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가 쓴 책이지만 사실 위주로 주장은 조금만 들어간 이 책은 '음식'에 대해서도 철학이 필요한 시대임을 깨닫게 한다. 과거의 위대한 지성이라 일컬어지던 철학자들도 음식문제에 직면했었고 자신들의 철학만큼 완벽한 해법은 제시하지도 실천하지도 못했다. 그들을 고심하게 했던 음식들에 대해 우리는 지금 더 많이 알게 됐고 마음만 먹으면 더 자세히 알아낼 수 있다. 철학까지는 아니더라도 음식에서만큼은 위대한 철학자들보다 더나은 생각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ㅎㅎ
500여 페이지의 꽤 두꺼운 편이지만 쉽게 읽히는 책이었는데, 본편이 400페이지 정도이고 나머지 부분은 부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철학자들과 연구자들에 대해 한명한명 이야기해주는 '포크를 든 철학자들' 은 철학자들의 색다른 면모를 알 수 있게 하고
그 뒤에 진짜 '부록' 에는 '모앙먄으로 효능을 알 수 있는 음식들' 이 소개되는데 하나하나 아주 흥미롭다. 예를 들면, 토마토는 심장모양, 호두는 뇌, 당근은 눈, 강낭콩은 신장, 고구마는 췌장, 셀러리는 뼈, 아보카도는 자궁, 오렌지/레몬/자몽 은 유방, 무화과는 고환, 버섯은 귀, 포도는 폐 의 모양과 닮았다고 하는데 그 효능들까지 읽고 나면 아~! 하게 된다. 뒤이어 '간식을 대체할 수 있는 음식들' 도 소개하는데 소금간이 된 피스타치오, 건조 토마토, 견과류와 건포도, 사과, 잣, 절인 청어, 달걀, 버섯, 베이크드 빈, 통조림 채소 등 나중에 한번 먹어봐야지 하고 적어둬 본다.
'추천자료' 에는 책에 소개된 자료와 주장들의 출처를 장별로 상세하게 정리해 놓았는데 읽어보면 유용할 듯한 책들을 다수 소개받을 수 있었다.
'각주 및 자료 출처' 도 어찌나 상세하게 정리해 놓았던지 감탄했더랬다. 특히나 { 피타고라스가 '콩을 먹지 말라'고 했던 것은 음식이 아니라 도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여러 가지 색깔의 콩 중에서 하나를 뽑는 방법으로 도박을 했기 때문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1947년 처음 출판된 '서양철학사'에서 콩에 대한 잘못된 편견(그리고 피타고라스에 관한 부정적인 견해들)을 의도적으로 강화했다. 그에게 넘어가지 마시라! (p. 495) } 부분은 꼭 기억해두기로 했다.
{ 내 생각에 위대한 철학자들의 학문적 관심사와 그들의 일상생활 습관 및 현실적인 관심사를 함께 논하는 책은 '철학적인 이야기들' 이 유일할 것 같다. (p. 517) } 이라고 본인의 책을 소개해 놓기도 했는데, 찾아보니 국내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나 보다. 아쉽다...
철학자가 풀어놓는 음식에 대한 생각들은 의외로 과학적이었고 과거 위대한 철학자들의 식생활은 의외로 엉망?!이었지만 그랬기에 현실적으로 가깝게 느끼며 무겁지 않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양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생각들을 담아낸 책들이 자주 눈에 띄는 시대가 됐다. '음식' 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타당한 근거를 찾기 위해, '음식'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면 음식을 중요하게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혹은 '음식'에 대한 가벼운 철학적 접근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