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뇌과학 - 이중언어자의 뇌로 보는 언어의 비밀 쓸모 많은 뇌과학
알베르트 코스타 지음, 김유경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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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가지 언어에 익숙한 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우리 뇌를 바꾸는 놀라운 언어의 세계를 엿보다

"다음 세대를 위한 언어교육을 시작하기 전에

세상의 모든 부모와 선생님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지침서" - 정재승

우리의 모국어는 한국어다. 그리고 한국인이 가장 욕심내는 외국어는 영어다. '학원' 이라는 단어가 영어로 번역되지 않는 고유명사로 자리잡을 만큼 영어학원문화는 한국의 독특한 교육문화가 되어 버렸다. 다시말하자면 대다수의 한국인은 한국어와 영어를 사용하는 이중언어자가 되기를 꿈꾼다. 특히나 자녀를 둔 부모의 경우 자녀만이라도 이중언어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영어에 대한 로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언어교육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지침서' 라는 정재승 박사의 추천사에 혹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세계적인 이중언어 연구자로서 3개 국어를 하는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로서의 생생한 경험이 어우러진 이중언어에 대한 연구들을 쉽고 간결하게 알려주고 있다. 심리학은 점점 뇌과학으로 연결되고 있는데 그렇게 복합적인 영역 중에서도 '이중언어의 뇌' 에 대한 연구들의 선구자인 저자의 글을 읽고나면 '이중언어자'에 대한 로망을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내려놓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ㅎㅎ

서문을 마치기 전에 이 책에서 다루지 않는 두 가지도 나누고 싶다. 우선, 이 책은 제2언어를 배우는 방법을 설명한 책이 아니다. 따라서 학교에서 제2언어를 배우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나 방법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는다. 두번째, 이중언어 사용 현상과 관련된 사회, 정치적 의미와 세계 여러 나라의 교육 모델에 끼친 영향 등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하나의 뇌에 두 언어가 어떻게 공존하는지 알아보는 여행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p. 14, 15)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의 제목만 보고 이중언어자가 되는 방법을 배울수 있으려나 하면서 책을 펼쳐든 독자들에게 NO 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외국어 학습법에 대한 책이 아니라 뇌과학에 대한 책이다. 뇌과학 중에서도 이중언어에 관련된 연구들을 소개하는 책이라는 점을 명시하는 저자의 자세가 믿음직스럽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단순히 단어와 문법을 외우는 데 그치지 않고, 해당 소리와 의사소통 시 맥락에 맞게 그것을 적절히 사용하는 법을 습득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니까 단어만 안다고 언어를 배우는 게 아니다. 언어의 소리를 익히고 그것의 조합 방법을 알며, 어떤 구문 구조가 맞고 틀린지 대화 상대자에게 어떤 표현을 하고 어떤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지 등을 알아야 한다. (p. 21)

하나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굉장히 복잡다단한 능력을 요구한다. 그리고 언어를 배운다는 것을 아기들이 옹알이라도 하면서 시작되는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기들은 뱃속에서부터 언어를 배우고 있었다. 갓 태어난 아기들도 뱃속에서 듣던 언어의 소리사슬들을 구분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 만일 아기들이 그저 먹고 자기만 한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해다! 이제 아기들을 볼 때마다 머릿 속에는 무척 강력한 통계 컴퓨터가 있다는 생각도 하길 바란다. (p. 28) } 는 저자의 표현에 동감한다.

이중언어 노출된 아기들이 언어를 구별하기 위해 입술의 조음 운동에 집중하는 일을 일시적으로 강화하고 지속시키는 듯 보인다. 4개월 된 아기 이중언어자는 아기 단일언어자보다 말하는 사람의 입을 더 많이 쳐다본다. 이런 특징은 최소 한 살까지 유지되는데, 두 언어를 듣고 머릿속이 복잡해진 아기는 그 둘을 구별하기 위해 시각 및 청각 정보를 사용해 의사소통 과정에서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p. 40)

두 그룹의 아기들은 공통 발달 특징을 보였다. 따라서 이중언어 경험이 대상과 단어를 연관시키는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아기 이중언어자와 단일언어자가 용어 학습 과정에서 사용하는 전략은 차이가 났다. 그중 하나를 바로 '상호 배타성 경험법칙' 이라고 한다. (p. 48)

