 우주에서 가장 조용한 땅 밑으로 내려와야 한다. (p. 69)

과학은 자연과학적 구분이었던 지질학시대에 '인류세' 라는 현시대를 생성해넣게 했고, 이러한 과학의 발달은 언더랜드와 연관지어 생각했을 때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앞으로 닥칠 사물의 역사는 어떨까? 우리 미래의 화석은 어떤 형태일까? 인간은 세상을 빚어내는 능력을 크게 키웠으므로 자신이 빚어낸 것들의 오랜 사후 세계에 더 큰 책임이 있다. 인류세라는 말은 면역학자 조나스 솔크가 말한 기억하기 쉬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좋은 조상인가?' (p. 89)

이 책에서 유일하게 언더랜드의 어둠을 밝혀주는 것은 '언더스토리' 다. 하지만 이 언더스토리에도 인간의 해석은 자연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숲을 협동체제로 여겨하고 숲의 지혜라고 할만한 공동의 지능이 있어 늙은 나무가 어머니 역할을 양육한다는 해석은 인간의 자원재분배적 시각으로밖에 나타내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언더스토리는 그 이상이다. 자연이 늘 인간 이상의 존재이듯이.

하층식생, 영어로 언더스토리understorey는 숲 지붕과 숲 바닥 사이에 사는 생물을 부르는 산림학·산림생태학 용어다. 곰팡이, 이끼, 지의류, 관목, 묘목들이 이 중간층에서 경쟁하고 번식한다. 그러나 은유적으로 '언더스토리'는 서로 뒤엉켜 나무와 숲에 문화적으로 다양한 생명을 부여하는 언어, 역사, 사상, 그리고 그들이 얽히고 설켜 날로 풍성해지는 이야기들을 모두 포괄한다. (p. 106)

인간은 늘 자연에서 많은 힌트를 얻어왔지만, 언더스토리에서도 인간은 자연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숲의 땅속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균류의 관점을 본받아야 한다.

지금까지 역사를 진보와 발전의 과정으로 서술하는 방식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역사의 개념 자체가 바귀었다. 역사는 더 이상 앞으로 날아가는 화살, 또는 자기 교차 나선으로 형성된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사방으로 갈라지고 또 합쳐지는 일종의 그물망 조직으로 보는 게 나을 것이다. (p. 114)

'종의 외로움'. 우리가 지구로부터 이 지구를 함께 나누어 쓰고 있는 다른 생명을 빼앗으며 스스로 빠져드는 지독한 외로움을 나타내는 말이다. 우드 와이드 웹에서 찾아낸 의미 중에 인간 세계에 적용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건 우리가 위태롭고 해결되지 않는 세기를 향해 나아갈 때 우리를 구할 수 이는 것은 협업이라는 사실이다. (p. 125)

하지만 인간이 협업으로 땅속에 구현한 것들은 그닥 좋은 결과들로 보이진 않는다. 뭔가를 캐내거나 뭔가를 묻거나 그 어느쪽도...

석회암지대의 채굴로 만들어진 지하의 카타콤은 채석이 끝나자 땅위에서 한계에 다다른 묘지들의 뼈를 모아 넣는 공동무덤이 되었고 지금은 은밀한 취미를 가진 카타필들의 탐험공간 되었다. 하지만 번성한 파리도시 아래 텅빈 지하도시가 있다는 것이 나는 왠지 위태롭게 느껴졌다. 어쨌든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다.

별이 뜨지 않는 강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화와 함께 흐른다. 이 강은 망자의 강이다. 레테, 스틱스, 플레게톤, 코키투스, 아케론이 모두 지상 세계에서 언더랜드로 흐르는 강이다. 이 다섯 개의 강이 하데스의 어두운 심장에서 합쳐져 거대한 물줄기가 된다. (p. 191)

고전문학이 어둠 속으로 흐르는 강을 받아들인 이유를 지질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 작품들의 배경이자 작품을 집필한 경관의 대부분이 카르스트 지형이다. 카르스트라는 말은 슬로베니아어의 크라스에서 온 것으로, 물에 녹는 바위와 광물이 용해되면서 형성된 지형을 말한다. 주로 석회암 지대이지만 백운석, 석고 등도 해당한다. 카르스트는 언더랜드에서 많이 볼수 있다. 카르스트에서는 메마른 바위에서도 샘이 솟고 골짜기는 통제되지 않으며 강은 어느 한 지점에서 사라졌다가 다른 지점에서 다시 나타난다. 이런 곳에서는 같은 강이라도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p. 192)

환경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문학엔 그런 환경이 환상적으로 묘사되곤 한다. 고대문학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신화적 배경들을 지형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또다른 재미가 있었다. 이 '별이 뜨지 않는 강'에 대한 탐구는 멈춰진 적이 없는 것 같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도 태양이 비치는 의식 세계 아래의 심리적 언더랜드를 탐구한 책이라는 것을 보면... 무엇보다도 종교와 결합되었을때 그 신비로움은 더했다.

과거에 동굴안에서 신비로운 종교의식이 있었다면 지금 동굴의 신비스러움은 동굴탐험가들을 불러모은다. "산이 거기에 있어" 산을 오른다는 산악인처럼 "거기에(지도에) 없어" 동굴에 들어간다는 이들이 있다. 이런 탐험가들이 예기치 않게 동굴에서 목숨을 잃기도 하지만 동굴은 그 은밀함 때문에 잔인한 처형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저자가 탐험한 동굴의 어둠은 과거를 보여준 것이라 어쩌면 그나마 나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앞으로 만나게 될 동굴들의 어둠이다. 미래를 어둡게 하는 이 어두움들은 마치 언더랜드의 반격이 시작되는 듯 하다.

어느 날 굉음과 함께 지름 70미터의 원형으로 사막 바닥이 갈라지더니 단 몇 초 만에 바위, 모래, 굴착기를 집어삼키며 심연으로 무너져 내렸다. 공동이 지상으로 이동했다... 천연가스가 매장된 동굴이 무너지면서 유독가스가 지상 세계로 쏟아져 나왔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가스에 불을 붙여 태우기로 한다. 불과 몇 주면 다 태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40년 이상 지난 지금도 그 구덩이는 여전히 불타고 있다. 사람들은 그곳을 '지옥으로 가는 문' 또는 '헬게이트'라고 부른다. (p. 267)

저자는 헬게이트에 들어서기 전에 인류의 평온을 느낄 수 있는 동굴벽화부터 찾아간다. 낮은 회색 구름과 높은 회색 바다 사이에 험준한 암괴와 설원이 그리는 흑백의 긴 띠처럼 보이는 노르웨이 베스트피오르에서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았던 인간의 흔적에 경탄하고 어떻게 이런 곳에 그림까지 그리며 살 수 있었는지 콜헬라렌 동굴에서 먼 과거로의 황홀경에 빠져든다.

바위가 그리지 않은 게 분명한 선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 선을 다른 선이 가로지른다. 그리고 다시 세번째 선이 만난다. 그래, 저기가 맞다. 붉은 댄서들이다. 희미하긴 하지만 틀림없다. 붉은 유령 댄서가 바위에서 뛰어오른다. 또 한명, 여기에도 또 한 명, 십수 명이 더 있다. 여전히 혼령같지만 이젠 존재한다. (p. 301)

이 형상들은 모두 함께 춤추는 유령들이다. 그리고 나 역시 유령이다. 그들에게는 흥이 있다. 우리에게도, 그리고 그들이 이곳에서 함께 춤춰온 수천 년의 세월까지도.

갑자기 나도 모르게 머리가 찡해지더니 가슴과 등이 들썩였다. 나는 울었다. 흐느꼈다. 이 눈물 모양의 협곡에서 쏟아지는 눈물에 몸을 떨었다. 나는 지금 세상과 격리되었지만, 바로 옆에 이 너그러운 댄서들이 있다. 이들에게 오기까지 감내해야 했던 위험과 어려움이 사라지고 기쁨이 밀려와 나는 울었다. 화강암과 어둠 속 깊은 곳에서 놀랍고 어찌할 수 없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으로 흐느꼈다. (p. 302)

저자의 글은 굉장히 서정적이다. 자연을 온몸으로 느낀다. 시간을 온몸으로 체험한다. 저자의 두려움과 고통과 외로움이 글을 통해 전해진다. 그렇게 현재는 심연과 연결된다. 하지만 이제 한치앞도 제대로 보려하지 않았던 인류세의 어둠이 몰려온다.

