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비늘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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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금에 손대지 마, 그럼 괜찮을 거야"

우리가 처음 상상하는 특별한 인어가 나타났다

강렬하고 매혹적인 미스터리 판타지

"그가 가진 백어석은 사람을 죽인 살인 도구였지만

그녀의 백어석은 빛을 담은 아름다운 그림이 되었다"

작가의 이름만 보고 선택한 소설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작가가 아니었다. 동명이인이었다. <세여자> 라는 감탄할 만한 역사소설을 쓴 조선희 작가의 차기작인줄 알았다. 아니었다. 동명의 판타지소설 작가였다. 하지만 굉장한 작품이었다. 몇 페이지 넘기지도 않았는데 바로 빠져들었다. 읽다보면 저절로 숨죽인 채 가빠오는 호흡이 느껴져 가끔 큰숨을 몰아쉬어야 할 만큼 강렬한 몰입감을 주는 책이었다. '인어'라는 판타지적 존재에 대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뛰어넘는 소설이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란 이야기를 전부 사실로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완전히 무시하지도 못했다. 그들에게는 늘 보이지 않는 사고의 원인이 따로 있었다. 무언가를 지키지 않았거나 무언가를 봤거나 무언가를 노하게 했거나. (p. 10)

백어도라는 섬이 있다. 그 섬에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전래동화 같던 그 이야기는 뱃사람들에게 유혹이자 저주였다. 하지만 섬사람들에게 전설의 실체를 확인시켜준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백어도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백어의 전설 때문이다. 사람만큼 큰 흰 물로기. 백어는 인어를 가리켰다. (p. 18)

망망대해에 솟아오른 작은 돌섬 백어도는 황량한 무인도이다. 그 돌섬 꼭대기에 무덤이 하나 있다. 섬에 있는 것이라고는 돌뿐이었기에 돌지를 쌓아놓은 돌무덤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무덤을 이장시키려 했었다. 하지만 그 돌무덤이 열린 순간 백어의 전설이 현실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의문의 죽음이 연이어 발생한다.

"나 같은 놈이랑 결혼해도 괜찮겠어?"

"내 소금만 손대지 마. 그럼 괜찮을 거야" (p. 33)

조개껍데기처럼 생긴 희고 단단한 것, 그것이 백어의 소금비늘이라는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아니, 백어도 전설도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믿을 수가 없었다. 그에게 벌어지던 일들에 대해. 평범하디 평범하기만 하던 용보는 그렇게 특별해도 너무 특별한 마리와 결혼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영혼은 사람에게만 있다고 해. 사람을 제외한 다른 생물들에게 깃들어 있는 것은 영 뿐, 혼 은 없대. 때문에 사람의 것은 영혼이고, 우리의 것은 영 과 정 이 결합된 정령이야. 그러니까 인어가 사람이 되려면, 혹은 사람으로라도 환생하려면 먼저 영혼을 얻어야 해. 그 영혼을 얻는 데는 조건이 있어. 사랑, 모든 저주를 풀 마법의 열쇠. (p. 42)

인어공주의 이야기는 인간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백어의 전설이었다. 인어는 아니 백어는 그들에게 허락되어 있지 않은 인간에게만 허락된 환생을 꿈꾸었다. 방법은 '사랑'. 동화와 같다. 하지만 인간남자가 백어여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한 마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백어들에겐 '소금비늘' 이 있었다.

"백어의 비늘은 백어가 처음 한 번만 주는 거야. 그것만 행운이고 나머지는 전부 불운을 가져오지. 백어의 비늘을 훔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화가 난 백어가 자기 비늘로 소금 도둑의 목을 뎅강 잘라. 내 목이 잘리게 생겼는데 어떡해. 살려면 내가 먼저 백어의 목을 잘라야지" (p. 63)

아내를 살해하고 감옥에 갇혀있던 정신이 온전치 않은 아버지 최동수는 면회 온 아들 순하에게 백어의 소금비늘을 훔쳤다고 말했다. 순하가 알던 어머니와 무덤속에 누워있던 어머니는 너무나 달랐다. 그리고 그동안 외면하려 했지만 자신은 다른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인어들의 전설에 이런 말이 전해져. 물 아래 세계가 있고 물 위 세계가 있다. 물속 세계가 있고 물 밖 세계가 있다. 서로 다른 세계로 건너간 자, 그것을 얻을 수 있다. (p. 65)

마리가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 과 함께 쓰여있던 문장들을 처음 읽었을때 용보는 무시했다. 그림은 그림일 뿐이고 글자는 낙서일 뿐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물속 백어만 물 밖 인간 세상에 건너오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방법은 양쪽 두갈래 였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세상으로 건너오는 길 하나만 생각할 수 있었을 뿐이다. 용보는 그 하나의 길조차 알지 못했지만.

이 빛은 오직 백어의 비늘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백어의 비늘 빛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보아도 알 수 없다. 누군가 백어의 비늘을 가진 사람이 또 있다. 그 누군가는 어디서 백어의 비늘을 얻었을까? (p. 115)

순하는 비오던 날 우연히 벽화를 보았다. 그 그림에서 백어의 빛을 보았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고향을 떠나 홀로 살던 순하에게 그 빛은 향수이자 뿌리로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닌 것 같았다.

어석염 혹은 어염석 이라고 한다. 산호, 진주와 더불어 바다의 삼대보주로 일컬어진다. 고대 중국에서 산호는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효과가 있고, 이탈리아에서는 악마의 눈으로부터 보호하는 부적으로 붉은 산호를 착용했다. 그러나 백어석의 운은 지닌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한다. 주성분이 탄산칼슘 96퍼센트인 산호는 손톱보다 조금 강한 정도의 경도를 지니고 있어 흠집이 쉽게 생기지만 백어석은 다이아몬드와 같은 강도를 자랑한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소금이기 때문에 민물에 닿으면 녹아버린다는 단점이 있다. (p. 119)

용보가 백어석의 존재를 알게된 후 검색한 결과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검색을 해보았다;;; 백어석은 당연히 소설의 판타지였다. 하지만 너무 실감이 나서 정말로 있을 것만 같았다.

교어와 혼인한 남자는 모두 살해당했다. 그들 중 염린을 탐하지 않은 이는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p. 135)

용보에게 마리를 소개시켜 준 준희는 백어에 대해서도 백어석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집안 대대로 소금장사를 가업으로 확장시켜오면서 그 누구보다 백어석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해오고 있었다. 그렇게 대대로 모은 백어석 즉 염린으로 염린등을 완성해오고 있는 중이었다. 염린등에는 또다른 전설이 있었다.

진실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였다. 준희는 완성된 염린등이 자신에게 보여줄 진실이 궁금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순간 정신을 잃게 될 것이라는 경고는 그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염린의 빛에 홀릴 대로 홀렸다. 하지만 한 번도 환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적은 없었다. 정신을 단단히 움켜잡고 있는 이상 그 경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만 준희는 불운이 담긴 소금 비늘을 원하지 않았다. 불운 없이 소금 비늘을 얻는 방법은 따로 있었다. (p. 139)

용보가 마리 몰래 염린을 몇개 들고 왔을때 준희는 용보가 불운을 시작했음을 알았다. 불운이 더 퍼지기 전에 염린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준희는 용보에게 염린을 샀다. 하지만 준희가 염린에 대해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영혼의 부재로 우리의 세계에는 언제나 현재만이 존재하지. 영원히 지속되는 현재. 그러므로 시간은 언제나 멈춰 있어. 늙지만 늙는 것을 자각하지 못해. 늙음조차 현재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세지 않아. (p. 184)

마리는 자신의 소망이 깨졌다는 것을 알았다. 남편은 이제 소금도둑이었다. 하지만 용보와 마리 사이에 딸이 있었다. 섬 이라는 이름의 딸. 또다시 살해를 하고 싶진 않았다.

