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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잉게 숄 지음, 송용구 옮김 / 평단(평단문화사) / 2021년 2월
평점 :
히틀러와 나치의 폭압에 죽음으로 맞선 '백장미'
우리가 몰랐던 독일인의 저항 정신을 소설로 읽는다!
모든 독일인이 나치주의자는 아니었고 나치와 싸우다 죽어간 수많은 피가 있었으며 나치만큼이나 지독했던 민주화와 자유를 향한 독일인의 의지를 대표하는 인물로 한스 숄과 소피 숄이 있다고 한다. 이름에서 느껴지겠지만 둘은 남매다. 그리고 저자는 이 남매의 누나이자 언니인 잉게 숄이다. 두 동생에 대한 실명글이자 실화인데 왜 소설이라고 하는건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숄 남매는 나치에 저항한 뮌헨대학교 대학생들이 주축을 이뤘던 '백장미단'의 주동자였다. 두 남매는 단두대형에 처해졌고 가족들은 옥고를 치루긴 했으나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렇게 두 남매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전하는데 평생 노력했다.
그때 한스는 열다섯 살의 소년, 소피는 열두 살의 소녀였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조국, 동포애, 민족공동체, 향토애 따위의 말들을 귀에 익도록 들었씁니다. 이런 말들ㅇ느 우리를 감동하게 했고 학교에서나 길거리에서 이 말들이 들려올 때마다 열성적으로 귀를 기울였습니다. (중략) '조국'도 고향과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말을 사용하는 같은 민족이 사는 더 큰 고향이나 다름없지요. (p. 18) 10대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업시 우리 모두는 존엄성을 인정받고 위대한 조직의 구성원이 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온 국민이 창조해가는 하나의 과정과 하나의 운동에 우리가 동참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p. 21)
숄 남매들이 어렸을때 작은 고향마을에서도 애향심은 뜨거웠다. 큰 도시로 나와 살게 되면서 조국애로 그 마음은 확대되었고 그 당시 독일을 휩쓸었던 히틀러사상에 어른아이 할 것없이 빠져들었다. 모든 활동이 국가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빠져들고 체험하면 할 수록 이상한 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진정한 자유를 열망하여 참여했으나 활동은 억압적이었다.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고 믿었었으나 실상은 불행에도 눈감아야 했다.
이럴 수가! 그때까지 한 점의 불꽃처럼 미미했던 의심이 마침내 깊은 슬픔으로 변하더니 결국 분노의 불길로 타오르고야 말았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순수한 믿음의 세계가 산산이 부서져 조각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조국을 이런 모습으로 망가뜨렸단 말인가요? 자유도 거짓, 번영의 삶도 거짓, 조국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발전과 행복도 거짓이었습니다. (p. 30)
실상을 깨닫게 되었을때 그 실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준 것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히틀러 독재의 모순과 오류를 지적하고 알려주면서 남매들에게 '시대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나는 너희가 인생을 올바르고 자유롭게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라고 응원해주었다. 남매들은 '청소년회'를 자체적으로 결성해서 자유롭게 가치관을 형성해 나아갔고 대학생이 되어 뮌헨에 갔을때 더욱 심도깊게 삶을 고민하고 성찰하게 된다.
"진실을 말할 용기를 가진 사람이 마침내 나타나고야 말았군" (p. 51)
1942년 우편함에서 발신인 없이 복사된 편지를 발견했는데 내용은 뮌스터의 신부가 미사에서 들려준 설교문의 내용을 옮긴 것이었다. 주교는 뮌스터 지역에서 벌어진 약자들에 대한 폭압적 행위들에 대해 고발하고 있었다. 이 편지와 교수들과의 대화와 친구들과의 토론을 통해 자극받고 성장한 남매와 친구들은 저항활동을 계획하게 된다.
나치를 비판하는 전단들이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떠돌아다닌 것이었습니다. 대량으로 복사해 퍼뜨린 전단이었습니다. 대학생들은 흥분을 가누지 못했습니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승리감과 끓어오르는 열정, 역겨워하는 거부감과 치를 떠는 분노가 뒤섞여 불길처럼 번져가고 있었습니다. (p. 83)
모든 활동은 일단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야 뭐라도 시작해볼 수 있다. 숄남매와 친구들이 시작한 행동은 현실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시키는 것이었다. 전단지 배포활동은 문구작성부터 배포까지 게슈타포의 감시를 피해 살떨리는 긴장속에서 진행되는 만큼 성취감도 남달랐다.