로포텐과 베스터랄렌 제도 해역의 원유 개발에 대한 논쟁은 지난 15년 동안 계속되어 왔고 노르웨이의 영혼을 위한 투쟁이 되었다. 판돈은 크고 양쪽의 힘은 팽팽하다. 한쪽에는 오일 머니로 기름칠한 국가기구와, 오일 문화에 빚을 지고 거기에 뿌리를 내린 인구가 있다. 다른 쪽에는 자국을 녹색 국가로 생각해 자연이라는 현세적인 종교에 헌신하고 지구온난화를 줄이고 기후변화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또한 어업 국가로서 노르웨이의 오랜 정체성을 중요시한다. (p. 322)

깨끗한 바다에서 물고기잡으며 살아가던 때가 분명 있었음에도 지금은 석유없이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시대가 되어버렸다. 석유시추가 시작되면 주변 자연은 폐허가 되어갔다. 그렇게 인간은 여기저기 수천 킬로미터의 터널과 시추공을 뚫고 있다. "이 행성을 진정한 속 빈 지구로 만들고 있다.(p. 338)" 는 저자의 표현에 누가 반박할 수 있을까. 이렇게 뽑아올린 석유로 인간은 무엇을 태우고 무엇을 데워왔던 것일까? 지구는 뜨거워지고 있고 녹지 말아야 할 것들이 녹아내리고 있다.

2016년의 무더웠던 여름에 전 세계에서 빙하가 오랫동안 간직했던 비밀을 드러냈다. 지구의 빙권이 녹으면서 영원히 묻혀 있는 편이 나았을 것들이 지상으로 올라왔다. 러시아의 야말 반도에서 약1만 1600제곱킬로미터의 영구동토층이 녹았다. 러시아의 농업전문가들은 이 지역에서 다시는 어떤 농작물도 자라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전염병 학자들은 북극의 매장지와 얕은 무덥에서 1800년대 후반에 사망한 환자들의 몸속에 있는 천연두, 얼어붙은 매머드 사체에서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거대 바이러스 등 다른 것들이 방출될 거라고 예측했다. (p. 355)

그린란드 북서쪽에서는 묻혀 있던 냉전 시대의 미군기지와 그 안에 있던 유독성 폐기물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언더랜드에서 내가 수없이 목격한 역동성 속에서, 오랫동안 묻혀 있던 골칫거리 역사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p. 356)

묻혀있던 것들이 다시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으리라 예상하고 묻었던 것들이 땅위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소멸됐다고 여겨졌던 탄저병에 생명이 죽어나가고 잊혀졌던 오염물질들이 새로운 문제거리가 되었지만 이렇게 빙하가 녹아내리는 자연재앙을 기회로 삼는 이들도 있었다. 그린란드가 녹으며 광물자원또한 드러났다. 하지만 얼음은 빙하는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지구의 생태계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는데...

얼음은 기억한다. 그것도 자세히, 그리고 100만 년 이상 기억을 간직한다. 얼음은 산불과 해수면 상승을 기억한다. 얼음은 11만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시작될 무렵 공기의 화학적 조성을 기억한다. 또 5만년 전 여름에 며칠이나 햇빛이 비추었는지를 기억한다. 홀로세 초기, 눈이 내린 순간의 구름 속 온도를 기억한다. (p. 364)

깊이 매장된 얼음의 색은 파란색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파란색, 시간의 푸른 빛이다. (p. 365)

얼음이 가진 오래된 기억일수록 회수되기는 어렵고 상실되기는 쉽다. (p. 367)

히말라야 빙하의 감소는 이 얼음 강이 계절에 따라 저장하고 방출하는 물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아시아10억 인구의 생계와 삶을 위협한다. (p. 410)

쌓이는 데는 오래걸리지만 사라지는 데는 순식간인 '시간의 푸른 빛'을 지키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남아있는 언땅에서 여전히 은닉처를 찾고 있는 인간이 묻고자 하는 것은 '핵폐기물'이다.

인간은 천천히, 값비싸게, 기적적으로, 그리고 유해한 방식으로 우라늄을 힘과 동력으로 전환하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이제 우라늄으로 전기를 만드는 법도, 죽음을 만드는 법도 알지만 제 일을 마친 우라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는 알지 못한다. (p. 431)

이 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고안한 최선의 해결책이 매장이다. (p. 433)

언더랜드는 언제까지 인간의 과오를 품어줄 수 있을까? 인간은 어디까지 파헤쳐 들어갈 수 있을까? 지구가 거대한 무덤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인류가 글을 쓰기 시작한 역사는 설형문자가 등장한 이래 고작5000년이다. 우리의 언어 체계는 동적이고 표기체계는 파괴, 왜곡되기 쉽다. 오늘날 세계에서 수메르인의 설형문자를 이해하는 사람은 1000명이 채 되지 않는다.(p. 448)"

위험물질을 파묻어 놓고 (아주 튼튼하게 파묻어놓았다고 자부하며) 위험하다고 표기해놓았다고 안심해도 될까? 지금의 언어가 미래에도 여전히 사용되리라는 것이 허상일수도 있음을 처음 느꼈다. 지구는 언제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고 지구의 움직임은 언더랜드를 어떻게 변형시킬지 모르면서 지.금.은. 괜찮다고 묻어버리고 끝내는 것이 미래를 갉아먹는 행위는 아닐까... 작은 좀벌레들이 나무를 조금씩 파먹고 나무는 그들을 먹이고 키우다가 결국은 나무가 죽는 것처럼...

아이스킬로스의 [아가멤논]에는 '미케네의 망루'로 알려진 부분이 있다. 먼 지평선을 지켜보다가 트로이가 함락되었음을 알리는 화톳불이 보이는 즉시 고함을 지르는 일을 맡은 망루지기에 관한 이야기다. 오랜 감시 끝에 마침내 망루지기는 지평선 멀리 불이 타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 말문이 막혀버려 소리를 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아이스킬로스의 유명한 이미지에서, 망루지기는 '커다란 황소가 혓바닥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느꼈다. 아일랜드 시인 셰이머스 하니의 표현에서 보자면 '망루지기는 자신의 혀가 소를 실은 트럭에서 떨어진 건널판자처럼......죽었다' 고 느꼈다. 인류세를 표현할 때 나는 마치 혀에 황소가 서 있어 경고를 외치지 못하고 위험을 더욱 가까이 끌어들인 망루지기가 된 기분이 든다. 인류세라는 발상이 반복적으로 공격을 가해 우리를 벙어리로 만든다. (p. 392)

저자가 보여주는 언더랜드는 매혹적이었고 거대했다. 그리고 슬펐다. 그렇게 신비롭고 아름다운데 사라지는 것이 너무나 빠르고 너무나 광활해서...

저자가 보여주는 어두운 곳들을 한곳 한곳 읽으면서 사실은 그곳들이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때마다 그곳에 어둠을 덧씌우고 있는 것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때마다 '커다란 황소가 혓바닥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뭐라 말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우리가 인류 이후의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갈 존재에게 무엇을 남길지 이제는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때가 아닐까. 아직은 조용히 참고 있으나 사실은 역동적이고 살아숨쉬고 있는 지구가 제대로 반격할 때까지 인간은 계속 지구를 옥죄기만 할 것인지...

'빙산의 일각'이라는 표현은 언더랜드에도 적용된다. 지금 인간이 지상에서 보고있는 자연파괴의 모습은 '빙산의 일각'이다. 지하는 보이지 않지만 보아야 할 곳이다. 언더랜드 위에 세운 인간세가 무너져 내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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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정신과 의사 - 뇌부자들 김지용의 은밀하고 솔직한 진짜 정신과 이야기
김지용 지음 / 심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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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부자들 김지용의 은밀하고 솔직한 진짜 정신과 이야기

한량 의대생에서 열혈 정신과 의사가 된 김지용의 슬기로운 정신과 생활

 

 

책 이외의 매체를 자주 접하지 않다보니 저자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꽤 유명한 정신과 의사였나 보다.

