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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아이 백천수 씨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0
손서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8월
평점 :
마마보이의 유쾌하고도 아슬아슬한 일탈
1만 킬로 떨어진 아프리카에서 보낸 뜨거운 여름
스펙을 쌓으라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해외봉사 겸 영어연수 차 간 아프리카 케냐에서 살해사건에 휘말린 고등학생의 파란만장 스토리 라는 출판사의 책 소개글에 호기심이 확 일어났던 책이었다. 자주 왕래가 있던 나라도 아닌 아프리카에서 부모나 의지할 어른도 없는 고등학생이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된다면 얼마나 혼란스럽고 막막할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처질 정도다.
하지만 이 책은 청소년 소설이고 게다가 내가 예전에 무척 감동깊게 읽은 <컬러보이>의 손서은 작가의 작품이다. 무엇보다 '자음과 모음'의 청소년문학 작품들은 늘 나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주었었기에 이번 작품에 대한 믿음도 남달랐다. 그리고 이 소설 역시 '자음과모음'사의 청소년문학은 역시 마음에 직접 와 꽂히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20xx년 8월 2일 나이로비 뉴스N
나이로비 근교의 한 펍에서 만취한 한국인 10대 두 명이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국제 자원봉사 단체인 '아이러브 발룬티어'의 참가자들로 케냐를 방문한 이들은 카지아도현의 마사이 빌리지에서 어린이를 숨지게 한 후 차를 훔쳐 달아나던 중에 붙잡혔다. (p. 9)
자극적인 멘트의 나이로비 현지 기사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기사 내용이 워낙 충격적이라 헉 싶으면서 시작과 동시에 작품에 바로 빠져들게 한다.
공항 로비를 가득 메운 한국인 단체 티는 우리는 관광을 위해 케냐에 입성하지 않았노라 선언하고 있었으니 지저즈, 러브, 스탠바이갓 등등의 문구로 자신들의 신성한 임무를 드러냈다. 그 많은 인원이 이반 아셰프의 세련된 지프를 지나쳐서 한국인 선교사가 대절한 값싸고 구질구질한 버스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의 머리 한 귀퉁이가 찌릿했다. 세상에. 노다지가 따로 없었다. 저들의 고귀한 스피릿은 아이러브 발룬티어의 사명과 닮아 있었다. (p. 12)
이반 아셰프는 '아이러브 발룬티어' 라는 국제자원봉사단체를 만든 사람이지만 이 자원봉사단체는 비영리기구도 아니고 이 사람은 케냐 현지인도 아니다. 그에겐 여전히 아프리카 땅이 유럽인들의 땅이었다. 과거에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 몰려와 책상에 지도를 펴고 자로 선을 죽죽 그어 자기들끼리 땅따먹기를 했던 그 시절이 물러간지 한참 지났지만 여전히 아프리카는 유럽인들의 여행지, 휴양지였고 그쪽에서 들어오는 돈 없이는 굴러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이반 아셰프는 자신이 인류애에 기반한 관광사업을 운영한다고 여겼기에 가슴에 사랑이 새겨진 인류 전체가 그에게 고객이었다. 어느날 우연히 나이로비 공항에서 목도한 코레안단체팀은 그에게 새로운 기회로 각인되었다.
"한국 시장을 노려 봐야겠어. 아이디어 좀 없나?"
"나이로비에 학원을 세우시든가"
"하건? 그게 뭔데?
"노노, 하건이 아니라 학원이라니깐. 학원은 영어로 대체가 안 되거든. 한국만의 독특한 교육문화라서. 학교 끝나면 뭘 배우러 가는 데야. 그게 다 학원이고. 그중에 제일은 영어 학원이지. 돈 벌고 싶어오? 영어 학원을 세워. 그러면 돼. 한국인들이 사교육비로 쓰는 돈이 연간 한 170억 달러쯤 되지, 아마"
"오! 자넨 천재야. 당장 프로그램을 짜게. 한국 학생들 좀 모아 보지 그래. 처음이니까 현지 숙박은 우리 쪽에서 지원해 주는 걸로 하자고. 단체 홍보도 할 겸. 자네 한국 네트워크를 이용하면 되겠구먼. 오랜만에 힘 좀 써봐" (p. 14, 16)
해리 백은 오래전 선교사로 케냐에 왔다. 하지만 잊지 못할 사건이 있었고 지금은 '아이러브 발룬티어'에서 일하고 있다. 이번 프로그램만 성공시키면 본부로 올라오게 해준다는 이반 아셰프의 말에 머리를 굴리던 그는 십여년 만에 형수에게 이메일을 띄운다.