갓 태어난 백어는 고래 새끼나 사람의 아기처럼 반들반들한 피부를 갖고 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주름이 생기듯 백어는 소금 비늘이 돋아난다. 주름이 사람의 나이를 헤아리듯 소금 비늘의 크기와 개수는 백어가 살아온 시간을 말해준다. 민물에 몸을 담가본 적이 없는 나이 많은 백어들은 온몸에 소금 비늘이 가득하다. 살아 있을 때 소금 비늘은 심해의 수압을 견디게 해주는 신체의 요긴한 일부이지만 죽고 난 후에는 그 무게 때문에 몸이 바닷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육신은 썩어 물거품이 되고 소금 비늘만 남는다. 소금 비늘은 보주가 되어 깊고 깊은 바다 밑바닥을 굴러다니지만 사람들은 그곳이 어디인지 모른다. (p. 192)

어디인지 모르는 곳을 찾아 헤매고 가져서는 안되는 것을 탐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 이라면 사랑도 또한 인간의 본능이었다. 백어가 따라나선 남자들에게서 바란 사랑은 염린의 가치를 알게 된 후 차갑게 식어버리곤 했다.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하지만 꿈이라는 것이 원래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계속 꾸는 것이듯 백어들의 꿈은 시대를 이어오며 계속 시도되었다. 이루어지지 않은 꿈은 계속 꿀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 마리가 물에 흠뻒 젖은 채 관리사무소에 들어섰던 바로 그날 그 순간, 그는 마리가 품고 있던 백어석의 빛을 알아보았다. 가슴이 울렁였다.

나는 혼자가 아니야. 나 혼자 다르지 않아. 그는 충만감에 휩싸였다. (p. 203)

소금도둑 용보를 죽이지 않기 위해 섬을 데리고 거리의 화가로 돌아온 마리를 만난 순하는 백어의 빛을 알아보았다. 마리도 순하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순하는 궁금했고 마리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용보는 마리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고 준희는 용보에게 백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들의 운명은 얽혀들었다.

"옛 기록에 그렇게 나와. 뭍으로 올라온 수인들은 거문고나 해금, 적과 같은 것에 관심을 보인다. 그들에게 소리는 다양한 전달 효과를 갖는다. 정확히 말하면 소리라기보다는 공기의 진동을 뜻하지"

"그 기록이 사실인지 누가 알겠어?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지"

"사람은 평생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채로 살다가 죽어. 세상엔 우리가 본 것보다 보지 못한 것이 더 많지. 내가 보지 못했다고 없는 것은 아니야" (p. 266)

"더는 못 들어주겠다, 그만해라"

"백어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해. 그래야 살 수 있어. 장봉도나 거문도 같은 서남 해안에서 인어를 잡았다가 놓아주고 만선했다는 이야기는 너도 들어봤을 거야. 신지끼에 대해서도 들어봤을 거고, 경상남도의 어느 소금 장수가 인어와 교접하고 아들을 얻어 아버지의 묫자리를 지켰다는 이야기도 있지. 인어가 준 토산을 먹고 3백년을 넘게 산 낭간의 이야기도 있어. 18세기 보르네오에서는 푸른 눈에 물갈퀴를 가진 인어가 잡혔다고 하지"

"상상이야. 와전된 거고, 콩쥐팥쥐 이야기가 신데렐라 이야기인 것처럼 말이야"

"어떻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패턴의 이야기를 동시에 상상해낼 수 있는데?" (p. 274, 275)

작가의 백어에 대한 설명은 치밀했다. 앞서 나도 모르게 검색해봤던 것처럼, 역사서를 찾으면 그 구절이 정말 있을 것만 같았다. 검색해도 나오지 않고 역사서에 기록이 없더라도 신기하지 않은가? 인어에 대한 이야기는 동서양에 공존한다.

용보는 아무리 많은 설명을 들어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었다. 마리와 섬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마리는 소금도둑을 죽이는 백어라고 한다. 하지만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 마리가 백어라는 것은 믿어져도 믿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백어의 전설을 잊었다. 백어의 비늘이 모습을 감췄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덕재는 백어의 비늘을 언제 얻을 수 있는지 알고 있었따. 동짓날이면서 음력으로 그믐이나 초하룻날이고, 시각이 자정이면 삼음이 겹쳐 가장 어두운 날이 된다. 삼음이 겹치는 그믐날은 19년에 한 번씩 돌아왔다.

그들은 모두 백어를 보았지만 모른 척했다. 그들은 백어와 엮이면 살해당한다는 기록을 믿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백어가 아니라 백어의 비늘이었다. (p. 280)

준희가 열세살이었을때 삼음이 겹치던 그믐날밤에 아버지와 백어도에 있었다. 백어도에는 백어들이 올라오는 장소가 있었다. 밤새 소금비늘을 떨어뜨리고 먼동이 틀무렵 소금비늘을 모두 벗은 백어는 바다로 돌아간다는 전설의 웅덩이가 있었다. 아침이면 그 소금비늘들은 모두 웅덩이물에 녹아버릴 터였다.

바다로 나간 백어는 지나가는 배를 흔든다. 갓 비늘을 벗은 백어는 남자의 나이를 세지 못한다. 흔들리는 배에서 자칫 바다로 떨어지는 남자들 중 누구든 처음 본 남자에게 백어는 손을 뻗는다. 그렇게 백어는 자신이 살린 남자를 뭍으로 올려 보내며 따라가는 것이다. (p. 281)

마리가 처음 본 남자가 용보는 아니었다. 인어공주의 동화는 소설속에서 현실로 더 구체화 되었다. 용에게 역린이 있다면 백어에게는 염린이 있었다. 둘다 치명적인 비늘이었다.

단숨에 읽혀지는 신비롭고 매혹적인 소설이었다. 탄탄한 판타지는 현실감을 높여서 나도 모르게 그 기묘함에 포옥 빠져들었다.

소금비늘의 비밀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불행해졌다. 거의가 목숨을 잃곤 했다. 하지만 용보, 준희, 순하 세 남자는 마리의 염린을 알고 있지만 전설은 실현된듯 실현되지 않았기에 이 소설은 어찌보면 새드엔딩이고 어찌보면 해피엔딩이었다. 어떤 엔딩을 상상해도 아마 그 이상일 것이다. 치명적인 인어의 판타지에 홀리고 싶은 이들에게 이 소설을 권해주고 싶다.

말이 전하는 온기와 상처, 말이 가진 무게, 약속의 소중함, 행운과 불운을 향한 선택, 그 밖의 이런저런 입장에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소금 비늘을 향한 용보의 욕망은 물질입니다. 물질을 갖춘 준희의 욕망은 지적 호기심입니다. 순하의 욕망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진실에 닿는 겁니다. 용보의 자랑인 고운 손은 운올 좇고 순하의 거친 손은 성실함을 살아냅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세계는 연결되어 있고, 너와 너의 세계를 파괴하는 것은 곧 나와 나의 세계를 파괴하는 것이 됩니다. 인간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 후회를 합니다. 때론 후회할 것을 알면서 후회할 일을 선택하기도 하지요.

그렇게 백어와 인간은 각자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러가며 다음을 기약하고 더 나은, 그러나 결코 끝나지 않을 결말을 향해 나아갑니다.

저도 여러분도. (p. 452, 453, 454 - 작가의 말 中)

ps. 어찌보면 삶에 결말은 없다. 결말은 죽은 뒤에 나오므로 살아있는 동안은 결말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결말은 사실 결말이 아니다. 하지만 선택에는 항상 그에 따른 결과가 따라온다. 인간들의 욕망도 백어들의 꿈도 그 실현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결국 '사랑'이다. 사랑을 잊은 순간 욕망은 탐욕이 되고 꿈은 물거품이 된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결말이란 멈추지 않는 사랑과 같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지속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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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르카 서간문 선집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지음, 김효신 옮김 / 작가와비평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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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르카

이름은 종종 들어봤었다. 역사에서나 시에서 등등...

위인전에서 생애를 몰라도 표지에 쓰여있는 이름은 알듯이 페트라르카 라는 이름도 그런 느낌이었다. 이름으로만 알던 역사적 인물의 책이 새로 나왔다길래 호기심이 생겼다. 그런데 표지를 보는 순간 조금 후회가 되려 했다. 페트라르카 로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초상화이긴 한데... 중세 신학자의 복장에 계관시인이라는 명예를 상징하는 월계꽌을 쓴 모습이니 딱 저 그림이긴 한데... 표정이;;;

다른 초상화를 찾아 봤지만 별로 없다;;; 그나마 동상이 좀더 멋있는 것 같다. 동상의 모습으로 기억에 새겨두어야 겠다. ㅎㅎ

여하튼 표지 속 초상화는 살짝 기운빠지게 하지만 내용은 예상외로 흥미진진했다.

 

 

페트라르카 라는 인물에 대한 사전정보가 워낙 없다보니 책의 가장 뒷부분 <작품해설> 부터 읽었다. 그렇게 읽고 본문을 읽으니 한결 이해가 쉬웠다. 나처럼 페트라르카 에 대해 생소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을 때 작품해설 부터 볼 것을 권유해 본다.