저자는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줄이고 올바른 정보를 전달할 목적으로 팟캐스트 <뇌부자들>을 시작해 3년 넘게 진행중인데, 이 팟캐스트가 (저자의)예상외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티비 교양프로그램이나 강연회, 타 팟캐스트에 출연하게 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칼럼도 연재하고 책도 이번이 두번째였다.

이러한 저자의 다방면의 활동은 몰랐지만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을 종종 읽는 편이다 보니 제목부터 '어쩌다' 정신과 의사가 됐다는 솔직함에 끌렸다. 그리고 이 '솔직함'은 읽는 내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척 하지 않는 정신과 의사는 저자가 처음인듯 ㅎㅎ

다 알고 있어야만 할 것 같다. 나는 전혀 모르겠는데, 진료실 안팎에서 만나는 이 반응들은 정신과 의사를 인생사의 모든 문제에 해답을 가지고 있는 현자 같은 존재로 기대하고 오해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 잘못된 기대와 오해를 정신과 의사들 스스로 유도한 측면도 없지 않다. (p. 11)

사람들의 뇌리에 정신과는 결국 이런 곳으로 자리 잡힌 것 같다. 삶의 여러 문제에 답을 알려주는 곳. 그러나 가기엔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는 곳. 막상 가보면 기대한 답이 아닌 약을 주는 곳. 나는 정신과의 문턱이 지금보다 더 낮아졌으면 좋겠다. 아니, 더 낮아져야만 한다. (p. 12)

신체적 증상들이 눈에 보이는 다른 질병들에 비해 정신과 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병이라고 해도 믿기지 않고 병이 아니라 해도 믿기지 않는 묘한 의학 분야인 것 같다. 그럴수록 더 제대로 알아야 할 텐데 일반 대중들의 눈에는 정신과를 볼때 특수한 선글라스를 끼고 보는 듯 아직 그 문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아는 것이 병이고 모르는 것이 약이다' 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잘못 알고 있는 편견들이 정신병을 키우고 모르고 있던 무지들이 정신병을 키우는 사례를 자주 접한 저자는 정신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없애는데 앞장서고 있다. 그 패기와 열정에 시작부터 감사한 마음이다.

어쩌다 의사, 어쩌다 정신과 의사가 된 나는 어쩌다 시작한 팟캐스트 <뇌부자들> 활동을 통해 다양한 일을 하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2년 넘게 매주 방송국에 직원처럼 출근하고 있고, 언론사에 정기적으로 글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지금은 두 번째 책을 쓰는 중이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다른 모든 이의 인생과 마찬가지로 내 인생에도 계속해서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길이 나온다. 언제 끝나고, 어떻게 새로운 길로 이어질까. 모른다, 아무도 내게 알려줄 수 없다. 나 역시 진료실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미래를 알려주지 못한다. 그렇기에 현재에,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자고 말한다. (p. 36)

현재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에 숨어 있는 의미, 그것들을 더 잘 알아챌 수 있도록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정리해보려 애쓴다. 이 책을 쓰는 것 역시 그 애씀의 흔적이다. (p. 37)

정신과 의사는 환자에게 철저히 중립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환자의 감정에 동요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너무 매몰차서도 안된다. 그러니 환자를 위한 의학적 정보가 아닌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나 경험담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저자도 진료실에서는 그런 태도를 유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자신이 정신과의사로서 성장한 경험담들을 솔직하게 풀어놓는다. 의사로서의 권위적인 모습보다는 함께 고민하고 발전해나가는 동지적인 모습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정신과 의사는 기본적으로 의사다. 심리 상담을 기대하고 찾아오시는 분도 많지만, 심리 상담사와는 그 역할과 정신 질환을 바라보는 시각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p. 49)

공황장애로 긴 시간 치료를 받아왔지만 결국 부정맥 증상이었음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한다. 긴 상담과 꾸준한 운동으로도 호전되지 않던 무기력의 원인이 우울증이 아닌 갑상선 호르몬 이상으로 밝혀지는 경우도 많다. 정신과적 문제가 하나도 없던 분도 질병이나 수술 등으로 신체 컨디션이 저하될 때, 또는 복용 중인 약물의 부작용으로 환각과 망상을 경험하는 일이 생각보다 매우 흔하다. 그렇기에 정신과 의사가 좀 더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료하려면 정신과학뿐 아니라 전반적인 의학 지식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p. 50~51)

그렇다. 정신과 의사는 기본적으로 의사다. 그래서 심리상담을 기대하고 정신과에 갔다가 짧은 진료와 함께 받은 처방전이 생소하고 왠지 배신당한 것 같은 기분에 화가 나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인 문제가 있다고 느껴졌을 경우 먼저 정신과에 가는 것이 맞다. 정신과에서 다른 신체적 질병이 아닌 심리적 문제임을 확인 받은 후라면 (정신과 진료만으로 상담욕구가 채워지지 않았을 때)심리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바른 순서가 아닐까 싶다.

이 모든 상황이 어려웠다. 내가 상상했던 정신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따듯하고 깊이 있는 상담? 그런 건 없어 보였다. 적어도 내게는 허락된 것 같지 않았다. 나를 포함해 모든 동기가 통과의례처럼 환자에게 맞는 일을 경험했다. 심히 난폭한 사람을 강박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상담을 하던 중에도 비상벨이 울리면 쏜살같이 뛰어가야 했다. (p. 69)

얼마전 큰 인기를 끌었던 '슬기로운 의사생활' 이라는 드라마를 보진 않았지만, 의사들의 성장과 진심을 엿볼 수 있는 드라마라고 전해들었다. 저자가 수능성적이 생각보다 잘 나와서 어쩌다 의대에 진학하고 한량처럼 지내다 유급을 거듭하고 정신차리고 공부에 매진하여 정신과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읽다보면 정신과 의사들이 이렇게 수련받았구나.. 싶어서 좀더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무의식은 언제나 주인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이 속해 있는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분쟁의 불씨를 없애려 한다. 문제는 '의식'과 상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판단한 방식에 따라 노력한다는 데 있다. (p. 92)

너무나 지우고 싶은데, 왜 자꾸만 떠오르는 걸까? 상처는 무작정 덮는다고 지워지지 않는다. 덮어놓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무의식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해결을 도모한다. (p. 98)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정신과 의사들이 쓴 책들은 대부분 환자들의 사례를 예로 들어 그 심리에 대한 분석이나 처방을 해준 내용을 알려줌으로써 해당 책을 읽는 독자에게 위안을 주거나, 그동안의 진료 경험을 토대로 삶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힐링 에세이 같은 책들이었다. 하지만 저자의 책은 자신이 진료했던 환자를 이해하기 위한 저자의 노력과 그러한 사례에 대한 정신과적 정보를 동시에 전해주고 있어서 솔직함에 대한 공감과 동시에 정보적 유용함이 있었다.

함부로 추측하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답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의 마음속에 있다. 그 답을 찾아가는 여행에서 내 역할은 가이드일 뿐 답을 내가 정해선 안 된다. 내담자 스스로 답을 알아챌 때에야 진정한 변화의 힘이 생긴다. 내가 정하고 알려줄 대는 그런 힘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마음속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이드로 동참하는 일이 쉽진 않다. (p. 102~103)

정신과 의사들이나 심리상담가들이나 하나같이 이야기한다. 답은 내담자의 마음속에 있다고, 스스로 알아채야 한다고.

하지만 그런 말들이 와닿지 않을 때가 많다. 답답해서 찾아갔는데 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말이다.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장염이라 진단받고 치료받는다. 머리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뇌진탕이라 진단받고 수술받는다. 하지만 심리에 문제가 있는 듯 하여 정신과에 갔더니 처음부터 답은 내 안에 있었다고 한다면 병이 두배로 얹히는 느낌이니 애초에 넘었던 정신과의 문턱이 아예 벽으로 둘러쳐진 기분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정신과 에서 하는 일중 심리상담은 일부분으로 보인다. 정신과는 정신병을 진단하는 뇌과학적 분야이다. 뇌의 질병은 치료받을 수 있고 나아질 수 있다. 정신과 라고 했을 때 심리상담만 떠올리는 것도 왜곡된 인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여하튼, 저자의 책에서도 심리상담 이야기가 주로 등장하긴 한다. 그리고 이때 상담자와 내담자간의 특수한 관계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그럴수 있겠다 싶어서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환자는 의사 한 사람을 보니까 그 한사람이 특별하고 내가 특별히 생각하는 만큼 상대방도 그랬으면 싶은데 이러한 마음은 의사가 여러 명의 환자를 보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게 하곤 한다.