착한 여행이 유행하면서 미숙씨도 한때 아프리카 현지 여행사와 손을 잡고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적이 있다. 커피 농장 투어, 반일짜리 자원봉사, 빌리지 투어, 소똥집 짓기, 이런 것들은 빤한 관광에 걸린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다가왔다. 많은 이들이 현지식, 지속가능성, 자립, 공정, 착한, 에코, 유기농 기타 등등의 단어에 사로잡혀서 그런 참여가 세상을 좋게 만든다고 착각한다. 미숙씨가 보기에 그들은 착하다는 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착한 건 현상을 어수룩하게 덮는 거다. 그래서 그런가, 요샌 다크 투어리즘이 새로이 떠올랐다. 지난 세기에 인류가 저지른 죄상을 덮지 않고, 들추어 찾아가서 보고 배우겠다는 것인데 이러나저러나 업계 사람이 보기에 궁극의 목적은 모도 돈으로 귀결되었으니 다르긴 뭐가 다르냐. (p. 19)
해리 백의 형수인 미숙씨는 대학 내내 가난한 배낭여행자로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닌 경험이 바탕이 되어 일찌감치 여행사에 취업, 여행지에서 진화한 생활 영어와 발로 뛰는 영업으로 높은 실적을 올렸고, 여행 업계에서 아이디어와 기획이 뛰어나다는 정평을 일찌감치 얻었다. 저가 항공이 막 태동하던 시기에 과감히 회사를 나온 후 투자를 받아 동료들과 이지고를 창립하여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 미숙씨는 직원들에게 근엄한 간부가 아니라 현실적인 멘토이자 돈 잘 쓰는 선배였으며, 학부모 세계에서는 쿨한 맘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미숙씨는 자신의 아들과 서로 간섭안하는 쿨한 사이라며 아들을 천수씨라 부르는 동거인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백천수씨는 그녀의 영원한 '마이넘버원' 이었고 마음에 차지 않는 아들이었다.
미숙 씨의 마이 넘버원 백천수는 밖에서 점심을 먹을 경우 또와 분식집을 이용했는데 그곳 말고 다른 음식점은 안 갔다. 천수는 가는 데만 가고 입는 옷만 입고 먹는 음식만 먹었다. 다른 곳은 낯설고 불편해했다. 호기심도 모험심도 없었다. 식욕 같은 거라도 있으면 메뉴별로 밥집을 훑으며 돌아다닐 텐데 그런 것도 없었다. (p. 21)
여행사를 운영하는 베테랑인 미숙씨가 '아이러브 발룬티어'의 정체가 선진국 사람들의 아프리카 판타지에 자원활동과 빌리지체험을 얹은 전문 여행사 정도로 정의 내리는 데는 타당한 근거가 차고 넘쳤다. 남이 되어 연락끊고 지낸지 십여년만에 받은 시동생의 메일내용은 코웃음치고 바로 휴지통으로 직행했다. 하지만 단 한가지, 천수가 그런 프로그램이라도 체험하면 친구도 사귀고 자신감도 좀 갖게 되지 않을까 싶은 기대가 자꾸만 커져갔다. 미숙씨의 마음이 통했던 것은 아니지만 방학이 오기만 하면 가출하고 싶었던 천수에게도 그 프로그램은 방학이면 더 빡빡해질 학원프로그램을 탈출할 희망처로 보였고 스스로 지원서를 제출했다.
