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핑 더 벨벳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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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워터스의 대담한 대뷔작이자 빅토리아 시대 3부작의 출발점

 

 

세라 워터스 라는 작가의 빅토리아 시대 3부작은 '티핑 더 벨벳' - '끌림' - '핑거스미스' 인데 이 중 '핑거스미스'가 영화 '아가씨'의 원작 소설이라고 한다. 영화 '아가씨' 에 대해서 과한 미장센이 어쩌구 세계적인 한국인 감독 어쩌구 를 다 떠나서 나는 그 영화를 굉장히 신선한 충격을 받으며 봤었다. 내가 그동안 몰랐었을 수도 있지만 이제 이런 영화가 이렇게 세상에 활짝 펼쳐질 수 있는 시대구나라는 것을 강렬하게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다. 그 원작 소설을 쓴 작가의 작품에 대해 궁금해진 계기가 되기도 했다.

빅토리아 시대 라고 하면 여왕의 가족사진에서 암시되듯 강압적인 윤리관이 지배하던 시대라고 알고 있다. 희한것이 윤리를 강조하는 시대일수록 퇴폐는 더욱 성행한달까. 유리창을 깨끗이 닦으면 닦을수록 그 유리창을 닦은 수건은 더러워지듯 깨끗해진 유리창 바닥엔 항상 더러워진 수건이 떨어져있기 마련이다.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은 대부분 깨끗해진 유리창보다는 바닥에 떨어진 수건에 주목하곤 하는 듯 하다.

18년 동안 나는 내 <굴적> 교감을 절대 의심치 않았으며, 아버지 부엌 너머의 직업을 찾으려 기웃거린 적이 없었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였고. (p. 11)

내게는 좋아하는 것이 있었다. 열정이라고 말해도 좋다. 바로 연예장이었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연예장의 노래와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p. 12)

나 같은 사람은 어두운 객석에 무명으로 앉아 연예인을 지켜볼 운명이었다. 아니면 뭐 어쨌듯, 나는 그런식으로 생각했다. (p. 15)

 

낸시는 윗스터블 이라는 영국의 작은 마을에서 굴식당을 운영하는 대가족의 평범한 소녀였다. 자신의 외모에 자신이 없고 수줌음도 많았지만 식당일을 끝내고 15분정도 기차를 타고 가서 극장쇼를 관람하는 것을 열정적으로 좋아했고 그 노래들을 흥얼거리는 것을 즐기곤 했다. 일주일에 한번 가던 연예궁전에 매일 가게 된 계기가 발생했으니,

내가 본 가운데 가장 멋진 여인이었다. 나는 보자마자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p. 20)

흡사 저녁 시간을 낯선 이들 사이에서 보내도록 강요받은 것만 같았다. 가족은 공연의 작은 부분 하나하나까지 즐거워하며 보았고, 내가 그토록 지루함을 견디려 애썼던 내용을 가족이 즐긴다는 점이 내게는 충격적이고 바보스럽게 보였다. (p. 33~34)

 

낸시는 극장에서 키티 라는 남장여가수를 보았다. 그리고 눈을 뗄 수 없었다. 키티를 보기 위해 매일 궁전극장에 갔고 가족과 함께 간 날은 가족들과 이질감을 느끼며 키티 공연 외의 공연들을 견뎌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잠시 온몸이 마비된 듯 앉아 손에 든 꽃을 응시했다. (중략) 캐묻기 좋아하고 어떻게 하는지 보겠다는 듯한 시선들이 내 쪽을 향해 있었고, 고개를 든 나는 머리를 끄덕이고 킥킥거리고 눈을 찡긋거리는 이들과 시선이 부딪쳤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특별석의 그늘 속으로 움츠러들었다. (p. 39(

"그냥 네게 버틀러양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뿐이야" 토니가 간단히 말했다. "자, 나랑 같이 갈래 말래?" (p. 41)

 

키티는 공연 마지막 즈음에 여성 관객 중 한 명을 골라 장미 한송이를 주곤 했다. 그 장미를 받던날 낸시는 감격에 차 올랐다. 키티 버틀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낸시를 매일 특별석에 공짜로 앉혀주던 언니의 애인 토니는 낸시에게 키티를 만나보겠느냐고 묻는다.

"당신이 여기 오는 이유가 정말 저 때문인가요? 저는 지금까지 팬이 있어 본 적이 없어요!" (p. 43)

나는 생각했다. '정말 이상해! 하지만 또 아주 정상이야. 저는 당신을 사랑해요' (p. 47)

"당신에게서 냄새가 나요. 마치..."

"마치 청어 같은 냄새죠!" 내가 씁쓸하게 말했다.

"청어라니, 천만에요. 그런게 아니라 뭐랄까, 마치 인어 같아요..." (p. 48)

키티와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 이제 무대에 선 키티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키티의 분장실로 매일 출근하다시피 가게 된 낸시는 갈수록 점점 더 커져가는 마음에 어쩔줄 몰라한다.

나는 늘 같은 감정을 느꼈다. 이내 기쁨과 가슴 아픈 사랑으로 바뀌는 실망과 후회의 번민이었다. 만지고 껴안고 애무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 욕망이 너무나 강했기에 나는 고개를 돌리고 있거나 나도 모르게 달려가 꼭 안을 까 두려워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p. 52)

키티 버틀러가 나타난 뒤로 세상은 완전히 달라진 듯했다. 키티가 오기 전 세상은 평범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키티가 음악을 울리고 빛을 발하는 야릇하고 흥분되는 공간으로 가득했다. (p. 54)

키티는 내게 온 세상보다 더 귀했다. 키티가 우리 집에 와서 내 가족과 식사를 한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면서 동시에 무시무시하게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나는 키티를 사랑했기에 키티가 우리 집에 오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내가 키티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되었다. (p. 61~62)

 

키티와 낸시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그 과정에서 풀어지는 낸시의 심리는 딱 사랑에 빠진 연인의 모습 그것이었다. 키티에게도 낸시의 존재는 각별했다. 그렇기에 다음 공연장소로 떠나야 할 때 낸시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아버지는 결론 내리길, 그러나 아이들은 부모를 기쁘게 하려고 태어난 게 아니며 딸이 평생 자기 옆에 있으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p. 82)

다행스럽게도 낸시의 가족은 따듯하고 부모님은 바람직한 교육관을 가진 분들이었다. 갑작스럽게 떠나기로 결심한 낸시를 가족들은 이해해준다.

나는 키티와 내가 완전히 같은 느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대상은 달랐다. 훗날, 나는 이를 기억했어야 했다. (p. 99)

나는 키티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대로 키티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아니면 아예 키티를 사랑하지 말아야 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끔찍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p. 107)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제멋대로인 런던의 방식과 관례를 배우는 듯했다. 마침내 키티에 대해 편해진 것처럼 런던 역시 편해졌고, 그러면서 나는 끝없이 매혹되고 반해 갔다. (p. 117)

 

비록 2류이긴 했지만 변두리 도시들의 극장에 서던 키티가 런던의 극장들에서 공연을 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의상담당자로 키티 옆에 함께 있게 된 낸시에게도. 그리고 서로를 향한 사랑의 감정에도. 하지만 대부분의 행운이 그러하듯이 그 행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몰랐죠? 제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요?"

"잘 모르겠어요. 그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왜요? 당신과 친구가 되는 게 더 쉬워 보였어요"

"하지만 키티, 그게 바로 제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오, 정말 어려웠어요! 하지만 만약 제가 당신을 연인처럼 생각하는 걸 당신이 안다면... 저는 그런 일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당신은요?" (p. 144)

나는 열여덟 살이었고, 아무것도 몰랐다. 그 당시 나는 키티의 사랑을 얻을 수만 있다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p. 158)

 

런던은 연예극장의 도시였고 향락과 쾌락의 도시였다. 화려한 런던에 매혹되었던 키티와 낸시는 차츰차츰 그 이면의 세계들도 알아간다. 그리고 자신들의 매력과 능력에 대해서도. 무엇보다 자신들의 성 정체성에 대해서도.

간단히 말해, 나는 천직을 찾았다. (p. 165)

1889년 런던의 연예장에는 우리처럼 공연하는 이들이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또한 어쩌면 역시 월터가 예언했던 대로 여자 <두명>이 신사복을 입은 모습이 여자 한 명이 바지에 실크해트에 각반 차림을 한 것보다 더 멋지고 흥분되고 형언할 수 없이 더욱 <음란>해 보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는 아주 멋지게 어울렸다. (p. 168)

나는 그냥 걷거나 키티 곁에서 가볍게 스텝을 밟을 뿐이었다. 나는 키티의 장식이자 메아리였다. 나는 키티가 밝게 빛나며 무대를 가로질러 던지는 그림자였다. 그러나 그림자로서 나는 키티에게 그전까지 없었던 깊고 선명한 가장자리가 되어 주었다. (p. 170)

 

낸시는 키티와 함께 무대에 오르게 된다. 장식이던 메아리던 그림자던 가장자리던 낸시는 마냥 좋았다. 그리고 이 소설은 낸시가 그 가장자리에서 중앙으로 그림자에서 주인으로 메아리에서 목소리로 중심에 서는 성장기이기도 하다.