그렇다. 치료자와 내담자는 서로를 길들이며 특수한 사이가 되어가지만, 분명 한계가 있는 관계다. 진료실에서도 이런 한계를 느끼는 순간을 만나곤 한다. 한계를 알고 시작하는 관계지만, 어쨌든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아닌가. 여러 감정이 오간다. (p. 124)

"그럼 이제 그냥 나가면 되나요? 이게 끝인가요?"

그와 내가 느끼는 감정은 아마도 동일했을 것이다. 뭔가 부족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마음속 깊은 비밀까지 다 털어놓으며 길게 만났던 사람과의 이별 자리 치고는. 그 부족함에 뭔가 어색하다. 마지막으로 악수라고 해야 하나? 혹시 서양에서는 이런 상황에 가벼운 포옹이라고 하는 것이 용납되려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선 뒤 복잡 미묘한 감정을 가리려는 듯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것으로 상황을 마무리 짓는다.

"네, 가시면 됩니다"

나도 꽤 아쉽고 서운하다. 하지만 원래 이런 자리다. 참 특수한 관계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서운하리만큼, 가끔은 서글프리만큼 먼 사이. (p. 130)

감정을 다루지만 감정을 공유하지 않는 사이라는 것을 깜빡할 수 있는 사이, 그런 사이에 대한 인지를 다른 책에서는 잘 다루지 않았던 것 같다. 저자는 자신이 여전히 부족하지만 부족한만큼 노력하는 중이며 그렇게 부족한 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환자와 선긋기를 철저히 하고 있으면서도 부족함을 드러내는 정신과 의사를 만날 수 있는 이 책은 그래서 특별하다. 상담하면서 환자에게 직접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이 책을 통해 환자에게 이해가 아닌 공감을 처방이 아닌 응원을 하고 있었다는 속내를 드러내주는 것이, 그 마음이.

가족관계도 이렇게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는데, 만나자마자 내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해주는 '백마 탄 왕자' 같은 대상은 원래 없다. 있을 수 없다. 진료실에서도 똑같다. 나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누구에게도 완벽한 치료자일 수 없다. 만난 순간부터 특별한 내담자라는 존재 또한 없다.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며 나눈 생각과 감정이 쌓여갈수록, 서로를 길들이는 과정을 통해 내담자와 나는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 간다. 그 살마의 눈물 한 방울, 웃음이 다른 사람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의미를 띠게 된다. (p. 173)

정신과에 와서 상담 치료를 하는 일에는 분명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을 탓하며 넘어가는 쉬운 길 대신, 나와 타인의 마음에 의문을 품고 좀 더 나아지기 위한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들 못지않게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분명 용기 있는 사람이다. 내 마음이 왜 이런지, 다른 사람은 왜 그러는지 궁금하고 답답한 마음에 상담을 받거나 책을 읽고 있는, 그럼에도 아직 혼자라 느끼는 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강한 사람이다. 과거 복습과 예행연습 또한 충분히 했다. 과거의 상처가 어떻든 간에 당신은 이겨낼 것이다. 누군가를 다시 만나는 일, 당신이 시작 버튼을 누르는 것만 남았다. (p. 180)

아이쿠, 이렇게 저자에게 한방 먹을 줄이야. ㅎ

저자가 자신의 책을 찾아 읽을 만큼의 심리상태를 지닌 독자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 저자가 정신과 의사이긴 하구나 싶어달까. ㅎㅎ

스스로 부족하다고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하던 저자가 어느새 이만큼 성장했구나 싶기도 했달까. ㅎㅎㅎ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대상' 이 아니라 '충분히 좋은 대상'이다. '충분히 좋은' 이란 말을 내 방식대로 더 풀어서 이야기해보자면 '군데군데 불만족스럽고 안 맞는 부분도 있지마,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이다. (p. 208)

당신은 당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진료실에 오는, 특히 책을 많이 읽는 이들에게는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기에 혹시 스스로의 부족한 면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지는 않은지 염려된다. 고백하건대, 그들이 꼽은 그 '부족한 면'이 내가 보기엔 단점이 아닐 때도 많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 글의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남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나와 남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미 충분히 좋은 사람이다. (p. 237)

wow 울컥할 뻔 ㅋㅎㅎ

고맙습니다.

친구들, 진료실 안팎에서 만난 사람들, <뇌부자들> 청취자들이 궁금해하며 묻던 이 열정의 정체. 멤버들마다 '열심히 하는' 이유는 제각각 다르지만, 나는 분노가 크다. 정신과 의사가 된 그날부터 자주 화가 났다. (p. 267)

"사람들은 우리가 하는 말을 왜 이리 안 믿을까?"

"그러면서 비교도 안 되게 비싼 가짜 치료법에는 왜 이리 잘 현혹되는 걸까?"

<뇌부자들>은 이 한탄에서 시작됐다. 다들 계속 한탄만 하기는 싫었다. 좌절의 경험이 반복적으로 쌓이며 우리는 확실히 알게 됐다. 정신 질환을 향한 공포와 편견은 '몰라서' 생기는 것이라는 사실. 그러나 일반인이 정신 질환에 관해 모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당연히 모를 수밖에. 정신 질환에 관한 정보나 지식을 최대한 정확하고 쉽게 전달해야,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 점점 줄어야 사회적 편견과 오해를 해소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이 진료실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해 보였다. (p. 273)

정신병원을 향한 환자와 가족들의 공포심, 마음대로 약을 끊음으로써 발생되는 재발의 빈도, 검증되지 않은 다른 치료방법이 횡행하는 현실, 심지어 정신질환이란 없으며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그럴싸한 현혹 등 저자가 정신과 의사가 되자 마자 깨달은 것은 잘못된 상식과 편견들이 치료를 방해하고 더디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에 저자는 분노를 느꼈다.

거기다 기형적이라고 할만한 우리나라 진료의 행태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냈다. 시스템상 국가가 정해준 진료수가에 맞춰 장시간 상담 치료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저자는 기본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제대로 알려져 나가길 원한다.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 질환의 발병엔 생물학적 요인, 심리적 요인, 사회 환경적 요인 세 가지가 모두 작용하는 것이므로 정확한 분석과 진단이 필요하다는 것, 정신 질환은 뇌의 질환이며 그렇기 때문에 약물에 의해 증상이 조절될 수 있다는 너무도 당연하고 과학적인 사실을 부정하는 부류들을 믿지 말것을 진심으로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의 이러한 분노와 열정을 담은 호소가 언젠가는 제대로 전달될 것임을 믿고 있는 저자의 희망이 이루어지길 나또한 응원해본다.

그래도 정신과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이 지난 몇 년간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더 욕심을 내고 싶다. 여전히 만족할 수 없다.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사회 내 다른 영역들의 변화에 비하면 그 속도가 더디고 아직 갈 길이 멀다.

정신과와 정신 질환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자세도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 질환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우린 정상이에요!' 라고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는 것을 넘어, 나머지 사회 구성원들이 그 목소리를 지지하고 적극적으로 지켜줬으면 좋겠다. 시대에 뒤떨어진, 비과학적인, 비상식적인 발언을 하는 이들의 발언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 또한 그 변화에 기여하는 작은 불씨가 되었으면 좋겠다. (p. 325,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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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은 왜 홍대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할까 -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디자인경제
장기민 지음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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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디자인경제

디자인경제로 설명하는 일상 속 고정관념들

 

표지부터 '디자인경제'를 강조하고, 책날개에 적힌 저자의 이력을 보니 산업디자인·공간디자인 등을 공부했기에 '디자인' 관련 책인 줄 알았다. 뭔가 숨겨진 독특한 디자인이라던가, 디자인으로 성공한 사례라던가 하는 식의 디자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디자인 경제학? 디자인 경제학!