르네상스의 문을 연 시인 혹은 르네상스의 바탕을 깔아준 인문학자로 불리곤 하는 페트라르카 는 1304년 이탈리아 아레초에서 태어났다. 평생 여행을 많이 했는데 잦은 거주지 변경으로 마음의 피로나 권태를 풀었다고 한다. 법률을 전공했으나 성직자 된 이유는 문학 활동에 필요한 여유와 한가함을 위한 경제적 기반 때문이었다. 소년시절에는 키케로의 학문, 청년시절에는 연인 라우라의 만남에 영향을 받았으나 성직자가 된 이후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책을 읽으면서 종교문학에 심취하게 된다. 전반적으로 페트라르카는 풍부한 고전적 교양을 갖춘 당대의 대표적 지성인이자 성직자 다운 도덕주의자의 면모를 지닌 사람이었다.

이 책의 제목만 봤을때 나는 단순하게 페트라르카의 편지들을 모은 책이라는 줄 알았다. 하지만 페트라르카에게 있어 편지는 문학적 기법이었다. 즉 서간집은 문학작품으로 쓰여진 글의 모음이었다. 따라서 문학적 요구에 따라 서간에 대폭적 손질을 하거나 내용을 고치고 바꾸어 보편성을 부여하려 하였고, 페트라르카에게 있어 서간 작성은 중용한 문학적 자기 훈련의 하나였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편지를 써서 보낼 때는 그 사본을 떠서 보존하고, 그 후에도 계속 고치고 다듬는 습관을 가졌다고 하는데, 플라톤 시대의 작품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체로 쓰여졌는데비해 중세시대의 작품이 일방적 편지 형식으로 변경된것은 종교적 영향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은 페트라르카의 방대한 라틴어 서간집 중에서 일부를 선별한 것으로 원본 번역 텍스트마다 해설을 붙이고 있어서 읽는데 한결 쉽게 느껴졌다. 또한 시간순서가 아니라 주제별로 묶여 있다보니 페트라르카의 다방면의 활동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페트라르카 자신에 대한 서간문들은 인물됨됨이에 대해, 문학 관련 서간문들은 문학적 열정에 대해, 조국과 정치 관련 서간문들은 애국심에 대해, 로마 관련 서간문들은 공화정에 대한 향수에 대해, 고대문화 관련 서간문들은 고전의 깊이에 대해 페트라르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책을 읽는 내내 로마 고전에 대한 다양한 인용문들이 있어 좋았다. 역사서를 읽으며 친숙해진 이름들이 나올때마다 괜히 반갑고 최근에 읽은 로마 최후의 철학자라는 보에티우스의 연장선에서 읽혀지면서 중세의 암흑이나 지나친 종교색이 그닥 느껴지지 않는 점이 신선했다. 산문 사이에 가끔 등장하는 운문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서간문이 문학의 한 방법이었던 만큼 편지의 대상은 실제적 인물이 아닌 경우도 많았다. 고대의 인물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고 미래의 후세대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는데 후세인(後世人)에게 쓴 편지에서는 자신을 상세하게 소개하기도 한다.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는 분명 여러 가지로 거론될 것입니다. 사람은 대체로 진실에 이끌려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평판에는 무릇 척도가 없습니다. 어쨌든 나도 당신 동료 중 한 명이었습니다. 죽어야 하는 불쌍한 인간입니다. (p. 77) 청춘은 나를 현혹했고 장년기는 타락시켰지만 노년은 나를 바로잡고 옛날 책에서 배운 것의 진실을 경험으로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p. 78) 나의 천성은 날카롭기보다는 조화로움이어서 모든 건전하고 좋은 연구에 적합했지만, 특히 도덕 철학과 시학에 적합했습니다. 나이가 듦에 따라 나는 시학을 소홀히 하여 종교문학에 끌려갔고, 그곳에 이전에는 꺼려하고 있던 숨겨진 달콤함을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시쪽은 오직 꾸밈을 위해서만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연구 중에서도 저는 오로지 고대를 아는 데 열중했습니다. 이 현시대는 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p. 82) 내가 법률 연구를 포기한 이유는, 사실 사람들의 나쁜 의도로 인해 법률의 운용이 왜곡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p. 86)

[후세인에게 보내는 서간]은 거의 자서전이라 할 정도로 자신의 생애와 업적과 인연들에 대해 길게 쓰여진 서한인데 역자에 따르면 고대인에게 보내는 서간에 대응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고대인에게 보내는 서간]은 책에 실려있지 않아서 어떻게 상응되는 관계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페트라르카가 서간문을 문학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느끼게 해준 서간이었다.

모든 시대의 저명한 인물들을 떠올려 보세요. 로마인을, 그리스인을, 게다가 그 이외의 사람들을, 그들 중 누가 살아 있을 때에 명성을 잃지 않았을까요? 내가 기억하는 한 모든 인물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모든 인물 중에서 오직 스키피오 대 아프리카누스 만이 그 명성에 의해 우러러 칭송을 받았습니다. (p. 119)

페트라르카 는 스키피오를 정말 존경했나 보다. 스키피오의 전쟁을 다룬 <아프리카> 라는 서사시도 썼다고 한다.

페트라르카는 생각보다 당대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이었다. '위대한 시인이자 역사가'로서 계관을 수여받았던 대관식은 1341년 카피톨리움 언덕에서 성대한 의식속에 치뤄줬다고 한다. 개선장군의 행렬도 아니고 황제 대관식도 아닌 시인을 위한 성대한 계관식이라...

조각상은 몸의 초상이며 범례는 아름다운 덕성의 초상이라고 해도 부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적 활동에 대해서는 특별히 무슨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모방은 한 쌍의 빛나는 라틴어의 별을 만들어 냈습니다. 키케로와 베르길리우스입니다. 이렇게 이제 우리는 웅변이라는 분야에서도 그리스인에게 뒤지지 않습니다. 베르길리우스는 호메로스를 닮고 키케로는 데모스테네스를 추종하고 그리고 베르길리우스는 스승의 경지에 이르렀고 키케로는 스승을 능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p. 156)

로마고전을 좋아하고 깊이 연구한 페트라르카는 그의 글 속에 고전을 수시로 인용했다. 그러한 범례 사용에서 그의 자부심이 엿보이기도 했다. 키케로는 페트라르카가 가장 존경한 위인이었다. 고대로마위인들에 대한 칭송이 가끔 과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책의 말미에 가서 시대적 배경이 드러난 서간문을 읽고 나면 좀 이해가 되기도 한다.

페트라르카가 살던 시대에는 교황이 아비뇽에 망명해 있는 상태였다. 모국 이탈리아의 현실에 대해 페트라르카는 수시로 개탄하고 직설적으로 글을 쓰곤 했다. 그런 그의 글 속에는 고대 로마의 위대함과 영광이 대비되면서 더욱 이탈리아의 참상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마음이 드러나곤 했다. 페트라르카는 아비뇽 교황청을 '서방 바빌론' 이라 부르며 혐오했다고 한다. 그런 그의 글은 이탈리아에서 맹위를 떨치고 나아가 유럽 내에서의 명성을 높였다.

구원의 길을 가리켜 주는 인도자라면 누구라도 경멸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 플라톤이나 키케로가 어떻게 진리의 탐구에 방해가 될 수 있을까요. 정말로 플라톤의 학파는 진정한 신앙을 공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가르쳐 권하고 있고, 키케로의 책은 그것으로 똑바로 이끌어 줍니다. (p. 236) 독자가 하느님의 진리의 빛에 비추어 무엇에 따르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를 배우지 않는 한, 위험하지 않은 독서는 좀처럼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빛으로 인도된다면 모든 것이 안전합니다. (p. 237)