키티 옆에 서고 도시의 거리를 키티와 함께 걸을 때면, 나는 수갑과 족쇄를 차고 사슬에 묶이고 눈가리개를 하고 재갈이 물린 느낌이 들었다. 키티는 내게 사랑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키티는 세상은 내가 키티의 친구 이상이 되는 일을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p. 170~171)

"낸! 그 사람들은 우리와 달라요! 그 사람들은 우리와 완전히 달라요. 그 사람들은 <톰> 이라고요" (p. 175)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난 이후가 낸시에게는 오히려 더 힘들었다. 키티는 너무나 조심스러워했고 낸시는 너무나 열정적이었다. 키티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키티는 점점 더 호기심을 키워갔다.

이런 부끄러운 말을 가족에게 하느니 차라리 즉는 게 나아. 넌 절대로 그 사실에 대해 가족에게 말하면 안 돼. 처음 우리를 떠나며 가족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으로도 모자라 가족의 마음을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아프게 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야. 부탁하건대, 더는 부끄러운 비밀로 나를 힘들게 하지 말아 줬으면 해. 대신 너 자신과 네가 걷고 있는 길을 돌아보고 정말로 그게 옳은지 네 자신에게 물어봐. (p. 179~180)

낸시가 세상에가 가장 믿고 따르고 좋아하던 친언니 앨리스에게 자신의 본심을 전달했을 때 앨리스가 보낸 답장은 낸시에게 깊은 상처가 되었다. 공연은 점점 늘어갔고 상처와 바쁨은 가족에게서 낸시를 점점 더 멀어지게 했다. 그럴수록 낸시가 키티에게 품은 열정은 점점 더 커져갔다. 하지만,

"나는 그래. 그리고 주목의 대상이 되는 이상 나는 비웃음당하는 걸, 미움받는 걸, 조롱받는 걸 참을 수 없어. 또다시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아"

"톰!"

"그래!"

"하지만 우리는 조심할 수 있어"

"절대로 충분히 조심할 수 없어! 너는 너무, 낸 너는 너무나 남자 같아" (p. 226)

 

키티는 낸시를 사랑했지만 매니저 월터와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결심을 낸시에게 말하기전에 낸시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둘의 모습을 보게된다. 낸시는 충동적으로 도망친다. 이렇게 1부가 끝난다.

이곳에 처음 온 뒤로 세상을 보는 내 시각이 얼마나 크게 달라졌던가! 나는 런던의 삶이 내가 생각해 왔던 것보다 더욱 낯설고 다양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러나 평범한 눈에는 그 모든 다양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배웠다. 도시의 모든 부분이 매끈하고 우아하게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마찰하고 심하게 스치고 부딪치고 밀쳐 대고 겹친다는 사실을 배웠다. 일부는 무서워 자신을 숨기고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는 사람들에게만 그 존재를 드러냈다. 이제 전혀 뜻하지 않게 나는 그런 비밀스러운 부분의 눈에 띄었고, 그 일원으로 선포된 것이다. (p. 261)

낸시는 어둠에 숨어 자신이 망가지게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한참을 보내고 나서야 새로운 자신의 삶에 대해 의식하기 시작한다. 2부가 시작된다.

이 소설은 총 3부로 되어있고 1부는 낸시의 새로운 삶에 대한 도입부처럼 느껴졌다. 본격적인 파란만장한 삶은 2부부터 시작될 터였다.

6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이 소설의 제목이 뜻하는 바를 몰았었다. 536p의 주석8에 가서야 '은어'의 뜻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왔을때 원어 그대로 그 의미를 아는 사람들이 느꼈을 충격이 나는 감이 잡히지 않는다. 내가 아무 생각없이 '아가씨' 라는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느낌 그런 것이었을까?

<무슨 내용인가요?> 내가 소설을 썼다는 얘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때때로 이렇게 묻곤 했다. 그리고 나는 매번 대답을 하기 위해 마음을, 약간은, 다잡아야 했다. 다소 음란한 제목을 설명하기가 어색했다. 또한 플롯을 밝히기 시작한 순간 내 정체성을 밝히게 된다는 사실도 그랬다. 그리고 플롯 자체도 그랬다. 왜냐하면, 오 맙소사, 엄청나게 야하고 부적절해 보이는 제목도 그렇거니와, 그 무엇보다도, 내용이 너무나 한정된 독자층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굴 파는 소녀가 남장 여가수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 여가수와 같이 자고 또 함께 연예장 무대에 서게 되고, 그러다가 잔인하게 버려진 뒤, 한동안 남장을 하고 피커딜리에서 매춘(남창)을 하다가, 돈 많고 나이 든 여자의 섹스 노리개가 되었다가, 마침내 이스트엔드의 사회주의자에게서 진정한 사랑과 구원을 찾는 이야기라니 말이다. 나는 레즈비언들이 이 책을 좋아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아주 빠르게 입소문을 통해 '티핑 더 벨벳'에 열광하는 게이 팬들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가슴이 설렜다. 하지만 이성애자 독자들 사이에 이 소설이 성공했다는 사실에는 깜짝 놀랐다. (p. 613)

'티핑 더 벨벳'이 20년간 겪은 대우의 변화는 영국의 레즈비언과 게이들이 삶에서 겪은 거대한 변화와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제 그들은 이성애자들과 똑같이 결혼, 양육, 취직의 권리를 누리고, 주류 문화를 즐긴다. 1998년의 나는 이런 일이 가능하리라고는 도저히 믿지 못했을 것이다. (p. 614)

- 작가의 말 '출간 20주년에 부쳐' 中 -

 

이번 책은 10년만의 개역판이기도 하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수정하는 것 못지 않게 번역가가 자신의 번역을 수정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을까. 10년 전 이 작품의 한국어판 제목은 '벨벳 애무하기' 였다고 한다. 역자는 10년전 자신의 번역에 대해 후기에서 '반성?!'하고 있었다. 절판되었던 작품을 다시 손보고 제목도 원제 그대로 해서 나올 수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 (작가는 20년 간의 변화를 느꼈다지만 우리나라에선) 지난 10년동안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최근 퀴어문학은 우리나라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분야가 되었다.

'티핑 더 벨벳'은 작가의 첫 작품이니만큼 설정에서의 우연과 캐릭터들의 일관성이 서툴어보이는 부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서툼을 잊게 하는 강렬한 전개와 솔직한 심리묘사가 읽을수록 빠져들게 하는 몰입력을 갖고 있는 작품이었다. 이 소설에 영감을 받은 영국 대중문화의 다양한 흐름들 덕에 작가는 큰 힘을 얻은 것 같아 보인다. 그러한 흐름이 우리나라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나또한 의미있게 읽은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최근 읽었던 프로이트 책으로 인해 나는 이 작품에 더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성의 '다양성'에 대해 우리 사회도 좀더 열리고 있는 것이리라 생각해본다.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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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가지 흑역사로 읽는 세계사 : 고대~근대 편 - 마라톤전투에서 마피아의 전성시대까지 101가지 흑역사로 읽는 세계사
빌 포셋 외 지음, 김정혜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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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전투에서 마피아의 전성시대까지

굴욕의 역사를 유머스러운 필치로 집대성한 흑역사의 바이블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때로는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필요로 할때가 있다. 역사에 '가정'은 불필요하다지만 '만약에' 라는 가정을 해보는 과정은 늘 흥미롭다. 그렇기에 역사의 교훈은 원인과 결과분석을 통해 얻을 수도 있지만 만약에 라는 가정을 통한 상상을 통해서 얻을 수 있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흑역사'에 대해 주목해보는 것은 재미있는 과정이다.

인류 역사 전반에 일관된 현상이 하나 있다면, 아무것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인간들이 역사를 만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p. 4) 96개의 글로 이뤄진 이 책은 인류의 흑역사를 되짚어 본다. (중략) 101가지 흑역사는 각각의 상황에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요술을 부렸다. (중략) 그런 흑역사가 없었더라면 오늘늘 우리 삶이 어떤 모습일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의 모든 여행이 끝날 즈음이면 세상을 변화시킨 흑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p. 5)

96편의 글에서 101가지 흑역사를 풀어내는 원래의 책이 한글판으로 나오면서 2권으로 분리되어 나온 듯 하다. 고대~근대편 과 현대편이다. 하지만 고대~근대편도 대부분 근대편이라고 할 수 있어서 이 책의 흑역사들은 대부분 가까운 역사의 장면들을 주로 들춰내고 있었다. 내가 읽은 '고대~근대편' 에서는 50개의 흑역사에 대한 50번의 '만약에' 가 등장한다.

아테네 사절단이 자신들이 무엇에 동의하는지 정확히 따져보았더라면?(페르시아가 요구한 물과 흙을 바치라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했더라면)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알키비아데스와 니키아스가 다른 선택을 하여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델로스 동맹이 승리했더라면?

알렉산드로스대왕의 공격에서 다리우스 대왕이 도망가지 않았더라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기전에 후계자를 명확히 지명했더라면?

카이사르를 종신독재관으로 임명하지 말던지 혹은 암살하지 않았더라면?

바루스가 아르미니우스를 깊이 신임하지 않아 토이토부르크숲에서의 패전이 없었더라면?

율리아누스황제가 일찍 죽지 않았다면?

로마의 관리들이 고트족과의 약속을 지켜 삶의 터전을 지원해주고 세금을 쥐어짜지 않았다면?

해럴드왕이 잉글랜드의 모든 병력이 집결할 때까지 기다려서 노르만족의 침범을 물리쳤더라면?

로마누스 황제가 튀르크 군대에게 등을 보이지 않았더라면?

리처드왕이 신성로마제국에 포로로 잡히지 않고 잉글랜드로 무사히 돌아왔다면?

고려와 몽골의 연합군이 일본을 점령할 수 있었다면?