이 책의 제목은 이 책의 첫 글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만든 질문이기도 하다.

서울시내를 다니는 지하철의 역 이름중에는 대학의 이름을 딴 것이 종종 있는데, 그 장소들은 꼭 그 대학을 다니는지와 관계없이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번화가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특히 '홍대입구' 역이 그렇다.

저자는 신촌역을 앞마당처럼 사용하는 연세대학생들과 홍대입구역을 자주 드나들면서도 홍대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젊은이들 이야기를 예로 들며 '인식경제학' 의 서두를 연다.

디자인경제학의 인식경제에서는 사물이나 관계에 대한 명시나 규정보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에 따른 결과가 더 큰 경제적 효과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p. 18)

한 번 각인된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우리 각자는 타인에게 지금 어떤 모습으로 인식되어 있는지, 또한 그 인식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 점검해야 할 때다. (p. 19)

이후로 나오는 글들에서 대부분의 소제목으로 '00경제학' 이라고 써놓은 것으로 보아 이 책은 아무래도 경제학 책인것 같지만, 기존의 경제학적인 이론들을 설명하는 경제학적인 경제학이라기 보다는 지금의 현실경제를 설명하는데 있어 임의적으로 이름붙인 비경제학적 경제학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따라서 학문과 상관없이 잡지 읽듯이 칼럼 읽듯이 술술 읽힌다.

현대차가 삼성동 땅을 매입했을 때 삼성은 음향회사를 매입했고 결과는 다르게 형성된 사례로 자신만의 경쟁력을 강조하는 '퍼스널 브랜딩 경제학'

알파벳 없이는 자신들의 언어를 화면상에 표현할 수 없는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은 고유의 한글로 간편하고 무궁무진한 언어를 표현할 수 있다며 '한글경제학'

BTS 나 기생충 등을 예로 들며 '문화 경제학'

디자인을 단순히 외형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코레이션 정도의 개념이 아니라 '의미부여' 개념으로 봐야 한다며 '디자인 경제학'

시작은 아주 미미했으나 엄청난 성공을 거둔 유투브를 예로 들어 '유튜브 경제학'

음료를 주문하면 진동벨을 주는 다른 커피전문점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한 블루보틀의 성공을 이야기하며 '블루보틀 경제학'

중고서점 알라딘 을 예로 '중고서점 경제학'

BTS 의 성공신화를 예로 'BTS 경제학'

소나타 자동차를 예로 '연비 경제학'

감성적인 공간을 중시하는 요즘 세대를 이야기하며 '공간 경제학'

코로나19 검사 때 한국이 개발한 방식을 예로 들어 '드라이브 스루 경제학'

편의점이 물건 판매 뿐만 아니라 택배나 대여등 다른 서비스로 확대하는 것을 예로 '편의점 경제학'

고객에게 각인된 브랜드 이미지를 이야기 하며 '소통 경제학'

스타벅스와 신세계의 협약을 예로 '관계 경제학'

중고물품 거래를 예로 '중고거래 경제학'

디지털카메라 대신 필름을 선택한 코닥의 예로 '선택 경제학'

뉴욕 길거리 쓰레기는 파는 것으로 성공한 사례로 '공감 경제학'

오바마 행정부때 에볼라 사태를 잘 마무리한 사례로 '경험 경제학'

핸드폰을 선택할 때 이제는 통화품질이 아닌 카메라화질로 구매하게 됐다는 예로 경제활동의 목적은 전환(스위치)될 수 있다며 '스위치 경제학'

10의100제곱이라는 뜻의 Googol(구골)로 이름을 정했으나 실수로 구글로 이름이 정해진 예로 '실수 경제학'

스티브잡스의 실패와 성공을 예로 '스티브잡스 경제학'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가 성장하여 영국의 기업들을 합병하고 있는 것을 예로 들어 '리버스 경제학'

IBM 이 컴퓨터 조립을 포기한 것을 예로 '체인지업 경제학'

시몬스 침대의 팝업스토어를 예로 '업데이트 경제학'

소비에 영향을 끼치는 감정표현에 대한 '이모티콘 경제학'

넷플릭스의 성공사례로 '구성 경제학'

다수의 의견에 쫓아가게 되는 군중심리를 예로 '아이스아메리카도 경제학'

골목상권의 성공사례로 '골목 경제학'

콜롬비아의 메데인 이라는 도시를 예로 '도시재생 경제학'

인천시의 루원시티 건설계획을 예로 '지하철 경제학'

신도시 개발 효과에 대한 '신도시 경제학'

다른 커피숍들과의 차별성을 가진 스타벅스를 예로 '스타벅스 경제학'

검색은 네이버 메신저는 카카오를 예로 '독점 경제학'

넷플릭스 서비스를 예로 '넷플릭스 경제학'

마켓컬리 성공을 예로 '마켓컬리 경제학'

세계적 메신저 라인을 누른 카카오톡을 예로 '카카오톡 경제학'

배달의 민족 성공을 예로 '배달의 민족 경제학'

현대카드의 차별적 전략을 예로 '현대카드 경제학'

김치냉장고가 유행하면서 아파트 건축도면에 김치냉장고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을 예로 '디자인믹스 경제학'

등 책을 읽다보면 이런 경제학이 있었나 싶지만 정통 경제학으로서의 00경제학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경제학이 많을리가;;;

그저 지금 현실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이해하기 쉬운 소재들을 사례로 들어가며 그 모든 것들이 경제와 관련이 있다고 참고해보라고 알려주는 것이랄까.

다만 그 경제적 면모들이 디자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고 다른 매체에 실었던 칼럼들을 모은 것인지 중복되는 내용들이 있어서 큰 흐름이 잡히지 않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익숙하던 일상의 많은 것들을 경제적으로 보게 된 경험이었다. 그래서 '디자인 경제학' 이라는 표현 보다는 이 책의 첫 글에서 나왔던 '인식 경제학' 으로 묶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디자인경제학' 이라는 용어 자체가 아마도 저자가 만든 신조어 같고 글들은 어찌보면 저자의 자기개발서 인것 같기도 하여, 자신만의 활동분야를 열심히 개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저자의 앞날을 응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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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재미있는 수학이라니 -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매혹적인 숫자 이야기
리여우화 지음, 김지혜 옮김, 강미경 감수 / 미디어숲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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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마니아가 풀어놓은 흥미진진한 수학적 사고

수론, 도형, 미적분, 확률, 도박이론, 물리학에 응용된 수학,

수학사의 에피소드까지 삽화를 곁들여 흥미롭게 들려주는 수학 이야기

 

 

'수학? 난 아무래도 재미가 없어 ㅜㅜ' 하는 사람에게 '수학! 이렇게 재미있는 걸!! 겁먹지말고 나처럼 즐겨봐!' 라고 저자는 프롤로그부터 신나서 독자를 끌어당긴다. 그야말로 수학을 향한 열정과 사랑이 넘쳐나는 수학 마니아라고 할만 하다. 갑자기 라디오광고에서 자주 들었던 문구가 생각난다. '좋은데.. 진짜 좋은데.. 말로 표현할 수가 없네~' 였던가 ㅎㅎ 저자는 그렇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학이 주는 즐거움을, 수포자가 넘쳐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수학이 재미있음을 진~짜 재미있음을 알려주고 싶어한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매혹적인 숫자 이야기' 라는 부제는 이 책을 설명하는 적절한 표현이다.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수학은 논리와 증명이 완벽하게 성립된 기초이론들이다. 따라서 아직 가설 상태이거나 증명중이거나 하는 수학이야기들은 다룰 수가 없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기초수학을 가르치는 것이지 학생들 모두를 수학자로 키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수학 이야기들은 증명되지 않은 이론들이다. 다시말해 현재진행형 이란 의미다. 그래서 매혹적일 수 있다. 문제는 제시되었는데 답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든 그 문제를 풀어볼 도전의식을 부추길 수 있으므로.

