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핑 더 벨벳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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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워터스의 대담한 대뷔작이자 빅토리아 시대 3부작의 출발점

 

 

세라 워터스 라는 작가의 빅토리아 시대 3부작은 '티핑 더 벨벳' - '끌림' - '핑거스미스' 인데 이 중 '핑거스미스'가 영화 '아가씨'의 원작 소설이라고 한다. 영화 '아가씨' 에 대해서 과한 미장센이 어쩌구 세계적인 한국인 감독 어쩌구 를 다 떠나서 나는 그 영화를 굉장히 신선한 충격을 받으며 봤었다. 내가 그동안 몰랐었을 수도 있지만 이제 이런 영화가 이렇게 세상에 활짝 펼쳐질 수 있는 시대구나라는 것을 강렬하게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다. 그 원작 소설을 쓴 작가의 작품에 대해 궁금해진 계기가 되기도 했다.

빅토리아 시대 라고 하면 여왕의 가족사진에서 암시되듯 강압적인 윤리관이 지배하던 시대라고 알고 있다. 희한것이 윤리를 강조하는 시대일수록 퇴폐는 더욱 성행한달까. 유리창을 깨끗이 닦으면 닦을수록 그 유리창을 닦은 수건은 더러워지듯 깨끗해진 유리창 바닥엔 항상 더러워진 수건이 떨어져있기 마련이다.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은 대부분 깨끗해진 유리창보다는 바닥에 떨어진 수건에 주목하곤 하는 듯 하다.

18년 동안 나는 내 <굴적> 교감을 절대 의심치 않았으며, 아버지 부엌 너머의 직업을 찾으려 기웃거린 적이 없었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였고. (p. 11)

내게는 좋아하는 것이 있었다. 열정이라고 말해도 좋다. 바로 연예장이었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연예장의 노래와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p. 12)

나 같은 사람은 어두운 객석에 무명으로 앉아 연예인을 지켜볼 운명이었다. 아니면 뭐 어쨌듯, 나는 그런식으로 생각했다. (p. 15)

 

낸시는 윗스터블 이라는 영국의 작은 마을에서 굴식당을 운영하는 대가족의 평범한 소녀였다. 자신의 외모에 자신이 없고 수줌음도 많았지만 식당일을 끝내고 15분정도 기차를 타고 가서 극장쇼를 관람하는 것을 열정적으로 좋아했고 그 노래들을 흥얼거리는 것을 즐기곤 했다. 일주일에 한번 가던 연예궁전에 매일 가게 된 계기가 발생했으니,

내가 본 가운데 가장 멋진 여인이었다. 나는 보자마자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p. 20)

흡사 저녁 시간을 낯선 이들 사이에서 보내도록 강요받은 것만 같았다. 가족은 공연의 작은 부분 하나하나까지 즐거워하며 보았고, 내가 그토록 지루함을 견디려 애썼던 내용을 가족이 즐긴다는 점이 내게는 충격적이고 바보스럽게 보였다. (p. 33~34)

 

낸시는 극장에서 키티 라는 남장여가수를 보았다. 그리고 눈을 뗄 수 없었다. 키티를 보기 위해 매일 궁전극장에 갔고 가족과 함께 간 날은 가족들과 이질감을 느끼며 키티 공연 외의 공연들을 견뎌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잠시 온몸이 마비된 듯 앉아 손에 든 꽃을 응시했다. (중략) 캐묻기 좋아하고 어떻게 하는지 보겠다는 듯한 시선들이 내 쪽을 향해 있었고, 고개를 든 나는 머리를 끄덕이고 킥킥거리고 눈을 찡긋거리는 이들과 시선이 부딪쳤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특별석의 그늘 속으로 움츠러들었다. (p. 39(

"그냥 네게 버틀러양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뿐이야" 토니가 간단히 말했다. "자, 나랑 같이 갈래 말래?" (p. 41)

 

키티는 공연 마지막 즈음에 여성 관객 중 한 명을 골라 장미 한송이를 주곤 했다. 그 장미를 받던날 낸시는 감격에 차 올랐다. 키티 버틀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낸시를 매일 특별석에 공짜로 앉혀주던 언니의 애인 토니는 낸시에게 키티를 만나보겠느냐고 묻는다.