콜럼버스가 자신의 경로계산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했었다면?

스페인함대가 왔을때 아즈텍의 몬테수마2세가 좀더 빨리 결정을 내렸다면?

교황 클레멘스가 헨리의 이혼을 용인해주었다면?

히데요시가 조선정복이 아닌 일본내치에 매진했더라면?

스웨덴의 칼12세가 발트해 정복욕을 조절할 수 있었다면?

조지3세가 미국식민지의 국민들 감정을 헤아릴 수 있었다면?

조지워싱턴이 프랑스사절단을 알아보고 공격하지 않았었다면?

1781년 영국의 두 해군 장교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면?

마리 앙투아네트가 마차 변경을 하지 않았었다면?

조지워싱턴이 과잉진료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략하지 않았다면?

미셀 네 장군이 전세 판단을 제대로 하고 나폴레옹이 워털루전쟁에서 승리했다면?

미국 남북전쟁 전에 남부 연합이 10년만 빨리 연방을 탈퇴했었다면?

영국의 무기회사 엔필드가 인도에서 사용할 총알에 동물기름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미국 남부 연합이 노예제와 목화를 평화롭게 이혼시키는 방법을 찾았더라면?

북군의 매클렐런 장군이 혹은 미드 장군이 남군의 보비리 장군 추격을 서둘러 궤멸시켰다면?

남부 연합이 흑인 병사를 받아들였더라면?

링컨이 암살되지 않았다면?

러시아가 미국에게 알레스카를 팔지 않았다면?

시펠린이 미국에 영국산 찌르레기를 풀어놓지 않았다면?

화학자 베네딕튀스가 플라스크를 떨어뜨리지 않았다면?

미국이 의원내각제를 선택한다면?

타이타닉호에 쌍안경 열쇠가 있었더라면?

러시아군이 몰려오고 있다는 뜬소문을 독일군이 제대로 알아보았더라면?

영국 신병들이 싸우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고 참전할 수 있었다면?

맥스웰 장군이 아일랜드인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지 않았더라면?

레닌이 스탈린의 인간성을 진즉 알아보았더라면? 혹은 레닌이 조금만 더 오래 살았다면?

연합군 소속의 미군이 러시아땅에 머무르지 않았더라면?

미국이 금주법을 실행하지 않았더라면?

히틀러가 미술학교에서 떨어지지 않았거나 그의 그림이 한점이라도 팔릴 수 있었다면?

스탈린이 라팔로조약을 맺지 않아서 독일군의 훈련기지를 제공하지 않았더라면?

미국 역사상 최장수 FBI국장 존 후버가 48년이 아니라 10년만 국장을 했었다면?

이 모든 가정들은 지금의 현실보다 나은 미래를 가져왔을 것이라고 저자는 예측해본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모두 상상일뿐 지나간 역사는 되돌릴 수 없다. 또한 그런 실수들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다른 실수를 했을수도 있고, 실수를 아예 하지 않았더라도 저자가 상상했던 해피한 미래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런 '가정'들을 해보는 것은 다른 미래를 생각해봄으로써 좀더 효과적으로 실수를 깨닫기 위해서일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오늘날에도 우리가 배워야 하는 유익한 교훈일 수 있다. 당장의 걱정거리와 문제 때문에 대중이 독재자와 선동가들에게 의지하도록 만들지 마라. 그런 인물들은 대중의 자유나 삶의 방식을 파괴할 것이다. (p. 48)

2세기에 활동했던 페르가몬의 갈렌이 만든 치료법은 거의 2,000년 동안 처음 방식 그대로 이어져 왔다. (중략) 그는 자신의 의학적 지식으로 당대 사람들이 인체에 대해 갖고 있던 많은 인식을 바꿔 놓았다. (p. 178) 갈렌은 단순 감기부터 신장 질환에 이르기까지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네가지 체액의 균형이 깨진 신체의 각기 다른 부분에서 피의 양을 줄이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는 말 그대로 환자의 몸에서 '피를 빼내는' 것이었다. (p. 179)

사실상 그가 정복 전쟁을 벌이는 이유는 유럽의 궁극적인 평화를 위해서였다. 더는 싸울 상대가 없어서 찾아오는 평화 말이다. (p. 185)

수많은 독재자들의 모습을 보아온만큼 앞으로는 그런 독재자들을 리더로 뽑지 말아야 할 것이고, 잘못된 믿음과 상식이 오래 지속되지 않도록 객관적 검증에 꾸준히 신경써야 할 것이며, 진정한 평화란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흑역사는 달리 말하자면 인간의 실수 모음이다. 지도자들이 어떤 오판을 내렸는가에 따라 바뀌었던 역사적 장면들을 되짚어 보면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의 중요성과 그 잘못된 판단에 따라 무의한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 일반인들이 크게 대비되었다.

흑역사라는 말은 있어도 백역사 라는 말은 없다. 사람들은 잘못을 끄집어 내기는 쉬워도 칭찬을 찾아내 일부러 해주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백역사 보다는 흑역사를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왜냐하면 칭찬을 해주지 않아도 인간은 자주 오만에 빠지고 쉽게 자만에 빠져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닐 것이다. 흑역사가 알려주는 인간의 실수들을 하나하나 따져 보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새겨보는 시간은 가끔은 필요한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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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는 나를 알고 있다 - 나를 찾아 떠나는 색채 심리 여행
진미선 지음 / 라온북 / 2021년 1월
평점 :
절판


컬러만으로 충분합니다!

나도 몰랐던 과거, 현재, 미래의 내 모습을 발견하고 돌보는

아주 쉽고 명쾌한 컬러 안내서

 

 

대중심리서 들을 자주 읽어오다보니 최근엔 다양한 분야와 접목된 심리서들을 여럿 읽게 되었다. 예전엔 그저 위안과 힐링 혹은 의학적 분석을 주 내용으로 한 책들이 대부분이었던지라 비슷비슷한 책들을 읽고나니 이제 그런 책들은 안 읽는 편인데 그럼에도불구하고 여전히 대중심리서들을 찾아 읽게 되는 이유는 언제부턴가 심리적 고민이 책, 그림, 식물, 명리학 등 다른 분야와 함께 풀어주는 책들이 나왔고 그런 새로운 시도들이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는데 이번엔 '색' 이다. 이른바, 색채심리학.

오늘 입고 나온 옷의 색으로 주목받은 적이 있는가? 반대로, 오늘 입고 나온 옷의 색이 갑자기 불편한 적은? 너무나 익숙해서 그냥 지나쳐버린 색이 오늘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지 느껴본 적이 있나? 색은 우리에게 매 순간 느낌과 정서, 감정을 주는데 우리는 그 많은 것들을 그냥 무심코 지나쳐버리며 살아간다. (p. 16~17) 색을 찾는 것은 그리고 색을 입는 것은 곧 자신답게 살아가는 일의 다른 이름이다. 자, 이제붜라도 자신의 색을 입고 나답게 살아가자. (p. 20)

어렸을때부터 심리테스트 같은걸 재밌어하곤 했다. 아이들의 그림으로 정서를 풀어내는 책이나 방송들을 보며 신기했던 마음은 색으로 드러나는 심리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몇번이나 무릎을 쳤는지 모른다. 색은 정말 심리를 대변하고 있었다.

색은 본인이 무의식중에 감추어두었던 내면의 상처는 물론이고 미처 몰랐던 마음의 목소리까지 들여준다. 색채 현상에 이런 숨은 인간의 심리를 해명하고 내면을 들려주기 위한 심리학의 한 갈래가 바로 색채 심리라 할 수 있다. 색에는 고유한 파장과 에너지가 있고 이러한 색은 우리의 감정, 행동,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 색을 통해 내면을 탐색하고 무의식에 억압된 사건이나 사어를 다시 경험하고 나를 알아가는 것이 색채 심리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p. 24) 우리는 색채 심리를 통해 스스로를 쉽게 발견하고 자신에 대한 깊이 있는 탐색은 물론 타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도 할 수 있다. (p. 25)

색채만으로 나를 알고 타인을 이해하며 관계개선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처음엔 의아했지만 색 속에 숨어있는 의미들은 신기하게 심리와 맞아떨어졌다. 총4장으로 구성되있는 이 책은 1장에서 색채 심리의 중요성을 간단히 안내하고 2장에서 나만의 컬러를 찾은 후 3장에서 컬러로 컨디션을 진단할 수 있는 색의 의미들을 분석한 다음 4장에서 관계에 실전적용할 경우 어떤 모습들인지 사례들과 함께 풀어주고 있다.