수학자들도 풀지 못한 문제들을 내가 어떻게 푼단 말인가 하고 미리 좌절할 필요는 없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답을 구해보라고 어렵기 그지없는 난제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런 기발한 문제가 있는데 이렇게 과정들이 진행중이다 라고 설명해주면서 수학적 호기심을 가져보는 것 딱 그정도만이라도 공감하기를 바라고 있다. 무엇이든 일단 관심을 가져야 재미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이런 질문 신선하지 않아? 라며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수학적 호기심은 멀고먼 저 옛날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고 보면 수학적 관심은 인간의 원초적 호기심인지도 ㅎㅎ

메르센 소수는 17세기 프랑스 수학자 마랭 메르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그는 메르센 소수를 만든 사람도 아니고 더군다나 메르센 소수를 가장 많이 발견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왜 메르센 소수라고 부르는 것일까? 이런 종료의 소수는 고대 그리스인에 의해 그 존재가 처음 확인되었는데 메르센이 이 소수를 처음 체계적으로 연구했고 작은 수부터 시작하여 257까지의 메르센 소수를 구했기 때문이다. (p. 18)

고대 그리스부터 지금까지 연구중인 숫자가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수학자들의 끈기에 박수!!!

이것은 보석을 캐러 보석광에 가는 것과 비슷하다. 당신은 어떤 지점에 보석이 있다는 단서를 알고 있다. 게다가 당신은 많은 지점에 보석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당신은 쉬지 않고 아래쪽으로 파내려간다. 하지만 반나절을 파도 어떤 것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수학자는 메르센 소수를 '수학의 보석'이라고 부른다. 수학자에게 새로운 메르센 소수를 하나 찾는 것은 예기치 않게 보석을 캐는 것과 같다. 우리가 메르센 소수를 보석이라고 하는 것은 희귀할 뿐만 아니라 주목할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메르센 소수는 완전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p. 23)

메르센 소수는 정말 탄광에서 보석을 캐듯이 긴 시간을 거쳐 지금도 계산되어지고 있다. 현재 밝혀진 메르센 소수는 1천만 자리를 넘어서서 계산량이 방대하다 보니 메르센 소수를 검증하는데 평균적으로 1년에서 3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나마 컴퓨터의 계산능력이 발달했기에 이정도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발견한 하나의 숫자! 정말 보석처럼 여겨지지 않을까?!

수학자들을 고뇌에 빠트린 난제들을 읽다보면 때론 이것이 이렇게 어려운 수학적 질문이 될수 있단 말인가? 하고 신기해질때도 있다.

케이크 하나를 친구와 나눠 먹어야 할때 싸우지 않고 나눠 먹는 방법은? 협소한 통로에 있는 소파를 옮기려는데 코너에 막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경우 이 통로의 코너를 돌아 이동시킬 수 있는 소파의 단면적 최댓값은? 계속 늘어나는 고무 고리위에 개미가 기어가고 있다고 할때 이 개미는 과연 처음 위치로 돌아올 수 있을까?

별것 아닌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뜬금없는 이런 식의 질문들은 엄청난 수학적 추론과정을 도모하게 된다. 엄청나다고 할 밖에는;;;

일반적으로 평면상 볼록 n각형을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점의 개수를 묻는 문제를 '해피엔딩문제'라고 부른다. (p. 65)

세케레시와 클라인은 함께 이 문제를 연구하면서 사랑에 빠졌고 결국 화촉을 밝히게 된다. 이후 짓궂은 에어디쉬는 이 문제를 차라리 '해피엔딩문제'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두 수학자 모두 장수했는데 90년 이상을 살았다. 2005년 두 사람은 한 시간 차이로 잇달아 생을 마감한다. 그래서 그들의 인생은 절대적으로 해피엔딩이라고 불릴 만하다. (p. 66)

어디에서는 로맨스는 가능한 것인가 ㅎㅎ 여하튼 수학문제를 '해피엔딩'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그들을 존경한다. ㅎ

어려운 수학문제들의 설명을 읽다가 만나는 이런 수학사의 뒷얘기는 음식에 감칠맛을 더하는 조미료처럼 가끔은 책장을 쉽게 넘어가게 해준다.

2017년 한국계 미국인 수학자 허준이박사가 콜라츠 추측을 증명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당시에 검증 중이었는데 그 결론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p. 83)

이 증명을 검증받았는지 어쨌는지 결과까지는 모르겠다. 다만, 수학사에 등장하는 난제들에 도전하는 여러 수학자들의 이름중에 한국인의 이름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한국인이 아니라 한국계 미국인이라 할지라도 반가울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아쉽다. 수학상의 최고봉이라 하는 필즈상을 탄 수학자중에도 한국인이 아직 없다. 순수학문이 너무 소외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응용학문들이 발달하려면 기초학문이 튼튼해야 하는데...

1975년 미국의 저명한 과학저술가 마틴가드너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칼럼에 이 오각형 테셀레이션 문제를 기고하여 이 문제는 유명세를 타게 됐다. 놀라운 사건은 마조리 라이스 라는 50대 가정주부가 이 문제를 해결해다는 것이다. 그녀는 고등학생 정도의 수학실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유가 생길 때마다 종이에 이리저리 그림을 그려보았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자신만의 표기법으로 변과 각의 관계를 표시했다. 1977년에 이르러 그녀는 44ㅐ의 새로운 오각형 테셀레이션 모형을 발견했다. 또한 60개가 넘는 서로 다른 기타 다각형과 비단순 테셀레이션 모형도 발견하게 되었다. (p. 98~99)

테셀레이션 모형이라는 것은 쉽게 표현하자면 일정한 규칙적 모양이 반복되는 타일 같은 것이다. 수학적 계산과 공식을 이용해 푸는 방법도 있지만, 수학과 전혀 상관 없이 살아온 (그러나 수학적 호기심은 늘 가지고 있었을 법한) 50대 가정주부가 새로운 해답을 찾아냈다는 것은 굉장히 신선한 사건이다. 자신이 찾아낸 새로운 테셀레이션 모형을 기존 수학자들처럼 변과 각과 그것들의 상관관계 수식으로 풀지 않으면 뭐 어떤가? 수학은 은근 직관과 예감도 통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수학자는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또 다른 테셀레이션 문제인 '아인슈티인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놀라지 마라. 이 문제는 물리학자 아인슈타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독일어로 '하나의 돌'을 의미할 뿐이다. 이 문제는 '비주기적 테셀레이션'이라고도 부른다. (p. 102)

독일어로 'ein' 은 아인 이라고 읽고 1 이라는 뜻이고, 'stein' 은 슈타인 이라고 읽고 돌 이라는 뜻이니 'einstein' 문제라는 것은 아인슈타인 으로 읽고 독일어로 '하나의 돌'문제라는 뜻인데... 세계적 천재학자의 이름이 이런 연결성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읽으니 웃음이 터졌다. 어쩌나... 저자가 알려준 테셀레이션은 기억이 안나도 이제 아인슈타인 이름만 들으면 돌하나 가 연상될것 같으니. ㅋ

그레이엄 수는 64층 화살표 표기법으로 나타냈지만 TREE(3)도 그렇게 표기하려 한다면 필요한 층수는 어마어마하게 클 것이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사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떤 표현, 어떤 표기법을 가져다 쓴들 모두 헛수고일 뿐이다.