"당신이 여기 오는 이유가 정말 저 때문인가요? 저는 지금까지 팬이 있어 본 적이 없어요!" (p. 43)

나는 생각했다. '정말 이상해! 하지만 또 아주 정상이야. 저는 당신을 사랑해요' (p. 47)

"당신에게서 냄새가 나요. 마치..."

"마치 청어 같은 냄새죠!" 내가 씁쓸하게 말했다.

"청어라니, 천만에요. 그런게 아니라 뭐랄까, 마치 인어 같아요..." (p. 48)

키티와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 이제 무대에 선 키티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키티의 분장실로 매일 출근하다시피 가게 된 낸시는 갈수록 점점 더 커져가는 마음에 어쩔줄 몰라한다.

나는 늘 같은 감정을 느꼈다. 이내 기쁨과 가슴 아픈 사랑으로 바뀌는 실망과 후회의 번민이었다. 만지고 껴안고 애무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 욕망이 너무나 강했기에 나는 고개를 돌리고 있거나 나도 모르게 달려가 꼭 안을 까 두려워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p. 52)

키티 버틀러가 나타난 뒤로 세상은 완전히 달라진 듯했다. 키티가 오기 전 세상은 평범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키티가 음악을 울리고 빛을 발하는 야릇하고 흥분되는 공간으로 가득했다. (p. 54)

키티는 내게 온 세상보다 더 귀했다. 키티가 우리 집에 와서 내 가족과 식사를 한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면서 동시에 무시무시하게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나는 키티를 사랑했기에 키티가 우리 집에 오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내가 키티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되었다. (p. 61~62)

 

키티와 낸시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그 과정에서 풀어지는 낸시의 심리는 딱 사랑에 빠진 연인의 모습 그것이었다. 키티에게도 낸시의 존재는 각별했다. 그렇기에 다음 공연장소로 떠나야 할 때 낸시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아버지는 결론 내리길, 그러나 아이들은 부모를 기쁘게 하려고 태어난 게 아니며 딸이 평생 자기 옆에 있으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p. 82)

다행스럽게도 낸시의 가족은 따듯하고 부모님은 바람직한 교육관을 가진 분들이었다. 갑작스럽게 떠나기로 결심한 낸시를 가족들은 이해해준다.

나는 키티와 내가 완전히 같은 느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대상은 달랐다. 훗날, 나는 이를 기억했어야 했다. (p. 99)

나는 키티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대로 키티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아니면 아예 키티를 사랑하지 말아야 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끔찍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p. 107)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제멋대로인 런던의 방식과 관례를 배우는 듯했다. 마침내 키티에 대해 편해진 것처럼 런던 역시 편해졌고, 그러면서 나는 끝없이 매혹되고 반해 갔다. (p. 117)

 

비록 2류이긴 했지만 변두리 도시들의 극장에 서던 키티가 런던의 극장들에서 공연을 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의상담당자로 키티 옆에 함께 있게 된 낸시에게도. 그리고 서로를 향한 사랑의 감정에도. 하지만 대부분의 행운이 그러하듯이 그 행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몰랐죠? 제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요?"

"잘 모르겠어요. 그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왜요? 당신과 친구가 되는 게 더 쉬워 보였어요"

"하지만 키티, 그게 바로 제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오, 정말 어려웠어요! 하지만 만약 제가 당신을 연인처럼 생각하는 걸 당신이 안다면... 저는 그런 일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당신은요?" (p. 144)

나는 열여덟 살이었고, 아무것도 몰랐다. 그 당시 나는 키티의 사랑을 얻을 수만 있다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p. 158)

 

런던은 연예극장의 도시였고 향락과 쾌락의 도시였다. 화려한 런던에 매혹되었던 키티와 낸시는 차츰차츰 그 이면의 세계들도 알아간다. 그리고 자신들의 매력과 능력에 대해서도. 무엇보다 자신들의 성 정체성에 대해서도.