2장의 첫 페이지는 '마인드 컬러 자가진단표' 문항들인데 50문항에 각각 점수를 매기고 나면 10가지 기본 색 중에서 자신의 성격유형을 대표하는 색을 확인할 수 있다. 색에 따른 성격유형 그리고 그 성격유형에 따른 순기능과 역기능의 에너지들을 옮겨보자면,

레드 - 행동하는 열정가 (순: 열정적, 진취적, 현실감각, 리더십, 생명의 본질, 원천의 색상, 자발성과 변화, 에너지를 주는 색, 프로의 색 (역): 폭력성, 공격성, 폭발성, 잔인함, 분노, 금전적 집착, 보상 심리, 게으름)

오렌지 - 자유로운 표현가 (순: 표현력, 개혁적, 명랑, 활발, 활력, 에너지, 자유로움, 목표지향적, 사회적, 사교적 변화, 새로운 도전, 창의성 (역): 공격성, 외로움, 두려움, 외모 집착, 사치, 의존성, 외부 원인으로 돌리기, 낮은 자존감, 허영심)

옐로 - 지적인 도전가 (순: 지적, 사고적, 발전, 낙천적, 도전적, 창의적, 지적 세계의 추구, 학식을 발전시키는 도전의 색, 향상심, 자아 정체감 (역): 낮은 자존감, 질투, 시기심, 비판적 사고, 이기심, 지나친 분석, 외로움, 혼란, 우울감)

옐로그린 - 온화한 관찰자 (순: 관찰력, 온화함, 관계중심, 안정감, 부드러움, 상냥함, 탐구심, 존중, 외유내강 (역) : 집착적, 의심, 관찰에 대한 확신, 낮은 자존감, 의존성, 겁쟁이, 게으름, 회피적 태도)

그린 - 안전한 평화주의자 (순: 인정, 평화, 회복, 성장, 도덕적 신념, 이해심과 양심의 색, 균형과 조화의 색상 (역) : 게으름, 우유부단, 태만, 무질서, 화병, 소유욕, 집착, 고집)

터키 - 창의적인 독립가 (순: 독립, 독창성, 창조의 색, 잠재력,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색, 자기 균형, 조화의 색 (역) : 감정 분리, 가정 차단, 두려움, 회피적, ㅁ응대, 고집)

블루 - 진실한 소통가 (순: 소통, 신중함, 책임감, 자기 성찰, 이성적 판단, 신뢰, 성숙 (역): 불안장애, 스트레스, 비판적 사고, 우울, 냉정함, 소통불가)

인디고 - 통찰하는 실력가 (순: 통찰력, 정직함, 지적욕구, 이해심, 분석력, 냉철한 판단력, 신중함 (역): 보수적, 아집, 자기주장이 강함, 특권의식, 고집)

퍼플 - 직관적인 몽상가 (순: 창조와 직관력의 색, 따듯함과 차가움, 충동성과 억제, 외향과 내향의 양면적인 색, 이상주의적이며 예술을 추구하는 색, 위로와 치유의 색, 영적인 색상 (역) : 오만함 , 우월감, 우유부단함, 현실도피, 공허함, 고독, 상실, 우울, 불안, 무정착, 정체성 혼란)

마젠타 - 큰 사랑의 포용가 (순: 자신감, 포용력, 수용적, 보살핌, 정신적 사랑, 존중, 성숙함, 치료사의 색 (역): 독재적, 자기중심적, 자기 우월, 물질욕, 거만함, 집착, 게으름)

이다.

자신의 '색'은 평소 좋아하는 색일수도 있지만 문항을 체크하다보면 꼭 그렇게 나오지 않을수도 있는 것 같다. 여하튼 선호하는 계열의 색임은 맞다. 색채 심리를 몰랐더라도 우리는 살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색을 주로 사용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 10가지 색의 기본 심리에 대해 파악하고 난 후 3장의 첫장에서는 지금 나의 상태를 알 수 있게 하는 테스트로 시작한다. 이 10가지 색 중 '나'를 떠올리며 가장 마음에 드는 3가지 색을 선택한다. 첫번째 색은 '나의 본질', 두번째 색은 지금 느끼고 있는 '스트레스', 세번째 색은 앞으로 희망하는 '나의 미래' 를 알 수 있게 한다. 이 3가지 색에 대한 내용도 중요하겠지만 다음 페이지에 나오는 '보완색' 과 함께 할때 색으로부터 보다 실질적인 심리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3장에서도 각각의 색별로 상세한 설명이 잘 되어 있다.

첫번째 선택한 색이 블루라면 당신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상대의 말을 잘 경청하는 사람이다. 또 매사 신중하면서도 융통성 있게 관계하며 일처리를 잘하고 자신의 생각과 의견도 설득력 있게 잘 전달한다.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즐거워하며 앞에 나서는 리더보다는 조력자로서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조력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크다. 블루의 성향은 차분하고 내면의 정신적인 면을 중요시 생각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감과 안정감을 준다. 쉽게 흥분하지 않고 평화로움을 유지하는 힘이 강하여 어떠한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반응하며 적응력이 좋다. 간혹 자신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에 빠지면 감정적으로 고립되고 우울감을 느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p 152~153)

나만의 컬러와 좀 다른 색이긴 했지만 지금의 '나'를 생각하며 선택한 색은 '블루' 였다. 그리고 평소 좋아하는 색이 늘 '블루'이기는 했다. '블루'가 '강한 책임감'을 대표하는 색이라고 하니 왠지 더 마음에 든다. 나는 책임감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는 편이다.

두번째로 선택한 색이 그린이라면 당신은 현실에서 자신이 베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이썩나 관계에 지쳐서 무기력감을 느끼거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느낌을 받고 있을 수 있다. 그린은 소속감이 중요하고 그 소속의 무리 안에서 자신이 도움이 되길 원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이러한 노력이 인정되지 않거나 그린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그린은 과도하게 타인을 살피고 필요 이상으로 타인을 도우며 스스로 지쳐가는 것을 놓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신체와 감정의 밸런스를 맞추지 못하며 상실감과 무기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p. 141)

소오오름! 그랬다. 사실 나는 최근 몇년간 이런저런 '관계'에서 힘들었다. 그런데 색의 의미가... 그랬구나... 흠... 신기한데...

세번째로 선택한 색이 옐로일 경우에는 현재 자신이 도태된다고 느끼거나 발전하는 모습이 없어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적게 느끼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옐로의 에너지를 받아 나날이 향상되고 발전하는 자신의 희망적인 모습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것을 배우고 탐구하며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자신의 지적 열망을 해소하며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상태이기 쉽다. (중략) 긍정적인 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주변에서 에너지를 채울 것이 아니라 나의 내부로부터 힘을 길러야 한다. (p. 130)

또다시 소오오오오름! ㅎ 그래서 내가 이렇게 책을 파고 있나 보다. 과거 십년간 읽은 책보다 최근 일이년 사이 읽은 책이 몇배로 훨씬 더 많다. 그리고 아마도 당분간 계속 그렇게 책에 파묻혀 지내야 할 것 같다.

4장 '색으로 만나고 관계 맺는 사람들'에서는 가장 사례중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저런 경우에 대해 그 관계들을 색으로 풀어내는데 앞 내용들에서 이미 색의 심리에 조금은 놀라운 마음으로 읽은 터라 마지막 장에서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특히나 각 색깔별로 순기능과 역기능을 적절히 이용하는 지혜가 필요하겠구나 싶은 깨우침을 하게 되기도 했다. 친절하게도 마지막 장에서는 '색으로 만나는 관계 패턴'들을 간략히 정리해놓아서 책한권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하나의 색이라 할지라도 숨어있는 의미는 다양했다. 순기능이라고 마냥 좋은 것도 아니고 역기능이라고 마냥 나쁜 것도 아니었다. 모든 것은 다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때가 가장 최선이었다. 평소 무채색 계열의 옷만 입고 그닥 색에 대한 개념도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이런저런 색의 심리를 파악하고나니 앞으로는 적절히 색을 활용하며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색에 대해서도 내 무의식을 더듬어 가며 좀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봐야 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참 유용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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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02 - 멋진 신세계, 2021.1.2.3
문지혁 외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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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엔 SF잡지를 읽었었는데, 이번엔 새로나온 문예잡지를 보게 됐다. 문예잡지 하면 '창작과비평' 계간지 정도만 알았는데 요즘엔 새로운 문예잡지들도 등장하는 것을 보니 반갑고 일단 오래 갔으면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에픽은 어떤 잡지인가? 내가 읽은 건 2호라서 잡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기에 1호를 검색해보았다.

인터넷 서점에 올라와 있는 1호에 대한 소개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러티브 매거진 《에픽》은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는 신개념 서사 중심 문학잡지이다. '에픽(epic)'이라는 단어는, 명사로는 '서사시, 서사 문학', 형용사로는 '웅대한, 영웅적인, 대규모의, 뛰어난, 커다란, 광범위한' 같은 뜻을 지녔다. 이 'epic'의 모음 'i'에 'i' 하나를 덧붙였다. 이야기란, 서사란, 하나의 내[i]가 다른 나[i]와 만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생겨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픽(epiic)》은 바로 이 두 겹의 세계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이야기를 모았다. 제목 그대로 하나의 세계가 다른 세계를 만나 벌어지는 화학 작용을 다루는 이너 내러티브 'i+i'를 시작으로, 전통적인 의미의 서사인 픽션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다루어져 온 크리에이티브 논픽션(creative nonfiction)을 두루 다루고자 한다. 이 논픽션에는 르포르타주(reportage), 메모어(memoir), 구술록(oral history) 같은 여러 세부 장르가 포함된다.

책 리뷰 역시 한 권이 아닌 서로 연결된 두 권을 다루는 1+1 방식으로 소개되며, 가상의 누군가를 만나는 버추얼 에세이 'if i'도 마련된다. 픽션 파트에서는 기존의 문단 중심 단편소설뿐 아니라 장르문학을 편견 없이 함께 다루고, 책 말미에는 그래픽노블을 통해 각 권의 제호에서 비롯된 또다른 상상력을 살펴본다.

이러한 에픽만의 특징은 1호에 이어 2호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절반은 논픽션 절반은 픽션인데 둘다 서사중심의 글들이고 다루는 소재도 두 가지 혹은 두 방향이 함께 서술된다. 사람인 人 이라는 한자가 사람이 걸어가는 모양을 옆에서 본것을 상형화한것이라 하지만 두 사람이 기대어 있는 모습으로 풀이되는 것을 나는 좋아하는데 이 잡지의 특징이 그런 人 을 생각나게 했다. 필진들도 눈에 익은 이름이 많아서 호기심이 up 되기도 했다.