사회적 접촉이 외국어 학습에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의사소통을 통해 상호 작용할 수 있는 환경에 있지 않고 단순히 언어만 노출시킨다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만일 자녀가 외국어를 배우길 바란다면, 동영상이 그 일을 대신 해줄 거로 너무 기대하지 말고 그 언어를 사용해서 아이와 놀아주길 바란다. 즉, 고통 없이는 얻는 게 없다. (p. 52)

아기들의 언어학습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게끔 인간의 뇌는 작동한다. 이중언어 환경에 노출된 아기들은 엄마의 언어와 아빠의 언어가 다를 경우 구분을 위해 시각정보를 활용한다. 그리고 하나의 물체에 하나의 의미를 연결짓는 '상호 배타성 경험법칙' 이 이중언어 환경의 아기들에게는 덜 적용된다. 즉 하나의 물체에 여러 언어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인지 가능하게 된다. 그렇게 이중언어자로 자라나려면 그 무엇보다 대화상대와의 사회적 접촉이 필요하다. 엄마와 아빠가 다른 언어로 아기를 키우는 환경이 아닌, 부모가 같은 언어를 쓰는데 온갖 시청각 자료를 아기에게 보여준다고 해서 아기의 뇌가 이중언어자의 뇌가 되지 않는 다는 말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부모의)고통 없이는 (아이가) 얻는 게 없다. ㅎㅎ

피부색은 같지만 외국인 억양이 있는 아이와, 피부색은 다르지만 외국인 억양이 없는 아이 중에 누구를 선택할까? 억양이 더 중요했다! 아이들은 피부색이 같지만 영어를 할 때 외국인 억양이 있는 아이보다는 피부색이 달라도 모국어처럼 영어를 하는 아이들과 더 친구가 되고 싶어 했다. 즉, 그들의 원하는 친구를 결정할 때 중요한 요소는 피부색보다 말하는 방식이었다. (p. 54)

호모사피엔스만 남기전 아주아주 오랜 시간 전에는 다양한 인류의 조상족들이 있었다. 그들에게도 나름의 언어가 있었다고 하던데... 비슷비슷해 보이는 유인원들 중에서도 저마다의 다양한 그룹이 뭉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 때문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친구를 선택하는 기준이 외양 보다 억양이라니 의외의 연구결과였다. 하긴 사회적 동물인 인류가 소통을 하려면 생김새보다는 대화가 더 중요했을 테니...

이번 장에서는 뇌가 어떻게 두 언어를 처리하는지에 관해 몇 가지 질문을 살펴보았다. 뇌 손상을 입은 사람의 언어 행동 연구와 뇌 영상 기술을 통해 확보한 건강한 사람의 뇌 활동 평가로 이중언어자의 언어 사용이 뇌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알 수 있었다. 특히 뇌에서 언어 통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언어를 아는 것 뿐만 아니라, 사용(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 다가왔길 바란다. (p. 102)

이중언어자에 대한 뇌연구는 아직 밝혀진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 것이 더 많다. 따라서 저자의 가정과 결론은 조심스럽게 진행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중언어자의 뇌가 작동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결국 이중언어를 사용하며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이중언어에 대한 극단적인 의견을 자주 접한다. 또한, 이러한 의견은 대부분 분명한 과학 지식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실제로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하다. 특정 근거를 기반으로 하긴 하지만, 전달 내용이 이해관계에 따라 왜곡되어 일반 대중의 판단력을 흐릴 뿐 아니라, 이 분야에서의 연구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p. 106)

이중언어에 노출된 사람들이야 자연스럽게 체득된다 해도 그런 환경이 아닌 단일언어자들은 이중언어자가 되고 싶은 꿈을 꾼다. 이중언어자가 더 똑똑하다느니 아기때부터 배워야 한다느니 이런저런 말들에 마음이 오락가락 한다. 하지만 이중언어자의 뇌에 대한 연구는 진행중이기에 아직 그런 소문들을 다 뿌리뽑을 수는 없다. 그래도 저자가 알려주는 객관적 근거들은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준다.