간단히 말해, 나는 천직을 찾았다. (p. 165)

1889년 런던의 연예장에는 우리처럼 공연하는 이들이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또한 어쩌면 역시 월터가 예언했던 대로 여자 <두명>이 신사복을 입은 모습이 여자 한 명이 바지에 실크해트에 각반 차림을 한 것보다 더 멋지고 흥분되고 형언할 수 없이 더욱 <음란>해 보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는 아주 멋지게 어울렸다. (p. 168)

나는 그냥 걷거나 키티 곁에서 가볍게 스텝을 밟을 뿐이었다. 나는 키티의 장식이자 메아리였다. 나는 키티가 밝게 빛나며 무대를 가로질러 던지는 그림자였다. 그러나 그림자로서 나는 키티에게 그전까지 없었던 깊고 선명한 가장자리가 되어 주었다. (p. 170)

 

낸시는 키티와 함께 무대에 오르게 된다. 장식이던 메아리던 그림자던 가장자리던 낸시는 마냥 좋았다. 그리고 이 소설은 낸시가 그 가장자리에서 중앙으로 그림자에서 주인으로 메아리에서 목소리로 중심에 서는 성장기이기도 하다.

키티 옆에 서고 도시의 거리를 키티와 함께 걸을 때면, 나는 수갑과 족쇄를 차고 사슬에 묶이고 눈가리개를 하고 재갈이 물린 느낌이 들었다. 키티는 내게 사랑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키티는 세상은 내가 키티의 친구 이상이 되는 일을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p. 170~171)

"낸! 그 사람들은 우리와 달라요! 그 사람들은 우리와 완전히 달라요. 그 사람들은 <톰> 이라고요" (p. 175)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난 이후가 낸시에게는 오히려 더 힘들었다. 키티는 너무나 조심스러워했고 낸시는 너무나 열정적이었다. 키티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키티는 점점 더 호기심을 키워갔다.

이런 부끄러운 말을 가족에게 하느니 차라리 즉는 게 나아. 넌 절대로 그 사실에 대해 가족에게 말하면 안 돼. 처음 우리를 떠나며 가족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으로도 모자라 가족의 마음을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아프게 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야. 부탁하건대, 더는 부끄러운 비밀로 나를 힘들게 하지 말아 줬으면 해. 대신 너 자신과 네가 걷고 있는 길을 돌아보고 정말로 그게 옳은지 네 자신에게 물어봐. (p. 179~180)

낸시가 세상에가 가장 믿고 따르고 좋아하던 친언니 앨리스에게 자신의 본심을 전달했을 때 앨리스가 보낸 답장은 낸시에게 깊은 상처가 되었다. 공연은 점점 늘어갔고 상처와 바쁨은 가족에게서 낸시를 점점 더 멀어지게 했다. 그럴수록 낸시가 키티에게 품은 열정은 점점 더 커져갔다. 하지만,

"나는 그래. 그리고 주목의 대상이 되는 이상 나는 비웃음당하는 걸, 미움받는 걸, 조롱받는 걸 참을 수 없어. 또다시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아"

"톰!"

"그래!"

"하지만 우리는 조심할 수 있어"

"절대로 충분히 조심할 수 없어! 너는 너무, 낸 너는 너무나 남자 같아" (p. 226)

 

키티는 낸시를 사랑했지만 매니저 월터와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결심을 낸시에게 말하기전에 낸시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둘의 모습을 보게된다. 낸시는 충동적으로 도망친다. 이렇게 1부가 끝난다.

이곳에 처음 온 뒤로 세상을 보는 내 시각이 얼마나 크게 달라졌던가! 나는 런던의 삶이 내가 생각해 왔던 것보다 더욱 낯설고 다양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러나 평범한 눈에는 그 모든 다양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배웠다. 도시의 모든 부분이 매끈하고 우아하게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마찰하고 심하게 스치고 부딪치고 밀쳐 대고 겹친다는 사실을 배웠다. 일부는 무서워 자신을 숨기고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는 사람들에게만 그 존재를 드러냈다. 이제 전혀 뜻하지 않게 나는 그런 비밀스러운 부분의 눈에 띄었고, 그 일원으로 선포된 것이다. (p. 261)

낸시는 어둠에 숨어 자신이 망가지게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한참을 보내고 나서야 새로운 자신의 삶에 대해 의식하기 시작한다. 2부가 시작된다.