『 앞장과 뒷장 사이의 우주 』 - 문지혁

"코덱스 형식은 닫혀 있으면 공기로부터 저절로 차단돼요.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디바이스인 셈이죠. 저는 이걸 책이 스스로 선택한 형식이라고 생각해요. 오랜 세월 끝에 이런 구조만 살아남았으니까요. 좋은 종이를 쓰고 튼튼하게 묶어놓으면 천년 가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아요. 언제든 다시 풀고 묶어서 수명을 늘려줄 수도 있고요" (p. 35)

공방의 이름 '렉또베르쏘'는 라틴어로 앞장이라는 뜻의 렉토와 뒷장이라는 뜻의 베르쏘를 합친 말이다. 렉또였던 백순덕 선생이 세상과 공방을 떠난 뒤 조효은 대표는 한동안 혼자서 공방을 운영했다. (p. 38, 40)

예술제본 백순덕씨에 대한 기사를 언젠가 어디선가 본것 같다. 책을 그렇게 정성들여 손으로 직접 제본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프랑스 유학까지 가서 배워왔다니 더욱 생소했지만 잠시 봤던 그 책표지들이 참 아름다워보였다. 백순덕씨 타계후 유일한 제자였던 조효은씨가 공방 '렉또베르쏘'를 이어받았다. 소설가 문지혁이 그녀를 인터뷰했다. 렉또를 바라보며 책을 꿰매던 조효은씨에게 프랑스로 유학가서 를리외르 자격증을 따온 베르쏘가 생겼다. 참 다행이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비로소 알게 된 것은 수업의 본질이 내용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중략) 수업의 본질은 수업 이전과 수업 이후에 있다는 것을, 나는 1년을 헤매고서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오늘 읽어야 할 책과 배워야 할 기술에 관한 몇 시간짜리 강의가 아니라, 옷을 입고 책과 노트와 필기구를 챙겨 버스와 지하철에 타는 것이 수업이다. 교실까지 걸어가서 수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딴생각을 하는 것이 수업이다. 말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머뭇거리는 시간, 잘 정돈된 슬라이드가 펼쳐지는 시간이 아니라 컴퓨터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낑낑대는 시간, 활발한 토론이 오가는 시간이 아니라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는 시간이 수업이다. (중략) 어쩌면 책도 마찬가지 아닐까? (중략) 책만이 줄 수 있는 것은 책 자체, 책이라는 크기와 무게를 지닌 물리적 형식뿐이다. 내용이 아니라 물성이 책의 본질이다. 눈이 아니라 손이다. 페이지마다 빼곡히 적혀 있는 글자가 아니라, 앞장에서 뒷장으로 넘어갈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한순간 경험하는 어둠과 공백과 멈춤만이 진짜 책이다. (p. 41, 42)

멋진 표현이다. 지난 1년간 학교수업에 대해 열변을 토하게 한 것은 비대면수업으로 인한 학력격차 문제도 컸지만 그보다도 문지혁 작가가 말한 저런 수업이 없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수업은 수업시간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절실히 깨달았다. 나도... 책또한 의미만이 다가 아니고 글자만이 다가 아니다. 책이라는 물성이 주는 느낌과 여백은 또다른 책이다. 단숨에 읽히는 책도 띄엄띄엄 읽히는 책도 그 앞장과 뒷장 사이의 그 모든 시간들은 결국 다 책이다. 책속의 내용이 무엇이건간에 어떤 책을 예술적으로 제본한다는 것은 또다른 아름다움임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 두 사람의 내력 만나기 』 - 최현숙

어떤 글에서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씨에 대해 언급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구술생애사 작가라니, 대단한 삶을 대신하여 써주는 자서전 작가도 아니고 누군가의 삶을 자신의 글로 담아내는 에세이 작가도 아니고 구술생애사 작가라니 생소했던 기억이 있다. 그땐 그저 누군가는 기록해야 할 삶을 사는 이들을 기억해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글을 보고나서야 작가가 능동적으로 무엇을 왜 어떻게 남기고자 하는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 대한 권리는 온전히 그녀의 것이다. 나는 그녀가 말해준 것을 가지고 그녀를 가늠해간다. 더 잘 만나기 위해서는 그녀와 나 사이에 더 많은 시간과 말과 경험이 섞여야 하고, 그녀의 느낌을 그녀의 단어와 문장으로 풀어내도록 내 단어와 문장이 바뀌어야 한다. 궁금한 사람은 그녀가 아닌 나니까. 별수 없이 내가 고생해야 한다. (p. 55)

작가는 한 여성 노숙자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작가는 누군가의 요청으로 그 사람의 생애를 듣고 쓰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선택한 사람을 어렵게어렵게 인터뷰해가며 그 사람의 삶을 최대한 그사람답게 글로 표현하려 애쓴다. 왜냐면 그들도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니까.

21세기의 소위 민주 정권들은 홈리스/신자유주의 바깥의 존재/노동하지 않(못하)는 비체들을 '싹 쓸어다 가두거나 죽이'지는 못한다. (중략) 내내 그 비용을 아까워하면서도 자신들의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비용임을 수긍하고 별수 없이 지불한다. 그러면서 때로는 그들의 삶을 '불쌍' 과 '비참'을 들먹이며 동정하지만 결국은 혐오이자 배제다. 여기에는 자기불안도 들어있다. 신자유주의 각자도생 사회에서 여차하면 자신들의 삶 역시 그렇게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러니 홈리스는 그들에게는 되지 말아야 할 구체적 사례이자 증거이다. 불가피한 존재이자 사례로서의 홈리스들에 대해 '그 사회' 속 사람들이 원하는 바는,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 것이며 그것을 해주는 것이 국가라고 생각한다. (p. 69~70)

일면 과격한 면도 있게 읽히는 글이지만 다 읽고나면 그 기저에 세상에서 버려진 존재들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또한 처음 읽는 여성노숙자의 삶도 이해는 안가지만 인정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과한 표현들에 대해서는 생각의 여지를 좀더 남겨두기로 한다. 책임진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므로...

『 나는 왜 밀덕이 되었나? 』 - 정명섭

나는 덕질을 삶의 유희라고 생각한다. 인생이 하나의 축제라면 즐기고 또 즐겨야 하기 때문이다. (p. 79) 내가 이렇게 밀덕에 빠져든 것은 군대라는 끔찍한 트라우마를 이겨낼 만한 매력이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전쟁에 매혹된 것이다. (p. 84)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해롭고 나쁜 전쟁을 좋아하게 된 것일까? 고백하자면, 너무 싫기 때문에 들여다보는 것이다. (p. 85) 인간의 역사는 깊고, 그 와중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단 하나 바뀌지 않은 것은 전쟁의 목적과 본질, 그리고 그 피해자들뿐이다. 역사는 굉장히 냉정하고 차갑게 봐야 한다. 그래서 나는 전쟁을 연구하고 관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뭔가를 피하려면 거기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p. 86)

덕후중에서도 드물다는 밀리터리덕후인 작가 정명섭이 알여주는 밀덕의 세계는 생각보다 심오하다. 덕후라고 하면 자신이 꽂힌 뭔가를 열정적으로 모으는 사람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리고 다행히 요즘은 덕질로 성공하는 사례들도 종종 있는데 이 작가가 그러했다. 여하튼, 덕후들은 자신이 꽂힌 그 분야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사람들이다. 그 열정이 정명섭 작가처럼 역사와 이어질때 나는 좀더 반가울것 같다. ㅎㅎ

『 응급실의 노동자들 』 - 남궁인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피플을 읽은 이후로 내내 그 소설의 여운이 내게 남아있는 듯 하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시선으로 바라본 응급실의 24시와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피프티피플이라는 소설을 생각나게 했다. 저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그렇게 최선을 다해주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응급실의 24시간이 유지될 수 있었다. 응급실 이야기는 그 어떤 소설보다 더 픽션처럼 읽히는 에피소드들이었다.

『 다시, 다시 - 만약에 꽈리고추와 계란을 다시 사지 않았더라면 』 - 김대주

방송작가의 이름이 기억에 남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김대주 작가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다. 1박2일, 응답하라1994, 꽃보다청춘, 윤식당, 스페인하숙, 여름방학등의 작가로 참여했다는 이력을 읽고나니 아~! 예능방송에서 출연자가 작가이름을 친근하게 불렀던 것 같다. ㅎ 여하튼 대부분 히트작이었던 프로그램 이름들을 보면서 어떤 글일지 궁금증이 일었다.

방송작가라고 하면 대본을 쓰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예능프로그램의 작가는, 적어도 내가 주로 하고 있는 리얼버라이어티 작가는 말하는 거 반 몸 쓰는 거 반이다. 대본이란 걸 써본 게……, 아마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마지막인 것 같다. [1박2일]때는 매일 전국으로 답사를 다니고 게임 시뮬레이션을 하는 게 일이었고, [삼시세끼]때는 밭에 작물을 심고 키우는 게 일이었고, [윤식당] 때는 시장조사하고 메뉴 개발하는 게 일이었다. 물론 밤새 촬영 준비를 하고 며칠 밤낮 촬영장 생활을 지켜보며 고민해야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몸 쓰는 건 회의실에 앉아서 기획할 때에 비하면 꿀 빠는 일이다. 낮부터 모여서 새벽까지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다 보면 머리가 멈추는 순간을 자주 느낀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디어는 바닥나고 침묵은 길어지니 속만 타들어간다. (p. 129 ~ 130)

예능프로그램 방송작가 답게 자신의 하루를 담은 에세이도 재기발랄했다. 늙은 애견과 반찬과 맛있는 김밥집이 코로나로 문을 닫는 것들이 슬프지만 슬프지만은 않게 짠하지만 짠하지만은 않게 작가의 아이디어 고민과 어우러지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게 되는 글이었다.