고전에 대한 사랑 그리고 학문에 대한 열정이 그를 역사에 인본주의자로 남게 했고 르네상스의 문을 연 시인으로 기록하게 했나 보다. 페트라르카는 라틴 고전문학이 모든 문학의 정점에 위치해 문학의 완성형태를 보이는 것으로 여겼고 그러한 그의 태도는 고전을 다시 부흥시키는 발판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페트라르카의 정치적 혁신성을 확인할 수 있는 서간문은 [호민관 콜라와 로마 인민에게]라는 편지다. 이 책에서 가장 긴 서간문인것 같은데 콜라혁명을 일으킨 '콜라'라는 젊은 지식인에게 보낸 것으로 고대로마의 역사를 길게 훑어내리며 공화정으로의 복귀라는 희망을 열렬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당시는 왕정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 혁명은 실패했고 페트라르카는 실망하여 결국 황제라도 와달라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게 편지를 보냈으나 이조차 응답받지 못했다. 어쩌면 당시 이탈리아에는 교황도 황제도 없는 즉 절대권력이 없는 분열상태였다보니 페트라르카가 마음껏 문학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느님의 자비로 나는 이미 모든 인간적 욕망의 불길에서 거의 해방되었습니다. 비록 완전하다고 할 수 없지만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나는 인간의 모든 죄를 면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하나의 끝없는 욕망의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p. 324) 어떤 병인지 알고 싶으신가요? 나는 책에 싫증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게다가 나는 아마도 필요 이상으로 많은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물에 있어서도 비슷한 일이 책에 있어서도 생기는 것입니다. 즉, 욕구의 충족은 한층 더 탐욕을 돋우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책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책은 우리를 마음속으로부터 즐겁게 해주고 대화하고 조언하며 생생한 친밀함으로 우리와 연결됩니다. 게다가 책은 각각이 독자의 마음속에 들어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서적의 이름도 숨어들게 하여 서로 욕망을 자아내게 합니다. (p. 325)

페트라르카에게 급 친밀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책에 대한 욕망!!! ㅎㅎㅎ

휴머니즘, 인본주의, 르네상스 등의 수식어로 표현되는 페트라르카는 좀 낯설었는데 그의 글을 통해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페트라르카 는 왠지 중세인답지 않은 묘한 활동성을 느끼게 해주면서 친근감이 들기도 했다. 키케로의 서간집을 보고 자신의 서간집을 구상했을 만큼 키케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과 고대문헌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를 보며 보에티우스와의 세월의 간극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신선했다. 여하튼 표지가 주는 아쉬움에 비해 예상외로 재미있고 새롭게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역사를 좋아하고 고전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중세학자를 이런 기분으로 읽을 수도 있구나~ 읽을 책이 많아도 너무 많은 참 좋은 세상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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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집
래티샤 콜롱바니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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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받은 여자들의 피난소 '여성 궁전'

열악하지만 따듯하리라 생각하며 찾은 그곳에서

솔렌은 예상치 못한 냉랭함과 마주한다

레티샤 콜롱바니 의 전작 <세 갈래 길> 을 인상깊게 읽었었다. 인도에서 불가촉천민으로 사는 여자의 삶과 시칠리아 공방에서 가업을 잇고자 하는 딸의 삶과 캐나다 대형 로펌에서 성공한 여자 변호사의 삶이 얼마나 깊은 좌절과 고통으로 얼룩져 있는지를 보여주며 세 갈래로 땋은 머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해주던 그 소설은 여성의 희망을 꿈꾸고 있었다. 두번째 소설인 <여자들의 집>도 그 희망의 연장선에 있는 소설로 읽힌다.

마흔 살의 성공한 변호사인 솔렌은 어느날 의뢰인의 충격적인 자살을 목격하며 번아웃에 빠진다. 집밖으로 한발짝도 내딛기 힘들어하던 그녀에게 의사는 봉사활동을 권유한다. 내키지 않아하던 그녀에게 한 구인공고가 눈에 들어온다.

'글로 의사소통을 원하는 사람을 위해 글을 대신 써 줄 작가를 구합니다. 글쓰기 자원봉사를 희망하시는 분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그 구인공고를 보는 순간 전류 같은 것이 몸을 타고 흘렀다. '작가'를 구하고 있었다. 작가라는 단어만으로도 가슴에 잠들어 있던 무엇인가가 전부 되살아났다. (p. 25)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생으로 살아온 그녀였지만 사실 변호사라는 직업은 부모님의 의지에 자신을 맞춘 것이었다. 그녀에겐 다른 꿈이 있었다.

소설은 현재의 파리와 1925년의 파리를 오가며 서술되는데 1925년의 파리에서는 블랑슈 라는 여성이 삶이 펼쳐진다.

블랑슈는 자신의 몸을 챙기느라 일을 미룬적이 없다. 블랑슈의 제복 칼라에 달린 세 개의 S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임무이자 소명, 그의 존재이유였다.

수프Soup, 비누Soap, 구원Salvation.

블랑슈가 생을 바쳐 온 과업은 이 세 단어, 즉 극빈자들에 대한 구호 활동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그것이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블랑슈가 충실히 복무해 온 조직의 이념이었다. (p. 43)

블랑슈가 생애를 바친 단체는 '구세군' 이었다.

<<영국의 목사 윌리엄 부스가 '어떤 전투를 치르는 데는 군대가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군대를 모델로 하는 한 단체를 창설했다. 사관학교, 깃발, 제복, 계급체계 등 모든 것을 군대식으로 갖춘 조직이었다. 국가, 인종, 종교의 차별 없이 어디서나 가난과 고통에 맞서 싸우려는 것이 이 단체의 활동 목표였다. 구세군이라는 이 단체는 영국에서 시작되었지만 바야흐로 지상의 모든 곳에서 빈곤과의 전투를 확대해 나갔다.(p. 45)>>

크리스마스때면 번화가에서 빨간냄비를 걸어놓고 종을 흔들던 제복을 입을 사람들이 구세군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단체가 이런 배경으로 이런 목적으로 탄생한 줄은 몰랐었다. 블랑슈의 삶을 읽으며, 종교단체이긴 하지만 종교보다는 빈민구제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니 종교에 친숙하지 않은 나지만 존경심이 저절로 스며들었다.

영국과 스위스에서는 구세군 운동이 정착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프랑스에서는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가톨릭 전통을 이어 온 프랑스인만큼 프로테스탄트 교회 일파인 구세군의 전도 활동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프랑스 각 지역에서 구세군 사관들은 봉변을 당하곤 했다. 몽둥이나 주먹으로 얻어맞았고 발길질로 내쫓겼다. 얻어맞지 않으면 돌팔매질을 당하거나 뜨거운 물세례를 받았다. 저녁에 로미에르 거리의 기숙사로 돌아올 때마다 블랑슈의 모자와 제복에는 썩은 달걀이나 오물이 묻어 있었다. 사람들이 죽은 쥐를 던지는 바람에 그 사체의 파편을 고스란히 덮어쓴 일도 있었다. (p. 51)

종교적 맹목성을 모르는 나로서는 구세군의 헌신또한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오로지 개인의 영달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만 보다가 구세군 활동을 하던 한 여성의 삶을 읽으니 애초에 종교가 가져야 했던 종교적 사랑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전해지는 듯 했다.

백여년 전의 구세군 활동가 블랑슈와 현재의 전직 변호사이자 우울증 환자인 솔렌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앞에서 펼쳐놓은 퍼즐들을 차근차근 단 한곳의 빈곳도 없이 꿰맞추는 방식은 <세 갈래 길>에서 보여줬던 작가의 솜씨 그대로였다.

안뜰이 있는 낡은 주택을 상상했는데 눈앞에 있는 건 사거리를 내려다보는 6층 건물이었다. 아치형 지붕이 출입구를 장식하고, 건물 전면에 머릿돌 격으로 동판 두 개가 붙어 있었다. 솔렌은 동판에 새겨진 내용이 궁금해서 가까이 다가갔다. 20세기 초에 건립된 건물이라고 했다. 역사 유적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내용과 함께 '팔레 드 라 팜므'라고 새겨져 있었다. 건물명이 묘했다. 여성의 궁전. 이름 자체만 보면 어쨌거나 화려한 장소였다. 왕이 사는 곳을 의미하니까. 학대받은 여성들이 피난한 장소에 어울리는 이름은 아니었다. (p. 60)

솔렌이 대필작가로 일주일에 한번 봉사하게 된 곳은 '여성의 궁전' 이라고 이름붙여진 시설이었다. 시설을 안내해주던 원장의 말이 와 닿는다. < 요즘에 모두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자는 의미로 사회적 공존이라는 문제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는데,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을 뒤섞어 놓는다고 공존이 가능해지는 건 아니거든요. 문화와 전통이 뒤섞이는 일은 이곳에서는 그냥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에요. 진정한 공존은 바깥의 삶을 이곳으로 불러들이는 데 있어요. (p. 64~65)> 다양성만으로 공존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살면서 종종 체험할 수 있곤 한다. 공존에는 연결이 필요하다. 솔렌에게 필요했던 것도 바로 그런 연결성이었다. 고립이 아닌 공존.

과거 매춘부였다가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 범죄자로서 재사회화 과정을 거친 이들, 장애 때문에 경제 활동에 나서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다양한 경로로 프랑스 땅을 밟은 이주민 혹은 난민 여성들도 있었다.