나는 TREE(3) 이 수를 굉장히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것의 정의가 이렇게 간단하고 TREE(1), TREE(2)는 단순한데 비해 TREE(3)은 우주대폭발처럼 돌변한 값을 보여주니 사람을 완전히 놀라게 하는 수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러브레터에 'TREE(3)만큼 너를 사랑해!' 등으로 쓸 것을 추천하고 싶다. (p. 118, 119)

읽으면서 좀 어렵다 싶으면 이해가 안되는데로 슬렁스렁 넘기다가 꼭 이런 부분은 눈에 콕 들어온다. ㅎ 수학을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게 된다면 저자의 조언을 실행해보는 것도 ㅎㅎ

'임의의 큰' 과 '충분히 큰'의 개념은 간단하게 들리지만, 그 역할을 얕보면 안 된다. 이런 표현은 수학에서 매우 중요한데 극한개념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한의 개념은 미적분의 모든 영역에서 기초가 된다. 관련 있는 명제를 더 보겠다. 그중 제일 유명한 것이 '골드바흐의 추측'이다. (p. 130)

기초학문이란 기초용어부터 생각하는 방식이 남다르다. 일상적으로 쓰는 말에서도 그 의미와 해석의 범위를 파고든다. '무한' 에 이르기 전에 엄청나게 큰 숫자를 이해하는 여러 명제들이 등장했었다. '임의의 큰' 과 '충분히 큰' 을 문자로 읽을 때와 수학기호로 표현하고 추론하는 것은 굉장히 차원이 달랐다. 그저 엄청나다고 할 밖에는;;;

저자가 알려주는 수학이야기들에서는 수학사적 논제들도 많지만 때로는 게임에서 때로는 자연에서 때로는 물리학에서 이야깃거리들을 찾아낸다. 저자가 중국인이다 보니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60갑자와 오행이 예로 사용되기도 한다. ㅎ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다루는 수학논제들은 이미 밝혀진 과거가 아닌 앞으로 무궁무진해질 풀리지 않은 문제들을 많이 제시한다. 이것은 아마도 수학적 호기심을 가진 이들이 이 책을 읽고나서 도전정신을 가져봤으면 하는 저자의 마음이 표현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 나오는 수학적 기호들과 관련 식들을 완전히 이해하려고 한다면 이 책은 어렵다. 하지만 그런 전문적인 내용들은 그렇구나~하며 넘기면서 저자의 수학에 대한 열정과 응원을 공감하고 난제들에 도전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으면 이 책은 그리 어렵지 않다. 나는 수학을 좋아하는 편이라 수학을 쉽게 알려주는 책은 늘 반갑고 읽고나서도 또다른 더 쉬운 수학대중서를 찾곤 한다. 앞으로도 이 책과 같은 도전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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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타자기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황희 지음 / 들녘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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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기 라는 단어를 보면 왠지 향수어린 기분이 든다. 자판이 익숙해진 시대에 타자기를 쳐본 경험 아니 타자기를 본적이라도 있는 사람이 드물 것 같다. 어렸을때 타자기를 몇번 쳐볼 기회가 있었다. 그야말로 독수리타법으로 한글자씩 톡톡 누를 때마다 종이에 바로 활자가 찍히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손가락에 느껴지는 타격감과 동시에 입체감이 느껴지는 소리가 무척 매력적이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타자기를 사용하는 인물이 나오면 왠지 더 멋있어 보이곤 했다.

기린은 또 어떤 연관일까... 싶었는데 작가가 말한 기린은 내가 아는 목이 긴 그 기린이 아니었다. 상상속의 동물 기린이라... 검색해봤다. 동양신화 속 상상의 동물이라 하면 청룡, 봉황, 현무, 백호 같은 사신도에 그려진 동물들만 알았는데, 백호 자리엔 사실 기린이 더 어울려 보였다. 여러 동물의 모습에서 조금씩 따온 모습의 기린은 비슷하게 상상되어진 봉황, 현무, 청룡 처럼 신화적 다른 이름이었으면 목이 긴 기린과 헤깔리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신비로운 동물이었다.

'기린의 타자기'는 이렇게 과거의 타자기와 판타지적 기린을 묶어 놓음으로써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작품을 읽다보면 스릴러인가? 싶을 정도로 쫄깃한 서사가 등장하고, 액자소설 형식이라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이 등장하기 때문에 소설속 현실과 소설속 가상의 세계를 왔다갔다하다보면 현실과 가상이 자꾸 중첩되지만 결말에 이를 때쯤이면 그 모든 의아함들이 저절로 해소되는 잘 짜여진 작품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성장소설이었다.

"그럼 네 오빠 다시 길 거리로 나 앉아도 돼? 오빠랑 애들도? 엄마는? 엄마 한 달에 당뇨, 관절염 치료비가 얼마나 나오는지 알아? 아버지 암 치료는, 그 비싼 약값은? 네 남편이 병원비 내주고, 약값 대주고 언니 오빠 사업 다 도와주고 이런 큰 집에서 살게 해줬으니까 우리가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거야" (p. 20)

서영이 시댁식구들에게 맞아죽을 뻔 하던 날 겨우 도망쳐 갔던 친정집에서 서영은 시댁으로 되돌려보내졌다. 그렇게 친정집의 제물이 되어 시댁에서 끊임없는 폭력에 시달리던 나날 중에 태어난 남매 지하,지민 에게 엄마노릇도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 여느 날 처럼 남편이 닥치는 데로 집어던지며 폭력을 행사하던 중 서영의 결혼전 아끼던 타자기를 던지려 했을때 지하가 막아섰다. 대신 맞은 지하는 피를 흘리며 집에서 도망쳤다.

입주도우미가 몰래 전해준 물건은 소포였다. 수신인에 나서영이라는 그녀의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발신인은 없었다. 소포 봉투를 찢자 책이 나왔다. 하얀 배경에 무엇인가로부터 달아나는 듯한 여자의 뒷모습이 그려진 표지였다. 표지의 분위기와 제목을 보니 미스터리 소설 같았다. '조용한 세상'이라는 제목 옆에 적혀 있는 작가 이름을 보고 서영은 흠칫했다. 류지하, 작가의 이름이 딸의 이름과 같았다. (p. 35)

딸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채 살던 서영에게 6년만에 딸의 소식을 알게 해준 건 소설 한 권이었다.

타자기는 그때 당선을 축하한다며 친구 우탁이 사준 것이다. 우탁은 서영을 기린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길 좋아했다. 기린이란 '재능이 남다른 사람'을 부를 때 붙이는 이름이며 상상 속의 동물이기도 하기에 우탁의 선물엔 '이 타자기로 네 상상력을 마구 쏟아내길 바란다'는 뜻이 숨겨져 있었다. 그래서 우탁이 보는 앞에서 타자기 위에 네임펜으로 '기린의 타자기-우탁&서영'이라고 적어 넣었다. (p. 38)

소설 속에서 현실의 실명들과 마주치다 보니 소설의 허구성은 점점 사라지고 현실성이 극대화됐다. (p. 78)

자신의 꿈을 잊고 산지 오래였다. 기린의 타자기... 그 타자기가 소설의 제목이 되어 서영에게 왔고 그 소설의 작가가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안 순간, 그리고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모두 자신의 가족을 캐릭터로 활용하며 실명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을 깨달은 순간, 소설 속에 빠져든 서영은 자신이 살아온 현실을 소설로 읽으며 역으로 소설이 알려주는 자신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다시 인식하게 되기 시작한다. 지하는 언제 어떻게 이렇게 어른이 된 것일까...

초기엔 사람들이 순간이동의 순간을 목격하더라도 대부분은 잘못 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하와 이든은 경계심 없이 행동했다. 도시에는 사람의 눈보다 CCTV의 눈이 더 많이 잠복해 있음을 간과했던 것이다. 이제 도시는 CCTV에 파파라치의 눈까지 더해졌다. (p. 51)

이든을 만난 3년 동안 두 사람은 지하의 순간이동 능력을 이용해 전 세계 구석구석을 여행했다. 하루 만에 7개국을 구경한 날도 있었다. (p. 65)

'순간이동자'가 등장한다. 사진을 보고 그 사진 속 장소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은 영화 '점퍼'를 생각나게 했다. 영화 속 점퍼 처럼 '순간이동자'가 된 지하는 사진을 벽 한가득 붙여놓고 그 사진속 장소로 순간이동한다. 그렇게 은행 금고도 다녀왔고 그 돈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던 이들에게 FBI가 수사망을 좁혀오던 순간 한국으로 순간이동한다.

지하는 자신의 입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어금니가 심하게 흔들렸다. 손가락에 힘을 주자 어금니가 쑥 빠졌다. 이든은 지하가 뺀 어금니를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 이, 이거 혹시 순간이동 부작용 같은 거 아냐? 울프 앞다리랑 가슴 사이에 커다란 종양이 생겼어.크기를 보니 그동안 자라고 있었던 것 같아. (p. 155)

시간이 멈춘 것은 바로 그때였다. (p. 172)

순간이동을 거듭하며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지하, 그녀 뿐만 아니라 그녀의 반려견 울프의 몸에도 병이 생겼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시간이 정지하기 시작했다. 부작용인 것일까... 여러 시간대를 옮겨 다니며 치명적 부상을 입는 상황이 최근 봤던 드라마 '더 킹'을 생각나게 했다. 하지만 이 소설엔 평행세계가 등장하지 않는다.