『 짜이고 익는 말들 』 - 김화진

나에게 신념이 견고한지 말랑한지, 직선인지 곡선인지 가늠하게 하는 것은 언제나 책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확인하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대체로 골라 읽은 책들을 통해 내가 어떤 것을 믿으며 사는지 알 수 있었다. 내용을 따라가는 사이 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네, 하고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지닌 어떤 믿음을 확인하게 해주는 책들이 있다. 최근에는 백온유의 소설 [유원]과 브래디 미카코의 논픽션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였다. (p. 140)

자주 보고 읽은 것들로 우리의 언어가 구성된다면 나의 언어는 어떨까. 어떤 걸로 짜이고 어떻게 익어갈까. (p. 144)

두 권의 책을 중심에 놓고 풀어낸 이 글에서 [유원]은 읽었던 책이라 반가웠고 [나는 옐로에서 화이트에 약간 블루] 라는 읽고 싶은 책을 만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책을 통해 나를 확인해간다는 점에서 느껴지는 공감대가 참 좋았다. 작가는 이 두권의 책을 보고 읽은 것들에서 익어간 언어들을 썼지만 나는 그동안 내가 읽은 책들이 내 안에서 어떤 언어들을 만들었을지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 어떤 물질들의 장소와 환대에 관한 이야기 』 - 이지용

누군가의 글을 통해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할때면 왠지 믿음이 가는 기쁨이 생겨나곤 한다. SF작가 다운 선택으로 보여지는 책 두 권 김현경 작가의 [사람, 장소, 환대] 와 천선란 작가의 [어떤 물질의 사랑] 도 내 관심도서에 리스트업 해두기로 했다.

『 슬픔을 다시 썼을 때 우리가 엿보게 되는 것들 』 - 임지훈

나는 이야기가 우리를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는다. 살아 있는 이들 사이의 연결만이 아니라 이미 죽어버린 이와의 연결까지도 가능하게 만드는 유일한 수단, 수전 손태그의 말처럼 이미지는 충격을 주지만 이해에는 도움을 주지 못하고, 이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이야기 뿐이기 때문이다. (p. 156)

어쩌면 이 책들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의 일부는 이런 것이 아닐까. 당신은 정말로 당신 자신인가. 당신은 단지 이데올리기의 육화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가. 예컨대, 내가 지금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 행한 발화들은 주체적인 것이었을까. 나는 단지 저 대타자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나 스스로를 비운의 주인공으로, 어떤 거대한 삶의 실패를 이겨내고 등장한 목소리로 가장하는 것은, 그런 부피 없음을 감추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경험한 고통은 단지 가장된 고통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한 이 고통은 무엇일까. 그 고통으로부터 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p. 162)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가 늘 반쪽뿐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러한 타인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타인이 되어보는 경험인지도 모른다. 여성에 의해 타인이 되어보는 체험, 이 비극 속에서 자신이 얼마쯤은 늘 타인의 위치에 있었다는 자각 말이다. (p. 164)

 

시노다 세츠코의 [장녀들] 과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이라는 두 권의 책을 연결해 풀어내는 저자의 고통이 마음을 울렸다. 솔직한 글은 늘 마음에 닿는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와 2부가 논픽션이라면 3부는 픽션이다. 5편의 단편과 1편의 만화가 실려있는데, 음... 단편에 약한 나로서는 1부와 2부의 글들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내게 닿지 않는 단편소설의 특성을 나는 개인적으로 '글이 너무 작가적이다'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이 5편의 작품들은 아쉽게도 너무 작가적인 글들이었다;;;

『 말하지 않는 책 』 - 김솔

책은 죽은 자들과 이야기하는 데 사용됐다. 악기는 현재 살아있는 자들을 이해하는 도구였다. 천체관측 도구를 통해 그녀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의 불평을 들을 수 있었다. (p. 173) 책은 결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책에게 말을 걸 때만 비로소 책은 대답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책이 대답을 하는 것은 아니고 위대한 책들만 질문에 반응을 하는데, 그 방법은 찰나의 영감과 영원한 침묵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문자에 담기지 않고 여백에 담기기 때문이다. 책만큼이나 위대한 영혼을 소유한 자들만 책의 침묵을 듣고 이전 세대의 진리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위대한 책을 읽는 순간, 책과 독자와 화자와 등장인물과 저자의 운명이 모두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독서를 통해 독자뿐만 아니라 책의 운명도 바뀐다는 것이다. (p. 174)

세살때 라틴어 책을 술술 읽을만큼 어려서부터 영특했고 수많은 책을 읽고 배운 마르타 수녀는 어느날 스스로 문맹이 되어버렸다. 문맹이 됨으로써 더 온전하게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문맹인 그녀가 불온한 책을 썼다는 소문이 돌고 종교회의에 소집된다. 마르타 수녀의 비밀을 알아챈 펠리페 수사는 그녀를 지켜주기 위해 그녀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문맹에 이르는 논리적 방법을 발견해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신은 영원히 편재하고 모든 인간은 유한하다. 문자를 발명해낸 자는 인간이 아니라 신이며, 문자의 쓸모는 기억이 아니라 망각에 있다. 문자로 옮겨 적는 순간 그 기억은 인간에게서 완전히 사라진다. 더욱이 문자로 변환된 대상은 실재와 조금도 닮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든 문장의 시제는 과거이고 현재의 상태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략) 이와 같은 원리를 바탕으로 마르타 수녀는 3년 만에 라틴어 [성경]을 마야의 문자로 번역했다. 마야어로 완성된 [성서]는 고작 두 페이지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것을 반년 동안 반복해서 읽고 나자 그녀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모든 문자의 의미와 작동 원리를 완전히 망각할 수 있었다. (p. 179, 181)

유한한 인간에 대한 책들에는 망각과 오독의 운명이 이미 반영돼 있다. 자신이 쓴 책은 모든 인간에게 이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펠리페 수사에게 용기를 주었다. (p. 183)

내가 좋아하는 책에 대한 소설이고 내가 관심있어 하는 중세종교시대의 이야기라서 집중하여 읽었지만 책과 종교가 뒤섞이고 마르타 수녀와 펠리페 수사가 독서를 통해 책과 독자, 화자, 등장인물 그리고 책 까지 모두 운명이 바뀌어버리는 바람에 애초에 마르타 수녀가 있긴 했던 것인지 펠리페 수사는 무엇을 기록한 것인지 나는 알아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유언을 남겼다. "천국에 이르는 열쇠 중에는 말하지 않는 책도 포함된다" (p. 202

『 이인제의 나라 』 - 김홍

김홍 작가의 [스모킹 오레오]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기에 반가운 이름이었다. 그런데 단편 제목이 '이인제의 나라' 음? 내가 생각한 그 이인제? 그 이인제가 맞았다;;; 마치 소설을 준비하는 에세이처럼 쓰인 이 소설은 분명 소설이고 '이인제의 소설'은 소재일뿐 결국 소설이 아니다.

2014년 이 소설을 처음 썼을 때 내게는 '이인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이인제'는 그 무엇도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닌 것도 아니었다. 이것은 '이인제'라는 법조인 출신의 중견 정치인에 대한 폄하나 무해를 담고 있는 평가라기보다 한국 정치에서 '이인제'라는 현상 혹은 '이인제'가 점유하고 있는 위상에 대한 숙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인제'는 한국 정치의 텅 빈 기표 그 자체이자, 한국 정치의 텅 비어 있음에 대한 물리적인 구현으로서 세상은 절대로 '이인제의 나라'가 될 수 없고, 한편으로 세상이 '이인제의 나라'가 된다고 해도 그렇게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도 않은 기분이 드는 한편, 세상은 어쩌면 이미 '이인제의 나라'일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패배주의적 현실 인식이 반영된 것이 바로 소설 '이인제의 나라'였다. (p. 206 ~ 207)

어떤 내용인지 전혀 알수 없는 소설속의 소설 '이인제의 나라'는 사실 작가의 의도대로라면 내용을 몰라도 상관없는 소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작가가 '이인제의 나라'라는 소설속 소설을 쓰기로 한 이유는 아니 '이인제의 나라' 라는 소설이 나오는 소설인 '이인제으 나라'를 쓰기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의 의도를 알기전에 소설속 작가는 '이인제의 나라'에서 눈을 뜨고 소설은 끝난다.

『 프롬 제네바 』 - 송시우

"기업과 인권 포럼이요? 그게 뭐예요?"

"일단 기업과 인권, The Business and Human Rights의 개념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네요. 그러니까, 에……인권을 보호할 책임은 국가에 있다는 것이 인권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이었다면 말이죠 날로 커지는 초국적기업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이제 기업에도 인권을 존중할 책임이 있다, 뭐 그런 가치 체계인 거죠. 기업이 이윤만 추구해서는 안 되고 기업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인권침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에요" (p. 233)

인권증진위원회에서 일하는 부지훈과 한윤서는 제네바에서 열리는 '기업과 인권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출장을 왔다가 그 포럼에서 한국 최초의 스피커로 나선 오성전자 이국재 이사의 발표를 보게 된다.