학교에서 기본적으로 쓰는 단어만 비교하면 두 집단 간에 차이가 없었다. 일리 있지 않은가? 학교에서는 모든 아이가 같은 단어에 노출되어 있다는 뜻이다. 학교에서 어휘량 차이가 없다는 사실은 이중언어 사용이 학교 성적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p. 117)

이중언어 환경 속에서 자란 아동에게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일찍 발달하고, 자기 관점을 상대방의 관점에 다라 바꿀 수 있음을 시사한다. (p. 129)

이중언어를 하면 학교 공부를 더 잘 할거라는 것은 왜곡된 편견이 아닐까? 이중언어의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학습능력보다는 공감능력이 더 발달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중언어를 하다보니 상대방의 다른 언어 방식에 더 개방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중언어자가 되면 공부를 더 잘하는 게 아니라 사회성이 더 좋아진다는 것은 학습 때문에 이중언어자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들에게 제대로 뿌린 찬물이 아닐지 ㅎㅎ

단일언어자와 이중언어자의 뇌 구조를 비교한 연구들은 결과를 놓고 인과적 해석을 시도할 때는 문제가 생긴다. 즉,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져나의 문제이다. 우리는 이중언어 경험이 뇌 모양을 결정하는지 아니면 특별한 뇌 구조를 가진 사람들이 언어를 배우는 데 더 많이 준비되어 있어 더 쉽게 이중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만일 뇌 모양이 결정되어 있다면, 이중언어 환경에서 자라더라도 뇌 구조에 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두 변수는 서로 관계가 있지만, 이것이 인과 관계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p. 137)

비록 찬물 한바가지를 뒤집어쓰긴 했지만 아직 희망의 끈을 놓을 정도는 아니다. 이중언어의 뇌가 타고나는 것인지 아닌지 뇌과학자도 아직 확답할 수 없다고 하니 ㅎㅎ

결국 이중언어 사용은 우리의 언어 발달과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중언어 경험이 주는 혜택이나 문제에 대해 쓴 글이나 말을 접할 때 신중해야 한다. 적어도, 과학을 그런 목적으로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많은 연구 결과물이 말하는 내용은 그들이 말하는 내용과 다르기 때문이다. 반복해서 미안하긴 하지만, 꼭 다시 강조하고 싶은 말이었다. (p. 141)

과학의 부분적 이용에 대한 저자의 우려는 나도 깊이 동의한다. 어떤 연구결과에 대해 판단할 때는 그 하나만 보면 안된다. 관련된 다른 것들과 함께 고려 해야 한다. 하지만 일반인이 과학적 연구결과들을 수시로 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과학책을 읽을때 저자와 같은 객관적이고 신중한 태도로 쓴 책들을 읽어야 할 것이다.

이중언어 사용이 인지 예비용량 확장을 돕고 뇌의 퇴화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감소시킨다는 것을 암시한다. (p. 171) 이중언어 사용은 치매 증상을 4년이나 지연시켰다. 이 연구에서는 교육 수준의 잠재적 영향을 통제할 수 있었다. 이 지역에는 학교 문앞에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맹자 하위 표본에서 이중언어 사용 효과가 여전히 컸고, 치매 증상을 6년 지연 시켰다. (p. 173)

서양에는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곳이 많이 있고 따라서 태어나면서 부터 이중언어 환경에 노출되어 이중언어자로 자라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그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했을때 이중언어 능력은 '뇌의 퇴화'에 효과적이었다. 즉, 이중언어자로 자라면 학습이고 뭐고는 차치하고 치매가 지연된다! 우리나라에서 이중언어능력의 효과가 학습능력이 아니라 치매예방에 효과적이라고 말하면 영어학원들이 좀 줄어들려나? 아니 여전히 성행하려나?!