이 소설은 총 3부로 되어있고 1부는 낸시의 새로운 삶에 대한 도입부처럼 느껴졌다. 본격적인 파란만장한 삶은 2부부터 시작될 터였다.

6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이 소설의 제목이 뜻하는 바를 몰았었다. 536p의 주석8에 가서야 '은어'의 뜻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왔을때 원어 그대로 그 의미를 아는 사람들이 느꼈을 충격이 나는 감이 잡히지 않는다. 내가 아무 생각없이 '아가씨' 라는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느낌 그런 것이었을까?

<무슨 내용인가요?> 내가 소설을 썼다는 얘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때때로 이렇게 묻곤 했다. 그리고 나는 매번 대답을 하기 위해 마음을, 약간은, 다잡아야 했다. 다소 음란한 제목을 설명하기가 어색했다. 또한 플롯을 밝히기 시작한 순간 내 정체성을 밝히게 된다는 사실도 그랬다. 그리고 플롯 자체도 그랬다. 왜냐하면, 오 맙소사, 엄청나게 야하고 부적절해 보이는 제목도 그렇거니와, 그 무엇보다도, 내용이 너무나 한정된 독자층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굴 파는 소녀가 남장 여가수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 여가수와 같이 자고 또 함께 연예장 무대에 서게 되고, 그러다가 잔인하게 버려진 뒤, 한동안 남장을 하고 피커딜리에서 매춘(남창)을 하다가, 돈 많고 나이 든 여자의 섹스 노리개가 되었다가, 마침내 이스트엔드의 사회주의자에게서 진정한 사랑과 구원을 찾는 이야기라니 말이다. 나는 레즈비언들이 이 책을 좋아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아주 빠르게 입소문을 통해 '티핑 더 벨벳'에 열광하는 게이 팬들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가슴이 설렜다. 하지만 이성애자 독자들 사이에 이 소설이 성공했다는 사실에는 깜짝 놀랐다. (p. 613)

'티핑 더 벨벳'이 20년간 겪은 대우의 변화는 영국의 레즈비언과 게이들이 삶에서 겪은 거대한 변화와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제 그들은 이성애자들과 똑같이 결혼, 양육, 취직의 권리를 누리고, 주류 문화를 즐긴다. 1998년의 나는 이런 일이 가능하리라고는 도저히 믿지 못했을 것이다. (p. 614)

- 작가의 말 '출간 20주년에 부쳐' 中 -

 

이번 책은 10년만의 개역판이기도 하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수정하는 것 못지 않게 번역가가 자신의 번역을 수정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을까. 10년 전 이 작품의 한국어판 제목은 '벨벳 애무하기' 였다고 한다. 역자는 10년전 자신의 번역에 대해 후기에서 '반성?!'하고 있었다. 절판되었던 작품을 다시 손보고 제목도 원제 그대로 해서 나올 수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 (작가는 20년 간의 변화를 느꼈다지만 우리나라에선) 지난 10년동안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최근 퀴어문학은 우리나라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분야가 되었다.

'티핑 더 벨벳'은 작가의 첫 작품이니만큼 설정에서의 우연과 캐릭터들의 일관성이 서툴어보이는 부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서툼을 잊게 하는 강렬한 전개와 솔직한 심리묘사가 읽을수록 빠져들게 하는 몰입력을 갖고 있는 작품이었다. 이 소설에 영감을 받은 영국 대중문화의 다양한 흐름들 덕에 작가는 큰 힘을 얻은 것 같아 보인다. 그러한 흐름이 우리나라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나또한 의미있게 읽은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최근 읽었던 프로이트 책으로 인해 나는 이 작품에 더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성의 '다양성'에 대해 우리 사회도 좀더 열리고 있는 것이리라 생각해본다.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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