"결국 지 자랑이에요, 지 자랑, 회사 자랑. 여기에 기업 관계자 나오면 자기 회사 자랑밖에 안 하죠. 윤리를 방패 삼은 회사 홍보랄까. 어쩌면 그게 기업과 인권의 본질이긴 하지만요" (p. 242)

복도에도 거대한 네트워크의 장이 펼쳐졌다. 잠깐의 이동 시간을 틈타 회의 참석자들은 서로에게 명함을 건네고 자기 소개를 했다.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서 활기 있게 와글거렸다. 국제회의의 진정한 네트워킹은 쉬는 시간 복도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p. 245)

그런데 이국재 이사의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기업과 인권 포럼에서 인권을 무시한 기업인의 죽음이 발생한 것이다. 이 책에 실린 5편의 작품 중 가장 내 상식수준에서 이해하기 적당한 소설인데다 스릴러적 분위기가 있다보니 가장 재밌게 읽은 소설이었다.

『 이 세상 사람 』 - 이주란

그동안 여섯 번의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를 가도 불안하고 또 이사를 가도 불안한, 제게 집이라는 건 늘 불안한 곳이었습니다. 며칠 전 선생님께서 보낸 우편물을 받았을 때도 도저히 그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거란 사실에 절망했습니다. 그 사람과 제가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 누구 하나는 죽어야 끝이 난다는 것. 아니, 그럼에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는 것, 저만 그 사람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습니다. (p. 277 )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으나 지금껏 두려웠고 이제는 정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통지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두려운 이 마음을 아실런지요. 대체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 것인가를 생각하느라 며칠이 걸렸습니다. (p. 281)

저는 습관이 삶을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의 습관을 만든 것은 거의 내던져졌다고 해야 타당할, 제게 주어진 삶이라고 생각해요. (p. 286)

지금도 별일 없이 하루가 가면 기분이 좀 이상한 게 그 때문일까요. 저라는 사람의심리의 원형이 그렇게 형성된 걸까요. 아무 일 없는 하루가 다행이다 싶기보다는 오늘이 무사히 갔으니 내일은 왠지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거지요. 하루, 아무 일이 없는 할. 이를테면 평범한 하루. 그냥 살던 대로 살면 되는 수많은 하루일 뿐인데, 그 사람은 뭐가 그렇게 어려웠을 까요. (p. 291)

살면서 겪은 대부분의 고난을 지나왔고 살면서 만난 대부분의 인간을 이해했고 살면서 받은 대부분의 상처를 견뎌왔고 자주 웃기도 했으나 그 사람만은 끝내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p. 297)

내내 화자의 독백으로 서술되는 이 이야기에선 구체적인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이순간의 화자의 심리에 대해 서술되고 그 심리가 풍기는 분위기가 느껴질 뿐이다. 스릴러 영화에서 어떤 결정적 장면이 등장하기 전에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음악만 나오는 바로 그때의 그 순간을 묘사한 작품 같았다. 영화가 그 장면에서 끝났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자막이 올라간다고 상상해 보자. 자막으로 결말은 알았지만 결정적 장면은 보지 못했다. 관객의 기분은 어떨까? 그런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로서는 결정적 사건을 모르기에 화자가 말하는 두려움을 온전히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 기담 (奇談 』 - 황정은

어쩌다보니 황정은 작가의 작품을 꽤 여럿 읽었던 터라 작가의 분위기가 짐작가는 바가 있었다. '기담'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기이함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는 '이사'다. 집을 옮기는 그 이사 말이다.

선인과 강희는 세입자로 오래 살았다. 더는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은 집을 샀다. 2년이나 3년 주기로 자기들이 사는 집을 남에게 보여주고, 남이 사는 집을 보러 다니는 일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이사를 한다는 것은 일단, 모르는 사람의 살림으로 끓어넘치는 낯선 집에 발을 들이는 일이었다. 남의 영문 모를 질서와 무질서, 남의 무신경, 남의 피로와 곤궁과 곤경을 목격하는 일이자 세입자를 향한 집주인의 적대감이나 집주인을 향한 세입자의 환멸을 목격하는 일이기도 했다. (p. 306)

월세와 전세로 여기저기 이사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무척 공감가는 내용일 것이다. 남의 집을 보는 것도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보여주는 것도 정말 참 곤란한 일이다... 그러니 요즘은 영끌이라도 해서 집을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재산적 의미가 더 강하긴 하겠지만 집이 주는 안락함은 그에 못지 않은 중요한 이유다.

내 이웃들은 이걸, 이 걱정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 이건 별로 걱정은 아닌 걸까. 강희의 말대로 여기 사는 사람들에겐 걱정이 너무 많아서, 이 정도 걱정은 당장 걱정이 아닌 걸까. 그렇지 않다면 왜 몇 번이고 이걸 …… 다시 겪고 있을 까. 잠잠해졌다가도 뒤집히곤 하는 물결처럼 선인은 이웃을 향한 의구심과 분노와 환멸이 서서히 자라는 것을 느꼈다. (p. 319)

도시 중심가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은 집들이에 와서 왜 이런 외곽 가파른 산동네 오래된 빌라를 샀느냐고 물었다. 아파트를 살아본 적 없어서 생각도 못했던 이 질문에 선인과 강희는 대답하지 않는다. 빌라가 낡아갈수록 생겨나는 불편함들에 대해 이웃들은 그저 내버려둘뿐 아무도 무엇에도 손대려 하지 않았다. 이런 경험 낯설진 않지만 역시나 황정은의 작품은 마음이 참.. 착잡해진다...

『 멋진 신세계 』 - 의외의 사실

'의외의 사실'이 필명인건가? 모르겠다;;; 그래픽노블인 이 작품은 짧은 만화로 만화가의 글과 그림에 대한 고충을 담은 것 같긴 한데...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감각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이 잡지는 그 디자인이 멋지긴 한데 커다란 책 크기에 비해 글자가 너무 작아서 좀 아쉬웠다. 문예잡지라고 하면 대부분 그 안에 실린 소설들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 이 책을 포함한 최근 읽은 문예잡지 2권은 모두 소설보다 논픽션 글들이 훨씬 좋았다. 단편은 언젠가 묶여나올 책으로도 읽을수 있겠지만 소설이 아닌 심도깊은 글들은 문예잡지이기에 읽을 수 있는 글들이기에 잡지로서의 매력을 한층 높여주고 있었다. 3호를 읽게 된다면 아마도 그런 논픽션글들에 대한 기대치로 선택하게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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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상에서 지혜롭게 산다는 것 - 불확실한 상황 속 흔들리지 않고 나를 지키는 힘
채정호 지음 / 청림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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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상황 속 흔들리지 않고 나를 지키는 힘

"고통과 고난 속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다"

 

십여년 전 '행복한 선물 옵티미스트'라는 책을 읽었었다.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분위나 느낌이 여전히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책이다. 당시 심리서들을 닥치는 대로 읽던 때였는데 '옵티미스트'책은 특유의 밝음과 능동적 에너지가 읽는 이에게 전달되는 책이었다.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는 책들 글자로 나를 안아주는 책들을 그렇게 여러권 읽었건만 그때 읽었던 책들 중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책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책들 중 한권이 '옵티미스티'였다. 여전히 이 책이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옵티미스트'로 인해 채정호 박사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본 순간 저자에 대한 믿음으로 기대가 되었다. 저자 약력을 보니 여전히 옵티미스트 활동을 하고 계셔서 반갑기도 하고 새삼 궁금해지기도 했다. 아마도 그런 활동들의 연장선에서 쓰여졌을 이 책은 삶에 꼭 필요한 '지혜'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이런 세상에서 지혜롭게 산다는 것' 이라는 제목에서 '이런 세상' 이란 아마도 살기 좋은 세상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루하고 팍팍한 세상일 테지만 그저 '이런 세상' 이라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읽는이마다 조금씩 다를 세상에 대한 불안과 불만을 포용해주는 듯 하다. 저마다 다른 힘듦을 안고 살아가겠지만 실은 사람들 모두 하나의 목표로 향해 가고 있다. 잘 사는 인생.

인생을 잘 사는 방법은 지혜롭게 사는 것밖에 없다. (중략) 비루한 현실에서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우리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지혜는 철학 책이나 윤리 교과서에 박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의 어느 순간이나, 바로 지금도 끊임없이 활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혜가 없다면 인간답게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혜 없이는 잘 살 수 없다. (p. 6) - 머리말 中 -

저자에 따르면 학술서도 수필집도 아닌 이 책은 일종의 퓨전 이라고 한다. 교과서처럼 교훈을 담고 있지만 에세이처럼 편하게 읽히는 이 책은 지혜란 무엇인가로 시작해서 지혜를 얻는 방법을 개략적으로 설명한 후 7가지 구성원리 와 이 7가지 원리를 이용한 훈련을 통해 지혜를 쌓아나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혜란 타고난다기보다 후천적으로 배워나가는 요소가 많다면서 이 책에서 조금이라도 지혜에 대한 의미와 필요성을 깨닫도록 저자는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읽는이의 성장을 유도한다.