감정적 가치는 외국어가 모국어보다 낮고, 그 결과 우리 주의를 덜 끌고, 주요 과제 실행에도 덜 간섭을 받는다. (p. 191) 성인이 되어 배웠거나 사회적으로 거의 사용하지 않고 학문적으로만 배운 외국어(제2언어)는 언어 사용에 따르는 감정 반응을 감소시킨다. (p. 197) 즉, 외국어는 손실 프레임에서 부정적인 감정 효과를 일으키지 않으므로 수익 프레임에 비해 위험한 응답이 증가하지 않는 것이다. (p. 201) 모국어보다 외국어로 표시할 때 위험 회비 빈도수가 훨씬 적었다. (p. 202) 의사 결정에서 외국어의 영향은 위험에 대한 평가에까지 확대된다. 예를 들어, 참가자들에게 특정 활동의 이익이나 위험을 평가하도록 요청할 때, 외국어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위험은 실제보다 덜 위험한 것처럼 보이고 이익은 더 크게 보인다. (p. 205) 다른말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외국어 환경에 있을 때 더 냉철한(또는 덜 감정적인) 사람이 될 것이고, 아마도 더 실용적이 될 것이다. (p. 211) 외국인 억양이 끼치는 영향은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는 외국인 억양이 있는 사람보다 원어민의 말을 더 많이 믿는다. (p. 217)

도덕적 의사결정을 할때 언어의 힘은 컸다. 이중언어자라 할지라도 주요 언어인 모국어가 있다. 모국어외의 언어는 제2언어 즉 외국어다. 다양한 실험들을 통해 외국어로 제시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모국어로 제시될 때보다 더 냉혹한 판단을 내렸다. 모국어로 표현되는 상황은 감정을 건드렸지만 외국어로 표현되는 상황은 감정을 크게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중언어자에게 원하는 대답을 듣고 싶다면 그사람의 모국어로 질문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국제회의에서 공용어로 진행해야 할 회의는 결국 외국어로 진행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국제회의에서는 피해국에 대한 감정적 고려 없이 냉철한 판단이 내려지는 것일까;;; 하지만 언어가 같다고 해도 억양이 주는 영향력이 또 있다. 같은 영어롤 쓰더라도 니편내편 구분이 바로바로 가능해질 수 있달까;;;

하지만 넬슨 만델라의 말을 기억해두고 싶다.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한다면 그 대화는 상대방의 머리로 간다. 상대방의 언어로 말한다면 그 대화는 상대방의 가슴으로 간다" 어쩌면 만델라가 적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 염두에 두었던 말일 수도 있다. 그는 도리에 맞게 말할 뿐만 아니라, 그들 마음에 도달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로 대화하길 원했다. (p. 183)

그리고 저자가 책의 제일 앞과 책의 제일 뒤에서 한 말도 기억해두고 싶다.

하나의 뇌 속에 어떻게 두 언어가 공존하는지, 그리고 거기 따른 인지적, 신경학적, 사회적 영향에 관한 연구 및 이와 관련된 흥미진진한 세계가 독자에게 잘 전달되었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이 일에 관심을 갖고 계속 참여해보기를 바란다. 공자가 "들은 것은 잊어버리고, 본 것은 기억하고, 직접 해본 것은 이해한다" 라고 한 말이 일리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p. 218)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 듣기만 해서는 까먹고 보기만 한 것은 가물하니 직접 소리내 말해 보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겠다. 그리고 그 언어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아야 겠다.

{ 언어의 기본 수단은 바로 소리다. 우리는 말을 듣는 것보다 할 때가 더 많다. 읽고 쓰는 것을 배운 후에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토킹 헤즈'(Talking Heads)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라이팅 헤즈'(Writing heads)가 아니다! 말하는 머리지, 글 쓰는 머리가 아니다. (p. 38) } 라는 문장이 인상깊었다. 그렇다. 인간의 언어는 주로 '말'로 인식된다. 나의 모국어를 모르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내게 그닥 있을 것 같진 않지만 혹시나 만나게 된다면 상대방의 머리 보다는 가슴으로 가는 언어를 말하고 싶다. 이렇게 또다시 이중언어자에 대한 로망이 생겨나지만 분명 이 책을 읽기전의 로망과는 다를 것이다. 심장을 품은 토킹 헤즈 라고나 할까. ㅎㅎ

뇌과학 책을 읽었는데 이렇게 감상적인 마무리를 하게 되다니;;; 머리에 대한 책을 읽었으나 심리를 건드리는 재미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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