"그들 각자는 어떤 형태로든 취약성을 안고 있어요. 저마다 폭력과 무관심을 경험했죠. 사회의 주변부에 속한 사람들이에요" (p. 70)

솔렌으로서는 큰 결심이었지만 그건 혼자만의 생각이다. 자신의 상처만 보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상처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생전 처음 봉사활동에 나서면서 나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것은 착각이다. 내 작은 도움을 그들이 두팔 벌려 환영하리라는 생각은 오만이다. 여성의 궁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연은 저마다 다채롭게 우울했다. 솔렌의 우울은 견줄바가 아니었다. 솔렌은 처음 갔을때 그런 현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솔렌의 알껍질은 좀더 깨어져야 했다.

이해가 되는 상황임에도 솔렌을 엄습한 그 강렬한 감정은 어디서 온 것일까? 자신이 그런 심리 상태가 된 게 금방 이해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솔렌 자신을 향해 화가 났으니까. 지금까지 솔렌은 세상이 돌아가는 이면의 일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신의 좁은 삶, 개인적 성취에 매몰되어 배고픈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굶어야 할지 배를 채워도 될지가 지갑 속 2유로의 유무로 결정되는 사람들이 바로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둔감했다. 그런 현실을 오늘에야, 여성 궁전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또렷이 의식하게 된 자신에게 솔렌은 화가 났다. (p. 88, 89)

자신의 삶이 안정적일때 세상의 불안은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의 세상이 흔들렸을때 동시에 세상의 불안이 겹쳐오기 마련이다. 처음 느끼는 불안한 세상에 대한 분노는 급작스러운 만큼 쉽게 꺼지기 마련이다. 세상의 불공정을 알았을때의 정의감은 사실 오래가기 힘들다. 꾸준하게 세상의 불안을 마주하며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그런 삶을 산 인물로 솔렌과 블랑슈의 삶이 대비되듯이 읽혀진다.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엔 합쳐질 것이다. 이 소설은 희망을 품고 있으므로.

구세군에 들어가자마자 '리틀 가십걸'은 모든 면에서 단연 두드러졌다. 그의 열정, 결단력, 창의성 넘치는 활동에 모두가 감탄했다.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해서라면 블랑슈는 그 어떤 난관이 있어도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구세군 신문의 기자로서 글을 쓰면서 거리 성가대이자 설교자 역할을 했다. 광고판을 앞뒤로 붙이고 거리를 순회하며 구세군 신문을 팔았고, 얼마 후에는 이 신문의 편집인이 되었다. 행인이 많은 대로에서 기타를 치고 탬버린을 두드렸다. 수없이 거리 사역에 나서서 극빈자 구호를 위한 현물 기부를 호소했다. 블랑슈는 모임을 찾아다니며 지원을 청했다. 군중 앞에 나서서 연설했고 거리 행인을 붙잡고 호소했다.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가 실내를 한 바퀴 도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p. 91)

한마디로 블랑슈의 삶은 가난 이라는 전쟁터 에서 치루는 싸움이었고 블랑슈는 가장 선두에 나서는 군인이었다. 한때 리틀 가십걸 이라 불릴 만큼 놀기 좋아하던 소녀는 자신의 소명을 깨닫는 순간 불굴의 전사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삶이 40년 지난 때가 1925년 파리였다. 평생을 헌신하며 산다는 것이 정말 가능할 수 있을지 실사례를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소설속 인물인 블랑슈는 실제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성의 궁전'은 실제로 파리에 있는 곳이다. 이런 현실 예시는 종교적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했으리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종교이건 무엇에건 인간의 삶에 있어서 믿음이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솔렌은 이제껏 '대필작가'라는 일의 깊은 의미를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자신이 맡은 일의 진짜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대필 작가는 펜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이 필요한 사람에게, 그리고 언어가 필요한 사람에게 펜과 손과 언어를 빌려주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머릿속, 마음속의 글을 다른 이에게 전달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판정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운반해주는 사람이다. 솔렌은 편지를 쓰기에 앞서 자신은 운반자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새겨넣었다. (p. 173)

솔렌의 좌절과 포기와 번민과 재시도 속에서 만나는 '여성의 궁전' 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슴을 부여잡게 만드는 사연들을 안고 있다.

전통이라는 이름의 범죄로부터 딸을 구해내기 위해 가족을 떠나야 했던 기니 여성은 함께 데려오지 못한 아들 생각에 밤마다 숨죽여 울었다. 가족이 아닌 사람이 여자를 이름으로 칭하는 일이 금지되어 있는('누구의 아내' 이거나 '누구의 딸', 혹은 '누구의 누이'로 불리거나 가족의 이름을 모를 경우 그저 '아주머니'라고 불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여자는 파리에 와서야 이름이 생겼다. 버려진 아이로 자라나 거리에서 낳은 아이와 생이별한 후 세상 모두에게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여성도 있었다. 20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칼을 맞고서야 도망쳐 나온 여성의 남편은 재판에서 징역5년에 유예1년을 선고받았다.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여성으로 살고자 한 이는 여성의 궁전에서조차 쉽게 어우러지기 힘들었다. 여성노숙인으로 54번이나 강간을 당했던 여성은 방을 배정받고도 침대에 눕지 못했다. 그리고 또 다른 사연의 여성들이 있었다... 다양한 폭력에 내몰린 여성들은 차고 넘치고 있었다... 운반자로서의 봉사는 의도치 않게 솔렌을 한계로 몰아넣었다.

프랑스 구세군은 결핍 속에서 후퇴를 거듭해야 했던 시간을 이겨 내고 눈부신 도약을 이루었다. 페롱 사령관 부부의 주도하에 대역사의 시대가 열렸다. 원대한 계획들이 차례로 실현되었다. 블랑슈와 알뱅은 파리 고블랭 구역에 '시민 궁정'을 건립했다. 노숙인을 위한 쉽터였다. 한편으로 라 퐁텐오루아 거리에 여성 피난소도 만들었다. 프랑스 거의 전 지역에 피난소가 생겼다. '가난한 자의 옷장'이 설치되었다. '자정의 수프' 사업도 시작되어 파리의 밤거리를 누볐다. (p. 144)

빈민구제 사업에 헌신하던 블랑슈에게도 사랑은 찾아왔다. 같은 일을 하던 구세군 청년이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둘이 되니 에너지가 배가된듯 더 활발하게 사업을 펼쳐나갈 수 있었다. 좌절도 있었다. 해도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빈민들의 삶에 블량슈 본인마저 실망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할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신문에서 한 기사를 읽게 된다.

"주거용 대형 건물이 비어 있어요, 그것도 파리 시내에!" 블랑슈의 두 눈이 열기를 띠며 반짝였다. 벌떡 몸을 일으켜 알뱅 앞에 섰다. "그 건물을 사야 해요! 그래서 집이 없어 거리로 내몰린 파리의 모든 여자들이 와서 쉴 수 있게 해야 해요" (p. 180)

"고통을 멈추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아뇨, 세상의 고통은 계속될 거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멈출 수 없어요" 블랑슈가 꿈꾸는 것은 고통받는 여자들이 쉴 수 있는 장소였다. (p. 182)

방의 개수만 743개에 이르는 대형 주거 건물이 5년이 넘도록 거주자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한 재단 소유의 이 건물은 1차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독신자 거주용으로 지어졌다. 시 당국이 이 건물을 사들이려 했지만 높은 매입 가격과 유지 관리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계획을 접어야 했다. 엄청난 액수의 예산이 필요했다. 구세군은 가난한 단체였다. 하지만 블랑슈는 뜻을 세웠고 목표를 정했다. 이 건물터는 과거 도미니크파 은거 수녀 공동체인 십자가수녀회 수도원이었다. 블랑슈에게 이 건물은 운명적인 곳이었다.

솔렌은 대필 작가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여성 궁전 원장님에게는 전화로 제 뜻을 알리려고 해요. 그곳에서 일하는 건 전투를 벌이는 것처럼 힘들어요. 그 일을 감당하 힘이 없어요. 그곳 여자들의 상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해요. 그들의 망가진 삶을 보면서 제가 휘청거러요. 저 역시 영영 주저앉고 말겠어요" (p. 292)

백년전 블랑슈의 전투와 지금 솔렌의 전투는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두 전투는 서로 어떻게 엮이게 될까?

솔렌이 '블랑슈 페롱' 이라는 낯선 이름을 확인하기까의 여정은 소설을 읽으며 직접 확인하기를 권한다.