신문은 날마다 사형선고가 내려지고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일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p. 113)
한스와 그의 친구들은 이런 생각에 젖어들었습니다. 대도시마다 그런 저항 단체가 하나둘씩 연이어 생겨난다면 그 단체들로부터 태어난 저항의 정신은 독일의 모든 장소로 확산할 것이라고. (p. 123)
언론이 침묵할수록 지하에 숨어든 지성인들은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다. 그 중심에 대학생들이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나라의 70~80년대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 이전에 세계2차대전 시기의 일제치하의 독립운동을 생각나게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역사에서 그러했듯이 숄남매와 친구들은 결국 붙잡히고 사형선고를 받는다.
"우리의 행동을 통해 수천 명의 의식이 깨어나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면 내 죽음도 헛된 것은 아닐 거야" (p. 139)
"강인한 의지를 가지고 살아야 해. 절대로 타협해서는 안 된다고" (p. 145)
남매와 친구들은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역시나 이들의 죽음은 언론에서 배반자의 죽음으로 짧게 언급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마침내 수백만 명을 억누르는 실체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묻고 비판하는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엉터리 전설은 없애버리자"라고 독일인들에게 호소했던 헬무트 폰 몰트케를 비롯한 저항 운동가들이 저항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p. 163)
실패했다고 해서 그 활동들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러한 활동들이 있었기에 그렇게라도 독일인의 양심이 지켜졌기에 지금의 독일이 있게 됐을 것이다. 독일인 모두가 나치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독일총리가 유태인학살에 대해 말없이 무릎꿇고 사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보니 어떤 면에선 지금의 일본이 조금 이해되는 면도 있다. 폭압이 극심했을때조차 자성의 목소리가 없었다면 그 폭압이 과거의 역사속으로 묻힌 현재에 와서 더더욱 그런 목소리가 생겨날 바탕이 없는 것이 아닐까 하고... 결국 일본은 영원히 사죄라는 생각을 못하게 되는게 아닐까 하고...
짧은 본문이 끝나고 나면 부록으로 백장미단의 전단 들과 독일 저항운동 선언문 등이 실려있는데 그 절절함이 당대에 읽었으면 몹시 마음을 울렸을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 문장들 사이사이에 녹아있는 고전을 보며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기도 했다. 이 책이 최근에 나온 신간이라서 그동안 나치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못나오다가 늦게 나온걸까 했었는데 아니었다.
잉게 숄의 실명소설 <백장미>는 한 명의 독문학자와 한 명의 번역가에 의해 각각 <백장미의 수기> ,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백장미의 수기>는 독문학자가 번역한 작품답지 않게 원문을 수십 군데 누락시켰고, 무수한 오역을 범했다. 인명, 지명, 학술 용어 들도 잘못 표기한 것이 많았다. 독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번역가가 옮긴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앞서 출간된 <백장미의 수기>를 거의 베끼다시피 했다. 그래서 누락된 부분, 오역된 부분, 인명, 지명, 학술 용어의 오기등이 대부분 일치한다. 이는 잇어서는 안될 불상사이며, 잉게 숄의 원작 소설을 모독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번역서에서 잉게 숄의 원작을 가능한 오역없이 번역하고, 원문을 누락시키지 않으며, 인명과 지명과 학술 용어의 정확성을 재생하는 윤리를 철저히 지키고자 최선을 다했다. (p. 226~227)
작고 아담한 사이즈에 본문이 200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글 임에도 불구하고 초판본에서 그렇게 오역과 누락이 많았다니 의외다. 여하튼 이렇게 자신있게 지적하고 수정했다니 다행이다 싶긴 하다.
실명과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수기'라고 하는게 맞을 것 같지만 수기라고 하기에도 차근차근 서술되는 건 아니었기에 소설로 보면 더더욱 맥락과 개연성이 뚝뚝 끊기는 글이었다. 하지만 독일인에게 숄 남매의 존재가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보는 의미있는 시간을 준 책이었다.