- 노트북에 쓰면 이상하게 쓴 만큼의 문장을 삭제하는 게 쉽지 않아.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 펜으로 쓰면 버리긴 쉽지만 단단한 문장이 나오지 않아. 타자기를 글쇠를 칠 때마다 단어들이 뇌 속에 각인되는 느낌이거든. 초고는 글의 전체적인 플롯을 짜는 작업인데 타자기로 하면 집중이 잘 돼.

- 노트북 화면 속의 문장은 손에 쥘 수 없기 때문에 불안감이 바탕에 깔려 있지. 하지만 타자기는 활자를 찍는 순간, 종이에 남으니 상대적으로 불안감이 덜하지. 그런 요소도 있지 않아?

- 맞아. 컴퓨터의 커서는 인내심이 없어.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듯 1초마다 깜빡이면서 불안감을 줘. 그러니까 쫓기듯 생각을 쏟아내게 만들어. 그런데 타자기는 문장이 끝난 그곳에서 진득하게 기다려주잖아. 충분히 생각하고 다시 돌아와, 그때까지 기다라고 있을게, 라고 말해주지. (p. 165)

지하는 청각장애인이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만큼 다른 감각이 예민하다. 작가를 꿈꾸는 지하에게 남다른 촉각과 시각적 효과를 느끼게 해주는 타자기는 지하의 글을 현실화해주는 매개체였다. 지하가 타자기로 글을 쓰는 부분을 읽으면서 작가들마다 고유한 집필방식이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손으로 쓰는 것을 고수하는 작가도 있고 노트북으로 고쳐쓰는 작가도 있을 터인데 타자기로 쓰는 작가는 여전히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지하는 심하게 불안하거나 화가 나거나 혼자만의 생각에 사로잡힐 때마다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사라졌다 돌아오길 반복했다. 예전처럼 가고 싶은 곳으로 순간이동을 하는 능력은 두번 다시 가질 수 없었다. 대신 예기치 않은 순간에 어딘가로 소환됐고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았다. (p. 189)

한국에서 꿈에 그리던 작가가 된 지하. 첫 소설을 발표하고 독자사인회를 개최하게 된 날 지하는 갑자기 사라진다. 한국에 온 이후 언제부터인가 순간이동능력은 조절되지 않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딘가로 사라졌다 돌아오고 나면 그동안의 시간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울프를 데리고 아침 산책을 나갔다 돌아오니 대표가 보냈다던 책이 배달되어 있었다. [조용한 세상] 20권. 류지하의 첫 장편소설. 그는 자신이 일러스트 작업을 한 표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련하게 깨어나는 새벽의 도시를 배경으로 몸의 절반이 사라져가는 지하를 표현했다. (p. 190)

그 일을 당한 사람이 온라인 어딘가에 글을 올렸을 법한데도 조용하다. 마치 순간이동자 관련 글이 올라오면 자동으로 삭제되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두 사람을 향해 뭔가가 다가오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p. 192)

'아……아 그것이 다시 시작됐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것은 그녀만 알고 있는 비밀경고였다. 201이라는 모스부호가 적힌 카드가 도착하면 그녀에게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p. 228)

이든이 그려준 지하의 첫 소설 표지, 이 그림이 이 책의 표지에 그려진 그림에 대한 설명이었다. 사라져가는 지하... 그리고 사라져가는 지하의 세계...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사건은 시작도 끝도 불분명하고 서로 연관이 있어보이다가도 연관이 없어보이기도 하는데, 지하의 엄마 서영이 읽는 액자소설과 지하가 경험하는 액자세계는 이 책을 덮을때즈음 맞물리면서 현실세계에서 그 빈 구멍들이 이해되어지게 된다.

공포야말로 대부분의 갈등을 해소시키는 강력한 방법이다.

지하는 그 문장을 아주 오랫동안 곱씹었고 공포영화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공포영화들은 내용의 변주는 있어도 결론은 같았다. 주인공이 공포를 극복하는 순간, 갈등이 해소된다는 것. (p. 266)

그런가... 공포영화가.. 그런가...

나는 공포영화를 못 본다. 보고나면 너무 찜찜해서;;; 공포영화들 속에 주인공들이 공포를 극복한 경우가 있었던가... 그런 해피엔딩적 결말이라면 공포영화도 무서워 하지 않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제 에필로그가 남았다. 그녀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어찌되었든 책이 끝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페이지가 줄어들 수록 마치 그녀의 생에 대해 조언하고, 힘을 내라고 응원해주는 가까운 사람이 떠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에필로그 까지 다 보고 책을 덮으면 이제 완전히 혼자가 된다. 아직 에필로그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 서영은 그나마 약간의 위안을 느꼈다. (p. 275)

집 나간 딸이 소설을 통해 전해주는 메세지가 엄마 서영을 다시 살게 하고 있었다. 엄마보다 나은 딸인 셈이다. 그래서 엄마 서영은 이 소설을 덮고 나면 딸의 메세지를 다시 받지 못할 것 같아서 아직 끝까지 다 읽을 수가 없다. 아껴두고 싶은 결말일 수도 있고 보고싶지 않은 두려움일 수도 있지만, 아무리 현실 같은 소설일지라도 소설은 허구이기에 어쩌면 희망일수도 있겠다.

소파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지하는 흠칫했다. 청회색의 큼직한 후드가 달린 롱카디건을 입고 검은색 반장갑을 낀 긴 머리의 여자가 피식 웃었다. 지하는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p. 283)

알고 있다. 카드에 적힌 오늘 날짜.

-서둘러야 할 거야. 돌아가서 엄마와 네 자신을 구해. (p. 285)

마무리되지 않는 지하의 세계들은 이런저런 암시를 주지만 그것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아직 알 수 없다. 평행세계를 연상하게 하기도 하지만 지하는 자신의 세계가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알고 있다. 아직 그 세계를 깨뜨릴 용기가 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때가 왔다. 자신의 세계에서 자신을 '로그아웃' 할 시간이. 그리고 이때부터 지금까지와는 다른 진짜 소설이 시작된다.

백일몽은 겉으로 보기엔 시간을 죽이는 게으른 행동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창조성과 학습의 숨겨진 원천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두 개의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데 일하는 뇌와 백일몽을 꾸는 뇌다. 두 가지는 동시에 작동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일하는 네트워크를 작동시킬 땐 상상에 잠긴 네트워크를 차단한다. (p. 302)

책속에서도 언급되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나도 참 좋아하는 영화다. 열심히 살던 월터에게 갑자기 닥친 시련?!은 그에게 엄청난 여정을 하게 만들고 그 여정들은 상상과 겹쳐지면서 현실로 구체화된다. 그리고 그 현실은 월터에게 커다란 위로를 준다. 영화를 보고 난 나에게도.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소설은 세상에 나갔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다만 소설 속 문장 하나라도 독자들의 마음에 씨앗으로 남길 바랐다. 6년 후 약속한 장소에 어쩌면 엄마는 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6년 후 그날이 모녀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날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p. 397)

6년만에 만난 서영과 지하는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6년후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약한다. 홀로서기는 두 사람에게 모두 필요한 과정이리라.

순간이동의 판타지에 호기심을 갖다가 대물림되는 가정폭력에 분기탱천하다가 살인사건이라는 스릴러에 몰입되다가 어느새 따듯해진 현실로 돌아와 마지막장을 덮게 되는 이 소설은,

여고생 지하가 사회초년생으로 자라는 과정을 함께 하며, 과거 속에 묻혀 살던 서영이 현실로 한발 내딛는 과정을 함께 하며, 두 사람 모두에게 저절로 응원의 마음을 보내다 보면 마지막장을 덮게 되는 이 소설은,

차라리 사라져버리고 싶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이들에게 보내는 작가의 따듯한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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