"야, 백천수씨. 그런 건 엄마가 할게. 넌 힐링이나 마저 하셔"
거실 소파에 앉은 엄마는 유명한 스님이 쓴 에세이를 읽으며 구멍 난 마음을 힐링했고, 천수는 구멍 난 학습을 힐링했다. 천수는 대한민국에 힐링이라는 외래종 단어를 처음 들여온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깟 힐링이 문제가 아니었다. 바야흐로 회복기가 오고 있었으니 여름방학이었다. 방학은 자잘한 상처를 치유하기보다 문제의 근원을 잡아내여 수술하기 좋은 때였다. 학습에 병약한 천수를 위해 미숙씨는 대수술을 예약해 놓은 상태였다. (p. 33)
이 시대 학업과 학원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이 읽으면 공감할 대목이 아닐까. 학교 보다는 학원에서 더 많이 배우고 더 먼저 배우는게 언제부터 일상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방학이면 휴가가 아니라 풀타임으로 짜여진 학원계획표를 짜는 것이 평범해진게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공부하라고 하지 힐링하라고 책상에 내모는 미숙씨에게 천수는 한마디 대꾸도 못하곤 했다.
미숙씨는 아들의 처진 눈커풀과 갉아먹은 손톱을 볼때마다 가슴이 따끔거렸다. 어쩌다 저런 못난 자식을 키우게 됐을까. 저걸 스파르타식 학원에 감금한다고 뼛속에 박힌 맹한 기운을 다 뽑아낼 수 있는 건가 말이다. 미숙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고뇌했다.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모두가 단 하나의 트랙 위에서 단 하나의 목표점을 향해 달려간다. 천수 같은 아이도 살아갈 다른 길이 분명히 있어야 했다. 그러나 미숙씨가 알기로 그런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막차라도 잡아타고 끝까지 쫓아가야 했다. 그런 미숙씨에게 난데없이 해리가 괴상한 제안을 한 것이다. (p. 34)
해리 백은 미숙씨의 남편의 쌍둥이 동생이다. 천수가 일곱살일때 헤어진 그 집안 사람들을 생각하면 화가 날 뿐이지만 천수의 앞날을 생각하자니 그 프로그램에 자꾸만 마음이 갔고 결국 자신의 여행사 홈페이지에 대대적인 홍보글을 올렸다. 어차피 천수는 그 프로그램의 수혜를 받기로 내정되 있었지만 그런 내막을 모르는 천수는 스스로 지원했고 홈페이지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이 게시된 순간 예상외로 뿌듯했고 그때부터 이미 없던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빠를 싫어해. 나는 아빠를 닮았어. 엄마는 나도 싫어해. 억지로 키우는 것뿐이야. 그래서 노력했다. 아빠를 닮지 않으려고. 엄마 마음에 들려고. 착한 아들이 되려고. 그러나 결국 그 세계는 터져 버렸다. 빵꾸 났다. 너덜너덜했다. (p. 59~60)
여행 전날 처음으로 크게 엄마와 다툰 천수는 홀로 집을 나와 홀로 공항버스를 타고 홀로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는 내내 뒤를 수시로 돌아보았지만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혼자 외국에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리스 서밋에서 마거릿 패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마거릿은 사교성이 좋아서 사람을 보면 먼저 말을 거는 스타일이었고, 일단 대화를 시작하면 쉽게 끝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가, 몇몇 사람들은 마거릿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면 잽싸게 내뺐다.
마거릿은 특히 아이들을 아꼈다. 마트에서 우는 아이가 있으면 (아이 엄마가 원하건 원치 않건) 자기 돈으로 사탕을 사서 아이의 손에 들려 주었고, 쇼핑몰에서 길을 잃은 아이를 보면 아이 손을 덥석 잡고 아이스크림 가게로 데렸다. 아이를 찾던 부모가 감사의 말대신 마거릿을 신고한 경우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경비가 부모를 뜯어말리며 하는 소리가 패리 여사는 종종 그런다는 것이었다.
최근 들어서는 불행한 10대 아이들이 유난히 눈에 밟혔다. 마거릿은 지폐 몇 장을 건네주고 가던 길을 가는 무심한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그 아이들을 맥도날드에 데려가 마음껏 먹도록 해 주었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엄청난 굉음을 내며 때로 달려오는 모터바이크가 마거릿의 차를 둘러싸고는 배가 고프다고 징징거렸다. 빅맥을 해치운 아이들은 입술에 립스틱을 칠하고 꽉 끼는 셔츠 안에 패드를 넣고 젤 바른 머리를 한껏 치켜올린 다음 모터바이크에 엉덩이를 붙였다.