다만 전투의 결과만 미리 스포하자면, 두 전투 모두 승리한다. ^^

이 책의 원제는 Les Victorieuses '승리한 여자들' 이다.

ps1. 전작보다 왠지 서툴게 구사되는 듯한 문장들이 처음엔 의아했다. 그러나 읽어가면서 솔렌의 감정에 동요하면서 그 서툼이 더 편안해졌다. 나 역시 사회의 불안을 마주하는 일에는 서툰사람이라서인지...

ps2. '사회가 보듬어 주지 못한 이들에게 쉴 곳을 제공한다' 는 그 임무를 단 한번도 소홀히 한 적이 없는 '여성궁전' 이 실존하는 파리에 가보고 싶어졌다. 파리에는 에펠탑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찬란한 궁전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관광지로서의 파리에 그닥 큰 유혹을 느끼지 않았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난 후 파리가 갑자기 정겹게 다가온다. 여하튼 파리는 그야말로 '궁전'들의 도시인 것은 맞는 모양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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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남기는 글쓰기 - 쐐기문자에서 컴퓨터 코드까지, 글쓰기의 진화
매슈 배틀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반비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양피지에서 스마트폰의 스크린까지,

글쓰기는 어떻게 우리의 정신과 함께 진화했는가

 

이 책의 원제는 PALIMPSEST : A History of the Written Word 로 글의 역사 혹은 문자의 역사라고 번역되는데 번역기에서 자동번역되지 않는 PALIMPSEST 는 따로 사전을 찾아봐야 했다. '원래의 글 일부 또는 전체를 지우고 다시 쓴 고대문서' 라고 나온다. 원래의 글을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썼기 때문에 새로 쓴 글 아래 예전의 흔적이 남아있기 마련이다. 그 흔적,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핵심 단어 이다.

팰림프세스트는 고대에 이루어진 양피지의 재활용으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원본 글이 삭제되거나 일부 지워진 자리 위에 새로운 글을 적어 넣은 표면'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고대의 경제를 향한 실용적인 찬사가 '팰림프세스트'가 가지는 의미의 전부는 아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확장된 용례'에 따르면 팰림프세스트는 '특히 예전 형태의 흔적을 여전히 간직한 채로 재사용되거나 변경되었다는 의미에서 이런 표면과 엇비슷한 것'을 가리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이 정의를 뒷받침하는 예문으로 토머스 드퀸시의 말을 실었다. "인간의 두뇌만큼이나 자연적이며 힘센 팰림스세스트가 또 어디 있겠는가?" (p. 12~13)

팰림프세스트가 책 내용의 전반을 아우르는 핵심단어라면 '들어가며' 에 나오는 문장인 '인간의 두뇌만큼이나 자연적이며 힘센 팰림프세스트가 또 어디 있겠는가' 는 이 책의 핵심주제이자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점토에 남았건 양피지에 남았건 종이에 남았건 스크린에 남았건 모든 글은 나름의 흔적을 남긴다. 이 모든 흔적은 결국 인간의 두뇌 아니 인간의 정신에 흔적을 남겼다. 저자는 이 흔적들을 찾아 고대부터 현재까지 관찰해보고자 한 듯 하다.

언어와는 달리,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광범위하면서도 인간적일 수밖에 없는 글 읽기와도 달리, 우리는 글쓰기 없이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실제로 수만 년 동안 글쓰기 없이 살아왔고,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글쓰기 없이 살고 있다. 언어와는 달리 글쓰기는 두뇌 속에 부재하면서도 외상을 남기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글쓰기가 두뇌에 한번 자리를 잡고 나면 끄집어낼 수 없다. 우리가 글쓰기를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글쓰기도 우리를 필요로 한다. (p. 17)

생각해보니 그렇다. 말하지 않고는 못살지만 쓰지 않고도 살수는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말하기가 글쓰기보다는 먼저였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오랜세월 말하기로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사회는 별무리 없이 굴러왔을 것이다. 인간의 진화 역사에서 문자의 시대는 그리 길지 않다. 인간은 왜 글을 쓰게 되었을까...

중첩되는 형상들로 이루어진 글쓰기라는 뒤엉킨 타래에 대해 흔히 쓰이는 은유가 있다. 바로 팰림프세스트다. 기존에 쓰였던 텍스트의 잉크와 희미한 흔적은 새로운 텍스트 아래에 존재하며 지워진 것의 흔적을 보존한다. 이와 연관된 시 장르인, 시인이 앞서의 의견을 철회하면서도 완전히 말소할 수 없는 개영시처럼, 팰림프세스트는 진정한 삭제란 없음의 방증이다. 저자-지우는 자의 손아기를 빠져나가는 잔류 흔적이 언제나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페이지 위의 글은 아무리 갓 쓰였다 해도 팰림프세스트다. (p. 18) 글쓰기의 팰림프세스트는 시간을 거슬러 가면 갈수록 동시에 새로운 형태를 향해 자신을 밀어붙일 것이다. 팰림프세스트는 오래된 흔적을 아무리 지우려 한들 반드시 그 흔적이 남기 때문이다. (p. 19)

입 밖으로 뱉은 말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으니 말조심해야 한다는 의미의 속담이나 숙어들이 많다. 말에는 흔적이 안 남는다고나 할까. 하지만 글은 다르다. 노트에 쓰던 컴퓨터에 쓰던 글은 썼던 것을 지울 수 있다. 깨끗이 지워도 흔적이 남는다는 의미는 물적흔적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보면 글쓰기는 수단이 어떠하든 다 흔적이 남는다. 쓰기의 흔적에 대한 은유, 그것이 팰림프세스트 였다.

글자 자체도 새긴 글에서 시작된다. 글자(character)의 어원은 자국을 남기거나 새기는 도구를 뜻하는 그리스어(카락테르), 그리고 '새기다, 조각하다, 자르다' 라는 뜻을 가진 동사 카락테인 이다. 영어 character의 첫 용례는 글자 그 자체가 아니라 새겨진 모든 흔적과 기호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인쇄술이 도입되기 전까지 character는 알파벳의 글자들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었다. (20~21)

어원에 대한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어원의 역사는 문자의 발자취를 문자의 흔적을 거슬러올라가는 과정인 것 같다.

나는 인간의 경험에 글쓰기가 미치는 영향을 교권이라고 부른다. 원래는 신학적 주제에 있어 교회의 가르침이 가지는 권위를 일컫던 교권이라는 단어는 스티븐 제이 굴드가 상호 보완적인 지적 분야인 과학과 종교에 붙인 이름이기도 하다. 글쓰기의 교권은 그리 오래된 교권도 아니고 음악이나 신학이 가진 덕망을 따라잡지도 못한다. 그러나 글쓰기의 교권은 역사적으로는 새로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읽고 쓰는 사람들의 개별 정신과 집단의식 속에 촘촘하게 엮여 있다. 글쓰기는 무척이나 심도 깊고 밀접하게 읽고 쓰기의 정신을 재구성하기에 그것이 힘을 행사하는 방식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다. 글쓰기는 그것이 가진 인지적 카르스마, 팰림프세스트적인 장식무늬와 가혹한 규율에 힘입어 인간 정신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아마 무슨 도전이건 스스로의 교권을 확장시키는 기회로 바꾸는 문자의 교권에 필적할 만한 것은 음악과 종교뿐일 것이다. 글쓰기는 그 역사 내내 고대의 방식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동시에 새로운 매체와 양식으로 확장하며 혁신했다. (p. 30~31)

'교권'이라는 용어에 한자가 표기되있지 않아서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으나 가르친다는 것과 종교적인 힘 두 가지가 다 들어있는 개념으로 저자는 쓰고 있는 듯 하다. 글쓰기의 힘이라... 역사 속에서 문자는 늘 권력의 중심에 있긴 했었다.

인간을 동물과 구분하는 특성, 가장 고도로 발달한 인류 문명의 바탕이 되는 특징은 한편으로는 인류에게는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기에 본능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이는 기억 그리고 기억을 향한 갈망, 즉 시간 속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표식을 새겨놓고자 하는 조바심이다. 이는 바로 언어와 그 언어에 의미를 불어넣고자 하는 충동으로, 이 욕망은 대체로 구술발화라는 형태를 취한다. 도처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이름을 붙이고 묘사할 뿐 아니라 약속하고 맹세하고 거짓말하고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열망이다. (p. 36~37)

문자의 비밀은 무엇보다도 종합의 가능성 속에 숨겨져 있다. 문자와 숫자는 결국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물을 다른 사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인식, 즉 '은유'라고 불리는 기이한 습관은 끝없는 의미의 생성과 확장을 가능케 한다. 그럼에도 이 기호가 담기는 팔레트는 자연이 우리에게 물려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라는 제한적인 동시에 특수한 감각의 스펙트럼을 거쳐 우리에게 전해진다. 인간의 문자는 인간의 특수성을 체현한다. (p. 39)

인간만의 특성은 유발하라리가 말했던 것처럼 상상력이라고 생각한다. 은유도 상상력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이던 글이던 인간이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행위 그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특별한 능력이다. 하지만 말과 글은 분명 다르다.