지혜는 지혜로운 현자나 신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 하는 기초적인 삶의 문제에 대한 전문적 지식 체계다. 인생을 살아가는 계획을 세우고 실제로 운용하는 능력이며, 풀기 어려운 삶의 상황이나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대처하는 방법이다. 아직도 복잡한가? 그러면 지혜는 '삶에서 풀기 어려운 문제를 대처하는 능력' 이락 아주 짧게 정의해보자. (중략) 변화와 수용을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지혜다. 이처럼 지혜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사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즉 지혜로운 사람은 잘 살 수 있고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사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다. (p. 27)

이 책에서 소개하는 것은 고통을 직접 다루는 방법이 아니다.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에 대한 답을 찾으며 고통에 대한 태도 자체를 바꾸는 지혜를 배우게 될 것이다. (p. 46)

이렇게 중요하고 삶에 꼭 필요한 지혜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일단 이 책을 머리로만 읽지 말고 각자의 상황에 맞추거나 혹은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지 생각해가며 읽어볼 것을 권하고 있다. 그래야 훨씬 유용할 것이라고.

지혜에 대한 연구나 내용들은 방대하지만 저자는 일곱가지로 단순화하여 정리했다. 이 일곱가지는 이 책의 기본 뼈대와 같은 것이기도 하고 삶의 지혜를 쌓아가는 데 알아두면 좋을 필수요소이기도 하기 때문에 옮겨놓아 본다.

1. 알되,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고, 계속 업데이트하라. - 지혜의 기본은 지식이다.

2. 언제이고, 어디에 있느냐,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 지혜는 맥락적이다.

3. 각자 다 다를 수 있고, 당신만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 - 지혜는 상대적이다.

4. 확실하지 않은 것을 견뎌라. - 지혜는 불확실한 것을 견디는 것이다.

5. 길게 보라. - 지혜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추는 것이다.

6. 더 큰 차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라. - 지혜는 겸손함과 고요함과 마음챙김의 태도를 갖추는 것이다.

7. 공감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 지혜는 공감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p. 52)

소크라테스가 진정한 현인이었던 이유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았다는 점이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이 다 알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나는 아는 건 알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인정하는 데는 의외로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더욱이 요즘처럼 몇번의 검색으로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엔 여기저기 척척박사들이 넘쳐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보는 누가 왜 올리느냐 도 알아야 하고 그 정보가 진짜인지 거짓인지도 알아야 한다. 그런 정보들을 지식으로 이해하고 지혜로 수용하기까지는 나름의 노력이 필요하다. 지혜에 대한 7가지 원리는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가능한 지침들인 것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은 네 부류가 있다고 본다.

첫째, 훌륭한 사람이다. 자신을 존중하고 남을 존중한다. 자신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남도 귀하게 여길 줄 안다. 타인과의 관계도 잘 이끌어가며 자신과의 관계도 잘 유지한다.

둘째, 나쁜 사람이다. '나쁜 놈'이라는 말이 '나뿐인 놈'이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하듯이, 오직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나를 귀하게 여기지만 남은 발가락의 때만도 안 여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은 어떤 피해를 당하든지 알 바가 아니다.

셋째, 착한 사람이다. 남은 존중하지만 자신은 존중하지 않는다. 남을 돌보느라고 자신이 얼마나 아픈지 모른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어서 자기를 돌보려고 해도 잘되지 않는다. 자신의 욕구보다 항상 남의 눈치가 더 중요하다. 주변 사람들은 편의를 위해 이런 착한 사람을 자꾸 이용한다. 그러다 보니 세상살이에서 상처를 많이 받고 점점 더 지쳐간다.

넷째, 아픈 사람이다. 자기도 돌보지 않고 남도 돌보지 않는다. 남을 돌보지 못하므로 관계가 나빠지고 이것이 아픈 자신을 회복시키기 어려운 쪽으로 작용해서 악순환이 된다. 자신을 싫어하는 것을 넘어 혐오 수준으로 가기도 한다. 세상만사가 다 싫고 미우니 심한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p. 106 ~ 107)

이 책에서 가장 의미있게 와 닿았던 부분이 바로 위의 네 부류 인간에 대한 설명이었다. 저자가 정신의학자였기에 생각해낼 수 있었을 분류였고 읽으면서 심정적으로 많이 수긍이 가는 분류였다. 선한 사람vs악한 사람의 이분법적 구분보다 이 네부류의 인간형이 더 그럴듯하고 무엇보다 '인간애'가 느껴진다. 사람들을 이렇게 네 분류로 구분하면 왠지 세상이 좀더 따듯하게 여겨질 것 같다. 여하튼, 지혜로운 사람은 물론 훌륭한 사람이다. ㅎㅎ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살라' 고 말한다. 긍정적인 사람이 행복하고 인생을 잘 산다는 사실은 다 안다. 그러나 긍정의 진짜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긍정이라고 하면 좋은 것, 좋게 생각하고 좋게 바라보고 잘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긍정'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1. 그러하다고 생각하여 옳다고 인정함, 2. 일정한 판단에서 문제로 되어 있는 주어와 술어와의 관계를 그대로 인정하는 일, 즉 명제를 참이라고 승인하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어디에서 '좋게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되어 있지 않다. (중략) 즉 긍정은 수용과 인정을 말한다. 세상에 어떤 문제라도 그렇다고 인정하고 승인하는 태도가 바로 지혜다. (p. 117 ~ 118)

최근 '므두셀라증후군' 이라는 용어를 알게 됐다. '과거의 나쁜 일은 잊어버리고, 좋은 것만 기억하려는 기억 편향의 경향성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한다. 지나간 일에 대해서 좋게좋게 기억하는 것 혹은 좋은 것만 기억하려는 것 그러다 실제보다 더 좋았던것마냥 기억하게 되는것... 사람들이 '긍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할때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위로는 결국 편향적 사고를 함으로써 억지로라도 부정적인 일들은 잊어버리라는 의미다. 하지만 '긍정'이라는 단어의 뜻은 원래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올바른 의미를 알기 위해 나도 가끔 국어사전을 찾아보곤 하는데 저자가 '긍정'의 바른 의미를 알려주어서 감사하고 또 의미있는 뜻풀이로 다가왔다. 이런 '긍정주의' 는 저자의 옵티미스트 와도 연결된다. 그 평화로운 능동성이 나는 참 마음에 든다.

인간이 찾아낸 지식을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통해 남의 생각을 읽는 것이다. 당신은 적어도 지혜에 대한 이 책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적어도 이 책을 읽지 않은 다른 사람보다 저 지혜로워질 것은 분명하다. (p. 129)

책을 칭찬하는 문장은 늘 반갑다. 나는 책읽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사람들이 많이많이 책을 더더더 읽었으면 좋겠다. 책읽기는 정말 좋은건데 참 좋은건데 뭐라 말로 표현할수가 없네 ㅋ

많은 부모가 옳은 말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말을 듣지 않는다. 그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부모는 옳은 말을 기분 나쁘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신이 절대 선인 것처럼 착각하고 말을 한다. 다 아는 듯, 마치 전지전능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말한다. 실상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자녀들은 다 안다. 그러니 말이 통하기가 어렵다. 일단 말이 안 통하면 부모들은 목소리가 커진다. 부모의 판단에 의하면 이것이 옳은 일이고 맞는 일인데 아이들이 따라주지 않으니 속상하다. 큰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 그 내용이 아무리 옳더라도 더 이상 전달되지 않는다. 조용하고 나긋하게 말하는 것은 소리가 작아도 전달이 잘되지만 큰소리는 아무리 크게 말해도 들리지 않는다. 역사 이래 한번도 바뀐 적이 없는 큰소리의 모순이다. (p. 206 ~ 207)

옳은 말을 기분 나쁘게 하는 능력... 큰소리의 모순... ㅍㅎㅎㅎ

맞는 말이다. 그야말로 뼈때리는 촌철살인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에서 가장 분량이 많은 4장은 7가지 원리를 이용한 지혜훈련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는데 여러가지 실천 방법들을 하나하나 설명한 후 매 챕터뒤에 간략하게 정리도 해놓아서 실용지침서로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아직도' 라는 말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아직' 다 하지 못한 것이라는 마음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 (p. 259)

아직도 책읽기는 어렵다고 지혜는 안 생기는 것 같다고 자책하지 말자. 아직 다다르지 못했을 뿐 이 책을 손에 들었다면 언젠가 다 읽게 될 것이고 다 읽었다면 조금은 생각에 남을 것이고 그렇게 어쩌다 가끔씩이라도 이 책의 내용들을 생각하다 보면 언젠가 한움큼의 지혜라도 더 생겨나 있을 것이기에.

세상의 어려운 문제들은 지혜로만 풀 수 있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문제도 당연히 있다. 이유는 지혜가 세상의 풀기 어려운 문제를 '푸는' 능력이 아니라 세상의 풀기 어려운 문제를 '대처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p. 260) 지혜는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최적의 행동 형태다. 최적의 행동을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서 세상 사는 것이 힘들어진다. (p. 261) 그동안 뜻을 같이하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옵티미스트클럽과 긍정학교를 통해 지혜 훈련을 조금씩 해왔다. 이제 이 책을 통해서 그런 교육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늘어나면 좋겠다. 한 명의 지혜로운 사람이 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을 만들 수 있고 세상에 지혜로운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와 우리 자녀가 살아갈 세상은 더욱 살기 좋아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p. 263)  - 맺음말 中 -

예상보다 실천지침서적 성격이 강한 책이긴 했지만 역시나 긍정의 에너지가 전해지는 책이었다. 모두가 살기 힘든 이런 세상에서 좀 잘 살아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피할수 없다면 즐겨라'라고 했던가? 하지만 즐길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차라리 저자의 조언대로 '피할 수 없다면 지혜롭게' 대처해 가는 걸로 우회하는 것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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