"근데 왜 웃어? 당신도 저럴 때가 있었겠지. 근데 봐요. 우린 나이들었어. 순식이었잖아. 저때 누군가 얘기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p. 76, 77, 78, 80, 81)
마거릿은 자신의 착한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에 지쳤고 자신을 꼰대라 부르며 놀리던 10대아이들 처럼 일탈을 해보고 싶어졌다. 그때 봉사와 여행이 결합된 '아이러브 발룬티어'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고 남편 존과 함께 케냐로 왔다. 그리고 천수와 (천수가 보기에 엄청난 능력이 있는 아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여고생 고승아 와 한 팀이 된다. 사실 승아는 아기때 외할머니에게 버려졌고 여름방학때 외할머니의 애인과 단칸방에서 지낼 수는 없어서 잘곳을 찾다가 여행사 직원의 호객행위에 이끌려 지원서를 낸 것이 발탁된 경우였다.
"안녕하세요, 리디아에요. 엔젤스 스쿨 1학급 담임입니다. 와주셔서 감사해요. 패리 여사께서는 오늘 저희 반을 맡으실 거예요. 여기서 가장 어린 학생들이죠"
"다른 학급의 선생님들도 제 수업을 참관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이래 봬도 미국 사람이잖아요. 영어 교육은 케냐에서도 물론 중요하겠죠" 뭐, 세계 공용어니까요. 제가 어떤 식으로 강의를 하는지 다른 선생님들도 보고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해서요" (p. 102, 103)
"그럼 따라 해 볼까? 에이, 애플. 비, 버내너"
아이들은 색연필을 던져 가며 왁자지껄 떠들었다. 종이를 북 찢어서 비행기를 접기도 했다. 마거릿의 얼굴이 점점 뜨거워졌다. 도통 통제가 안 되는 군.
"쟤들 파닉스 다 떼지 않았어?"
해리가 리디아에게 속삭였다.
"영어로 일기도 써요" (p. 104)
아프리카 아이들은 그저 못먹고 못배우고 불쌍할 것이라는 그래서 선진국에서 봉사를 가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과연 착하기만 한 생각일까??
앙벵야는 아이러브 발룬티어를 찾는 서양인들에게 민박을 제공하고 돈을 벌었다. 그쪽 사람들은 자신들의 편리한 생활에 주기적으로 염증을 느낀다고 하면서 아프리카를 찾았는데, 이곳에 와서 물도 떠다 주고 염소도 대신 치며 여러 가지 자잘한 일들을 거들다가 2~3일이 지나면 떠났다. 그렇게 앙벵야는 자기 집에서 한 발짝도 더 나가는 수고 없이 저절로 앉아서 돈을 벌었다. 더욱 기막히게 좋은 것은 자원봉사자들이 지어준 마냐타로 이듬해 또 다른 여행객들을 상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거였다. 앙벵야는 해리의 영어 실력과 인터넷 운용 능력을 빌려 홈스테이로 비즈니스를 확장했다. 매년 여름이 되면 여행객들은 앙벵야의 개인 사이트에 접속해 서로 마냐타에서 자겠다고 경합을 벌였다. (p. 116)
마사이 마을의 대모격인 앙벵야는 해리 백이 처음 케냐에 와서 선교활동을 할때 만났던 인연이었다. 둘의 인연은 이제 상처의 기억으로 얼룩졌지만 여하튼 여전히 둘은 사업적으로 훌륭한 파트너였다. 소똥으로 지은 전통집 맨땅바닥에서 불편한 잠을 자겠다고 오는 서양인들을 앙벵야는 수도없이 봐왔다.
하지만 동네 어린 소녀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았고 그 원인 제공자가 해리가 데려온 4명의 이방인들 중에 있음을 알게 되자 앙벵야는 움직인다.
메리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큰 소리로 외쳤다. 외국인들, 살인자들, 맞은편 소파에 앉아 기삿거리를 찾던 수습기자의 귀가 크게 열렸다. 뭔가 조합이 마음에 든다.