소크라테스와 글쓰기의 관계-그의 사상을 대필하고 설파한 시인 플라톤이 주장한 바대로라면-는 양가적이고 복잡하다. 소크라테스는 문자가 인간성의 뿌리로 회귀하고자 하는 건강한 질서를 무너뜨리는 파열이라고 보았다. 신화라는 구술 세계에서 발생한 문자에 대한 이 같은 회의주의는 이후로도 건재하다. (p. 56, 57)

고대 그리스의 예술적 문화는 글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리스에서 힘을 가진 이는 공연자와 가수, 곧 필경사와 '저자'를 경쟁자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p. 155) 해블록은 그리스 문학의 아이러니를 언급한다. 음유시인들의 구술낭독을 대체하게 될 알파벳이 구술문화의 보존을 그 첫번째 과제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리스에서 글쓰기의 교권은 왕의 행정적 필요성보다 음향의 미학과 대중 공연을 우위에 두는 '문자화된 구술성'이라는 역설적 형태를 띤다.(p. 156)

서양문화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 문화에서 글의 도입과정이 독특했다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만큼 강압 없이 문자가 상륙한 곳이 없다고 말한다. 고대그리스 시대에도 문자는 이미 있었다. 그리스문명 이전의 문명인 미케네 시대부터 문자는 있었다. 하지만 고대그리스 사회에서 문자를 쓰고 읽을 줄 안다는 것은 그닥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능력이었다. 소크라테스와 비슷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들이 많았다. 글보다는 말. 고대그리스가 남긴 문학과 역사와 철학이 대부분 대화체로 쓰여있음을 알고있었음에도, 문자가 있었으되 권력에 이용되지 않는 시대였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다가온다.

글쓰기가 전설 속에 등장하는 것은 그것이 발명된 것이 아니라 진회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통상적으로 개별적인 사건들, 일어난 일과 그 원인의 기록이라고 정의되는 역사는 진화의 현상들을 단속적으로 다룬다. 진화는 광범위한 것으로 동시에 여러 장소에서 일어나고, 한순간 인지할 수 있는 변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이다. 그리고 진화라는 맹목적이고 인정사정없는 창조물 속에서 문화의 모든 아우성과 변덕이 일어나는 것이다. 글쓰기의 효과는 급진적이다. (p. 64)

인간의 본래적이며 원시적인 인지적 특성의 잔존에 초점을 두는 진화심리학자들은 두뇌가 읽기와 쓰기를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그런 목적에 두뇌가 적응한 것은 우발적인 일이라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척추가 육지에서의 이족 보행을 위해 수직으로 세워진 몸통과 허리를 떠받치는 역할을 하는 것 역시 그 '원래의 목적'이 아닌 우발적인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는 애초에 읽고 쓸 운명이 아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p. 67)

흔적을 남기는 이들은 실용적인 정보 전달이나 능숙한 이야기 방식 이전에 놀이라는 한층 더 기본적인 충동을 공유했다. (p. 76)

글쓰기를 인간의 진화와 연관지어 생각하니 갑자기 생소하게 다가온다. 인류의 진화가 운명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유인원들 중에 직립보행을 할 인류가 나타날지 어떻게 누가 알았겠는가. 말과 글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변화였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굉장히 급진적인 변화이긴 하다. 또한 새로운 발견을 가능하게 한 상상력의 원동력은 놀이에서 비롯될 수 있었음에도 일면 수긍을 한다. 글쓰기가 생존과 직접적인 연결성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 글쓰기의 뿌리를 찾으려 동굴과 모래더미와 비석조각들을 탐색했다는 저자도 결국은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자꾸만 과거와 현재를 묶어주는 쉬운 내러티브를 찾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볼수록 우리는 인간의 복잡성만을 점점 더 알아가게 된다. (p. 80)

저자도 글쓰기의 뿌리를 찾는 복잡성에서 답을 찾지 못해서인지 조금은 구체적인 목표로 좁혀 보기도 한다.

문제는 어째서 문자가 생겨났는지, 또는 무수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문자가 생겨날 수 있었는지가 아니다. 문제는 어째서 그렇게 오래 걸렸나 하는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문자는 환상적인 가소성을 지닌 인간의 두뇌에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전적으로 인간적일 필요는 없지만, 인간은 모든 면에서 언제나 어디서나 쓰기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우리의 두뇌는 문화적 가능성을 계속 다양하게 표현함으로써 정신을 만든다. 문자를 이렇게 바라보면 글로 쓰인 표현이 증가하고 변이하는 것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기 쉽다. (p. 85~86)

문자가 왜 생겨났는지가 아니라 문자가 등장하기까지 왜 그리 오래 걸렸는지를 질문은 신선했다. 앞서 말했듯이 말의 역사는 길고 글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짧다. 하지만 글의 역사는 짧은 시간에 비해 다채로운 변화를 거듭해왔고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를 기록하고, 실수로부터 배우며, 진보를 위한 지식을 나눈다는 공언된 목적 외에도 글은 "인간의 계몽보다는 인간의 착취를 용이하게 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예술을 피워내고 동식물을 길들인 것을 비롯해 다양한 발전을 이룩한, 인류 역사에서 가장 창조적인 시대였던 신석기혁명은 글의 도움 없이 추진된 것이었음을 지적한다. (p. 133~134)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 인류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철학자다. 철학적으로 인류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구조라는 형식적 틀을 찾아내자면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말과 글일 것이다. 인간만의 능력인 '상징성' 에 대한 그의 연구가 궁금하긴 하지만 철학까진 아이쿠;;; 그저 책속에 인용된 그의 문장들에 공감해보는 선에서;;;

인류의 탄생과 인류 문화의 역사에 견주어 보면 우리는 길가메시와 동시대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 이야기에서 여전히 의외와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p. 142)

길가메시의 시대부터 가장 강력하고도 널리 퍼진 언어는 확산되어 정복자와 피정복자 모두의 의식에 뿌리내린 구술언어였다. 이 경우 글쓰기의 교권은 순수하고 단순한 권력의 응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언어의 권력은 언어를 탄생시킨 왕국이 몰락한 뒤에도 살아남는다. (p. 148)

읽은 적 있는 '길가메시 서사시' 가 인용되니 반갑다. 5천년 전에 쓰여진 그 이야기 수준에서 지금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5천년 후의 우리가 여진히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을 수 있는 것은 문자의 힘이기도 하지만 결국 권력문제 인 것 같기도 하다. 소멸되지 않고 남아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결국 권력의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중세 유럽의 문학적 실천에서 부인할 수 없는 지배적 형태였던 베끼기라는 행위에 쏟았던 관심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필사 문헌에는 오류가 아주 많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오류투성이 결과물이 근대 학문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인데, 이 오류가 종종 필사본의 계보를 측정하는 주요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p. 161)

글쓰기는 언제나 팰림프세스트다. 글로 쓰이는 것 중 이미 존재하는 것의 사이에, 또는 그 위에 쓰이지 않은 것은 없다. (p. 187)

오류도 차근차근 쌓이면 기록이 된다. 오류의 흔적도 역시나 언제나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팰림프세스트다.