사냥감을 문 젊은 기자의 두 눈이 빛났다. 기자는 메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상상력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메리가 가고 난 후 그는 심드렁한 경찰들을 부추겼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잖아. 당신들 모두를 승진시켜 줄 큰 사건, 살인이다. 범인은 나왔고 당신들은 그저 시늉만 해라. 기사는 내가 잘 써 줄게. 케냐 경찰이 얼마나 기동성 있게 사건에 대응했는지 전 국민에게 알려 주마. 마침 손톱 때를 다 벗긴 경찰이 곤봉을 들고 일어섰다. 그래? 그럼 슬슬 한번 가볼까. (p. 172)
존에게 두둑한 후원금을 받은 이반은 마거릿 부부를 미국으로 안전하게 돌려보냈고 한국아이 두 명은 케냐경찰에게 붙잡혔다. 케냐 언론은 점점 더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냈고 국제사회에도 알려지게 된다. 미국으로 돌아간 마거릿은 길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를 집에 데려와 보살피다가 유괴범으로 몰려 유치장에 갇혔다. 케냐의 유치장에는 천수와 승아가 미국의 유치장에는 마거릿이 갇혀 있는 상황에서 상관 없을 듯한 이 두 사건은 '알리스'라는 한 사람으로 인해 연결되게 된다. ('알리스' 라는 존재는 생각지 않았던 성적 자아정체성 문제까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브라운 서장은 무조건 자기 아이 편을 들고 자기 아이가 옳다고 주장하는 부모를 여럿 보았다. 학교 폭력으로 고발당한 아이들의 부모는 대다수 비슷한 패턴을 가졌는데 원래 자기 아이들은 순하고 좋은 아이란다. 그들은 어떻게든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고 빠져나가는 데만 혈안이었다. 뭐니뭐니 해도 그들에게 일관된 공통점은 "그래서 피해자 아이는 좀 어때요? 괜찮을까요?" 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관심사는 오직 내아이, 내 아이의 미래였다. (p. 180)
마거릿이 데려온 아이 라몬은 자신이 가정폭력으로 도망나왔다고 했다. 열여섯 이라는 나이를 속이고 펍에 가도 될 나이라고 했다. 라몬의 부모는 한달전부터 대대적으로 유괴범을 찾는 중이었다. 그 라몬이 마거릿과 함께 펍에 있을 때 경찰이 들이닥친 것이었다.
"말해 봐. 그 잘난 혀로 지껄이라고. 여기 온 목적을 달성해야지? 라몬, 네가 저지른 일들을 난 다 이해하고 용서한단다. 우우. 네 본성은 원래 착하잖니. 라몬, 누구나 실수는 하잖니. 다 거기서 거기야. 나도 그랬는데, 뭐 그러니까 너도 그만 널 용서하렴. 밖에서 기다리는 어머니 생각도 해야지. 널 얼마나 사랑한다고, 우우. 빌어먹을 사랑은! 그 얼굴을 보면 다 긁어주고 다 뭉개 버리고 싶어져. 알아? 미친! 당신이 뭘 안다고! 웃겨, 당신은 몰라" (p. 213)
착하다는 것이 무엇일까? 착한 마음이란 무엇일까?
악하기만 사람도 있지 않을까? 이기적이기만 한 사람도 있지 않을까?
나의 선의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상대방을 통제하고 인정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상대가 아닌 나를 위해서 였던 것이 아닐까?
돕는 다는 것이 착한 행동일까? 사람이 사람을 도와주고 변화시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긴 한걸까?
내가 아닌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 부모자식 혹은 부부 라는 가족관계 안에서 이해의 범위는 오히려 좁아지는 것이 아닐까?
착하다 vs 착하지않다 로 양분되는 입장이 될 수 없는 많은 질문들을 품은채 가볍게 빠져 읽은 책에서 무겁게 나오는 중이다.
착한 아이 백천수씨의 일탈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만한 커다란 사건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난 지금 천수가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눈도 못 마주치던 엄마와도 얼굴도 희미한 아버지라는 존재와도 왠지 이제껏 하지 못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착한아이 백천수씨가 멋진어른 백천수씨가 될 것을 믿으며 이시대 모든 (착한아이)백천수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