고대의 시인들과 신들은 무척이나 다른 존재였지만 그들이 독자이자 필자로서 하던 행위에는 같은 습관과 규범이 있다. 카툴루스에게 모든 오래된 책은 읽기뿐 아니라 쓰기의 기회였다. 베끼기, 주석달기, 논평하기, 편지쓰기 말이다. 마리트알리스에게도 바울에게도 글쓰기는 책뿐 아니라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수단이었고 시인과 철학자, 필경사로 이루어진 드넓은 세계를 하나로 이어주는 사회적 접착제 역할을 했다. 그렇게 책들은 쓰기와 읽기, 호의의 주고받기, 공유하는 생각, 사상과 신앙을 함께하는 집단들의 사회적 연결망이 되었다. (p. 231)

기독교의 전파에 글은 큰 위력을 발휘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말과 말로서만 공동체가 엮였다면 사회의 성장은 더뎠을지도 모른다. 인류의 양적 증가에서 글이 발휘한 힘은 교권을 넘어 연결망이 되었다. 어쩌면 권력이 아래로아래로 내려오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출판과 관련해서 '불법복제'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가 타인의 저작을 권한 없이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상업, 행정당국이 발행한, 이 기술을 사용하고 공유할 권한을 부여하는 면허 없이 인쇄기를 사용하는 행위를 가리켰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빈틈없는 보호를 받은 것은 작품이 아니라 생산수단이었던 것이다. (p. 268)

글을 복제하는 수단을 억압하면 허위와 오류를 일삼는 자들뿐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자들 역시 악영향을 입는다는 주장이었다. (p. 271)

글의 위치를 추척해오는 과정은 결국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오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그 과정을 촘촘하게 서술하지 않는다. 읽을수록 정리가 되지 않는 이 기분을 어찌해야 할꼬;;;

어쩌면 페이스북이 핵심을 찌른 건지도 모른다. 우리의 자아를 글로 쓰는 것에 대해선 책보다 담벼락이 더 적합한 은유일 테니까. 전자 텍스트를 책이라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맞추는 대신 우리는 벽과 로켓과 인방을 찾는다. 디지털 세계에서 이는 블로그와 피드, 모바일 디바이스,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터치스크린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p. 281)

우리는 깊이 읽기가 사라질까 두려워하기보다는 읽기가 그렇게 깊은 곳까지 도달했음에 먼저 경이를 느껴야 한다. (p. 302)

글쓰기가 질서 짓고 비교하고 분류하고자 하는 우리의 충동을 만든 것은 아니다. 글쓰기는 우리의 그러한 경향 위에 만들어져서 그것들이 꽃피도록 했을 뿐이다. (p. 304) 글은 문명의 시녀이고 강자의 도구다. 그러나 글이 문학을 위해 열어준 공간 속에서 글은 우리의 자유를 보장하며 우리의 존엄을 지켜준다. (p. 310) 단 한가지만은 믿어도 되리라. 그 편재성과 지속성 덕분에, 확산되는 생명력 덕분에, 자기 자신을 기록하고 연결하고 세계의 날실 속에 짜 넣고자 하는 충동 덕분에, 우리의 글은 우리들보다 오래 살아남으리는 것이다. (p. 321)

과거에 비해 글은 더이상 권력의 도구는 아니다. 지금은 오히려 문화의 도구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하다. 문화로 봤을때도 고정적인 형식을 지키는 것에서 자유분방한 표현의 도구로 변화해왔다. 종이에 쓰던 것을 가상의 공간에 쓴다고 해서 쓰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새로운 공간에 남긴 흔적들은 여전히 우리의 발자취로 우리보다 더 오래 우리를 쫓아다닐 것이라는 점은 알겠는데 그래서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독자에게 어떤 흔적을 남기고 싶었단 말인가;;;

내가 드퀸시의 질문으로 만든 팰림프세스트는 그 용어를 뒤집는다. 정신을 페이지로 보는 은유에서, 어쩌면 내 눈에는 12포인트 조지아체로 쓰인 이 페이지가 일종의 정신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으로 말이다. (p. 330) 이 새로운 종류의 페이지는 정신, 페이지로서의 정신을 뒤집으려는 정신일까? 나는 결론이 그렇게 간단하고 생각지는 않는다. 글이 쓰이는 표면은 변화했지만 결국 우리가 만들어내는 음악의 성격을 정하는 것은 우리 독자, 사상가, 작가 모두가 맺는 인간관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과 페이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글 속에서 함께 존재하는 우리가 맺는 관계다. (p.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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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미술 365
김영숙 지음 / 비에이블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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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짧다, 찬란하다, 재미있다!"

내 손 안에서 펼쳐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교양 수업

책표지나 띠지에 써있는 출판사의 홍보문구는 늘 기대치만 올려놓고 실망감을 주기 마련인데 이 책은 홍보문구에 충실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드물게 알찬 책이었다. 그림보기를 좋아하고 그림에 얽힌 이야기는 더 좋아한다면 이 한권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다. 매일 1페이지씩 365점의 명화와 함께 보고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된 이 책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작품, 미술사, 화가, 장르·기법, 세계사, 스캔들, 신화·종교 총 일곱 분야의 지식을 다루고 있어서 미술관련 잡학다식용으로 이만한 것이 별로 없지 싶다.

컬러풀의 각 장마다 그림과 글자의 분배에 균형을 맞추고 한 페이지로 정리한 깔끔한 구성미도 돋보이고 주제에 충실한 보조자료들을 주석뿐만 아니라 참조 페이지와 연결 카테고리 를 번호기재하여 책 안에서 상호보완을 가능하게 하며 책 뒤편의 문헌과 색인까지 흠잡을데 없이 빼곡하게 꽉찬 교양서다.

역사를 좋아하다보니 그림관련 책도 종종 보게 되는데, 연대사로 보던 책과 달리 주제별로 읽으니 또다른 재미가 있었다. 때로는 그림에 눈이 머물로 때로는 내용에 마음이 가면서 나중에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도 종종 찾아보게 될 것 같은 책이기도 하다.

책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그림과 내용이 다 인상적이고 재미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골라본다면,

여성미술사 책에서 봤던 '로사 보뇌르'의 노년의 자화상, 일본의 한 대기업 총수가 자신이 죽으면 함께 묻어달라는 말까지 남기며 애지중지했던 '가셰 박사의 초상', '모나리자' 와 거의 흡사한 쌍둥이 모나리자 그림 과 아일워스의 모나리자, 조금은 기묘하게 보이는 얀반 에이크의 초상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서글프게 생각하게 만들었던 다모증을 앓던 소녀의 초상화, 피에타 의 팔과 '마라의 죽음' 의 팔의 연결성, 고흐가 펜과 잉크로만 스케치하듯 그린 그의 연인그림, 클림트의 '키스' 를 멀리 보았을때의 의미, 기독교 종교화에서 흔치 않은 입맞춤 그림이었던 '안나와 요아킴의 입만춤', 기존에 익숙하던 루벤스와 화풍과 너무 달랐던 루벤스의 자화상, 이해할 수 없는 그림 '폭풍', 만화영화 '플랜더스의 개'에서 네로가 보고싶어했다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그림, 아무도 몰랐던 쇠라의 여인 그림, 고흐가 보고 반했다지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던 램브란트의 그림, 뒤크뢰의 유쾌한 자화상, 산타클로스의 기원을 알려주던 그림,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기독교로 개종시킨 어머니 헬레나를 그린 그림 과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제우스신화에 견주었던 이야기, 도자기 싸는 종이로 사용되던 일본의 목판화가 유럽에 선풍적 인기를 끈 이야기, 라오콘 군상의 전시로 인해 시작된 바티칸 미술관 이야기, 이콘화 에서 알 수 있는 기독교 사회의 분열, 익숙하게 봤던 아우구스투스의 전신상이 맨발인 이유, 루벤스의 아내에 대한 사랑, 스쿠루지 영감의 모델이 되었던 가문의 이야기, 에곤 실레 곁에 머물던 발리 라는 여인 이야기, '쾌락의 정원'에서 볼 수 있는 기묘함이 연결된 것으로 추정되는 종교단체 이야기, 드가가 카메라 시선으로 그린 이유, 아담과 이브의 누드화가 유행했던 이유, 들라크루아와 쇼팽의 인연, 터너가 유서에 남긴 말, 밀레의 '만종'에 얽힌 이야기, 다빈치의 모나리자 그림이 프랑스에 머물게 된 배경, '일그러진 진주' 였던 바로크 미술, 루터와 수녀가 결혼하게 된 이유, '다다'의 뜻, 로마 초상의 변화, 미켈란젤로의 순정, 베로키오와 다빈치가 함께한 그림, 마리아 테리지아의 멋짐, 마리아 막달레나의 누드화가 인기있던 이유, 틴토레토와 딸, 교황의 사생활, 프라 필리포 리피 의 야반도주, 앵무새의 다양한 상징, 홀로코스트와 누스바움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다른 그림과 이야기들도 종종 찾아볼 것 같기는 하지만 위에 언급한 그림과 이야기들에는 따로 표시를 해두었기에 더 자주 찾아보게 될 것 같다. 나는 책을 읽고 나면 같은 책을 다시 보지 않는 편이지만 이 책은 예외적일듯하다.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호기심에 때로는 참고자료로 때로는 위안용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을 알게 되고 곁에 두게 되어 읽는 내내 참 좋았더랬다. 다만 이 책의 구성과 의도상 그림 크기가 아쉬울 때도 있었지만, 이런 아쉬움을 덮을 만큼 충분히 유용하고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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